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恨)과 가락
김동원
1.
근대시인 소월의「산유화」,「먼 후일」,「진달래꽃」,「못잊어」,「예전엔 미처 몰랐어요」가 아직까지도 우리들의 가슴에 스며 젖는 이유는, 7,5조 3음보의 기본 율격인 한국 전통적 민요조의 리듬을 간직한 때문일 것입니다. 이 흐름은 고려와 조선의 옛 시조들에서 내림하는 수 백 년 내려온 배달민족의 피의 가락입니다. 정지용으로부터 ‘북의 소월, 남의 목월’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목월 역시, 전통적 향토적 가락을「청노루」,「나그네」,「산도화」,「달」,「불국사」를 통해 신라 천년의 깊이와 한국인의 흙냄새와 토속 서경을 한 폭의 한국화처럼 시 속에 오롯이 살렸습니다. 이런 한국의 전통과 시조 가락을 현대시 속에 한(恨)과 버무려 독창적으로 뽑아낸 시인이 박재삼입니다.
박재삼은 1933년 일본 동경에서 태어났습니다. 4세 때 귀국하여 외가인 경남 삼천포시(사천시) 서금동 72번지에서 정착합니다. 1946년(14세) 삼천포 여자중학교에 사환으로 들어간 것이 계기가 되어, 초정 김상옥 선생에게 시조를 사사 받습니다. 그분의 첫 시조집『초적(草笛)』을 필사하여 애송하면서 시조의 매력에 심취합니다. 1955년(23세)『현대 문학』6월호에「攝理」란 작품으로 유치환에 의해 시조에, 그해『현대 문학』11월호엔「靜寂」이 서정주에 의해 추천 완료됩니다. 아마 박재삼은 그 무렵 시조(時調)의 기본 틀인 3·4, 4·4조의 율조와 서정주의 시를 온전히 자기류로 익힌 듯합니다. 이후, 박재삼의 시는 정형적 틀을 유지하되 사설시조의 파격이 보이며, 동시에 자유시의 분방함과 판소리의 한의 가락까지 포괄한 한국인의 원형을 꿰뚫습니다. 그는 또 시조를 통해 민족의 정신적 숨결과 율조를 계승하는 동시에 초장 중장 종장의 절묘인, 흘러내리고 (流), 한 바퀴 감아 돌고(曲), 힘을 주는 마디(節)를 지어서, 다시 풀어내는(解) 것까지 그의 시집『춘향이 마음』속에 한껏 녹여냅니다.
한국인이 쓴 가장 한국적인 시집『춘향이 마음』(1962년, 신구문화사)은 주옥같은 명시 30편이 수록된 박재삼의 첫 시집이자 출세작입니다. 미당 서정주가 신화와 주술적 무속 미학에서 한국인의 원형을 발견했다면, 박재삼은 한국 여인들의 그 서럽고 슬픈 삶에 묻힌 한(恨)의 이야기를 꽃에 홀린 듯 몽환과 애틋함과 그리운 애조로 독자의 심금을 파고듭니다.
2.
집을 치면, 精華水 잔잔한 위에 아침마다 새로 생기는 물방울의 선선한 우물집이었을레. 또한 윤이 나는 마루의, 그 끝에 平床의, 갈앉은 뜨락의, 물냄새 창창한 그런 집이었을레. 서방님은 바람같단들 어느 때고 바람은 어려올 따름, 그 옆에 順順한 스러지는 물방울의 찬란한 春香이 마음이 아니었을레.
하루에 몇 번쯤 푸른 산 언덕들을 눈아래 보았을까나. 그러면 그때마다 일렁여 오는 푸른 그리움에 어울려, 흐느껴 물살짓는 어깨가 얼마쯤 하였을까나. 진실로, 우리가 받들 山神靈은 그 어디 있을까마는, 산과 언덕들의 萬里 같은 물살을 굽어보는, 春香은 바람에 어울린 水晶빛 임자가 아니었을까나.
