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힐링(healing)을 이야기 하고 있다. 법보신문에 따르면 국민멘토라 불리우는 스님들이 조계사에서 5월 27일부터 30일까지 힐링콘서트를 한다고 한다. 우리시대 힐링멘토라 불리우는 혜민, 법륜, 마가, 정목스님 이렇게 네 분의 스님들이다.
법보신문에 따르면 이제 힐링시대라 한다. 바로 이전에는 행복시대이었다고 한다. 행복을 주제로 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와 행복특강 전성시대를 열었으나 이제 힐링이 대세라 한다.
이처럼 힐링이 대세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우리사회가 지나치게 물질화 된 것에 대한 반성이라 한다. 신자유주의에 따라 무한경쟁으로 소외된 자들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 힐링이라 한다. 그래서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 법회와 음악회가 열리고 , 명상과 관련된 책이 나오고, 트위터로 소통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법륜스님의 행복특강, 정목스님의 마음으로 듣는 음악, 마가스님의 자비명상, 혜민스님의 트위터를 들 수 있다. 관심 있는 불자라면 한 번쯤 보거나 들어 보았을 것이다.
실제로 법륜스님의 행복특강을 들은 적이 있다. 안양투어의 경우복도까지 가득찬 사람들을 보았다. 마음으로 듣는 음악프로는 정목스님의 간판프로이다. 지금은 다른 사람이 진행하지만 음악을 듣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져서 자연스럽게 치유가 되는 것 같다. 일요일 아침 불교방송의 마가스님의 자비명상을 들으면 스님의 음성을 듣는 것 자체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혜민스님은 트위터를 통하여 짧게 소통하지만 “토닥 토닥”이라는 말을 집어 넣어 실제로 위로 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만든다.
힐링선(heling禪)
법보신문에서는 혜민, 법륜, 마가, 정목스님 이렇게 네 분의 스님을 국민멘토라 하였지만 여기에 월호스님이 빠져 있다. 월호스님 역시 불자들의 멘토라 볼 수 있는데 불교방송과 불교TV에서 항상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삶속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 스님의 세미나를 들은 적이 있다. 작년 10월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있었던 종단출범 50주년 기념 세미나에서이다. 이때 스님은 논문에서 ‘힐링선’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처음으로 들어 본 힐링선은 어떤 것일까? 이에 대하여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현대는 힐링(healing)이 대세이다. 참선은 본래 안심법문이며, 선사야말로 진정한 심성치유사임을 감안하면, 바야흐로 힐링선(heling禪)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월호스님, 선불교의 눈으로 본 오늘의 한국불교-선문단련설을 중심으로-, 2012-10-19,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
월호스님은 힐링과 선을 결합하여 ‘힐링선(heling禪)’이라는 신조어를 사용하였다. 그런 힐링선은 다름 아닌 ‘안심법문(安心法門)’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심법문이란 무엇인가?
안심법문은 달마와 혜가와의 대화에서 비롯되었다. 혜가가 “저의 마음이 편안치 않으니, 스님께서 편안하게 해주소서”라고 말하자, 달마가 “마음을 가져오너라, 편안케 해주리라”라고 말한 것이 안심법문의 요지이다. 혜가는 불편한 마음을 아무리 찾으려해도 찾을 수 없었다. 원래 없는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달마는 “그대의 마음을 벌써 편안하게 해 주었느니라”라고 말하였다. 혜가가불안한 마음을 찾으려고 하는 과정에서 이미 불안한 마음은 이전의 마음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콜링(calling) 시대
행복을 말하는 시대에서 이제 힐링을 말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면 다음에는 어떤 시대가 도래할까? 이에 대하여 중앙승가대 김응철 교수는 ‘콜링(calling)’의 시대가 도래 할 것이라 예측한다. 콜링이란 무엇일까? 김응철 교수의 법보신문 기고문에 따르면 “콜링은 ‘천직(天職)’ 혹은 ‘소명(召命)’ 등으로 번역하기도 하는데 불교적으로는 ‘지혜로운 실천’을 의미하는 ‘지행(智行)’으로 표현할 수 있다.(법보신문 2013-05-18)”라고 하였다. 시대에 따라 사람들의 관심사가 바뀔 수 있음을 말한다. 그래서 행복을 추구하는 웰빙에서 자가 치유를 촉진하는 힐링으로 변해 왔고, 앞으로 콜링으로 변할 것이라 한다.
시대에 따라 사람들의 관심사는 변해 왔다. 한 때 웰빙열풍에 이어 웰다잉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하면 잘 살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잘 죽을 수 있는지에 대한 관심을 보여 왔으나, 이제 그런 말은 쑥 들어갔다. 그 대신 아직까지는 생소한힐링을 말하는 시대가 되었다. 사회가 그만큼 각박해졌다는 이야기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살기 힘든 세상이 되었고, 희망 보다는 절망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 질 때 웰빙이나 웰다잉 같은 행복에 대한 이야기는 머나먼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지금 당장 상처받고 절망 하는 마음에 대한 치료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 해법을 불교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법구경의 안심법문
힐링을 이야기하는 국민멘토스님들의 이야기는 듣는 이로 하여금 공감을 일으킨다. 모두 현실적인 삶과 직결된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문제의 근원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괴로움’이다. 괴롭기 때문에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멘토스님들이 말하지 않더라도 힐링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경전 속에 있다. 초기경전을 열어 보면 모두 해법이 제시 되어 있는 것이다.
초기경전을 열어 보면 멘토스님의 법문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지금 당장 빠알리니까야를 열어 보면 된다. 단 몇 줄만 읽어도 안심(安心)이 된다. 안심법문이 별도로 필요치 않은 것이다. 불안했던 마음이 법구경 게송 몇 개 읽다 보면 이전의 마음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지금 상대방에 대한 분노와 원한이 절정에 달해 도저히 제어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 때 마다 멘토스님을 찾아 갈 수 없을 것이다. 그때 가장 가까이에 있는 법구경을 펼치면 된다. 24개의 주제 중에 17번째 품인 ‘분노의 품’이 있다. 그 중의 하나를 보면 다음과 같다.
Akkodhena jine kodhaṃ악꼬데나 지네 꼬당
asādhuṃ sādhunā jine 아사둠 사두나 지네
jine kadariyaṃ dānena 지네 까다리양 다네나
saccenā' likavādinaṃ삿쩨나 릴까와디낭.
분노를 여윔으로 분노를 이기고
착함으로 악함을 이겨야 한다.
보시로 인색을 이기고
진실로 거짓을 이겨야 한다. (Dhp 223)
상대방이 화를 내어 화를 유발하였을 때 함께 화를 내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분노하는 자는 분노를 여윈자에게 패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런 원리는 두 번째 줄에서 같이 악한 자가 선한 자에게 패하게 마련인 것과 같다. 그리고 세 번째 줄에서 인색한 사람은 소유와 관련하여 관대한 사람에게 패하게 마련이고, 네 번째 줄에서 거짓을 말하는 자는 진실을 말하는 자에게 반드시 패하게 마련이라 하였다.
이전 마음이 되도록
“분노를 여윔으로 분노를 이기고 (Akkodhena jine kodhaṃ)”에 대한 더 구체적인 게송이 상윳따니까야에 있다. 다음과 같은 게송이다.
분노하지 않는 님, 길들여진 님에게
올바로 사는 님, 바른 앎으로 해탈한 님,
고요한 그와 같은 님에게
어떻게 분노가 생겨나겠는가?
분노하는 자에게 다시 분노하는 자는
더욱 악한 자가 될 뿐,
분노하는 자에게 더 이상 화내지 않는 것이
이기기 어려운 싸움에 승리하는 것이네.
다른 사람이 분노하는 것을 알고
새김을 확립하고 마음을 고요히 하는 자는
자신만이 아니라 남을 위하고
그 둘 다를 위하는 것이리.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
모두를 치료하는 사람을
가르침을 모르는 자들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네. (S7:2)
부처님 당시 고대인도의 지배계층인 브라만에서 부처님의 교단으로 출가자가 속출하였다. 유력 가문의 브라만이 부처님에게 화풀이를 하자 부처님이 게송으로 답한 것이다.
이와 같이 법구경이나 상윳따니까야 게송 몇 개만 접해도 화가 났던 마음은 이전 마음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안심(安心)이 된다. 그런 면에 있어서 빠알리니까야는 힐링멘토나 다름 없다.
버려지는 것과 얻어지는 것
그런데 게송을 읽는 것 보다 더 적극적인 방법이 있다. 그것은 선정삼매에 드는 것이다. 선정삼매에 들면 어떤 이점이 있을까? 맛지마니까야에 다음과 같은 사리뿟따 존자의 말이 있다.
“벗이여, 첫 번째 선정에서 다섯 가지 요소가 버려지는 대신 다섯 가지 요소가 성취됩니다. 벗이여, 이 세상에서 첫 번째 선정을 성취한 수행승에게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이 버려지고, 분노가 버려지고, 해태와 혼침이 버려지고, 흥분과 회한이 버려지고, 의심이 버려지는 대신, 사유가 성취되고, 숙고가 성취되고, 희열이 성취되고, 행복이 성취되고, 마음의 통일이 성취됩니다. 벗이여, 첫 번째 선정에서 이와 같은 다섯 가지 요소가 버려지는 대신 이와 같은 다섯 가지 요소가 성취됩니다.”
(마하웨달라경-Mahāvedalla Sutta-교리문답의 큰 경, 맛지마니까야 M43, 전재성님역)
선정삼매의 이익에 대한 것이다. 사리뿟따 존자가 말하기를 좌선을 하면 버려지는 것과 얻어지는 것이 있다고 한다. 이를 표로 만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선정에서 버려 지는 것과 얻어 지는 것
N0
버려 지는 것
얻어 지는 것
1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kāmāchanda)
사유(尋, vitakka)
2
분노(vyāpāda)
숙고(伺, vicāra)
3
해태와 혼침(thīna-middha)
희열(喜, piīti)
4
흥분과 회한(uddhacca-kukucca)
행복(樂, sukha)
5
의심(vicikicchā)
마음의 통일(心一境, cittassekaggatā)
참선을 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행복해지기 위해서이다. 더 구체적으로 희열과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이다. 만일 다리를 꼬고 오랫동안 앉아 있는 것이 고행이라면 참선을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통일되어 희열과 행복, 평온을 맛 보기 때문에 참선을 하려는 것이다.
참선을 하는 더 근본적인 목적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kāmāchanda), 분노(vyāpāda), 해태와 혼침(thīna-middha), 흥분과 회한(uddhacca-kukucca), 의심(vicikicchā)이렇게 다섯 가지 장애가 일어 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참선을 하게 되면 마음이 하나의 대상으로 집중 되기 때문에 다섯 가지 해로운 마음은 이전의 마음이 되어 버려서 안심(安心)이 된다. 그리고 희열과 행복감을 맛본다는 것이다.
신들과 인간의 이익과 안녕과 행복을 위하여
그러나 참선만으로 괴로움을 근원적으로 해결 할 수 없다. 일시적으로 행복을 맛 볼 수 있지만 아직 해결하지 못한 괴로움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누구든지 괴로움의 바다에서 허덕이게 된다. 이를 잘 표현한 말이 소까빠리데와둑카도마낫수빠야사(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라는 복합어이다. 12연기 정형구에서 볼 수 있다. 이말은 소까(Soka, 슬픔), 빠리데와(parideva, 비탄), 둑카(dukkha, 고통), 도마낫사(domanassa, 근심), 우빠야사(upāyāsā, 절망)의 복합어이다.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나는 것이다.
괴로움은 누구든지 피할 수 없다. 그래서 부처님은 괴로움에서 영원히 해방될 수 있는 방법을제시 하였다. 그 방법은 사성제이다. 그런데 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tasmātiha bhikkhave ye te 2 mayā dhammāabhiññā desitā, te vo sādhukaṃ uggahetvāāsevitabbā bhāvetabbā bahulīkātabbā yathayidaṃ [PTS Page 120] [\q 120/] brahmacariyaṃ addhaniyaṃ assa ciraṭṭhitikaṃ. Tadassa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ṃ
katame ca te bhikkhave dhammā mayāabhiññā3 desitā, ye vo4 sādhukaṃ uggahetvāāsevitabbā bhāvetabbā bahulīkātabbā yathayidaṃ brahmacariyaṃ addhaniyaṃ assa ciraṭṭhitikaṃ. Tadassa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ṃ. Seyyathīdaṃ,
Ime kho bhikkhave dhammā mayā abhiññā desitā. Te vo sādhukaṃ uggahetvāāsevitabbā bahulīkātabbā yathāyidaṃ brahmacariyaṃ addhaniyaṃ assa ciraṭṭhitikaṃ, tadassa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nti. "
[세존]
“수행승들이여, 나는 가르침을 곧바로 알아 설했는데, 그대들은 그것을 잘 배워서 곧 청정한 삶이 오랫동안 지속되도록, 많은 사람의 안녕을 위하여,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불쌍히 여겨, 신들과 인간의 이익과 안녕과 행복을 위하여, 섬기고 닦고 반복해서 실천해야 한다.
수행승들이여, 내가 어떠한 가르침을 곧바로 알아 설했는데, 그대들이 그것을 잘 배워서 곧 청정한 삶이 오랫동안 지속되도록, 많은 사람의 안녕을 위하여,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불쌍히 여겨, 신들과 인간의 이익과 안녕과 행복을 위하여, 섬기고 닦고 반복해서 실천해야 하는 것인가?
예를 들어 네 가지 새김의 토대, 네 가지 올바른 노력, 네 가지 신통의 기초, 다섯 가지 능력, 다섯 가지 힘, 일곱 가지 깨달음의 고리, 여덟 가지 고귀한 길이다.
수행승들이여, 내가 이러한 가르침을 곧바로 알아 설했는데, 그대들이 그것을 잘 배워서 곧, 청정한 삶이 오랫동안 지속되도록, 많은 사람들의 안녕을 위하여,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불쌍히 여겨, 신들과 인간의 이익과 안녕과 행복을 위하여, 섬기고 닦고 반복해서 실천해야 한다.”
(마하빠리닙바나경-Mahā Parinibbāna Sutta-완전한 열반의 큰 경, 디가니까야 D16, 전재성님역)
불교의 목적은 무엇일까? 누군가는 이고득락이라 한다. 현재의 고통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는 것이라 한다. 그런 즐거움에 대하여 행복이라 하여 현생의 행복, 내생의 행복, 궁극의 행복이라 한다. 모두 맞는 말이다. 빠알리니까야에 따르면 부처님이 그렇게 말씀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궁극적 목적에 대하여 더 비중을 두었다. 해탈과 열반의 실현을 말한다. 그래서 다시는 태어남 없는 불사의 완전한 열반을 설하신 것이다. 그래서 어느 경(sutta)이나 품(vagga)에서도 일상적인 행복을 이야기 하지만 결론적으로 항상 ‘열반’으로 마무리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결론은 열반
왜 열반으로 귀결되는가? 테라와다 불교의 예불문으로 사용되는 라따나경(보배경, Sn2.1)에서 “현자들은 등불처럼 꺼져서 열반에 드시나니(Nibbanti dhīrā yathāyampadīpo)”라 하였고, 멧따경(자애경, Sn1.8)에서도 “결코 다시 윤회에 들지 않을 것이옵니다.(na hi jātu gabbhaseyyaṃ punaretī)”라고 말씀 하신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또 망갈라경(길상경, Sn2.4)에서 “거룩한 진리를 관조하여 열반을 이루니(ariyasaccānadassanaṃ Nibbānasacchikiriyā ca)”라 하여 역시 열반의 실현으로 마무리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처럼 어느 경에서나 어느 품에서나 최종목표는 열반의 실현이다.
마하빠리닙바나경에서도 역시 열반의 실현을 위하여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였다. 그것은 37조도품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일곱 가지 깨달음의 길에 대한 것이다. 즉, 사념처(cattāro satipaṭṭhānā), 사정근(cattāro sammappadhānā), 사신족 (cattāro iddhipādā), 오근(pañcindriyāni), 오력(pañcabalāni), 칠각지(Satta bojjhaṅgā), 성스런 팔정도(ariyo aṭṭhaṅgiko maggo)이다.
전도선언의 목적은?
부처님은 전도선언에서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하여, 많은 사람들의 안락을 위하여, 세상을 불쌍히 여겨 하늘사람과 인간의 이익과 안락을 위하여 길을 떠나라.(S4;5)”라 하였다. 그래서 처음도, 중간도, 끝도 좋은 가르침을 설하라 하였다. 이런 가르침이 단지 뭇삶들의 일상적인 행복에 한정된 것일까?
마하빠리닙바나경에서 보여지는 문구에 따르면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실현은 궁극적으로 열반을 향하도록 되어 있다. 이는 다음과 같은 부처님의 말씀으로 알 수 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어떠한 커다란 강이든 예를 들어 갠지즈 강, 야무나 강, 아찌라바띠 강, 싸라부 강, 마히 강이든 그들 모든 강은 동쪽으로 향하고 동쪽으로 기울고 동쪽으로 들어간다. 수행승들이여, 여덟가지 고귀한 길을 닦고 여덟 가지 고귀한 길을 익히면, 이와 같이 수행승은 열반으로 향하고 열반으로 나아가고 열반으로 들어 간다.
팔정도를 예로 든 것이다. 다섯 개의 강이 하나로 모여 동쪽으로 흘러 바다에 이르듯이, 팔정도를 닦고 익히면 열반으로 향하고 열반에 이를 것이라 한다.
이는 팔정도 뿐만 아니라 칠각지, 사념처 등 37조도품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신들과 인간의 이익과 안녕과 행복을 위하여 일곱 가지 깨달음의 길, 즉 37조도품을 닦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 자체가 뭇삶들을 위한 일이라는 것이다. 부처님이 설한 가르침을 믿고 그대로 실천하여 부처님이 체험한 경지에 이르렀을 때 부처님이 바라는 바, 즉 전도선언한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본다.
“우주공간이 존재하고 중생이 남아 있는 한”
날씨가 따뜻해서인지 길거리에 전도사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길이면 어디든지 어김없이 전도사들을 볼 수 있다. 아예 길을 막고 한사람 한사람씩 검문하듯이 종이를 나누어 주기도 한다. 대부분 받지 않고 받더라도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 끝까지 들고 있는 경우는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들이나 어린애 들이다. 이처럼 타종교인들은 자신의 종교를 알리기에 매우 적극적이다.
이에 반하여 불교인들은 길거리 전도가 없다. 대승보살정신을 구현하려면 기독인들 못지 않게 전도에 열을 올려야 하나 전혀 볼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상과 현실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우주공간이 존재하고 중생이 남아 있는 한 나 역시 여기 남아서 세상의 고난을 없애도록 하소서!”라고 외친 ‘산띠데바’의 보살정신이라면 누구나 길거리 전도를 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어떻게 전도해야 하나
길거리 전도에 대하여 대하여 목사들도 부정적인 의견이 많다. 물고기를 잡으려고 판대기를 내려치는 것과 같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물고기는 다 도망가고 피래미 몇 마리 잡힐지 모르기 때문이라 한다.
