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산首陽山은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대륙의 수양산은 한군데가 아니라 열 군데가 넘는 곳이 있습니다.
아래 글에서는 일부만 실어 설명하였을 뿐입니다.
본래 <상서> 등 고전에서 말하는 백이숙제의 고사가 담긴 수양산은 하나였으나 사람과 문화 등의 이동으로
대륙 곳곳에 펴져 나갔으며(지명의 복사), 반도에선 황해도 해주에 수양산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수양산 원본이 어디인지는 지금도 대륙과 반도에서 그 설이 분분합니다.
음모론적 시각에서는 특정세력에 의하여 지명이 옮겨진 것이라 볼 수 있지만, 그렇게만 볼 수없는 이유는,
수양산에 대한 논란은 시대별로 왕조가 바뀔 때마다 계속 되어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기 "역사지명대사전"에 수양산에 관한 지금까지 번역된 글 중에 글의 출처만 보아도 알 수있습니다,
그것은 시대별로 달리하였으며 그러한 논란이 근세의 특정시기의 일이 아니라 천년을 넘게 수양산의 지리적 위치에
논란이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설문, 청일통지, 대평환우기, 방여승람, 교신지, 론어이씨, 삼국지, 한서지리지, 사기색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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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歷史地名大辭典 수양산首陽山를 찾아보면,
首陽山
1)在河北省盧龍縣東南二十五里,今曰陽山,《說文》「首陽山在遼西,」即此。
수양산
하북성河北省 로룡현盧龍縣 동남 25리에 있으며, 지금에 와서는 말하기를 양산陽山이라 하며, 《설문》에 「수양산首陽山은 요서遼西에 있다」고 하니 즉 이곳이다.
2)在河南偃師縣西北十五里,北接孟津縣界,《水經注》「河水逕平縣北,南對首陽山,春秋所謂首戴也,」上有夷齊廟,即邙山最高處,日出先照,故名,山之南魏文帝陵在焉,亦名,春秋謂之首戴,漢桓帝賜桓榮塚塋於首山之陽,即此。
하남河南 언사현偃師縣 서북 15리 북으로 맹진현孟津縣 경계와 접하며, ≪수경주≫에서 「하수河水는 평현平縣 북쪽을 질러가며, 남으로 수양산을 대면하며, 춘추에서 “머리를 이었다」하니, 위쪽에는 제이묘夷齊廟가 있으니, 즉 망산邙山 제일 높은 곳이며, 해가 나와 먼저 비추는 곳으로, 그러한 까닭으로 이름한 것이며, 산의 남쪽에는 위문제魏文帝 릉이 있는데, 역시 이름은 수산이며, 춘추에 그것을 일러 말하기를 “머리에 이은 것이라” 한 것으로, 한 환제桓帝가 환영榮塚의 무덤을 수산의 남쪽에 내려주었으니, 곧 이곳이다.
3)在山西和順縣東南四十里,本陽區山,俗號首陽山。
산서 화순현和順縣 동남 40리에 있는데, 본래 양구산陽區山으로, 세속에서는 수양산이라고 한다.
4)即雷首山,在山西永濟縣南,《詩唐風》采苓采苓,首陽之顛,《論語季氏》「伯夷叔齊,餓於首陽之下,馬融曰,首陽山,在蒲板河曲之中,《寰宇記》云,首陽,即雷首南阜也,亦名首山,《漢書地理志》蒲反有首山祠,《郊祀志》黃帝采首山銅,《杜預左傳注》首山,在河東蒲板縣東南,一名首陽山,《明都穆首陽山記》首陽山下有二賢祠,祠右即二賢葬處,《清一統志》雷首、首陽,本為一山,大抵山南為陽,以首陽為首山之陽者近是。
곧 뢰수산雷首山이며, 산서 영제현永濟縣 남에 있으며, ≪시경 당풍≫에서 “도꼬마리(감초) 를 캐자! 도꼬마리를 캐자! 수양산으로 갈까?”, ≪론어이씨》에 백이숙제伯夷叔齊가 수양의 아래에서 굶어죽었는데, 마융馬融이 말하기를, 수양산首陽山은, 포판蒲板 하곡河曲의 가운데 있으니, 《태평환우기》에 이르기를 수양은, 곧 뢰수雷首 남쪽언덕이다. 또한 이름은 수산首山이며, 《한서지리지》에 포판은 수산사가首山祠 있으며, 《교신지》에 황제黃帝가 수산에서 구리를 캐었으며, ≪두예좌전주》에 수산은, 하동河東 포판현蒲板縣 동남에 있으니 일명 수양산首陽山이며, 《명도목수수양산기》에 수양산에는 이현사二賢祠가 있는데, 사당 오른쪽 곧 두 현인이 묻힌 곳이 있으며, 《청일통지》에 뢰수雷首 수양首陽은 본래 하나의 산이며, 대저 산의 남쪽은 양陽이라 하니, 수양首陽은 수산지양首山之陽으로 하니, 이것이 합당한 것이다.
5)在甘肅隴西縣西南一百里,有關在其上,鞏昌府志以為即夷齊采薇處,《清一統志》夷齊餓於首陽之下,馬融以為在蒲板,曹大家注通幽賦云在於隴西,索隱據莊子北至岐山西至首陽之文,以為在岐山之西,詳文以為在遼西,劉延之以為在偃師,《方輿勝覽》亦云在隴西,府志,今隴西首陽山麓之左有二賢塚,故於塚帝立廟,明郡人楊閎著辨以隴西之首陽為是,其說不一。
감숙 롱서현隴西縣 서남 100리에 있다. 관關은 그 위에 있으니, 공창부지鞏昌府志에 곧 이제夷齊가 고비를 캐던 곳이라 하며, 《청일통지》에 백이숙제가 수양산의 아래에서 굶어죽었는데, 마융馬融은 포판蒲板에 있는 것으로 여긴 것이며, 조대가주曹大家注 통유부通幽賦에서 롱서隴西에 있다하니, 색은索隱에 근거하면 장자莊子가 북쪽으로 기산 서쪽岐山에 이르러 수양지문에 이르렀다고 하여서, 기산의 서쪽으로 생각하여, 상문詳文은 요서에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유연지劉延之는 언사偃師에 있는 것으로 여겼고, 《방여승람》에 또한 이르기를 롱서隴西에 있는데, 부지府志에, 지금 롱서 수양산 기슭의 왼쪽에 두 현인의 무덤이 있는데, 그런 까닭으로 제께서 무덤에 사당을 세웠으며, 명군明郡 사람 양굉楊閎이 롱서의 수양이 이것이 이라고 분명히 밝혔으니, 그 설은 하나가 아니다.
그림 출처:《중국고금지명대사전》 수양산首陽山
첫댓글 정진황 선생님 관심 가져주시니 감사합니다. 제가 력사지명대사전을 번역하고 있지만 조심스럽습니다. 일부에서는 중국고금대사전 등도 왜곡 되었다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력사지명대사전을 쓰는 이유는역사를 공부하거나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앞으로는 더욱 역자의 주관성을 배제하는 칼럼이 되도록 하고자합니다.
그럼으로 인기 있는 칼럼은 될 수 없습니다. 소성蘇城은 한번 찾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