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호]
하우스
박사랑
오늘도 집에는 엄마가 없었다. 잠에서 깨어난 동생이 눈을 비비며 나왔다. 현관문을 닫으며 엄마는? 하고 물었다. 동생은 여전히 눈을 비비면서 고개를 저었다. 곧이어 누나, 배고파, 하고 말했다. 나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동생이 그 뒤를 졸졸 따라왔다. 냉장고를 열었지만 먹을 게 없었다. 개수대에는 그릇이 잔뜩 쌓여 있었다. 물에 담가놓지도 않은 그릇에는 음식찌꺼기가 뻑뻑하게 굳어져 있었다. 동생은 누나아, 하고 말끝을 늘이며 내 옷자락을 잡아 당겼다. 나는 잠시 그대로 서 있다가 동생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신발도 미처 신지 못한 동생을 끌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하우스를 향해 무작정 걸었다. 동생의 신발 끄는 소리가 거슬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얼마 못 가 동생의 신발이 벗겨졌다. 맨발인 동생은 저만치 떨어진 신발을 보며 훌쩍거렸다. 나는 신발을 가져와 동생에게 신겨주며 뚝! 하고 눈을 부릅떴다. 울음을 삼키는 동생이 안쓰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대로 주저앉아 울고 싶은 건 바로 나였다.
동생의 눈물을 대충 닦아준 뒤 다시 하우스를 향해 걸어갔다. ‘하우스’는 사설 도박장이었다. 열두 살, 내 또래 중에 하우스라는 말이 그런 뜻으로도 쓰이는 것을 아는 아이는 드물 것이다. 아무리 많아도 열 명은 넘지 않을 것이고, 설사 안다고 해도 정말 나처럼 하우스에 가본 아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하루에도 몇 번 씩 엄마를 찾기 위해 하우스를 드나들었다.
골목으로 들어서자 4,5층 정도의 낡은 빌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팔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정도의 간격으로 마주 보고 있는 창문이 여럿이었다. 어떤 창문에서는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고 또 어떤 창문에서는 먼지 털이가 불쑥불쑥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리고 세운빌라 103호의 열린 창문 틈새에서는 담배연기가 새어나왔다. 바로 엄마가 있는 하우스였다. 빌라 귀퉁이에 붙어 있는 ‘세’라는 글자에서 ‘ㅣ’는 떨어져 나간 지 오래였기에 동생은 그것을 서운빌라라고 읽었다.
나는 동생의 손을 고쳐 잡으며 곧장 세운 빌라로 갔다. 빌라 입구에 서서 동생에게 잠깐만 기다려, 하고 말했다. 동생은 불안한 눈치이긴 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가만히 있어야 돼, 하고 다시 한 번 동생에게 다짐했다. 그리고 계단을 내려가 103호 앞에 서서 심호흡을 했다. 말이 103호지, 반 지하라서 1층 같은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투박한 모양의 벨은 이미 고장난지 오래였다. 나는 주먹을 쥐고 철제문을 두드렸다. 세게 두드리지 않았는데도 쾅쾅 소리가 울렸다.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하우스 주인인 백씨 아줌마였다. 백씨 아줌마는 폭탄 맞은 것 같은 머리를 손으로 매만지며 나왔다. 들어오라는 듯 문을 열어주었지만 나는 그 자리에 박힌 듯이 서서 크게 팔을 휘두르며 화투장을 던지고 있는 엄마를 노려보았다.
엄마가 하우스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약 1년쯤 전이었다. 처음에 엄마는 옆집 아줌마가 자꾸 가자고 해서 한 번 따라가 본 것뿐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하우스를 ‘어른들의 놀이방’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늘 집에서 심심해하던 엄마가 재밌게 놀 곳을 찾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했었다. 하우스에 다녀온 엄마는 활기가 넘쳤다. 전에는 찾아볼 수 없던 모습이었다. 나는 그런 엄마가 좋았다. 엄마는 하우스에서 딴 돈으로 나에게 피아노를 사주기까지 했다. 하지만 엄마가 하우스를 좋아하면 할수록 집안은 엉망이 되었다. 이제,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집에서 나를 반겨주던 엄마는 없었다. 열 두 살짜리 딸과 여섯 살짜리 아들이 있는 집에 더 이상 엄마는 없었다.
하우스에는 엄마를 포함해 다섯 명의 사람이 있었다. 간간히 아저씨가 끼어 있기도 했는데 오늘은 모두 아줌마였다. 아줌마들은 군용 담요를 한 장씩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약속이나 한 듯 한결같이 무릎 한쪽을 세우고 그 위에 팔을 받치고 있는 모습들이었다. 그들이 모두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엄마! 하고 불렀다.
그때, 그 사이를 못 참고 내려온 동생이 하우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백씨 아줌마는 재현이 왔네, 하며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활짝 웃으며 빨대 꽂은 요구르트를 내주었다. 동생은 아무 거리낌 없이 요구르트를 받아먹었다. 백씨 아줌마는 나에게도 요구르트를 내밀었지만 나는 못 본 척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백씨 아줌마가 다시 한 번 요구르트를 내밀었다. 나는 손으로 그것을 탁! 쳤다. 백씨 아줌마는 픽, 웃으며 돌아섰다. 담배 연기가 자욱한 곳에서 동생은 기침 한번 하지 않고 엄마 곁에 앉아 있었다.
