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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칼바람이 부는지 그때당시는 알수도 없었고 알려고하지도 않았고 먹고살기바빠서 알새도 없었다.
동해에서 처음학원했던 처녀는 사귀던 남자가 태백으로 발령
이나서 태백으로 따라가서 태백에 학원을 차렸다.
학원의 칼바람은 잠들지 않았고 계속 불어댔다.
하루는 회사갔다가 유통영업하는데 삼척유통하는 자의 샆
위층에 학원이 새로 들어선다는 것이다.
삼척에 학원이 들어서면 그것도 나와 같은 유통업하는 사장의
샾윗층에 학원이 오픈하면 삼척의 거래처도 나와는 돌아선다.
그때당시 내가 먼저 삼척에 학원을 오픈하는 방법이있다.
강사를 구하려고 태백학원에서 학원생중에 두명을 추천받아
강사한사람을 고르는중에 한명은 삼척에 거주하고
한명은 태백에 거주했다. 태백에 거주하는 자를 강사로
선택했다. 삼척거주자는 삼척유통사장 윗층에 바로 학원차리려고 소문이 났던 학원에 강사로 가려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는 것이다.
동해 학원하는 원장을 만나서 얘기했다. 삼척에 어차피
학원들어서는데 내가 먼저 차려서 삼척서 싸우겠다. 그러니
동해학원하고는 상관없다. 어차피 학원이 생겨나니
하나생기나 둘이 생기나 생기는 것은 피차 일반이니
삼척서 싸워서 삼척 학원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동해학원을
돕겠다. 그얘기를 듣고 그때당시 학원장은 아무 말없었다.
동해 학원은 학원생을 합격시켜 우리에게 보내주는 그런
학원이 아니라 서울로 학원생들을 취직시켜 학원이 있으나
마나였다. 차라리 없는게 더 나았다. 그차에 삼척학원이
들어선다니 나는 삼척에 학원을 오픈하여 동해학원이
돌아서더라도 학원을 해서 인력을 만들어내야한다.
삼척100평을 임대내서 오픈하는날 3층 꼭데기에 아무도
오지않았다. 선물은 그릇셋트 만원이나 가는 큰 상자를
맞추었는데 할머니들이 떡잡수러 올라오심이 전부였다.
할머니들에게 떡도드리고 그릇셋트를 선물로 안기였다.
그때 삼척에 학원차린다는 여자분이 강사로 써달라고 왔다.
우리부부는 삼척에 학원차리라고 돌려보냈다.그때는
전혀 몰랐지만 칼바람에 놀아났다. 여강사는 야릇한 미소를 짓더니 계단으로 내려갔다. 결국에는 멀쩡히 거래잘하던
동해학원하고 등지게 되었다. 삼척학원을 차리지않은것이다
기가 막힌 공작이 여기서 공작이 끝난것이 아니다.
학원이 거래 안한다 하더라도 예전처럼 학원생들이 우리를
거래해줄것이라 생각했지만 학원생은 완전히 돌아섰다.
동해 학원생 중에서 유통업을 차리려고 준비공작이 있었다
무릉계 미스진이고 사업을 현재 하고있고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는자가 학원다니면서 학원생들과 안면관계를 연결한 후
나와서 유통업을 차렸다. 동해 학원생들은 거래를 바꾸었다.
거래처에서는 사람을 보내달라고해도 우리보다는 새로 생긴 유통업에 전화하는것이 빨랐다. 삼척학원차려서 삼척거래처
연결하려다 동해 거래처가 새나갔다. 학원문제로 거래처까지 날라가게 되었다. 신설유통은 쉽게 일어날수가 있었다.
그때당시 부부가일하는 거래처 중에 큰 업소로서 월 백만원
정도를 거래해 주었다. 종업원 과 주인까지 10명이 근무했다.
그렇게 큰업소는 종업원이 일한다.우리와의 거래도 끝났다.
종업원을 구해주지도 못해서 거래처를 바꾸다보니 주인이 미스강원이다. 남자가 물건주문하러갔다가 여자다움에
마음이 흔들렸다 어느 정도 흔들린지는 아무도 모른다.
자연 가정이 문제가 생겨났다. 나하나 잡으려다 흔들리게
되었다고본다. 신설유통업을 하니마니 문제가 자연 발생했고
나를 잡으려는 칼바람은 원인분석하여 나를 치려다가 거래처 남자가 문제라서 우선 먼저 거래처 남자를 먼저 치려고 했다.
거래처 남자를 칼바람부어넣었다.