그렇다면 가장 올바른 포교는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의 변화된 모습을 주변에 보여 주는 것이다. 그래서 주변사람들로 하여금 같은 종교의 일원이 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모습에 대한 표현이 빠알리니까야에 보인다. 맛지마니까야에서 랏타빨라가 “세존께서 가르치신 가르침을 알면 알수록, 재가에 살면서 궁극적으로 원만하고 궁극적으로 청정하고 소라껍질처럼 잘 연마된 청정한 삶을 살기가 쉽지 않다. 자, 나는 머리와 수염을 깎고 가사를 입고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는 것이 어떨까?(M82)”일 것이다.
청정한 삶을 살아 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 승가의 일원이 되고 싶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재가자일지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여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면 관심을 끌게 될 것이다. 그렇게 무르익었을 때 말한디로 상대방을 끌어 당길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국민멘토는
국민멘토라 불리우는 네 분의 스님들이 27일부터 조계사에서 어떤 치유대책을 내 놓을지 궁금하다. 법보신문에서 ‘국민멘토’라는 거창한 명칭을 부여 하였는데 그에 걸 맞는 법문을 기대해 본다. 사실 국민멘토는 많이 있다. 법문잘하기로 유명한 스님이나 재가의 법사들 역시 국민멘토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진정한 국민멘토는 부처님일 것이다.
비록 부처님이 지금 계시지는 않지만 빠알리니까야를 통하여 접할 수 있다. 책만 열면 부처님을 면전에서 보는 것 같이, 바로 옆에서 들려 주는 것 같은 생생한 가르침이 고스란히 실려 있는 것이다. 특히 괴로움에 처한 사람들,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특효약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슬픔(soka), 비탄(parideva), 고통(dukkha), 근심(domanassa), 절망(upāyāsā )에 처해 있다. 이는 존재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부처님의 처방이 사성제이다.
사성제는 결국 열반으로 귀결된다. 열반만이 궁극적으로 뭇삶들의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 그런 면으로 본다면 불교의 궁극적 목적은 열반이라 아니할 수 없다.
열반타령한다고
그러나 열반을 너무 이야기 하면 비판 받는 것이 현실이다. 재가자가 맨날 ‘열반타령’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열반은 출가자가 추구하는 목표이고 재가자는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충실하는 것이라 말한다.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은 모든 종교의 공통적인 목표이다.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은 어느 종교이든지 베이스로 깔고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불교 역시 행복을 베이스로 깔고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유일신교의 경우 독선적 교리와 배타적 구원관을 특징으로 한다. 그래서 자신의 신을 믿는 자만이 구원 받아 천국에 태어나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불교는 행복 다음에 무엇인가? 대승불교라면 극락왕생을 발원할 것이다. 좀 더 신심 있는 불자라면 원생을 발원할 것이다. 보살이 되어 다시 태어나 지옥문이 닫힐 때 까지, 허공이 다 할 때까지 남김 없이 제도하리라 다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무어라 하셨을까? 다름아닌 열반을 말씀 하셨다. 그래서 어느 경이나 품이든지 행복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난 다음 열반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라따나경, 멧따경, 망갈라경에서 볼 수 있다.
만일 부처님의 가르침에 열반이 빠져 있다면 어떻게 될까? 앙꼬 없는 빵과 같이 밋밋하기 그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불교가 오늘날 까지 전승되어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법의 바퀴가 오늘날 까지 굴러 온 것은 가르침을 실천하여 부처님의 체험한 경지에 오른 성자들이 출현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신들과 인간의 이익과 안녕과 행복을 위하여, 섬기고 닦고 반복해서 실천해야 한다.(D16)”라고 하였다. 승가가 존속해야 함을 말한다. 성스런 승가가 있어야 불자들은 믿고 의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승가의 일원은 복전이기 때문에 불자들에게 공덕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래서 부처님은 중생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전도의 길을 떠나라고 말씀하셨다고 본다.
출가자이든 재가자이든
부처님의 가르침에 차별이 있을 수 없다. 재가자라 하여 앙굿따라니까야를 위주로 읽어야 한다는 법이 없다. 핵심을 가로지르는 상윳따니까야를 읽어도 무방한 것이다. 또 재가자라 열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에 대하여 비현실적으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아 보인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출재가의 구분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모든 가르침은 결국 열반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열반만이 불교의 구원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빠알리 니까야에서 열반에 대한 구절을 보면 힐링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무상하다. 출가자 역시 무상하다. 출가하였다고 하여 반드시 출가로 일생을 마치리라는 보장이 없다. 환속하여 재가로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재가자의 삶 역시 무상하다. 재가자라 하여 죽을 때까지 재가자로서의 삶을 살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출가하여 승가의 일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범부로 살다 보면 출가자가 재가자가 되고, 재가자가 출가자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출가자이든 재가자이든 열반을 목표로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 본다.
2013-05-21
진흙속의연꽃
원효 성사님 말씀 몇 개만 인용하죠. "大乘廣智란 평등성지를 말한다. 이 지혜는 중생을 널리 제도하고 소승을 향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무아(無我)에서 즐겁게 지내기 때문에 아(我)가 아닌 것이 없다. 아(我)가 아닌 것이 없기 때문에 평등하게 섭수하지 않음이 없다. 이러한 한몸(同體)이라는 지혜의 힘으로써 무변한 중생을 널리 실어 모두 함께 무상보리에 이르도록 한다. 그러므로 대승광지라 이름한다." "비유하면, 세계가 무변하나 허공의 밖을 벗어나지 않는 것처럼 이와 같은 만 가지 경계는 끝이 없지만 모두가 一心 안에 들어 있다. 부처님의 지혜는 相을 여의고 마음의 근원에 돌아가니 지혜와 일심이 합해져서 하나가 되니 둘이 없다. 始覺으로써 곧 本覺과 하나가 된다." " '이 마음이 바로 일체의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포괄한다'고 한 것은 대승법이 소승법과 다름을 나타내니, 참으로 이 마음이 모든 법을 통섭하며, 모든 법의 자체가 오직 이 一心이기 때문이다. 이는 소승에서 일체의 모든 법이 각각 자체가 있는 것과는 다르다. 그러므로 일심을 대승법이라 말하는 것이다." "이 일심의 體가 本覺(original enlightenment)이지만 無明에 따라서 움직여 생멸을 일으키기 때문에, 이 생멸문에서 여래의 본성이 숨어 있어 나타나지 않는 것을 여래장이라 이름한 것이다." "생멸문 내에서 포괄한 理는 다시 理의 體가 생멸상을 떠났지만 또한 常住하는 성질을 지키지 아니하고, 무명의 緣을 따라서 생사에 유전하는 것이다. 이는 실로 물든 것이지만, 그러나 自性은 청정하므로 이 생멸문 중에서 佛性이니 本覺이니 하는 등의 이름을 임시로 세운 것이니, 이는 열반경이나 화엄경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중국-한국-일본에서는 여래장사상이 정식으로 성립되는 것이 원효대사의 다음 세대인 화엄종-3대 조사인 법장 이후로 알고 있어서요. 논서로서 여래장사상 확립의 시초가 되는 대승기신론은 한역 밖에 없어서, 또 저자인 마명보살에 대해서도 현대에 와서 많은 논란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5-6세기의 창작 논문이잖아요. 진제 번역의 대승기신론 내용에 여래장사상이라는 용어가 아직까지 직접 보이지는 않지만, 내용은 괜찮네요^^. 확실히 동양의 철학적 사유의 진보는 서양 철학 사유의 진도와는 게임이 안 되고요. 그런데 너무 어려워서 책 페이지가 잘 안 넘어가요. 시간 좀 걸리겠어요. 더구나 원효대사까지 가려면요.
또 괜찮은 여래장사상 개요에 관한 글들이나 링크 없으세요? 제가 본 몇 개는 좀 그렇네요. 아주 부정적 지식을 주네요!
님의 소개한 5개의 글들이 각각 어디에서 온 것인지 직접 밝히시거나 또는 링크 연결 가능할까요?
중국-한국-일본에서는 여래장사상이 정식으로 성립되는 것이 원효대사의 다음 세대인 화엄종-3대 조사인 법장 이후로 알고 있어서요. 논서로서 여래장사상 확립의 시초가 되는 대승기신론은 한역 밖에 없어서, 또 저자인 마명보살에 대해서도 현대에 와서 많은 논란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5-6세기의 창작 논문이잖아요. 진제 번역의 대승기신론 내용에 여래장사상이라는 용어가 아직까지 직접 보이지는 않지만, 내용은 괜찮네요^^. 확실히 동양의 철학적 사유의 진보는 서양 철학 사유의 진도와는 게임이 안 되고요. 그런데 너무 어려워서 책 페이지가 잘 안 넘어가요. 시간 좀 걸리겠어요. 더구나 원효대사까지 가려면요.
또 괜찮은 여래장사상 개요에 관한 글들이나 링크 없으세요? 제가 본 몇 개는 좀 그렇네요. 아주 부정적 지식을 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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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승
금강승Y
2013.05.29 17:08
수정|삭제|그리고 진제 역본에 "여래장사상"이라는 말은 없지만 "여래장"이라는 말은 여러 번 나오는데요, 몇 개만 옮기면 "일자체대 위일체법 진여평등부증감고 이자상대 위"如來藏" 구족무량성공덕고 삼자용대 능생일체세간출세간 선인과고" "심생멸자 의"如來藏"고 유생멸심 소위불생불멸 여생멸화합비일비이 명위아려야" "자성청정심의고 상락아정의고 청량불변자재의고 구족여시 과어항사 불리부단불이 부사의불법 내지만족 무유소소의고 명위"如來藏" 역명여래법신" "여시정법 무량공덕 즉시일심 갱무소념 시고만족 명위법신 "如來之藏" " 등등입니다. 혹시 "여래장사상"을 찾으시는 거라면 그런 단어는 없긴 합니다만... 같은 뜻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요... 참고로 불교용어 사전은 다음과 같더군요. http://studybuddha.tistory.com/entry/%EC%97%AC%EB%9E%98%EC%9E%A5%E5%A6%82%E4%BE%86%E8%97%8F 위키백과에는 다음과 같구요. "Wonhyo was most interested in, and affected by Tathāgatagarbha(여래장), Yogācāra(유식) and Hwaom(화엄) thought." 발보리심 합장', 'true', 'cmt'); return false;" href="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6UOF&articleno=16155570&admin=&refequery=%EC%A0%84%EB%8F%84%EC%84%A0%EC%96%B8#">신고
근데 몇 개 보셨는데 부정적 반응을 보이시는 걸로 봐서 제가 묘책이 있는 건 아닐 겁니다. 이게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취향차이??일 수도 있거든요. 물론 여래장 사상이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진제 역본에 "여래장사상"이라는 말은 없지만 "여래장"이라는 말은 여러 번 나오는데요, 몇 개만 옮기면 "일자체대 위일체법 진여평등부증감고 이자상대 위"如來藏" 구족무량성공덕고 삼자용대 능생일체세간출세간 선인과고" "심생멸자 의"如來藏"고 유생멸심 소위불생불멸 여생멸화합비일비이 명위아려야" "자성청정심의고 상락아정의고 청량불변자재의고 구족여시 과어항사 불리부단불이 부사의불법 내지만족 무유소소의고 명위"如來藏" 역명여래법신" "여시정법 무량공덕 즉시일심 갱무소념 시고만족 명위법신 "如來之藏" " 등등입니다. 혹시 "여래장사상"을 찾으시는 거라면 그런 단어는 없긴 합니다만... 같은 뜻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요... 참고로 불교용어 사전은 다음과 같더군요. http://studybuddha.tistory.com/entry/%EC%97%AC%EB%9E%98%EC%9E%A5%E5%A6%82%E4%BE%86%E8%97%8F 위키백과에는 다음과 같구요. "Wonhyo was most interested in, and affected by Tathāgatagarbha(여래장), Yogācāra(유식) and Hwaom(화엄) thought." 발보리심 합장
<금강승> 흔히 반야심경이나 화엄경을 양자물리학과 비교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비교해서 초기불교는 고전물리학에, 그리고 대승불교는 양자물리학에 해당한다고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물리학에 문외한이지만 논리적으로는 그럴 듯하다고 여겨집니다. 대승이 부처님을 부정한다는 것은 양자물리학이 고전물리학을 부정한다는 것과 논리적 유사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초불과 대불의 비교를 도스와 윈도우라고 하신 적 있으시죠. 지금은 조금 바뀌어 가시는 것으로 느껴지긴 하지만요. 도스의 진화형이 윈도우이고. 윈도우는 도스보다 훨씬 우월하죠? 그래서 도스는 지금 박물관에 가 있고요. 그럼 초불이 진화해서 대불이 된 건가요? 초불이 다시 옛날의 아함경 신세처럼 박물관으로 갈까요? 아님 대불이 갈까요?
고전물리학과 양자물리학. 분명 대승불교가 직접적으로 불-교를, 초기불교를 부정한다는 의미로 님이 생각하지 않으실 것은 저도 압니다. 님이 둘 다 비논리적 예를 잘못 든 것이겠죠. --- 양자물리학, 상대성이론의 현대물리학은 뉴턴의 고전물리학을 부정합니다.
지금 주제는 취향을 넘는 것 아닐까요? 취향 차이라고 하시니 망설여지네요. 그래도 다시 확인을 위해서 질문할 게요. 출발점은 아주 중요하고 또 불-교는 취향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생각되어서요.
질문1 = 불-교, 부처님의 가르침이 시대에 따라 “진화합니까?” 예전 님의 말씀들을 보면 그런 것 같아서요. ~ Yes ( ), No ( ) --------- 대불/조계종-선종에 몸 담고 계신 거의 대부분의 스님들은 그렇게 생각하실 것으로 여깁니다. --------- 반면 21세기에 니까야를 대하는 초불 애호가들의 경우 다르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고요. --------- 단멸론자들은 진화론 숭배자들이죠. 일부 대불 불자 분들의 오해를 넘어서 아예 초기불교를 곡해하고 있으니까요.
질문2 = 여래장 관련 글들에서의 일부 주장이지만, “여래장사상이 그 진화의 정점인가요?” 그리 생각하세요? ~ Yes ( ), No ( ) --------- 어떤 분은 이러데요. “여래장사상은 중관학과 유식학의 당연한 귀결이다!” 라고요. --------- 어떤 분들 중에 분명 원효대사도 끼이실 지, 아니실 지는 우리들도 같이 사유해 보아야겠죠?
