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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개혁주의 언어연구소 원문보기 글쓴이: 메토코이
베드로 전서 3:18-22에 나타난 그리스도 음부 하강과 의례화(儀禮化)
김범식
"그리스도께서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19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evn fulakh/| pneu,masin)들에게 전파하시니라 20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21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avnti,tupoj)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니라. 22저가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 (벧전 3:18-22) 1)
1. 들어가는 말
그리스도의 음부 하강이라는 다소 신화적 어감을 주는 사상은 주후 4세기 후반 신앙고백서의 기독론적 신앙의 한 항목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2) 그러나 고대 공의회(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칼케돈)에서 만들어진 신경에는 분명히 이 항목이 들어가 있지 않음으로 오늘날까지 이 기독론의 항목이 기독교의 정통적인 가르침으로 인정되지 못하였고, 특별히 어거스틴은 “그리스도의 음부 하강에 근거하여 불신자들이 믿게 되고, 모든 사람들이 지옥으로부터 해방될 것이라는 견해”는 이단적인 사상이라고 규정하였다.3) 어거스틴은 오리겐주의자들이 베드로 전서 3:18-20의 구절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예수가 죽어서 음부로 내려가 죽은 자들에게 복음을 다시 전하여, 결국 사후의 회개와 구원이 이루어져 논리적으로 “지옥의 무용론”으로 귀결되는 상황을 우려하였다. 이 난해한 구절의 해석을 어거스틴은 그리스도가 선재적으로 노아의 홍수 시절에 임하여 영적으로 죽은 자들에게 노아의 입을 통하여 복음을 전한 것이라고 영적인 해석을 내렸다.4)
베드로 전서의 구절을 예수 그리스도의 음부 하강과 처음 연결시켜 해석한 사람은 문서상으로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이고, 오리겐은 또한 이것을 알렉산드리아의 전통적인 해석처럼, 지옥의 심판도 결국 연단을 위한 잠시적인 것이고, 그리스도의 음부 하강은 로고스의 계속적인 사후 세계로의 확장적인 구원사역으로 베드로 전서 구절을 이해하였다. 그러나 서방교회는 이 베드로 전서의 문자적 해석에 따른 그리스도 음부 하강의 교리가 가지는 오리겐주의적 보편구원론을 거부하였다. 그 이후로 교회의 역사는 그리스도의 음부 하강 교리가 성서적 역사적 근거가 부족한 기독론이고, 동방교회의 몇 지역에서만 간헐적으로 언급된 주변적 가르침으로, 교리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어서 기피해야 할 교리로 간주하였다.
본 논문의 논지는 그리스도의 하강에 대한 가르침이 신조에 나타난 것보다 훨씬 이른 시기인 1, 2세기의 속사도, 그리고 교부들에게서 나타나는 것을 볼 때, 이 기독론은 적어도 고대성 (antiquity)을 가지고 있음을 강조한다.5) 그들은 그리스도의 음부하강의 의미를 음부권세를 이기는 그리스도의 실질적 음부 침입과 정복 (harrowing of hell)로 받아들였고, 베드로 전서 외의 많은 구절들을 이 음부 하강을 증거구절로 사용하여 왔다.6) 또한 그리스도의 음부 하강이라는 사상은 단순히 교부들의 기독론적 해석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고대의 하강 전승 이야기들이 성서 안에서 이미 다양하게 사용되어져 오며, 그것의 적용, 변용, 그리고 재창출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음부 하강으로 기독론화 되었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베드로 전서의 구절은 하강 전승을 세례의 의식으로 개념화하여, 핍박받는 초대교회 교인들이 고난과 순교의 시기에서, 이미 그리스도가 음부 세계를 정복함으로 승리와 영광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미 주어져 있음을 알리는 중요한 기독론적 고백으로 승화시켰다. 그러나 성서 이후, 후대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음부 하강 이야기를 죽은 자에 대한 관심과 그 구원의 확장 사건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발전하였다.
2. 하강 전승
하강 (Descent, kata,basij) 이야기는 고대의 많은 문화와 신화적 주제에서 발견되어 진다. 그 중에 음부 하강의 이야기는 신들이나, 영웅들, 혹은 인간이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죽은 자들의 땅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Heracles, Dionysus, Gilgamesh, Anat 등). 그리고 다른 음부 하강의 신화는 건기와 우기의 변화, 혹은 다산과 풍요의 기원 등을 신들의 이야기로 연결시키는 데서 찾아 볼 수 있다 (Inanna and Dumuzi, Ishtar and Tammuz, Baal and Anat, Demeter and Persephone, Aphrodite and Adonis). 다른 중요한 하강 이야기의 문학적 형태는 흔히 “음부의 여행” (tour of hell/paradise)으로 불리는 것인데, 사람들이 꿈이나, 환상 혹은 황홀경, 그리고 가사상태에서 kata,basij를 통하여 음부 세계를 목격하고 오는 것이다 (journey of Enoch in 1 Enoch, the story of Er in Plato's Republic, Scipio's dream in Cicero's Republic, Odysseus' ne,kuia in Homer's Odyssey, Aeneas' ne,kuia in Vergil's Aeneid). 음부 세계를 목격하고 돌아온 이들의 이야기는 주로 음부 세계의 영혼들의 상태, 그리고 심판 장소의 형벌 등을 통하여 인간의 죽을 운명, 사후 세계의 분명한 존재와 영혼들의 가치에 따른 분리, 그리고 사후 심판을 준비해야하는 현재의 윤리적 삶을 강조한다.
Bousset는 그리스도의 음부 하강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이러한 원시적 이야기나 신화의 assimilation 혹은 spiritualization이라고 보았고,7) Beare는 이 원시 교리가 역사적으로 결코 기독교인의 중심적인 기독론적인 가르침이 되지 못하고, 주변적 가르침으로 맴돌았으며, 이것은 오리엔탈 종교의 구원신화를 appropriation, application 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8) 그러나 이 그리스도의 음부 하강은 단순한 신화의 적용 혹은 탈 신화화된 변용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역이 가지는 우주적, 그리고 보편적 의미로 기독론화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신들 혹은 영웅들의 하강 이야기는 살아서 음부 세계로 찾아가는 영웅적인 행위의 형태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지만 (Heracles, Orpheus, Asclepius), 예수 그리스도의 하강은 그의 삼일 동안의 실제적인 죽음 (triduum mortis)을 통하여 일어나는 것으로, “죽음”이라는 영역을 음부의 권세로 보았다는 데서 다른 점이 분명히 있다. 예수의 하강은 고대부터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사후세계의 땅을 침입하여 결국 음부의 권세를 깨뜨리고 정복하는 Descensuskampf (descent +combat)로 보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가지는 의미를 기독론적 해석을 통하여 오히려 그리스도의 궁극적 승리로 보고 있는 것이다.
