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시 전문지 『시인』에 시를 발표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한 중견 시인 박남준이 『적막』 이후 5년 만에 발표한 여섯 번째 시집. 이전 시집을 “사회현실에 대한 단호한 인식과 섬세한 서정”으로 평가할 수 있다면, 이번 『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는 자연을 더 닮아가는 과정 속에서 “마음의 성숙한 진화”를 이뤘다고 할 수 있다.
자연에 은거하며 삶을 영위하는 시간 속에서 시인의 육체는 어쩔 수 없이 쇠잔해져간다. 하지만 내면에는 들끓는 욕망과 세속을 뛰어넘는 초극이 샘물처럼 솟아 전 시편을 관통하며 흐른다. 생태적 상상력을 근원으로 시를 쓰는 시인에게 온 산하는 그와 동체나 다름없듯이 2008년 운하 건설 소식을 접하고 한강낙동강영산강금강한강을 순례하며, 붓이 아닌 몸으로 먼저 이 땅에 순례의 궤적으로 더 큰 의미의 시를 음각했던 서정이 짙게 배어 있다.
저자/ 박남준
1957년 전남 법성포에서 태어났다. 1984년 시 전문지 『시인』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세상의 길가에 나무가 되어』, 『풀여치의 노래』,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 『적막』이 있고, 산문집으로 『작고 가벼워질 때까지』, 『꽃이 진다 꽃이 핀다』, 『박남준 산방 일기』 등이 있다.
목차
제1부 _새들은 회오리 바람을 만들어 | 봄 편지 | 놀라워라 | 청매화 화공께서 | 최대의 선물 | 독탕 | 화엄사 각황전 옆 적매화 꽃잎 땅에 떨어져 | 사랑 | 소리 | 거울 | 첫눈과 빈 들녘 | 달과 되새 떼 | 봄날은 갔네 | 잠자리와 아버지 | 가을, 지리산, 인연에 대하여 한 말씀 | 어린 찻잎 | 나도야 물들어간다 | 안식에 든 나무와 나 | 악양 | 차 한잔 | 쉰
제2부 _군불견,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 구멍난 양말 | 옥수수와 젖니와 | 산수국 | 옛날의 단방약 | 추석 무렵 | 백 년 기도 | 섬에서 부르던 유행가 | 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 그 여자의 반짝이는 옷 가게 | 입맛이 쓰다 | 매화나무 다비식 | 독거노인 설문 조사 | 쑥 너씨유 | 장금도의 춤 | 그때 검은등뻐꾸기가 | 파랑새와 명부전 | 푸른 종소리가 그립다 | 나른한 오후 | 국경의 거리를 걷고 싶다 | 목포의 눈물을 부른다 | 비와 나와 인도양
제3부 _봄 강 | 강물을 따라 흐르네 | 강이 더 좋아 | 생명의 강이어야 한다 | 운하 이후 | 낙동강 바로 분단의 장벽 | 해창 바다에서 광화문까지 | 일순 깨어지고 남김없이 씻겨져서 | 곶자왈, 스스로 빛나던 이름이여 | 이정표의 등불을 밝혀 | 의귀리 속냉이골 작은 푯말을 세우다 | 한라산 천도제 | 부디 기다리소서 | 평안하시라는 말 하지 않겠습니다 | 다시 또 여강에 몸을 던져 | 지리산에 가면 있다
해설 이명원 | 시인이 쓴 연보
출판사 리뷰
1984년 시 전문지 『시인』에 시를 발표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한 중견 시인 박남준의 여섯 번째 시집이 출간되었다. 『적막』(2005) 이후 거의 5년 만이다. 이전 시집을 “사회현실에 대한 단호한 인식과 섬세한 서정”으로 평가할 수 있다면, 이번 『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는 자연을 더 닮아가는 과정 속에서 “마음의 성숙한 진화”(「해설」)를 이뤘다고 할 수 있다. 자연에 은거하며 삶을 영위하는 시간 속에서 시인의 육체는 어쩔 수 없이 쇠잔해져간다. 하지만 내면에는 들끓는 욕망과 세속을 뛰어넘는 초극이 샘물처럼 솟아 전 시편을 관통하며 흐른다. 생태적 상상력을 근원으로 시를 쓰는 시인에게 온 산하는 그와 동체나 다름없듯이 2008년 운하 건설 소식을 접하고 한강낙동강영산강금강한강을 순례하며, 붓이 아닌 몸으로 먼저 이 땅에 순례의 궤적으로 더 큰 의미의 시를 음각했던 서정이 짙게 배어 있다. 이번 시집은 자연 활기의 충일함을 관조하며 초극의 형태로 발현되는 서정과(1부), 자연 속에서 지천명을 육체로 받아들이는 회환의 정서(2부), 시인이 몸으로 보듬고 써내려간 이 땅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깊은 애정의 시들(3부)로 엮였다.