줄 잘 타십시오^^. 시간을 두고 생각을 많이 해 보시라는 뜻입니다.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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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승
금강승Y
2013.05.29 19:14
수정|삭제|2. 여래장 사상이 진화의 정점인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가르키는 달은 같습니다. 원효 성사님께서는 그 손가락을 좋아하셨고 저도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님에게 권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이제 고전물리학-현대물리학, 도스-윈도우의 비유가 아닌 고전음악-현대음악의 비유로 갈아탔습니다. 이건 취향차이 맞죠?^0^ **이제는 제가 인용도 했으니 님이 이전 저의 질문에 대해서 대답하실 차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여래장사상은 중관학과 유식학의 당연한 귀결이다!”란 님의 말은 다음 글을 연상시키는데요?? $$$$$$$$$$ <대승불교는 초기불교의 논리적 귀결이다>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과 김성철
대승비불설에 대한 논란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승불교의 발생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2000여 년간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던 문제이다. {반야경}과 {화엄경}의 용궁 유래설, 유식불교의 정통성에 대한 교증(敎證)과 이증(理證), 밀교의 정통성을 입증하기 위한 장황한 설명. 이 모두가 대승이 불설임을 입증하기 위해 대승 측에서 벌인 논의들이다. 그러나 대승 내에서 이런 논의가 있었다는 사실로 인해 오히려 대승비불설이 반증된다고 일군의 불교학자들은 말한다. 한편, 대승을 옹호하는 학자들은, \'그렇다면 당신이 알고 있는 초기불교는 불설인가?\'라고 이들에게 되묻는다. 현존하는 4아함이나 5부 니까야 모두 불멸 후 수백 년 후에 취합, 편집된 것이기에 초기불전만을 불설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아함, 니까야와 대승불전의 편집 과정을 직접 목격하지 않는 이상, 누구나 동의하는 \'진정한 불설\'을 제시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과거에 편집되어 전승된 문헌들뿐이다. 따라서 대승의 정법성 여부에 대해 의견이 갈릴 경우, 사실이 아니라 그 흔적인 현존하는 문헌들에 토대를 두고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이번 논쟁에서 근본주의(Fundamentalism)적 불교관을 견지하는 분들이 대승을 비판하면서 문제로 삼은 내용은 기복과 다불사상의 비불교성, 그리고 대승 위경설이다. 대승의 기원에 대해서는, \'굴외(窟外) 결집이 있었다\'든지 \'후대에 편집되었다\'는 둥 여러 가지 학설이 분분하지만 이에 대해 아직 어떤 단언도 내릴 수 없다. 그러나 필자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대승불전이 설혹 후대에 편집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교리는 아함이나 니까야, 율장과 같은 초기불전의 가르침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대승불교는 초기불교의 논리적 귀결이다. 그러면 먼저 기복적 신행에 대해 검토해 보자. 우리는 초기불전 도처에서 기복과 작복의 가르침을 만날 수 있다. 부처님께서는 재가자를 대하실 때 해탈의 가르침 이전에 보시하고 계를 지키면 하늘에 태어난다는 가르침을 베푸셨다. 이를 차제설법이라고 부른다. 또, 대열반 이후 사리탑의 관리를 재가자에게 맡기심으로써 발복을 권하셨다. 부처님과 스님들께 공양물을 올리고 탑을 조성하며 사원을 건축하는 것이 복을 짓는 행위임은 초기불전 곳곳에서 강조된다. 물론 기복과 작복이 불교신행의 최종 목표는 아니다. 그러나 초기불전의 가르침에 의거할 경우, 기와불사, 법당불사, 가사불사 등을 위한 시주와 지계 등의 선업으로 인해 우리가 복을 받는다는 이치는 결코 부정될 수 없다. 설사 그것이 기복적 동기에서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그러나, 이러한 작복적 신행에만 머물려고 하는 마음가짐은 계도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다불·다보살사상에 대해 검토해 보자. 단적으로 말해, 초기불전에서 말하는 삼천대천세계설(三千大千世界說)과 일체지자설(一切智者說)을 종합할 경우, 현재 생존하신 타방의 부처님들께 기도를 올리는 대승적 신행이 충분히 도출될 수 있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들께서는 \'모든 것을 아는 분\'(一切智者)이시기에 우리의 존재를 아시고 우리의 기도에 감응하시고 우리의 공양을 받으시고 우리의 참회를 들어주신다. 이는 타방 보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또, 출가 구도하신 부처님의 현생이 아니라, 보살로 살아가신 부처님의 전생을 닮고자 할 경우 대승보살도가 도출된다. 셋째, 대승불전은 위경일까? 또, 그래서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일까? 역설적으로 말하면, 과거 대승시대의 전개와 함께 계속 새로운 경전들이 편집되었다는 사실, 또 그에 토대를 두고 계속 새로운 불교 사상이 탄생했다는 사실은 그 당시의 불교가 살아 숨쉬고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불교는 도그마가 아니기에 부처님 당시에도 교화 상대의 수준과 상황에 따라 다양한 가르침이 설시되었다. 불교의 이러한 응병여약, 대기설법의 정신은 불멸 후 약 1500년 간 면면히 살아 숨쉬며 새로운 불교사상들을 탄생시켜 왔던 것이다. 새롭게 편집된 대승경전과 이에 토대를 두고 새롭게 출현한 대승논서는 법신불의 대(對)-시대적 설법이었다. 그런데 이 시대의 우리는 과거 인도에서 발생했던 대승불교인 중관, 유식, 밀교, 중국에서 발생했던 천태, 화엄, 선, 정토 사상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 모두가 불멸 후 1500년 이전에 성립되었던 대승사상들이다. 불교역사 2500여 년 중, 정법과 상법과 말법의 시대마저 모두 끝나고 최근까지 1000년 동안 불교는 잠자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대승불교를 논할 때 우리는 위경의 출현을 경계할 것이 아니라, 위경이 탄생하지 못하고, 새로운 대승사상이 탄생하지 못했던 지난 1000년간의 나태(懶怠)를 오히려 통탄해야 할 것이다. $$$$$$$$$$$ 근데 교수님 생각은 님 취향입니까?? 아니면 교수님이 틀린 것입니까??', 'true', 'cmt'); return false;" href="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6UOF&articleno=16155570&admin=&refequery=%EC%A0%84%EB%8F%84%EC%84%A0%EC%96%B8#">신고
1. 손가락이 진화합니다. 달은 같습니다. 2. 여래장 사상이 진화의 정점인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가르키는 달은 같습니다. 원효 성사님께서는 그 손가락을 좋아하셨고 저도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님에게 권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이제 고전물리학-현대물리학, 도스-윈도우의 비유가 아닌 고전음악-현대음악의 비유로 갈아탔습니다. 이건 취향차이 맞죠?^0^ **이제는 제가 인용도 했으니 님이 이전 저의 질문에 대해서 대답하실 차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여래장사상은 중관학과 유식학의 당연한 귀결이다!”란 님의 말은 다음 글을 연상시키는데요?? $$$$$$$$$$ <대승불교는 초기불교의 논리적 귀결이다>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과 김성철
대승비불설에 대한 논란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승불교의 발생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2000여 년간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던 문제이다. {반야경}과 {화엄경}의 용궁 유래설, 유식불교의 정통성에 대한 교증(敎證)과 이증(理證), 밀교의 정통성을 입증하기 위한 장황한 설명. 이 모두가 대승이 불설임을 입증하기 위해 대승 측에서 벌인 논의들이다. 그러나 대승 내에서 이런 논의가 있었다는 사실로 인해 오히려 대승비불설이 반증된다고 일군의 불교학자들은 말한다. 한편, 대승을 옹호하는 학자들은, '그렇다면 당신이 알고 있는 초기불교는 불설인가?'라고 이들에게 되묻는다. 현존하는 4아함이나 5부 니까야 모두 불멸 후 수백 년 후에 취합, 편집된 것이기에 초기불전만을 불설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아함, 니까야와 대승불전의 편집 과정을 직접 목격하지 않는 이상, 누구나 동의하는 '진정한 불설'을 제시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과거에 편집되어 전승된 문헌들뿐이다. 따라서 대승의 정법성 여부에 대해 의견이 갈릴 경우, 사실이 아니라 그 흔적인 현존하는 문헌들에 토대를 두고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이번 논쟁에서 근본주의(Fundamentalism)적 불교관을 견지하는 분들이 대승을 비판하면서 문제로 삼은 내용은 기복과 다불사상의 비불교성, 그리고 대승 위경설이다. 대승의 기원에 대해서는, '굴외(窟外) 결집이 있었다'든지 '후대에 편집되었다'는 둥 여러 가지 학설이 분분하지만 이에 대해 아직 어떤 단언도 내릴 수 없다. 그러나 필자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대승불전이 설혹 후대에 편집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교리는 아함이나 니까야, 율장과 같은 초기불전의 가르침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대승불교는 초기불교의 논리적 귀결이다. 그러면 먼저 기복적 신행에 대해 검토해 보자. 우리는 초기불전 도처에서 기복과 작복의 가르침을 만날 수 있다. 부처님께서는 재가자를 대하실 때 해탈의 가르침 이전에 보시하고 계를 지키면 하늘에 태어난다는 가르침을 베푸셨다. 이를 차제설법이라고 부른다. 또, 대열반 이후 사리탑의 관리를 재가자에게 맡기심으로써 발복을 권하셨다. 부처님과 스님들께 공양물을 올리고 탑을 조성하며 사원을 건축하는 것이 복을 짓는 행위임은 초기불전 곳곳에서 강조된다. 물론 기복과 작복이 불교신행의 최종 목표는 아니다. 그러나 초기불전의 가르침에 의거할 경우, 기와불사, 법당불사, 가사불사 등을 위한 시주와 지계 등의 선업으로 인해 우리가 복을 받는다는 이치는 결코 부정될 수 없다. 설사 그것이 기복적 동기에서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그러나, 이러한 작복적 신행에만 머물려고 하는 마음가짐은 계도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다불·다보살사상에 대해 검토해 보자. 단적으로 말해, 초기불전에서 말하는 삼천대천세계설(三千大千世界說)과 일체지자설(一切智者說)을 종합할 경우, 현재 생존하신 타방의 부처님들께 기도를 올리는 대승적 신행이 충분히 도출될 수 있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들께서는 '모든 것을 아는 분'(一切智者)이시기에 우리의 존재를 아시고 우리의 기도에 감응하시고 우리의 공양을 받으시고 우리의 참회를 들어주신다. 이는 타방 보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또, 출가 구도하신 부처님의 현생이 아니라, 보살로 살아가신 부처님의 전생을 닮고자 할 경우 대승보살도가 도출된다. 셋째, 대승불전은 위경일까? 또, 그래서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일까? 역설적으로 말하면, 과거 대승시대의 전개와 함께 계속 새로운 경전들이 편집되었다는 사실, 또 그에 토대를 두고 계속 새로운 불교 사상이 탄생했다는 사실은 그 당시의 불교가 살아 숨쉬고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불교는 도그마가 아니기에 부처님 당시에도 교화 상대의 수준과 상황에 따라 다양한 가르침이 설시되었다. 불교의 이러한 응병여약, 대기설법의 정신은 불멸 후 약 1500년 간 면면히 살아 숨쉬며 새로운 불교사상들을 탄생시켜 왔던 것이다. 새롭게 편집된 대승경전과 이에 토대를 두고 새롭게 출현한 대승논서는 법신불의 대(對)-시대적 설법이었다. 그런데 이 시대의 우리는 과거 인도에서 발생했던 대승불교인 중관, 유식, 밀교, 중국에서 발생했던 천태, 화엄, 선, 정토 사상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 모두가 불멸 후 1500년 이전에 성립되었던 대승사상들이다. 불교역사 2500여 년 중, 정법과 상법과 말법의 시대마저 모두 끝나고 최근까지 1000년 동안 불교는 잠자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대승불교를 논할 때 우리는 위경의 출현을 경계할 것이 아니라, 위경이 탄생하지 못하고, 새로운 대승사상이 탄생하지 못했던 지난 1000년간의 나태(懶怠)를 오히려 통탄해야 할 것이다. $$$$$$$$$$$ 근데 교수님 생각은 님 취향입니까?? 아니면 교수님이 틀린 것입니까??
<서론> 대승불교의 사상은 중관사상과 유식학으로 대별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불교계에서 유력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의 불교 철학에서도 이 두 사상이 주류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후에 두 사상의 영향력을 가장 잘 담은 사상으로 여래장사상을 들 수가 있는데, 극단적으로는 여래장은 중관학과 유식학의 당연한 귀결이라고까지 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래장이라는 것은 반야의 깨달음(空)에 대한 긍정적인 측면이며 알라야식 사상의 발전적 측면이라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 대두되고 있는 소위 \'비판불교\'는 여래장의 이러한 전통적 측면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아트만론과 유사하다는 측면만 부각하여 \'여래장은 불교가 아니다.\'라고 까지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단정은 불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자신의 한계만을 드러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불교라는 것은 고정된 이론이 아니고, 중생들의 근기에 따라서 방편적으로 설해지는 것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설 방법이 바로 석존 당시부터 행해졌던 대기설법(對機說法)의 방편인 것이다.
지금 우리 여래장사상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맞죠? 님 글은 찬찬히 더 읽어보고 제 의견은 좀 있다가 말씀드릴께요. 김성철교수님 글도 한번 더 읽어 볼게요. 차제설법이라는 흔히 쓰지 않는 좋은 단어도 있네요. 그 동안 심심하실 것 같으시니 대화용으로 저도 글 하나 미리 드리겠습니다. ======================================================================== 여래장사상의 성립과 사상적 의미
<서론> 대승불교의 사상은 중관사상과 유식학으로 대별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불교계에서 유력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의 불교 철학에서도 이 두 사상이 주류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후에 두 사상의 영향력을 가장 잘 담은 사상으로 여래장사상을 들 수가 있는데, 극단적으로는 여래장은 중관학과 유식학의 당연한 귀결이라고까지 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래장이라는 것은 반야의 깨달음(空)에 대한 긍정적인 측면이며 알라야식 사상의 발전적 측면이라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 대두되고 있는 소위 '비판불교'는 여래장의 이러한 전통적 측면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아트만론과 유사하다는 측면만 부각하여 '여래장은 불교가 아니다.'라고 까지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단정은 불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자신의 한계만을 드러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불교라는 것은 고정된 이론이 아니고, 중생들의 근기에 따라서 방편적으로 설해지는 것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설 방법이 바로 석존 당시부터 행해졌던 대기설법(對機說法)의 방편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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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일곱~Y
2013.05.30 10:51
수정|삭제| 질문1에 대해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시대에 따라 진화한다”고 생각한다는 의미이시네요.
님이 저에게 그러셨죠. 뭘 못 믿느냐고요? 그래요. 그런데 믿게 된 것이 생겼죠. 우다나경의 사성제-열반 선언, 기억 나시죠?
제가 님보다 더 단순한 것 같아요. 저는 오로지 부처님의 그 선언을 의지하면서, 그러한 가르침에 의거하여 님을 대하니까요.
여래장사상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다, 여래장사상은 사실 잘 모른다 라고 이해해야 되나요? ~ 질문2에 대한 답으로는요?
아님 너나 공부해라 이건가요? 답변 형태가 또 저만 외롭게, 홀로 공부해야 된다는 예감^^을 느끼게 하네요. 답이 너무 빨라요.
달은 같다. 어느 쪽으로 올라도 모두 같은 산꼭대기에 이른다. 정상에서는 경치가 여럿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보던 노래입니다. 제목이 아마 ‘사기꾼들의 합창’이던가요, 잘 기억 안 나네요^^.
세상에 믿을 놈 없더라, 세상에 믿을 지식 없더라, 부처님의 가르침 이외에는. 이제까지의 제 인생 경험이네요.
부처님이 가르쳐 주신 유일한 길 말고는 그 어느 것도 길이 아니어라. 이것은 지금부터의 제 노래이고요. (저, 불자 맞죠^^!)
달은 같지 않다. 길 잘 골라라. ~ 이런 신념으로 이야기를 하니 님에게는 역설적으로 제가 뭘 못 믿는 사람으로 비추었나 봅니다.
지금은 역전된 것 같아요. 제 눈에 이제는 님이 온통 의심으로만 가득 찬 분으로 보이시니 말입니다. 원래 뭘 잘 못 믿으세요?
<어떤 분> 여래장사상은 중관학과 유식학의 당연한 귀결이다 (중관학/유식학/여래장사상은 대승불교이다)
<금강승님의 암시> 그러면, 대승불교의 귀결인 여래장사상도 너무 당연한 초기불교의 논리적 귀결이 아닐까?
--- 그리 간단해 보이지는 않는데요. 한번 가 봅시다. 그런데 다시 한번 정리하고 갑시다.
고전음악과 현대음악 ~ 초기불교와 대승불교의 차이는 취향이다. 설마 이 말씀은 아니시죠?
혹시 정말이면 더 이상의 대화는 의미가 없는 저의 결례가 되는 것이고요. (그 동안 것 다 물어내려면 독박인데 ~ 큰 일이다!)
그러면 그 동안 님의 비판-반론의 주장은 실 없는 소리가 되는 것 아닌가요? 취향을 가지고 비판-반론하기는 좀 그렇지 않나요?
--- 보세요, 이렇게 되면 님의 이번 말씀도 자기-모순적이 되는 것이고요 최근 신출귀몰하고 있는 어떤 분처럼이요.
초기불교와 대승불교의 차이는 취향이 아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님이 여래장-불교를 옹호하는 이상으로, 저는 여래장-불교는 분명 뭔가 문제가 있다, 이것도 불교고 저것도 불교라고 쉽게 넘어가지 못하겠다 하고 한번 같이 사유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만약 님의 관점이 정말 그렇다면, 조금 힘이 빠지네요. 초기불교와 대승불교가 고전음악과 현대음악의 취향 차이입니까?
<<< 금강승님, 아직 답글 쓰지 말아 주세요. >>>', 'true', 'cmt'); return false;" href="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6UOF&articleno=16155570&admin=&refequery=%EC%A0%84%EB%8F%84%EC%84%A0%EC%96%B8#">신고
손가락이 진화한다 ~ 아주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질문1에 대해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시대에 따라 진화한다”고 생각한다는 의미이시네요.
님이 저에게 그러셨죠. 뭘 못 믿느냐고요? 그래요. 그런데 믿게 된 것이 생겼죠. 우다나경의 사성제-열반 선언, 기억 나시죠? 제가 님보다 더 단순한 것 같아요. 저는 오로지 부처님의 그 선언을 의지하면서, 그러한 가르침에 의거하여 님을 대하니까요.
여래장사상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다, 여래장사상은 사실 잘 모른다 라고 이해해야 되나요? ~ 질문2에 대한 답으로는요? 아님 너나 공부해라 이건가요? 답변 형태가 또 저만 외롭게, 홀로 공부해야 된다는 예감^^을 느끼게 하네요. 답이 너무 빨라요.
달은 같다. 어느 쪽으로 올라도 모두 같은 산꼭대기에 이른다. 정상에서는 경치가 여럿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보던 노래입니다. 제목이 아마 ‘사기꾼들의 합창’이던가요, 잘 기억 안 나네요^^. 세상에 믿을 놈 없더라, 세상에 믿을 지식 없더라, 부처님의 가르침 이외에는. 이제까지의 제 인생 경험이네요. 부처님이 가르쳐 주신 유일한 길 말고는 그 어느 것도 길이 아니어라. 이것은 지금부터의 제 노래이고요. (저, 불자 맞죠^^!)
달은 같지 않다. 길 잘 골라라. ~ 이런 신념으로 이야기를 하니 님에게는 역설적으로 제가 뭘 못 믿는 사람으로 비추었나 봅니다. 지금은 역전된 것 같아요. 제 눈에 이제는 님이 온통 의심으로만 가득 찬 분으로 보이시니 말입니다. 원래 뭘 잘 못 믿으세요?
<김성철교수> 대승불교는 초기불교의 논리적 귀결이다 <어떤 분> 여래장사상은 중관학과 유식학의 당연한 귀결이다 (중관학/유식학/여래장사상은 대승불교이다) <금강승님의 암시> 그러면, 대승불교의 귀결인 여래장사상도 너무 당연한 초기불교의 논리적 귀결이 아닐까? --- 그리 간단해 보이지는 않는데요. 한번 가 봅시다. 그런데 다시 한번 정리하고 갑시다.
고전음악과 현대음악 ~ 초기불교와 대승불교의 차이는 취향이다. 설마 이 말씀은 아니시죠? 혹시 정말이면 더 이상의 대화는 의미가 없는 저의 결례가 되는 것이고요. (그 동안 것 다 물어내려면 독박인데 ~ 큰 일이다!) 그러면 그 동안 님의 비판-반론의 주장은 실 없는 소리가 되는 것 아닌가요? 취향을 가지고 비판-반론하기는 좀 그렇지 않나요? --- 보세요, 이렇게 되면 님의 이번 말씀도 자기-모순적이 되는 것이고요 최근 신출귀몰하고 있는 어떤 분처럼이요.
초기불교와 대승불교의 차이는 취향이 아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님이 여래장-불교를 옹호하는 이상으로, 저는 여래장-불교는 분명 뭔가 문제가 있다, 이것도 불교고 저것도 불교라고 쉽게 넘어가지 못하겠다 하고 한번 같이 사유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만약 님의 관점이 정말 그렇다면, 조금 힘이 빠지네요. 초기불교와 대승불교가 고전음악과 현대음악의 취향 차이입니까? <<< 금강승님, 아직 답글 쓰지 말아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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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승
금강승Y
2013.05.30 11:52
수정|삭제|진화한다가 싫으시면 필요에 의해 변화한다는 어떠세요? 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님이 저에게 그러셨죠. 뭘 못 믿느냐고요? 그래요. 그런데 믿게 된 것이 생겼죠. 우다나경의 사성제-열반 선언, 기억 나시죠?" 여기서 제가 님한테 남의 말 안 믿냐고 한 것은 제 말을 안 믿냐고 한 것이지 부처님 말씀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맥락이 다릅니다. 물론 저는 당연히 우다나의 말씀을 믿습니다. 이 말 또 못 믿으시나요? 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달은 같다. 어느 쪽으로 올라도 모두 같은 산꼭대기에 이른다. 정상에서는 경치가 여럿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보던 노래입니다. 제목이 아마 ‘사기 꾼들의 합창’이던가요" 님은 "사기꾼들의 합창"이라고 하는지 모르지만 저는 "화쟁사상", "회통불교"라고 지칭합니다. 님이 또 이렇게 말씀하시네요. "지금은 역전된 것 같아요. 제 눈에 이제는 님이 온통 의심으로만 가득 찬 분으로 보이시니 말입니다. 원래 뭘 잘 못 믿으세요?" 다시 저의 원래 말을 반복해야 하겠네요. 님은 원래 남의 말 안 믿습니까? 그리고 다시 질문을 드립니다. 김성철 교수님과 님은 "취향"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아니면 김성철 교수님의 견해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고 단순히 틀린 것입니까? 님 혹시 김성철 교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근본주의(Fundamentalism)적 불교관을 견지하는 분들" 중 한 분 아니세요? 근데 "근본주의(Fundamentalism)적 불교관"도 "취향"의 하나일 뿐인가요??', 'true', 'cmt'); return false;" href="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6UOF&articleno=16155570&admin=&refequery=%EC%A0%84%EB%8F%84%EC%84%A0%EC%96%B8#">신고
답을 먼저 달아야 겠네요. 양해 바랍니다. 진화한다가 싫으시면 필요에 의해 변화한다는 어떠세요? 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님이 저에게 그러셨죠. 뭘 못 믿느냐고요? 그래요. 그런데 믿게 된 것이 생겼죠. 우다나경의 사성제-열반 선언, 기억 나시죠?" 여기서 제가 님한테 남의 말 안 믿냐고 한 것은 제 말을 안 믿냐고 한 것이지 부처님 말씀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맥락이 다릅니다. 물론 저는 당연히 우다나의 말씀을 믿습니다. 이 말 또 못 믿으시나요? 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달은 같다. 어느 쪽으로 올라도 모두 같은 산꼭대기에 이른다. 정상에서는 경치가 여럿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보던 노래입니다. 제목이 아마 ‘사기 꾼들의 합창’이던가요" 님은 "사기꾼들의 합창"이라고 하는지 모르지만 저는 "화쟁사상", "회통불교"라고 지칭합니다. 님이 또 이렇게 말씀하시네요. "지금은 역전된 것 같아요. 제 눈에 이제는 님이 온통 의심으로만 가득 찬 분으로 보이시니 말입니다. 원래 뭘 잘 못 믿으세요?" 다시 저의 원래 말을 반복해야 하겠네요. 님은 원래 남의 말 안 믿습니까? 그리고 다시 질문을 드립니다. 김성철 교수님과 님은 "취향"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아니면 김성철 교수님의 견해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고 단순히 틀린 것입니까? 님 혹시 김성철 교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근본주의(Fundamentalism)적 불교관을 견지하는 분들" 중 한 분 아니세요? 근데 "근본주의(Fundamentalism)적 불교관"도 "취향"의 하나일 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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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일곱~Y
2013.05.30 12:28
수정|삭제| 개인과 개인 사이에는 취향을 말할 수 있지만, 우리가 같이 믿고 있는 불-교를 서로의 취향 차이로 말씀하시면 좀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초기불교와 대승불교의 차이를 취향으로 낮추시길래 드려본 질문입니다.