객지에서 놀음꾼이 동해에 왔다. 온지도 몰랐다. 작년에 좀파워쎈자가 놀러오라해서 동호6기 故신동관과 같이 갔는데 동해에서 왔다니까 야쿠쟈는예전에 화투하러 동해에 놀러갔다는것이다. 젊은데도 큰 건물에 룸싸롱을 경영하고있었다. 과거일이 그 자리에서 떠올랐지만 바로 지워 버렸다. 세상이 참 넓고도 좁다. 지금은 지나간 과거일이 었으니 관심도없었다. 칼바람은 나이외에도 방해요소는 제거를했다. 그때 당시 남의 칼바람은 오히려 나를 도워준 셈이된다. 그때당시 나는거래가
잘 안되어 고민하고 있던 찰라 거래부부 남자가 우리 샾에
놀러와서 있던 얘기를 죄다 해주어서 자연히 알게되었다.
자기 업소는 동해서 제일크므로 종업원이 있어야 하므로
그 유통업에 가면 사람 하나 진짜 빠르게 공급해주어서
달만되면 백만원씩 끊어주는데 한번은 돈을 주러 갔는데
신설 유통업하시는 미스코리아가 밥을 먹고 가라고해서
맛있는 반찬에 팥밥을 이쁘게 떠서 주는데 정말 여성답더라는
것이다. 얘기 나누다 보니 고향이 우리 누님사시는 곳하고
같은 방향이라 차를 한번 타고 갔다는 것이다.
부인하고 이혼을 할 때는 그런 이유가 아니라고 말한다.
나는 거래를 해주고 안해주고 부부가 이혼을 하였다니
깜짝 놀랐다. 이런 사건이 발생하였다니 신규 유통업이
아니라 다른 이유였다니 귀를 귀울려 들었다.
부인은 하루 종일 끝나고나서 돈 을 아무케 던져 놓고
자기는 돈을 개서 정리할때 사람이 사는 것 같지
않아 남자다운 일을 한번 찾아 보려고 밖에 여러사람과
어울리다 보니 화투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몇일 계속 따게되어 딸때마다 업소에와서 "너희들 오늘 회식이다" 하고 돈 20만원을 주고나도 2백만원 따고 150만원 딸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 다음날 계속 잃었는데
계속 잃고 따지 못하더라는 것이다. 4일만딴 전문 도박단이다
"본전되었을때 그만하지 그랬소"
"돈은 따게되면 그 돈이 내돈이지 남의돈을 땄다고 생각
안해요. 그래서 딴 돈도 잃게되면 내돈잃은 것으로 알고
손을 뗄수없어서 화투를 끊을수 없고 계속하게되지요."
"돈을 얼마를 잃었기에 이혼까지 하게 되었소?"
"한 오천? 그정도 잃었을거예요. 돈잃으니까 눈뒤집혀
아무것도 안보여요. 돈이 곧 들어올것 같이 보여 은행
가서 돈 찾아와서 하면 다 되었다가 또 잃으니 결국 밑천 많은 놈이 이기는 것 아니겠어요?"
이 가정이 이렇게 잘못되었는데 신설 유통업은 자연중단,
서울 베테랑 유통하는 자에게 넘겨 나는 시골 동해에 살면서
서울 유통업하는 자와 싸우게 되었다.
어느날 서울 유통하는 자는 지방에 젊은자에게 팔고 떠났다.
지방 젊은이도 자기 생각대로 되지않자 유통업을 정리했고
동해 학원도 훗날 정리했다. 서울서 내려온 노부부가
운영했는데 남자분은 혼자사는 여자에게 할말이 많은지
동해에 나타나지 않는 전국구였다. 결국 그 학원도 가정때문에 학원을 중단하게 된 것 같았다.
나는 날개를 다시 달았다. 대학 1학년때 삼척에 학원을 오픈
대학교 2학년때는 경제학을 배웠기에 은행을 신설하려했다.
그때 자금은 3억이면 차릴수 있었고 자금은 거래처에 다니며 주인이든 종업원이던 하루 오천원을 온라인에 받고
몇년이 되어 샾을 확장 내지는 샾을 사거나 전세 얻을 때는
가서 장소를 보고 그 돈을 은행에서 계약하고 잘못되어도
돈은 살아있기에 은행에서 손해 볼 일은 없다며 20명에게
좋은 생각이고 된다고 하여 발기인을 선정하여 은행신설
준비에 박차를 가했으나 부인은 은행신설은 부도나면
다시 일어설수 없다며 거절했다. 직접효과는 은행신설이라면 간접효과는 거래처의 거래다. 거래는 자동으로 이루어진다. 이때 부인은 샾을 운영하면서도 보험회사를 다녔다. 전국에서 500등했고 신규 보험자로서 전국에서 1등을 했다. 보험을 여자들 고객만 상대했다.