―박재삼「水晶歌」
〈춘향가〉는 18세기 중엽 이전에 불리어 졌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대게 작품이 지향하는 것은, 춘향을 빌어 그 시대인의 신분상승에 대한 욕망과 부도덕한 지배계층에 대한 민중의 저항의지, 그리고 양반층이 열녀를 내세워 남존여비 사상의 심화확대를 꾀하고자 한 복합적 민중 감정의 총체입니다. 판소리〈춘향가〉는 현전하는 12마당 가운데 현재까지 창이 전하는 5마당의 하나입니다.
한양 양반 이한림이 남원부사에 부임하면서〈춘향가〉는 시작됩니다. 사또의 아들 이몽룡은 이팔청춘에 풍채는 당나라 시인 두목지요, 도량은 푸른 바다요, 문장은 이태백이라, 글씨 또한 왕희지니 천하 옥골선풍입니다. 시흥(詩興)과 춘흥(春興)이 도도한 어느 날, 몽룡은 광한루에 놀러 갔다가 그만 기생 월매의 딸 춘향에게 푹 빠집니다. 열여섯 춘향의 교태는 월궁항아(月宮姮娥)요, 설부화용(雪膚花容)이라, 그 어떤 장부가 꽃을 비껴 가리요. 하루 밤 만리성을 쌓은 몽룡과 춘향의 사랑도 잠시 뿐, 동부승지의 교지를 받은 아버지를 따라 몽룡은 춘향을 데려가겠다는 약조만 남긴 채 서울로 떠납니다. 이 때, 플레이보이 변학도의 등장은〈춘향가〉를 위기로 치닫게 합니다.
박재삼의「水晶歌」는 이몽롱과 이별해 살던 시기의, 그를 향한 성춘향의 그 아득한 사랑의 거리와 어룽진 여인의 심리적 애틋함을 파고든 애상의 시입니다. 변학도의 수청을 거부하며, 오매불망 몽룡을 기다리는 춘향의 행위는 한(恨) 그 자체요, 조선 여인의 어께 둘레에 서린 외로운 선(線)의 상징입니다. 박재삼은 어떻게 이렇게도 전통적 가락의 특장을「水晶歌」에서 잘 살렸을까요. 말의 규칙적인 반복으로 생기는 가락의 묘를 툭툭 끊어서 쉼표(,)로 받아 넘긴 절묘는 기막힙니다. 3․4조, 4․4조, 7․5조의 변형을 마음대로 부려 쓰는가 하면, 이것이 도리어 불규칙성의 음보로 되살아나 현대시의 내재적 율조를 이룹니다. (―래, ―까나) 등, 시행의 첫머리나 끝자리에 규칙적으로 음이 반복되어 이루어지는 음위율은 그 때까지 현대시에서 찾기 힘든 독보적 시법의 진경(眞景)입니다.
1956년(24세) 에 첫 발표된「水晶歌」는, 1연의〈서방님은 바람같단들 어느 때고 바람은 어려올 따름, 그 옆에 順順한 스러지는 물방울의 찬란한 春香이 마음이 아니었을레.〉를 통해 '몽룡‘을 바람에, 춘향을 ’물방울‘로 환치한 은유도 좋거니와 시어 행간에 스며든 시적화자와 춘향의 동일성은 박재삼의 초기 시심(詩心)의 격조 있는 경지가 한 눈에 가늠됩니다. 2연은 박재삼의 자연관이 실로 물아일체적이며, 무당의 접신의 지경에 놀고 있음도 엿볼 수 있습니다.〈하루에 몇 번쯤 푸른 산 언덕들을〉내다보는 춘향의 애심을 통해, 조선의 산야와 나지막한 구릉을 흐느끼는 여인의 어깨선에 덧댄 그 시적 미학은, 가히 무릎을 칠 만 합니다.
3.
목이 휘인 채 꽃진 꽃대같이 조용히 春香이는 잠이 들었다. 칼 위에는 눈물방울이 어룽져 꽃이파리의 겹쳐진 그것으로 보였다. 그렇다, 그것은 달밤일수록 영롱한 것이 오히려 아픈, 꽃이파리 꽃이파리, 꽃이파리들이 되어 떨고 있었다.
