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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2일 언약형통교회 주일 예배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본문 : 요한계시록 2장 11절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1, 서론
오늘도 살아 계신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성경 가운데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 책이 무엇입니까?
아마 많은 분들이 요한계시록이라고 대답하실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요한계시록을 읽다가 중간에 포기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요한계시록은 목사님들만 연구하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한계시록을 일부 사람들만 읽도록 기록하신 것이 아닙니다.
계시록 1장 3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여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세 부류의 사람을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읽는 사람입니다.
둘째는 듣는 사람입니다.
셋째는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읽기만 하는 책도 아니고, 연구만 하는 책도 아닙니다.
듣고 지키는 책입니다.
하나님께서 요한계시록을 기록하게 하신 목적은 미래의 사건을 알려주시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성도들이 끝까지 믿음을 지키도록 하기 위한 권면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 요한계시록 2장 11절 역시 그 목적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이 한 구절 속에는 성도의 현재와 미래, 신앙의 자세와 하나님의 약속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함께 살펴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귀 기울여 듣기를 원합니다.
첫 번째
이 말씀은 누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요한 계시록은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유배 중에 환상을 본 후 기록한 말씀입니다.
당시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때문에 유배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외로운 섬에서 요한에게 놀라운 계시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계시를 기록하여 일곱 교회에 보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계시록 1장 11절입니다.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와 서머나와 버가모와 두아디라와 사데와 빌라델비아와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곱 교회는 소아시아에 실제 존재했던 교회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요한을 통하여 실제 교회들에게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일곱 교회는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교회를 대표하는 모습으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서머나 교회에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라, 오늘 우리 언약형통교회와 모든 교회에도 주시는 말씀입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기서 ‘귀 있는 자’란 단순히 육신의 귀를 가진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서에서도 여러 차례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려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세상에는 귀는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순종하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런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설교를 듣는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은혜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을 마음으로 받고 순종하려는 사람에게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합니다.
즉 “교회들에게”라고 말씀합니다.
복수입니다.
한 교회가 아닙니다.
모든 교회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교회에도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 언약형통교회에도 하시는 말씀입니다.
성령님은 지금도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성령님은 지금도 교회를 책망하시고, 위로하시며, 격려하십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피 값으로 사신 성도들의 공동체입니다.
사도행전 20장 2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
얼마나 귀한 존재입니까?
예수님의 생명을 내어 주시고 세우신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교회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예배를 소홀히 여겨서도 안 됩니다.
말씀을 가볍게 여겨서도 안 됩니다.
두 번째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서머나 교회는 어떤 교회였습니까?
오늘 말씀은 서머나 교회에 보내는 편지입니다.
서머나는 당시 매우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무역이 활발했고 로마 황제 숭배가 매우 강했던 곳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핍박을 받았고, 신앙을 지키는 것이 생명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재산을 빼앗기기도 했습니다.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순교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서머나 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계 2:9)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가난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는 가장 부요한 교회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믿음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같은 질문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안에서 무엇을 기준으로 부요함을 판단합니까?
재산입니까?
건강입니까?
지위입니까?
하나님은 믿음을 보십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 즉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이 있는 믿음을 보십니다.
세상이 인정하지 않아도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이 참으로 복된 삶입니다(마6:31-33).
2, 이기는 자는 누구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그냥 “믿는 자”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자”라고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분명하게 “이기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이겨야 합니까?
사람을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닙니다.
권력을 얻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승리는 영적인 승리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이김, 승리입니다.
첫째
거짓을 이기는 사람입니다.
사탄은 처음부터 거짓말쟁이였습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뱀은 하와에게 말합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만들었습니다.
오늘날도 사탄은 똑같이 역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생각을 믿게 만듭니다.
세상의 기준을 따르게 만듭니다.
진리보다 편안함을 선택하게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후서 4장 3~4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정보 속에서 살아갑니다.
유튜브도 있고, 인터넷도 있고, 수많은 설교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무엇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는가입니다.
성도는 유행을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을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기는 사람은 진리를 끝까지 붙드는 사람입니다(롬1:25).
둘째
죄와 유혹을 이기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믿음생활을 하면서 가장 큰 싸움은 다른 사람과의 싸움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욕심과 싸워야 합니다.
