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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7가지 - 내 삶을 허무는 은밀한 손님
본문: 잠언 6:16~19
6:16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곧 그의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예닐곱 가지이니
6:17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6:18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6:19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이니라
우리는 생각보다 죄를 너무 ‘작게’ 여깁니다
여러분, 일주일을 살아가시면서 내 삶에 찾아오는 수많은 생각과 말들을 어떻게 대하셨나요?
우리는 보통 큰 죄, 이를테면 뉴스에 나오는 흉악 범죄나 사기 사건 같은 것들만 진짜 무서운 죄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면서 정작 내 삶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는 참 관대해집니다.
“아니, 사람이 살다 보면 좀 과장해서 말할 수도 있지.”
“내 밥그릇 챙기려다 보니 조금 욕심부린 건데 그게 뭐 어때?”
“남들도 다 뒤에서는 험담하는데, 이 정도 말도 못 하나?”
이렇게 슬쩍 넘어가 버리죠.
그런데 오늘 성경은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그 일상의 태도들을 향해 가슴이 철렁하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16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그의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예닐곱 가지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미워하다’라는 말은 히브리어 원어로 ‘사네’(שָׂנֵא)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그냥 단순하게 기분이 좀 나쁘다거나 거북하다는 수준이 아닙니다.
뼈사무치게 혐오하고, 절대로 함께 존재할 수 없어서 밀어내는 상태를 뜻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도저히 공존할 수 없는 영적인 거부반응입니다.
성경이 나열하는 죄의 목록들을 가만히 보면 참 흥미롭습니다.
눈, 혀, 손, 마음, 발… 사람의 온몸이 등장합니다.
죄라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외적인 실수가 아닙니다.
우리의 눈이 머무는 곳, 우리 입술의 습관, 우리 마음의 동기,
우리 발걸음의 방향 전체가 하나님을 떠나 부패해 있다는 것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실 목사인 저도 이 말씀 앞에서 매번 무너집니다.
겉으로는 거룩한 척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은근히 남과 비교하며 우월감을 느끼고,
내 생각대로 상황을 이끌어가려고 말을 교묘하게 꾸며낼 때가 참 많습니다.
멈추고 싶은데 잘 되지 않는 것이 우리의 비참한 현실입니다.
하지만 오늘 이 말씀은 우리를 끝장내고 심판하기 위해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숨겨진 무서운 암세포를 정확하게 진단해 주셔서,
진짜 살길인 십자가 앞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아프지만 따뜻한 사랑의 손길입니다.
1. 시선의 범죄: 내 안의 기준을 높이는 “높아진 눈”
성경 본문, "곧 교만한 눈과..." (잠언 6장 17절 전반절)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첫 번째 죄는 바로 ‘교만한 눈’입니다.
히브리어 성경을 보면 이 단어는 ‘에나임 라무트’(עֵ이נַיִם רָמוֹת)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라무트’는 ‘높아진’, 혹은 ‘치켜든’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교만은 눈빛 자체가 위로 붕 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눈이 높이 가 있으니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어떻게 보일까요? 아주 작고 하찮게 보입니다.
[교만의 영적 구조] 나 자신 (기준을 극도로 높임) ──> 타인을 내려다봄 (무시와 판단)
고대 근동 사회에서 왕이나 권력자들은 늘 높은 보좌에 앉아 백성들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눈을 높인다는 것은 자기가 왕의 자리에 앉았다는 뜻입니다.
교만은 단순히 “나 좀 잘났다”고 자랑하는 수준이 아닙니다.
내 인생의 왕좌에서 하나님을 밀어내고 내가 그 자리에 앉아, 내 기준으로 세상을 판단하는 영적 반역입니다.
최근에 한 가정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남편이 직장에서 큰 성과를 거두고 연봉이 오르자,
자기도 모르게 집에 와서 아내를 무시하는 투로 말을 하기 시작했답니다.
"당신이 사회생활을 안 해봐서 세상을 몰라."
그 ‘높아진 눈’ 하나가 오랜 시간 쌓아온 부부의 신뢰를 한순간에 금 가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도 SNS를 보면서 끊임없이 이런 눈을 가집니다.
남들의 화려한 삶을 보며 시기하거나, 반대로 나보다 못해 보이는 사람들을 보며 은근히 안도감을 느낍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저 사람보다 기도를 많이 해", "나는 저 집사보다 봉사를 많이 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우리의 눈은 이미 ‘에나임 라무트’, 즉 높아진 눈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이 자기중심적인 시선을 인정해야 합니다.