참말이다. 春香이 一片丹心을 생각해 보아라. 願이라면, 꿈속엔 훌륭히 꽃동산이 온전히 제것이 되었을 그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꾸는 슬기 다음에는 마치 저 하늘의 달에나 비길 것인가, 한결같이 그 둘레를 거닐어 제자리 돌아오는 일이나 맘대로 하였을 그것이다. 아니라면, 그 많은 새벽마다를 사람치고 그렇게 같은 때를 잠깨일 수는 도무지 없는 일이란 말이다.
―박재삼「華想譜」
「水晶歌」가 사랑하는 이가 보고파 노래한 애가라면,「華想譜」는 이승에서는 도저히 임을 만날 수 없을 것만 같은 춘향의 한(恨) 맺힌 옥중가입니다. 그래서 한국 문화의 특성을 가슴 속 응어리짐을 풀어내는 한 풀이의 문화라고 합니다. “우리는〈푼다〉는 말을 유난히 많이 씁니다. ‘화풀이’, ‘분풀이’, ‘시름풀이’, ‘살풀이’, ‘원풀이(푸닥거리)’, ‘심심풀이’ 등 실로 다양합니다.〈푼다〉는 것은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깨끗이 지워 생의 근원으로 다시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돌아가지 못하고 떠도는 상태, 즉, 한을 풀지 못하고 죽은 원귀(寃鬼)의 원(怨)을 풀어주는 것이 ‘한(恨) 풀이’입니다. 한국인은 생전이나 죽은 후에도 원한(怨恨)은 풀어야 하고, 또 풀어주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원망의 상태에서 백지와 같은 순수한 생의 근원으로 되돌릴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이어령)
1956년에 발표된「華想譜」는 춘향이 속내에 살아보지 않고서야 도무지 나올 법 하지 않는 슬픈 시입니다. 박재삼 몰래 싹 훔쳐와 혼자 남몰래 두고두고 꺼내보고 싶은 명작입니다.「華想譜」의 시공간은 춘향이를 자빠뜨리지 못한 변학도의 극악함이 최고조에 달한 때입니다. 변 사또의 수청을 단호히 거부한 춘향은, 형틀에 매여 태장, 곤장에 뼈가 부스러지도록 얻어맞습니다. 그 절망적 고통 속에서도 옥중 목에 칼을 차고 사랑하는 몽룡을 떠올리며 눈물로 노래합니다.〈칼 위에는 눈물방울이 어룽져 꽃이파리의 겹쳐진 그것으로 보였다. 그렇다, 그것은 달밤일수록 영롱한 것이 오히려 아픈, 꽃이파리 꽃이파리, 꽃이파리들이 되어 떨고 있었다.〉이 얼마나 애절하고 절절합니까. 옥(獄)에 갇힌 어룽진 춘향의 심리적 굴곡을 박재삼은 단순히 꽃이 아니라 ‘꽃이파리’로, 눈물이 아니라 ‘눈물방울’로 섬세한 시적 표현으로 이동하며, 시 행간 속 시각의 촉각화를 끼워둡니다. 또한 그녀의 깊고 깊은 서러움을 꽃이파리의 겹쳐진 그것의 반복으로 처리한 시법은 역시 박재삼입니다.
「華想譜」의 또 다른 매력은 시적 허용에 있습니다. 다른 현대시에서는 눈 닦고 볼래야 볼 수 없는, 2연의〈― 제것이 되었을 그것이다.〉〈― 맘대로 하였을 그것이다.〉〈― 도무지 없는 일이란 말이다.〉의 시적 종결형은 두고두고 연구꺼리가 됩니다. 아마 박재삼 시인이 시조 가락을 체화하지 못했다면, 한국의 현대시 속에 이런 희한한 전통가락의 진풍경은 결코 두 번 다시없을 뻔 했습니다.
4.
1
화안한 꽃밭 같네 참.
눈이 부시어, 저것은 꽃핀 것가 꽃진 것가 여겼더니, 피는 것 지는 것을 같이한 그러한 꽃밭의 저것은 저승살이가 아닌것가 참. 실로 언짢달것가, 기쁘달것가,
거기 정신없이 앉았는 섬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살았닥해도 그 많은 때는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숨소리를 나누고 있는 반짝이는 봄바다와도 같은 저승 어디쯤에 호젓이 밀린 섬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닌것가.
