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포수목원 설립자 민병갈 박사를 만나는 일은 늘 감동입니다.
태풍 고니가 물러간 다음날 아침, 하늘은 양떼구름들이 바다를 헤엄치고 있는 듯합니다.
지난주에 폐장된 인근의 만리포해수욕장은 늦더위를 식히려는 사람들이 찾아와
늦게나마 시원한 바다경치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여름이 물러가는 천리포수목원에는 상사화, 꽃범의꼬리 등 꽃들이 피어 반갑게 맞았지요.
그러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단연 아름다운 사람 민병갈 박사의 흔적입니다.
1945년 해방과 함께 25살에 해군장교로 한국으로 온 미국인 청년 '칼 패리스 밀러'
그는 임무를 마치고도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인 '민병갈' 이름으로 살면서 "자연은 자연그대로"라는 생명철학 으로
나무들의 온전한 피난처로 40년에 걸쳐 수목원을 조성했지요.
그리고 수목원을 한국인들에게 조건없이 물려주었고 2002년 목련나무 아래 묻혔습니다.
초가집을 좋아해서 초가집 모양으로 지어 집무실로 썼다는 민병갈 기념관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계절의 변화와 셀수 없이 다채로운 풍경을 구경하곤 했지요.
그런데 수목원을 만들고 운영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미국에 계시는 어머니께 보낸 편지에서
"수목원에 할 일이 많으니 낮이나 밤이나 눈코 뜰새없이 바쁘네요.
그렇지만 어머니! 저는 이일이 너무 좋아요"라고 썼다는데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남들에게 도움과 기쁨을 주는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경의를 표합니다." 라고 편지로 격려했지요.
홍보 영상물에서도 나오듯이 '천리포수목원'은
한 인간의 자연에 대한 사랑과 신념이 얼마나 아름다운 결과로 보여주는 지를 알게 합니다.
그는 천리포수목원에 나무만이 아닌 우리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 것입니다.^^
민병갈 박사의 흉상... 개구리소리를 좋아 하셨다고.
민병갈 박사의 나무
초가집을 닮은 민병갈기념관
민병갈 기념관에소 내려다 본 수목원 풍경
한복을 즐겨 입었던 한국인 '민병갈' 박사
꼼꼼하게 식물일지 등을 썼다.
이 돌의자에는 "밀러 세계의 멋을 한국에 심다."고 쓰여져 있다.
숲길이 시원하다.
낭새섬, 섬이지만 수목원의 일부다.
만리포해수욕장. 씻어낸듯 참 맑다.
민병갈 박사가 찾아내고 보급한 '완도호랑가시나무'
첫댓글 민병갈 박사님은 "내가 죽우면 묘를 쓰지 말라
묘 쓸자리에 나무 한 그루라도 더 심어라" 라고 유언하셨다네요.
그는 그토록 좋아했던 목련나무 태산목 아래 묻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