본 논문은 다양한 하강의 이야기들 중, 성서가 어떤 특별한 하강 이야기를 채용한 사실에 주목하기보다는, 신들 혹은 영웅, 인간의 하강 이야기를 고대의 일반적인 하강 전승 (descensus tradition)이라고 보고, 성서가 어떻게 이것을 이용하여, 결국은 그리스도의 음부 하강 이야기로 기독론적 개념화를 이루고 있는지, 그 발전의 궤도를 살펴보는 것이다. 본 원고는 논문의 마지막 장인, 베드로 전서의 관련된 구절에 대한 해석을 다루는 것으로 논문의 주요 논지를 전개하고자 한다.
3. 그리스도의 음부 하강과 세례적 의례화(儀禮化): 베드로 전서 3:18-22
베드로 전서의 이 구절은 문자적으로 쉽게 해석하기 어려운 예수의 사후 사역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많은 해석상의 논란이 있어 왔다. 즉 예수의 고난과 죽음 대한 베드로적 (Petrine) 기독론을 보여주는 수수께끼와 같은 구절이라 할 수 있다. 이 구절의 드러난 문맥은 베드로 (베드로에게 전승의 권위를 부여하는 저자) 교인들이 소아시아 지역의 이방세계에서 물리적 혹은 사회적 억압 아래에서 어떻게 그들의 기독교 세례를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세례에 대한 그들의 이해는 유대 고대전승에 근거한 세계관, 종말론과 관련되어 있다.
새로운 기독교 시대 (at the turn of the Christian era)의 전환점에 유대교의 묵시주의와 신비주의는 베드로 전서의 묵시주의적 종말론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이 묵시적 세계관에 근거하면서, 기독교 이전에 나타난 것으로 여겨지는 셋 영지주의자들 (Sethian Gnostics)의 세례의식에서 개념화된 구속자의 하강과 선택받은 자의 인침의 의식은 베드로 전서의 구절을 이해하는데 공헌하고 있다.
1) “내세여행”으로의 예수의 음부 하강: Jewish Apocalypticism
베드로 전서의 신학적 토대는 유대 묵시문학의 종교적 세계관에 근거하고 있는데, 저자는 그의 시대까지 발전해온 성서와 성서 외의 문학에 보이는 유대전승들을 받아들였다. 그레코로만 시대의 이방문화에 둘러싸인 채, 특별한 역사적 사건들을 해석하면서, 새로운 역사적 질서를 염원하는 다니엘서나 요한계시록의 “historical apocalypse"9)는 아니지만, 베드로 전서는 이 세상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삶의 정황을 ”디아스포라“ (strangers or exiles)로 규정하며, 묵시적 희망을 그리고 있다. 이 희망은 그리스도의 영을 빌어 이미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하였고 (1:11), 천사들도 바라던 것이었다 (1:12). 초월적 세상을 상상하며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비밀스러운 내세로의 여행에 대한 지식을 근거하여 묵시적 희망을 가지는 것은, 마치 1 에녹서10)의 선택된 의로운 백성들의 공동체가 에녹의 천상의 여행에 대한 비밀스럽고 예언적 지혜에 자신들의 ”의“를 근거하는 것과 같다. 유대교는 헬라시대에 접어든 이래 많은 변화를 맞이하면서, 새로운 문학 장르와 세계관을 기독교 시대 이전에 형성하였는데, 소위 apocalypse11), apocalypticism의 출현이었다. 이런 문학의 장르와 사상에서 발견되어지고 있는 인간 역사와 관련된 세계관을 ”묵시적 종말론“(apocalyptic eschatology)이라 부른다.12)
유대 묵시주의는 악의 존재와 역사의 종말, 심판을 전제하면서, 종교사에 새로운 사상적 자리매김을 하면서 많은 영향을 끼쳤다. 특별히 1 에녹서의 첫 번째 부분인 "the Book of the Watchers"13) (chs. 1-36)는 창세기 5-6장에 나오는 에녹의 승천과 천사의 하강에 대한 사건을 중심으로 묵시적 에녹의 천상여행과 천사의 타락, 일시적 심판, 그리고 이방 세계의 악의 배후로 역사하고 있는 귀신들의 활동, 마지막 종말과 영원한 심판을 잘 보여주고 있다.14) 다양한 외경들과 신약성서 (마 25:41; 벧후 2:3-5, 9; 유 1:6; 계 12:3-9)에서도 보이는 1 에녹서의 묵시적 종말론의 신화적 과거 (mythic past)는 베드로 전서가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신화적 과거에 근거한 mythic paradigm15)은 현재의 이방세계 (로마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신화적 과거의 재현이라고 본다. 신화적 과거의 재현은 종말론적 구원사의 주인공들(dramatis personae)로서, 하나님, 선한 천사, 그리고 선택받은 의인들이 한 편이 되고, 사탄 (Azazel, Belial, Masatema), 타락한 천사들, 거인들 (gi,gantej,~yliypin>), 귀신들, 그리고 세상의 권세자들 (kings, rulers)이 적대자들로 한 편이 된다.
신화적 과거에 근거한 신학적 패러다임 (타락-심판-구원)은 창세기의 천사 타락과 홍수 심판, 소돔과 고모라의 타락, 그리고 불 심판을 현재의 악한 세대를 묘사하는 “proto-type"16)으로 사용하면서, 경건한 의인들이 고난과 핍박을 견디며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을 기다리도록 격려한다. 특별히 공동서신들은 "watchers myth"에 대한 지식과 그것의 종말론적 의미를 잘 반영하고 있다: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u`po,deigma)을 삼으셨으며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벧후 2:4-7)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은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dei/gma)이 되었느니라. (유 1:6-7)
watcher myth,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와 관련된 인간의 타락과 불 심판, 그리고 선택받은 자 (노아와 롯)의 구원을 일련의 결합된 신화적 과거로 묶어서 현재와 종말의 교훈으로 사용하고 있다.17) 이러한 신화적 과거를 배경으로 하는 유대 묵시주의의 종말론은 이방세계와 그 뒤에 역사하는 악의 영적 세력을 동일시하고 있다.