2
우리가 소시(少時)적에, 우리까지를 사랑한 남평문씨 부인(南平文氏 夫人)은, 그러나 사랑하는 아무도 없어 한낮의 꽃밭 속에 치마를 쓰고 찬란한 목숨을 풀어헤쳤더란다.
확실히 그때로부터였던가, 그 둘러썼던 비단치마를 새로 풀며 우리에게까지도 설레는 물결이라면
우리는 치마 안자락으로 코 훔쳐주던 때의 머언 향내 속으로 살달아 마음달아 젖는단것가.
*
돛단배 두엇, 해동갑하여 그 참 흰나비 같네.
―박재삼「봄바다에서」
박재삼은 무슨 천복을 타고나 이승과 저승을 잇는 봄 바다 소리를 혼자서 그렇게도 많이 들었답니까. 물이 생긴 이래 이루 헤아릴 수 길 없는 목숨이 물에 빠져 살아나오려고 발버둥 친 통곡이었을까요. 아님, 저 섬에서 서럽게 살다가 천 길 물속에 몸을 던진 어떤 누이의 아득한 숨소리였을까요. 진정 박재삼 만큼 여인의 서러운 어깨선을 외로운 섬과 봄 바다의 꽃밭에 버무려 깊이 사랑한 시인은 없을 듯합니다.
〈화안한 꽃밭 같네 참. / 눈이 부시어, 저것은 꽃핀 것가 꽃진 것가 여겼더니, 피는 것 지는 것을 같이한 그러한 꽃밭의 저것은 저승살이가 아닌것가 참. 실로 언짢달것가, 기쁘달것가,〉
참으로 시적 재기가 눈부십니다. 그 어떤 시안을 가진 사람이 있어 봄 바다에 일렁이는 물이랑에 부딪혀 비치는 수천 만 개의 은빛 햇살의 밝은 기운을 꽃빛으로 채색할 수 있단 말입니까. 더욱이 그 꽃 핀 것과 꽃 진 것 사이에서 이 땅 위에 무수히 서럽게 살다간 바다 여인들의 죽음을 불러내, 한 개 섬으로 피워낸 시 경지는 그저 탄복합니다.
물은 혼을 부르고, 혼은 물을 부른다 했습니까. 시인은 어린 시절 남해 섬과 해안에서 본 그 한 많은 어촌 여자들의 설움을, 화사하고 고운 남평 문씨 부인의 꽃빛과 대비해 살려냄으로써 한국 여인의 두 갈래 인생길을 극명하게 비췄습니다. 이따금 시인은 봄 바다 물 위로 걸어 다니는 죽은 혼령들을 봅니다. 그리고 물의 일렁거림 속에 접신 되어 혼자 웅얼거리는 기묘한 홀림 상태가 됩니다.「봄바다에서」를 수 없이 대뇌이면, 봄 바다의 꽃밭이 이승인지, 호젓한 섬이 저승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신 내림의 무중력이 있습니다. 언제나 박재삼의 시는 ‘입아아입(入我我入), 중중무진(重重無盡)’의 법화경의 세계입니다. 저것이 나한테 들어 있고 내가 저것 속에 들어 있어, 우주 모든 만물은 인연의 색실로 칭칭 얽혀 살아가는 것입니다. 중풍의 몸으로 이승의 마지막 가는 길이 참 고달팠다던 시인 박재삼. 지금〈저승 어디쯤에 호젓이 밀린 섬이〉되어 저승과 이승 사이 흰 돛단배를 저으며, 건너오고 건너가는 사람들을 무심히 보고 있겠지요.
5.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江을 보겠네.
저것 봐, 저것 봐,
너보다도 나보다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물 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江을 처음 보겠네.