판에 끼지 않는 백씨 아줌마는 멀찍이 떨어져 텔레비전을 봤다. 별 재미도 없는 개그 프로그램을 보며 유난히 깔깔거렸다. 왼손 검지에 큰 금반지를 낀 한 아줌마는 판이 잘 풀리지 않는지 백씨 아줌마에게 텔레비전 좀 꺼! 하고 팩 소리를 질렀다. 백씨 아줌마는 눈을 흘기며 볼륨을 줄였고 금반지 아줌마는 패를 뒤집으며 앓는 소리를 냈다. 곧 판이 끝났고 담요 위로 순식간에 돈이 오갔다. 그 틈에 백씨 아줌마는 뚜껑을 연 박카스를 하나씩 돌렸다. 엄마는 재빠르게 박카스 한 병을 비우고 다시 패를 들었다.
잠시 현관에 버티고 서 있던 나는 밖으로 나왔다. 빌라 입구에 앉아 발로 땅을 툭툭 찼다. 그러면서 땅 바닥 이곳저곳을 살폈다. 역시 계단 구석에 아직 불씨가 살아 있는 담배꽁초가 있었다. 그것을 집어 필터 부분을 깨끗하게 닦았다. 붉은 립스틱 자국이 다 없어지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담배꽁초를 앞니로 문 채 힘껏 빨아들였다. 징, 하고 머리가 울렸다. 연기를 내뱉자 시야가 흐려졌다. 연기는 금세 사라졌다. 하지만 내 가슴 속은 더욱 답답했다. 연기가 실타래처럼 뭉쳐 가슴 속에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
해는 점점 기울어갔다. 곧 아빠가 올 시간이었다. 나는 하우스로 다시 들어가 엄마의 옷소매를 잡았다. 엄마는 귀찮다는 듯 내 손을 툭 쳐내고 화투 패만 쳐다봤다. 내가 보기엔 그저 비슷비슷하게 생긴 붉은 그림을 엄마는 무슨 대단한 명화라도 보는 것처럼 진지하게 봤다. 나는 다시 엄마의 옷소매를 끌어당겼다. 엄마는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잠깐만 기다려, 하면서 패를 뒤집었다. 찰싹, 소리가 나게 부딪힌 화투 두 장은 곧 엄마의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엄마 앞에 나란히 겹쳐놓은 화투장들은 현란하고도 촌스러웠다. 한자가 씌어진 화투장을 손가락으로 건드리자 엄마는 착, 소리가 나게 내 손등을 때렸다. 나는 손등을 문지르며 엄마가 고, 하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이번 판이 끝이라던 엄마는 패를 섞으며 한판만 더, 하고 바쁘게 손을 움직였다. 나는 화투판을 엎어버리고 싶었다. 손으로 담요 끝을 꼭 쥐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결국 옆에 있는 라이터 하나를 몰래 주머니에 챙겨 넣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동생이 얼른 내 뒤로 따라붙었다. 나는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얼굴로 계단을 올라오는 동생을 쳐다보았다. 동생은 왼쪽, 오른쪽의 신발을 바꿔 신고 나오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내 옷자락에 얼굴을 마구 문질렀다. 그 느낌이 부담스러워 당장 떼어놓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역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동생을 안고 계단에 앉아 엄마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날이 어둑해지자 동생은 내 품에서 잠이 들었다. 나는 속으로 저런 건 엄마도 아니야, 하고 수없이 욕을 해대며 입 안 가득 침을 모아 뱉었다.
엄마가 하우스에서 나왔을 때는 해가 완전히 진 뒤였다. 엄마는 잠든 동생을 업고 부지런히 걸어갔다. 내가 따라오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앞만 보고 걸었다. 이미 아빠가 집에 도착했을 시간이었다. 나도 엄마를 따라 부지런히 걸었다. 그러다 골목 입구에 있는 세탁소 입간판 앞에 우뚝 서 버렸다. 집에 가기 싫었다. 집에 들어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뻔했다.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뒤를 돌아보았다. 집 반대편의 골목은 고요했다. 그러나 그쪽으로 발을 내딛을 수 없었다. 동생이 문제였다.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동안 혼자서 공포에 떨고 있을 동생을 떠올리자 발걸음이 다시 집으로 향해졌다.
역시 집안으로 들어선 순간부터 아빠는 소리를 질러댔다. 뜻도 알 수 없는 욕을 내쳐하며 엄마를 윽박질렀다. 엄마는 고개도 들지 못하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어깨를 움츠리고 설거지를 하는 엄마를 향해 아빠는 계속 욕을 퍼부었다. 동생은 울었다. 아빠의 고함이 커질수록 동생의 울음도 커졌다. 나는 화살이 우리 쪽으로 돌려질까 두려워 동생의 입을 틀어막고는 방안으로 끌고 갔다. 문을 닫고도 계속되는 아빠의 고함이 듣기 싫어 귀를 막았다. 하지만 집안을 쩌렁쩌렁 울리는 아빠의 목소리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다행히 저녁 식사 시간은 조용했다. 네 식구가 식탁에 둘러앉았지만 어느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동생도 고개를 들지 않고 엄마가 얹어주는 반찬에 밥만 삼키고 있었다. 실수로 그릇에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만 나도 아빠는 눈을 치켜떴다. 나는 아빠의 밥그릇만 지켜봤다. 저 그릇이 비워져야 이 지옥 같은 식탁 앞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넘어가지 않는 밥을 억지로 삼키며 울음을 참았다. 울음을 참는 건 자주 해봐서 이제 나에게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어쩌면 나는 이미 우는 법을 잊어버렸는지도 몰랐다.
