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印黙 김 형 식
| 시인, 문학평론가, 전남 고흥, 필명 인묵印默, 전남대농경제학과(졸), 무불선학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재가불자(성철스님 몽중상좌) 현대문학 창작입문강좌이수(1969). 《불교문학》(2015)시부문 등단(〈그림자 둥지〉 외 4편), 《한강문학》(2020) 평론부문 등단(시성詩聖 한하운의 시詩 〈어머니〉에 대한 소고), 대표작:〈그림자의 둥지〉, 〈무엇을 쓸고 있는가〉, 〈봄비〉, 〈반갑다, 초승달〉, 〈애호박〉 외, 시집:《그림자 하늘을 품다》, 《오계의 대화》, 《광화문 솟대》, 《글,그 씨앗의 노래》, 《인두금의 소리》, 《성탄절에 108배》, 《침묵이 입을 열다》 외, 수상:한국청소년문학대상, 한국창작문학대상, 시가흐르는 서울 제2회 문학대상 등, 고흥문학회 초대회장, 詩聖한하운문학회 자문위원장, 《보리피리》 편집주간, 한국문인협회 개선위원, 국제PEN한국본부 회원, 매헌 윤봉길사업회 지도위원, 불교아동문학회 부회장, 한강문학 편집위원, 시가흐르는 서울 문학상선정위원장, 창작문학 문학상심사위원, 사)대한민국문학메카본부 회원 외 |
인묵印黙 詩人의 화답詩
〈목차〉
1. 〈세모歲慕에 붓을 세우다〉
- 梅軒 윤봉길 의사의 〈춘설심한春雪甚寒〉‘춘설에 몹시 추워서’의 화답시
2. 〈달무리〉
- 未堂 서정주 시인의 〈국화옆에서〉 화답시
3. 〈광화문 솟대〉
- 윤동주 시인의 〈참회록〉 화답시
4. 〈금환일식〉
- 김용택 시인의 〈찔레꽃〉 화답시
5. 〈다시 뚜벅뚜벅〉
- 반칠환의 시 〈새해 첫 기적〉의 화답시
6. 〈만천하에 고함〉
- 윤봉길 의사의 〈조국 독립을 위한 출사표〉의 회답시
7. 〈봄총각〉
- 이은상의 〈봄처녀〉 화답시
화답시는 고대의 순舜 임금이 지은 노래에, 신하 ‘고요皐陶’가 노래를 주고받은 〈갱재가賡載歌〉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임금이 지은 시가詩歌에 신하들이 화답한 〈갱재시賡載詩〉들을 모아 간행한 《갱재축賡載軸》이 현존한다. 특히 조선 정조正祖의 詩에 신하들이 화답한 시들을 모은 《갱재축》이 다수 남아 있다. 명나라에서 온 사신 ‘예겸’과 조선의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의 격이 높은 ‘화답시’를 엮은 《봉사조선창화시권奉使朝鮮倡和詩卷》이 있다. 그 당시 외교적 탐색과 아울러 미묘한 대결 구도가 펼쳐졌으나 시일이 지나면서 상대의 학문적 성취에 대한 존경심을 쌓으며 헤어질 때는 서로에 대한 정을 나누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예겸은 정인지에 대해 “그대와의 하룻밤 대화는 10년 동안 책을 읽는 것보다 낫다”라고 감탄하였고, 자신과 나이가 비슷했던 신숙주와 성삼문을 사랑하여 형제의 의를 맺었다고 ‘성현成俔’의 《용재총화慵載叢話》에 기록되어 있다. 《봉사조선창화시권奉使朝鮮倡和詩卷》을 시발로 인조 11년(1633)까지 180여 년 간 모두 24차례에 걸쳐 주고받은 시들을 모아 각 시기별로 편집된 《황화집皇華集》이 있다. 화답시는 그 시대를 조명하는 사기史記이며 인문학의 서書임을 알 수 있다. |
1. 歲慕에 붓을 세우다
-梅軒 윤봉길 의사의 시 〈春雪甚寒〉의 화답시
印黙 김 형 식
새벽 찬
봄기운에
깨어나는 여명
아직도
동면인가
고목도 꽃을 내는데
세모에
붓을 세우니
홍안이 분분하도다
동지冬至가
지났으니
이 땅에 봄은 온다
조국은
꽃샘추위
임산부는 산통 중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고呱呱의 그 울음소리
국토는
남북으로
국론은 좌와 우로
풍랑 속
일엽편주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대로는
안 됩니다
백 년을 내다봅시다
침묵하는 자
수수방관하는 자는
부역자요 부역자의 후손들인가
껍데기 벗어던지고
빛을 향해 조국을 위하여
다시 태어나자
풍랑 속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설원에
붓을 세우니
매헌梅軒이 현현하였도다.