관조하는 행동, 행동하는 관조의 시(詩)
시인은 상반된 두 가지 ‘죽음’을 응시하고 있다. 하나는 자연계의 순환 질서 속에서 생명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죽음이다. 1부 시편들 대부분이 이런 생명 윤회에 대한 시적 사유의 변주들로 꾸려져 있다. 하여, 시집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자연의 웅성거림은 생명의 활기인 동시에 언젠가는 순환 논리에 따라 소멸할 수밖에 없는 죽음의 소리로 들린다(「해설」). “저건 절명이다 아니 화엄이다//붉은 절정의 적매화 꽃잎 땅에 누워 그대로 와불이다//아스라이 흩어진 허공중의 윤회를 손바닥에 올려놓는다”(「화엄사 각황전 옆 적매화 꽃잎 땅에 떨어져」부분)처럼 시적 화자는 낙화하는 적매화 꽃잎에서 생명의 윤회를 포착한다. 그러고는 자신의 소멸마저 순환 질서의 일부분로 받아들인다.
이와 반대로 다른 하나는 순환의 질서를 파괴하는 ‘죽음’이다. “누가 대체 이토록 잔인한 죽음을 강요하는 것이냐/산허리를 잘라 철조망을 치고/이쪽과 저쪽, 앞산과 옆산을 뒷산과 그 앞강을/생명의 이동 통로를 막아버린 거미줄 같은 도로망과/죽음의 갯벌 새만금으로도 정녕 모자란단 말이냐”(「생명의 강이어야 한다」부분)와 같은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강요된 죽음이다. 3부 시편들은 이 같은 부조리한 사회 현실 속에서 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이 무엇인지 시로써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 두 죽음 사이에는 시인 자신의 소멸 체험이 자리 잡고 있다. “꽃을 바라보다 내 얼굴을 만져보네/새들의 하늘을 올려보다 걸어온 발등을 바라보네/이제 그만 나른해져야겠네”(「나른한 오후」부분)에서 보듯 ‘얼굴’과 ‘발등’으로 대유되는 유한성을 시인은 공감각적으로 ‘만지고’ ‘바라봄’으로써 “나른해”지기에 이른다. 이는 경직된 삶이 마냥 이완되는 것만을 가리키지 않고 “몸과 마음을 개방”(「해설」)하여 인생의 폭과 깊이를 더해가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차를 덖듯이 훗날 향기로운 찻잎으로 그윽이 우려날 수 있게 찻잎의 숨을 죽이고 수분을 빼듯이 말이다(「어린 찻잎」).
처음 시인의 관조는 자연에 머무르며 생명 윤회의 타래를 풀기 시작해 인간 욕망 · 세속과의 단절로 보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운동성을 촉발하는 인자가 되어 순환 질서를 파괴하는 ‘죽음’을 극복하고자 하는 생명 · 평화의 의지로까지 나아간다. 사물이나 과정이 외따로이 존재하지 않고 상호 영향 관계에 있는 관조와 행동의 변증법은 시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그의 삶을 통해 발현되는 듯하다. 이 같은 변증법적 구조 속에서 자신도 세계의 한 유기체라는 인식에 근거한 시인의 성찰과 순례의 도정은 한 편의 시가 땅에 생명을 불어 넣는 작은 숨결로, 시인이 삶으로 실천하는 운동가로 치환되는 것을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이 관조의 시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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