(당연히 취향의 차이가 아니겠죠? 노파심에 ---) 금강승님이 진도를 너무 빨리 나가시니 이어서 글 올립니다. 좀 천천히 갑시다.
철학은 자유를 의미하지만, 종교는 구속을 의미합니다. 아주 종종이요. (불-교는 그 구속이 자유를 의미하지만요.)
인생의 어느 시기에 이르렀을 때 어느 누구이든지 구매 하기보다 구매 안 하기가 더 어려운 상품이 또 종교입니다.
지난 일요일에 젊은 친지 부부를 만났습니다. 종교적 선택의 고민 상황이더군요.
이제는 먹기 힘들 줄 알았던 바닷고기 자연산? 회를 모처럼? 먹으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동안 부인의 불교적 가치관 때문에 낚시광인 남편의 바다 낚시 취미가 심하게 제어되고 있었거든요.
카톨릭-성당에 다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인문 서적을 많이 읽고요. 균형적인 사유가 선택을 줄 거라고 했고요.
몇 년 동안 친구의 권유로 어느 스님에게 귀의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이런 일을 당하니 회의가 들더랍니다.
어느 기간 동안 내가 여기에 없더라도 너를 위한 기복 기도를 해 줄 테니 얼마를 내라.
그 기복 기간을 내가 직접 다 채우지 못하더라도 너를 위해서 기복을 해라. (대타? ~ 여기까지는 감읍했답니다.)
그래도 내가 3달마다 올 테니 너는 기간을 다 채워라. (띵~? 무슨 일인진 몰라도 해외를 왔다 갔다 하는 모양입디다.)
그 다음에는 또 다른 기복 기도를 하자고 했다가 신도들이 일정 인원 이상이 안 되니 취소하자 하더랍니다. (허~~~?)
저는 절에 안 다녀봐서 한국에서 이런 경우 대안이 있는 지 모르겠어요. 이 집은 가족들이 오랫동안 불교 친화적이었거든요.
당사자도 이번에는 종교 제도 자체의 부정-부패의 현실태들과 관련한 대안을 찾고 있더군요. 기복은 여전히 필요해 보였고요.
한글로 번역된 빠알리-니까야를 읽으라고도 추천했습니다. 홀로 경전을 읽으면서 길을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긴 하지만요.
저나 다른 많은 분들은 이제 기복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하긴 하지만, 기복을 개인과 집단의 생존 본능이라고 하면 그것 자체는 아무런 흠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종교를 향한 그러한 관문을 이용하여 먹고 사는 기생충 부류가 많다는 것이지요. 생명의 공포를 팔아서 살아가는 장사꾼들, 미래의 공포를 팔아서 살아가는 사기꾼들 말입니다.
생명의 공포, 그리고 미래의 공포, 그 기저에는 신비주의가 있습니다.
그것을 갈파하고 신비에서 벗어나고자 한 서양의 철학들을 에피쿠로스철학, 스토아철학이라 합니다.
유대의 황야에서 혜성과 같이 나타나 그 헬레니즘-철학들을 격파했던 철학이 헤브라이즘-철학인 기독교입니다.
…(로마 황제들 중 스토아적 황제들은 한결같이 기독교를 억압하긴 했지만, 기복의 대세를 막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신비주의를 중심에 깔고 가면서 사람들의 사유를 제한하는 이후의 시대를 그리스-로마 문명과 대비하여 암흑시대라 칭했고요.
한국불교에서도 가능한 암흑의 현실태들이 있네요. 때 마침 어느 법우님이 지난 번에 이런 댓글을 주셨고요.
GG 2013.05.27 16:09
며칠 전 조*사에서 저에게 보내온 문자입니다 - \'주지스님과 함께하는 부모공양 30일기도 입재\'
\'재\' 중심의 기복 불교인 우리나라 철밥통 불교.. 과연 개혁이 될까요... - 감사히 읽고 갑니다. _()_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제가 본 경우가 그러고 보니 우리 한국불교의 일반적 행태입니다. 여기 오시는 분들은 극소수이고, 또 여기 오시는 분들이야 물론 모두 안전하게 지낼 수 있겠지요. 기복의 기저에 신비주의가 있다고 하면, 그러한 신비주의를 팔아먹는 형태가 한국불교에 있어서 여래장 아닐까요? 실체론으로 해석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이 여래장이란 말입니다.
오죽하면 조계종 스님이 현양매구란 표현을 할까요? 여래장의 사유 자체가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여래장사상이 연기론을 짓밟고, 여래장사상이 불교의 종교적 행태에 있어 실체론으로의 길을 깔아 놓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이죠.
달리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님은 가지고 계신지요?
기독교의 신비주의, 그리고 불교의 신비주의 (진여/여래장/불성/참나) --- 둘이서 서로 만나자 하고 있고요.
상대적으로 카톨릭은 자기네들 자체의 자정 능력을 증대시켜 왔고, 사회적 공정성을 인정받아 오고 있습니다.
한국의 여래장-불교들은 어떤 길을 갈까요? 저는 그 희망을 못 보기 때문에 내생에 남방이나 티벳을 고려하고 있는데요^^.
부처님의 가르침이 진화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변화한다. 같은 말입니다. 개인과 개인 사이에는 취향을 말할 수 있지만, 우리가 같이 믿고 있는 불-교를 서로의 취향 차이로 말씀하시면 좀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초기불교와 대승불교의 차이를 취향으로 낮추시길래 드려본 질문입니다. (당연히 취향의 차이가 아니겠죠? 노파심에 ---) 금강승님이 진도를 너무 빨리 나가시니 이어서 글 올립니다. 좀 천천히 갑시다. ------------------------------------------------------------------------------------------------------
철학은 사유이지만, 종교는 상품입니다. 철학은 자유를 의미하지만, 종교는 구속을 의미합니다. 아주 종종이요. (불-교는 그 구속이 자유를 의미하지만요.) 인생의 어느 시기에 이르렀을 때 어느 누구이든지 구매 하기보다 구매 안 하기가 더 어려운 상품이 또 종교입니다.
지난 일요일에 젊은 친지 부부를 만났습니다. 종교적 선택의 고민 상황이더군요. 이제는 먹기 힘들 줄 알았던 바닷고기 자연산? 회를 모처럼? 먹으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동안 부인의 불교적 가치관 때문에 낚시광인 남편의 바다 낚시 취미가 심하게 제어되고 있었거든요. 카톨릭-성당에 다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인문 서적을 많이 읽고요. 균형적인 사유가 선택을 줄 거라고 했고요. 몇 년 동안 친구의 권유로 어느 스님에게 귀의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이런 일을 당하니 회의가 들더랍니다.
어느 기간 동안 내가 여기에 없더라도 너를 위한 기복 기도를 해 줄 테니 얼마를 내라. 그 기복 기간을 내가 직접 다 채우지 못하더라도 너를 위해서 기복을 해라. (대타? ~ 여기까지는 감읍했답니다.) 그래도 내가 3달마다 올 테니 너는 기간을 다 채워라. (띵~? 무슨 일인진 몰라도 해외를 왔다 갔다 하는 모양입디다.) 그 다음에는 또 다른 기복 기도를 하자고 했다가 신도들이 일정 인원 이상이 안 되니 취소하자 하더랍니다. (허~~~?)
저는 절에 안 다녀봐서 한국에서 이런 경우 대안이 있는 지 모르겠어요. 이 집은 가족들이 오랫동안 불교 친화적이었거든요. 당사자도 이번에는 종교 제도 자체의 부정-부패의 현실태들과 관련한 대안을 찾고 있더군요. 기복은 여전히 필요해 보였고요. 한글로 번역된 빠알리-니까야를 읽으라고도 추천했습니다. 홀로 경전을 읽으면서 길을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긴 하지만요.
저나 다른 많은 분들은 이제 기복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하긴 하지만, 기복을 개인과 집단의 생존 본능이라고 하면 그것 자체는 아무런 흠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종교를 향한 그러한 관문을 이용하여 먹고 사는 기생충 부류가 많다는 것이지요. 생명의 공포를 팔아서 살아가는 장사꾼들, 미래의 공포를 팔아서 살아가는 사기꾼들 말입니다.
생명의 공포, 그리고 미래의 공포, 그 기저에는 신비주의가 있습니다. 그것을 갈파하고 신비에서 벗어나고자 한 서양의 철학들을 에피쿠로스철학, 스토아철학이라 합니다. 유대의 황야에서 혜성과 같이 나타나 그 헬레니즘-철학들을 격파했던 철학이 헤브라이즘-철학인 기독교입니다. …(로마 황제들 중 스토아적 황제들은 한결같이 기독교를 억압하긴 했지만, 기복의 대세를 막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신비주의를 중심에 깔고 가면서 사람들의 사유를 제한하는 이후의 시대를 그리스-로마 문명과 대비하여 암흑시대라 칭했고요.
한국불교에서도 가능한 암흑의 현실태들이 있네요. 때 마침 어느 법우님이 지난 번에 이런 댓글을 주셨고요.
GG 2013.05.27 16:09 며칠 전 조*사에서 저에게 보내온 문자입니다 - '주지스님과 함께하는 부모공양 30일기도 입재' '재' 중심의 기복 불교인 우리나라 철밥통 불교.. 과연 개혁이 될까요... - 감사히 읽고 갑니다. _()_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제가 본 경우가 그러고 보니 우리 한국불교의 일반적 행태입니다. 여기 오시는 분들은 극소수이고, 또 여기 오시는 분들이야 물론 모두 안전하게 지낼 수 있겠지요. 기복의 기저에 신비주의가 있다고 하면, 그러한 신비주의를 팔아먹는 형태가 한국불교에 있어서 여래장 아닐까요? 실체론으로 해석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이 여래장이란 말입니다. 오죽하면 조계종 스님이 현양매구란 표현을 할까요? 여래장의 사유 자체가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여래장사상이 연기론을 짓밟고, 여래장사상이 불교의 종교적 행태에 있어 실체론으로의 길을 깔아 놓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이죠.
달리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님은 가지고 계신지요? 기독교의 신비주의, 그리고 불교의 신비주의 (진여/여래장/불성/참나) --- 둘이서 서로 만나자 하고 있고요.
상대적으로 카톨릭은 자기네들 자체의 자정 능력을 증대시켜 왔고, 사회적 공정성을 인정받아 오고 있습니다. 한국의 여래장-불교들은 어떤 길을 갈까요? 저는 그 희망을 못 보기 때문에 내생에 남방이나 티벳을 고려하고 있는데요^^. 금강승님은 어떠세요?
┗
금강승
금강승Y
2013.05.30 12:39
수정|삭제|게다가 거기서도 천도재 하는데 그것은 괜찮나요? 님의 생각으로는 아마 중음신사상은 실체론적 사유일텐데 말이죠. 그런데 님의 주장은 도대체 뭔가요? 대승도 괜찮다는 건가요? 헷갈리는데요?? 제 윗 글에 추가된 부분이 있으니 답변 부탁드립니다.', 'true', 'cmt'); return false;" href="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6UOF&articleno=16155570&admin=&refequery=%EC%A0%84%EB%8F%84%EC%84%A0%EC%96%B8#">신고
여래장 사상 때문에 내생에 남방이나 티벳을 생각하신다는데 티벳은 고려하면 안 되죠. 게다가 거기서도 천도재 하는데 그것은 괜찮나요? 님의 생각으로는 아마 중음신사상은 실체론적 사유일텐데 말이죠. 그런데 님의 주장은 도대체 뭔가요? 대승도 괜찮다는 건가요? 헷갈리는데요?? 제 윗 글에 추가된 부분이 있으니 답변 부탁드립니다.
그나마 이제 제가 여래장을 싫어하는 이유를 보셨는지 모르겠네요. (그 이유도 수준이 높아요^^. 이거는 절대로 말 꼬투리 잡지 마세요!!! 대신 제 글 10번은 읽으세요.) 금강승님은 제가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미워하는 것이 좀 구별되시나요. 금강승님이 얄미울 때는 그때그때 제가 좀 구박하면 되니까요. 더 쓰실 말 있으시면 쓰세요. 천천히 진도 나갑시다.
묻는 의도에 대해 하룻밤 생각해 보세요. __()__ (저 점심먹고, 낮잠 한숨 잘게요.)
┗
금강승
금강승Y
2013.05.30 12:51
수정|삭제|답을 쓸 때 참고하시라고 약간 첨언합니다. 님이 여래장 싫어하는 것은 제가 알 바 아닙니다. 관심이 없어요. 저는 원래 그 문제에 대해서 논하려 하지 않았습니다(물론 취향차는 존중해 드립니다. 하지만 싫은 것과 틀린 것은 구분을 해 주세요). 그러니 거기에 대해서 길게 쓸 생각 마시고 여래장 사상이 왜 불교가 아닌지에 대해서 중점을 두고 써 주세요. 나무 석가모니불 發사홍서원 합장', 'true', 'cmt'); return false;" href="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6UOF&articleno=16155570&admin=&refequery=%EC%A0%84%EB%8F%84%EC%84%A0%EC%96%B8#">신고
님이 먼저 답을 쓰시면 제가 쓰죠. 제가 이해력 떨어지는 것을 고려해서 하나하나 밑에서부터 차근차근 적어주시길 바랍니다. 답을 쓸 때 참고하시라고 약간 첨언합니다. 님이 여래장 싫어하는 것은 제가 알 바 아닙니다. 관심이 없어요. 저는 원래 그 문제에 대해서 논하려 하지 않았습니다(물론 취향차는 존중해 드립니다. 하지만 싫은 것과 틀린 것은 구분을 해 주세요). 그러니 거기에 대해서 길게 쓸 생각 마시고 여래장 사상이 왜 불교가 아닌지에 대해서 중점을 두고 써 주세요. 나무 석가모니불 發사홍서원 합장
여담 하나 할게요. 언어도단이라는 말 아시죠. 금강승님과 제가 서로 사랑한다고 할 때 (별 희한한 가정을 해 봅니다. 저도 언젠가 다원님께 겪은 어떤 일도 있긴 하지만요. 신고하지 마세요!) 말로 표현 못하는 그 너머에 어떤 더 큰 사랑이 있다고 믿을 때 쓰는 말이잖아요. 나와 세계에 대한 이해에서 그 이해가 끊기면서도 그 너머에 뭔가가 있지 않을까 하고 믿으면서 쓰기도 하고요. 저와 금강승님 사이의 애절한 사랑의 표현이 끊어지는 그 자리에다 금강승님은 뭘 갖다 놓으실래요? 다이아몬드? 여래장? 신?
<<< 아직 저 금강승님이 원하는 답을 쓰지 않았으니, 답글 쓰지 마세요. 그냥 생각만 하세요. >>>
서양의 사유에 이러한 대목이 있습니다. 칸트의 후예들 중의 하나인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논리실증주의라는 것이 근대 합리주의 철학을 격파하면서 등장할 때 영웅시 되던 비트겐슈타인-1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언어와 사유를 ‘논리철학논고’라는 책 하나로 쓰레기 통 속으로 쳐 박습니다. 전통 철학의 실체론 사유는 말할 것도 없죠. “말할 수 없는 것은 말하지 말라!”하고 황야로 떠납니다. 논리실증주의, 유물론, 과학주의는 모두 쌍둥이 자매들입니다. 짝사랑을 했던 것이고요. 장고처럼 다시 돌아온 그는 비트겐슈타인-2로 변신해 있습니다. 또 한마디 합니다. “말할 수 없는 것은 말하지 말라!”라고요.
여담 하나 할게요. 언어도단이라는 말 아시죠. 금강승님과 제가 서로 사랑한다고 할 때 (별 희한한 가정을 해 봅니다. 저도 언젠가 다원님께 겪은 어떤 일도 있긴 하지만요. 신고하지 마세요!) 말로 표현 못하는 그 너머에 어떤 더 큰 사랑이 있다고 믿을 때 쓰는 말이잖아요. 나와 세계에 대한 이해에서 그 이해가 끊기면서도 그 너머에 뭔가가 있지 않을까 하고 믿으면서 쓰기도 하고요. 저와 금강승님 사이의 애절한 사랑의 표현이 끊어지는 그 자리에다 금강승님은 뭘 갖다 놓으실래요? 다이아몬드? 여래장? 신?
<<< 아직 저 금강승님이 원하는 답을 쓰지 않았으니, 답글 쓰지 마세요. 그냥 생각만 하세요. >>> <<< 어, 언제 글 쓰셨네요. 바쁘세요? >>>
제 기억에 초딩 1~2년쯤일 때 같아요. 엄마가 시장 바구니 들고 저 데리고 극장 가셨던 생각이 납니다. 미워도 다시 한번 이런 영화 그때 봤을 것 같아요. 늘 그런 장면 있죠? 모래사장을 질주하면서 서로 포옹하는 씬. 엄마 쟤들 우리 편이야? 쟤네들 우리나라야? 왜 아직도 가끔씩 기억나는지 모르겠어요. 군밤 맞은 것 같지도 않은데 말입니다.
금강승님, 단어와 문장들을 쓰실 때 좀 많이 많이 골라서 써 주시면 안 될까요?