―박재삼「울음이 타는 가을 강」
노산 공원 해안선을 끼고 둘러 본 물안개 속의 목섬은 한 폭의 수묵화였습니다. 박재삼 문학관에서 건너다 본 삼천포항구는 달 항아리 같았습니다.「울음이 타는 강」의 작품 배경이 된 한내천을 보고 있으니, 오직 설레임뿐입니다. 인간 마지막 가는 길도 어찌할 수 없는 설레 임 하나뿐임을 여기에 와서야 알 것도 같습니다. 이승의 온갖 애틋한 사랑이 죽어 그 숨결이 모여 된 저 노을 바다는 오직 붉고 붉은 눈물이 사랑이 된 건 아닐까요.
노을은 그래서 저물녘 서쪽 포구에 기대 외로움을 비벼대나 봅니다. 세상의 외로움은 오직 '나'의 것이며, '너'는 언제나 한 발짝 '나'로부터 떨어져 있습니다. 존재한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참으로 고독합니다. 고독의 질량은 우주 삼라만상이 다 똑같습니다. 인생은 혹독한 고해(苦海)입니다. 노을은 천 년 전이나 천년 후에도 자신의 온 전신을 산정에 덮습니다. 묵중한 산만이 이승에서 노을이 기댈 유일한 남자일 테니까요.
이따금 노을 무렵 산봉우리에 앉아서〈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울음을 타는 가을 강」을 읊조려 보십시오. 그 붉은 강물이 서로가 서로에 뒤엉켜 어제도 오늘도 흘러가야만 하는 숙명의 존재임을 자각하리다. 박재삼은 언어를 묘사하려고 들지 않고 그대로 언어 속에 풍덩 들어가 버립니다. 드러난 언어의 몸뚱이를 버리고 드러나지 않은 언어 이전의 세계와 나뒹굽니다. 시집『춘향이 마음』에 수록된「울음을 타는 가을 강」은 그의 시를 사랑하는 무수한 동시대인을 감동의 물결로 사로잡습니다.「울음을 타는 가을 강」은 휘어졌다 이어지고 감겼다 풀리는 그 절묘한 우리네 강물을, 한국인의 눈물과 한(恨) 의 정서와 결합시켜 박재삼의 대표작이 되었습니다.
박재삼의 강은 언제나 어머니 품으로 은유됩니다. 물은 시공을 초월해 언제나 남성 시인들의 시혼을 미치게 했습니다. 그것은 여자의 양수 속에 열 달을 견뎌내며 우주의 온갖 생명의 자취와 분열의 극점에서 마침내 몸의 조화로 탄생된 신비감이 남자의 무의식에 그대로 찍혀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박재삼의 물은 그래서 근원적이며 비애감이 서려있습니다.「수정가(水晶歌)」,「봄바다에서」,「自然」,「千年의 바람」,「그 기러기 마음을 나는 안다」에서도 알 수 있듯, 철학과 관조가 아니라 가슴과 심정이 그대로 시로 흘러들어, 눈물이 되고 비극이 되어 궁극에선 물과 바람만이 인간 마지막 가는 길임을 제시합니다. 천하명귀〈울음이 타는 가을 강〉은 가을 강 속에 비친 외로운 색조의 감각과 울음이란 청각적 울림을 시어 '타는'의 시각어로 합치시킨 공감각적 기발성이 놀랍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울음이 타는 가을 강〉이란 시구 속에 심층화된 뜻이, 한국인의 죽음을 수용해 그것을 뛰어넘는 한(恨)의 정서와 맞닿는, 슬픈 애간장의 녹임으로 승화된 점입니다. 또「울음이 타는 가을 江」은 소년기와 청년기를 거쳐 중년으로 접어든 시인의 시간적 성찰이 흑백 필름의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제사 의식을 통해 한국인의 공동체적 운명의 고귀함도 들려줍니다. 노을에 지는 가을 강을 통해 죽음이 절망을 건너 새로운 바다와 맞닿는 출발점임을 전통적 가락으로 살려낸,「울음이 타는 가을 江」을 읊조리고 있으면, 왠지 노을 강에 고개를 묻고 꺼이꺼이 한없이 울 것만 같은 설움에 북받칩니다. 1997년 6월 8일 새벽 5시경, 10여년의 병고에 시달리다 숨을 놓은 시인의 이승의 고달픔도 고달픔이려니와, 진정 시인이 어떻게 한 생애를 건너가야 하는지의 전범을 박재삼에게서 보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