마침내 아빠의 밥그릇이 비워졌다. 아빠는 숟가락을 던지듯 내려놓고 일어났다. 엄마는 돌아선 아빠의 등을 향해 눈을 흘겼다. 동생은 고개를 들었다. 나는 숟가락 가득히 밥을 떠서 입안으로 밀어 넣으며 엄마를 노려보았다. 엄마가 하우스에서 조금만 일찍 일어났으면 될 일이었다. 그렇다고 이 모든 불화에 대해 엄마만 탓할 수는 없었다. 화가 났지만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 내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집을 나섰다. 제일 먼저 학교에 도착해서 빈 교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매일 아빠보다도 먼저 일어나 학교에 갔다. 오늘도 역시 교실은 비어 있었다. 나는 교실을 쭉 둘러본 뒤 내 자리에 앉았다. 가방과 사물함에 있는 교과서를 꺼내어 시간표 순서대로 정리해 서랍에 넣었다. 빈 가방을 책상 옆 고리에 걸어놓고는 책을 읽었다. 지난달에 독서왕 상품으로 받은 것이었다. 이미 두 번 읽었지만 새 책이 없었기에 또 읽는 수밖에 없었다. 책을 읽는 동안 반 아이들은 하나둘씩 교실로 들어왔고 어느새 교실은 시끌벅적했다. 나는 책을 덮어두고 친구들과 모여 어제 본 드라마 이야기를 했다. 물론 드라마를 보지는 못했지만 함께 이야기를 하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알고 있는 척 하는 건 나에게 익숙한 일이었다.
갑자기 교실 앞쪽이 유난히 소란스러웠다. 짓궂은 남자 아이들이 반장인 성훈이의 발을 밟으려고 난리였다. 나와 친구들은 하던 얘기를 멈추고 그쪽을 돌아봤다. 무리에서 힘겹게 빠져나온 성훈이가 우리 쪽으로 왔다. 그 뒤로 남자 아이들이 우르르 따라 붙었다. 성훈이는 싱글거리며 말했다.
“오늘 내 생일파티 하니까 너희도 다 와.”
파티 장소는 패밀리 레스토랑이었다. 모여 있던 아이들은 모두 탄성을 질렀다. 나만 빼고 모두 기뻐하는 얼굴이었다. 나는 최대한 어른스럽게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다. 성훈이는 웃으며 너도 파티에 꼭 오라고 대답했다. 아이들은 그 레스토랑에서 파는 음식이 맛있다는 얘기를 해댔지만 나는 그런 건 상관없었다. 그저 파티에 가고 싶을 뿐이었다. 친구들은 성훈이 선물 뭐 살까, 하며 즐거워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즐거운 척 했다.
하루 종일 파티 생각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가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았다. 집에는 동생이 혼자 있을 것이었다. 엄마는 동생을 재워 놓고 또다시 하우스에 가 있을 게 분명했다. 나마저 없으면 동생은 정말 혼자였다. 그래도 한번쯤 눈을 꾹 감고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금방 그럼 동생은 어떡해? 하는 마음이 앞섰다. 수업시간에도 좀처럼 집중을 하지 못하고 같은 생각만을 계속 반복했다.
마침내 하교 시간이 다가왔다. 파티는 다섯 시라 시간이 조금 남아 있었다. 나는 동생을 엄마에게 맡기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하우스에서도 잘 자고 잘 먹는 동생이니 상관없을 것 같았다. 친구들과 한 시간 뒤에 만날 약속을 하고 서둘러 집으로 뛰어갔다. 예상대로 엄마는 집에 없었다. 동생은 깬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며 내 품에 안겨왔다. 나는 습관적으로 팔을 뻗어 동생의 등의 토닥였다. 동생이 다시 잠들 것처럼 눈을 감으며 입을 오물거렸다. 이대로 동생을 재워두고 나가는 게 나을까,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깨어났을 때 내가 없으면 동생은 온 집안을 휘저으며 울 것이 뻔했다. 그러다 혹시 아빠가 오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동생은 잠결에 자꾸 내 가슴으로 얼굴을 묻었다. 몽우리가 맺힌 내 가슴은 동생이 누를 때마다 아팠다.
어느새 시간은 네 시에 가까워져 있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동생을 깨웠다. 동생은 잠투정도 하지 않고 고분고분 일어났다. 동생을 데리고 하우스로 걸어가면서도 갈등은 심했다. 하지만 파티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런데 골목 입구에 다다르자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주위가 소란스러웠다. 몇몇 사람이 한 곳을 기웃거리며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동생의 손을 꼭 잡고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하우스 앞에 경찰차가 있었다. 사이렌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차 위에 달린 붉은 등이 정신없이 번쩍거리고 있었다. 나는 침을 삼키며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동생은 내 다리에 몸을 찰싹 붙인 채 나를 따라왔다.
