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가치를 잊고 부조화한 인생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은,
마음에 평안이 없고, 어두운 상념에 뒤덮여 있다.
이 현상계를 떠날 때도,
같은 어두운 상념의 세계로 떨어져 간다.
마음을 정화할 때까지는 그 지옥계에서 사는 것이다.
이것도, 자기 자신이 만들고 있었던 세계이다.
책임전가(責任轉嫁)는 불가능하다.
전가(轉嫁)하면 고뇌는 더 무겁게 될 뿐이다.
그러니까 행복을 잡는 지름길은,
과거세에서 범한 업(業)을 확실하게 확인하고,
과오 없는 인생을 보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반성하는 마음을 갖고,
자신의 나쁜 성격을 극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반성의 명상은, 마음을 정화한다.
신불의 빛에 의해 뒤덮인다.
그때는 생(生)도 없고 죽음(死)도 없다.
생명의 전생 윤회를 깨닫는 것이 가능하다.
우리는, 그저 육체라고 하는,
눈에 보이는 외면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육체가 무(無)로 돌아가면,
모든 것이 무(無)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육체의 지배자, 혼(魂)은,
이 세상과 저 세상의 환경에 적응한 옷 갈아입기를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을 깨닫게 되면,
생명의 불변을 의심하는 것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종교는 아편
미신(迷信), 맹신(盲信), 광신(狂信)은,
인간이 만들어 낸 신앙이며,
신리와는 너무나 먼 것임을 우리는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신사(神社), 불각(佛閣)에 참배하러 가서,
기도하는 것이 신앙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것인가.
신불에게 기도하는 것에 의해,
자신의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잘못을,
우리는 알아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유물론자의 양심 없는 사상에 의해,
인류는 회색의 인생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지(智)와 의(意)에 의해 만들어낸 투쟁과 파괴의 사상은,
자유와 평안의 마음을 혼란하게 하고,
단결이라는 미명 아래, 각자의 자유를 속박하고,
혹독한 탄압에 의해, 사람은 괴로운 생활로 내몰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들도 마음의 고뇌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수도 없다.
따라서 추종자는 마음을 잃은 사람들에 의해,
끼리끼리 모이는 법칙에 따라서,
지도자를 중심으로 집단을 형성한다.
유물 사상에 따르지 않는 자유의지의 한마디는,
추종자들에 의해 말살되고 만다.
사상에 의해 세뇌된 사람들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폭력에 의해 행동하고,
거기에는 자비도 사랑도 없는 행위가 전개되어 간다.
사상 이데올로기를 위해서는, 범죄의식도 없는 것이다.
사상적인 사람들의 집단은,
지도자의 로봇으로 화하여, 인간성을 잃고 마는 것이다.
정말로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서로가 믿지 못하는 인간의 집단은,
언젠가는 내부 투쟁에 의해, 파괴되어 간다.
우리는 이러한 사상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올바른 신리로, 우리가 돌아가는 것이다.
잃어가고 있는 인간의 마음을 되돌리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도 시대의 석가의 가르침, 이스라엘 시대의 예수의 가르침으로 돌아가,
위대한 마음의 존엄을 알고,
조화된 사회를 세우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불교도 그리스트교도,
지나치게 사람들의 지(智)와 의(意)에 의해,
너무 바뀌어져 있다.
그 때문에, 대자연을 지배하고 있는 의식,
즉 신불은 우상화되고, 더욱 빛의 천사들도 우상화되어,
기원하는 종교의 범람으로 넘치는 말법의 세상으로 되고 만 것이다.
그리스트의 가르침도 석가의 가르침도,
그 진수를 알 수 없게 되어버렸기 때문에 많은 중생은,
'신불의 이름 아래 기도하는 것이 종교‘
라고 생각하게 되어,
한 무리의 악질적인 종교자에 의해,
망쳐놓은 종교로 되어 끝나고 말았다.
생활 속에서, 매너리즘으로 되고 만 신앙은,
하루의 형식적인 행사로 빠져 버렸다.
" 불교는 어려운 것이므로, 그 진수를 구명하는 것은 곤란하다."
라고 불제자인 승려들까지, 이런 것을 말하고 있는 시대인 것이다.
지적(智的)으로, 아류(我流)의 해석이 성립하고 있는 모습이,
현대의 불교인 것이다.
인간의 올바른 자세를 가르치고 있는 불교가,
왜 철학이 아니면 안 되는가,
왜 엄격한 계율에 의해, 일정률(一定律)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가.
나에게는 의문이다.
많은 중생은, 불교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시대의 권력자나 귀족, 승려들을 위한 철학으로 화(化)한 종교는,
이젠 진실된 마음은 없다.
엄격한 계급제도가 왜 종교를 필요로 하는가.
그것은, 그들 특권계급으로 생각하고 있는 무리들의,
자기 보존의 수단인 것이다.
신(神)의 이름 아래, 그들은 대중을 희생하여 온 것이다.
일부의 그러한 특권계급이랑,
겨우 5%의 귀족이랑 승려의 사리사욕을 위하여,
약자 95%의 중생을 희생한 종교는,
아편과 같다.
아편으로 된 종교는, 이미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리(神理)일 수가 없다.
인간의 사리사욕의 산물이며,
그것이 신의 뜻이 아닌 것을,
우리는 잘 알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은 신불의 이름을 빌려 생활하고 있는 위선자인 것이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