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 쓰고 관에 들어가 누워 보고…죽음과 마주 서서 삶을 돌아보다
“우리는 죽음을 미리 체험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자기 자신의 절실한 문제로 파악하여 삶과 죽음의 의미를 깊이 숙고하기도 하고,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지에 대해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은 언제라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자기 삶의 각각의 시기에 알맞게 실천할 수 있는 죽음 준비교육이라고 할 수 있겠죠.”
‘생사학(生死學)’의 대가인 알폰스 데켄(Deeken) 일본 조치(上智)대 교수는 저서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에서 이렇게 말했다.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은 죽음의 의미를 되짚어보고 올바로 인식함으로써 삶의 중요성과 그 의미를 새로 발견하고 가치관을 재평가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죽음 준비교육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은 생의 황혼을 맞은 노년층에만 해당하거나 목숨이 경각에 달한 말기 암환자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결코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웰 다잉에 관한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노년층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시립노원노인종합복지관(www.nowonsenior.or.kr)에서 시작한 ‘아름다운 생애 마감을 위한 시니어 죽음준비학교’는 우리 사회에 웰 다잉 바람을 일으켰다. 60세 이상의 노인을 대상으로 5주 동안 강의와 현장 체험을 통해 죽음에 대한 정보를 얻고,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없애자는 뜻으로 시작한 프로그램이었다.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자서전을 한 자 한 자 적고, 직접 유언장을 쓰기도 한다.
영정 사진을 찍고, 직접 장묘 시설을 방문해 삶과 죽음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는 시간도 갖는다. 구로구에서는 지난 12월 9일부터 23일까지 5차례에 걸쳐 ‘웰 다잉 강좌’를 마련했다. 60대 이상의 노인이 대부분이었지만 이번 강좌에는 20·30대 젊은층의 참여도 눈에 띄었다. “죽는 것에는 순서가 없다. 미리 준비를 하고 싶다”거나 “나 자신에 대해 돌아보는 기회로 삼겠다”는 것이었다.
서울노인복지센터(www.seoulnoin.or.kr)는 지난 10월 15~16일 ‘사(死)는 기쁨’ 축제를 열었다. 이번으로 3회째를 맞는 행사다. 장례문화 전시관, 생애 박물관, 전통 혼례 시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 중 임종 체험관이 단연 눈길을 끌었다. 체험자가 수의(壽衣)를 입고 좁은 관 속에 누우면 관 뚜껑을 덮고 네 귀퉁이에 못을 박아 10여분 동안 봉인하는 방식. 참가자들은 어둡고 답답한 관 속에서 그동안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이들의 얼굴, 잊고 지낸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삶을 반추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전남 나주의 코리아라이프컨설팅센터(KLC·www.life2die.com·1600-6898), 서울 남가좌동의 사생체험연구소(www.deathlife. co.kr·02-308-3740) 같이 전문적으로 임종체험을 할 수 있는 시설도 등장했다.
한국죽음준비교육원에서 낸 ‘나의 임종노트: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웰 다잉과 관련, 홀로 성찰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해 주고 있다.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로 시작하는 제1장은 아버지·어머니, 내가 사랑하는 사람, 가장 미워하는 사람을 선택한 뒤 그들의 사진을 붙이고, 그들에게 전하지 못한 자신의 진솔한 마음을 기록하게 했다.
제2장은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나는 누구이고 어떤 존재인가 △소중한 나의 가족 △내 삶의 여정 중 중요한 순간 △나의 유년·청년시절과 가정·사회 생활에서 잊지 못할 순간(사진과 함께) △손톱과 머리카락 등 DNA를 붙여 보관하기 △가장 기쁘고 슬펐던 일, 힘들고 후회스러운 일 △용서하고 용서 받고 싶은 것 등으로 꼼꼼히 나눴다.
삶의 여정을 정리하는 제3장에는 △존엄사 선언서 △내가 바라는 죽음의 모습 △임종을 지켜줄 사람들에게 전하는 말 △나의 장례 계획, 장례식 초대자 △유언·추도사·묘비명 △자산과 상속 △사후 처리에 필요한 증명서 목록을 적어 넣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4장에서는 삶이 각각 1년·6개월·3개월밖에 남지 않았을 때 꼭 하고 싶은 일을 세 가지씩 선택하고 그 이유를 기록하도록 했다. 임종노트는 나의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 남기고 싶은 순간의 사진을 붙이는 것으로 끝난다.