빌라 안쪽으로 수많은 사람이 오르락내리락 거렸다. 103호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경찰이 내 앞을 막아섰다. 얘들아, 여기 들어오면 안 돼. 별 거 아닌 말인데 나도 모르게 움찔하고 멈춰 섰다. 돌아서며 승합차 쪽을 쳐다봤다. 차창에 백씨 아줌마가 어른거렸다. 놀라서 동생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 동생이 아프다며 손을 비틀어 빼려고 했다. 나는 동생의 손을 더욱 끌어당기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금 뒤 경찰이 문을 활짝 열고 승합차에 올라탔다. 나는 숨까지 참으며 그 안을 빠르게 살폈다. 엄마는 없었다. 불안한 눈길로 하우스를 다시 들여다봤다. 거기에도 엄마는 없었다. 일단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러나 불안함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나는 골목 밖으로 나왔다. 큰 길의 공중전화 박스로 들어가 생일 파티에 같이 가기로 한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오늘 피아노 학원 때문에 아무래도 못 갈 거 같아, 미안해. 친구는 그래도, 하며 말을 이으려했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목구멍에서 울음이 밀려나왔지만 삼켜냈다. 집에도 전화를 걸어보고 싶었지만 왠지 두려웠다. 집에 엄마가 없으면 어쩌지? 두려움을 가라앉힐 시간이 필요했다. 동생을 데리고 PC방으로 들어갔다. 동생은 눈을 반짝이며 컴퓨터 게임에 집중했다. 나는 한 사람이 앉을 자리에 동생과 끼어 앉아 동생이 하는 게임을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엄마에 대한 걱정과 지금쯤 시작되었을 생일 파티가 번갈아가며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별 수 없이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향했다. 나는 집 앞에서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현관문 손잡이를 돌리지 못하고 안에서 나는 소리에만 집중했다. 무슨 소리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동생이 답답했는지 내 손을 치우고 손잡이를 돌렸다. 문은 너무도 쉽게 열렸다. 그리고 엄마는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집에 있었다. 동생은 엄마에게 달려갔지만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하고 묻는 엄마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안심이 되기는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엄마와 동생을 외면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잠그고 주저앉았다.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그렇게 앉아 있었다. 문밖에서 나를 부르는 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대꾸하지 않았다.
잠시 뒤, 나는 피아노 앞에 앉았다. 흰 건반 위에 두 손을 나란히 올려놓았다. 처음 피아노를 쳐보는 사람처럼 도와 레를 힘 있게 눌렀다. 무언가 치고 싶었지만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심지어 ‘학교종’ 같이 쉬운 곡의 음계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결국 일어나 의자 밑에서 피아노 소곡집을 꺼냈다. 내가 가진 유일한 피아노 책이었다. 몇 달 전 화가 난 아빠가 피아노책을 모두 찢어버렸다. 다행히 소곡집 하나가 피아노 의자 속에 남아 있었다. 소곡집을 펼치며 나는 문득 그때 아빠가 왜 화를 냈는지, 왜 하필이면 내 피아노 책들을 찢어 버렸는지 생각해 보았다. 기억은 가물거리기만 했다. 사실 그런 건 애써 기억할 필요도 없었다. 아빠는 무조건 화를 내는 사람이니까.
소곡집을 넘겨보다가 첫 장을 폈다. 책에는 40곡의 악보가 들어 있었지만 내가 칠 수 있는 건 1번곡 밖에 없었다. 아빠가 준 피아노 학원비까지 엄마가 하우스로 가지고 가서 나는 학원을 그만둬야 했다. 아빠에게는 한동안 피아노학원을 다니는 척 해야 했지만. 어쨌든 그때가 새로 산 소곡집의 1번을 겨우 뗐을 무렵이었다. 혼자서라도 다른 곡을 쳐보고 싶었지만 연습할 시간이 없었다. 내가 피아노 앞에만 앉으면 동생은 보챘고, 아빠는 엄마가 학원비를 하우스에 가지고 간 사실을 다시 들먹이며 화를 냈다.
소곡집의 1번곡은 ‘즐거운 나의 집’ 이었다. 처음 그 곡을 배울 때 선생님은 내게 말했다. 더 경쾌하게 쳐야지, 즐거운 나의 집 느낌이 나도록. 나는 선생님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선생님이 시범으로 보여준 연주는 정말 경쾌했다. 연주는 손으로 하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거라던 선생님의 말이 맞는 모양이었다. 그 때문에 나는 경쾌하지 못한 즐거운 나의 집을 쳤고 그마저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학원을 그만뒀다.
