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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쪽의 노하침향(老河沈鄕)에서는 발해 최초의 고분군이 발굴되었다.
중국에서는 발굴 결과 돈화현 육정산 고분군보다 이른 발해 조기(早期) 양식으로 발표하였다.
발해 시기 묘장이 139좌이며 석관묘와 목관묘도 있고 철갑편, 철검 등 철기와 구리장식, 은장식 등이 있었다.
그래서 발해 구국 성지로서 대파고성이 확실한 것이다.
또한 우리의 역사적 관심이 집중되야 할 것은 노하침(老河沈鄕)에서 발굴된 동한시대(東漢時代) 묘장 129좌다.
발해 묘장보다 훨씬 화려하고 정교한 구리장식, 금은 장식이 발굴되었는데, 이는 동한시대의 숙신족 고분이다.
발해 상경은 숙신고지에 세워졌다.
2절. 솔빈부 화주, 익주, 건주(率賓府 華州, 益州, 建州)
1> 건주(建州)
다음은 [원일통지(元一統志)]<오국부(五國部)>의 기록이다.
혼동강은 장백산에서 발원하는데
북으로 흘러 발해 건주 서쪽 오십리에서 여러 물을 만나 동북으로 흐르고
상경(발해)을 지난다.
아래로 흘러 오국두성의 북쪽을 지나 동북으로 흘러 바다로 간다.
混同江 拔源 長白山 北流經 渤海 建州 西五十里 會諸水
東北流 經 上京 下達 五國頭城北 又 東北注 于海
백두산에서 압록강과 두만강이 동서로 각기 발원하고 백두산의 북쪽에서 송화강의 상류가 발원한다. 이 송화강은 요나라 때에 압자하로 부르다가 혼동강으로 개칭하였다.
송화강은 길림을 지나 부여시를 지나 눈강(嫩江)과 하오린하(藿林)만나서 동북류로 바뀌어 흑룡강이 되고 금나라 상경 북쪽을 지나 우수리강을 만나고 바다로 들어간다.
여기서 송화강과 눈강이 만나는 곳이 발해 솔빈부 건주(建州) 서쪽 50리가 되는 것이다.
발해 건주는 부여시 반덕(班德; 성둘레 1700m )고성이 된다.
2> 화주(華州)
솔빈부 화주는 솔빈부 부성이다. 부여시 백도눌(白都訥; 성둘레 3132m) 성이 된다. 연화문 와당이 많아서 이미 발해성으로 규정되어 있다. 현재까지 중국에서 규정된 발해성중 가장 서쪽이다.
3> 익주(益州)
솔빈부 익주는 송화강 북안의 증성진(增盛鎭) 부근으로 추정된다. 요나라가 송화강 남쪽에 익주를 다시 만들었으므로 발해 익주는 증성으로 이름을 고친 것이다. 증성 동쪽 신점에서 꽃무늬기와가 나왔다.
3장. 상경 용천부, 용주, 호주, 발주
숙신의 땅(肅愼故地)을 상경(上京)이라 하고 용천부(龍泉府)라고도 했으며 용주(龍州),호주(湖州),발주(渤州) 등 삼주를 다스렸다.
다음은 [원일통지(元一統志)]의 글이다.
혼동강은 장백산에서 발원하는데
북으로 흘러 발해 건주 서쪽 오십리에서 여러 물을 만나 동북으로 흐르고
(발해의) 상경을 지난다.
아래로 흘러 오국두성의 북쪽을 지나 동북으로 흘러 바다로 간다.
混同江 拔源 長白山 北流經 渤海 建州 西五十里 會諸水
東北流 經 上京 下達 五國頭城北 又 東北注 于海
역시 원일통지의 내용이다.
상경고성은 본래 숙신고성이고 발해 대씨가 상경이라 하였다.
금나라가 요나라를 멸하고 발해 상경에 도읍하고 훗날 회녕부라고 하였다.
上京 古城은 본래 肅愼氏地이고 渤海大氏가 改爲 上京하였다
金旣滅遼 卽 上京建邦設都 後改 會寧府
그런데 고탐의 [도리기]에서 이미 발해 구국 왕성을 언급하였는데 다음과 같다.
