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이 과일
鳳岩 추영호
D마트, 벌크 매대에 몰려들어
못난이 과일을 다투어 골라 담는 사람들을 보며
세상 참 아이러니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흠 있는 과일이 맛이 있지요
새나 곤충들이 먼저 알아보니까요
손놀림 빠른 펑크머리 아줌마의 구차한 변명도 그렇고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산다는
센스 있는 마트 관리인의 음악 선정도 그렇고
살다 보니 못난이들이 대접받는 시절도 오는구나
하니 잼도 있고 짠하기도 하다
못났다고 어찌 푸른 생애가 없었겠는가
저 과일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
태양은 일 년 내내 햇빛을 뿌려주었고
바람은 일 년 내내 구름을 몰고 다녔으며
줄기는 온 힘을 다해 지구의 중력을 빨아올렸을 텐데
말하지 않아서 그렇지 내 상처도
누구보다 깊은 사랑의 흔적이고
누구보다 만만찮게 살아왔다는 증거지만
세파에 흔들리고 치이고 짓무른 것이 어찌 남 탓할 일일까 마는
따지고 보면, 상한 놈이 있기에 성한 놈이 있고
못난 놈이 있기에 잘난 놈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과일을 고른다
펑크 머리 아줌마들 틈에 끼어
못난이 중에서도 잘난 놈을 골라 봉지에 담는다
시절도 시절이고 값도 값이지만
왠지 뒤통수가 근질거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