다음 날 교실 안은 성훈이의 생일 파티 얘기로 북적였다. 나온 음식 중 제일 맛있는 것은 퀘사딜라였고, 성훈이의 엄마는 여배우처럼 예뻤고, 성훈이가 선물로 받은 것은 삼십만 원짜리 무선 조정 헬리콥터였다는 이야기가 정신없이 이어졌다. 친구들은 나를 보며 아쉬운 눈빛을 했다. 너도 왔으면 좋았을 텐데. 친구의 말에 나는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했다. 아니야, 나는 피아노 콩쿠르 준비하느라 바빴어. 맞다, 콩쿠르하면 꼭 보러 갈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꼭 오라는 말을 덧붙였다. 거짓말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아이들은 이런 이야기를 금방 잊어버렸다. 만약 잊지 않는다 하더라도 취소 됐다는 식으로 대충 얼버무리면 그만이었다. 나에게 있어 중요한 건 사실여부가 아니었다.
학교에서 나는 공부도 잘하고 피아노도 잘 치는 모범생으로 통했다. 친구들과 잘 지내고 선생님에게서 예쁨을 받았다. 학급 임원으로 뽑히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굳이 나서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내가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거면 됐다. 우리 집의 그늘은 학교까지 와서 나를 괴롭히지는 않았다. 집만 없으면 나는 완벽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학교에서는 ‘즐거운 나의 집’을 경쾌하게 연주하는 척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은 짧기만 했다. 오늘도 마지막 종소리가 울리자 아이들은 환호를 했지만 나는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래도 서둘러 집으로 달려갔다. 우려한 대로 동생은 깨어 있었다. 이미 한바탕 울었는지 눈가가 빨갛게 부은 채 나에게 안겨왔다. 나는 당연한 것처럼 동생을 안아주었다. 그리고 또다시 동생의 손을 잡고 엄마를 찾아 나섰다.
새 하우스를 찾는 건 쉬웠다. 내내 엄마를 찾아다녔더니 이제 대충만 봐도 골라낼 정도였다. 세운빌라는 어제 걸렸으니 한동안은 쓰지 않을 것이었다. 나는 세운빌라가 있는 골목을 잠시 기웃거리다가 그 옆 골목으로 들어갔다. 이곳에 사는 사람이 아니면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골목들은 비슷비슷했다. 나는 다닥다닥 붙어 있는 창문들을 기계적으로 확인하며 걸었다. 그렇게 골목을 두어 개쯤 지나쳐 한 빌라 앞에 멈춰 섰다. 반지하방의 활짝 열린 창문 근처에 담배냄새가 심하게 퍼져 있었다. 빌라 현관에는 고딕체로 ‘그린아트빌라’라고 적혀 있었다.
계단 밑을 쳐다봤다. 역시 반지하방의 문은 열려 있었지만 아이보리색의 발이 쳐져 있어 안이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동생을 세워두고 계단 밑으로 내려갔다. 숨을 죽이고 내려갔지만 기웃거릴 필요도 없었다. 너무도 익숙한 엄마의 갈색 슬리퍼 한 짝이 문 밖으로 나와 있었다. 발을 들추자 엄마가 보였다. 지난번에 봤던 금반지 아줌마도 옆에 있었다. 엄마는 내가 온 것을 힐끔 확인하고 다시 판에 열중했다. 옆방에서 자다 나온 듯한 아저씨가 벌겋게 핏발 선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징그러웠다. 나는 그대로 돌아섰다.
빌라 현관으로 올라서자 동생이 저만치서 놀고 있는 게 보였다. 또래 아이들과 흙장난을 하고 있었다. 나는 계속 놀라고 동생에게 손짓을 했다. 동생은 가끔씩 돌아보며 내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반갑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동생은 안심이 되었는지 어느 순간부터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한 번 더 엄마에게 내려가 볼까 하다가 징그러운 아저씨를 떠올리며 그만두었다.
대신 땅바닥에 담배꽁초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두개가 눈에 띄었다. 그 중 긴 것을 집어 들고 현관 계단에 앉았다.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낸 뒤 필터를 대충 손으로 문지르고는 불을 붙였다. 그러고 나서 힘껏 빨았다가 연기를 내뱉었다. 하지만 항상 그랬듯 가슴 속에 연기가 남아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담배꽁초를 집어던지고 손바닥으로 가슴을 문질렀다. 몽우리가 유난히 아팠다. 내 가슴 속 몽우리는 어쩌면 담배연기가 뭉쳐진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왠지 오늘은 엄마를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나는 흙 묻은 동생의 손을 턴 뒤, 꼭 잡고 집으로 향했다. 동생은 흙장난을 더 하고 싶었는지 유난히 보챘다. 다리가 아프다고 우는 소리를 하는 동생을 업었다. 여섯 살치고는 작고 마른 편이이었지만 그래도 무게가 상당했다. 그 무게감은 동생이 더 이상 아기가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내게는 아직도 아기 같기만 했다. 사실 왜 이렇게 내가 동생을 챙기는지 나로서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동생을 통해 대리 만족을 느끼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동생을 봐주지 않으면 엄마가 하우스에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칭얼거리는 동생을 달래기 위해 퍼즐 맞추기 놀이를 했다. 나는 동생이 퍼즐을 맞춰 나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로봇의 다리와 팔이 서서히 맞춰질 때쯤 휑한 집을 돌아봤다. 