-2025년, 乙巳年 세밑 정문골 토굴에서
春雪甚寒[춘설심한]
(춘설에 몹시 추워서)
매헌 윤 봉 길
| 酷冷侵肥臘沍添 [혹랭침비랍호첨] 好生天理是何嚴 [호생천리시하엄] 살을 에는 혹한에 섣달 추위가 더하니 천리는 호생이라더니 왜 이리 매서운고 堅氷己作琉璃界 [견빙기작유리계] 積雪洽如水晶鹽 [적설흡여수정염] 견고한 얼음은 이미 유리 세계 만들고 쌓인 눈은 흡사 수정 소금처럼 보이네 老嫌寒氣封門戸 [노혐한기봉문호] 我厭孤唫退筆尖 [아염고금퇴필첨] 노인들은 찬 기운을 싫어해 문을 닫는데 나는 혼자 읊는 게 싫어서 붓대를 치웠네 未解春陰雖慄烈 [피해춘음수율 열] 固持本色叟蒼髥 [고지본색수창염] 봄의 음기 아직 풀리지 않아 추위 매서워도 소나무는 본래 색을 굳건히 지키누나 | (효창원 의열사에 모신 영정) |
|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매헌 윤봉길 약력〉 윤봉길(1908.6.21∽1932.12.19.) 의사는 충청남도 예산에서 아버지 윤황尹璜과 어머니 김원상金元祥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파평坡平, 호는 매헌梅軒이다. 10세 되던 해인 1918년 덕산德山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다음 해에 3·1운동이 일어나자 민족정신의 영향으로 식민지 교육을 거부하고 자퇴한다. 동생 윤성의尹聖儀와 함께 한학을 공부하였고, 1921년부터는 ‘오치서숙烏峙書塾’에서 사서삼경 등 한문학을 계속한다. 한문학 공부를 마치고, 1926년부터는 농민계몽, 독서회 운동, 문학가로 농촌부흥운동을 펴나간다. ⦁1930년 3월 6일, 윤봉길 의사 출사표 ‘장부출가 생불환丈夫出家 生不還’(사내대장부 집을 떠나노니, 살아서 돌아오지는 않겠노라)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1932년 4월 29일 일왕의 생일날 행사장에 폭탄을 던져 일본 상하이파견군 대장 등을 즉사시키는 거사를 치르고 현장에서 체포 ⦁동년 12월 19일 아침 7시 27분경 일본 이시카와현[石川県] 가니자와[金澤] 교외 미츠코지산[三小牛山] 육군 작업장에서 십자가 형틀에 묶인 채 양미간 인당印堂에 정사수가 쏜 1발 총알을 맞고 절명絕命, 향년 24년 6개월, 날수로는 8천948일, 순국 직후 일본군이 시신을 이시카와현 가나자와 ‘노다야마 전몰자 묘원’[野田山 戦没者 墓苑] 인근 공동묘지 내 통로에 평장으로 암매장 ⦁1946년 김구 선생의 주선으로 효창공원 삼의사 묘에 조국광복을 위해 몸 바친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 안장하다. 묘 왼편에는 중국 뤼순감옥에서 순국한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으면 안장하고자 마련한 빈 무덤이 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追敍 ⦁남긴 시문집으로 《한시집漢詩集》, 《임추》, 《오추嗚推》, 《옥수》, 《농민독본》3권, 《기사년 일기(己巳年日記》가 있다. ‘한시집’은 칠언율시 202수, 칠언절구 5수 등 210수의 한시와 산문 4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임추’에 칠언율시 43수, 오언율시 13 수로 56수의 시가 실려 있다. ‘오추’에 칠언율시 16수, 육언율시 1수 등 20수가 실려 있다. 시 《春雪甚寒춘설심한》〈춘설에 몹시 추워서〉는 ‘오추’에 실려있다. |
2. 달무리
-미당 서정주의 시 〈국화옆에서〉의 화답시
인묵 김 형 식
저 모래톱 하나 만들어 내려고
하늘은 그렇게 폭우를 퍼부었나 보다
저 모래톱 하나 만들어 내려고
탄천은 도심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강 입구에 모래톱 하나 솟아났다
세월의 먼 뒤안길에서
그립고 아쉬움에
우리 어머니 젖가슴 같은
모래톱 하나
다시 돌아와 자리 잡고 앉아있다
왜가리 청둥오리 가마우지 철새들 놀고 있는 자리에
갈매기 두어 마리 날라들어
이곳은 우리들의 고향이었는데...
끼룩끼룩 눈물을 훔치고 있다
어찌 내 아니 다를쏘냐
고향 떠나온 길손
한가위 보름달
그 고향 달빛 그리워서 멈춰 선 나그네
네 서린 품속에서
망향의 눈물 짜 내려고
간밤에 달무리는 그리도 외로웠나 보다.
- 22년 8월 28일, 제7집 수록
국화옆에서
未堂 서 정 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필라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보다.