분노와 싸워야 합니다.
미움과 싸워야 합니다.
교만과 싸워야 합니다.
음란과 싸워야 합니다.
세상 사랑과 싸워야 합니다(요일2:15-17).
골로새서 3장 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성경은 죄와 타협하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죄를 죽이라고 말씀합니다(요일3:7-8).
[요일3:7-8]
3:7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매일매일 십자가 앞에 나아가 죄를 버리는 삶이 필요합니다.
셋째
회개하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경은 완벽한 사람을 이기는 자라고 하지 않습니다.
베드로도 넘어졌습니다.
다윗도 죄를 지었습니다.
요나도 하나님의 뜻을 거역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회개했습니다.
눈물로 하나님께 엎드렸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사람을 붙드셨습니다.
반대로 회개하지 않는 마음은 점점 굳어집니다.
그래서 베드로후서 3장 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벌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아버지이십니다.
탕자의 비유를 보십시오.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멀리서도 달려가 안아 주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혹시 신앙이 식어 있습니까?
기도가 끊어졌습니까?
말씀이 멀어졌습니까?
지금이라도 하나님께 돌아오면 됩니다.
회개하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입니다.
넷째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0장 22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또 마태복음 24장 13절에서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신앙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닙니다.
마라톤입니다.
처음 출발이 좋아도 끝까지 달리지 못하면 완주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간과해서는 아니되는 것은 법대로 신앙생활을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딤후2:5).
[딤후2:5]
2:5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사도 바울도 마지막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7절입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얼마나 아름다운 고백입니까?
우리도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 저는 부족했지만 끝까지 믿음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이기는 자의 삶입니다.
3, “둘째 사망”은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의 약속 가운데 가장 중요한 말씀은 이것입니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그러면 먼저 질문해 보겠습니다.
둘째 사망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성경으로 풀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요한계시록 안에서 그 뜻을 설명해 줍니다.
계시록 21장 8절입니다.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성경은 둘째 사망을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이라고 설명합니다.
요한계시록 2장 8절에 나열한 지는 자들은 소아시아에 있는 역사적 교회 안에 있는 구성원들과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또 계시록 20장 14절은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라고 말씀합니다.
즉, 둘째 사망은 단순히 육체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최후 심판과 영원한 형벌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첫 번째로 ’첫째 사망과 둘째 사망‘에 대하여 알아 보기로 하겠습니다.
우리 사람은 누구나 육체적인 죽음을 맞이합니다.
아담 이후 모든 사람은 죽음을 경험합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은 말씀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 육체의 죽음을 흔히 첫째 사망이라고 이해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둘째 사망은 첫째 사망 그 이후에 하나님 앞에서의 심판을 말합니다.
요한 계시록은 마지막 심판을 “둘째 사망”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은 매우 큽니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이보다 더 큰 약속이 어디 있겠습니까?
두 번째는 ‘백보좌 심판’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계시록 20장 11절부터는 마지막 심판의 장면을 보여 줍니다.
사도 요한은 큰 흰 보좌를 봅니다.
거기에 하나님께서 앉아 계십니다.
그 앞에는 왕도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있습니다.
유명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름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섭니다.
세상에서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권력으로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인맥으로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누구도 예외없이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성경은 상급 심판보다 행위 심판을 더욱 강조하고 있습니다(벧전1:17 >>고전9:23-27).
계시록 20장 1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습니다.
가족도 속일 수 있습니다.
세상도 속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한 말도,
생각도,
행동도,
주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를 두렵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도록 부르시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중심을 아시는 분이라고 여러 곳에서 말씀합니다(벧전1:17).
[벧전1:17]
1: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그러므로 성도는 사람보다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야 합니다.
세 번째는 ‘이기는 자가 받을 기업’에 대하여 생각하여 보기로 하겠습니다.
그러나 계시록은 심판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약속도 함께 주십니다.
요한 계시록 21장 7절입니다.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무엇을 상속받습니까?
바로 앞 구절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원한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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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나라에 대하여 계시록 21장 3~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여러분, 천국의 가장 큰 복이 무엇입니까?
황금길입니까?
