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재희의 보슬비 오는 거리 ~ 좋은노래
보슬비 오는 거리는 전우 작사 김인배 작곡/ 성재희 노래.
성재희는 이 노래 딱 하나 히트 시키고,
60년대 최고의 대중잡지(60년대 중반 매월 10만부씩 판매가 됐었다)
아리랑에서 제정한
독수리 대상에서 신인 여가수상 받고 자취 없이 사라졌다.
일본의 보석재벌과 결혼했다는 후문이 있었다.
아무튼 이 노래의 작사자는 전우.
전우는 밭 전짜에 벗 우짜를 사용했고, 이것은 필명이었다.
본명은 전승우, 온전 전짜에 이길 승짜, 그리고 비 우짜였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가요인 선배 중에 손석우
선생이 있었고 저녁 친구라는 석우 선생의 영향을 받아 전우가 됐다.
전우는 42세가 되던 1978년 2월 5일 간경화로
동부시립병원에서 주거부정의 부랑자 취급을 받으며 세상을 떠난다.
전우,그는 경기고교 시절 전체 5등 까지 하던
천재였었고 서울대학 철학과를 나왔지만 한국 최초의 가요기자가 된다.
그랬었다. 그 시절엔
대학을 나와서 가요계를 기웃거린다는
사실을 매우 이상하게 보던 시절이었다.
가요는 매우 천박한 동네라고 생각했고,
밥 굶기 딱 좋은 직업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전우는 우연한 기회에 월간잡지 아리랑(당시 편집장은 시인 전봉건,
소설 기고자는 토지의 박경리, 드라마의 귀재가 되는 김수현 등이었다)에서
가요기자를 했고, 그러다 작사가 까지 됐다.
전우는 60년대 최고의 작사가였다.
하지만 그는 사생활이 불행했다. 부인과의 별거 때문이었다.
그 영향으로 그는 지독한 외로움장이였었고,
여보라는 노래도 작사했고, 보슬비 오는 거리도 작사했다.
보슬비 오는 거리에 + 추억이 젖어들어
거리에는 이미 추억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 추억이 보슬비에 젖고있었다.
순간 거리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메말랐던 추억이 촉촉히 젖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상처난 내 사랑은
눈물 뿐인데
그러고보니 거리에 내리는 비는
어느새 상처난 사랑을 안고 사는
노랫속의 사람에게로 옮아가고 있었다.
눈물 뿐인 사랑, 어떤 사랑일까?
묻고 싶지만 왠지 너무 잘 알 것 같은 사랑을
누구나 한번쯤은 해 보는 것 아닐까?
아, 타버린 연기 처럼 자취 없이 떠나버린
이제 보니 눈물 뿐인 사랑은 미련과
후회 같은 것들로꽉찬 슬픔의 길이었다.
요만큼의 희망도 거기엔 아직 없는 것이다.
미소도 목소리도 이젠 없다.
그것도 아주 오래 된 것 같다.
그래서 허공만이 공허한 것이다.
그 사람 마음은 돌아올 기약 없네
실제로 그랬었다.
전우의 부인 안문희씨는 돌아오지 않았다.
결혼 하기 위해서 전우는 고교시절,
대학시절 엄청난 량의 연애편지를 썼다.
그의 작사 대부분 에너지는 그곳에서 비롯됐다.
아무튼 안문희씨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대신 정신적인 병을 앓기 시작했다.
안문희씨는 전우를 용서하지 않았다.
보슬비 오는 거리에
밤마져 잠이들어
비는 여전히 내렸던 것이다.
이윽고 밤이 왔다는 얘기다.
아니 그 밤 마져 잠이 들었다는 깊은 시간이다.
병들은 내 가슴은
한숨 뿐인데
그랬었구나.
눈물 뿐인 가슴은 실제론 병이 들었었구나.
말하자면 짓나니 눈물이요,
나오나니 한숨이라는 서글픔의 신세인 것이다.
아, 쌓이는 시름들이 못견디게 괴로워서
떨칠 수 없는 슬픔들, 마치 눈 내리는
겨울벌판 처럼 가슴엔 시름이 쌓이고 말았다,
그리고 이젠 너무 지쳐 울 힘도 없는 듯 싶다.
흐르는 눈물이 빗속에 하염 없네
그렇다, 눈물로 흘러가는 것,
이것 만이 유일한 출구인 것이다.
완벽한 좌절과 절망 속에서
지나칠 정도의 감상적이고 낭만적인
이 노래는 눈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어쩌면 이것도 방법일 것이다.
처절한 슬픔을 빗방울 속으로
희석 시킬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전우는 노래를 듣다가 자주 울었다.
그는 노랫말을 실제상황으로 들었던 귀한 사람이다.
그는 노래가 현실이었다.