| ----------------------- ⦁詩 〈국화옆에서〉는 4연 13행의 자유시로 서정주의 대표작이다. ⦁1947년 11월 9일자 경향신문에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시집 《서정주시선徐廷柱詩選》(1956)에 실려있다. ⦁이 시는 국화를 소재로 하여 계절적으로는 봄, 여름, 가을까지 걸쳐져 있다. 국화꽃의 처연한 이미지가 시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아울러 소쩍새의 울음소리와 천둥의 청각적 이미지가 국화꽃이 상징하는 죽음과 함께 공명한다. ‘젊음의 뒤안길을 돌아 한 송이 노란 국화꽃으로 핀 누이의 모습’ 앞에서 화자는 슬픔을 삼킨다. 우리네 삶에도 슬픔, 상실, 아픔이 존재한다. 화자가 누이를 잃은 아픔을 느끼듯 말이다. 그러나 언젠가 그 아픔은 한 송이의 국화꽃처럼 피어날 것이다. ‘국화옆에서’ 아름답게 부활한, 아픔을 마주하며 그렇게 우리도 한 송이 국화꽃으로 피어날 것이다. ⦁‘국화옆에서’의 ‘국화’는 ‘괴로움과 혼돈이 꽃피는 고요’에로 거두어들여진 화해의 순간을 상징하는 꽃으로 이 시에서 ‘국화’의 상징성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봄부터 울어대는 소쩍새의 슬픈 울음도, 먹구름 속에서 울던 천둥소리도, 차가운 가을의 무서리도 모두가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시적 발상법은 작자 스스로 ‘생명파’로 자처하던 초기 사상과도 관련되고 있다. 이 시의 핵심부가 되는 3연에서 ‘국화’는 거울과 마주한 ‘누님’과 극적인 합일을 이룩한다. 작자는 여기서 갖은 풍상을 겪고 돌아온 안정된 한 중년 여성을 만나게 된 것이다. ⦁젊은 시절 흥분과 모든 감정 소비를 겪고 이제는 한 개의 잔잔한 우물이나 호수와 같이 형型이 잡혀서 거울 앞에 앉아있는 한 여인의 영상影像이 마련되기까지 시인은 오랜 방황과 번민을 감수해야만 하였다. ⦁지난날을 자성自省하고 거울과 마주한 ‘누님’의 잔잔한 모습이 되어 나타난 ‘국화꽃’에서 우리는 서정의 극치를 발견하게 된다. ⦁작자는 이 시에서 한국 중년 여성의 안정미安定美를 표현했다고 하여 제3연의 ‘누님’이 그 주제적 모티프(motif)가 된다고 하지만, 그것에 못지않게 ‘국화’의 상징성도 중요하다. ⦁이 시에서 우리는 국화가 피어나는 과정을 통하여 한 생명체의 신비성을 감득할 수가 있다. 찬 서리를 맞으면서 노랗게 피는 국화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표상되고 있다. |
3. 광화문 솟대
-윤동주의 시 〈참회록〉의 화답시
인묵 김 형 식
세워 세워
너 자신을 세워
민족의 역사를 바로 세우자
저 솟대 끝에
새 한 마리 앉아 있는 것 보이는가
볍씨 주머니
솟대 높이 달아매 놓은 것도 보이는가
새여
이 땅의 기운을 하늘에 전하라
씨알이여
인류의 생명을 살찌게 하라
9천 년
민족의 역사를 품어 안고
비상을 꿈꾸고 있는 솟대
세워 세워
너 자신을 세워
민족의 역사를 바로 세우자
경거망동하지 말라
대마도는 우리 땅
독도는 대한민국의 땅
세워 세워
너 자신을 세워
민족의 역사를 바로 세우자
경거망동하지 말라
솟대가 서 있는 곳은
모두 다 우리 땅 대한민국의 땅
세워 세워
너 자신을 세워
민족의 역사를 바로 세우자
광화문에 솟대를 세우자.
참회록
윤 동 주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러운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2016년 10월, 윤동주의 흔적을 찾아 필자는 일본국 후쿠시마 감옥 근처를 헤매다가 지친 몸 벳부 온천에 부리고 시 ‘윤동주’를 남긴다. |
윤동주
인묵 김 형 식
물 건너
벳부 온천은
계란 썩는 빨래터
동방국
화개동은
호리병 속에 별천지
물에 비친
이 사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일본 벳부 온천에 발을 담그니 계란 썩은 유황냄새가 코를 찌른다. 물에 비친 내 얼굴이 왜 이렇게 부끄럽고 미워지는지... 지리산 화개동을 호리병 속의 별천지라 노래했던 신라의 최치원崔致遠,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울부짖으며, 70년 전 이곳 후쿠시마 감옥에서 죽어갔을 민족시인 윤동주尹東柱 님이 어른거린다. ⦁님은 또 〈자화상〉에서 “어쩐지 (우물에 비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했습니다. 벳부 유황온천에 발을 담그고 있는 나는 일본을 인정할 수 없어 ‘물 건너’라고 적는다. 님을 생각하니 가슴 아프다. ⦁또 어떤 시인은 “그 어느 즐거운 날에 윤동주 시인이 쓴 한 줄의 〈참회록〉을 보지 못함이 참으로 안타깝다”고 했다. ⦁만 24세의 윤동주 시인은, 비록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라 잃은 슬픔과 그 암울한 시대에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 참회하는 모습에서, 그 어느 즐거운 날에, 하루하루를 별 볼일 없이 보내고 있는 40대의 나를 부끄럽게 한다. ⦁무슨 인생을 바라 살아왔던가. 