“압록강구에서 배를 타고 100리를 가서 작은 배로 동북 30리를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박작구에 다다르는데 발해의 경계이다.
다시 강을 오백리 거슬러 오르면 고려 왕도였던 구도현성에 이르고
다시 이백리를 오르면 신주에 이르고
신주에서 육지로 사백리를 가면 현주에 이르는데 천보 중의 발해 왕도이다.
여기서 정북여동으로 600리를 가면 발해 왕성에 이른다. 왕성은 홀한해에 임하였다.
왕성 서남 30리에 숙신성이 있고 왕성에서 덕리진을 거쳐 남흑수말갈까지 천리이다.
自鴨祿江口 舟行 百餘里 乃小舫 泝流 東北三十里 至 泊汋口 得渤海之境,
又 泝流 五百里 至 九都縣城, 古高麗王都
又 東北 泝流 二百里 至 神州, 又 陸行 四百里至 顯州 天寶中 王 所都
又 正北如東 六百里 至 渤海王城. 城臨忽汗海
其西南三十里 古肅愼城 其北 經 德理鎭 至南黑水靺鞨 千里”
여기서 압록강은 오늘날의 요하(遼河)이고, 발해 신주(神州)는 철령시 서풍현 양천진 성자산산성이다.
자세한 것은 서경 압록부 신주에 설명되어 있다.
[신당서] 발해전(新唐書 渤海傳)의 상경 천도 대목이 있다.
발해의 상경성 시대는 발해 대흠무왕 때로서 당나라 천보말이었으니 738년 이후 756년 이전이다.
대흠무왕의 즉위 15년인 752년으로 추정된다.
“대흠무가 구국으로부터 300리 되는 홀한하 동편의 상경으로 천도하였다.
欽茂 徒 上京 直 舊國 三百里, 忽汗河之 東.”
752년 대흠무의 상경 천도 이전의 발해 왕도는 대조영의 홀한성으로서 장춘시 관성자(寬城子)다.
발해의 상경홀한성을 찾는데 길잡이가 되는 홀한하가 곧 송화강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근거가 있다. 먼저, 홀한(忽汗)을 소리나는 대로 적은 호란(呼蘭)이라는 물이름 또는 지명은 송화강의 줄기에서 모두 세 군데에 보인다. 첫번째는 반석과 화전의 사이로서 호란진이 호란하라는 물 위에 있는데 송화강으로 들어간다. 두번째는 흑룡강성 오상의 옆으로 흐르는 호란하가 있다. 세번째는 하얼빈에서 송화강을 건너가면 호란현이 있다. 이 세 호란이 바로 발해의 홀한하를 증거하고 있는것이니 홀한하는 송화강의 옛이름인 것이다.
이 홀한하의 옛이름은 속말수이고, 발해의 홀한하를 거쳐서 여진 시대 이후에 휘발하가 되었으며, 그 하류는 압자하라고도 부르고 혼동강이라고도 부르던 송화강이다. 반면에 동경성 일대는 몰안강(牧丹江)이다. 홀한강과 몰안강은 다른 것이다.
홀한의 어원은 고주몽의 홀본이다.
따라서 대흠무가 천도한 상경은 발해 구국 북쪽 300리로서 흑룡강성 아성시 백성자다.
아성시 백성자는 이미 금나라 상경으로 잘 알려졌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발해 상경터였다.
금나라 상경터 발굴도를 보면 [ㄴ] 자인데 두 개의 성터가 겹친 것이다.
금나라 상경 기록에 의하면 산채를 짓고 살다가,
서남방에 아골타 묘(지도중 금태조묘)를 만들고
후에 남북 쌍성을 세워 아골타묘를 이장했다가 도로 원위치했다.
즉 북성이 처음부터 황성이었다.
그런데 북성과 남성을 나누는 중앙 성벽을 보면 옹성문이 남쪽으로 향했다.
남북 쌍성이 되고도 북성이 여전히 황성이다.
그런데 남쪽 성에 분명한 황궁터가 또 있으니, 이는 금나라 황궁이 아니라 발해 황궁일 수밖에 없다.