에녹 전승에 있어서 에녹이라는 인물의 신비스러운 승천 (창 5:24)과 천상의 여행 (1 에녹서 17-36)은 천사의 타락 (창 6:1-4)이라는 이야기가 배경이 되어, 에녹의 천상 여행이 “tour apocalypse"로서 역할을 하며, 타락한 천사의 심판과 우주질서의 비밀을 계시하고 있다.18) 유대 묵시주의 혹은 신비주의는 에녹 전승을 중요한 주제로 다루면서, 에녹의 신비스러운 여행이 보여주는 계시를 특별한 지식으로 간주한다.19) 에녹 전승에서 보여지는 tour apocalypse는 베드로 전서 3:18-22에서 보이는 ”영으로 옥에 갇힌 영들“에게 하강하시는 그리스도의 내세여행의 묵시적 배경을 제공한다.
2) 유대 신비주의: Merkavah Mysticism과 ירד למרכבה
이사야 6장과 에스겔 1 장에서 선지자들의 하늘 보좌의 환상적 경험은 1 에녹서 12-16장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신앙적 영웅의 승천과 천상의 여행과 결합되어, 후대에는(늦어도 1세기 중반부터) 유대 신비주의로 발전하였다.20) Scholem은 이러한 유대 신비주의는 기독교 시대에 접어들면서 많은 양의 유대교 위경과 묵시록을 저작한 그룹들과 어떤 연관성을 찾아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초기 유대 신비주의를 흔히 Johanan ben Zakkai의 제자들로 불리는 일련의 미쉬나 선생들에게서 발전된 "Merkavah (throne, chariot) mysticism"이라고 부르는 데, Scholem은 이 신비주의가 초기 묵시주의의 익명의 그룹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21) 이스라엘 땅의 로마 지배 하의 반란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유대 묵시주의가 역사의 종말론적 도래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면, 이 유대 신비주의는 비밀스러운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명상 (theosophic speculation)에 관심을 가진다. 더 나아가서 후자는 환상가나 신비주의자가 천상에 올라가서는 천사나 불로 변하여 하늘의 비밀스러운 영광과 실재를 경험하는 “변형적 신비주의” (transformational mysticism)로 발전하였다.22) 신비주의자의 승천에서의 변형 (천사와 같은 변형, angelomorphism)은 묵시묵학에서도 보이고 있는데,23) 이것은 후에 유대 Merkavah mysticism의 궁극적 소망으로 삼는 변형된 승천자, "Metatron"이라는 계시의 수혜자, 전달자의 모습을 예견하고 있다.24)
승천한 에녹, 모세 혹은 의로운 신비주의자들의 천사 같은 변형에 대한 신비주의적 전승은 단순히 묵시적 미래의 희망을 담기보다는 현재의 환상적 경험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 혹은 보좌에 도달하려고 하는 인간의 영적 체험의 기대였다. 이러한 승천의 경험은 마치 영지주의자들의 일곱의 하늘들을 통과해 영원한 intelligible world에 영혼이 귀의하고자 하는 헬라사상 (the journey of the soul)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이러한 승천경험은 Merkavah mysticism에서 전문적 용어로 “descending to the Merkavah"(ירד למרכבה) 라고 부르고, 그런 경험을 하는 신비주의자를 ”descenders to the Merkavah"라고 부른다.25) 아이러니하게도, 승천의 경험을 오히려 “하강”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Gruenwald는 이러한 신비적 체험을 하는 사람은 신비주의 공동체의 사람들을 대표하여 “공적 사신” (public emissary)의 임무로 하늘로 올라간다고 이해하였다.26)
신비적 승천경험은 Hekhalot Rabbati에서 그룹을 대표하여 승천하는 것을 의례화 (ritualize)하고 있는데, 이것은 승천 또는 하강의 신비적 경험자가 집단을 대신하여 중보자로서 계시를 받거나 전달하는 의식과 관련되어 있다.27) 유대교 신비주의적 영성의 발전은 하나님의 보좌의 chambers (hekhalot= throne world)28)로의 하강 (승천)을 예식화 함으로 성전 멸망 후, 천상의 보좌에 대한 경험을 예전적 형태로 발전시킨 것 같다. 이런 하강 혹은 승천을 예전화 하는 것은 베드론 전서가 그리스도의 음부 하강을 세례의식으로 의례화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3) 구원자 하강 신화의 의전화 (儀典化)
구원자 (Sophia, Savior, Redeemer) 하강의 신화가 가장 두드러지게 보이는 문서는 영지주의적 문서이다. 초기 영지주의자들은 한 분 하나님 (the Monad)의 영원한 생각들 (thoughts) 혹은 속성들 (attributes)이 자기발현 (self-emanation)되면서, 개체화 (hypostatize) 혹은 의인화 (personalize)되고, 마지막 aeon인 Sophia가 자신의 desire 혹은 passion에 의해, demiurge라는 창조주를 낳아, 결국 악한 물질세계(Cosmos)가 창조되었다고 보았다.29) Sophia의 타락으로 인한 물질세계의 형성과 타락한 Sophia의 회복이라는 영지주의적 구속사관은 Sophia가 자신에게 속한 영의 사람 (pneumatic)을 이 세상의 어둠과 망각의 상태로부터 구원해 내기 위해, 세상에 내려오는 하강 신화를 만들어내는데, 이 Sophia (혹은 savior) 하강 이야기는 Sethian Gnosticism, 그리고 기독교 Valentinian Gnosticism에 빈번히 나타나고 있다.30)