장모님도 보험을 들었는데 보험금을 불입하자 부인은
자기 돈을 8회나 넣어서 보험을 살렸으나 장모님이
세상을 떠나시어 보험금을 타게 되었다. 장모님이 강릉에 땅을 600평 젊었을때 구입한 땅이 있었다.
그 땅이 남의 손에 넘어가서 땅주인이 나타나서 묘를 쓰지 못하게 되었으나 보험금을 땅사는데 보태어 요긴하게 썼다.
몇년전 최고장또 날라왔다는 것이다. 그땅을 찾자마자 한달도 안되어서 1저당,2저당,3저당 으로 삼천만원이나 빌렸다한다.
부인은 땅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처가식구들은 욕을 하고
쓴 자 보고 난리를 냈다. 두번다시 돈 들이댈 사람도 없고
나하나로 처가집까지 칼바람이 불었는지 큰동서님은
동해에 오징어 건주를 하러 왔으나 망하여 경상도로 갔다.
도저히 동해에서 공장을 할수 없다고 한다.
처가에 일어난 일에 뭐라고 할 처지도 못되고 3저당까지 삼천만원이 있어야 해결되는데 한사람도 선뜻 나서는 사람없었다.
부인은 울며불며 어머니 집을 찾어야 한다며 온사방에
돈을 빌리러 다녔다. 삼천만원빌렸으나 이자는 3부로
달에 90만원이 이자돈이며 그때 당시 내월급 10만원이였고
9배나 더되는 돈을 갚아야 하는데 아무도 도울 사람없고
우리가 벌어서 이자를 갚아야한다. 이제 부도가 눈앞에 왔다
거기다가 동서는 망해 야간도주하며 중학교 다니는 딸아이를
하나 우리보고 키워달라고 맡기고 떠나며 트럭한대를
사려는데 보증을 우리보고 서달라고해서 큰동서가 망하면
따라서 우리가 망한다. 대학교 2학년때 은행신설을 못하고
바로 동해에다가 학원을 차려 지금도 운영하고있다. 그때는
동해에있는 학원과 정면 충돌했다. 대학교 3학년때는 본의
아니게 강릉에 장모님 땅을 600평을 삼천만원 고스라니
빌려서 땅을 사게 된다. 훗날 감사하게 2부로 내려주셨다.
이때의 칼바람은 거래하는 업소에서 이상하게 돈결제를
미루고 시간을 끌고 상당히 어렵게 만들었다.
돈떼인것도 많다. 우리 부부 공동점은 돈 떼어도 떼었다는
표시를 내지 않고 그져 묵묵히 앞만 보고 걸어왔다.
곧 망하여 간판을 내려야 정상인데도 참고 또 참으며
지금까지 걸어가고 있다.
삼척학원은 야간반 9시가 끝나면 임원, 호산에서 다니는
학원생들을 태워주고 임대 아파트로 도착하면 끝이다,
큰동서의 딸도 잘 자라주어 중학교,고등학교,전문대를 나와서
삼척학원에 강사로 지내고 있어서 야간반 수업끝나고 학원생태워주고 아파트로 들어오면 밤 11시경이 다되어서 하루
일과를 마친다.
집 한채 날린인생에다가 장모님땅도 빛내어서 구입하고
갚을생각하니 까마득하고 한숨만나오고 시청에서는 땅을
찾아줄 생각도 안하고 측량사를 믿는다하고 싸워도 잘모르겠다하고 땅만 돌려달라는 청을 완전히 거절했다.
매일울었다. 동해 측량이 잘못되어서 이의신청을 하면 춘천서 측량나오면 한 통속이다. 여기 소장이 그쪽으로 발령이 났다며 그때 소장이 다시 측량하러 왔다.
내뿐만 아니고 땅이 억울하여 측량하면 힘쎈자가 이긴다.
대한민국의 땅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반듯하게 만들고 싶었다
시청을 찾아가서 이의 신청을 냈다. [정부주도의 지적공사와
민간주도의 지적공사 이원화] 지적도때문에 싸움이 잦은데 대한민국의 땅을 바로 잡어야 한다.모든 행정서류는 정부주도 지적공사서류가 들어가고 만약 측량하고도 긴가민가하였을때 다시 민간주도 지적공사에 측량신청할수있는 이원화측량이다
측량할때 정부지적공사는 믿을수 없으니 비교할수 있는 민간주도의 지적공사 하나더 신설하기를 정식 안을 제출했다.
