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가 나가고 난 묘목 비닐 봉지를 들고 범재등으로 걷는다.
흙이 다 떨어진 작은 묘목 9그루인데 걷다보니 무거워 손을 바꾼다.
재작년에 묻어 둔 거름 표지가 남아있어 파는데도 땅은 단단하다.
날이 또 추워져 얼수도 있으니 물을 주지 말라해 발로 꽁꽁 밟는데 이러다가
공기가 통하지않을까 걱정이다.
호미로 가는 흙을 밀어넣으며 뽐아올리며 밟고 풀검블을 주워 나무주위에 덮으니 땀이 난다.
새 한마리가 타다남은 명아주 줄기에 앉아 날 보는데 난 줄 것이 없다.
아랫밭의 홍매는 활짝 피어나고 있다.
비끼골 정골 앞 편백숲에서 보아 둔 황칠을 뽑으러 간다.
송림쪽 들판 너머는 흐리다.
동쪽에 흐릿하게 팔영산과 운암산 봉우리가 보인다.
가장굴 입구 어린 시절 내가 지게지고 다니던 길은 사라지고 비가 선 무덤이 보인다.
송효섭씨의 묘인데 그 이름은 들은듯도 한데 모르겠다.
범재등ㅇ에서 살았던 송씨들의 이름도 기억이 가물하다.
내가 무슨 기록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마당바구 지나 다리 건너기 전의 새집 개는 물끄러미 날 쳐다보더니 고갤 외면한다.
다릴 건너 정골 앞으로 걷는데 한 여성이 복대를 하고 나무 지팡이를ㄹ 짚고 내려오고 있다.
어디서 오느냐니 저기라며 뒷쪽을 가리키다.
한적굴 건너편 모장골 내려오는 새집을 지은 사람의 가족인 모양이다.
눈치를 보며 길을 벗어나 봐둔 황칠을 호미로 캔다.
낙엽 사이 돌에 서 있던 작은 나무는 금방 뽑힌다.
길 가의 그보다 더 작은 한 개도 뽑아 둘을 배낭에 넣고 돌아온다.
과수 묘목 가쪽으로 간격을 두고 심는다.
나무끼리 돕는지 해를 끼치는지도 모르고, 나무의 키도 몰라 안과 밖에 심어야 할 위치도 모른다.
나무를 심어 놓고 제대로 돌볼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가난하게 살던 몸은 뭘 해야 할 지 그 일의 결과가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