나그 함마디 (Nag Hammadi)의 영지주의 문서들 중에서 기독교 이전의 영지주의라고 생각되는 Sethian Gnosticism은 Sophia 혹은 Savior 같은 구속자가 이 세상을 음부 세력인, Hades, 혹은 Chaos 동일시하면서, 이 세상에 잠들어 있는 영혼을 깨우기 위해 하강하는 이야기 (“descending for redemption")를 그들의 세례의식으로 의례화 (ritualize) 하였다. 초기 셋 영지주의자들이 구속자 하강을 spiritualize하면서 자신들의 수세자 (initiate)에게 베푸는 세례의식으로 의례화 하는 것은 기독교 이전의 셋 영지주의 문서와 기독교화 된 셋 영지주의 문서에서 다양하게 보이고 있다:
나는 그들의 감옥[Hades] 가운데로 들어가 말하였다: “나는 순수한 빛의 Pronoia이다; 나는 원초적인 영을 생각하는데, 그는 너희들을 일으켜 가장 존귀한 곳으로 안내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일으키고 사망이 지금부터 그들을 주장하지 않도록 다섯 개의 인으로 물 가운데서 그들을 인칠 것이다 (Apocryphon of John, II, 1.31.11-25) 그는 다섯 개의 인을 어머니, Protennoia의 빛으로부터 받았는데, 그가 지식의 신비에 참여하도록 수여되었다. 이제 그는 빛 가운데, 한 빛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말로다 형용할 수 없는 다섯 개의 인 (five seals)을 선포하면서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고 그들도 내 가운데 거하도록 하였다 (Trimorphic Protennoia, XIII, 48-31-35, 50.9-11)
셋 영지주의자들의 다섯 개의 인으로 베푸는 물세례 의식은 gnostic redeemer (Seth, Sophia, 혹은 Christ)가 세상의 음부의 세력인 Hades 혹은 Chaos세력을 정복하는 의미로 물(abyss나 chaos를 상징)로 내려와 수세자에게 인을 치는 형식으로 개념화되고 있다. 즉 ritual descent (죽음과 음부의 경험)로서 물세례를 구속자의 음부 하강과 정복으로 상징화시키고 있다.31) 이러한 물세례 의식은 이 세상의 Hades의 세력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인” (sealing)으로 여기고, 구속자의 하강을 “mystery"라고 부른다. 마찬가지로 초대교회는 물세례를 ritual descent라고 생각하고, Shepherd of Hermas 9.16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제자들의 물세례 사역의 의미를 죽은 자를 위해 그리스도가 음부로 하강하신 것을 본받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후의 초대교회는 예수 예수의 물세례 순간을 그리스도의 음부 하강과 정복사건으로 이해하였다 (Ode of Solomon, Martyrdom and Ascension of Isaiah, Testament of Asher). 셋 영지주의자들의 구속자 하강의 의전화는 베드로 전서가 그리스도의 음부 하강을 세례적 문맥에서 의전화 하는 같은 전통을 가지고 있다 (ritualizing the descensus tradition).
4) 베드론 전서 3:18-22의 해석: 고난, 세례, 영적 승리
베드로 전서와 바울 서신들과의 신학적, 용어적 유사성이 제안되어 왔지만, 그 관계가 문학적 의존을 증명할 수는 없다.32) 다만, 베드로 전서와 히브리서, 로마서, 그리고 1 Clement의 용어적 유사성은 베드로 전서의 용어와 신학적 개념이 지역적으로 로마 교회 공동체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같다.33) 그래서 베드로 전서는 넓게는 의전적이고, 권면적이며, 세례문답적인 로마 교회 공동체의 전통을 바울의 신학과 함께 공유하고 있다.34)
베드로 전서의 저작 배경을 세례적 전통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은 많은 학자들에 의해 주장되어졌는데,35) Hill은 이 기독교 세례는 옛 생활로부터 새로운 기독교인의 삶으로의 자발적 헌신의 기회와 결단을 의미하는 것으로 세례 받음을 통해 수세자는 “고난”을 필연적으로 포함하는 새로운 윤리적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36) 이것은 결국 세례를 통하여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기독교인으로서 이방사회에서 받을 수 있는 사회적 압박, 물리적 핍박을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 (Imitatio Christi)하는 의미로 받아들이도록 요청되어 진다.37) 그래서 베드로 전서의 Sitz im Literatur를 기독교 세례 수세자를 향한 권면 (paraenesis)라고 본다. 고난 (2:19; 3;14, 17; 4:1, 15, 19; 5:10)에 대한 베드로 전서 저자의 관심은 pa,scw(4:15, 19; 5:10/ pa,qhma -4:13, 5:9)라는 특별한 단어를 선택하고 고난의 의미를 새롭게 재 정의하고 있다.38) 애매히 고난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베드로 전서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신학화하면서 고난에 동참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오히려 그리스도를 닮아가면서 승리와 영광에 참여하고 있다는 권면의 메시지를 전한다.39) 즉 그리스도의 3일의 죽음이 가지는 의미를 그리스도의 음부하강과 그것으로 인한 음부세력에 대한 승리의 메시지로 전하고 있다.