예를 들어 동물은 없습니다. 호랑이는 있어요. 마찬가지로 대승은 없어요. 공사상이 있지. 대승은 없어요. 유식사상이 있고 여래장사상이 있지. 반드시 괄호치고 특정 해주시기 바랍니다. 글로 쓰지 않으면 반드시 마음 속으로라도요. 그 특정이 상대방의 마음에 인지되어야 본인의 언어가 언어로 인식됩니다.
드디어 금강승님도 말하지 않는 법을 느끼시나 봅니다^^. 뭐 갖다 놓으셨어요? 아무 것도 없네요!
그 자리에 뭔가 좋은 것을 잘 갖다 놓는 사람들을 우리는 시인이라 부릅니다. 또는 예술가라 하기도 하고요. 비트겐슈타인-2도 금강승대사님처럼 그 자리에 아무 것도 갖다 놓지 않았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20세기의 서양에 환생한 선사라 불리우기도 하고요.
혹시 그 자리에 뭐가 인식된다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분의 말을 믿으실지 말지는 님의 권리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와서 보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유일한 제 믿음의 분이십니다. 비록 저는 그것을 보는 길에서 멀리 있지만요. 여래장이라는 말씀은 안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원효대사의 모든 지식을 그 분의 책들을 통하여 일단 검증하셨나요?
저희는 우선 붓다께서 남기신 말씀들을 앞뒤 다 따져가면서 말씀 지식을 검증하는 중입니다. 주어졌다고 해서 경전이 아닙니다. 고고학적 오리지날을 급하게 아쉬워하지 않는 이유이죠. 내가 검증을 못하면 마찬가지의 원칙으로 누가 잘 검증했겠는가 하고 눈치라도 잘 보려 열심히 노력하고요. 그것이 배움일 터이고요. 그렇게 해서 어떤 선택을 결단했다면 바로 그것이 경전입니다. 아직도 대승기신론을 읽고 있는 중입니다. 검증이 오리무중이라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빠알리 니까야를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대하는 경마다 한결같이 검증의 희망과 확신을 줍니다. 님도 그건 느끼시잖아요.
----------------------------------------------------------------------------- 제 기억에 초딩 1~2년쯤일 때 같아요. 엄마가 시장 바구니 들고 저 데리고 극장 가셨던 생각이 납니다. 미워도 다시 한번 이런 영화 그때 봤을 것 같아요. 늘 그런 장면 있죠? 모래사장을 질주하면서 서로 포옹하는 씬. 엄마 쟤들 우리 편이야? 쟤네들 우리나라야? 왜 아직도 가끔씩 기억나는지 모르겠어요. 군밤 맞은 것 같지도 않은데 말입니다.
금강승님, 단어와 문장들을 쓰실 때 좀 많이 많이 골라서 써 주시면 안 될까요? 예를 들어 동물은 없습니다. 호랑이는 있어요. 마찬가지로 대승은 없어요. 공사상이 있지. 대승은 없어요. 유식사상이 있고 여래장사상이 있지. 반드시 괄호치고 특정 해주시기 바랍니다. 글로 쓰지 않으면 반드시 마음 속으로라도요. 그 특정이 상대방의 마음에 인지되어야 본인의 언어가 언어로 인식됩니다. --------------------------------------------------------------------------------- 아직도 미진하신 것이 있으실 겁니다. “여래장사상은 중관학과 유식학의 당연한 귀결이다” = 정말? ~ 궁금하신 것이 있으시면 약간은 다른 각도에서 또 고민을 해 볼 수도 있습니다. 시간을 두고 생각을 해가시면서요. __()__
┗
금강승
금강승Y
2013.05.30 18:20
수정|삭제|김성철 교수님에 대한 님의 대답은 어떻게 되냐니까요? 부처님께서 여래장이란 말을 안 쓰셨다구요? 그래서요?? 그럼 부처님께서 유식이란 말은 쓰셨습니까?? 그리고 저 위에 제가 인용한 원효 성사님 말씀 중에서 대승이 여러 번 나옵니다. 대승은 없는데 왜 그런 말씀을 쓰셨을까요? 아, 전에 다원과 저에게 기준을 달리 적용했던 것처럼 원효 조사님은 쓰셔도 되고 저는 쓰면 안 되는 거군요?? ', 'true', 'cmt'); return false;" href="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6UOF&articleno=16155570&admin=&refequery=%EC%A0%84%EB%8F%84%EC%84%A0%EC%96%B8#">신고
그래서 여래장 사상이 어떻게 틀렸냐니까요? 김성철 교수님에 대한 님의 대답은 어떻게 되냐니까요? 부처님께서 여래장이란 말을 안 쓰셨다구요? 그래서요?? 그럼 부처님께서 유식이란 말은 쓰셨습니까?? 그리고 저 위에 제가 인용한 원효 성사님 말씀 중에서 대승이 여러 번 나옵니다. 대승은 없는데 왜 그런 말씀을 쓰셨을까요? 아, 전에 다원과 저에게 기준을 달리 적용했던 것처럼 원효 조사님은 쓰셔도 되고 저는 쓰면 안 되는 거군요??
# <김성철교수> 대승비불설에 대한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승불교의 발생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2000여 년간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던 문제이다. {반야경}과 {화엄경}의 용궁 유래설, 유식불교의 정통성에 대한 교증(敎證)과 이증(理證), 밀교의 정통성을 입증하기 위한 장황한 설명. 이 모두가 대승이 불설임을 입증하기 위해 대승 측에서 벌인 논의들이다.
그러나 대승 내에서 이런 논의가 있었다는 사실로 인해 오히려 대승비불설이 반증된다고 일군의 불교학자들은 말한다.
한편, 대승을 옹호하는 학자들은, '그렇다면 당신이 알고 있는 초기불교는 불설인가?'라고 이들에게 되묻는다. 현존하는 4아함이나 5부 니까야 모두 불멸 후 수백 년 후에 취합, 편집된 것이기에 초기불전만을 불설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아함, 니까야와 대승불전의 편집 과정을 직접 목격하지 않는 이상, 누구나 동의하는 '진정한 불설'을 제시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과거에 편집되어 전승된 문헌들뿐이다. 따라서 대승의 정법성 여부에 대해 의견이 갈릴 경우, 사실이 아니라 그 흔적인 현존하는 문헌들에 토대를 두고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 김성철교수님은 현존하는 문헌에 토대를 두고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 데, 제 의견은 완전-역주행입니다. 문헌을 이야기하는 세계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역으로 이미 우리가 얻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준으로 해서 문헌을 결정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사실 많은 분들이 묵시적으로 실용적으로 그렇게 하고 계시지만) 아마 금강승님이 아직 받아들이실 수 있는 사유는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제 취향이니 더 묻지 마세요. 금강승님이 그토록 궁금해 하시는 것은 취향 차이이시고, 벌써 여기에 취향의 차이가 하나 있네요. ============================================================= # 이번 논쟁에서 근본주의(Fundamentalism)적 불교관을 견지하는 분들이 대승을 비판하면서 문제로 삼은 내용은 기복과 다불사상의 비불교성, 그리고 대승 위경설이다. 대승의 기원에 대해서는, '굴외(窟外) 결집이 있었다'든지 '후대에 편집되었다'는 둥 여러 가지 학설이 분분하지만 이에 대해 아직 어떤 단언도 내릴 수 없다.
@ 근본주의 딱지 이런 것은 저도 별로 안 좋아해요. 딱지 속에는 아무 것도 없는 걸요, 뭐. 취향의 차이 둘. ==================================================================================================== #그러나 필자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대승불전이 설혹 후대에 편집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교리는 아함이나 니까야, 율장과 같은 초기불전의 가르침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대승불교는 초기불교의 논리적 귀결이다.
@ 반절만 동조. 나중에 더 따집시다. 아니 지금! ---- 나중에. 이 부분은 일단 오려 놓자. 이것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니까.
@ 제 댓글을 읽으셨으면 기복적 신행 자체는 저와 금강승이라는 인간들의 숙명이라는 것을 이해하실 거고요.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기복을 내가 하는 것이지, 남이 하라고 조장하면 좀 그렇지 않나요. 게다가 경제적 착취를 동반하면서요. 여기까지도 우리 모두 같은 생각이겠죠. 그 사기극의 근거가 무엇일까 하고 궁금하지 않으세요? 또 내 친지가 내 친구가 그 수렁에 빠져있다면 분기가 탱천하지는 않으시나요? --- 김성철교수님은 교수님이시라 현실의 부조리를 여기에다가 감정적으로 표출할 수는 없겠죠. 그러나 현실의 부조리의 원인에 대한 언급 정도는 해도 되지 않았을까요? 아무리 지면 부족이라 해도 근본주의자라는 것이 있다고 하면 그들이 근본주의 딱지를 받아들이는 데는 그러한 정서가 가장 바닥에 깔려 있을 터이니까요. 취향의 차이 셋.
~ “차제설법”이라는 “엄청나게 좋은 용어”가 있네요. 더 흔히 쓰이는 단어는 방편설법 또는 대기설법이죠. 뭔 말이냐고요?
“방편설법”이라는 용어는 대승의 신비를 적당히,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감추는 아주 “지랄 같은” 방패라고 생각하기 때문에요. 각묵스님의 아비담마길라잡이 등의 책들에서도 빠리야야담마, 니빠리야야담마하면서 무심코 넘어가는 사유가 있습니다. 시계생천은 근기가 낮은 사람을 위한 설법이고, 근기가 높은 사람을 위한 온처계근제연의 설법은 아비-담마의 최상승 설법이라 합니다. 이런 차별적 설법에 동의하십니까? 사실 더 큰 현실적인 문제는 두 가지 기본적인 취지를 벗어나는 비-불교적인 사유들과 나머지 온갖 모든 잡탕-설법들이 그 방패 뒤에 숨는다는 겁니다. 어허! 방편설법이니라. 대승-토속불교에서 특히 말입니다. 아마 부처님은 분명 그런 용어 안 쓰셨을 것 같습니다, 부처님도 혹시 제 취향이시라면요. 저는 황희정승 취향이거든요. 아무래도 방편설법/대기설법의 사유는 대승의 음모 같아요! 믿거나 말거나. 초불 애호가들 분 중에 이런 단어 요긴하게 쓰시는 분 있으십니까?
# 둘째, 다불•다보살사상에 대해 검토해 보자. 단적으로 말해, 초기불전에서 말하는 삼천대천세계설(三千大千世界說)과 일체지자설(一切智者說)을 종합할 경우, 현재 생존하신 타방의 부처님들께 기도를 올리는 대승적 신행이 충분히 도출될 수 있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들께서는 \'모든 것을 아는 분\'(一切智者)이시기에 우리의 존재를 아시고 우리의 기도에 감응하시고 우리의 공양을 받으시고 우리의 참회를 들어주신다. 이는 타방 보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또, 출가 구도하신 부처님의 현생이 아니라, 보살로 살아가신 부처님의 전생을 닮고자 할 경우 대승보살도가 도출된다.
@ 같은 취향이네요. 경전에 나온다고 하면 통과! 보살은 조금 복잡한 것 같긴 하지만 격려 차원에서 그냥 보내드릴게요^^.
# 셋째, 대승불전은 위경일까? 또, 그래서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일까? 역설적으로 말하면, 과거 대승시대의 전개와 함께 계속 새로운 경전들이 편집되었다는 사실, 또 그에 토대를 두고 계속 새로운 불교 사상이 탄생했다는 사실은 그 당시의 불교가 살아 숨쉬고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불교는 도그마가 아니기에 부처님 당시에도 교화 상대의 수준과 상황에 따라 다양한 가르침이 설시되었다. 불교의 이러한 응병여약, 대기설법의 정신은 불멸 후 약 1500년 간 면면히 살아 숨쉬며 새로운 불교사상들을 탄생시켜 왔던 것이다. 새롭게 편집된 대승경전과 이에 토대를 두고 새롭게 출현한 대승논서는 법신불의 대(對)-시대적 설법이었다.
그런데 이 시대의 우리는 과거 인도에서 발생했던 대승불교인 중관, 유식, 밀교, 중국에서 발생했던 천태, 화엄, 선, 정토 사상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 모두가 불멸 후 1500년 이전에 성립되었던 대승사상들이다. 불교역사 2500여 년 중, 정법과 상법과 말법의 시대마저 모두 끝나고 최근까지 1000년 동안 불교는 잠자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대승불교를 논할 때 우리는 위경의 출현을 경계할 것이 아니라, 위경이 탄생하지 못하고, 새로운 대승사상이 탄생하지 못했던 지난 1000년간의 나태(懶怠)를 오히려 통탄해야 할 것이다.
@ 이것은 뜨거운 감자네요. 저는 식은 뒤에 먹겠습니다. 표현이 문학적인 것 같습니다. 뭐 이 정도는 따라가도 되는 취향이네요. 현대적 버전의 대승기신론 속편이 언제 나올지 기대하면서요. 부처님은 여기 안 계시고, 정법은 아직 국지적이고, 아쉬운 놈은 맨땅이라도 홀로 파야 하니, 누군가가 더 쉽게 파는 방법을 이해시켜주면 좋겠고. --- 근기가 낮다 보니 정말 그렇네요.
~ 맞아요. 새로운 대승-“사상”이 탄생하지 못한 것 저도 같이 통탄할랍니다. 너무 작품이 없어요. 오죽하면 금강승 본인 조차도 안 읽은 작품들을 가지고 (아니면 아니다고 밝히셔도 됩니다 ~ 추천 대 섭수!) 금강승님과 제가 서로 망설을 하느라고 이 곤경을 겪겠습니까?
# 그러면 먼저 기복적 신행에 대해 검토해 보자. 우리는 초기불전 도처에서 기복과 작복의 가르침을 만날 수 있다. 부처님께서는 재가자를 대하실 때 해탈의 가르침 이전에 보시하고 계를 지키면 하늘에 태어난다는 가르침을 베푸셨다. 이를 차제설법이라고 부른다. 또, 대열반 이후 사리탑의 관리를 재가자에게 맡기심으로써 발복을 권하셨다. 부처님과 스님들께 공양물을 올리고 탑을 조성하며 사원을 건축하는 것이 복을 짓는 행위임은 초기불전 곳곳에서 강조된다. 물론 기복과 작복이 불교신행의 최종 목표는 아니다. 그러나 초기불전의 가르침에 의거할 경우, 기와불사, 법당불사, 가사불사 등을 위한 시주와 지계 등의 선업으로 인해 우리가 복을 받는다는 이치는 결코 부정될 수 없다. 설사 그것이 기복적 동기에서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그러나, 이러한 작복적 신행에만 머물려고 하는 마음가짐은 계도되어야 할 것이다.
@ 제 댓글을 읽으셨으면 기복적 신행 자체는 저와 금강승이라는 인간들의 숙명이라는 것을 이해하실 거고요.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기복을 내가 하는 것이지, 남이 하라고 조장하면 좀 그렇지 않나요. 게다가 경제적 착취를 동반하면서요. 여기까지도 우리 모두 같은 생각이겠죠. 그 사기극의 근거가 무엇일까 하고 궁금하지 않으세요? 또 내 친지가 내 친구가 그 수렁에 빠져있다면 분기가 탱천하지는 않으시나요? --- 김성철교수님은 교수님이시라 현실의 부조리를 여기에다가 감정적으로 표출할 수는 없겠죠. 그러나 현실의 부조리의 원인에 대한 언급 정도는 해도 되지 않았을까요? 아무리 지면 부족이라 해도 근본주의자라는 것이 있다고 하면 그들이 근본주의 딱지를 받아들이는 데는 그러한 정서가 가장 바닥에 깔려 있을 터이니까요. 취향의 차이 셋.
~ “차제설법”이라는 “엄청나게 좋은 용어”가 있네요. 더 흔히 쓰이는 단어는 방편설법 또는 대기설법이죠. 뭔 말이냐고요? “방편설법”이라는 용어는 대승의 신비를 적당히,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감추는 아주 “지랄 같은” 방패라고 생각하기 때문에요. 각묵스님의 아비담마길라잡이 등의 책들에서도 빠리야야담마, 니빠리야야담마하면서 무심코 넘어가는 사유가 있습니다. 시계생천은 근기가 낮은 사람을 위한 설법이고, 근기가 높은 사람을 위한 온처계근제연의 설법은 아비-담마의 최상승 설법이라 합니다. 이런 차별적 설법에 동의하십니까? 사실 더 큰 현실적인 문제는 두 가지 기본적인 취지를 벗어나는 비-불교적인 사유들과 나머지 온갖 모든 잡탕-설법들이 그 방패 뒤에 숨는다는 겁니다. 어허! 방편설법이니라. 대승-토속불교에서 특히 말입니다. 아마 부처님은 분명 그런 용어 안 쓰셨을 것 같습니다, 부처님도 혹시 제 취향이시라면요. 저는 황희정승 취향이거든요. 아무래도 방편설법/대기설법의 사유는 대승의 음모 같아요! 믿거나 말거나. 초불 애호가들 분 중에 이런 단어 요긴하게 쓰시는 분 있으십니까? ============================================================================= # 둘째, 다불•다보살사상에 대해 검토해 보자. 단적으로 말해, 초기불전에서 말하는 삼천대천세계설(三千大千世界說)과 일체지자설(一切智者說)을 종합할 경우, 현재 생존하신 타방의 부처님들께 기도를 올리는 대승적 신행이 충분히 도출될 수 있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들께서는 '모든 것을 아는 분'(一切智者)이시기에 우리의 존재를 아시고 우리의 기도에 감응하시고 우리의 공양을 받으시고 우리의 참회를 들어주신다. 이는 타방 보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또, 출가 구도하신 부처님의 현생이 아니라, 보살로 살아가신 부처님의 전생을 닮고자 할 경우 대승보살도가 도출된다.
@ 같은 취향이네요. 경전에 나온다고 하면 통과! 보살은 조금 복잡한 것 같긴 하지만 격려 차원에서 그냥 보내드릴게요^^. ============================================================================================= # 셋째, 대승불전은 위경일까? 또, 그래서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일까? 역설적으로 말하면, 과거 대승시대의 전개와 함께 계속 새로운 경전들이 편집되었다는 사실, 또 그에 토대를 두고 계속 새로운 불교 사상이 탄생했다는 사실은 그 당시의 불교가 살아 숨쉬고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불교는 도그마가 아니기에 부처님 당시에도 교화 상대의 수준과 상황에 따라 다양한 가르침이 설시되었다. 불교의 이러한 응병여약, 대기설법의 정신은 불멸 후 약 1500년 간 면면히 살아 숨쉬며 새로운 불교사상들을 탄생시켜 왔던 것이다. 새롭게 편집된 대승경전과 이에 토대를 두고 새롭게 출현한 대승논서는 법신불의 대(對)-시대적 설법이었다. 그런데 이 시대의 우리는 과거 인도에서 발생했던 대승불교인 중관, 유식, 밀교, 중국에서 발생했던 천태, 화엄, 선, 정토 사상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 모두가 불멸 후 1500년 이전에 성립되었던 대승사상들이다. 불교역사 2500여 년 중, 정법과 상법과 말법의 시대마저 모두 끝나고 최근까지 1000년 동안 불교는 잠자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대승불교를 논할 때 우리는 위경의 출현을 경계할 것이 아니라, 위경이 탄생하지 못하고, 새로운 대승사상이 탄생하지 못했던 지난 1000년간의 나태(懶怠)를 오히려 통탄해야 할 것이다.
