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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능력-구원에 이르는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 말을 배웁니다. 특별한 경우를 빼고
아니, 사실은 엄마의 태중에서부터 말을 배웁니다. 그리고 태어나서 1년안에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소소한 의사표현부터 먼저 하지요.
자기의 원함에 대한 배고프면 앙~, 기저귀가 차가워서 새것을 갈고 싶어도 앙~, 칭얼칭얼, 잠 투정에~, 그동안 들었던 데이터들에 대한 언어의 자판을 스스로 자기만의 자판으로 셋팅(setting)합니다. 그리고 2~3년 안에 대부부의 아이들은 그 동안 부모들이 하던 말을 들었던 것을 정립하여 자기만의 언어로 소통하기 시작합니다. 모방언어의 단계를 넘어서 세 살쯤 되면 벌써 달변가가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모국어(Motor Language)라고 합니다.
그리고 일생을 이 언어에 의해 지배를 받으면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점점 자라면서 문자를 터득합니다. 읽고 쓰고 그리고 이해합니다. 글을 몰라도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압니다.
아이들이 저만치 부모와 떨어져 지들끼리 놀고 있는 것 같아도 사실은 전부 다 듣고 있습니다.
부모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소리의 파동으로 알아차리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것이 참으로 놀라운 현상입니다.
AI로봇이 주어진 정보, 주입된 정보의 언어를 가지고 연산 작용하는 것과 똑 같은 작업을 합니다.
사실은 학자들이 AI를 만들 때 우리의 이 뇌 작용을 그대로 기계에 적용한 것입니다.
아이들이 어떻게 말을 배우며 그것을 적용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렇게 깨우친 말과 글로 세상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상호관계를 확장해 나갑니다.
아이들의 뇌는 놀라울 정도로 흡수력이 높습니다.
실제로 미취학 아이들이 서로 다른 언어계통의 또래들과 함께 노는 것을 보면 깜짝 놀라게 됩니다.
4~5명의 또래 아이들, 서로 모국어가 다르며, 각자 다른 언어를 할 줄 모르는 이 아이들을 함께 어울려 놀게 하면 순식간에 각자의 모국어로 말하는데도 어떤 게임이나 놀이를 함께 하면서 깔깔거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각자 자기의 모국어만 이야기합니다. 그런데도 서로서로 알아차립니다. 그리고는 아주 쉽게 그 각각의 다른 언어를 흡수하여 상호 학습합니다. 그것도 아주 짧은 시간에, 그리고 이 언어들로 관계를 맺고 세상과 소통합니다. 이렇게 친구가, 그리고 나중에 친척이 됩니다. 태어난 곳은 다르지만, 사용하는 언어도 전혀 다르지만 소통은 순식간에 일어납니다.
성경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책의 제목이 ‘창세기’ 입니다.
영어로는 제네시스(Genesis)라고 명명 하였지요. 기원, 발생, 이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유는 이 책 창세기의 첫 구절 단어가 ‘In the Beginning’으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영어로 쓰여진 책이 아니라, 히브리어라는 언어로 쓰여진 것을 각국의 언어로 번역하여 전 세계인들이 각자의 모국어로 읽고 있는 것입니다.
이 창세기의 히브리어 제목이 바로 베레쉬트 בְּרֵאשִׁ֖ית 입니다.
책의 첫 구절 단어가 바로 책의 제목입니다. 원어 성경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베레쉬트 바라 엘로힘 엩 핫샤마임 베엩 하아레츠:
בְּרֵאשִׁ֖ית בָּרָ֣א אֱלֹהִ֑ים אֵ֥ת הַשָּׁמַ֖יִם וְאֵ֥ת הָאָֽרֶץ׃
이 베레쉬트 가 영어로 In the Beginning 에 해당합니다.
기원이라는 뜻은 어떤 것의 처음 원인을 말합니다.
이 구절의 한 줄로 세상, 아니 온 우주의 기원을 설명한다고 합니다.
하늘과 땅에 대한.
그도 그럴 것이 “하-샤마임” 과 “하-아레츠” 라는 단어가 하늘과 땅 이라고 번역하니 그럴 수 밖에요. 그리고 이런 저런 에피소드가 창세기 전반부에 펼쳐집니다.
