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 1일 이렇게 말했다. 최근 여야에서 잇따라 제기되는 행정구역 개편론에 대해서다. 그는 “행정구역 개편은 국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면서도 개편 과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 전망했다.
그럼에도 18대 국회가 문을 열자마자 행정구역 개편 논의는 활기를 띠고 있다. 야당인 민주당이 지난달 말 의원 연찬회에서 관련법 제정을 결의한 데다 여당 내에서도 동조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허태열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지난달 31일 기자회견을 열어 행정구역 개편을 주장했다. 당 지도부인 임 의장이 긍정적 반응을 보임에 따라 표면적으론 여야가 모두 찬성하는 모습이다.
◆개편론, 여야 공감대=여야가 제시하는 행정구역 개편의 시점은 다소 차이가 있다. 민주당은 조속히, 한나라당은 경제가 안정되는 시점에 실시하자는 입장이다. 하지만 관련 논의는 가급적 빨리 시작하자는 데 목소리가 일치돼 있다.
왜 민주당과 한나라당 일각에선 지금 행정구역 개편론을 제기할까.
최재성 민주당 대변인은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지만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유야무야됐다”며 “이명박 정부 초기와 18대 국회 임기 초반이 맞닥뜨린 지금이 가장 좋은 시점”이라고 말했다. 허태열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이명박 정부 인수위 때 광역 경제권 논의가 나오면서 행정구역 개편도 함께 얘기될 줄 알았지만 묻혀 버렸다”며 “야당이 먼저 얘기를 꺼내 주니 지금이야말로 적기”라고 밝혔다.
여야가 표면상 드러내지 않는 다른 이유도 있다.
특히 한나라당은 민주당이 먼저 치고 나온 것에 대해 “의도가 있다”고 의심하는 눈초리다. 한 핵심 당직자는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이 장악한 지방 권력을 바꾸려는 것 아니겠느냐”며 “대선과 총선에서 패배하며 민주당이 지방 권력의 힘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민주당 내에선 “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지역구도를 깰 수 없다. 민주당이 전국정당화하려면 행정구역이 개편돼야 한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온다. 민주당은 개편 논의가 수그러든 책임을 한나라당에 돌리고 있다. 한 당직자는 “한나라당이 기득권을 뺏기지 않으려 17대 국회에서 소극적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개편 방안은=17대 국회의 ‘국회지방행정체제 개편특위’가 2006년 2월 낸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3~4단계인 지방행정체제를 70여 개 정도의 광역 자치단체로 일원화하는 방안이 소개됐다. 이는 정부가 기준안을 내면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합종연횡’할 대상을 고르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경기도의 경우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부천·고양·성남 등은 주변의 몇몇 기초단체와 통합시를 구성하면 광역시급 규모로 확대된다. 이런 통합시들은 세금을 자체적으로 사용하는 등 독립적 위상을 갖게 된다. 만일 도(道) 내 3분의 2 이상 시·군·구가 통합시로 독립하면 도는 자연스레 소멸한다. 지금처럼 각 시·군·구에 공무원이 상주할 필요도 없다. 전자 민원 처리가 활발해질 것이다.
이에 대해 각급 단체장과 지방의회 관계자, 지방 공무원들은 반대 입장이다. 100여 년간 이어온 행정구역 틀을 허무는 것 자체가 엄청난 역사인 데다 지방 권력을 무력화하려는 의도가 담겼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