즉 가로로 직방형인 발해성이 허물어지고서 그 북방에 금나라 아골타가 성채를 짓고 살다가
발해 상경성을 포함하는 남성을 다시 만들어서 남북 쌍성으로 다시 만들었다.
발해 상경내 황성은 동경성의 황성(아래 그림)과 거의 같은데
상경의 내성은 외성의 서쪽 부분이고 동경의 내성은 중앙 북쪽인 것만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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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나라 상경성...왼쪽의 혹은 아골타묘다 |
금나라 상경의 남성은 발해 상경(2148M X 1523M) 발해 상경내 황성(645M x 500M)터를 볼 수 있다. 이 황성이 금나라 황성이려면 황성이 북성에 있거나 상경내 황성은 동경성의 황성(아래 그림)과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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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동경성과 비교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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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동경성 평면도 |
발해 동경성내 내성과 황성/ 상경 황성과 거의 비슷하다 |
2> 용주(龍州)는 상경, 즉 아성시 백성이다. 성둘레는 남성만으로 보아서 10300M 내외다.
상경 서남 30리에 석루성(石婁城)이 있었다. [송막기문]에서 성둘레 5리의 고숙신성이라고 하였다.
[송막기문]에서 금나라 상경도 거리 설명중의 서루성(西樓城)과 동일한 성으로 고려된다.
3> 호주(湖州)
발해 호주는 요나라가 호주 흥리군(湖州 興利軍)과 장경현(長慶縣)을 다스렸다. 아성 동쪽 연수(延壽) 흑룡궁 부근으로 추정된다. 요나라 고주(古州), 금나라 곡주(谷州)가 있었다.
4> 발주(渤州)
발해 발주는 요나라가 청화군(淸化軍)과 공진현(功珍縣)을 두었다.
발해 구국이었던 유수현 대파고성으로 고려된다.
4장. 용원부 동경성, 경주(慶州), 목주(穆州), 염주(鹽州), 하주(賀州)
흑룡강성 영안현에 위치한 발해 동경성터다.
동경성은 성둘레가 17500m 정도다. 내성은 성둘레 4500M다. 황성은 2500M 정도다.
동경성터에서 상경(上京)이라고 새겨진 벽돌과 기와가 각각 발견되었다. 발해 대흠무왕이 짓고 천도할 때에는 새로운 상경성이었다.
그러나 화여왕 때에 옛 상경으로 돌아오니 다시금 동경성으로 바뀐 것이다.
[신당서]<발해전>에서 다음 기록이 있다.
흠무의 아들 굉림이 일찍 죽으니 친척인 원의가 왕이 되었다. 그해 원의가 의심이 많으니 국민들이 그를 죽이게 되었다.
굉림의 아들 화여를 왕에 세우고 다시 상경으로 천도하였다.
欽茂子 宏臨早死 族弟 元義立 一歲 猜虐 國人殺之
推 宏臨子 華璵爲王 復還 上京
이 호주 동경성은 다른 말로 용원부이고
한때 호주 동경성이 발해 상경성일 때의 또다른 발해 동경성은 책성부다.
이 호주 동경성은 외성이 37리이고 내성 둘레는 9리이며 황성 둘레는 5리이다.
또한 부근 성터에서 발해 인장이 발견되었는데 “물한주 겸 삼왕대도독지인 勿汗州 兼 三王 大都督之印”이 나왔다.
물한주는 물이 많은 주라는 뜻이 되는데 경박호와 관련된다.
동경성은 용원현(龍原縣), 영안현(永安縣), 오산현(烏山縣), 벽곡현(壁谷縣), 웅산현(熊山縣), 백양현(白楊縣) 등
6현을 다스렸다.
발해의 동경성 시대는 당나라 정원 때였으니 785년 이후 794년 이전이다.
대흠무왕 즉위 50년인 787년 경으로 추정된다.
대흠무왕은 즉위초에 대흥(大興)이라는 연호를 세웠다가 774년 보력(寶力)으로 개원했다.
이 시기에 777년 2째딸 정혜공주를 돈화(敦化)의 육정산(六頂山)에 묻은 것이다.