학자들은 3:18-22의 뒤에 있는 원초적인 기독론적 hymn 혹은 creed의 요소로부터 baptismal credo (Bekenntnis)를 재구성하려고 시도하였지만, 노아 홍수의 이야기를 세례와 관련하여 이해하지 못함으로, 3:20-21의 내용을 세례적 고백에서 제외시킨다.40) 신화적 과거로부터 죄와 악의 기원을 설명하는 유대 묵시주의의 세계관과 종말론은 노아의 홍수 사건과 관련된 타락한 천사들 그리고 그들의 일시적 심판 (옥에 갇힘), 그리고 남겨진 귀신들의 이방세계 가운데서의 계속적인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타락한 천사들의 궁극적인 패배는 영원한 심판으로 예정되어 있는데, 베드로 전서는 예수의 고난과 죽음의 의미를 예수의 음부에로의 신비적 하강을 통하여 “옥에 갇힌 영들”에게 나타나고 어떠한 메시지를 그들에게 선포하였음을 강조한다. “선포한다”의 헬라어는 khru,ssw으로서, 저자가 복음을 전파한다는 뜻의 euvaggeli,zw (1:12, 25; 4:6; 4:17)와는 분명히 구별함으로, 이 메시지는 구원의 복음전파가 아니라 옥에 갇힌 영적 세력에 대한 선포 (proclamation)를 의미하고 있다. 이것은 딤전 3:16의 기독론적인 hymn에서와 마찬가지로, 예수의 승귀 전에 일어난 예수의 고난, 죽음에서 선포되어지는 영의 세계에서의 예수의 의롭다 하심 (vindication)으로서 볼 수 있다.41)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evdikaiw,qh evn pneu,mati),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딤전 3:16)
예수의 신비적 하강과 옥에 갇힌 영의 세력들을 향한 최종적인 선포의 메시지는 결국 유대 묵시주의의 종말론이 바라보는 영원한 심판의 시작이다. 곧 그리스도의 죽음은 고난 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위로와 소망으로 승화되어지고 있다. 이것은 세례의식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고난과 핍박을 각오하는 헌신의 결단을 요구한다. 그래서 저자는 3:21에서 세례를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evperw,thma)라고 동일시하는데, 이것의 정확한 뜻?“공유된 지식의 공개적인 선포”42)를 의미한다. 베드로 전서 3:18-22의 의미는 신화적 패러다임에서 역사를 이해하며, 악의 세력 (음부세력)의 결정적 패배가 예수의 죽음이라는 신비적 하강을 통해 일어났음을 선포하고, 이 예수의 하강을 세례의 의전으로 개념화하고, 수세자는 그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ritual descent"로 참여하게 된다.43) 세례의식에 있어서 예수의 죽음에 대한 이러한 기독론적 사변은 예수의 승귀 (ascensus)에 있어서 궁극적인 예수의 승리와 정복으로 완성되어지고 있다 (3:22).44)
베드로 전서 3:18-22의 의미는 결국 저자가 이방 세계의 악이 고대 유대 전승의 악의 원천인 "옥에 갇힌 영들”에게 있고,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한 음부 하강을 통해 그들에게 선포한 영원한 심판과 승리의 메시지는 이제 종말론적 영광이 다가왔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 선포의 메시지는 그리스도인의 세례로 개념화 (ritualize the descensus)되어, 베드로의 공동체는 핍박과 사회적 압박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가지는 물세례의 의미를 새로운 자기 정체성과 영적 삶으로의 표식이라 인정하였다.
4. 초대교회와 하강 전승 이해
베드로 전서의 정경적 권위는 Polycarp의 빌립보 서신과 Papias의 증언에서 인용되어지는 것처럼, 소아시아에서 먼저 인정되어졌다.45) 흥미로운 것은 소아시아의 Marcion은 베드로 전서 3:19를 잘 알고 있었지만, 그리스도의 음부 하강을 영지주의적 방법으로 왜곡시켜 해석하였다. 46)베드로 전서와 서방교회가 같은 세례적 전승을 따르지만, 특별히 동방교회는 그리스도의 음부 하강 사역을 그들의 세례적 문답에서 잘 보존하고 있다.47) 알렉산드리아, 시리아, 소아시아에서는 이 가르침이 많은 교부들에 의해서 분명한 기독론적 가르침으로 초기에 자리 잡았다.
베드론 전서가 그리스도가 음부 하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학자들 (Dalton, Feinberg, Kelly, Achtemeier)은 신약성서가 음부에서 죽은 자나 천사에 대한 어떤 사역을 구체적이면서도 명시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음을 그 이유로 들고 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베드로 전서 구절과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음부 하강 이야기를 다른 구절들을 통하여 이해하고 있었고, 초대 교회의 “죽은 자에 대한 관심” (요 5:28, 21:23, 살전 4:13, 벧전 4:6) 때문에 그 신학적 해결로 그리스도의 음부 하강이라는 기독론이 일찍 발달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교부들은 일찍 예수의 죽음을 신학화 하여 죽은 자들을 위한 저 세상에서의 확장된 사역으로 그리스도의 음부 하강을 이해하였다 (Ignatius, Justin, Tertullian, the Shepherd of Hermas). 그러나 이 죽은 자에 대한 관심 (벧전 4:6)으로 그리스도의 음부 하강을 이해하려는 교회의 신학보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음부 하강은 고대의 하강 전승으로부터 기독교적으로 개념화되어, 음부 세력에 대한 그리스도의 정복(subjugation)과 승리로 이해하였다(Descensuskampf, Chaoskampf). 그리스도의 음부 정복 (harrowing of hell)은 후대에 기독교 저작물에서 사망과 음부와 싸우는 combat myth로서의 이야기로 발전되었다.48)
복음서 전승들과 신약성서의 다른 책들에서는 명시적인 그리스도의 음부 하강이 언급된 적이 없다는 학자들의 일반적인 주장과 달리, 적어도 신약의 기자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삼일 동안의 죽음을 통해 음부 세계에 있는 영혼들과 음부 세력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보여주는 일련의 구절들을 쓰고 있다. 히브리서 2:14-15에서 저자는 예수의 고난과 죽음이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로부터 종노릇하는 자를 해방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예수의 죽음을 음부 세력에 대한 승리하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바울은 사망을 의인화하면서 부활을 통한 사망의 정복 (고전 15:54-55),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의 하강을 통하여 음부 세력에 대한 정복 (고전 15:22-26)을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마태복음은 음부의 권세 (gate of Hades)가 더 이상 교회를 이기지 못하게 되었고 (마 16:18), 요한복음은 죽은 자들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온다고 말한다 (5:25, 28). 요한 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가 사망 (Death)과 음부 (Hades)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며, 분명히 그리스도의 사건을 통하여 음부의 권세에 큰 변동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실제로 음부의 문이 열려지고 실제로 이미 죽은 많은 성도들이 일어났다 라고 기록한 마태복음 (27:51)은 적어도 예수의 음부 하강과 정복에 대한 초대교회의 기독론적 사변을 암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5. 나가는 말
그리스도의 음부 하강이 교회의 역사를 통하여, 기독교의 교리와 가르침에 있어서 중심적인 기독론적 가르침으로 자리 잡지 못하였지만, 적어도 이 음부 하강은 1세기 말과 2세기에 속사 도들과 교부들에게 당연히 이야기되던 기독론적 내용이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단순한 고난과 죽음으로 이해하지 않고, 음부 세계의 정복과 이미 죽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그리스도의 확장적 복음의 사역으로 이해한 기독론적 사변의 결과였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교부들의 사변의 결과물이 아니라, 이미 성서 안에서 다양하게 사용되어온 하강전승의 채용, 적용, 그리고 기독론적 재창출의 결과로 나온 것이다. 본 원고에서는 그 중에 베드로 전서가 어떻게 하강전승을 이용하여 예수의 죽음을 신학화 하고 있고, 그 죽음이 가지는 의미를 세례의식으로 의전화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1세기 말의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고난과 죽음의 위협 속에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이 가진 의미를 음부 세력에 대한 정복으로 이해하고, 박해적 상황을 인내를 통한 승리와 영광의 길로 받아들였다. 초대교회는 그리스도의 음부 하강을 추상적 사변으로 만들어내지 않고, 예수가 실제적 인간 예수이었기 죽음의 법칙에 따라 (lex mortuorum) 죽어야 했고, 죽었지만 신으로서의 불멸성과 구원의 주로서의 사명을 음부 하강을 통하여 실현하였다고 믿었다.