나는 소망한다. 내일이나 모레나 어느 더 즐거운 날에, 왜 그런 부끄러운 고백을 했던가, 라고 말할 수 있기를... ⦁윤동주 시인의 시에는 시대의 아픔이 잔뜩 묻어있으면서도, 뜻대로 되지 않는 삶에 대한 나약한 인간의 고뇌도 사무치게 느껴지는 것 같아, 참으로 좋다고 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시 〈광화문 솟대〉는 인묵 김형식의 윤동주 시 〈참회록〉의 화답 시며 김시인의 제3시집 표제 시이다. 이 시집을 접하고 필자는 염통에서 찬바람이 빠져나가는 충격을 받았다. 우리 민족사를 돌아보면, 우리 민족은 931회나 타민족의 침략을 받았다. 그중에 200여 회의 무력 충돌이 있었으며, 전 국토가 전화에 휩싸였던 때도 20여 회나 된다. 시인들이여,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했단 말인가. 부끄럽다. 김형식 시인은 뚜렷한 민족시인이다. 자랑스럽다. 민족시인 윤동주 님의 시 〈참회록〉은 저항抵抗의 시다. 윤동주 님이 거울이라는 시적 대상으로 민족사를 조명하는 성찰의 시를 썼다면 김형식의 시 〈광화문 솟대〉는 자존의 시다. 우리 심장의 피를 뜨겁게 달구는 시다. ‘솟대’라는 시적 대상으로 민족의 역사를 바로 세워나가는 희망의 시를 쓴 것이다. 민족의 시인 김형식은 마침내 우리들의 민족광장 광화문에 드높게 솟대를 우뚝 세워 주었다. 고맙다, 詩人이여. “천년 민족의 역사를 품어 안고 비상을 꿈꾸고 있는 솟대/ 세워 세워 너 자신을 세워 민족의 역사를 바로 세우자”는 것. 그렇다. 일제에게 짓밟히고 빼앗기고 잃어버린 한민족사를 다시 찾자고 김형식은 우리들 가슴마다 ‘광화문 솟대’를 세워 주었다. 그러면서 “세워 세워 너 자신을 세워/ 민족의 역사를 바로 세우자”라고 목청껏 외친다. 암 세워야지, 광화문 한복판에 우리 저마다 솟대를 우뚝우뚝 세워야지.〈문학평론가 홍윤기〉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윤동주 시인의 언덕’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일제강점기 저항 시인 윤동주(1917~1945) 시인을 기리는 이 언덕은 서울 종로구 청운동 인왕산 자락 청원공원 내에 자리해 있다. 시인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에 다니던 1941년 종로구 누상동에 있는 후배 소설가 ‘김 송’의 집에서 하숙했었는데 그는 이때 청운동과 누상동 일대를 산책하며 시상을 가다듬으면서 〈서시〉, 〈별 헤는 밤〉, 〈또 다른 고향〉 같은 대표작을 썼다고 한다. 청운동에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들어선 이유이다. 저녁 무렵이면, 하숙집 근처 이 언덕에 올라, 해지는 서울 풍경을 바라보며 조국의 어두운 현실에 가슴 아파하면서 시상을 떠올렸을 것으로 생각된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는 〈서시〉 시비詩碑를 비롯해 가수 이승환과 그의 팬들이 기증한 소나무 10그루, 시인의 주옥같은 시를 새겨 넣어 눈으로 감상할 수 있게 한 돌계단 등으로 모습을 갖추고 있다. ⦁〈서시〉 시비詩碑 앞에는 ‘서울 밤 경’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데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서 야경 보기 좋은 곳임을 안내하고 있다. ⦁‘윤동주 소나무’로 불리는 소나무가 위치한 곳도 해넘이 구간으로 일몰을 감상하며 사색하기 좋은 곳으로 이름이 나 많은사람들이 혼자서도 찾는 곳이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은 2012년 7월 용도 폐기된 청운 수도가압장을 리모델링해서 조성한 ‘윤동주문학관’과도 이어져 있으며, 맞은편에 ‘창의문’이 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명동촌明東村: 동방을 밝히는 곳이라는 이름의 마을 윤동주尹東柱(1917년 12월 30일∽1945년 2월 16일)는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시인, 작가이다. 본관은 파평坡平, 아호는 해환海煥이다. 1917년 12월 30일 동간도 명동촌明東村에서 태어났다. 본적은 함경북도 청진시 포항동 76번지이다. 명동촌은 동간도의 척박한 땅이었지만 1899년 함경도 출신의 김약연, 김하규, 문병규 등이 140여 명의 식솔을 이끌고 동간도로 집단 이주한 후 윤동주의 조부인 윤하현 등이 합류하면서 ‘동방을 밝히는 곳(明東村)’이라는 뜻을 지닌 동간도 최대의 한인촌을 형성했다. ⦁윤동주尹東柱는 일제강점기에 짧게 살다 간 젊은 시인으로, 어둡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 인간의 삶을 사색하고 고뇌하면서, 일제의 강압에 고통받는 조국의 현실을 가슴 아파한 철인이었다. 그의 이러한 사상은 그의 얼마 되지 않는 시 속에 반영되어 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윤동주 약력 윤동주尹東柱(1917.12.30.