돈화는 뒤에 발해 독주주의 하나인 동주(銅州)가 되었고 돈화의 오동산성(敖東山城)은 이에 근거한 것으로 추정된다.
돈화의 오동산성은 석성으로서 성둘레는 4리이다.
한편 대흠무왕은 다시 개원하여 대흥보력(大興寶力)이라는 연호를 썼는데 그 원년은 즉위 당시를 기산점으로 하고 있는 실정이나, 개원한 보력에서 다시 대흥보력으로 연호를 되바꾼 시기는 알수 없다.
2> 경주(慶州)
경주는 흑룡강성 녕안현 동경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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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자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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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慶州)는 용원현(龍原縣), 영안현(永安縣), 오산현(烏山縣), 웅산현(熊山縣), 벽곡현(壁谷縣),백양현(白楊縣) 등이 있었다.
용원현은 영고탑으로 추정한다.
발해 백양현(白楊縣)은 장안산성으로부터 서남으로 120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화룡현(化龍縣) 용수진(龍水鎭) 남쪽 양목정자산산성(楊木頂子山山城)으로 추정한다. 둘레가 2680M이다. 부근에서 발해 문왕의 네째 딸, 정효공주묘가 발굴되었다. 비문에 의하면 그녀가 묻힌 곳은 염곡(染谷)이었다.
2> 목주(穆州)
[요사지리지]에서 목주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목주(穆州)는 본래 발해 회농군(會農郡)이었다. 즉 요나라 목주는 이름만 발해 목주이고 그 땅은 발해 회농군에 설치한 것이다.
발해 목주는 동경성 동쪽 목릉(穆稜)으로 추정된다.
3> 염주(鹽州)
[요사지리지]에서 염주 기록은 다음과 같다.
염주(鹽州)는 본래 발해 용하군(龍河郡)이며 해양(海洋), 접해(接海), 격천(格川), 용하(龍河) 등 4현을 두었었는데 폐지하였고, 개주와는 140리 거리이다.
역시 이름만 발해 염주이고 땅은 용하군 땅이다.
발해 용원부 염주는 연길시(延吉市)로 추정된다.
4> 하주(賀州)
하주는 혼춘시(琿春市) 부근으로 추정된다.
5> 천정군(泉井郡)
천정군(泉井郡)은 신라와 발해의 전쟁으로 알려졌다. 이 전쟁은 733년 말과 734년 초에 걸쳐서 있었다.
본래는 732년 발해가 당나라의 산동반도를 침범한 데 대한 당나라의 보복으로 시작된 전쟁인데, 당나라 현종의 사주를 받아서 김유신의 손자 김윤문(金允文) 등을 앞세워 신라와 발해의 연합군이 발해의 동남쪽을 치고 올라갔다가 폭설로 인하여 수많은 동사자만 내고 물러간 곳이다. 그러나 나당 연합군의 패인이 정말 폭설 때문이었는지는 발해의 입장이 밝혀져 있지 않아 단정할 수 없다.
이 전쟁 후에 확정된 양국의 동해안 국경은 니하(泥河)라고 하는데, 강원도 오대산의 진고개에서 흘러내리는 연곡천을 당시의 니천으로 보고 동해안의 국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말 “질다”에서 파생된 부사 “진-물”을 한문으로 바꾼 것이 니천인 것이다.
발해 천정군(泉井郡)은 함경남도 원산시 서북쪽 교외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덕원(德原)도호부는 고구려 천정군(泉井郡)이었는데 고려시대 용주(湧州)가 되었다고 하였다.
신라 때에 정천군이라고 부른 적도 있는데 정천성은 덕원부 북쪽 15리에 석성이 남아 있으며 둘레는 4300척으로서 1470M 내외였다.
현재 원산시의 덕원리, 용주리 동북쪽에 위치한 문천시 거령산 남쪽 고성리(古城里)가 천정군 고성의 위치이다.