다섯째 날의 땅과 물에서 나온 물고기와, 하늘을 나는 새들과, 여섯째 날에 땅이 낸 짐승과 동물들, 그리고 아담이라는 사람의 지어짐과, 그 이후 그들의 불순종이라는 죄로 에덴을 쫓겨나기까지의 이야기.
그리고 6장부터 홍수이야기가 나오고 노아라는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으로 방주라는 배를 짓고 150일간의 홍수에서 살아남과 그의 아내와 세 아들들과 며느리들과 온갖 짐승들과 배에 들어가서 홍수를 피했다가 후에 홍수가 그친 후 모두 함께 다시 땅에 발을 딛고 농사짓는 이야기, 그리고 그들이 시날 이라는 평지로 내려가가서 거기서 높은 탑과 도시를 쌓은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그들의 언어를 흩어 버리십니다.
바벨이라는 이 탑의 뜻이 말을 섞어버리다 는 뜻 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후손들의 족보를 기록합니다.
여기까지가 창세기의 전반부 개략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12장에 와서 아브람 이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물론 그의 등장은 그전에 그의 아버지 테라와 함께 하였지요. 10장~11장에 이르기까지.
그러다가 아브람의 아버지 테라가 하란 땅에서 죽자 드디어 아브람이 12장에서부터 전면에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름하여 히브리민족이라는, 그리고 후대에 이르러서는 온 세계의 크리스천들의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우는,
그런데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서 등 등 등
이 많은 성경의 기록들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 사람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혹은 예수를 믿는다며 주일마다 또는 수요일 금요일에 예배 드리러 교회에 갑니다. 혹은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 그리고 또 열심히 성경을 읽습니다.
하지만 정작 성경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잘 모릅니다.
그저 예수 믿고 구원받는 이야기 말고는….
특히 한국사람들은 모르면서도 잘 묻질 않습니다.
민족적 특성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믿음 없다는 그것도 모르는가? 라는 핀잔을 받을까 봐 묻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래 놓고는 여기 저기 기웃기웃 궁금한 것을 알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성큼 이단들의 덪 인 성경 공부한다는데 빠집니다.
거기 갔다 온 사람들 말로는 처음에는 정말 꿀맛 같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게 알고 싶었던, 그 동안 교회에서는 잘 가르쳐 주지 않던 궁금하고 모르는 것을 알려주니 당연히 그렇겠지요
아는 것 만큼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것은 아주 드뭅니다. 한 두 가지를 제외하고는.
사람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는 것은 성(sex)과 후손일 것입니다.
다들 이것 때문에 결혼을 하지요. 지혜의 왕이라는 솔로몬 조차도 이것을 누리라고 하였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단서가 붙습니다. 사랑하는 네 아내와 함께 입니다.
그리고 따라오는 행복의 기쁨이 바로 앎에 대한 충족입니다.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 앞의 것과 버금간다고 합니다.
아마도 세상에서 성경만큼 어려운 책은 없을 것입니다. 모든 학문이 이 성경에서 기인했을 정도니까요. 지금도 여전히 연구중인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 가장 많이 읽히는(깊이는 예외로 하고 어려우니)
성경이, 가장 오래 된 책은 아니지만 그리고 히브리어가 가장 오래된 언어도 아니면서 이렇게 온 인류의 지대한 관심을 받는 이유가 바로 그 책에 기록된 내용 때문인 것 같습니다.
히브리어는 비교적 신생 언어 입니다. 발생한지 대략 3,000년 정도밖에 안된 신생언어 입니다.
무슨 태초의 문자도 아니고, 그렇지만 왜 이렇게 어려운가? 왜 이렇게 많은 학자들이 평생을 매달리고 연구해도 정확한 답을 얻지 못할까요? 그것은 다름아닌 어떤 관점으로 성경을 읽을 것인가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런지는 성경을 원래의 언어로 차근차근 읽으면 깨닫게 됩니다.
숨어있는, 아니면 숨겨 놓은 의도가 드러나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도 성경은 그들에게는 숨겨져 있다고 하였습니다. 오죽하면 어떤 무리들이 이것을 듣고 읽고 깨닫지 못하기를 바란다도 하였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비유와 은유로 감추어져 있는 내용이 바로 성경이라는 책입니다.