@ 이것은 뜨거운 감자네요. 저는 식은 뒤에 먹겠습니다. 표현이 문학적인 것 같습니다. 뭐 이 정도는 따라가도 되는 취향이네요. 현대적 버전의 대승기신론 속편이 언제 나올지 기대하면서요. 부처님은 여기 안 계시고, 정법은 아직 국지적이고, 아쉬운 놈은 맨땅이라도 홀로 파야 하니, 누군가가 더 쉽게 파는 방법을 이해시켜주면 좋겠고. --- 근기가 낮다 보니 정말 그렇네요.
~ 맞아요. 새로운 대승-“사상”이 탄생하지 못한 것 저도 같이 통탄할랍니다. 너무 작품이 없어요. 오죽하면 금강승 본인 조차도 안 읽은 작품들을 가지고 (아니면 아니다고 밝히셔도 됩니다 ~ 추천 대 섭수!) 금강승님과 제가 서로 망설을 하느라고 이 곤경을 겪겠습니까? ======================================================================= $$$$$$$$$$$ --- 근데 (김성철)교수님 생각은 님 취향입니까??
@ 이상이면 일단 다음 계산이 가능하시겠죠? 취향인 것 + 취향이 아닌 것 = 총계를 내셔서 많은 쪽으로 생각하십시오.
숙제-목록 그래서 여래장사상이 어떻게 틀렸냐니까요? (난공불락인 관계로 일단 미루기) 김성철 교수님에 대한 님의 대답은 어떻게 되냐니까요? (Well-Done!) 부처님께서 여래장이란 말을 안 쓰셨다구요? 그래서요?? = 그냥 그랬다구요! 그럼 부처님께서 유식이란 말은 쓰셨습니까?? = 네 안 썼습니다. 그리고 저 위에 제가 인용한 원효성사님 말씀 중에서 대승이 여러 번 나옵니다. 대승은 없는데 왜 그런 말씀을 쓰셨을까요? ……= 괄호가 있고, 그 괄호 안에 쓰인 글씨가 보이네요. 시력의 문제입니다. 아, 전에 다원과 저에게 기준을 달리 적용했던 것처럼 원효조사님은 쓰셔도 되고 저는 쓰면 안 되는 거군요?? ……= 네, 차별합니다. 빅브라더의 명령입니다.
금강승님, 그리 바쁘신 것 아니시죠? __()__
금강승
금강승Y
2013.05.31 17:34
수정|답글|삭제|저도 좀 유치하게 할 필요도 있겠군요. 네 편 내 편 갈라가면서.^^ 회통불교 주의자 VS 초기불교 근본주의자 어디 보자. 각묵 스님은 님 편이고.. 옥스포드 초기불교 박사(유치하게 하기로 했으니까) 미산 스님은 제 편이죠? 칸트 박사, 유식 박사 한자경 교수도 제 편이구요?? 연꽃님이 비판하셨던 혜민 스님, 송담 스님, 법륜 스님 등등도 다 제 편이네요??? 근데 생각해 보니 왠만하면 북방불교쪽은 거의 제 편일 것 같은데..^^ 목록은 계속 업데이트 하기로 하죠. 그나저나 제가 볼 때 님의 생각이 계속 변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 원래 질문 먼저 드리고 시작할게요. 님이 저를 애초에 비판하신 이유가 뭡니까? 지금 이유 말고. 이것 하나는 확인하고 넘어 가는 것이 좋겠죠? 그런데 기복 어쩌고 하는 것은 알아서 생각해 보세요. 저는 관심이 없어서요. 자, 애초 목적은 목적이고 저는 또 제 할 말을 해야 겠네요. 님은 가장 중요한 저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으셨어요. 바로 요 질문입니다. "그래서 여래장사상이 어떻게 틀렸냐니까요?" 근데 너무 어렵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냥 기신론에서 여래장 나오는 부분을 금강승이 썼다고 가정하고 비판하시면 됩니다. 자기 최면을 거시면서요. 이 글은 소위 "마명"의 글이 아니라 금강승의 글이다. 라고 말이죠. 쉽죠?^^', 'true', 'cmt'); return false;" href="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6UOF&articleno=16155570&admin=&refequery=%EC%A0%84%EB%8F%84%EC%84%A0%EC%96%B8#">신고
대놓고 차별한다고 선언하시니 오히려 좋습니다.^.^(다원은 님 편이다 이거죠??) 저도 좀 유치하게 할 필요도 있겠군요. 네 편 내 편 갈라가면서.^^ 회통불교 주의자 VS 초기불교 근본주의자 어디 보자. 각묵 스님은 님 편이고.. 옥스포드 초기불교 박사(유치하게 하기로 했으니까) 미산 스님은 제 편이죠? 칸트 박사, 유식 박사 한자경 교수도 제 편이구요?? 연꽃님이 비판하셨던 혜민 스님, 송담 스님, 법륜 스님 등등도 다 제 편이네요??? 근데 생각해 보니 왠만하면 북방불교쪽은 거의 제 편일 것 같은데..^^ 목록은 계속 업데이트 하기로 하죠. 그나저나 제가 볼 때 님의 생각이 계속 변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 원래 질문 먼저 드리고 시작할게요. 님이 저를 애초에 비판하신 이유가 뭡니까? 지금 이유 말고. 이것 하나는 확인하고 넘어 가는 것이 좋겠죠? 그런데 기복 어쩌고 하는 것은 알아서 생각해 보세요. 저는 관심이 없어서요. 자, 애초 목적은 목적이고 저는 또 제 할 말을 해야 겠네요. 님은 가장 중요한 저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으셨어요. 바로 요 질문입니다. "그래서 여래장사상이 어떻게 틀렸냐니까요?" 근데 너무 어렵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냥 기신론에서 여래장 나오는 부분을 금강승이 썼다고 가정하고 비판하시면 됩니다. 자기 최면을 거시면서요. 이 글은 소위 "마명"의 글이 아니라 금강승의 글이다. 라고 말이죠. 쉽죠?^^
여래장-불교는 혼자 가지세요. 제가 밑질 것 같아서 포기할랍니다. 지금까지도 너무 손해가 많아요.
그래서 나머지 궁금증은 1000원으로 인상합니다. 선불입니다. __()__', 'true', 'cmt'); return false;" href="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6UOF&articleno=16155570&admin=&refequery=%EC%A0%84%EB%8F%84%EC%84%A0%EC%96%B8#">신고
갈수록 퇴행하니 그만 할랍니다. 아예 유치원까지 가자고 하네요. 쟤들 우리 편이야? 쟤네들 우리나라야?
법륜스님의 말씀이나 하나 내려 놓을게요. 전에 님이 링크한 기사에서 본 겁니다. << 그게 바로 번뇌야! 내려 놓으라구! >>
여래장-불교는 혼자 가지세요. 제가 밑질 것 같아서 포기할랍니다. 지금까지도 너무 손해가 많아요. 그래서 나머지 궁금증은 1000원으로 인상합니다. 선불입니다. __()__
금강승
금강승Y
2013.05.31 19:18
수정|답글|삭제|전통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부정될 만한 것이 아닙니다. 남의 전통을 가볍게 외도로까지 치부하는 기개가 대단하긴 합니다만.. ps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아직도 님은 제 의도를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님이 전도적 성향이니 남도 전도적 성향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혹시나 해서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여래장 사상을 알리고자 해서 글을 쓴 것이 아닙니다. 다음에 저에게 댓글 다시려면 저의 질문에 답을 하실 생각 하고 댓글 다세요. 근데 생각해 보니 님은 김성철 교수님께는 바로 한 수 접고 들어가시네요. 교수님의 글은 저의 취향과 거의 같고 연꽃님과는 반대인데도 말이죠. 이러니 블라인드 테스트가 필요한 거겠죠??', 'true', 'cmt'); return false;" href="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6UOF&articleno=16155570&admin=&refequery=%EC%A0%84%EB%8F%84%EC%84%A0%EC%96%B8#">신고
자신이 네 편 내 편 나눠서 차별할 때는 괜찮고 제가 하면 안 되는 것이군요. 뭐 좋습니다. 전통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부정될 만한 것이 아닙니다. 남의 전통을 가볍게 외도로까지 치부하는 기개가 대단하긴 합니다만.. ps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아직도 님은 제 의도를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님이 전도적 성향이니 남도 전도적 성향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혹시나 해서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여래장 사상을 알리고자 해서 글을 쓴 것이 아닙니다. 다음에 저에게 댓글 다시려면 저의 질문에 답을 하실 생각 하고 댓글 다세요. 근데 생각해 보니 님은 김성철 교수님께는 바로 한 수 접고 들어가시네요. 교수님의 글은 저의 취향과 거의 같고 연꽃님과는 반대인데도 말이죠. 이러니 블라인드 테스트가 필요한 거겠죠??
맞아요. 교수님이신데 한 수 접어 드려야죠. 당연히. 근데 취향인 것과 취향 아닌 것들에서 취향인 쪽의 총계가 더 많이 나왔나 보네요. 와~다행입니다. 제가 김성철교수님 취향, 몰랐네요. 그럼 저도 님과 같은 편이네요. 근데 블라인드 테스트, 블라인드 테스트 하는 데 그것 뭡니까? 그리고 여기 초불 홈그라운드 아녀요? 우리가 불리해요. 또 다른 데 가서 해도 좀 그렇지 않나요? 플라톤의 유명한 경구 중에 “블라인드 테스트는 바보들의 방법이다”라는 그런 말도 있던 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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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승
금강승Y
2013.06.01 16:14
수정|삭제|__________ 일곱~ 2013.05.25 16:23 수정 | 삭제 | 신고
이제는 제가 원하시는 것까지 들어주실 모양이시네요. 저만 원하는 것이예요. 오해하지 마시고요. 금강승님이 초기불교만을 이야기하고, 저랑 같이 초기불교에서 길을 찾는 노력을 같이 하는 것. 여래장은 쓰레기 통에 버리고서. ----------- 며칠 전만 해도 이렇게 오직 초기불교만 말하라고 하시다가 이제는 돌연 저와 같은 취향이시군요. 근데 저는 연꽃님과 거의 반대취향인데 님도 그러시겠죠? 제가 말하는 블라인드 테스트는 특별한 것을 말한 것은 아니고 전에 제가 다원에게 했던 것이 일종의 블라인드 테스트 쯤 됩니다. 님도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제가 언젠가 다원에게 김성철 교수님 책을 요약식으로 인용해서 제시했던 적이 있는데, 누구의 글이라고 적진 않았죠. 그런데 다원이 그 글을 제가 썼다고 생각했는지 길길이 날뛰더군요. 그래서 제가 이건 금강승의 글이 아니라 김성철 교수님의 글이라고 하니 거기에 대해서 반론하는 내용은 없고 또 막 날뛰었었죠(그래도 일관성은 있음). 생각해 보면 일종의 블라인드 테스트였던 셈이죠. 근데 효과 있는 거 같더라구요.^0^ 이렇게도 생각해 보자구요. 제가 위에 인용한 원효 조사님 글을 어투만 좀 달리해서 조성택 교수의 글이라고 소개했다고 해 보죠. 님의 반응은 과연 어땠을까요??', 'true', 'cmt'); return false;" href="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6UOF&articleno=16155570&admin=&refequery=%EC%A0%84%EB%8F%84%EC%84%A0%EC%96%B8#">신고
취향의 변화가 아주 빠르시군요. 얼마 전만 해도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말이죠. __________ 일곱~ 2013.05.25 16:23 수정 | 삭제 | 신고
이제는 제가 원하시는 것까지 들어주실 모양이시네요. 저만 원하는 것이예요. 오해하지 마시고요. 금강승님이 초기불교만을 이야기하고, 저랑 같이 초기불교에서 길을 찾는 노력을 같이 하는 것. 여래장은 쓰레기 통에 버리고서. ----------- 며칠 전만 해도 이렇게 오직 초기불교만 말하라고 하시다가 이제는 돌연 저와 같은 취향이시군요. 근데 저는 연꽃님과 거의 반대취향인데 님도 그러시겠죠? 제가 말하는 블라인드 테스트는 특별한 것을 말한 것은 아니고 전에 제가 다원에게 했던 것이 일종의 블라인드 테스트 쯤 됩니다. 님도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제가 언젠가 다원에게 김성철 교수님 책을 요약식으로 인용해서 제시했던 적이 있는데, 누구의 글이라고 적진 않았죠. 그런데 다원이 그 글을 제가 썼다고 생각했는지 길길이 날뛰더군요. 그래서 제가 이건 금강승의 글이 아니라 김성철 교수님의 글이라고 하니 거기에 대해서 반론하는 내용은 없고 또 막 날뛰었었죠(그래도 일관성은 있음). 생각해 보면 일종의 블라인드 테스트였던 셈이죠. 근데 효과 있는 거 같더라구요.^0^ 이렇게도 생각해 보자구요. 제가 위에 인용한 원효 조사님 글을 어투만 좀 달리해서 조성택 교수의 글이라고 소개했다고 해 보죠. 님의 반응은 과연 어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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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일곱~Y
2013.06.01 16:53
수정|삭제| 내 주신 숙제 제 나름으로 정말 열심히 "다" 했잖아요. 정상참작 부탁드리고요. 주말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__()__', 'true', 'cmt'); return false;" href="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6UOF&articleno=16155570&admin=&refequery=%EC%A0%84%EB%8F%84%EC%84%A0%EC%96%B8#">신고
저 다음 주 지나서는 개종할지 모르겠어요. 너무 그러지 마시고 용서해 주세요. 내 주신 숙제 제 나름으로 정말 열심히 "다" 했잖아요. 정상참작 부탁드리고요. 주말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__()__
이거 정말 되게 어렵겠네! 여래장-불교는 과연 불교인가? 아니면 비-불교인가? 그래도 좋은 거면 당연히 많이 나누어 주어야지. 나쁜 거면 도시락 싸 들고, 문간에 가서 자면서 말리고. 짬짬이 홀로, 외롭게, 무소의 뿔처럼 생각해 보자. 이거 영 파트너가 시원치 않아서. 그리고 지금 나 바쁜 것도 없잖아. (바로 옆의 친척이 뭔지도 모르는 어떤 불교에 당하는 모습을 보니 분기-탱천! 그래도 차분히 이해해야지. 불교라는데.)
누군가를 알려면, 먼저 그 사람의 말을 통해 생각을 살피고, (중심염악-즉언, 중심염선-즉언) ……그 사람의 행동을 통해 그 사람 본인의 마음에 대한 진실성을 살피고, (중심염악-즉행, 중심염선-즉행) ……세월을 통해 위의 방식으로 검증, 재-검증, 재-재-검증한다면 실패가 적겠지? (심위법본 심존심사 중심-염악/염선)
어느 종교를 알고 싶다면, 한편으로는 그 교단을 살피고, 한편으로는 그 종교의 생각인 경전을 살피면 되겠지? ……그 교단의 말과 행동이 형편 없다면, 뭐 더 볼 것도 없겠으나 (설마 제대로 된 경전도 없는 애들이 있을까?) ……어떤 사람들이 그래도 전통의 신화를 주장하면서 사정하면? 좀 갸우뚱하면서-? (삼시세판의 기회를 줘? 말어?) ……그래, 내가 사는 시간도 사실 뭐 작은 조각이니. 좋아! 그럼, 어디 경전이나 내 놓아 보시게! 이러면 되겠지.
먼저, 사례-연구 --- http://blog.daum.net/umji0112/12195696 대승의 어느 재가불자, 홀로 열심히 정진하시는 정말 존경스러운 분이시네.
―선불교의 선사들은 흔히 교학(敎學)이나 알음알이보다 깨치는 게 중요하다고 하는데.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행을 통해 깨닫는 것이다. 하지만 부처님이 가르친 수행의 원리를 제대로 안 뒤, 확신을 가지고 수행해야 진보가 가능할 것 아닌가.”
―선불교의 ‘불성’ 또는 ‘여래장’ 사상(일체의 중생에게는 부처(佛), 또는 여래(부처)가 간직되어 있으므로 누구나 이를 바로 보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사상)은 힌두교에서 유래한 것으로 부처가 가르친‘무아(無我)’와 어긋나는 게 아닌지…. “그럴 오해의 소지는 충분하다. 얼핏 보면 ‘불성’이나 ‘여래장’ 자체가 ‘나’(我)를 전제로 하는 것으로 ‘나’가 없다는‘무아’와 배치된다. 하지만 논서의 설명을 보면 ‘여래장’이나 ‘불성’은 법의 진실한 성품, 또는 ‘공(空)’을 말하는 것으로 고정불변한 ‘나’를 말하는 ‘유아론’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오해할 수 있는 표현을 쓴 것은 근기가 하열(下劣)한 이들이 나도 수행하면 깨칠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지게 하기 위해서, 혹은 나 아닌 다른 이도 불성을 가진 것을 알리기 위해서가 아니겠느냐.”
―그렇다면 부처의 가르침, 즉 근본 불교와 선불교가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인가. “내가 검토한 바에 따르면 ‘불성’과 ‘무아’는 다 통한다. 따라서 근본불교에서 대승을 무시할 게 아니라 근본불교가 왜 대승불교로 나아갔느냐를 생각해야 하고, 대승에서는 근본 원리의 이치를 무시한 채 구름 잡는 이야기를 해선 안 된다. 어디까지나 근본을 지키면서 대승의 길, 보살의 길, 중생을 끌어안는 길로 가야 한다.”
―‘육조단경’에서는 ‘돈오돈수’(단박에 한번 깨달으면 부처의 경지에 이르러 더 이상 닦을 것이 없다)를 주장하고, 성철스님도 이를 강조해 돈오돈수가 맞느냐, 돈오점수(한번 깨달은 뒤에도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점진적인 수행이 필요하다)가 맞느냐를 두고 논쟁이 일기도 했는데.
“근본 불교의 입장에서 보면 ‘돈오돈수’는 맞지 않다고 본다. 부처의 지위에 드는 ‘금강무간도’에 이르기 위해서는 ‘견도(見道)’와 아라한의 지위에 드는 ‘무학도’라는 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단계마다 점수와 돈오의 반복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단경의 ‘돈오돈수’가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일체의 중생이 모두 불성을 가지고 있는데, 한 순간에 마음을 전환하여 자신의 불성을 본다면 그것이 붓다이고, 그러므로 더 이상 닦을 것이 없다’는 불성 사상에서 이론적 근거를, 혜능 당시 변방의 민중을 교화의 대상으로 삼았던 남종의 시대적•사회적 배경에서 실천적 근거를 찾을 수 있다.” --------------------------------------------------------------------------------------------------------
~ @ 어떤 녀석들에게는 뭔가가 절실하게 가서 닿겠지? 나에게는 아직 글쎄. – 갸우뚱, 갸우뚱? 이 분 많이 약하시네. 본인의 바람과는 달리 왠지 여전히 구름만을 이야기하시는 느낌. 제한된 지면이라 그런가?
