말씀묵상 제3년 1월 30일 마가복음 2장 찬송가 466장(새찬송가 408장)
01. 수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신 소문이 들린지라
02.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에라도 용신할 수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저희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03.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04.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05.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06.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의논하기를
07.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08. 저희가 속으로 이렇게 의논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의논하느냐
09.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저희가 다 놀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가로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13.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시매 무리가 다 나아왔거늘 예수께서 저희를 가르치시니라
14.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저에게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
15.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저희가 많이 있어서 예수를 좇음이러라
16.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17.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혹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19.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나니
20.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21.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 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22.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23.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그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니
24.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희가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한 자들이 핍절되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26.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27.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새 시대를 여는 하나님의 아들”
본 장에서는 전 장에 이어 예수님의 1차 갈릴리 사역이 계속해서 소개되면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점점 밝혀지고 있습니다. 본 장에서는 특별히 예수님이 죄 사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죄인들을 부르러 오신 분이심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서기관이나 세례 요한의 제자들과의 논쟁에서 예수님이 오심으로써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선포하시면서, 예수님은 모든 율법의 성취자로서 안식일의 주인이심을 말씀하십니다.
죄 사함의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1-12절)
【1-5절】중풍병자에 대한 죄 사함의 선언과 그로 말미암은 서기관들의 비난에 대해서는 마가복음이 가장 자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하여 예수님께 나가는 것이 어려운 가운데 친구인 중풍병자를 메고서 지붕을 뜯어내는 수고까지 하며 예수님께 나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 중풍병자의 병을 고쳐주시기 전에 죄 사함을 먼저 선언하십니다.
【6-12절】이에 대하여 거기 앉아있던 서기관들이 그런 예수님의 ‘죄 사함의 선언’을 신성모독으로 여기며 마음 속으로 비난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아시고 예수님께서는 죄를 사할 수 있는 권세를 지니신 분이심을 나타내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육체적인 질병의 치유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죄의 문제의 해결로서, 예수님은 바로 그 목적을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임을 보여주시고자 한 것입니다.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13-17절)
【13-15절】예수님께서는 죄인이라고 손가락질을 받는 세리인 레위(마태)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에 죄인 취급을 받던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나와 함께 하였습니다.
【16-17절】이처럼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어울리는 것을 보고 비난하는 바리새인 출신의 서기관들에게 하신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의인으로 여기는 자들을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라, 자신을 죄인으로 인정하는 겸손한 자들을 부르러 오신 것입니다.
새 시대를 선언하시는 예수님(18-22절)
【18-22절】이 단락도 앞서 나온 ‘죄 사함’이라는 주제와 같은 문맥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금식은 회개의 행위로서(레 16:29 참조), 당시 유대인들은 과거 자기 민족의 범죄로 말미암아 바벨론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멸망을 당한 것을 기념하여 일 년에 여러 차례의 금식일을 지키면서 그런 금식을 통한 회개를 보시고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주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을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제 그런 방법으로 죄를 회개하고 사함을 받는 시대가 지났으며, 이미 그들이 고대하는 메시아가 와서 새 시대가 열렸음을 선언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런 새 시대에는 메시아가 오기 전의 형식적인 의식들을 버리고 예수님이 주시는 천국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 새로운 하나님 백성들의 합당한 신앙의 자세임을 선언하셨습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23-28절)
【23-27절】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을 올바로 지키지 않는 것을 강한 어조로 비판하였는데 그것은 안식일 규정은 모든 율법들 중에서 대표적인 규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온전히 지킨다는 것은 곧 신실하게 율법을 지키는 것의 상징이었으나,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 유대교가 형성되면서 안식일의 근본정신은 사라진 채 복잡하고 지엽말단적인 수많은 세부 규정들이 만들어지면서 안식일은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과 걸림돌의 역할만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예를 드시면서, 안식일을 위하여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하여 안식일이 있음을 밝히십니다.
【28절】성경 계시에서 ‘안식’은 곧 ‘구원’과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는 말로서,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에게 안식을 선물로 주시는 분입니다(수 23:1 참조). 그렇게 볼 때 안식일은 사실상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과 안식을 보여주는 그림자와 같은 의식법이었으며(히 4:1-10), 예수님은 그런 안식일의 실체로서 사람들에게 참 안식을 주시는 분이며 안식일의 주인이신 것입니다.
◈ 묵상을 돕기 위한 질문
1. 왜 예수님은 중풍병자의 병을 고쳐주시기 전에 죄 사함을 먼저 선언하셨습니까?
2.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오늘의 기도◈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며 참 안식을 주시는 주님의 은총 안에 거하며 살게 하소서!”
◈믿음의 글◈ “죄의 교리”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신 것은 그들이 참으로 문제시되는 것이 ‘죄의 성향’이라는 사실과 그런 성향이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에 따라 좌우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단지 죄악된 행동들에만 집착한 까닭이었다.
(중략) 하지만 예수님은 진정한 문제는 씻지 않은 손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사실과 인간이 단지 도덕적인 장애만을 가진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죽은 존재임을 그들에게 거듭 깨우쳐 주셨다.
(중략) 죄를 우선적으로 어떤 행동이나 행위로 생각할 때, 우리 마음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죄인의 이미지는 그저 남에게 해코지하는 사람이나 부랑자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길거리를 배회하는 술주정뱅이 정도에 그칠 뿐이다. 하지만 죄를 하나의 상태로 파악하게 될 경우, 비록 자신이 구체적으로 저질렀던 잘못된 행동들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치부해 버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우리는 곧 우리가 모두 죄인임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완전해질 때까지는 타락하기 전 아담의 상태로 결코 돌아갈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의 의만이 그 완전함을 충족시킬 수 있다. 그로 인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순종과 희생적 죽으심과 승리의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의를 덧입을 수 있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우리들 자신은 그리스도 없이는 결코 하나님께 용납될 수 없음을 통감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마이클 호튼, “복음이란 무엇인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