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부천시 원미구 심곡3동 일대. 이 지역은 가구점들이 밀집해 있는 까닭에 ‘가구단지??로도 불린다. 크고작은 가구점간판들이 어깨를 바짝붙인 형국이 풍경의 주를 이루지만 그 가운데 엉거주춤한 형태의 간판이 하나 걸려있다.
‘극단 믈뫼 연극전용소극장 열린무대??
옅은 저녁햇살이 조심스럽게 드나드는 계단을 내려가자 좁지도 넓지도 않은 대기실에 10여 명의 믈뫼 단원들이 모여앉아 다음 공연을 위한 연습에 한창이다.
이곳이 부천시 유일의 연극전용소극장으로 만 23년의 내력을 간직하고 있는 극단 믈뫼(대표 임성주)의 보금자리이다.
연극전용소극장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이곳에서 공연되는 작품의 상당수는 순수연극이다.
전문극단으로는 10대와 50대를 아우르는 21명의 단원들로 구성된 믈뫼가 이곳에서 올리는 자체공연만해도 창작극 1편을 포함한 연간 8작품에 이르며 부천에 소재했지만 자체 소극장을 갖고있지 않은 ‘극단 원미동 사람들??, ??극단 옛터??가 정기공연작품을 이곳 무대에 올린다. 여기에 일반 아마추어 극단과 중?고등학교 연극동아리들이 올리는 작품을 합하면 열린공간에서 치러지는 연극공연은 부천연극의 현주소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극장의 가동률은 100%대비 약 50%이며 공연일수로는 365일 가운데 180여일이다. 1~2월에 집중된 공한기와 사계절 이어지는 믈뫼의 공연연습기간을 감안하면 사실상 80%이상의 높은 가동률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올 한해 동안 ‘열린공간??을 이용한 개인과 단체는 대략 30여 개이다. 전문극단, 및 아마추어 극단을 비롯한 전문밴드, 청소년 연주단체가 적게는 2~3일, 많게는 일주일 가량을 대관하기도 한다.
전체 공연일수 가운데 극단믈뫼의 비중이 60% 전문극단이 20%, 밴드와 아마추어 연극동아리(일반, 학생)이 각각 10%에 이르는 등 비교적 높은 공간활용도를 보이고 있다.
이같은 활용의 이유는 대체로 두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공연공간의 부족이다. 문화도시를 표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천에서 제대로 된 공연을 치를 수 있는 공간은 3곳에 불과하며 이곳조차도 높은 대관료와 까다로운 대관심사 등으로 제대로 확보하기 힘들다.
일반 관객들의 접근성이 우수하다는 입지적 조건도 간과할 수 없다.
부천역과 중동역에서 각각 도보로 5분거리에 위치해 있는 등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한 접근성이 우수한 점은 주차장 미확보라는 단점을 충분히 상쇄한다.
특히 저렴한 대관료(1일 평균 10만원)는 일반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는 아마추어 공연단체에게는 일종의 숨구멍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70여석의 객석과 무대앞 바닥에 방석을 깔 경우 대략 120여 명의 관객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된다는 점과 무대장비가 다른 극장에 비해 우수하다는 점은 마니아 층을 겨냥한 여타의 공연물들이 올려질 경우 연중 100%의 가동률도 결코 꿈만은 아닐 듯 싶다.
소극장활성화를 위해 조직된 (사)전국 소공연장 연합회 경기도 지회장이기도 한 임성주 대표가 말하는 열린공간의 자구책은 일단 다음 카페에 개설된 ‘연극사랑 믈뫼사랑??(cafe.daum.net/meulmye)으로 집약된다. 현재 979명이 회원의 이 카페는 공연후기나 작품평론을 올리는 공간이 개설되는 등 비교적 활동한 온라인 홍보활동이 펼쳐지는 곳이다.
극단측에서 밝히는 연극마니아층은 50~100여 명선. 한달에 한 편 정도의 연극을 보는 것을 마니아라고 볼 때 긍정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믈뫼는 우리극장에 온 사람이면 누구나 원하면 관극회원으로 등록해 우송료를 극장측에서 부담해 할인권 등을 발송한다. 여기에 지역케이블 TV의 협찬으로 TV광고가 더해진다.
임 대표는 연극영화과 지망생 등을 대상으로 7~8년 전부터 1주일에 2~3회씩 2시간 여에 걸쳐 연극실기를 무료로 강연하고 있다. 일반인들의 연극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한편 자체 단원수급에도 한몫하고 있는 이 강의는 인근 주민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열린무대를 찾는 관객이 연 평균 4천여 명에 불과하다는 점은 잠시 생각해 볼 문제이다.
특히 부천시민들의 높은 문화향수 욕구를 감안할 때 관객유인책에 다소 미흡한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특히 공연에 따라 관객점유율이 천차만별인 것은 아쉬울 따름이다.
만성적자로 시달리는 도내 소극장의 대개가 관으로부터의 보조에 사활을 걸고있는 현실에 비춰볼 때 믈뫼의 경우는 사실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다. 그것은 극장을 운영하고 있는 임대표가 무역업체를 운영하면서 얻은 수익의 상당부분을 극장에 기부금 형태로 투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나마도 내년에는 어려울 것 같다.
“어제 세무조사를 받았는데 기부금이 많다고 지적을 해요. 우리는 10원짜리 하나라도 철저히 장부에 기재합니다. 암만 봐도 돈 하나 안 생기는게 극단인데 매년 1억원씩 내는 게 말이에요. 계속 이러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네요. 다른 자구책을 찾아야 하는데…??
