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일 오후에.
어제 우리 교회에 송채환 집사를 초청하여 간증 집회를 가졌다.
예수님을 믿기 위하여 교회를 방문한 사람들보다 이쁜 송채환씨를 보기 위하여 많이 왔다.
본인 말로는 160cm키라고 하던데,,, 아담 사이즈 였고,
화장안한 맑고 깨끗한 피부에,
머리는 깔끔하게 상고커트 머리에,
엷은 회색빛 체크 원피스를 수수하고 입었고,,,,이미지가 참 맑고 순수한 느낌...
나중에 본인이 직접 만든 옷이라고 했다.
송채환씨는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엄마따라 새벽기도도 다녔고 예수님을 믿었다고 했다.
아버지의 고향은 산청이고 엄마는 서울 아가씨였는데 너무너무 가난한 생활을 했다함.
어릴적부터 엄마가 수술부작용으로 늘 아팠고 또 아버지는 버스 운전기사셨는데 사고가 나서 하반신이 화상을 입어 몇번이나 수술을하고 1년 넘게 병원에 있었고,,,,
서울서 도저히 못살아,,,, 부산 범일동 일신산부인과 있는 동네,,
동천강인가?(똥물냄새가 난다고해서 똥천이라고 불렀다네,,,(나도 부산사람이 아니라 어딘지 정확히는 모름)
그 강 옆 개울가 집 단칸방에 살면서 생선장사, 곱창장사,,,,김밥장사,,, 다리위에서 팔았다네,,,
그당시 다리쪽에 거지들도 많았다고 함.
엄마가 아프시니 매일 나가서 장사를 하면 엄마가 힘든 몸을 이끌고 옆에 앉아 계시고 그랬다네,,,
위로 오빠둘 여동생하나,,,
엄마가 아프시니 매일 교회가서 기도 했데,,, 하나님께 우리 엄마 병고쳐 주세요...라고,,
국민학교 지나고 중학교 입학을 했는데 자기반에 반장이 일신 산부인과집 딸이 되었데 그리하여 친구들을 자기집에 다 초대하여 갔었는데 집이 너무너무 좋더래,,, 방도 많고 냉장고도 2대나 되고,,
그때 처음 자기 집이 진짜 못사는구나라고 느꼈데,,,
그담부터 기도할때는
1.엄마 병 고쳐 주세요
2.하나님 우리집도 부자되게 해주세요
3.우리집도 냉장고 3대 사게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 했데,,,
근데 매일 매일 그렇게 기도를 하니 엄마병이 서서히 다 나으신거야,,
아버지도 건강이 다 회복되셨고,,,
자기가 기도 하는걸 하나님이 다 듣고 계신다는 확신이 들더래,,,,,
그 담부터는 하나님이 너무 좋고 감사해서 더 교회 생활을 잘하고 장사도 계속했데,,,,,
그리하여 중3이 되었는데 위의 오빠들이 "소연아 너는 국제상사가서 야간학교 가라"(본명이 권소연) 그러더래,,,
자기들 학교땜에 동생까지 고등학교 가기 어려운 현실땜에,,,,
그래서 국제상사를 엄청 미워했고 망하라고 기도도 했었데,,,세월이 흐른후 망하는걸 보니 미안하더래,,
근데 송채환씨는 매일 장사하고 집안일하느라 공부를 진짜 못했데 ,,,,
주간학교는 갈때가 없고하여 그냥 서울로 보내 달라고 졸라서 서울 외삼촌댁에 몇달간 있다가 그집도 형편이 좋지 않아서 엄마가 일수돈 30만원을 구해줘서 그돈으로 독립을 했다네,,
근데 엄마는 늘 송채환씨 편이었고 참 이쁘하셨데,,,
단칸방이 너무 작아서 똑바로 서지 못하고 또 잠잘때 돌아 눕기도 불편한 아주 좁고 긴 방에 살았데,,,
그렇게 살면서도 하루도 빠집없이 새벽기도를 다녔고, 교회 성가대를 섬겼고 주일학교를 섬겼데,,,
늘 집처럼 교회서 지냈데,,,
세월이 흘러,,,,,
장군의 아들 오디션에 당당히 여주인공에 뽑혔는데,,,,
임권택 감독님이 송채환을 봤더니 뒤에 후광이 짝 비취더라고 하셔서 뽑혔데,,,,,
그다음날 장군의 아들 여주인공 송채환 연예신문 1면에 나오고 방송에 인터뷰도하고 바빴데...
며칠후 장군의 아들 뽑힌 사람들 모이라고 해서 갔는데 임감독님이 채환이 어딨냐고, 왜 안오냐고 찾으시더래,,, 앞쪽에 앉았있는데도 못 알아보시고,,,,, 그래서" 제가 송채환 이라고 말씀드렸더니.... 실망한 눈치더래...
다른사람에게 들은 말로는 " 그때 본 그 송채환이 아닌데 그러시더래" ,,,
그래도 신문에 방송에 다 나가서 물릴수도 없는 상황이라,,,,,엄청 좋았데,,,
"다 하나님께서 도와 주셨구나" 라는 생각이 바로 들더래,,,,
,,, 그리하여 사랑받는 스타가 되었고 돈도 많이 벌고 또 사기당해서 60억이나 날리고 했다네,,,
지금은 파주에 사는데 땅을 사서 집을 직접 감독하여 지었데,,,방송에 나온거 봤는데 좋더라,,,
집에 냉장고가 5대 있다네,,ㅎㅎ
결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급까지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해서 하나님을 자랑하고 자기가 만난하나님을 간증하러 다니게 됐다네...
강사료는 한푼도 자기가 안쓰고 다 어려운 아이들을 위하여 쓴데,,,
직접 들으니, 참 착하게 선하게 아름답게 알찬 믿음의 삶을 살고 있구나 라는 생각도 들고,
이렇게 이뿐 사람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지 않고는 배길수 없겠다 싶기도 하더라,,,,
어떻게 사느냐가 억수로 중요해,,,,,
잘~~~살아야 하는데,,,,
예수님 잘 믿고,,,,
첫댓글 동천강부근에 (지금의 자유시장부근) 터미널이 있었고 그 이전 조선방직공장이 있었지..그래서 지금도 조방앞이란 지명이 남아있고..(맞나 몰라?) 이 부근은 평화시장,자유시장 웨딩홀 등 지금은 번화가였지만 35년전만해두 비린내나는 어묵공장에 하수 냄새나는 동천강,버스터미널이 다였지.. 고향엘 가려면 어기서 버스를 타야 했기에 아직도 기억이 생생..
글구 친구 엄마도 다리위에서 장사를 하셨는데.... 아 옛날이여..
부산서도 살았었어????
약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