저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끊임없이 남을 내 밑으로 두고 싶어 하는 지독한 교만 덩어리들입니다.
이것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것부터가 치유의 시작입니다.
오늘 하루, 내 눈의 위치를 점검해 보십시오.
나보다 약한 사람,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내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었다면 그 시선을 거두어야 합니다.
오늘 만나는 가족이나 교우 중 한 사람의 좋은 점을 내 눈으로 찾아내어 진심으로 인정해 주는 작은 실천을 시작해 보십시오.
비록 우리가 매번 눈을 치켜들고 교만한 자리에 앉으려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예수님은 온 우주의 왕이시지만,
그 높은 보좌의 눈을 낮추셔서 죄인인 우리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이 땅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셨습니다.
그 주님의 겸손이 오늘도 갈 길 잃은 우리를 조건 없이 품어주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높이고 타인을 낮춰보는 교만한 시선을 미워하시며,
오직 겸손히 눈을 낮추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2. 소통과 내면의 범죄: 진실을 왜곡하는 “거짓된 혀와 악한 마음”
성경 본문,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잠언 6장 17절 후반절 ~ 18절)
두 번째로 언급되는 죄들은 우리의 언어와 내면에 깊이 뿌리박힌 거짓과 악독입니다.
성경은 ‘거짓된 혀’를 말하는데, 여기서 ‘거짓’은 히브리어로 ‘쉐케르’(שֶׁקֶר)입니다.
이는 단순히 어쩌다 한 번 사실과 다른 말을 한 실수가 아닙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진실을 교묘하게 왜곡하고, 타인을 속이려는 의도적인 거짓말과 사기를 뜻합니다.
뒤이어 나오는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은 히브리어로 ‘하라쉬 마하쉐보트 아웬’(חֹרֵשׁ 마하쉐보트 אָוֶן)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하라쉬’는 농부가 밭을 갈거나 장인이 물건을 정밀하게 조각하듯,
머릿속으로 악한 계획을 아주 치밀하게 설계하고 짜내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Soul Deepfake (영적 딥페이크)
오늘날 인공지능 기술로 짜깁기한 가짜 영상처럼,
인간의 부패한 본성은 끊임없이 자신의 진짜 의도를 숨기고 거룩하고 정당한 것처럼 가짜 모습을 만들어냅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너무나 쉽게 이 ‘쉐케르’의 죄를 짓습니다.
내 잘못을 감추기 위해 상황을 슬쩍 과장하거나 유리하게 각색합니다.
대화할 때 은근히 다른 사람의 약점을 부풀려 전달하기도 합니다.
"이거 정말 비밀인데..." 하면서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메신저로 휙 보냅니다.
내 손으로 직접 칼을 들고 사람을 해치지는 않았지만,
내가 뱉은 날카로운 거짓말과 험담의 말들이 누군가의 인격과 영혼을 무참히 찔러 피를 흘리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죄는 우연히 터지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음속 지하 작업실에서 이기적인 욕심과 미움으로 치밀하게 설계된 결과물입니다.
이게 우리의 진짜 모습입니다.
우리는 다 깨끗한 척 품격 있는 척 앉아 있지만,
한 꺼풀만 벗겨내면 나를 보호하기 위해 무슨 말이든 지어낼 수 있는 부패한 존재들입니다.
이 사실을 주님 앞에 철저히 수용하고 엎드려야 합니다.
"주님, 내 입술과 마음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오늘 당장 거창한 삶의 변화는 못 하더라도,
오늘 하루 동안은 내 유익을 위해 말을 부풀리거나 과장하는 것을 딱 한 번만 멈추어 보십시오.
내뱉기 전에 "이 말이 사실인가? 이 말이 사람을 살리는가?"를 생각하며 입술을 제어하는 작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거짓되고 속은 시커먼 상태일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 놓지 않으십니다.
세상은 거짓이 들통나면 단칼에 저버리지만, 주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온갖 거짓 고소와 모함, 억울한 조롱을 십자가에서 온몸으로 다 받으셨습니다.
아무 죄도 없으신 그분이 거짓된 우리를 대신해 참혹하게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 온전한 사랑과 진리가 오늘 우리의 더러워진 입술과 일그러진 마음을 다시 깨끗하게 씻어주십니다.
하나님은 마음속으로 악을 꾸미고 입술로 진실을 왜곡하는 거짓을 미워하시며,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내면과 언어를 새롭게 하십니다.