결론적으로 그리스도의 음부 하강은 몇 가지 신학적 주제를 가지고 있다. 첫째로, 그리스도의 음부 하강이라는 주제는 인간의 불멸성(immortality)에 대한 소망, 어둠과 악의 세력에 대한 정복, 그리고 사후세계에 대한 관심 등이 신화적 주제로 합쳐진 것으로 보인다(mythical convergence). 두 번째로, 그리스도의 음부 하강은 다양한 하강 전승들을 기독교화 하는 가운데, 일련의 궤도를 따르면서 예수의 죽음으로 인해 일어난 영적, 우주적 영향, 그리고 영광을 신학적으로 사변한 초대교회의 초기 기독론이었다 (예수는 “Lord of all,” 롬 10:12, 빌 2:11).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음부 하강을 신약성서 저자들이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는 이유는 이 기독론의 배경이 신화적 색채를 띠고 있어서, 성서의 탈신화화, 혹은 역사화에 의해 성서 텍스트의 먼 배경으로서 그 잔재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그레코로만 시대의 청중을 향하여 예수의 죽음이 가지는 의미를 고난과 좌절, 죽음의 의미보다는 승리와 영광이라는 주제로 승화시키며, 음부 하강과 음부 세력에 대한 정복으로 개념화한 독특한 기독론을 제시하였다.
<각주>
1) 베드로 전서의 이 구절은 구조적으로, 예수의 죽음으로 인한 (18절), 예수의 하강(19-21절)과 승귀 (22절)의 신학적 균형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은 바울의 예수의 낮아지심과 높아지심 (humiliation-exaltation)의 신학적 균형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롬 10:6-7; 빌 2:6-11; 딤전 3:16).
2) 문서상으로 “음부에 내려가사” (descendit ad inferna)라는 구절은 주후 359년 the Creeds of the Synod of Sirmium의 네 번째 고백항목에 나타나고, 사도신경에는 주후 650년에 처음 나타났다.
3) De Haeresibus 79.
4) 어거스틴은 에보디우스 (bishop of Uzalla)의 질문에 오리겐주의자들의 베드로 전서 해석을 반박하며, 영원한 심판 교리를 분명히 한다. Saint Augustine: Letter Vol. III (131-164), trans. Wilfried Parson (Washington DC: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Press, 1953).
5) 1 Clement 50.3-4, the Shepherd of Hermas 9.16.6, Ignatius, To the Magnesians 9.2. To the Trallians 9.1, Polycarp, To the Philippians 1.2, Justin, Dialogue with Trypho 72, Irenaeus, Against Heresies 3.20.4, 4.22.1, 4.27.1, 5.31.1, Tertullian, De anima 55
6) 참조. 욥 38:17, 시 16:10, 마 16:18, 행 2:29-31, 롬 10:6-8, 엡 4:8-10, 골 2:9-15, 히 11:39-40, 계 1:19, 9:1, 20:1.
7) Wilhelm Bousset, Hauptprobleme der Gnosis (Göttingen: Vandenhoeck und Ruprecht, 1907), 244.
8) Francis W. Beare, The First Epistle of Peter: The Greek Text, with Introduction and Notes (Oxford: Blackwell, 1947), 145.
9) John J. Collins, "The Apocalyptic Context of Christian Origins," Michigan Quarterly Review 22/3 (1983): 259.
10) 묵시적 종말론을 보여주는 대표적 외경 문학은 1 에녹서인데, 흔히 Ethiopic Enoch으로 알려진 것으로, 주전 3세기에서 주후 1세기 사이에 수집과 편집, 그리고 번역과정을 거쳐 남아 있게 된 저작물로서, 쿰란에서는 기독교인의 삽입물로 알려진 “Parables of Enoch" (chs. 37-71) 외에 다른 부분들이 아람어 파편으로 발견되었다.
11) 콜린스는 묵시문학(apocalypse)을 “종말론적 구원을 기다리는 면에서 시간적이고, 다른 초자연적 세상을 꿈꾸기 때문에 공간적이기도 한 초월적 실재에 대한 계시를 내세의 존재가 수령자인 인간에게 계시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계시적 문학형태로서 이야기적 형태를 취하고 있다” 고 정의하였다. 참조 “Introduction: Towards the Morphology of a Genre," Semeia 14 (1979): 9.
12) 이 새로운 종말론은 포로 전기의 예언자(restoration eschatology)들과는 미래에 대한 다른 종류의 희망으로 제 2 성전 시대, 신약 시대의 종말론에 큰 영향을 미쳤다. 베드로 전서의 여러 구절들은 확실히 묵시적 종말론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구원”(1:5)이 “말세”에 나타나기로 되어 있다고 말하면서, 그리스도가 “말세”에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나타났다 (1:20) 고 선포한다. 4장은 심판과 불 시험, 그리고 만물의 마지막 때를 말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의 인내를 요청하고 있다.
13) 유대전승의 ‘watcher myh’는 네 단계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각 나라의 천사 혹은 별로서의 임명 (단 4:3; 신 32:8; 시 82:1-7), 천사 혹은 별들의 반란 (창 6:1-5, 1 에녹서 6-16, 사 14, 겔 28), 선한 천사들과 악한 천사들과의 전쟁 (단 10:13, 20-21, 11:1; 유 1:9), 사탄과 악한 천사들에 대한 마지막 심판 (마 25:41, 벧후 2:3-5; 유 1:4-6; 계 12:3-9).