5장. 서경 압록부(西京鴨淥府) 신주(神州), 환주(桓州), 정주(正州), 풍주(豊州)
서경 압록부는 압록강에 있었는데 그 압록강은 지금의 요하(遼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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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이 요하인 증거들
1)[원사지리지]<동령로>(현재 대동강 평양에 설치한 관청)의 설명은 아래와 같다. "고구려 평양성이자, 장안성은 한나라가 조선을 멸망시키고 세운 낙랑 땅이다. 당나라가 고구려를 쳐서 평양을 뽑아버리니(拔平壤), 즉, 결론은 지금 대동강 평양은 고구려의 옛 평양이 아니며, 고대 압록수는 현재 대동강 평양에서 서북으로 천리니 2)[삼국유사]에서 고국원왕은 안시성(安市城)으로 천도했고 이는 환도성이었다고 했다. 또 안시는 요수 북쪽이며 요수는 다른말로 압록이라고도 불렀다고 기록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지리지>에서도 안시성이 환도성이다.
4) 연개소문 차자로서 대막리지였던 [천남산 묘지문]에서는 "한성을 지키지 못해 왕의 신물을 가지고 항복해 왔다." 라고 적었다. “漢城不守 貊弓入獻 楛矢來王” |
이제 [신당서]의 압록강인 요하를 600리 거슬러 올라가 구도현성, 즉 고구려 환도성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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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령시 최진보 관음각 산성이 고구려 환도성, 즉 안시성인 증거들 1) 다음은 [신당서]<도리기>에 나오는 지리 설명이다. 自鴨淥江口 舟行 百餘里 乃小舫 泝流 東北三十里 至 泊汋口 得渤海之境, 2) 이에 대해 [요사]<지리지> 기록은 다음과 같다. 桓州 高麗中都城 故縣 三 桓都 神鄕 淇水縣, 高麗王於此 國人謂之新國 剏立宮闕 五世孫剑 宮室焚蕩.
3) 이 환주, 구도성 위치는 철령시 20km 동남쪽, 범하(汎河) 북쪽의 최진보 관음각산성(성둘레 7000M 석성)과, 범하의 남쪽 청룡산성(성둘레 4000M) 일대다. 범하의 중국 발음은 환(fan)하다. 즉 환도성에는 환하가 흐른다. 지금도. (아래 지도 참조) 4) 범하 아래 청룡산성 토성은 산상왕이 세우고, 위나라 장수 무구검(毋丘儉)에게 도륙 당해 불내성(不耐城)이라고 불린 환도성이다. <무구검전>에 불내성을 파훼하고 강물을 끌어들여 밭으로 만들었다고 했는데, 실제로 범하 강물을 끌어들였다. 그래서 다시 도읍할 수 없어서 동천왕은 평양성을 세웠다. (아래 지도 참조)
6) 위쪽 최진보 관음각산성, 즉 안시성은 그 북쪽에 당태종이 전장을 내려보던 당왕영산(唐王營山)이 서북에 있고, 산성의 동남에는 고구려후원군이 진을 친 고려영(高麗營)이 있다. [철령현지](鐵嶺縣志)에 소개되어 있다.
7) 발해 환주의 3현은 환도(桓都), 신향(神鄕) 기수(淇水) 3현이다. 환도현은 범하 북쪽 관음각 산성이 되고, 신향현은 범하 남쪽 청룡산성 일대가 되며 기수(淇水)현은 개원시(開原市)가 된다. 8) 환주에서 200리 거리의 신주(神州)는 [요사지리지]에서 고려고국(故國)이며 발해 압록부 서경성(西京城)이다.
고구려 고국이라하면 고국(故國)에 묻힌 신대왕(新大王) 고국천왕, 고국원왕, 고국양왕이 있었다.
그런데 이 수성왕 묘지석은 동천왕, 중천왕 교서 갈석과 같이 나타났다.
세 교서 갈석이 같이 나타났으므로 단 안시성과 국내성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환도성이 불내성이긴 하지만 환도성이 국내성은 아니다.
수성왕의 뒤를 이은 신대왕의 장자 발기가 비류수에 살았고, 신대왕은 국내위나암성에 도읍했다. 그러나 고국천왕 때에 요동왕 공손강이 쳐들어오고 다시 산상왕 때에 발기의 난이 있었는데 이때 산상왕의 승리는 요동국을 크게 밀쳐낸 것이고 그래서 다시 환도성에 도읍하였다.
bc.107년에 세운 1차 현도성은 옥저(沃低)에 있었다.