그는 배호의 안녕, 누가울어, 안개 속으로 가버린 사람,
금과은의 비둘기집, 박경희의 저 꽃속에 찬란한 빛이,
위키 리의 저녁한때 목장풍경, 정원의
허무한 마음 같은 노랫말들을 썼다,
그리고 예비군가 역시 그의 작품이다.
나는 전우의 보슬비
오는 거리를 그의 노랫말 중에서 가장 좋아한다.
그리고 그가
서울대 철학과를 나와서, 술을 많이 마시고,
마흔 두살에 시립병원에서 행려병자로
죽어갔다는 사실 때문에 그의 평전을 썼었다.
제목 : 보슬비오는거리-성재희
보슬비 오는거리 - 전우 작사, 김인배 작곡
지금 한국은 5월의 중순 창밖에 보슬비가 내린다고 합니다 ,,
그 소리를 들어서 그런지 노래가 너무 구성지게 들립니다.
*
[1] 전우 (본명:전승우)
이곡의 작사자 "전우"씨도 노래를 듣다가 자주 울었다고합니다.
아 ~~ 타버린 연기처럼 자취없이 떠나버린 그사람 마음은 돌아올 기약없네 "
그분이 지나칠 정도로 감상적이고 낭만적인 마음의 소유자 였기에 ......
*
1936년평안남도 진남포 출생 경기고 졸업 서울대철학과 졸업
경기고 동창으로는 가수 위키리씨 그리고 작곡가 김기웅 선생님이 있읍니다
그리고 작사가로서 활동은 63년경에
위키리씨의 '저녁한때목장풍경' 으로데뷔해서 65년에 성재희씨의
보슬비오는거리 왜그런지 그리고 김상국씨의 쥐구멍에도 볕들날있다
*
배호씨의 누가울어 안녕
안개속으로가버린사랑 그리고 박경희씨의 저꽃속에 찬란한 빛이
등 많은 작품이있으며, 월간아리랑이란 잡지사에서 기자로활동하였음
*
그리고 본명이 문필란인 가수 문주란씨의 예명을 지어주셨고
가수 이연실씨를 스타로 만들었던 그의 작품은 알고보면 엄청납니다
*
[2]
[여보]는 전우 작사 남국인 작곡 이수미 노래이다.
이 노래는 불행한 사생활로 별거중이었던
작사가 전우 가 부인 [안문희]에게 바쳐지는 사랑의 비가 였다.
문화촌 쓸쓸한 집에서 그의 아들과 단둘이 지내며
전우를 외면하던 안 문희에 게 생활비를 전해주러 갔다가
돌아온 어느날 [전우]는 취한
가슴으로, 떨리는 손끝으로 [여보]를 썼던 것이다.
하지만 아내 안문희씨는 결코 다가가지 않았고.
*
그녀의 차분한 미소도,
윤기있는 목소리도 돌아오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이혼을 원했다.
*
여보 정말인가요?
이렇게 떠나시다니...
기적소리 구슬퍼 바람도 울고섰는데
하고싶은 말들이 너무 많아 못하고
그늘뒤에 숨어서 혼자 깨무는 입술
여보 정말인가요?
이렇게 떠나시다니...
*
하고싶은 말들이 너무 많아 못하고
그늘뒤에 숨어서 혼자 깨무는 입술
여보 정말인가요?
이렇게 떠나시다니...
이렇게 떠나시다니....
*
[3] 작사가 [전우]의 부인 안문희는
개성이 고향이며, 전우와는 1936년 생 동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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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이화 사이의 미팅을 계기로
전우와 만 난 [안문희]는 공부를 뛰어나게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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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중을
수석으로 졸업했고 이화여고에서도 전학년 우등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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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하얀
얼굴과 생기 넘치는 이지적인 눈동자가 귀여웠던 여학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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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의 작사자는 전우.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태어났고, 3 남 3녀 중 장남이다.
*
서울 문리대 철학과를 졸업했고
연예잡지 아리랑에 입사하여 국내 최초의 가요 기자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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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한때 목 장풍경], [보슬비 오는 거리],
[허무한 마음],[밀집모자],[저 꽃 속에 찬란한 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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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예비군가]등의 작사가이며, 소공동 은성싸롱에서 노래하던
아마추어 통기타 가수[이연실]을 발굴 해낸 제작자 이기도 하다.
*
결혼 하기 위해서
전우는 고교시절, 대학시절 엄청난량의 연애편지를 썼다.
*
그의 작사 대부분
에너지는 그곳 에서 비롯됐다. 아무튼 안문희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대신 정신적인 병을 앓기 시작했다. 안문희는 전우를 용서하지 않았다
60대후반부터 술을 너무 과음 하시면서부터 건강이 악화되셨고
부인인 안문희씨와의 별거등 이유로 1978년에 42세의 나이로
서울위생병원에서 쓸쓸히 행려병자로 쓸쓸히 생을 마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