3. 공동체의 범죄: 관계의 근간을 흔드는 “이간하는 자”
성경 본문,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니라" (잠언 6장 19절)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의 목록 중 가장 마지막, 즉 일곱 번째로 등장하는 대미의 죄는 바로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입니다.
이 말은 직역하면 ‘형제들 사이에 다툼의 씨앗을 흩뿌려 날려 보내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간질의 파괴적 속성] 건강한 공동체(하나됨) ──(의심과 험담의 씨앗 살포)──> 불신과 분열, 공동체 붕괴
마치 바람 부는 들판에 가시나무 씨앗을 마구 뿌리듯,
사람들 사이에 의심을 심고 편을 가르게 만들어 공동체의 하나 됨을 완전히 깨뜨리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이 죄를 목록의 가장 마지막에 두시며 가장 혐오스러운 죄의 최종 판판으로 선언하십니다.
왜냐하면 삼위일체 하나님 자체가 완벽한 관계와 사랑의 공동체이시며,
이 땅에 세우신 교회와 가정이 그 화목함을 닮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목조 건물에 사는 흰개미 이야기를 아실 것입니다.
흰개미는 밖에서 톱질을 하거나 망치질을 해서 집을 무너뜨리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기둥 밑바닥부터 아주 조용히, 야금야금 나무 속을 갉아먹습니다.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지만 손가락으로 툭 치면 기둥이 푹 주저앉아 버립니다.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이간질이 바로 이 영적인 흰개미와 같습니다.
대단한 핍박이 없어도 교회 안에서 "저 집사가 권사님 뒤에서 무슨 말 했는지 알아?"라는 한마디,
가정 안에서 부모와 자녀 사이를 떼어놓는 원망의 말 한마디가 스며들면,
그 단단하던 영적 공동체가 내부에서부터 완전히 바스러지게 됩니다.
사탄이 쓰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바로 이 ‘분열’입니다.
에덴동산에서부터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이간질했던 그 간교한 역사입니다.
우리는 분열의 도구가 되기 쉬운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슬쩍 다른 사람에게 가서 동조를 구하고 편을 만들고 싶어 하는 유혹에 늘 직면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오늘 이 시간, 내가 혹시 공동체의 평화를 깨는 말의 씨앗을 뿌리지 않았는지 돌아보며 회개해야 합니다.
오늘 누군가가 나에게 찾아와 다른 사람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나 험담을 시작하려 할 때, 동조하지 마십시오.
"그 이야기는 당사자가 없으니 그만하고,
차라리 그분을 위해 같이 기도해 줍시다" 하고 대화의 방향을 선한 곳으로 돌리는 화평의 전달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참 어렵고 외로운 싸움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바로 분열된 세상을 화해시키기 위해 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를 화목하게 하시려고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서 찢으셨습니다.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무셨습니다.
그 화평의 복음이 이미 우리 안에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사탄의 도구인 분열의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해 관계를 이어붙이고 살려내는 화목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동체의 화평을 깨뜨리는 분열과 이간질을 가장 미워하시며,
십자가로 막힌 담을 허무신 예수님을 따라 화해의 도구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결론: 십자가의 렌즈로 나를 보고, 사랑으로 걸어가십시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뼈사무치게 미워하시는 일곱 가지 죄의 실상을 마주했습니다.
교만한 눈, 거짓된 혀, 악독한 마음, 그리고 관계를 깨뜨리는 분열의 발걸음까지.
이 모든 목록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거울 속에 비친 바로 저와 여러분의 부패한 자화상입니다.
그러나 개혁주의 신앙의 본질은 우리의 이 비참한 죄악의 발견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오직 그리스도께로 우리를 이끌고 갑니다.
우리가 여전히 죄의 눈과 거짓의 혀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손에서 놓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미워하시는 죄의 대가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에게 전부 쏟아부으심으로 우리를 향한 사랑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정죄감에 빠져 고개 숙여 살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죄를 가볍게 여기며 방종해서도 안 됩니다.
날마다 십자가 앞으로 나아오십시오.
내 안의 교만과 거짓과 미움이 고개를 들 때마다,
나를 위해 손과 발이 못 박히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 넘치는 은혜를 힘입어, 오늘 내 삶의 아주 작은 자리에서부터 교만을 겸손으로,
거짓을 진실로, 분열을 화평으로 바꾸어 가십시오.
주님의 거룩한 성품을 닮아 세상 속에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영광을 드러내는 복된 통로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경고]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를 우리 삶에 방치하면,
그 죄가 자라나 결국 우리의 온 인격과 소중한 관계를 통째로 집어삼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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