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지 : 인왕산 339.9m 종주산행
* 위치 : 서울시 종로구 서대문구
* 출발일자 : 2005년 6월 19일 일요일 당일산행
* 출발장소 : 세무서 로터리
* 출발시간 : 08시
* 산행회비 : 비회원 20,000원
* 준비물 : 점심 식수 안전한 산행을 위해 등산화 등산복착용
* 주의사항 : 1) 불조심 ( 담배불 버너사용) 하지 맙시다
* 접수신청 : 늘푸른 산악회 사무실 031-638-7484
늘 푸 른 산 악 회 장 011-337-5734
에코로바 등산 장비점 031-635-0024
* 리플로 접수하셔도 됩니다 실명 전번을 올려주세요.
1.산행코스 :
독립문역 ㅡ 인왕사일주문 ㅡ 국사당 ㅡ 선바위 ㅡ 선바위약수 ㅡ 인왕천약수 ㅡ 철조망문
성벽옆길오르기 ㅡ 범바위 ㅡ 매바위 ㅡ 치마바위 ㅡ 정상 (행사후 점심식사) ㅡ 갈림능선길
기차바위 ㅡ 285봉 ㅡ 245봉 ㅡ 254봉 ㅡ 204봉 ㅡ 하림각
2.산행정보 :

인왕산 전경
서울은 크게 바깥쪽 4개 산과 안쪽 4개 산으로 둘러쌓여 있다. 외사산(바깥쪽 4개)는 동쪽의 용마산,남쪽의 관악산, 서쪽 덕양산(행주산성), 북쪽 북한산(삼각산)을 말하고 내사산(안쪽 4개)는
북쪽 북악산(백악), 동쪽 낙산, 남쪽 남산(목면산) 서쪽 인왕산을 일컫는다. 이 내사산이 서울 분지를 이루고 있어 이 산들을 연결해 도성을 쌓았다. 경복궁 서쪽에 아름다운 암골미를 드러내고 있는 인왕산이다. 우리나라의 암벽등반 태동기에 많이 찾던 등반 대상지로서 지금의 치마바위 등은 초보자 훈련장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인왕산은 산의 높이에 비해 약수터가 많아 어지간한 등산로는 십중팔구 약수터를 경유하게 된다. 또한 바위산이기 때문에 조망도 좋고 곳곳에 기암들이 산재해 있다. 기차바위, 치마바위, 매바위,범바위,이슬바위,모자바위,선바위,지렁이바위 등이 저마다 신기한 모습들을 뽐내고 있다. 인왕산은 도성의 우백호에 해당하는 산이다.
인왕산은
북한산 산자락 아래에 솟은 인왕산은 서울의 이마에 해당한다. 서울시 종로구와 서대문구 사이에 자리잡고 있으며, 높이는 해발 339.9m에 불과하지만, 백년 전까지만 해도 이 산에 호랑이가 살았다고 전해왔었다. 거리도 가깝고 산세도 험하지 않아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이 인왕산이다. 이 산에 오르면 서울 시내와는 확연히 다른 맑은 공기를 느낄 수 있다. 정상에서 서울 시내를 한 눈에 굽어볼 수 있는 것이 인왕산의 제일 큰 매력이다.
인왕산은 1968년 1월에 김신조 등의 무장간첩들이 청와대를 습격하는 길로 사용되었다. 그 때문에 1993년 4월까지 25년 동안 청와대 경비를 위해 입산을 전면 통제했기에, 서울 한 가운데에 있으면서도 오염이 적고 맑고 깨끗한 약수터도 11곳이나 보존되고 있다. 지금은 자연보호를 위해, 매주 월요일과 공휴일 다음날에는 입산을 통제하고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인왕산이라는 이름은 신라와 고려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열었던 호국법회 "인왕도량"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인왕경>의 내용에 따르면, 어진 임금이 되기 위해 열었던 법회라 하는데, 인왕경은 부처님이 여러 나라 왕들을 위해 설법한 것으로, 통치술에 관련된 내용을 담은 불경이라고 한다.
