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론 읽는 기쁨] <33> 제2편 제4장 심인공부 ⑨
만다라회 기획, 박희택 집필
제7절 ‘귀신과 정신’은 정신(精神)과 바른 믿음[正信]에 관한 회당대종사의 법문이다. 대종사께서는 정신과 귀신(鬼神)을 대비시키시는데, 그 기준은 ‘내 마음의 밝음’이다. 또한 ‘내 마음의 어두움’은 귀신이 되기에 필시 미신으로 귀결됨을 알아차리라고 깨우쳐 주신다. 간명하면서도 분명한 생활법문이라 하겠다.
“내 마음이 어두우면 내 마음이 귀신 되고, 내 마음이 밝게 되면 내 마음이 정신 된다. 대저 신이 다른 데서 오는 것이 아님이요, 탐진치에 마음 변해 귀신 되는 것이니라(실행론 2-4-7-가).”
“귀신에게 빌면 잘된다고 믿는 것은 미신(迷信)이고, 마음 밝히면 잘된다고 믿는 것이 정신(正信)이다. 마음을 밝혀서 잘되려 하는 것은 청신(淸信)이고, 귀신에 빌어서 잘되려 하는 것은 미신이다. 마음을 고치는 원동력은 ‘옴마니반메훔’이다(실행론 2-4-7-나).”
‘대저 신이 다른 데서 오는 것이 아님이요’의 ‘신’은 ‘귀신’을 말하는데, 대중들을 위해 4·4조로 설한 방식에 따라 글자 수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표현된 것이다. 바른 믿음은 마음을 밝히면 잘된다고 믿는 것이다! 마음을 밝히지 않고 일신(一神)이나 영물(靈物)이나 상불(像佛)에 의지하는 것은 엄밀한 문명의식으로 보면 바른 믿음[正信], 맑은 믿음[淸信]이라 하기 어렵다.
고등종교라 하더라도 미신성이 큰 종교들이 엄연히 있으니, 이것은 우리 인간의 어리석고 나약한 모습을 보여 주는 징표라 할 것이다. 청신사(淸信士, 우바새)와 청신녀(淸信女, 우바이)라 하면서 미신에 머물고 있지는 않은지 자성(自省)해볼 일이다. 대종사께서는 마음을 밝히는 길은 역시 본심진언인 옴마니반메훔을 염송을 함이라고 인도하고 계신다.
제8절 또한 ‘귀신과 정신’을 절제(節題)로 한다. “부처가 다른 곳에 있어서 우리들을 이익하게 한다면 귀신이요, 내 마음에 있는 부처를 믿어서 행복을 구한다면 정신이다. 빌더라도 나에게 있는 것에 대하여 빌어야 한다. 자성부처님은 나에게 유익하고 세상에 이익 되는 것이 내 마음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비록 자기와 자식을 위하여 심인공부를 하여도 결국 세상에 큰 이익이 된다.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본심인 심인의 덕이 세상에 비쳐지게 될 것이다(실행론 2-4-8-가)”는 말씀은, 대종사의 자증교설의 보편성과 고등성을 다시금 보여 준다.
‘내 마음에 있는 부처를 믿어서 행복을 구한다면 정신이다’는 가르침은 심인공부의 본지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말씀이라 할 것이다. 정신으로서의 심인공부는 결국 행복을 가꾸는 공부인데, 이 공부는 내 마음에 있는 부처인 자성부처님(자성법신)을 믿어서 본심을 밝히는 공부라는 말씀이다.
이 길 이 공부 외에 다른 공부는 췌언(贅言, 군더더기 말)과 같은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와 같이 보편고등의 심인공부라면 자기와 자식을 위하여 한다고 해도 결국 세상에 큰 이익이 된다고 하셨다. 왜냐하면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본심인 심인의 덕이 세상에 비쳐지는 까닭에서이다. 이 명지(明智)한 가르침에서 우리는 큰 안도감과 행복감을 얻게 된다.
또한 대종사께서는 “칠정(七情)에 기울어 전도(顚倒)되면 미치게 되는 것이다. 귀신이 붙은 것이 아니며 마음에서 생긴 것이다. 마음이 통일되면 정신이며 흩어지면 귀신이 된다(실행론 2-4-7-나)”고 하시면서, “어두운 시대에는 귀신을 많이 섬겼으나, 밝은 시대에는 정신을 세워야 한다. 밤에는 무서운데 낮에는 무섭지 않은 것은 그곳에 귀신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어두워서 귀신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흩어진 구십만보다 단합된 십만의 힘이 더 크다(실행론 2-4-7-나)”고 하셨다.
「반야심경」에서도 ‘전도몽상(顚倒夢想)’이라 하였거니와, 칠정에 전도된 것이 미친 것이며, 지난 시간 얼마나 자주 미쳐서 살았는가를 자성참회(自性懺悔)하고, 흩어진 마음을 모아서 통일하여 정신으로 밝은 시대에 맞게 살아가야 하리라. 인신난득하였는데도 귀신으로 살아서야 인간의 몸을 받은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로써 제2편 교리편 제4장 심인공부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