∽1945.2.16.), 북간도(北間島) 출생, 주요 작품 〈서시序詩〉,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외. ⦁윤동주尹東柱는 만주 북간도의 명동촌明東村에서 태어났으며, 기독교인인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아버지는 윤영석尹永錫, 어머니는 김룡金龍이다. 1931년(14세)에 명동(明東)소학교를 졸업하고, 한때 중국인 관립학교인 대랍자(大拉子)학교를 다니다 가족이 용정으로 이사하자 용정에 있는 은진(恩眞)중학교에 입학하였다(1933). 1935년에 평양의 숭실(崇實)중학교로 전학하였으나, 학교에 신사참배 문제가 발생하여 폐쇄당하고 말았다. 다시 용정에 있는 광명(光明)학원의 중학부로 편입하여 거기서 졸업하였다. 1941년에는 서울의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 문과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 있는 릿쿄[立敎]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다가(1942), 다시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로 옮겼다(1942). 학업 도중 귀향하려던 시점에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1943.7), 2년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그러나 복역 중 건강이 악화되어 1945년 2월에 생을 마치고 말았다. 유해는 그의 고향 용정(龍井)에 묻혔다. 한편, 그의 죽음에 관해서는 옥중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사를 정기적으로 맞은 결과이며, 이는 일제의 생체실험의 일환이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28세의 젊은 나이에 타계하고 말았으나, 그의 생은 인생과 조국의 아픔에 고뇌하는 심오한 시인이었다. 그의 동생 윤일주(尹一柱)와 당숙인 윤영춘(尹永春)도 시인이었다. 그의 시집은 그의 사후 동료나 후배들에 의해 간행되었다. 그의 초간 시집은 하숙집 친구로 함께 지냈던 정병욱(鄭炳昱)이 자필본을 보관하고 있다가 발간하였고, 초간 시집에는 그의 친구 시인인 유령(柳玲)이 추모시를 선사하였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첫 작품으로 〈삶과 죽음〉, 〈초한대〉를 썼다. 발표 작품으로는 만주의 연길(延吉)에서 발간된 《가톨릭 소년(少年)》지에 실린 동시 〈병아리〉(1936.11), 〈빗자루〉(1936. 12), 〈오줌싸개 지도〉(1937. 1), 〈무얼 먹구사나〉(1937. 3), 〈거짓부리〉(1937. 10) 등이 있다. 연희전문학교에 다닐 때에는 ‘조선일보’에 발표한 산문 〈달을 쏘다〉, 교지 《문우(文友)》지에 게재된 〈자화상〉, 〈새로운 길〉이 있다. 그리고 그의 유작(遺作)인 〈쉽게 써진 시〉가 사후에 ‘경향신문’에 게재되기도 하였다(1946). 그의 절정기에 쓰인 작품들이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발간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의 자필 유작 3부와 다른 작품들을 모아 친구 정병욱과 동생 윤일주에 의해 사후에 그의 뜻대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정음사(正音社)에서 출간되었다(1948). ⦁그의 짧은 생애에 쓰인 시는 어린 청소년기의 시와 성년이 된 후의 후기 시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청소년기에 쓴 시는 암울한 분위기를 담고 있으면서 대체로 유년기적 평화를 지향하는 현실 분위기의 시가 많다. 〈겨울〉, 〈버선본〉, 〈조개껍질〉, 〈햇빛 바람〉 등이 이에 속한다. 후기인 연희전문학교 시절에 쓴 시는 성인으로서 자아 성찰의 철학적 감각이 강하고, 한편 일제 강점기의 민족의 암울한 역사성을 담은 깊이 있는 시가 대종을 이룬다. 〈서시〉,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쉽게 써진 시〉 등이 대표적인 그의 후기 작품이다. 그의 시비가 연세대학교 교정에 있다. |
4. 금환일식
-김용택 시인의 〈찔레꽃〉 화답시
인묵 김 형 식
하먼 그렇지
잘하고 말고
그냥 두면 내 것이 안되었제
당신 손목을 잡아끌고
초저녁
이슬 달린 풋보리 잎을
파랗게 쓰러 뜨려부렀제
둥근 달을 보았지
보리밭에 그놈의 금환일식,
그 선홍빛 때문이었제.
찔레꽃
김 용 택
내가 미쳤지
처음으로 사내 욕심이 났니라
사내 손목을 잡아끌고
초저녁
이슬 달린 풋보리 잎을
파랗게 쓰러 뜨렸느니라
둥근 달을 보았느니라
달빛 아래 그놈의 찔레꽃,
그 흰빛 때문이었느니라
*하먼: ‘아무렴’의 방언