분명 다 제 자리에 있는데도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았다. 퍼즐 조각이 얼마 남지 않자 동생은 그제야 환한 표정으로 나를 봤다. 나는 습관적으로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했다, 잘했어. 그때 밖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가 난 뒤 곧이어 아빠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짧지만 확실히 아빠의 소리였다. 나는 재빨리 퍼즐을 부숴 상자 속에 몰아넣고 동생의 손을 잡았다. 아빠의 고함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빠는 엄마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집에 들어왔다. 엄마는 억눌린 신음을 냈고 아빠는 욕을 퍼부었다. 내가 너 하우스에 한 번만 더 가면 죽여 버린다고 했지! 집이 무너질 것만 같은 큰 소리였다. 엄마는 머리채를 잡힌 채 이리저리 휘둘려졌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눈을 감지는 않았다. 대신 동생의 얼굴을 내 가슴 쪽으로 돌려 끌어안으며 두 손으로 귀를 막아 주었다. 그러다 아빠의 시선이 멀어진 사이 방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아빠의 욕설과 엄마의 울음, 그리고 물건들이 부딪치고 깨지는 소리가 또 다시 집안을 울렸다. 동생이 내 가슴으로 더욱 파고들어 몽우리가 아팠지만 나는 한동안 꼼짝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집 안은 전쟁터였다. 아빠의 고함은 총소리 같았다. 고함은 날카롭게 집안 곳곳을 울렸다. 가끔 폭탄이 터지는 것처럼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유리가 깨지고 선반이 무너지는 소리. 그 가운데서 엄마는 도망 다녔다. 엄마의 정신없는 발걸음 소리에 내 심장도 정신없이 뛰었다. 발걸음 소리가 점점 내 방으로 다가왔다. 나는 동생을 끌어안고는 그대로 주저앉아 고개를 파묻었다. 계속해서 가까워지던 그 소리는 어느 순간 뚝, 멈췄다.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그때 바로 문 앞에서 엄마의 비명이 들려왔다. 문에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쿵쿵 들려왔다. 닫혀 있는 문이 크게 들썩였다. 그러나 나는 문을 열고 나가서 말리지 않았다.
오늘 따라 싸움이 길었다. 나는 바들바들 떨고 있는 동생에게 이불을 덮어주며 생각했다. 엄마의 도박이 아빠의 폭력을 부른 것일까. 아니면 아빠의 폭력이 엄마의 도박을 부른 것일까. 사실 무엇이 먼저인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엄마의 도박과 아빠의 폭력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으며 우리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나는 막연히 엄마와 아빠의 이혼을 떠올렸다. 둘 중 누구와 살 거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지. 솔직히 말하면 아무와도 함께 살고 싶지 않았다. 동생과는 함께 살고 싶은지 내 자신에게 되물었지만 그것도 망설여졌다.
그난리 속에서 나는 동생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몸을 바들바들 떨던 동생을 내 무릎 위에 앉혔다. 동생은 내 말에 귀를 기울이며 안정을 되찾았다. 완전히 책에 몰입해 웃기까지 했다. 두껍지 않은 그림책 한 권을 다 읽었을 때, 나는 바깥이 조용해진 것을 느꼈다. 이제 문을 열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아빠가 나가버린 것 같기도 했지만 아닐 수도 있었다. 나는 책을 덮고 방밖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지 집중했다. 동생도 덩달아 가만히 있었다.
그때 벌컥 문이 열렸다. 문 앞에는 엄마가 서 있었다. 엄마는 마구 헝클어진 머리에 붉게 부어터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유리조각을 밟았는지 발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옷의 단추는 거의 다 뜯겨 나갔고 왼쪽 팔소매도 반쯤 찢겨 있었다. 동생은 엄마에게 안기려다 멈칫했다. 엄마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쏘아봤다. 그 눈빛이 매서웠다. 나는 엄마가 왜 그런 눈으로 나를 보는지 알 수 없었다. 엄마는 다짜고짜 나에게 욕을 퍼부었다. 야, 이 년아! 너는 엄마가 죽어도 이렇게 방안에만 처박혀 있을 거지? 내가 죽어도 끝까지 모른 척 할 거지? 그렇게 나를 한동안 몰아세운 엄마는 울음을 터뜨렸다. 한번 터진 울음은 멈추지 않고 통곡으로 이어졌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엄마의 통곡을 들었다. 그리고 한참 뒤 엄마가 주춤하는 사이 동생을 방 밖으로 밀어내고 문을 잠갔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피아노 앞에 앉았다. 악보를 펴서 즐거운 나의 집을 치기 시작했다. 건반 하나하나를 온 힘을 다해 눌렀다. 그것은 더 이상 ‘즐거운 나의 집’이 아니었다. 분노에 가까운 연주였다. 피아노 선생님은 이 곡을 경쾌하게 치라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멋대로 속도를 빨리하고 악센트를 넣었다. 페달을 아무 곳에서나 밟으며 무작정 손을 놀렸다. 나는 ‘즐거운 나의 집’이 싫었다. 아니 싫다기보다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쉴 곳은 절대 집이 아니었다.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동생에게도 집은 쉴 곳이 되지 못했다. 즐거운 나의 집은 어디에도 없었다.
