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기 / 2023《한강문학》봄호(31호)신인상 당선작 평론부문 / 작은 섬 외 2편
작은 섬
우 병 기
가만히 엎드려 있는 모습이 애처롭다
바다가 출렁이면 스스로는 온몸 흔들며
밤낮 엄마 쪽만 종일토록 바라보는
작은 섬
마주하면 쓰다듬고 싶다
다가가 두 손으로 밀어주고 싶다
밀면서 가고픈 곳 물어도 보고
쉬엄쉬엄 그곳도 데려다주고 싶다
저녁놀 따라 한참씩도 가 보고
자락 넓은 형 누나 섬들도 찾아 놀다가
이슥해지면 육지 엄마 기슭으로 데려와
밤새 두런두런 얘기도 나누고 싶다
그런 밤이면
엄마 앞자락 파도는 눈치껏 미리 잠들고
동무하자 손짓 없어도 별 몇은 찾아들고
달빛도 단박에 뛰어와 더할나위 없겠지
두 손으로 천천히 밀어주며 듣노라면
홀로 삼키어 더 아릿한 가슴 절절하리라
한 번씩 쓰다듬고 밀어주고 싶다.
은행잎
만추晩秋의 바람 살갑습니다
길바닥에 떨어진 친구들은 떠나는데
풀밭에 떨어진 친구들은 아직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잘있어, 하며 애틋한 인사 나눌까요
풀잎 잡은 손 아쉬워 쉬 놓지 못할까요
고갯짓만 얄랑얄랑
노랑나비 무리의 하늘거림
봄인지 가을인지 잠시 어리둥절
날씨마저 포근하게 느껴집니다
새순 움트고 곱게 물들 때까지 줄곧
한 곳에 살았으니
이제는 날갯짓하며
꿈꾸던 곳으로 날아가고 싶을까요
노랑나비 손짓은 바람의 꼬드김
나도 예쁜 놈 몇 골라 손잡고
살가운 바람 맞으며
책갈피에 데려왔습니다
이곳도 좋아하면 좋겠습니다
가끔씩 책갈피 들추면
꼭꼭 숨어있는
너와 나의 샹그릴라.
천상병
까불까불
우헤헤, 내사 어린이
처진 눈매 아래 크게 벌린 함박웃음
고뇌조차 씻어버린 환한 얼굴
아가였다
나이는 환갑 언저리
맑은 영혼의 그림자는
두꺼운 성경 어디쯤
분명 있을 거라는 믿음을 만든다
순진무구를 왼손에 잡고
오른손은 막걸리 잔
트림으로 쏟아낸
감탄의 시어들은 거룩하다
순백의 바늘로 뜨개질 하셨겠지
좋아함만큼 많지 않음이 안타까워라
또 다른 소풍은 어떠신가요
아름다우신가요
그 대답이 듣고 싶은 지금
감히, 함께 해장하고 싶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막걸리 한 잔에 아직도 두둑한 담배.
《한강문학》31호 (봄호) 시부문 신인상 당선 우병기 심사평
시는 사랑과 구원, 죽음을 이기는 힘
계묘년 춘절에 꽃소식이다. 雪中梅 향기 전한다.
강선봉 시인이 추천한 우병기의 詩 십여 편 중에서 세 편을 뽑아, 《한강문학》 31호(봄호) 시부문 신인상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우병기의 시는 작중에서 섬세하면서도 구체적인 형상을 갖추고자 새롭게 펼쳐내는 삶의 진실과 지혜를 설득력 있게 표출해 내놓고 있다. 그런 한편 속살이 다 비치는 투명함과 마치 어린아이처럼 맑고 깨끗한 시심이 돋보인다.
<작은 섬>에서 섬은 바로 시인 자신이다. 시인은 과거와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어머니이고 어린애이며 새 시대의 주인공이다.
<은행잎>은 “가끔씩 책갈피 들추면/ 꼭꼭 숨어 있는/ 너와 나의 샹그릴라”로 은행잎을 추억하며 묻어둔 만추의 바람결에 “샹그릴라”를 확인해본다.
<천상병>은 시인 천상병의 어린아이 같은 천진무구한 모습을 그려냈다. “맑은 영혼의 그림자는/ 두꺼운 성경 어디쯤/ 분명 있을 거라는 믿음”을 떠올려 보는데, 인사동 한 모퉁이에서 손각시로 앉아 ‘귀천’을 지키던 목순옥 여사가 떠오른다.
위 3편의 시 모두 “쉬고 쉬고 또 쉬라”는 장자의 <소요유逍遙遊>에 낚시 드리우는 것 보니 머지않아 월척이 기대되는 보기 드문 수작이라 하겠다. 김춘수 시인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라며 <꽃>을 은유했다. 시인은 한 편의 시를 얻기 위해 자신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했다.
그렇다. 시인에게 시는 궁극적인 구원이기 때문이다.
우병기 시인에게 시란 곧 사랑이고 구원이며, 죽음도 넘어서는 힘이다. 뜨락에 활짝 핀 설중매를 기다린다. 문운을 빈다.
《한강문학》 신인상 심사 상임고문 김 중 위 《한강문학》 신 인 상 추 천 위 원 강 선 봉 《한강문학》 신인상 시부문 심사평 김 형 식 |
《한강문학》31호 (봄호) 시부문 신인상 수상소감-우병기
잡은 손이 함께 웃기를
쓸 때마다 아쉬움과 쑥스러움 함께 담겨 오랫동안 품고만 있었습니다. 고마운 선생님들 격려 덕분에 이제 조금씩 용기를 가지렵니다.
미숙한 내 졸시 읽는
그 잠시
미소 지으면 나의 행복이지
감동 받으면 왠지 미안함
돌아서서 눈물 지으면
나도 눈물이 난다
- 우병기 〈고백〉 전문
이 고백처럼 감동을 받아도 미안한 마음이 점점 작아지도록 정진하겠습니다.
세상이 좀 더 착해지고 아름다움은 자꾸 많아져서 잡은 손이 함께 웃기를, 소박하고 따뜻한 인정을 쫓겠습니다.
우병기
경북 영양 출생, 현대자동차(주) 연구개발본부 근무(15년), 자동차부품 관련 회사 임원(10년).
家訓 : 〈아름다움과 멋을 느끼며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