|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김용택 시인의 〈찔레꽃〉과 인묵 김형식의 〈금환일식〉 화답시 종합 시평 -. 작품의 구조와 시적 대화 두 시는 모두 3인칭이 아닌 1인칭의 고백체로 시작해, 감정의 격정과 행동의 직접성을 드러냅니다. ‘초저녁’, ‘이슬 달린 풋보리 잎’, ‘파랗게 쓰러뜨리다’, ‘둥근달’ 등 주요 이미지와 구절이 반복되어, 두 시가 서로를 거울처럼 비추는 구조를 취합니다. 마지막 행에서 각각 ‘찔레꽃’의 ‘흰빛’과 ‘금환일식’의 ‘선홍빛’으로 정서와 상징이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 시적 화자의 변화와 시선의 이동 김용택 시인의 〈찔레꽃〉은 소년기 혹은 첫사랑의 욕망, 그 감정의 순수성과 떨림, 그리고 그 밤의 흰 찔레꽃이 주는 아릿한 아름다움에 집중합니다. 김형식 시인의 〈금환일식〉은 동일한 상황을 남성 화자의 시선으로 재구성합니다. 여기서 ‘금환일식’은 ‘찔레꽃’의 ‘흰빛’과는 달리, 격정적이고 선명한 ‘선홍빛’으로 감정의 농도를 한층 높입니다. 두 시 모두 ‘손목을 잡아끈다’는 직접적 행위를 통해, 사랑의 주체적 욕망과 순간의 돌파를 강조합니다. -. 상징과 이미지의 변주 〈찔레꽃〉의 흰빛은 순수, 소박함, 첫사랑의 어리숙함을 상징합니다. 〈금환일식〉의 선홍빛은 태양이 달에 의해 거의 가려지면서 남는 불의 고리, 즉 격정과 강렬함, 일탈의 순간을 상징합니다. 두 시 모두 자연(보리밭, 달, 이슬, 찔레꽃, 일식)을 사랑의 은유로 삼아, 인간의 감정과 우주의 현상을 겹쳐놓는 시적 장치를 사용합니다. -. 언어와 정서의 특징 김용택 시는 전라도 방언 ‘하먼’과 구어체를 사용해 토속적이고 소박한 정서를 강조합니다. 김형식 시는 원작의 언어를 존중하면서도, ‘금환일식’이라는 천문학적 현상을 도입해 시적 스펙트럼을 확장합니다. 〈찔레꽃〉의 ‘흰빛’이 감정의 순수성을, 〈금환일식〉의 ‘선홍빛’이 욕망의 강렬함과 순간의 불가역성을 상징하며, 두 시는 색채의 대비를 통해 사랑의 이면을 입체적으로 보여줍니다. -. ‘화답시’로서의 의미와 문학적 가치 화답시는 원시의 정서와 구조를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해석과 감정의 층위를 더하는 문학적 놀이입니다. 〈금환일식〉은 〈찔레꽃〉의 서정성을 계승하면서, 더 강렬하고 성숙한 사랑의 순간을 ‘일식’이라는 우주적 현상에 빗대어 확장합니다. 두 시 모두 사랑의 순간을 자연의 신비와 겹쳐놓아, 개인적 경험이 우주적 질서와 맞닿는 시적 깊이를 보여줍니다. -. 종합 평가 ⦁구조적 대응과 시적 대화: 두 시는 구조와 이미지, 언어에서 긴밀하게 호응하며, 화답 시로서의 미덕을 갖추고 있습니다. ⦁상징의 확장: ‘찔레꽃’의 흰빛에서 ‘금환일식’의 선홍빛으로의 전환은 사랑의 정서가 순수에서 격정으로, 소박함에서 강렬함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자연과 사랑의 교차: 자연 현상(찔레꽃, 일식)을 사랑의 은유로 적극 활용해, 개인적 감정이 우주적 질서와 맞닿는 시적 깊이를 획득합니다. ⦁언어의 힘: 방언과 일상어, 천문학적 용어의 도입 등 언어적 실험이 돋보입니다. 찔레꽃의 흰빛이 첫사랑의 떨림이라면, 금환일식의 선홍빛은 사랑의 절정과 불가역성을 상징합니다. 두 시는 서로의 거울이자, 한 편의 사랑의 연작시로 읽힙니다. -. 총평 두 시는 서로의 정서와 이미지를 섬세하게 변주하며, 사랑의 다양한 결을 보여주는 훌륭한 시적 대화입니다. 원작의 서정성과 화답시의 창의성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독자에게 새로운 감동과 해석의 여지를 남깁니다. |
5. 다시 뚜벅뚜벅
- 반칠환의 시 〈새해 첫 기적〉의 화답시)
인묵 김 형 식
12지 동물이
뛰어서
걸어서
기어서
날아서
섣달 그믐날 자정에 광화문 보신각에 도착했다
모두 살아서 돌아왔다
청룡이 머리띠 풀어 푸른 뱀에게 건넨다
송구영신送舊迎新
제야의 종소리
가자!
우리 다시
○○年 빛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자.
새해 첫 기적
반 칠 환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반경환의 명시 감상 중에서 천체물리학자들은 우주에는 2천억 개의 별들이 있다고 하지만, 그러나 그들은 이 우주가 ‘말의 우주’라는 사실은 미처 몰랐을 것이다. 이 세계는 말의 우주이며, 모든 생명체는 말의 사물과 말의 생명체라고 할 수가 있다. 말의 해, 말의 달, 말의 별, 말의 대지, 말의 밭, 말의 논, 말의 바다, 말의 파도, 말의 백사장, 말의 금은보석, 말의 소나무, 말의 풀꽃, 말의 사랑, 말의 혐오, 말의 그리움, 말의 절망, 말의 찬가, 말의 연인, 말의 바람, 말의 비, 말의 눈, 말의 산소, 말의 수소, 말의 비타민, 말의 단백질, 말의 눈, 말의 코, 말의 입, 말의 귀, 말의 사과, 말의 앵두, 말의 문학상, 말의 그림, 말의 음악 등은 물론, 이 세상의 모든 사유와 느낌과 감정마저도 말 자체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말에 의해서 태어났고, 말의 밥을 먹으며, 말의 대화를 주고받는다. 말의 전쟁과 싸움을 하고, 말의 승리와 패배를 주고받으며, 말의 똥을 싸고, 말을 남기며 죽는다. 이 세상의 근본 물질은 원자가 아니라 말이며, 모든 역사는 말의 투쟁의 역사이다. 