여래장/불성-유아 vs 무아 ~ [[ 그럼에도 그렇게 오해할 수 있는 표현을 쓴 것은 “근기가 하열(下劣)한 이들이 나도” 수행하면 깨칠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지게 하기 위해서, 혹은 나 아닌 다른 이도 불성을 가진 것을 알리기 위해서가 아니겠느냐. ]]
~ @ 아니, 에게나! 이 분도 겨우! 이거 방편설/대기설로 만족하고 계신 거네. 그런데 법을 공부하신 분이 어찌? 그렇다면 역시 내 근기가 문제인가? – 갸우뚱? 법도 꽤나 근거를 따지는 동네가 아니던가? 아닌가? 아닌가? 아닌 것 같다.
또 어딘가 이런 글도 있긴 있었지. << 불-교라는 것은 고정된 이론이 아니고, 중생들의 근기에 따라서 방편적으로 설해지는 것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설 방법이 바로 석존 당시부터 행해졌던 대기설법의 방편인 것이다. >>
~ @ 이런 말 하는 애들 보면 정말 내가 복장이 터진다, 터져. --- 불-교가 시대에 따라 변한다고? 게다가 이론이라고? 설마! 이론이라는 용어는 공리의 약속을 기반으로 연역-추론된 정리를 말하는 것 아냐? 정리-이론-법칙은 증명을 필요로 하는 것이고. 불-교가 아직 증명 안 되었다는 뜻이네? 그럼 종교가 아니네. 이 녀석들 말을 말로 알고 하는 것 맞아? (얼마 전 누가 이러길래 성질을 좀 부렸는데, 이런 녀석들이 다른 곳에도 많이 널려 있나 보네.) 그리고 불-교는 뭐뭐에 불과한 것이고? 또 세존이 방편적인 편법을 썼다고? --- 참 기가 차네. 지구에는 정말 여러 종의 인류-유정체들이 살고 있긴 한가 봐. --------------------------------------------------------------------------------------------------------
다음, 대승기신론이야 경전이 아닌 논서이니 일단 열외시켜 놓고. --- 우선 여래장 계열의 경전들은 과연 어떤 것들이며, 그 경전들의 생각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가 문제이겠네. ~ http://blog.naver.com/dlpul1010/80167520644 ~ http://blog.daum.net/amitapa/13819715 ------ 아무래도 자료가 더 필요하겠지? 짬짬이 구하지, 뭐. ------ 혹시 대승불교에 대해 잘 아시는 분의 추천이 있으시면 대환영이나 잘 모르는 사람이 주는 것은 줘도 버리자.
<< 혹시 천안통이 있으신 노약자분들께 ~ 절대 따라 하지 마세요. 보아 하니 헛수고일 것 같다는 예감. 절대 비-추천!! >> << 저야 원래 항상 먼저 손해를 보고, 그래도 남는 것이 있으면 그걸로 이익이려니 하니까 상관 없습니다만. >>
대승불교라는 단어 자체는 껍데기의 편리한 지시 기능만 있잖아. 대승불교 = 거시기! 개별적으로 사유하자, 암 그래야지. 그래, 맞아. 예전에는 나도 대승불교라는 것에 대해 무조건 부정적으로 생각했다가 용수보살의 중론송을 보고 변심한 거잖아.
(중론송-중관학은 인식론이야. 실체론 방식의 여래장사상과는 동네가 아주 다르지. 유식사상은 양쪽을 좀 걸치고 있고.) (어떤 녀석들이 실체론을 깨뜨리는 인식론을 가지고 다시 존재론/실체론을 창조적으로 재조립했다는 소문이 있기는 해.) (근대까지의 합리주의-실체론은 이성-경험/인식론 때문에 허물어지잖아. 그 이성-인식론도 또 한번 의지적 인식론에 의해 ...뒤집어지고. 그게 현대까지 오는 거고. 그래서 이성-중심 존재-실체론은 완전 매장되었다고 알고 있는데. 다시 부활한 거야?) (인식론의 중관학과 유식사상을 짬뽕-연산자로 돌리면 여래장사상의 존재론/실체론이 튀어 나온다고? 내 참, 정말인가? 설마?) (원래 “불-교”는 “인식론”으로만 버티라는 것 아냐? “오온-일체-세계”, 그 너머는 쳐다보지도 말라고. – “사념처”로써. 아닌가?) (초불의 빠알리 니까야에서 아직까지 못 봤는데, 맨 뒷장에 나오나? 아! 아담의 사과 따먹기 딜레마네! 연꽃님도 출타 중인데.)
--- 여래장사상에 대해 잘 아시는 분의 추천이 있으면 정말 좋겠네. 물론 잘 모르는 사람이 주는 것은 버리고. 잘 골라야지. --- 어떤 교활한 인간이 이 근처를 배회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블라인드-테스트를 구사한다던가? 뭐라던가? 아이고 무서버라.
<김성철교수> 대승불교는 초기불교의 논리적 귀결이다. <어떤 분> 여래장사상은 중관학과 유식학의 당연한 귀결이다 (중관학/유식학/여래장사상은 대승불교이다) <금강승님의 암시> 그러면, 대승불교의 귀결인 여래장사상도 너무 당연한 초기불교의 논리적 귀결이 아닐까?
<김성철교수> 그러나 필자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대승불전이 설혹 후대에 편집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교리는 아함이나 니까야, 율장과 같은 초기불전의 가르침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대승불교는 초기불교의 논리적 귀결”이다. ~ @ 반절만 동조. 나중에 더 따집시다. 아니 지금! ---- 나중에. 이 부분은 일단 오려 놓자. 이것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니까.
~ @ 초기불교와 혼성-대승불교가 있습니다. 둘 다 불교를 주장합니다. 공약수, 공통-인수가 분명 있어야 하겠지요. 없다면 서로 다른 종교이고요. 덜 혼성인 쪽의 인수를 기준으로 공통-인수를 찾는 게 쉽겠죠? 상호 간에 다르게 배수된 부분이 있다고 하면 일단 제외하고요. 제가 느끼는 바로도 초불과 대불 사이에 공통-인수가 아주 많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대승불교에 아직 남아 있는 그러한 공통-인수적 측면을 인정할 때 “대승불교는 초기불교의 논리적 귀결”이다라는 명제를 생각은 해 볼 수 있으나, 반절만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그 반절을 저도 대승불교에서 배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논리적 귀결”이라는 말은 좀 문제가 있습니다. 불-교를 논리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는 넘어가야 할 논리의 산이 많기 때문에요. “여래장사상은 중관학과 유식학의 당연한 귀결이다” 이런 식으로는 넘어가야 할 논리의 산들을 절대 못 넘어 갑니다. 위에 설명 드린 것처럼이요. 여래장사상은 넘어 가야 될 그 산들을 마치 다 넘어간 것처럼 저희들을 미혹해 온 것으로 판단되고요. 반면 우리의 불-교는 이미 다 넘어가 있었습니다. 2500년 전에. 시간의 흐름과는 상관이 없는 상태로요. 용수보살도 그 보증을 해 주셨고요. 그래서 종교입니다.
삼가 이상의 저의 글에 대해 충고 주시는 글 있으시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댓글 없이 무조건 감사히 받겠습니다. 특히 대승불교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는 제가 망설을 했다면 또 그에 대해 이끌어 주시는 마음으로 주시는 힐난이 있다면 그것도 감사히 받겠습니다.
수정|답글|삭제|자, 초딩논리 들어갑니다~ 티벳에서 중음신은 상식입니다. 그렇죠? 근데 중음신은 님이나 연꽃님이나 부정하십니다. 이것도 맞죠? 초기불교로나 중관논리로나 말도 안 되는 실체관이잖아요? 티벳불교는 중음신이 실체인지도 모르는, 무아라는 상식도 결여된, 중관의 기본도 모르는 비불교요 외도일 수 밖에는 없을 겁니다. 왜냐햐면 중음신을 인정하니까요. 그렇죠? 저의 이런 초딩논리가 맞는지 점검 좀 해 주세요. 만약 틀렸다면 왜 그런지도 좀 자세히 알려 주세요.', 'true', 'cmt'); return false;" href="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6UOF&articleno=16155570&admin=&refequery=%EC%A0%84%EB%8F%84%EC%84%A0%EC%96%B8#">신고
논리 좋아하시죠? 저도 초딩논리 참 좋아하는데요. 제가 한번 먹어 보겠습니다. 자, 초딩논리 들어갑니다~ 티벳에서 중음신은 상식입니다. 그렇죠? 근데 중음신은 님이나 연꽃님이나 부정하십니다. 이것도 맞죠? 초기불교로나 중관논리로나 말도 안 되는 실체관이잖아요? 티벳불교는 중음신이 실체인지도 모르는, 무아라는 상식도 결여된, 중관의 기본도 모르는 비불교요 외도일 수 밖에는 없을 겁니다. 왜냐햐면 중음신을 인정하니까요. 그렇죠? 저의 이런 초딩논리가 맞는지 점검 좀 해 주세요. 만약 틀렸다면 왜 그런지도 좀 자세히 알려 주세요.메추라기는 썩은 덩굴에 묶여 상해를 입고 ...죽음을 기다린다 치유될 수없는 두꺼운 멍에에 걸린것이다 이와같이 중생들은 윤회의 근거물(우파디/생존요소)에 결박되어 죽음을 기다리고 윤회를 기다릴 뿐이다"
" 현명한 자는 윤회의 근거물(우파디/생존요소들-처,자 재산등)이 苦(=윤회)의 뿌리이다! 깨닫고 난 후에, 윤회의 근거물들을 부수고 윤회의 근거물 없이 해탈한다 이 사람은 결박이 풀린자다" (맛지마...66-16 참조)
이 본문에서 붓다는 탄식한다!! 윤회의 근거물들을 버리라~~!고 하는데도 사람들은 버리지 않는다고 경고한다
이외에도 윤회의 근거물(우파디.생존요소)에 대한 위험을 말하는 경구는 다 수이다 사람들은 진정한 치유인 윤회에서 탈출을 기피하고 있음을 본다
혹시나 저보다 더 초보불자님 중 오해하실 분이 계실까봐 말씀드립니다. 대승불교에서는 주로 반열반(parinirvana)보다는 지금 여기에서 실현될 수 있는 열반을 얻은 후 반열반에 들지 않고 샨띠데바 보살님 말씀처럼 중생제도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원력보살이죠. 물론 어떤 걸 좋아하느냐도 자유고 어떤 걸 선택하느냐도 자유입니다. 초기불교 불자님 중에서는 대승의 방식에 부정적이신 분들도 많으시죠.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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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일곱~Y
2013.05.22 09:20
수정|삭제| ~ 티벳불교 = 유여-열반을 얻은 후 무여의 반열반에 들지 않고 중생제도를 목표로 한다.
~ 대승불교가 그러하다.
--- 인도에서 출발하여, 간다라 지방을 거쳐, 중국을 통해, 한반도에 도착하여, 천여 년의 세월을 뚫고
이 땅 내 조국에서 20-21세기까지 살아남은 조계종-선종의 대승불교도 그러하다. 그리고 그 불교는 가장 최신 버전이다.
이 중에서 하나 골라 잡으란 말이죠? 혹시 유여-열반은 어떻게 얻는지 아세요? __()__
잊어버렸네요. 광범위한 주제의 시험을 볼 때, 가진 책들이며, 가진 자료들을 활용해도 되는 시험 있잖아요.
아! 오픈북테스트라고 하나요? --- 21세기에 와서야 저희 같은 재가의 중생들에게도 오픈북테스트의 기회가 온 모양입니다.
곧 이어 혹시라도 숨겨져 있을, 또는 남아 있는 승가의 비밀이라는 것들도 역시 시험용 자료로 등장하는 시대가 올 것 같고요.
답글이 있으셔도 괜찮지만, 없으시는 것이 더 고마울 것 같습니다.
단지 금강승님의 생각을 다른 분들이 오해하시지 말고, 보시기 편하라고 제가 그냥 정리해 본 것이니까요. __()__
~ 초기불교 = 반열반을 목표로 한다. ~ 티벳불교 = 유여-열반을 얻은 후 무여의 반열반에 들지 않고 중생제도를 목표로 한다. ~ 대승불교가 그러하다. --- 인도에서 출발하여, 간다라 지방을 거쳐, 중국을 통해, 한반도에 도착하여, 천여 년의 세월을 뚫고 이 땅 내 조국에서 20-21세기까지 살아남은 조계종-선종의 대승불교도 그러하다. 그리고 그 불교는 가장 최신 버전이다.
이 중에서 하나 골라 잡으란 말이죠? 혹시 유여-열반은 어떻게 얻는지 아세요? __()__
잊어버렸네요. 광범위한 주제의 시험을 볼 때, 가진 책들이며, 가진 자료들을 활용해도 되는 시험 있잖아요. 아! 오픈북테스트라고 하나요? --- 21세기에 와서야 저희 같은 재가의 중생들에게도 오픈북테스트의 기회가 온 모양입니다. 곧 이어 혹시라도 숨겨져 있을, 또는 남아 있는 승가의 비밀이라는 것들도 역시 시험용 자료로 등장하는 시대가 올 것 같고요.
답글이 있으셔도 괜찮지만, 없으시는 것이 더 고마울 것 같습니다. 단지 금강승님의 생각을 다른 분들이 오해하시지 말고, 보시기 편하라고 제가 그냥 정리해 본 것이니까요. __()__
제 글은 하나를 고르라는 것도 아니고 어떠한 불교를 최신불교라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것이 좋다는 보장도 없죠. 고전음악보다 현대음악이 좋다고 할 수 있나요.. 단지 대승에 대한 오해를 풀어 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저의 지난 질문에 대해서는 생각 좀 해 보셨나요??
┗
일곱~
일곱~Y
2013.05.22 16:45
수정|삭제| 저야 금강승님이 대승을 이야기하시니 그냥 덩달아 그 단어를 쓰기는 하는데 저는 사실 대승이가 누군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미스터리여요. 누가 그러대요. 그 유명한 옥스포드대학을 견학하려고 그곳에 갔더니 그런 대학 없다고 해서 그냥 왔다고요.
금강승님이 이야기하는 대승이도 혹시 그런 애 아닌가요?
아니면 부파불교-유식사상/공사상-중관학/선불교, 거기에다가 여래장이라는 것을 짬뽕하여 ‘참나’라고 내놓은 것인가요?
글쎄요. 그 ‘참나’ 짬뽕 속에 불교가 있다고 믿으시는 분이 있다면 그러려니 하고 봐야지요.
저는 그냥 굶으렵니다. 사실 더 근사한 곳을 이제는 알게 되어서요.
이런 이야기도 있습디다. 어느 삼촌이 조카에게 동물들을 보여 주겠다고 동물원에 데리고 갔습니다.
그 삼촌은 호랑이, 코끼리, 기린 등등은 구경시켜 주었는데, 동물은 어디 있는지 몰라서 조카에게 결국 못 보여 주었다고요.
수행승들이여, 연소하고 작열하고 불꽃 튀는 뜨거운 쇠바늘로 시각기관을 차라리 지질지언정, 시각으로 인식되는 형상의 인상과 속성에 사로 잡히지 말라.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의 의식이 인상의 유혹에 사로 잡히거나 속성의 유혹에 사로잡혀, 그 순간에 죽는 다면 지옥으로 떨어지거나 축생으로 태어나는 두 가지 운명 가운데 하나를 얻을 가능성이 있다. 수행승들이여, 나는 그 위험을 보고 이와 같이 말한다. (Adittapariyayasutta-연소의 법문에 대한 경, 상윳따니까야 S35:235, 전재성님역)
사실 이곳 공부만으로도 벅찹니다. 우리끼리는 이제 대충 지내시죠? 없는 대승이로 너무 그러지말고요.
대승이는 누구를 말하는 건가요? 저야 금강승님이 대승을 이야기하시니 그냥 덩달아 그 단어를 쓰기는 하는데 저는 사실 대승이가 누군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미스터리여요. 누가 그러대요. 그 유명한 옥스포드대학을 견학하려고 그곳에 갔더니 그런 대학 없다고 해서 그냥 왔다고요.
금강승님이 이야기하는 대승이도 혹시 그런 애 아닌가요? 아니면 부파불교-유식사상/공사상-중관학/선불교, 거기에다가 여래장이라는 것을 짬뽕하여 ‘참나’라고 내놓은 것인가요? 글쎄요. 그 ‘참나’ 짬뽕 속에 불교가 있다고 믿으시는 분이 있다면 그러려니 하고 봐야지요. 저는 그냥 굶으렵니다. 사실 더 근사한 곳을 이제는 알게 되어서요.
이런 이야기도 있습디다. 어느 삼촌이 조카에게 동물들을 보여 주겠다고 동물원에 데리고 갔습니다. 그 삼촌은 호랑이, 코끼리, 기린 등등은 구경시켜 주었는데, 동물은 어디 있는지 몰라서 조카에게 결국 못 보여 주었다고요.
반야-공사상/중관학 = Very Good! 부파불교-유식사상 = 식전변/유식무경/전식득지 ~ Good! (아뢰야식을 여래장으로 바꾸면 사양할 거고요. 주문대로만 주세요!) 선불교 = 언어의 파괴 ~ 2차 대전과 월남전 전후 구미의 반전 분위기 및 포스트모더니즘과 궁합이 잘 맞았었죠. Good! 티벳불교 = 내생-윤회 후보의 하나입니다.
대승이가 누구여요? 금강승님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대승이가 저 중에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말입니다. 혹시 대승이는 없는 애 아녀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평생 불교를 하고도 힌두교로 가서 불교를 주장하기도 하는 것 아닐까요? (철학의 이성-영역에서 힌두-철학이 저급이라고 생각치 않습니다. 서양철학보다도 고급이고, 유일신-철학보다는 한참 위고요.)
대승이가 누구여요? __()__
추가. 다음 포스팅에 연꽃님이 이런 글을 인용하셨네요.
수행승들이여, 연소하고 작열하고 불꽃 튀는 뜨거운 쇠바늘로 시각기관을 차라리 지질지언정, 시각으로 인식되는 형상의 인상과 속성에 사로 잡히지 말라.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의 의식이 인상의 유혹에 사로 잡히거나 속성의 유혹에 사로잡혀, 그 순간에 죽는 다면 지옥으로 떨어지거나 축생으로 태어나는 두 가지 운명 가운데 하나를 얻을 가능성이 있다. 수행승들이여, 나는 그 위험을 보고 이와 같이 말한다. (Adittapariyayasutta-연소의 법문에 대한 경, 상윳따니까야 S35:235, 전재성님역)
사실 이곳 공부만으로도 벅찹니다. 우리끼리는 이제 대충 지내시죠? 없는 대승이로 너무 그러지말고요.