등산로는 사직동, 무악재, 홍은동, 옥인동, 부암동, 청운동, 세검정 등 사방으로 펼쳐져 있어 모두 10여 개가 넘는다. 사직터널에서 올라 세검정으로 내려가는 길이 제일 길며, 산행에 걸리는 시간은 하산까지 2시간이면 충분하다.사직터널에서 올라와서 성곽터와 정상을 지나 부암동으로 하산하는 길이 제일 좋다.
사직공원 뒤에서 황학정을 지나 성곽터로 가지 말고 곧바로 약수터를 지나면 정상으로 향하는 계단이 있다. 황학정은 조선시대 무인들이 활쏘기 연습을 한 오사정의 하나로 경희궁 북쪽에 지었던 정자를 필운동의 등과정터에 이전하여 세운 것으로 구한말까지 남은 유일한 궁술 연마장이다. 지금도 궁술행사가 계승되고 있다.돌과 철로 된 계단을 900개쯤 오르면 매바위와 정상을 휘감는 듯한 치마바위가 보인다. 치마바위는 단경왕후 신씨의 이야기로 유명하다. 단경왕휴는 중종인 진성대군의 원비이면서 신수근의 딸이다. 연산군의 폭정에 못 이긴 중신들이 중종반정을 꾀하려 영의정 신수근을 주살하고, 성종의 둘째 아들 진성대군을 옹립했다.
억지로 왕이 된 중종은 아내 신씨를 염려하여 재빨리 왕후로 봉했다. 하지만 신수근을 주살하고 반정을 일으켰던 중신들은 신씨를 역적의 딸이라 내세워 중종에게 몰아낼 것을 강요했다. 아내를 사랑했던 중종은 왕위를 물리면 물렸지 그럴 수는 없다고 해서 중종과 반정의 주모자들 사이에 살벌한 긴장감이 감돌자 이를 보다못한 신씨가 남편을 위해 물러나며 살아 있는 동안 인왕산 바위에 붉은 치마를 널어 놓겠다고 약속을 남겼다.중종은 얼마동안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경회루에서 인왕산 바위를 살폈다. 그러나 곧 아름다운 궁녀들 품에서 단경왕후를 잊었다. 하지만 단경왕후는 그 이후, 51년 동안 중종에게 "나 여기 잘 있습니다"하고 세상 떠나기 전날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인왕산 바위에 치마를 널었다고 한다.
화강암 암반으로 되어 있어 도무지 나무가 자랄 것 같지 않은 그 메마른 바위틈으로 푸른 소나무가 가지런하게 돋아 있고, 간간이 잡목이 보이는 것은 서울의 중심에 서있는 인왕산이 서울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하다. 인왕산은 풍수설로도 명당이라 불러도 부끄러울 것이 없고, 산세가 빼어나서 명산으로의 조건을 두루 갖추었다. 그래서 태조 이성계가 궁궐터로 삼으려 했다는 설도 있다. 일반적으로 명당의 조건으로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를 꼽는다. 조선을 건국하고 도읍을 정할 때에 경복궁을 남향으로 지었으므로 서울 전체의 지형을 놓고 보면 인왕산은 우백호에 해당한다.
산세는 정상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길게 뻗어 내렸는데, 사직터널에서 자하문까지 능선을 따라 서울 외곽을 쌓았던 성곽이 현재까지 남아 있다.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의 하나인 이 성곽은 조선시대 서울의 도성으로 당시 서울의 규모를 알 수 있다. 지금의 서울은 서울의 팽창으로 인왕산이 서울의 중심부에 해당하지만, 처음 도읍지로 정할 때만 해도 북악산, 남산 등과 같이 서울을 둘러싸는 외곽에 속했다. 당시에 무학대사와 정도전이 인왕산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매바위, 치마바위를 지나서 정상에 올랐다가 하산은 부암동 쪽으로 잡는 것도 좋다. 또는 세검정이나 문화촌으로 내려가도 좋다. 부암동을 넘어 청와대로 가는 도중에는 김신조를 비롯한 무장공비와 청와대 경비팀이 치열한 격전을 벌였던 터가 남아 있는데, 당시에 순직한 경찰 4~5명의 무덤이 만들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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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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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은 오영주 윤문한 갑니다.
서강학 갑니다
권오춘님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