엄마가 방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나는 피아노를 멈추지 않았다. 엄마가 문을 부술 것만 같은 기세였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계속 피아노만 쳤다. 마구 돌려지는 문고리의 철컥거리는 소리가 위협적으로 느껴진 뒤, 마침내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문고리를 부순 건지 손잡이가 달랑거렸다. 엄마는 나를 거칠게 밀어내고 피아노 덮개를 닫았다. 쿵, 하고 닫히는 피아노를 보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런 내 모습에 엄마가 이년이, 하며 흥분하여 날뛰었다. 나는 보란 듯이 계속해서 조소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엄마가 내 머리를 마구잡이로 때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 그대로 서서 엄마의 손찌검을 받아냈다.
집에서 나와 한참을 걸었다. 날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책가방은 무거웠고 목이 말랐다. 나는 두리번대다가 근처의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생수를 사 그 자리에서 마셨다. 터진 입술이 쓰렸다. 그래도 물을 마시자 멍했던 정신이 차츰 되돌아오는 기분이었다. 편의점을 나와 주위를 둘러봤다. 집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이었다. 언제 여기까지 걸어온 건지 알 수 없었다. 가로수 옆에 주저앉았다. 이제부터 뭘 해야 하나. 집에는 죽어도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오늘 밤만은 집에 들어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달리 갈 곳도 없었고 가고 싶은 곳도 없었다. 눈물이 나왔다. 사람들의 흘긋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서둘러 일어났다. 이렇게 있다가는 누군가 나를 미아라고 신고할 것 같았다.
인적이 드문 곳으로 걷다보니 공원이 보였다. 나는 벤치에 앉아 가방을 열었다. 별 생각 없이 가져온 가
방에는 내일 수업할 교과서와 「갈매기의 꿈」이 들어 있었다. 갈매기의 꿈을 펼쳤다. 조나단이 처음으로 나는 연습을 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한 장도 읽지 못하고 책을 덮어야만 했다. 가로등의 불빛은 너무 어둑했고, 책 위로 나무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책을 다시 가방에 넣고 또다시 멍하게 앉아 있었다. 집을 뛰쳐나올 때, 나를 부르던 동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시 일어나 걸었다. 걷고 있으면 그나마 추위가 좀 덜했다.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앉기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자정에 가까워져 있었다. 어딘가 들어가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럴만한 곳이 없었다. 밤을 어떻게 지새울지 막막했다. 나는 물을 샀던 편의점으로 돌아갔다. 여러 번 가면 의심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종업원은 바뀌어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나란히 진열된 컵라면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제일 앞에 있는 컵라면을 꺼내 계산했다. 뜨거운 물을 받아 편의점 한쪽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라면이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솔솔 풍겨오는 냄새가 모든 것을 잊게 했다. 삼분이 지나고 라면 한 젓가락을 입에 넣었을 때 온 몸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배가 부르자 밤을 새는 게 별 거 아닌 일처럼 느껴졌다. 나는 또 길을 걸었다. 집이나 학교에서 너무 멀어지면 안 되니까 아까와는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제 가게들은 거의 다 문이 닫혀 있었다. 간간히 술집이나 편의점만이 간판 불을 밝히고 있었다. 얼마쯤 걷다가 또다시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아직 돈은 남아 있었지만 뭘 사야할지 고민이었다. 나는 편의점 안을 천천히 돌았다. 과자를 살까, 하다가 고개를 젓고 머리끈을 살까, 하다가도 고개를 저었다. 그때 손톱깎이가 눈에 들어왔다. 내 새끼손가락 크기의 작고 귀여운 손톱깎이였다. 나는 손톱깎이를 집어 들었다.
버스 승차장의 벤치에 앉아 손톱을 깎았다. 튐 방지 케이스가 씌워져 있는데도 손톱은 이리저리 튀었다. 내 손으로 손톱을 깎을 때면 늘 삐뚤빼뚤하기 일쑤였는데 오늘은 꽤 잘 깎이는 편이었다. 말끔한 손톱은 내가 봐도 만족스러웠다. 나는 잘린 손톱을 벤치 구석에 모아 손바닥 위로 올렸다. 문득 예전에 봤던 전래동화가 떠올랐다. 쥐가 사람의 손톱을 먹고 사람이 되어 양반집의 아들 행세를 하는 내용이었다. 그 동화를 읽은 뒤부터 나는 꼬박꼬박 잘린 손톱을 남김없이 모아 쓰레기통에 버리곤 했다. 동생에게 그 이야기로 겁을 준적도 있었다. 나는 손바닥에 모은 손톱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러다 다시 벤치 위에 내려놓았다. 오늘만은 나대신 내 손톱을 먹은 쥐가 집에 들어가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걷다가 졸다가 하는 동안 어느새 아침이 되었다. 나는 아무도 없는 학교에 제일 먼저 들어갔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빈 교실에서 책을 읽었다. 아이들이 하나둘씩 교실로 들어왔다. 아무렇지 않게 친구들과 모여 얘기를 하나가도 나는 가끔씩 문을 쳐다봤다. 혹시 엄마나 아빠가 찾아올 지도 몰랐다. 하지만 수업 시간이 될 때까지 아무도 오지 않았다. 수업을 하러 온 담임선생님은 나와 눈을 마주치고도 별다른 말이 없었다. 왜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지. 동생이라도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때때로 고개를 돌려 운동장 쪽을 확인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결국 학교가 끝날 때까지 나를 찾아온 사람은 없었다. 선생님 또한 아무 말이 없었다. 종례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아찔했다. 이제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늦게까지 혼자 빈 교실에 남아 있었다. 지금쯤 엄마는 어디에 있는지, 혹시 또 하우스에 있는 건 아닌지. 아빠는 무얼 하고 있는지, 일이 빨리 끝나 벌써 집에 와 있는 건 아닌지. 그리고 동생은 잘 있는지, 나 없다고 어디서 울고 있는 건 아닌지. 거기까지 생각하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는 별 수 없이 학교를 나섰다.