14) 에녹 전승의 내용들은 신약저자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외경과 교부들, 영지주의 문서에서 언급된다. 참조 Sirach 16,7, 44.16, Jubilees 4.16-26, Test. of Jude 18.1, Test. of Reuben 5, 2 Baruch 56.10-16, Epistle of Barnabas 4.3; Justin, 2 Apology 5; Irenaeus, Ad. haer 1.15.6, 4.16.2; Clement, Stromateis 3.9; the Apocryphon of John (NHC II, 1, 28.32-30.11), A Valentinian Exposition (XI, 2, 38.22-37), the Testimony of Truth (IX, 3, 40.30-41.4), and On the Origin of the World (II, 5, 105.14-16; 123.4-13).
15) 이 용어는 현재의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마치 신화적 과거에 있는 것처럼 비유되어지는 것을 지칭하는 것으로, 유대 묵시주의에서는 헬라시대의 유대인들의 상황을 mythic paradigm의 재현으로 보았다. 참조, Collins, "Apocalyptic Context of Christian Origins," 253.
16) 이 proto-type는 현재에 대한 “본”(u`po,deigma)으로 삼거나 (벧후 2:6, 유 1:7, 3 마카비 2:5), 벧전 3:21과 같이 신화적 과거의 신학적 모티프를 "antitype" (avnti,tupoj)로 받아들여 현재의 그리스인들의 삶의 정황 (type)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한다.
17) 참조, Sirach 16:6-8, Wisdom 10:4-6, 3 Macc. 2:3-5.
18) Martha Himmelfarb, "From Prophecy to Apocalypse: The Book of the Watchers and Tours of Heaven" in Jewish Spirituality, vol. 1, From the Bible through the Middle Ages, ed. Arthur Green (New York: Crossroad Publishing, 1986), 146-7.
19) Ben Sirah는 에녹이라는 인물을 “an example (u`po,deigma) of repentance to all generations" (Sirach 44:16, 사본 B6 reads "a sign of knowledge for generation after generation")이라고 말하는데, 이스라엘의 구원사와 관련된 선조들을 찬양하면서 (44-49장), 에녹이라는 인물로서 처음과 끝을 장식한다. 참조, James C. VanderKam, Enoch: A Man for All Generations (Columbia: University of South Carolina Press, 1995), 104-7.
20) Scholem과 Gruenwald는 Mishnah에서 언급된 Maaseh Merkavah (the Account of Chariot) 와 Maaseh Bereshit (the Account of Creation, Hagigah 2.1)에 대한 언급은 적어도 주후 1-2세기의 랍비적 전통 안에서 “esoteric tradition"의 존재를 보여주는 있다. 초기 랍비주의 전통에서도 묵시주의적 계열의 신비주의 사상이 시작되었지만, 후에 랍비 정통주의가 발전하면서, 이러한 신비주의 사상이 억압되었다고 본다. 참조, Gershom G. Scholem, Major Trends in Jewish Mysticism, 3rd ed. (New York: Schocken Books, 1954), 40-79; idem, Ursprung und Anänge der Kabbala (Berlin: De Gruyter, 1962), 15-20; Ithamar Gruenwald, Apocalyptic and Merkavah Mysticism (Leiden: Brill, 1980); idem, From Apocalypticism to Gnosticism: Studies in Apocalypticism, Merkavah Mysticism and Gnosticism (Frankfurt am Main: Peter Lang, 1988).
21) Major Trends, 42-44.
22) Christopher R. A. Morray-Jones, "Transformational Mysticism in the Apocalyptic-Merkavah Tradition," JJS (1992): 1-31.
23) 1 Enoch 71, 2 Enoch 22, Test. of Levi 8, Asc. of Isaiah 9.
24) Morray-Jones는 3 Enoch에서 에녹의 Metatron으로의 변형과 랍비 저작물에서의 모세의 metamorphosis는 Merkavah 신비주의자들의 궁극적 희망이라고 주장한다. Alan F. Segal은 “becoming angels"(stars)가 다니엘서 (12:3)와 쿰란 공동체가 바라던 내세의 한 측면이라고 주장한다. 참조 Life after Death: A History of the Afterlife in the Religions of the West (New York: Doubleday, 2004), 285-308.
25) Merkavah mysticism과 관련된 중요한 저술로 흔히 Hekhalot literature로 불리는 책이 남아 있고 (היכלות זרטרתי ,היכלות רבתי), 이 Hekhalot Rabbati 외에는 “descending to the Merkavah"라는 용어가 발견되지 않는다. Scholem은 이 표현 (descending)이 탈무드의 표현, יורד לפני התבה (”descender to the presence of the Ark“)에 영향을 받았다라고 생각한다. 참조, Jewish Gnosticism, Merkabah Mysticism, and Talmudic Tradition (New York: Jewish Theological Seminary of America, 1960), 1 n, 20.
26) Gruenwald, From Apocalypticism to Gnosticism, chapter 5, "Appendix: The Meaning of the Term 'Yordei Merkavah,'" 170-73.
27) 참조 Hekhalot Rabbati, iv, 4; xviii, 1, 4; xiv, 3.
28) 영지주의자들이 하나님의 신성의 세계를 Pleroma로 표현하는데 비해, 유대 신비주의자는 이 하늘의 세계를 hekhalot 이라고 부른다. 또한 영지주의자들의 영혼의 승천이라는 개념에 반대하여 유대 신비주의자는 어쩌면 “하강”이라는 개념을 의도적으로 쓴 것으로 보인다.
29) Intelligible world의 Pleroma (fullness)에 대한 Valentinian myth는 Irenaeus의 Against Heresies 1.1-8, 1.11에 잘 나타나 있다.
30) 참조. “Pronoia Hymn" in the longer version of the Apocryphon of John (NHC II, 1.30.12-31); the Trimorphic Protennnoia (NHC XIII, 1.47.7-20, 48.31-35, 50.9-11). 예수 그리스도가 잠들어 있는 영혼을 세상에서 깨우는 구원주로서 모습을 엡 5:14, 그리고 요한복음과 도마복음에 잘 그리고 있다.
