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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근로정신대에 끌려갔다가 다리골절 피해를 입은 안양시 비산동 김모(85) 할머니가 그 당시 치료를 제때 하지못해 불편한 다리를 살펴보고 있다. /하태황기자 |
난방조차 부담스런 생활고...푼 기대감은 배신감으로
19일 오전 군포시의 한 작은 아파트. 한겨울이지만 김모(85) 할머니는 전기장판에 노구(老軀)를 녹인다. 방바닥이 얼음장같이 차가워 입김이 쉴 새 없이 나오지만 보일러를 켜는 것은 엄두도 못낸다.
지난해 겨울 보일러를 켰다가 기초생활수급비 45만원의 상당부분을 난방비로 부담했던 김 할머니에게는 보일러를 켠다는 생각조차 '사치'다. 위장이 좋지 않아 죽으로 연명해야 하지만 제대로 치료를 받을 형편도 못된다.
고된 일상에 희망이 됐던 것은 경기도가 조례를 제정해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에게 지원금을 준다는 소식이었다.
1945년 2월 일본 도야마 후지코시 공장에 끌려가 갖은 노역에 시달렸던 할머니가 받을 수 있는 금액은 한 달에 60만원. 국가지원금 6만7천원의 10배 규모였다.
유일한 피붙이인 손녀에게 소고기 한 점 먹이지 못한 게 가슴에 사무쳤다는 할머니는 지난 1월 시에 지원 여부를 물었지만 돌아온 답변은 '도에 예산이 없어 3월에야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3월에도, 5월에도 같은 일이 되풀이됐다.
결국 할머니는 지난 2일 직접 시에 지원금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보름이 지난 지금까지 어떠한 답도 듣지 못했다.
김 할머니처럼 이달 초 조례에 명시된 지원금을 신청한 근로정신대 할머니는 모두 4명. 사는 곳은 성남과 안양, 고양 등으로 모두 달랐지만 감감무소식인 도의 답변을 기다리는 마음은 같았다.
강제노역으로 몸과 마음이 멍들고, 고국에서도 '위안부'라고 손가락질을 당하며 모진 세월을 감내해온 자신들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그러나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관련 예산이 편성되지 않아 할머니들의 염원은 또다시 공허한 메아리가 될 처지다.
지난해 11월 공포된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여성근로자 지원 조례안'은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에게 매달 생활보조금 30만원·의료비 30만원과 장제비 100만원을 도비로 지급토록 했다. 내년도 예산안에서 반영이 무산된 근로정신대 할머니 지원비용은 5천만원이었다.
도 관계자는 "신청서를 받았지만 예산이 없어 지급이 사실상 불가능해 곧 이러한 내용을 담아 회신할 예정"이라며 "강제동원된 남성피해자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있고, 국가사무라는 게 도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1944년 일본 나고야 미쓰비시중공업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발목을 다친 안양의 김모(85) 할머니는 "함께 강제노역에 동원됐던 친구들은 지원조례가 실시중인 광주시에 살아 모두 지원을 받았는데, 차라리 조례를 만들지 말지 나만 왜 이런 아픔을 견뎌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울분을 토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이국언 사무국장은 "올해도 할머니 두 분이 운명을 달리했는데, 이분들에겐 시간이 없다"며 "국가에서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고통을 감내해온 할머니들에게 경기도는 '죽은 조례'로 또 한 번 상처를 줬다"고 비판했다.
/강기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