9) 발해 신주 신록현(神鹿縣)은 서풍현 자리인데 서풍 이전 이름이 도록현(圖鹿縣)이었다. 압록에서 유래한다.
10) 서풍현 낙선향(樂善鄕)에서는 철검이 껴묻힌 고분 70개와 고구려 초기 유물들이 발굴되었다.
11) 동천왕이 비류수에서 이기고도 양맥에서 위나라 무구검에게 패하여
12) 요나라 건국초에 망해버린 발해 압록부의 기병들이 반란하여 압록강에서 유격작전을 하였다.
14) 이제까지 발해 압록부 환주, 환도성 등으로 치부해온 집안성(集安)은
15) 집안의 산성이 약 6700m의 성둘레를 가졌다. 그 부근에서 가장 크다. 16) 요나라는 안시성민들을 빼서 요양 남쪽 탕지보로 옮겨 철주(鐵州)라 불렀고,
결론적은 집안은 북옥저였고, 고주몽 때부터 고구려에 복속했으며 따라서 동천왕이 지은 평양성, 후에 고국원왕이 증축한 평양성은 | ||||||||||||
서경 압록부에는 신주, 환주, 풍주, 정주 등 4주가 있었다.
1> 신주(神州)는 [요사지리지]에서 고려고국(故國)이며 발해 압록부 서경성(西京城)이다.
철령시 서풍현(西豊縣) 청하변의 양천진(凉泉鎭) 성자산산성인데 내외 쌍성으로 둘레 9000M다.
[요사지리지]에서 설명한 광륜 20리 석성(즉 성둘레 10000m)이라는 기록과 맞는다.
또한 아록하(阿綠河)가 흐르는 압록부이다.
유리왕의 양곡(凉谷)과 동서 양성이 기록에 있다.
발해 신주 신록현(神鹿縣)은 서풍현 자리인데 서풍 이전 이름이 도록현(圖鹿縣)이었다. 압록에서 유래한다.
발해 신화현(神化縣)은 이수현(梨樹縣) 자리다. 이수현 이전에 봉화현(奉化縣)이었다.
발해 검문현(儉門縣)은 요나라 홍문현이 되었는데 그 위치는 확실치 않다.
양천 성자산산성
2> 환주(桓州)
환주(桓州)는 고려때 도성이었고, 환도, 신향, 기수 3현이 있었다. 산상왕이 여기로 옮기니 신국이라고 불렀고, 고국원왕 때에 불탔다.
桓州 高麗中都城 故縣 三 桓都 神鄕 淇水縣, 高麗王於此 國人謂之新國 剏立宮闕 五世孫剑 宮室焚蕩.
환주, 구도성 위치는 철령시 20km 동남쪽, 범하(汎河) 북쪽의 최진보 관음각산성(성둘레 7000M 석성)과, 범하의 남쪽 청룡산성(성둘레 4000M) 일대다. 범하의 중국 발음은 환(fan)하다. 즉 환도성에는 환하가 흐른다. 지금도.
발해 환주의 3현은 환도(桓都), 신향(神鄕) 기수(淇水) 3현이다. 환도현은 범하 북쪽 관음각 산성이 되고, 신향현은 범하 남쪽 청룡산성 일대가 되며 기수(淇水)현은 개원시(開原市)가 된다.
3> 풍주(豊州)
풍주는 발해 반안군(盤安郡)이었는데, 녹주의 동북 210리다.
이는 발해 풍주를 요나라가 발해 반안군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즉 녹주 동북 210리는 요원시 반석현 부근인데, 이는 대조영의 동생 반안군왕 대야발(大野勃)의 봉지다.
발해 풍주와 안풍현(安豊縣)은 압록하의 발원인 현재의 요원시(遼源市)로 추정된다.
4> 정주(正州)
정주는 녹주의 서북 380리로서 비류왕 고지라고 하였다. 쌍료현(雙遼縣) 동명향(東明鄕)이다. 백우유지(白牛遺址)에서 고구려 유물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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