진주문입니까?
생명나무입니까?
그것들도 귀하지만 가장 큰 복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마28:19-20, 빌4:9).
에덴동산에서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졌습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다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합니다.
그곳에는 눈물이 없습니다.
사망이 없습니다.
애통함이 없습니다.
아픔이 없습니다.
이것이 성도가 바라보는 소망입니다.
네 번째는 ‘현재의 고난은 장차 올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서머나 교회 성도들은 많은 환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눈앞의 고난보다 장차 받을 영광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 8장 18절에서 말합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고린도후서 4장 17절로 18절의 말씀도 눈여고 보고 들어야 합니다.
[고후4:17-18]
4: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오늘 우리도 때로는 예수를 믿는 것 때문에 생각하지 못하였던 여러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질병도 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습니다.
가정의 문제도 있습니다.
신앙 때문에 외로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조금만 더 견디어라.”
“끝까지 믿음을 지켜라.”
“내가 예비한 영광이 있다.”
이 약속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이 이기는 자입니다.
4,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는 네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첫째, 이 말씀은 서머나 교회뿐 아니라 오늘 우리 모든 교회에 주시는 말씀입니다.
둘째, 이기는 자는 믿음을 끝까지 지키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이기는 자에게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는다는 놀라운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우리는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4장 13절에서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끝까지’입니다.
신앙은 출발 만큼 완주가 중요합니다.
운동 경기에서도 출발선에 서는 사람은 많지만 결승선을 통과하는 사람이 진정한 승리자입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도 세례를 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등록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마지막까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4장 7~8절에서 자신의 마지막 고백을 우리에게 전하여 주고 있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바울은 “나는 유명한 사도가 되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큰 교회를 세웠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믿음을 지켰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 고백입니다.
우리도 인생의 마지막에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 부족했지만 끝까지 주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순교의 시대에 살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타협의 시대에는 살고 있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합니다.
“조금쯤은 괜찮다.”
“그렇게까지 믿을 필요는 없다.”
“다들 그렇게 산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다릅니다.
로마서 12장 2절은 말씀합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성도는 세상을 미워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진실을 선택하고,
정직을 선택하고,
사랑을 선택하고,
거룩함을 선택하는 사람이 성도입니다.
세 번째 시험과 환난 속에서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서머나 교회는 칭찬받는 교회였지만 환난이 많았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환난이 없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요한계시로구2장 10절을 통하여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큰 위로가 됩니다.
혹시 건강 때문에 힘드십니까?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으십니까?
가정의 문제로 눈물 흘리고 계십니까?
신앙생활을 하면서 외롭다고 느끼십니까?
주님은 우리의 형편을 모르시는 분이 아닙니다.
서머나 교회를 향해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안다.“고 말씀하신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사정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기억하십니다.
기도를 들으십니다.
때가 되면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십니다.
네 번째로 우리의 진정한 소망은 이 땅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영원히 살 사람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모두 주님 앞에 서게 됩니다.
그날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재산을 남겼는가가 아닙니다.
얼마나 높은 자리에 있었는가도 아닙니다.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도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향해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삶을 살았는가가 중요합니다.
계시록 21장 7절은 약속합니다.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이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됩니다.
5,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들으며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나는 무엇과 싸우고 있습니까?
혹시 세상과 타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기도가 식어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말씀을 가까이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을 품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의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말씀을 듣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순종하는 성도가 됩시다.
넘어졌다면 다시 일어납시다.
죄를 깨달았다면 회개합시다.
주님은 회개하는 자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돌아오는 자를 기쁨으로 맞아 주십니다.
사랑하는 언약형통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언젠가 끝나는 경주입니다.
그날 주님 앞에 섰을 때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약속하십니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이 약속을 굳게 붙드시기 바랍니다.
환난이 있어도,
시험이 있어도,
유혹이 있어도,
끝까지 예수님을 붙드십시오.
끝까지 말씀을 붙드십시오.
끝까지 기도하십시오.
끝까지 사랑하십시오.
끝까지 믿음을 지키십시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 생명의 면류관을 허락하시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가 마지막 날 주님 앞에서 기쁨으로 서는 ‘이기는 자’가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하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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