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는, 다 함께 서로 향상하는 절차탁마(切磋琢磨)하는 혈족 관계이며,
친구는, 사회생활상의 좋은 협력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관계의 조화에 일관(一貫)되게 익숙해지는 기둥은 무엇인가 하면,
그것은 남을 살리고, 서로 돕는 ⌜사랑⌟의 마음입니다.
사랑이야말로, 조화의 모습이며, 이 지상의 빛인 것입니다.
이 지상은, 남녀의 양성으로 성립되어 있습니다.
한쪽이 늘어나도 곤란하고, 줄어도 곤란합니다.
남자뿐이어도, 여자뿐이어도 인간사회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만약 한쪽만이 존재하고, 한쪽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
인간사회는 백 년을 못가서 절멸(絶滅)하고 맙니다.
이래서는 이 지상계에, 불국토도 유토피아도 안됩니다.
남녀의 양성(兩性)이 있어서,
비로소 사회생활 (그것은 우선 가정에서부터) 이 생겨서,
자손을 키우는 것이 가능합니다.
인류의 영원한 생활은,
이러한 남녀의 양성이 존재함에 의해서 가능하고,
조화로운 불국토도 완성되어 갑니다.
남녀의 양성(兩性)에는 각각 특성과 역할이 있고,
각각이 서로 돕는 것에 의해 조화됩니다.
색심불이(色心不二)의 중도의 정신은 여기에서도 살아 있습니다.
현상계는, 하늘과 땅으로 나뉘어서 비로소 공간이 생겨 입체로 되고,
생명이 사는 장(場)이 만들어집니다.
지구는 남극, 북극으로 나뉘고,
지구의 자전, 공전을 올바르게 회전시켜,
지상의 생명을 키우고 있습니다.
인간의 세계도 남녀의 양성이 있어, 인간사회가 영원히 계속되어 갑니다.
조화, 중도, 사랑, 자비라고 하는 말의 의미를
현실적으로, 실제적으로 잘 생각해 주세요.
그리고 이러한 말이 현실적으로 살아 있는 것은,
항상 복수(複數)라고 하는 관계 속에 있어서입니다.
이것들의 말은 단독으로는 결코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올바른 길(道)로 정진하는 것은,
우리들이 복수(複數)라고 하는 사회 속에서,
남을 살리고, 서로 도와가는 것에 의해, 비로소 그 의의가 생기고,
본래의 목적에 맞아 가는 것입니다.
⌜올바르게 염(念)하라 (正念)
= 항상 올바르게 기원하다.
올바르게 염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정념의 반대는 사념(邪念)입니다.
사념(邪念)이란 자신의 형편밖에 생각하지 않는
자기본위의 상념이며, 욕망의 상념입니다.
욕망의 상념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이 지상계는 혼란해집니다.
족함을 모르는 욕망은 서로 맞지 않는 에고로 되고,
에고는 자기본위의 "나"이니까 상호 협조는 대단히 어렵게 됩니다.
염(念)의 방향이 자기본위에 있으면 있을수록 고뇌가 많아,
마음에 업(業)을 만듭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업(業)이 많이 생겨나면,
진실과 가짜의 구별이 알 수 없게 되어,
지상계는 말법으로 되어 갑니다.
생각하는 것은 염(念)에 의해 구체적인 행위로 됩니다.
예를 들면 어디 어디의 학교를 시험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실력으로는 A학교는 어렵다,
그러면 B로 할까, C로 할까 하고 궁리합니다.
이 단계에서는, 생각하는 것, 궁리하는 것이 마음속만의 말로써,
아직 행위로는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저것 궁리한 끝에, B로 결정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당사자는, B를 향하여 나아가게 됩니다.
즉, 수험준비라고 하는 행위가 시작하는 것입니다.
염(念)의 움직임은 B 학교로 정했다,
고 하는 의지의 결정인 것입니다.
즉, 염이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이렇게 되고 싶다',라고 하는 목적의식이며,
의지의 결정이며, 행위라는 것입니다.
염(念)에 의해,
우리는, 마음속에서 생각하는 것, 궁리하는 것의 창조행위를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은, 저 세상으로 통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통합니다.
그러나 보통, 남에게 통하지 않는 것은 대개는 다른 것에 정신을 뺏겨서,
그것을 캣치하여도, 부정하든가, 잊어버리든가,
일에 쫓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각하는 것을,
염(念)을 통해서 마음에 강하게 작용시키면, 상대에 따라서는 통하는 것입니다.
노여움이나, 미움, 질투의 염(念)은, 구체적으로는 캣치할 수 없어도,
그 염(念)을 일으킨 사람을 길같은 곳에서 만나면,
왠지 모르게 적대시하고 만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염파(念波)가 나에게 쏘아져도,
이쪽에 아무것도 없고(미움. 노여움 등이 없고),
자애의 마음으로 가득 차 있으면, 적대시하는 마음은 일어나지 않고,
그 염을 일으킨(發한) 사람이 오히려,
어색한 생각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이와 같이 염(念)이라는 것은,
구체적인 의지 결정과 그것에 동반하는 행위임과 동시에
염(念) 그 자체의 움직임에 의해 남에게 작용을 미칩니다.
염(念)은 에너지이며,
마음속의 창조행위를 형태로 구상화(具象化)하여 가는 것입니다.
또 한 번 발(發)한 염파(念波)는,
1초 만에 지구를 7바퀴 반이나 도는 빛 이상의 빠르기로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즉, 윤회입니다.
선념(善念)은 선념(善念)으로서 되돌아오고,
악념(惡念)은 악념(惡念)으로서,
최초의 발신자에게 되돌아갑니다.
그러니까, 항상 안심한 경애(境涯)를 매일의 생활 위에 바란다면,
'자신만 좋으면 남은 어떻게 되든,,'
이라고 하는 자기 보존의 염(念)을 개선하여
' 남을 살린다. 서로 돕는 사랑의 상념, 중도의 법'을,
우선 마음속에 확립시키는 것입니다.
생각하는 것, 염(念=기원)하는 것은,
만생만물의 창조의 근원이며, 일을 할 수 있는 에너지이니까.
이것을 바로잡는 것이 (무엇을 하고 있더라도 일단 차치하고)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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