어느 정도 깊이 숨겨져 있는지는 파는 사람에 따라 달리 나타날 것입니다.
그것이 숨겨놓은 자의 바램이니까.
여러분들은 성경을 어디까지 파 볼 생각이십니까?
그러며 이제 창12장으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말 성경은 개역 개정 입니다.
창세기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난데 없이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읽다가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아브람은 이미 우르에서 아버지와 아내 사래와 조카 롯을 데리고 가나안에 가고자 하여 그리로 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란 이라는 곳에 도착한 후 아버지 테라가 더는 가지 않고 하란에 머물어 눌러 살았다고 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아브람은 이미 그의 본토 우르를 떠났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다시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이 본문의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우리말로 지시할 곳으로 가라고 하였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보여 줄 땅 이라는 뜻입니다.
Genesis12:1
וַיֹּ֤אמֶר יְהוָה֙ אֶל־אַבְרָ֔ם א לֶךְ־לְךָ֛ מֵאַרְצְךָ֥ וּמִמּֽוֹלַדְתְּךָ֖ וּמִבֵּ֣ית אָבִ֑יךָ אֶל־הָאָ֖רֶץ אֲשֶׁ֥ר אַרְאֶֽךָּ׃
바요메르 야웨 엘-아브람 레크-레카 메아르쩨카 우밈모라드트카 우밋베이트 아비카 알-하아레츠 아쉐르 아르에카;
그런데 어디로 가라는 말씀인가요? 가나안으로 가고자 했던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시니?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가라” 로 번역한 히브리어 입니다.
이 단어은 히브리어로 레크-레카 입니다.
그런데 이 레크-레카 לֶךְ־לְךָ֛ 라는 단의 뜻은 단순하게 가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같은 단어가 두 번 사용된 것 같은 이 레크-레카 즉 “가라” 라는 단어는 “걷다” 라는 동사 레크 לֶךְ -다음에 하이폰으로 연결된 단어 레카ְ ־לְךָ֛ 를 번역에서 누락했습니다.
두 단어는 보기에는 언뜻 같은 글자로 보입니다만, 전혀 다른 뜻입니다.
히브리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습니다.
(단 이 문서의 히브리어는 편의상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여짐)
처음의 단어는 걸어가는 뜻의 할라크- הָלַךְ 의 명령형 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단어 레카는 to 또는 for 전치사 와 2인칭 남성 단수 접미어 가 합성된 단어 입니다.
즉 가라 번역한 레크-레카 는 너를 위해, 또는 너 자신을 향해 걸어가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이 그의 갈 곳을 보여주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 결혼한 부부에게 이 말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특히 아내인 여자분에게 먼저, 그러면 그 아내 되는 분은 그의 이쉬-남편을 가르키며 그에게로 걸어갑니다.
즉 결혼한 이 아내분의 자기자신은 누구라는 말입니까? 네, 바로 그의 남편인 “이쉬”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아내들은 왜 이런 행동을 할까요?
그것은 그녀의 존재는 본질인 남편으로부터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스토리 어디서 많이 들었던 기억이 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아담을 깊이 잠재우고 그의 갈비뼈 하나를 취해 여자-이샤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남자의 갈비뼈로부터 나왔습니다 이 갈비뼈가 우리가 말하는 그 갈비뼈가 아닌 것은 나중에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편인 이쉬 에게 즉 남자에게 이 말-레크-레카 라는 말을 했을 때 이 남자, 또는 남편은 어떤 행동을 할 것 같습니까? 이 남자 남편의 자신은 누구를 지칭할까요? 아마도 제가 말하지 않아도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갈비뼈라고 번역한 히브리어 쩰라 צֵלָע 의 번역도 사실은 좀더 깊이 공부하면 갈비뼈로 번연하기 보다 한 쪽, a side 로 번역하는 것이 원어에 가까운 뜻일 것입니다. 아무튼,
그런데 하나님은 이 아브람에게 더 이상한 말씀을 하십니다.
너의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을 떠나 너를 향해 걸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מֵאַרְצְךָ֥ וּמִמּֽוֹלַדְתְּךָ֖ וּמִבֵּ֣ית אָבִ֑יךָ
메아르쩨카 우밈모라드테카 우밋베이트 아비카
아브람의 본토는 어디였습니까? 아비집은 또 어디였습니까? 우르 였습니다.