‘제살깎아먹기식??으로 극단운영에 매달리다 이마저도 어렵게 된 임 대표의 하소연이다.
<전문가 소고>
한중곤 (백제예술대 출강, 前 도립극단 무대감독)
소극장, 이 말은 우리주변에서 흔히 보는 소규모 영화상영관을 지칭하는게 아니라 객석 200~300석 미만의 공연예술(연극, 무용, 음악 등)을 발표하는 작은 공연장을 말한다. 이 소극장들은 지금까지 우리나라 연극계 창작활동의 산실로서 대극장들이 상업주의로 흐르는 데 반하여, 연극 본래의 예술성과 순수성을 간직하며 왕성한 실험정신으로 배우와 관객들간의 거리를 좁혀 서로가 한 호흡으로 느끼고 교감할 수 있는 현장성이 뛰어난 살아있는 공간으로서 자리를 잡아왔다. 그래서 모든 연극단체들이 마음껏 연습하며 창작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자체 소극장을 가지는게 꿈이라고 하지만, 그 공간을 자체 공연만으로써 다 활용하기에는 한계점이 있고, 그렇다고 현실적이지 못한 대관료를 받으며 대관업무에 치중한다한들 가중되는 경제난을 이길수는 없기에 청운의 꿈을 안고 어렵사리 소극장을 개장했다가는 얼마 못가서 폐쇄되고 마는 것이다.
더욱이 갈수록 대형화되는 뮤지컬과 퍼포먼스 등의 공연형태와 영화와 TV산업의 발전으로 인해 대형 할인점에 몰려 사라지는 동네 구멍가게와 같이, 남아있는 얼마 되지 않는 소극장들마저 존폐의 위기에 놓여있는게 현실이다.
문화와 예술은 단순한 경제논리만을 적용시킬 수는 없다. 자본주의의 꽃이라 불리우는 미국의 문화, 그 중에서 연극도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하에 오프 오프 브로드웨이가 존재하기에 오프 브로드웨이가 있고 거기서 더 발전되어 브로드웨이에서 대향 공연들이 상영될 수 있는 것이며 더 나아가 이와 연계하여 만들어진 할리우드영화가 세계경제의 강자로 등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문화예술의 근간은 바로 우리들 곁에 있는 소극장의 힘이다.
현재 31개 시·군에 인구 1천만이 넘는 경기도내에 활성화 되고 있는 소극장은 4군데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부천의 극단 믈뫼는 지난 1980년 11월 “삭막한 현대 사회 속에서 연극을 통해 지역사호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서로의 막힌 가슴을 두드리는 역할을 하겠다??는 취지로 초대 대표 윤봉구씨외 6명의 연극인이 모여 만들어진 단체다. 지금까지 총100회가 넘는 정기공연과 24회가 특별공연 등을 통해 400여 명의 연극인을 배출한 극단이다.
극단 믈뫼의 연극전용소극장 ‘열린 공간??의 전용면적은 80평으로 이중 객석 20평, 무대면적 30평, 분장실 5평, 휴게실 15평, 사무실 10평으로 아늑한 느낌을 주는 전형적인 소극장의 형태를 띤다.
무대시설은 40㎾의 전력량으로 현재 50여 대의 조명기를 보유하고 있다. 연극외에도 다양한 공연무대조명으로 손색이 없다.
16채널 64그룹의 디머기가 있고 200W의 음향엠프 출력 전력에 스테레오 믹싱 AMP PA-203엠프가 배치돼 전국소공연장 연합회에 등록된 60여 개의 단체 규모 중 시설면에서 5위를 차지하는 등 뛰어난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연간 10여 편의 작품을 소화해 내는 믈뫼의 저력은 이곳 ‘열린무대??에서 나온다해도 과언이 아닌듯 싶다.
필자가 보건대 40여 개의 소극장이 밀집되어 있는 서울 대학로에서도 이만한 시설을 갖춘 소극장은 찾아보기 드물 정도이며 공간활용도의 잠재력 면에서는 도내 최고라 봐도 과언이 아니다.
소극장은 현재 부천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시민회관 시민회관, 복사골 문화센터, 오정아트홀 등 중·대 공연장이 있으나 일반인 및 청소년들이 이용하기에는 규모나 가격면에서 적당치가 않다. 이에 비해 10만원이라는 저렴한 대관료는 일반인들의 각종 행사는 물론 청소년들의 연극동아리 및 밴드 그룹 등에게 매력적이다. 이들의 발표의 장으로서 ‘열린공간??은 부천지역 문화사랑방 구실을 무리없이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월 200만원의 운영비가 지출되는 부분은 사업을 하는 임성주 대표의 개인적인 출혈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에따라 대관료의 현실화가 불가피하지만 당장 대관료가 인상될 경우 믈뫼 이외의 단체들이 겪는 어려움 때문에 임 대표 자신도 망설이고 있다.
이런저런 악조건 속에도 올해 극단 믈뫼는 ‘에비대왕??이란 작품으로 전국연극제 경기도예선대회에서 대상의 영예를 차지해 전국에 부천연극의 현주소를 알렸다.
오늘도 20여 명의 단원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2004년 1월26일부터 공연될 가족뮤지컬 ‘플란다스의 개?? 연습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부천에 거주하는 모든 가족들이 ??열린 무대??를 찾아줄 그날을 꿈꾸면서 말이다. 체감경제난의 배 이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도내 소극장 운영의 현실, 이제 상황은 일시적인 관심에서 벗어난 보다 적극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