외국에서는 죽음 준비교육이 인격을 닦는 필수적인 과정 중 하나로 여겨져 왔다. 특히 초·중·고교생들을 대상으로 한 죽음 교육이 공교육 차원에서 일상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죽음에 대한 것을 애써 감추려 하기에 급급한 우리와는 구별된다.
미국의 대다수 주에서는 학교에서 죽음 준비교육을 다양한 교과목 안에 포함시켜 가르친다. 보건교육의 일부로, 혹은 죽음을 문학의 교재로 취급하기도 한다. 사회과학 수업에서도 다양한 각도에서 죽음에 대해 깨닫도록 교육한다. 대학에서는 일반 종합대학의 정식과목으로 죽음학이 보편화된 지 오래다.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더기(Dougy)센터는 미국 각지로 퍼져나간 비탄(grief) 교육과 비탄 카운슬링 시설이다. 더기센터라는 이름은 뇌종양으로 13살에 죽은 더기 투르노(Turno) 소년을 기리기 위해 붙인 것이다. 가족을 잃은 상실 체험으로 괴로워하는 200여명의 어린이들이 상실한 대상과 나이에 따라 20여개의 소그룹으로 나뉘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카운슬링을 받는다.
독일은 죽음 준비교육의 전통이 풍부한 나라다. 일반 중·고교 종교교육 중 필수과정으로 죽음교육을 포함시켰고, 교재도 다양하다. 중학생용 교과서 ‘죽음과 죽어가는 과정(Sterben und Tod)’은 △죽음과 장례식 △청소년의 자살 △인간답게 죽는 방법 △생명에 대한 위협 △죽음의 해석 등을 주제로 학생들의 다양하고 자유로운 생각을 유도한다.
2002년부터 죽음 준비교육을 학교 공식 교육과정으로 채택한 일본에서는 임종에 대한 이해부터 죽음에 대한 금기를 없애는 것, 죽어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윤리적인 문제, 자살 예방 등을 다룬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죽음 준비교육이 학생들이 평소 성찰하는 자세를 갖고 정서적으로 안정되도록 하는 효과가 크다고 분석한다.
'죽음준비학교' 프로그램
1교시
마음 열기
죽음이란 단어에서 연상되는 느낌은?
색깔로 죽음을 나타내기
마음속 가장 깊이 남아 있는 죽음의 기억은?
2교시
인생 그래프 그리기
나만의 잣대로 평가하는 내 인생
잊을 수 없는 사람들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한 사람
용서하기 어려운 사건과 사람들
은혜를 갚아야 할 사람들
화해하고 싶은 사람들
나의 사랑, 나의 가족
3교시
나의 사망기 쓰기 남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
1. ○○○는 어제 ○○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2. 그의 사망원인은 ○○○이었다.
3. 그의 남은 가족은 ○○, ○○이며, 그는 ○○○의 구성원이었다.
4. 그는 사망한 그때에 ○○○를 하고 있었다.
5.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를 ○○한 사람이라고 기억할 것이다.
6. 그의 죽음을 가장 슬퍼할 사람은 ○○○일 것이다.
7. 그가 세상에 남긴 업적은 ○○○이다.
8. 그의 시신은 ○○○ 처리될 것이며,
장례식은 그의 유언에 따라 ○○식으로 진행될 것이다.
쉬는시간
나의 사망원인은 무엇일까?
4교시
꼭 한 번 만나고 싶은 사람
죽어 헤어져도 잊지 못할이름이여
5교시
내 인생이 한 달 남았다면
버리고 싶은 것 “사라져라”
꼭 하고 싶은 일 “이루어져라”
6교시
무엇을 남기고 갈까 장수사진(영정사진) 찍기
현장학습 화장장(승화원)·납골당(봉안당)·산골공원(추모의숲)·자연장지
체험활동 임종·입관체험
7교시
참관수업 청각장애 어르신들의 죽음준비 프로그램
8교시
유언장 쓰기 마지막 바람과 당부
1. 성명·주민등록번호·주소·작성연월일·장소는 필수
2.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배우자·자녀·친구·친지
3. 내가 떠난 후에: 나의 장례식, 시신 처리, 유산·물건처리 문제
9교시
봉사활동 다른 이들에게 배운 내용 전하기
종례시간 인생의 설거지를 마치다
보충수업 내가 꿈꾸는 장례식
Weekly Chosun: [2038호] 2009.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