우리가 그토록 엄청난 돈과 시간을 투자하며 공부를 하는 것도 말의 소유권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며, 앎과 지혜는 최고급의 재화라고 할 수가 있다. 배가 고픈 것도 말이 고픈 것이고, 배가 부른 것도 말이 부른 것이다. 슬픈 것도 말이 슬픈 것이고, 기쁜 것도 말이 기쁜 것이다. 경제적인 소유권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주인이 바뀔 수도 있지만,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또는 공자와 맹자처럼 말의 소유권은 천년, 만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다. 이 세상의 모든 축제는 말의 축제이며, 우리는 말의 축제를 즐기며, 이 말의 축제 속에서 죽어간다. 서울의 축제, 동경의 축제, 북경의 축제, 런던의 축제, 파리의 축제, 뉴욕의 축제, 중남미의 축제, 그리고 수많은 영화와 음악과 문학과 미술과 체육과 춤의 축제 등... 이 ‘말의 축제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 어렵고 힘든 세상을 살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황새는 날아서 말의 축제에 참여하고, 말은 뛰어서 말의 축제에 참여한다. 거북이는 걸어서 말의 축제에 참여하고, 달팽이는 기어서 말의 축제에 참여한다. 굼벵이는 굴러서 말의 축제에 참여하고, 바위는 앉은 채로 말의 축제에 참여하고, 모두들 다 같이 “한날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던 것이다. 시(말)는 눈부신 태양이고, 맑은 공기와 맑은 숨결이고, 언제, 어느 때나 행복한 삶을 살게 해 준다. 시詩의 기적은 새해 첫 기적이고, 새해 첫 기적은 모든 기적의 진원지이다. |
6. 만천하에 고함
-윤봉길 의사의 〈조국독립을 위한 출사표〉의 화답시
인묵 김 형 식
윤봉길,
나 여기에
여기에 지금 서 있다
목숨 보다 더 소중한 내 조국을 선택한
젊은 피 대한의 남아가 여기에 이곳에 서 있다
9천 년
민족의 뿌리
동이의 홍산문화가
백두에서 한라를 걸어 일본땅 열도를 삼켜버린
그 도도한 저주의 불길을
90년 전 나는 이곳에서 분명히 보았노라
우리는
싸웠노라
그러나 지키지 못했노라
보았노라
통곡했노라
나라 잃은 그 서러움을
그 누구를 원망하랴 힘없는 내 조국을 원망한다
사랑하는
젊은이들이여
형제여 내 조국 대한 민국이여
이제는 다 용서하고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자
당당하게 일어서서 더 넓은 곳을 향해 나아가자
세상은
변하고 있다
국력을 키워야 한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걔들에게 자유를 가르쳐야 한다
나 윤봉길은 지켜보겠노라 남북통일의 그날을
나 윤봉길 지켜보겠노라 조국의 먼 앞날을.
|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詩 〈만천하에 고함〉은 매헌 윤봉길 의사의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에 대한 화답시로 2015년 4월 29일 상하이 훙커우공원 제83주년 기념식에서, 동년 12월 19일 일본 가와자와 암매장지 추모식에서 봉헌 낭송 했던 시입니다. ⦁이 시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2015년 중국 상하이 훙커우공원 83주년 기념식 행사 당일, 식순을 건너뛰자는 사전 요청이 있었다. 이유인즉 시어 ‘9천 년 민족의 뿌리 동이의 홍산문화가’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보훈처의 우려였다. 당시 중국 정부에서는 동북공정으로 혈안이 되어 있어 중국 정부의 신경을 건드릴 필요가 없다는 것. 더욱이 83주년 기념행사는 중국 정부에서 훙커우 공원에 〈윤봉길 기념관〉 짓고 준공식을 겸하는 행사라 중국 정부의 주요 요인들이 다수 참석하기에 괜스레 심기를 건드려 국가 간 문제를 야기할 우려가 있다는 것. ⦁본 행사 후 봉헌 낭송의 기회를 가졌음. 아울러 동년 12월 19일 일본 가와자와 암매장지 추모기념식에서, 일본 기념식 행사에서 봉헌 낭송 후 박현택 일본 기념사업회 회장 ‘윤의사 시신을 수습 암매장하고 비밀리에 관리해 오신 분의 자제분’ 님께서 매년 행사 때마다 낭송하고 싶다는 요청이 있어 횡서로 쓴 졸필 자서 한지 두루마리를 기증. 저의 시집 《그림자, 하늘을 품다》(124∽5)에 수록. |
〈조국의 독립을 위한 출사표〉
1.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매헌 윤 봉 길 의사
장부가 집을 나가면 큰일을 이루기 전에 살아 돌아오지 않겠다
사람은 왜 사느냐
이상을 이루기 위하여 산다
보라! 풀은 꽃을 피우고 나무는 열매를 맺는다
나도 이상의 꽃을 피우고
열매 맺기를 다짐하였다
우리 청년시대에는 부모의 사랑보다
형제의 사랑보다 처자의 사랑보다도
더한층 강의(剛毅)한 사랑이
있는 것을 깨달았다.
나라와 겨레에 바치는 뜨거운 사랑이다
나의 우로(雨露)와 나의 강산과
나의 부모를 버리고라도
그 강의한 사랑을 따르기로 결심하였다.