구부정한 골목길을 걸으며 습관적으로 빌라 창문들을 훑어보았다. 세운빌라 103호는 비어 있었다. 그곳을 지나쳐 그린아트빌라로 갔다. 빌라 입구에는 교복을 입은 중학생 언니가 서 있었다. 언니는 운동화를 구겨 신은 채 빌라 출입문을 계속해서 툭툭 찼다. 허벅지가 드러날 정도로 짧은 치마를 입은 언니의 무릎이 멍들어 있었다. 나는 그 언니와 부딪히지 않으려 어깨를 좁히고 지나갔다. 그때, 금반지 아줌마가 현관에 쳐진 발을 들추고 고개를 내밀었다. 몇 계단을 내려서던 나는 주춤했다. 금반지 아줌마는 나를 보고는 묻지도 않았는데 엄마 없어, 하고 말했다. 그러더니 고개를 들어 언니를 향해 소리쳤다.
“엄마도 금방 간다니까, 얼른 너 먼저 집에 가!”
나는 가방 끈을 세게 그러쥐고 돌아섰다. 동시에 금반지 아줌마도 안으로 들어갔다. 언니는 여전히 현관문을 차고 있었다. 금반지 아줌마의 외침에 시발, 하고 중얼거렸다. 그리곤 담배 한 대를 꺼내어 물고 주머니를 뒤졌다. 그러다가 라이터가 없는지 다시 시발, 하고 침을 뱉었다. 나는 주머니에 있는 라이터를 만지작거렸다. 언니는 아까보다 더 세게 계단을 차며 나를 흘깃 쳐다보았다. 내가 시선을 피하자 계단을 차던 발을 멈추고는 하우스 쪽을 향해 소리쳤다.
“엄마, 지금 안 나오면 다시는 나 못 볼 줄 알아! 나 오늘 집 나갈 거라고.”
하우스 안에서는 금반지 아줌마의 대답대신 고! 하는 누군가의 외침만 흘러나왔다.
언니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본 나는 얼른 라이터를 내밀었다. 언니는 흘깃 나를 쳐다보고는 라이터를 받았다. 그러고 나서 담배 두개에 불을 붙인 뒤 하나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우리는 서로 반대편의 벽을 보며 담배를 피웠다. 나는 담배 하나를 온전하게 피워보는 것이 처음이었다. 몇 모금 빨다가 집어던졌다. 언니는 한 곳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천천히 담배를 피운 뒤 그 꽁초를 계단 아래 하우스 쪽으로 던져버렸다. 그리곤 미련 없이 골목을 빠져나가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기대를 했었는데, 이제 다 끝이야.”
나는 엄마가 한 번이라도 갔던 하우스를 찾아 다시 걸음을 옮겼다. 걸으면서 생각했다. 나도 저 언니처럼 미련 없이 가족을 떠나야하는 건 아닌지? 사실, 어제 그 난리를 쳤으니 오늘은 엄마가 집에 있을 지도 몰랐다. 그런데도 내가 엄마를 찾아다니는 이유를 곰곰이 따져보았다. 금반지 아줌마네 언니처럼 나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엄마에게 기대를 해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나는 내가 알고 있는 하우스를 차례차례 다 돌았다. 엄마는 없었다. 다행이었다.
해가 기울고 있었다. 다리가 아프고 목도 말랐다. 더 이상 찾아갈 하우스는 없었다. 갑자기 갈 길을 잃은 것 같아 초조했다. 그런데 깊이 한숨을 쉬고 나자 이상하게도 조금 기운이 났다. 발걸음이 절로 집으로 향해졌다. 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세탁소 입간판 앞에 이르자 나는 다리가 아픈 것도 잊고 뛰기 시작했다. 숨을 헐떡거리며 집 앞에 도착했다. 집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안도의 느낌, 뜨거운 기운이 울컥 넘어왔다.
그러나 현관 문 앞에서 발이 멈춰졌다. 집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금반지 아줌마네 언니가 골목을 나가며 마지막으로 중얼거린 말이 떠올랐다, 이제 다 끝이야. 그러자 엄마가 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나는 문에 귀를 대고 숨을 죽였다. 아빠의 고함도 엄마의 비명도 동생의 울음도 없었다. 텔레비전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몇 번의 망설임 끝에 조심스럽게 현관문 손잡이를 잡았다. 그러자 갑자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는 가까스로 눈물을 삼키며 스스로를 달랬다.
오늘은 엄마가 집에 있을 거야.
박사랑/ 2012년 《문예중앙》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