그가 태어나서 말 모국어를 배우고 그 모국어로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던 자신의 생명의 근거지-본질인 곳 지금 하나님은 여기를 떠나라고 합니다.
아브람이 버려야 할 것이 3가지나 됩니다.
첫번째는 그의 언어 입니다.
그의 말 우르, 시날평지 악갓과 에렉과 칼레 에서의 언어, 즉 반역의 언어 입니다.
하나님을 반역하여 자기의 이름을 위해 탑을 쌓던 언어들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두번째는 관계 입니다.
이 반역의 언어로부터 쌓은 관계들, 즉 사연과 경험의 언어를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전부 다 내 중심의 언어입니다. 내게 좋은 것이 선이며 나를 슬프게 화나게 하는 것은 전부 악으로 규정하는 언어입니다. 타인에 대한 용서가 없는 언어 입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가도 결코 잊어버리지 않는 또! 또! 의 언어입니다.
세번째는 아비집 입니다.
아비 집은 나의 육신의 본질, 육으로써 존재의 근원 입니다.
이것은 물질적 존재론에서 떠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내가 네게 보여주는 곳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보여 줄 곳은 어디를 말할까요?
그런데 떠나라고 하신 이유가 2절에 기록되었습니다.
가만히 잘 살고 있던 사람을 쫒아 낼 때는 분명 그 보다 더 나은 반대 급부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누가 떠나려고 하겠습니까? 나이가 젊은이도 아니며 게다가 이미 모은 재산도 상당한 사람에게는 더욱더 그럴 것입니다.
아무튼 그렇게 아브람은 걷기 시작합니다.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얻은 오든 소유를 데리고 마침내 가나안에 들어갔다고 기록합니다. 큰 민족과 복의 근원이 되기 위하여,
그런데 조카 롯과 아내 사래는 그렇다 하더라도 얻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을 뜻할까요?
Gen 12:5 וְאֶת־הַנֶּ֖פֶשׁ אֲשֶׁר־עָשׂ֣וּ בְחָרָ֑ן
베엩 하네페쉬 아쉐르 아수 벡하란
헐! 아브람이 하란에서 영혼을-사람을 아수 만들었다고 합니다.
하란에 있는 동안에 그가 한 일 “아샤” 가 하란 사람을 자기사람으로 만들었다는 말이 네페쉬-사람을 얻었다는 뜻입니다.
하란에 머물지 말고 나와 함께 가나안 כְּנַעַן 에 들어가자.
하란 땅이란 뜨거운 곳을 말합니다.
온갖 세상욕망과 욕정으로 들끓는 땅을 하란 땅이라고 합니다.
거기를 떠나서 카나안 כְּנַעַן 기지, 기초 이름으로 불리는 곳, 나타나게 하고, 생산하고, 가져오는 곳, 준비하는, 말을 연습하는 관찰하는, 시간을 관찰하는 곳인 가나안이라는 곳으로 가자고 하여서 그들을 네페쉬를 얻었다고 합니다. 요즘 말로 하면 복음을 전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러 그의 손자 야곱의 아들들 70명이 애굽에 들어가서 종살이 하다가 큰 무리가 되어 나옵니다. 무려 사백년 만에.
이때의 사건을 성경은 출애굽 이라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그 나온 날을 페삭- פֶּסחַ
유월절로 기록하고 해마다 이날을 지키라고 명령합니다.
이때 일어난 사건이 열 재앙-장자의 죽음이었지요. 이때 죽은 장자는 모두 애굽의 장자였습니다. 그리고 홍해를 건널 때 또 애굽 사람들이 죽습니다. 그리고 애굽 왕 파라오의 말과 병거들이 홍해에서 빠져 죽습니다.
이때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하는 말이 오늘 본 이 애굽 사람들을 너희가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고 합니다. 바로의 말과 마병을 “수스 파르오 베파라샤” 라고 합니다.
말이라는 “수스”는 얼마나 빠른지 새같이 날라다닌다고 합니다. 날라 다니는 것이라고 합니다.
말이 날라 다니나요?
그리고 마병은 이 말을 타고 통제하는 기수를 말합니다.