2. 강보에 싸인 두 병정(아들)에게
매헌 윤 봉 길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사나이가 뜻을 세워 집을 나가니 살아 돌아오지 않겠다”
*1930년 3월 6일 윤봉길 의사 출사표
7. 봄총각
- 이은상 님의 〈봄처녀〉 화답시
인묵 김 형 식
봄 총각 제-오시네-
새 풀옷을 입으셨네
아지랑이 나귀 타고
버들 화동 앞세웠네
기러기 가슴에 안고
뉘를 찾아오시는고
님 찾아오는 길에
내 집 앞을 지나시나
꿈속에 그 님 인가
혹여 내게 오시는가
설레고 어리석은 양
나가 물어- 볼까나.
봄처녀
이 은 상
봄 처녀 제- 오시네
새 풀옷을 입으셨네
하얀 구름 너울 쓰고
진주 이슬 신으셨네
꽃다발 가슴에 안고
뉘를 찾아 오시는고
님 찾아 가-는길에
내 집앞을 지나시나
이상도 하-오시다
행여 내게 오심인가
미안코 어리석은 양
나가 물어- 볼까나.
| *봄처녀: 이은상(李殷相)의 시조를 홍난파(洪蘭坡)가 작곡한 가곡. 1932년경에 작곡한 곡으로, 1933년에 간행한 작곡자의 가곡 작품집인 《조선가요작곡집》을 통해서 발표하였다. 이은상 님은 〈옛 동산에 올라〉, 〈가고파〉 등 고유한 전통의 시형식인 시조의 현대화에 기여했으며, 이병기(李秉岐)와 쌍벽을 이루면서 시조시의 한 유형을 완성시킨 분.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봄총각〉과 〈봄처녀〉 시 비교 및 종합 시평 -. 작품 개요와 배경 이은상의 〈봄처녀〉는 1932년 작곡가 홍난파에 의해 가곡으로 만들어진 시조로, 봄을 ‘처녀’로 의인화하여 한국적 정서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김형식 시인의 〈봄총각〉은 이 ‘봄처녀’에 대한 화답시로, 원작의 구조와 정서를 계승하면서도 남성적 시각에서 봄의 설렘과 기대를 새롭게 해석한 작품입니다. -. 시적 구조와 표현의 유사점 두 작품 모두 시조의 형식미를 살려, 3연 구성과 반복되는 운율, 그리고 ‘님’을 기다리는 설렘을 담고 있습니다. ‘새 풀옷을 입으셨네’, ‘뉘를 찾아 오시는고’ 등 주요 구절이 유사하게 반복되어, 화답시로서의 긴밀한 연관성을 보여줍니다. 마지막 연의 ‘나가 물어- 볼까나’와 같은 표현은 두 시 모두에서 화자의 수줍음과 기대감을 잘 드러냅니다. -. 주제와 상징의 차이 ⦁구분: 봄처녀 (이은상) 봄총각 (김형식) ⦁주체는 봄을 ‘처녀’로 형상화, 봄을 ‘총각’으로 형상화 ⦁상징은 하얀 구름 너울, 진주 이슬, 꽃다발 등 여성적이고 섬세한 이미지, 아지랑이 나귀, 버들 화동, 기러기 등 남성적이고 활기찬 이미지 ⦁정서는 봄의 순수함, 설렘, 수줍음 봄의 활기, 기대, 설렘, 약간의 장난기, 〈봄처녀〉는 봄의 순결함과 여성적 아름다움을, 〈봄총각〉은 봄의 생동감과 남성적 활력을 각각 상징합니다. ⦁〈봄총각〉의 ‘아지랑이 나귀 타고’, ‘버들 화동 앞세웠네’ 등은 봄의 역동성과 익살을 더하며, ‘기러기 가슴에 안고’는 새로운 만남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표현합니다. -. 화자의 태도와 감정 두 시 모두 ‘님’을 기다리는 설렘, 혹은 그리움이 중심 정서입니다. 〈봄처녀〉는 “이상도 하오시다/ 행여 내게 오심인가/ 미안코 어리석은 양/ 나가 물어- 볼까나”에서 화자의 수줍음과 기대, 그리고 자기 의심을 섬세하게 드러냅니다. 〈봄총각〉도 “설레고 어리석은 양/ 나가 물어- 볼까나”라는 구절로, 남성적 시각에서의 순수한 설렘과 어리석을 만큼의 기대를 담아냅니다. -. 문학적 의의와 현대적 의미 이은상은 시조의 현대화에 크게 기여한 인물로, 〈봄처녀〉는 한국적 정서와 자연미를 노래한 대표적인 시조 가곡입니다. 김형식 시인의 〈봄총각〉은 원작의 형식과 정서를 존중하면서도, 남성적 시각과 유머, 활력을 더해 화답시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점이 돋보입니다. 두 작품 모두 봄이라는 자연의 변화와 인간의 감정(기다림, 설렘, 수줍음 등)을 세련되게 결합시켜, 세대를 넘어 사랑받는 문학적 가치를 지닙니다. -. 종합 평가 〈봄처녀〉와 〈봄총각〉은 각각 봄을 여성과 남성에 빗대어,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순수한 감정을 노래하는 쌍을 이루는 작품입니다. 〈봄처녀〉가 시조의 전통미와 여성적 섬세함을, 〈봄총각〉이 남성적 활기와 현대적 재치를 담아내며, 두 시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처럼 한국 서정시의 미학을 풍부하게 보여줍니다. 화답시로서의 〈봄총각〉은 원작에 대한 경의와 더불어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한 점에서, 문학적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