민원계장은 서류를 훝어 보더니 "선생님이 제출하신 서류는
본인땅을 찾기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대한민국의 땅을 전부
찾겠다는 뜻입니까?"
"둘다요."
"알겠습니다. 참 좋으신 생각입니다"
"약자는 힘센자에게 져야합니까? 살인죄수가 백년을 살다와도 땅의 지적도는 그대로 있어야 합니다. 왜정시대때 지적도가 변경이 되었다니 그게 말이 됩니까?"
안을 올린다는 민원계장님은 서류를 올렸는지 삶아먹은지는
알수없다. 연락없이 정년퇴직했다. 작년 아들 결혼 한다고 청첩장이 와서 부주함, 혼주 얼굴에는 수심이 쌓여있었다.
그 힘으로 나의 땅을 찾으려면 목을 내 놓아야 할수있다.
서류가 언제일인데 해결못하고 청첩장을 보낸 선배를 뭐라고
할 처지도 없다. 그때 울음으로 매일 나날을 보내다가
1994년 1월3일 학원생을 태워주고 임대아파트로 올라와서
뒷베란다를 열고 하늘을 보며 (하나님! 내땅을 알게되었는데도 땅을 돌려주지 않아서 못찾고있습니다) 그날따라 눈물이
펑펑 막 쏱아졌다. 줄줄 흘러 내렸다. 그때다. 하늘과 땅 그
사이에 빛이 세로로 두개가 서서 불꼬리가 길게 내려져
있었다. 울다말다 (저게 뭐냐?) (저건 분명히 빛이지?)
축구공 크기만 하고 세로로 두개가 껌 뻑 거리며 불꼬리를 길게 늘여 뜨리고 있지 않은가? (저게 대체 뭐야?)
(분명히 빛이지?) 하고 눈을 껌뻑이며 눈물을 짜르며 정확히
보고 또 보았다. 분명히 빛이라 느끼고 난뒤에는 불 두개는
사라졌다. 그리고 불 옆으로 자동으로 눈이 움직이게 되고
그옆에는 시커멓게 생긴 둥근 형체가 4개가 고정으로 서있었다. (저건 뭐야?) 눈물을 짜르고 또 짜르고 보아도 분명
검은 둥근것이 4개가 선명하게 불빛이 사라진 바로 옆에
훌라 보다 더 큰 둥근 검은 원형이 4개가 정사각형,선명하게
나타났다. (분명히 검은 물체가 맞지?) 나의 머리카락은 정말 곤두서있을 정도로 놀라서 기절 직전에 있었다.
4개의 검은 둥근 물체가 사라지고 나서 나의 눈은 좌우로 왔다갔다했다. 우측에 또 나타났다. 4개의 원형 옆에 정 삼각형으로 3개가 나타났다. (저건 검은 물체가 3개가 틀림없지?)
몇번이나 눈으로 눈물을 또 짜르는 습관이 있는지 울지 않아도 눈은 눈물을 짜랐다. 틀림없이 3개다. 속으로 느끼면
사라진다. 내눈은 그 양 옆으로 살폈보아도 더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울다말다 돌아서 베렌다를 나오며
일기장에 볼펜을 가져가며 글씨는 써내려가야하는데
조금전 본것이 계속 떠 올랐다.
(도대체 무었인가? 왜 내게 보여준 것인가?)
일기를 썼다.
[나는 오늘 밤하늘에서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
그리고 이불을 뒤집어 썼다.
(세상에~ 현대에 이런일이 있을수 있단 말인가?)
(그러면 이 세상 말고 다른 세상이 있다는 얘기인데
왜 하필이면 나를 보여 주었을까? 혹시 다른 사람 본 사람이
있을까? 아니야~ 다른 사람은 볼수도 없어. 그럼 왜 날까?
내가 하늘에 대고 울었잖아? 아무리 운다고해서 그런일이~)
(내가 하늘을 열었다는 얘기가 아닌가?)
(아아~ 무섭다. 왜 하필이면 나한테서 이런일이 발생할까?)
(이건 꿈이 아니고 현실이 아닌가? 현대사회에 이런일이~)
(아아~ 이일을 어떻게 할까?)
이때 부인은 강사를 통해 나를 오라고 한다.
나는 잔다고 했다
(이게 현실이다. 이런일이 실제로 일어나다니~)
비몽사몽 잠을 청했다.
이런일이 일어나고 난 뒤부터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이세상 말고 다른 세상이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