그런데 마병이라는 “파라샤”는 해석한다는 뜻입니다. 무엇을 해석한다고 합니까? 말 입니다. 수스-평가와 측정을 해석해서 확정 짓는다는 말입니다. 누가 이것을 합니까?
파라오, 애굽왕 바로가 이 일을 합니다. 그런데 이 날 이들은 전부 다 홍해바다에 빠져 죽고 다시는 살아나지 못합니다.
놀라운 것은 유월이라는 페삭 입니다. 페삭은 절름거리다, 건너뛰다 는 뜻입니다.
그래서 유월절을 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페삭의 숨은 뜻은 말을 쓸어버리다 는 뜻입니다.
페-פ 는 입 또는 말을 뜻합니다. 그리고 삭-סח 은 싹 쓸어서 버리다는 뜻의 태풍입니다.
애굽의 말 종 되었던 말을 쓸어서 버리고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들을 자유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건넜는데 어디를 건넜다고 합니까? 애굽-미쯔라임 מִצְרַיִם 입니다.
종 노릇하며 살던 땅 입니다. 이때의 말은 종이 사용하던 말이었습니다.
페삭 즉 유월 했다는, 건넜다는 말은 이 애굽의 말, 종 되었는 말을 쓸어버리고 건너왔다는 말입니다. 어디로 가기 위해서? 시나이 광야를 지나 카나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그리고 그들이 가나안을 들어가기 위해 정탐꾼들을 보내서 가나안을 탐지하고 돌아오던 날 그들은 모세와 여호와께 악평을 쏟아냅니다. 그 땅은 우리를 죽이는 땅이라고 합니다. 자기들을 메뚜기 같다고 살지못하는 땅이라고 하면서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끌어 내어 여기에서 죽게 하냐면서 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머리를 다시 세우고 왔던 곳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큰소리로 울부짖었다고 합니다.
이때 여호와의 말씀이 저들의 말 대로 이곳에서 다 죽여 버리겠다고 하자 모세의 간청으로 그리하지 않고 용서하며 그들 앞에 인도하여 약속의 땅에 그들을 들이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단서가 붙습니다. 오늘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겠다.
20세 이상 계수 받은 모든 이스라엘 족속은 이렇게 광야에서 다 죽습니다.
그리고 신명기에서 모세가 죽기 한달 전에 모압 평지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노래를 가르칩니다. 이름하여 쉬르 모세-모세의 노래라고 하는.
그런데 신명기를 읽다보면 이상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여호와께서 모세를 불러 말씀하셨는데
바요메르 야웨 엘 모세 레모르….
그리고 이런 저런 말을 전하라 라고 그러면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신명기에 넘어와서는 모세가 말합니다.
쉐마 이스라엘~ 약속에 땅에 들어가면 너희가 애야 할 일들에 대해서 가르칩니다.
이것이 야웨의 명령이라고
그런데 4절에 모세가 이상한 말을 합니다.
때는…으로 시작하는 4절의 말씀은 자칫 우리가 놓치기 쉬운 나래이션 입니다.
아마도 대부분 그럴 것입니다.
신1:4 말씀입니다.
때는 모세가 헤스본에 거하는 아모리 왕 시혼을 쳐 죽이고 에드레이에서 아스다롯에 거하는 바산 왕 옥을 쳐 죽인 후라
때는 이라는 말은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1인칭으로 이야기할 그때를 말합니다.
이 말은 4절의 사건이 선행하여 일어나지 않으면 모세는 1인칭으로 이야기할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어떤 때라고 합니까?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쳐 죽인 후'라고 분명히 '그 때'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헤스본이란 단지 요르단 동안에 있는 어떤 지명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헤스본에 거하는 아모리 왕 시혼은 요새에 있는 왕이라는 뜻이지만 이 단어는 “하샤브” חָשַׁב 가 어근입니다.
이성, 생각, 기계, 추론하고, 계산하는 기계, 고려하여 계획을 짜는,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아모리는 말하다는 아마르가 어근입니다. 거기에 1인칭 소유격 요드가 접미 되었습니다.