31) 셋 영지주의자들의 구속자 하강을 의전화 시킨 물세례 의식은 the Gospel of Egyptians (NHC IV, 56.21-25; III, 55.12, 63.3), On the Origin of the World (NHC II, 108.28-109.1), 그리고 the Apocalypse of Adam에서 보인다.
32) Knopf, Bultmann, Lohse는 베드로 전서의 바울적인 특성을 지적했고, Beare는 그의 주석에서 서신이 바울 서신들에 문자적으로 의존한다고 주장하였다. 반면에, Selwyn은 실루아노 저자설을 주장하며, 데살로니가 전 후서와 평행되는 구절들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다른 학자들은 문자적으로 바울에 의존한다기 보다는, 베드로 전서와 복음 전승들이 접촉점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참조, John H. Elliott, "The Rehabilitation of An Exegetical Step-Child: 1 Peter in Recent Research," JBL 95/2 (1976): 246-7.
33) 히브리서 13:24에서는 저자가 로마 교회로부터 온 사람들을 대신하여 문안 인사하고 있다.
34) 이러한 베드로 전서의 로마 교회적 전통을 일컬어, “western Peter"라고 부른다.
35) 베드로 전서의 compositional background로서 세례와 관련된 상황에 관련하여 주장한다: baptismal homily (Bornemann, Perdelwitz, Streeter, Beare, Windish); baptismal liturgy/Eucharist (Preisker, Cross, Leaney); pre-baptismal catechism (Selwyn, Carrington). 베드로 전서에서는 세례와 관련된 용어로서, “거듭나게 하사” (avnagenna,w,1:3, 23), “갓난 아이” (avrtige,nnhta bre,fh, 2:2), 그리고 “세례” (ba,ptisma, 3:21) 등이 보인다.
36) David Hill, "On Suffering and Baptism in 1 Peter," NovT 18 (1976): 184-85.
37)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도록 요구하는 베드로 전서의 권면은 2:21-24에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고난을 세례로 개념화하는 전통은 이미 예수의 전승에서 보이고 있다 (막 10:38-39, 눅 12:50). 참조, Charles F. D. Moule, "The Nature and Purpose of 1 Peter," NTS 3 (1956-57): 11.
38) 이 용어는 결국 베드로 전서가 신구약 중간시대에 발전된 고난과 순교의 신학을 그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참조, Peter H. Davids, "Excursus: Suffering in 1 Peter and the New Testament" in The First Epistle of Peter (Grand Rapids: Eerdmans, 1990), 31.
39) innocent suffering에 대한 신학적 사고는 약 1:1-4, 12-15, 그리고 히 12:3-11에서 보이고 있다.
40) 세례적 고백으로 재구성한 credo는 다음의 학자들의 저술에서 보인다; Rudolf Bultmann, "Bekenntnis-und Liedfragmente im ersten Petrusbrief," Coniectanea Neotestamentica 11 (1947): 1-14; Marie-Emilie Boismard, Quatre Hymnes Baptismales dans la Première Epitre de Pierre (Paris: Les Editions du Cerf, 1961), 62; Klaus Wengst, Christologische Formeln und Lieder des Urchristentums (GüterslohÖ Gütersloher Verlagshaus, 1972), 163.
41) Jack T. Sanders, The New Testament Christological Hymns: Their Historical Religious Background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1), 94-95.
42) “양심”으로 번역된 sunei,dhsij는, 의미론적으로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서의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인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공유된 지식”을 나타내는 말이다. 참조. Oscar Brooks, "1 Peter 3:21-The Clue to the Literary Structure of the Epistle," NovT 16 (1974): 293.
43) ritual descent로서 baptism은 “seal"(sfragi,j) 기능을 하는데, 더 이상 음부 세력의 주관을 받지 않는 하나님의 인치심이다. 세례를 인치심으로 보는 견해는 초기 기독교 문헌에 많이 나타나고 있다 (2 Clem. 7.6, 8.6; Act. Phil. 134; Mar. Matt. 8, 27; Act. Thom. 49, 121, 131-32, 152; Act. Paul Thec. 25; Irenaeus, Epideixis ch. 3). Odes of Solomon 23.5-9에서는 예수의 하강을 악한 archons가 풀 수 없는 seal이라고 말한다. 특별히 영지주의자들의 ritual descent는 영혼의 descent와 ascent를 물세례에서 의전화 한다.
44) 특별히 바울의 전통(Paul or Paulinist)에서는, 전통적 우주관 (heaven-earth-underworld)보다는 당시의 철학적 우주관이었던 geocentric universe (earth-seven heavens-intelligible world)에 따라 음부에 일곱 개의 하늘 중에 있는 것으로 보고 (고후 12장), 예수의 승귀 (ascension-exaltation)에 (골 1:15-20, 2:14-15; 엡 1:20-21, 빌 2:9-11), 혹은 재림 (parousi,a|, 고전 15:23)에 음부의 세력들 (avrch,, evxousi,a, du,namij, kurio,thj)을 정복하는 것으로 선포한다.
45) Eusebius, HE 3.39.17; 4.14.9.
46) Irenaeus AH 1.27.3; Epiphanius, Panarion 1.3.42.4
47) 흔히 로마의 Hippolytus가 저자라고 일컬어지는 the Apostolic Traditions는 로마교회의 세례전통 (설교, 신조, 문답)을 보여주는데, 이 문서의 라틴 번역들은 그리스도의 음부하강을 생략하지만, 동방번역서들 (Sahidic, Arabic, and Ethiopic)은 세례문답 고백에, 그리스도의 음부하강과 그로 말미암은 영혼들의 해방을 포함시키고 있다. 그리고 Syriac Teaching of Addai와 Syriac Didascalia, 그리고 Acts of Thomas,와 Ephraem Syrus, Aphraates의 저서들은 그리스도의 음부하강을 이야기하는데, 이것은 적어도 이 가르침이 동방에서는 자주 언급되는 주제임을 알 수 있다.
48) 초대교회는 예레미야의 apocryphal saying (Justin, Irenaeus가 인용)을 그리스도의 음부하강과 정복이라는 메시야적 텍스트로 간주하였는데, 이것은 후에 베드로 복음서와 니고데모 복음서에서 그리스도의 음부 정복이라는 문학적 장르로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