나의 말, 또는 내 말은'이라는 뜻입니다. 즉 이 아모리 라는 단어는 '나는 떠벌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왕의 이름이 시혼입니다. 시혼은 사흐 סִח가 어근입니다. 전사, 또는 싹 쓸어버리다는 말입니다. 태풍이 불어와 모조리 쓸어가 버린다는 뜻이지요. 무엇을 쓸어가 버린다고 합니까?
즉, '내 말 - 아모리는 쓸어버려야 하는 쓰레기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바산 왕 옥입니다.
에드레이에서 아스다롯에 거하는 바산 왕 옥.
이름이 참 재미있습니다. 옥이라는 이름은 목이 길다는 뜻입니다.
벌거벗은 채로 부끄러움도 모르는 채 긴 목으로 여기 저기 기웃거린다는 이름입니다.
아드레아는 팔에 힘이 센, mighty이라는 뜻입니다.
팔에 힘이 세면 무엇에 쓸까요? 그 사용처가 아스타롯입니다.
스타롯은 페니키아와 가나안 지역의 거짓 여신입니다. 다산과 전쟁의 여신을 말합니다.
가슴에 젖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여신입니다. 이 아스타롯도 생각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무슨 생각 한다는 말입니까?
바산 왕 옥이란 이 여신과의 사이에 낳은 자식들이 많아 팔에 힘이 강해야 합니다.
생각하는 것이라고는 맨날 아스타롯을 품는 생각 외에는 할 줄 아는 것이 없습니다.
거기서 나온 자식들에게 먹을 것을 주기 위해 빵을 굽습니다.
바산은 그래서 '부끄러움도 모르는' 이라는 뜻입니다.
아모리 왕 시혼-쓰레기같은 말만 하는 시혼은 이스라엘의 열 정탐꾼들이었으며,
바산 왕 옥은 비느하스의 창에 찔려 죽은 시므온 지파의 족장 즈므리와 미디안 여자 공주 코스비입니다.
이 두 왕을 쳐부수지 못하면 모세는 신명기- 즉 약속의 땅의 마지막 과정에 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명기는 광야 40년의 마지막 결산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입니다.
지금까지 함께 간략하게 성경을 살펴본 바와 같이 성경은 우리에게 한결같이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싶은 것은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약속의 땅에 들어 갈 수 있는 지를 알려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토라를 지침서, 안내서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무엇을 버리라고 합니까? 말입니다.
내 입의 말- 내 말, 사연과 경험의 말, 또! 또! 또!의 말.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아닌 내가 세운 나의 계획과 생각들.
이것들을 버리고 새 말-새 언어를 배우라고 합니다.
아버지의 말, 아버지의 행동을 배우라고, 성경-토라는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에서 주님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판이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옛 판의 언어로 살아가면 죽기 때문입니다.
애굽을 미츠라임 מִצְרַיִם 이라고 합니다.
위의 물과 아래의 물이 두개의 물이 충돌하여 소용돌이 피면서 시끄럽게 흘러가는 곳입니다.
스트레스 받는곳 여러분들은 이 애굽을 건너왔습니까?
어린 양-שֶׂה의 피를 문지방과 상인방에 발랐습니까?
문지망과 상인방은 바로 여러분들의 입을 뜻합니다.
여러분들의 입에서 나온 바로 그 말, 그것이 바로 여러분들의 삶. ח 이라는 말입니다.
행복하지 않습니까? 행복을 선언 하십시요.
기쁘지 않습니까? 기쁨을 창조 하시기바랍니다.
감사할 것이 없습니까? 살아있는 것이 감사한 것을 모르십니까?
여러분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 여호와의 귀에 들린 그대로 여호와께서 여러분들에게 행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물질에 관한 것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가이사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당신의 말-다바르와 당신의 행동-아샤를 가르치고 싶은 것입니다.
말-언어는 여러분들을 약속의 땅에 이르게 하는 수단입니다.
요6:63절 말씀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하는 말이 곧 영이요 생명이라"
여러분들의 말이 무익한 육을 위한 말이 아니라, 실리는 영의 말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을 여러분들의 재산 부풀리는 수단으로 삼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를 당신의 말을 통해 하늘에 이르게 하시는 분입니다.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이를 자가 없느니라
주님은 이렇게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르게 하는 사닥다리-빛으로 내려오신 분이십니다.
하마콤 / 히브리어 성서학당
헤만 벤소베르 님의 글을 옮겨 적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