-티베트와 한국은 공히 대승불교를 수용하고 발전시켜온 나라입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다소 차이가 있는 듯 합니다. 성하께서는 대승불교의 본질과 목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대승불교의 목적은 부처가 되는 것(成佛)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불은 무엇인가. 성불은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와 지는 것입니다. 탐진치 삼독의 굴레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부처의 근원은 바로 우리의 마음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 마음을 불성(佛性)이나 여래장(如來藏)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언제나 마음 안에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대승불교에서 중요한 것은 이 부처의 본성인 마음을 깨달은 동시에 이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한국 불교와 티베트 불교는 같은 대승불교로 자비의 실천이나 6바라밀의 실천이라는 공통적인 실천지침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한국불교가 통불교의 전통을 가지고 있듯이 티베트 불교도 소승, 대승의 보살승과 금강승 등 여러 가지 특성들을 많이 포용하고 있습니다."
저번 질문을 다시 올립니다. -------- 일곱~님, 선종이 잘못 되지 않았다는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ㅜㅜ 그렇긴 하지만 저는 모르고 님만 아신다는 선종의 많은 좋은 점을 저에게도 알려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제가 구별해서 읽어야 하는 것이 필요할 수는 있으나 그 글 자체가 정말 일곱~님이 말씀하시는 뜻일까요? 일반 독자들도 그렇게 읽을까요? 또 블라인드 테스트 해야 하나요?^^ 아참 그러면 조계종은 계속 선종 중심 통불교로 가도 되나요??^0^ 發사홍서원 합장 ps 그런데 어디에서 제가 비판을 비난으로 봤다는 건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비난 받고 있는 것은 선종이 아니라, 선종을 빙자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그 사람 또는 그 스님의 불-교 의견” " 의 그 스님은 송담, 법륜, 혜민 스님 등등을 말씀하시는 거겠죠? 혹시 일곱~님이 생각하시기에 옛날 선승이나, 요새라도 틱낫한 같은 외국 선승 말고 한국 선승 중에 제대로 된 아니 외도가 아닌 선승은 누가 있다고 보시나요? ------- 그리고 질문 추가합니다. 님이 생각하시는 그 "참나"라는 것의 정의가 뭔가요? 미산 스님 말씀도 한번 보시구요. "수행 체험을 직접 해보면 불성, 참나, 이런 것이 어떤 자리인지를 스스로 체득하게 됩니다. 그렇게 체득한 상태에서는 어떤 용어를 쓰더라도 걸리지 않죠. 그 말을 쓰는 당사자는 체득해서 걸림이 없는데, 혹 다른 사람이 그걸 듣고 실체론적으로 뭐가 있다는 식으로 잘못 이해할 수 있어요."', 'true', 'cmt'); return false;" href="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6UOF&articleno=16155570&admin=&refequery=%EC%A0%84%EB%8F%84%EC%84%A0%EC%96%B8#">신고
'대승'은 연꽃님께서 '대승'으로 지칭하시는 것을 제가 받아서 '대승'이라고 지칭하는 것인데 그것을 '대승이'라고 보시면될 것 같습니다. 중관 하면 티벳인데 그 중 달라이 라마 존자님 말씀 하나 옮깁니다.
-티베트와 한국은 공히 대승불교를 수용하고 발전시켜온 나라입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다소 차이가 있는 듯 합니다. 성하께서는 대승불교의 본질과 목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대승불교의 목적은 부처가 되는 것(成佛)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불은 무엇인가. 성불은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와 지는 것입니다. 탐진치 삼독의 굴레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부처의 근원은 바로 우리의 마음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 마음을 불성(佛性)이나 여래장(如來藏)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언제나 마음 안에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대승불교에서 중요한 것은 이 부처의 본성인 마음을 깨달은 동시에 이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한국 불교와 티베트 불교는 같은 대승불교로 자비의 실천이나 6바라밀의 실천이라는 공통적인 실천지침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한국불교가 통불교의 전통을 가지고 있듯이 티베트 불교도 소승, 대승의 보살승과 금강승 등 여러 가지 특성들을 많이 포용하고 있습니다."
저번 질문을 다시 올립니다. -------- 일곱~님, 선종이 잘못 되지 않았다는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ㅜㅜ 그렇긴 하지만 저는 모르고 님만 아신다는 선종의 많은 좋은 점을 저에게도 알려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제가 구별해서 읽어야 하는 것이 필요할 수는 있으나 그 글 자체가 정말 일곱~님이 말씀하시는 뜻일까요? 일반 독자들도 그렇게 읽을까요? 또 블라인드 테스트 해야 하나요?^^ 아참 그러면 조계종은 계속 선종 중심 통불교로 가도 되나요??^0^ 發사홍서원 합장 ps 그런데 어디에서 제가 비판을 비난으로 봤다는 건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비난 받고 있는 것은 선종이 아니라, 선종을 빙자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그 사람 또는 그 스님의 불-교 의견” " 의 그 스님은 송담, 법륜, 혜민 스님 등등을 말씀하시는 거겠죠? 혹시 일곱~님이 생각하시기에 옛날 선승이나, 요새라도 틱낫한 같은 외국 선승 말고 한국 선승 중에 제대로 된 아니 외도가 아닌 선승은 누가 있다고 보시나요? ------- 그리고 질문 추가합니다. 님이 생각하시는 그 "참나"라는 것의 정의가 뭔가요? 미산 스님 말씀도 한번 보시구요. "수행 체험을 직접 해보면 불성, 참나, 이런 것이 어떤 자리인지를 스스로 체득하게 됩니다. 그렇게 체득한 상태에서는 어떤 용어를 쓰더라도 걸리지 않죠. 그 말을 쓰는 당사자는 체득해서 걸림이 없는데, 혹 다른 사람이 그걸 듣고 실체론적으로 뭐가 있다는 식으로 잘못 이해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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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일곱~Y
2013.05.23 19:44
수정|삭제| 내포적 용법과 외연적 용법의 뜻은 같지 않습니다. 어차피 낱말 속에는 아무 것도 없지만요.
그래서, 떠벌리고 싶은 말이야 많아도 말과 말은 허망할 뿐이니 우리 공부를 좀 더 하면서 말은 아낍시다.
제가 님의 모든 질문에 답을 해 가면서 가르쳐야 하는 선생님은 아니죠?
질문의 답이 안 나오면 몰라서 답을 안 하거나, 하기 싫어서 안 하는구나 하는 정도로 이해하시고요.
애꿎은 스님들과 엉뚱한 분들을 그만 욕 먹입시다. 그래도 궁금하면 500원입니다^^.
대신 괜찮은 블로그들을 소개해 드릴께요. 찬찬히 여러 번 읽어 보세요.
http://blog.daum.net/leesc314 ~ 생태와 경제 – 수행이야기 (사띠현정)
http://blog.naver.com/hojanyun ~ 일상 담마생활 – 담마이해/인용 (호잔)
“감각으로 인식되는 형상의 ‘인상’과 ‘속성’에 사로 잡히지 말라!”
--- 참고로 다음 링크의 글들도 한번 보시고요.
*** 맛에 대한 갈애 ~ http://blog.daum.net/bolee591/16155448
님의 대승불교라는 단어와 연꽃님의 대승불교라는 단어는 서로 다릅니다. 내포적 용법과 외연적 용법의 뜻은 같지 않습니다. 어차피 낱말 속에는 아무 것도 없지만요.
그래서, 떠벌리고 싶은 말이야 많아도 말과 말은 허망할 뿐이니 우리 공부를 좀 더 하면서 말은 아낍시다.
제가 님의 모든 질문에 답을 해 가면서 가르쳐야 하는 선생님은 아니죠? 질문의 답이 안 나오면 몰라서 답을 안 하거나, 하기 싫어서 안 하는구나 하는 정도로 이해하시고요. 애꿎은 스님들과 엉뚱한 분들을 그만 욕 먹입시다. 그래도 궁금하면 500원입니다^^. 대신 괜찮은 블로그들을 소개해 드릴께요. 찬찬히 여러 번 읽어 보세요.
http://blog.daum.net/leesc314 ~ 생태와 경제 – 수행이야기 (사띠현정) http://blog.naver.com/hojanyun ~ 일상 담마생활 – 담마이해/인용 (호잔)
“감각으로 인식되는 형상의 ‘인상’과 ‘속성’에 사로 잡히지 말라!” --- 참고로 다음 링크의 글들도 한번 보시고요. *** 맛에 대한 갈애 ~ http://blog.daum.net/bolee591/16155448 *** 아딧떼나경 (Ādittena – Blazing-연소와 함께경, 상윳따니까야 S34.18.8, 전재성님역) http://cafe.daum.net/ekaakvnwksk/T4gl/213?docid=3910173257&q=%BF%AC%BC%D2%C0%C7%20%B9%FD%B9%AE&re=1
우리 서로 왜 댓글을 쓰는지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 서로 자신의 능력 한계를 넘어서 나오는 말과 언어들이 어떤 것인지도 살펴보고요. 제가 님에게 쏟아내는 감정이 있었다고 느끼시면 무시하고 용서^^해 주세요. 저도 거꾸로 마찬가지일 거고요. 님의 불연을 기원드리겠습니다. __()__
우리가 가진 유일한 각자의 것은 자신의 사랑스러운 오온뿐입니다. 오온도 내 것이 아니지만, 오온 바깥으로 나오면 그것은 더더욱 내 것이 아닙니다. 지금 제 말씀은 우리 서로 각자의 오온 바깥으로 나오지 말자는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겁니다.
머리를 깎은 정도의 수행의 길을 가시든지, 아니면 그 정도 이상의 공부를 하시든지 하십시오. 우리보다 현명한 현자들이 아주 많거든요. 혹시 두 번째의 길을 잠시라도 걸으실 경우 반드시 서양철학사도 곁들여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생략된 사유의 과정을 모르는 결론만의 대승철학보다는 아마 힌두철학-인명논리학이 더 도움이 되시지 않을까 싶고요.) 추천해드린 블로그도 많이 도움이 되시지 않을까 합니다.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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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승
금강승Y
2013.05.23 23:53
수정|삭제| 우리보다 현자는 물론 많다고 하시는데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그겁니다. 여래장 사상을 말하는 현자는 많습니다. 아, 그들은 현자가 아닙니다, 그렇죠? 그도 그럴 것이 대승은 과정을 모르고 결과만 아니까. 맞죠? 대승은 인명학이 없으니까. 확실하죠? 게다가 그들은 서양철학도 몰랐으니까. 틀림 없죠? 달라이 라마가 알아봐야 얼마나 알겠습니까. 그러니 여래장이나 말하는 거죠. 원효라고 해 봤자 별 거 있나요. 칸트도 못 읽어 봤을 텐데요. 밀라레빠라고 별 수 있나요? 인명학 공부나 제대로 했겠습니까?
아짠 차도 별 수 없는 것이 이런 말이나 하고 있더라구요.
"긍극에는 아도 없고 무아도 없다."', 'true', 'cmt'); return false;" href="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6UOF&articleno=16155570&admin=&refequery=%EC%A0%84%EB%8F%84%EC%84%A0%EC%96%B8#">신고
비판이 없으면 반론도 없습니다. 반론이 싫으시면 비판을 하지 않으면 됩니다. 쉽죠? 비판은 하고 싶은데 반론은 싫다. 욕심이죠? 우리보다 현자는 물론 많다고 하시는데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그겁니다. 여래장 사상을 말하는 현자는 많습니다. 아, 그들은 현자가 아닙니다, 그렇죠? 그도 그럴 것이 대승은 과정을 모르고 결과만 아니까. 맞죠? 대승은 인명학이 없으니까. 확실하죠? 게다가 그들은 서양철학도 몰랐으니까. 틀림 없죠? 달라이 라마가 알아봐야 얼마나 알겠습니까. 그러니 여래장이나 말하는 거죠. 원효라고 해 봤자 별 거 있나요. 칸트도 못 읽어 봤을 텐데요. 밀라레빠라고 별 수 있나요? 인명학 공부나 제대로 했겠습니까? 아짠 차도 별 수 없는 것이 이런 말이나 하고 있더라구요. "긍극에는 아도 없고 무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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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일곱~Y
2013.05.24 01:17
수정|삭제| 논리학과 아비담마에 대한 관심도 없이 어찌 용수보살의 중관학과 티벳불교의 공사상을 변명하려 합니까?
범아일여/플라톤/칸트의 이분법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없이 마명보살/원효대사의 대승기신론적 세계관을 어찌 변호합니까?
언어와 사유의 생성과 구조적 작용에 대한 이해도 하지 않은 채 선종의 일초직입여래지의 선불교를 어찌 좋아한다고 말합니까?
서양철학과 서양철학의 원형적 닮음꼴인 힌두철학에 대한 호기심도 없으면서 머리 속의 것을 겁 없이 밖으로 내 놓으려 하고요.
자학은 별로 동정을 받지 못합니다.
님이 옹호하는 대승불교는 님만의 대승불교랍니다. 제가 좋아하는 대승불교가 아니고요.
제가 비판하는 것은 대승불교가 아니라, 님처럼 잘못된 대승불교관으로 대승불교를 욕먹이는 것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부탁이오니 부디부디 김성철교수님의 중관학이라도 제대로 공부하셔서 님이 좋아하는 대승적 통불교를 잘 만들어 보세요.
궁극에는 아도 없고 무아도 없다를 비하하시는 것을 보면, 아직도 사구비판의 의미에 대해서 천착해 보신 적 없으시죠?
한국인인 내가 아프리카의 원주민과 어떻게 말을 섞을 수 있을까요? 서로의 공용어를 찾을 수 밖에 없지 않나요!
서양철학사를 권유하는 것은 사유와 사유가, 말과 말이 제대로 섞일 수 있기를 원해서입니다. 사유의 공용 언어가 철학입니다.
또 님은 말로 할 수 있는 영역과 말로 할 수 없는 영역의 구별에 대한 의지와 예절도 없어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곁들여 수학 공부도 한번 해 보세요? 본인의 인식이라는 것과 사유라는 것에 대한 관심이 있으시다면요.
1+1은 무엇인가요? 혹시 님의 주변 어디에서 2라는 것을 찾으실 수는 있으신가요? 찾으시면 하나 보내 주세요.
인식론에 대한 공부도 하지 않고서 어찌 유식불교와 여래장사상을 옹호하고, 논리학과 아비담마에 대한 관심도 없이 어찌 용수보살의 중관학과 티벳불교의 공사상을 변명하려 합니까? 범아일여/플라톤/칸트의 이분법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없이 마명보살/원효대사의 대승기신론적 세계관을 어찌 변호합니까? 언어와 사유의 생성과 구조적 작용에 대한 이해도 하지 않은 채 선종의 일초직입여래지의 선불교를 어찌 좋아한다고 말합니까? 서양철학과 서양철학의 원형적 닮음꼴인 힌두철학에 대한 호기심도 없으면서 머리 속의 것을 겁 없이 밖으로 내 놓으려 하고요. 자학은 별로 동정을 받지 못합니다.
님이 옹호하는 대승불교는 님만의 대승불교랍니다. 제가 좋아하는 대승불교가 아니고요. 제가 비판하는 것은 대승불교가 아니라, 님처럼 잘못된 대승불교관으로 대승불교를 욕먹이는 것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부탁이오니 부디부디 김성철교수님의 중관학이라도 제대로 공부하셔서 님이 좋아하는 대승적 통불교를 잘 만들어 보세요. 궁극에는 아도 없고 무아도 없다를 비하하시는 것을 보면, 아직도 사구비판의 의미에 대해서 천착해 보신 적 없으시죠?
한국인인 내가 아프리카의 원주민과 어떻게 말을 섞을 수 있을까요? 서로의 공용어를 찾을 수 밖에 없지 않나요! 서양철학사를 권유하는 것은 사유와 사유가, 말과 말이 제대로 섞일 수 있기를 원해서입니다. 사유의 공용 언어가 철학입니다. 또 님은 말로 할 수 있는 영역과 말로 할 수 없는 영역의 구별에 대한 의지와 예절도 없어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곁들여 수학 공부도 한번 해 보세요? 본인의 인식이라는 것과 사유라는 것에 대한 관심이 있으시다면요. 1+1은 무엇인가요? 혹시 님의 주변 어디에서 2라는 것을 찾으실 수는 있으신가요? 찾으시면 하나 보내 주세요.
우리 각자의 오온을 떠나지 맙시다. __()__
┗
금강승
금강승Y
2013.05.24 07:32
수정|삭제| 미리 포기 마시고 인식론이든 뭐든 본인이 이해한 것이 있으면 쉽게 설명해 보세요.
아직도 저의 주장을 알지 못하시는 것 같은데 그건 그렇다 치고요. 님이 주장하는 대승불교란 무엇입니까?
님이 든 예가 저는 님의 상황을 가르키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 대승이 뭐냐고 하셨죠? 이것이 옥스포드 대학에서 옥스포드 대학을 못 본 것이나 동물원에서 동물을 못 보여 준 것과 뭐가 다릅니까? 거기서 본 것 말고 달리 찾을 필요 없이 거기서 본 것들이 다 옥스포드이고 동물입니다.
마찬가지로 대승을 딴 데서 찾지 마세요. 호랑이, 코끼리, 기린 등등을 떠나서 어디서 동물을 찾으시나요?
우선은 여기까지 적습니다. 대화의 진도를 봐서는 아직 시작도 못한 것 같습니다. 나중에 또 보충하죠.', 'true', 'cmt'); return false;" href="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6UOF&articleno=16155570&admin=&refequery=%EC%A0%84%EB%8F%84%EC%84%A0%EC%96%B8#">신고
인명학이고 논리학이고 아비담마고 그런 것 이전에 제가 무슨 말 하는지는 아십니까? 도대체 님이 말하는 자학이란 무슨 글을 보고 하신 건가요? 대체 궁극에는 아도 없고 무아도 없다란 것을 제가 비하했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제가 비하하는 걸로 보이셨나요? 미리 포기 마시고 인식론이든 뭐든 본인이 이해한 것이 있으면 쉽게 설명해 보세요. 아직도 저의 주장을 알지 못하시는 것 같은데 그건 그렇다 치고요. 님이 주장하는 대승불교란 무엇입니까? 님이 든 예가 저는 님의 상황을 가르키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 대승이 뭐냐고 하셨죠? 이것이 옥스포드 대학에서 옥스포드 대학을 못 본 것이나 동물원에서 동물을 못 보여 준 것과 뭐가 다릅니까? 거기서 본 것 말고 달리 찾을 필요 없이 거기서 본 것들이 다 옥스포드이고 동물입니다. 마찬가지로 대승을 딴 데서 찾지 마세요. 호랑이, 코끼리, 기린 등등을 떠나서 어디서 동물을 찾으시나요? 우선은 여기까지 적습니다. 대화의 진도를 봐서는 아직 시작도 못한 것 같습니다. 나중에 또 보충하죠.
<금강승> 여래장 사상을 말하는 현자는 많습니다. 아, 그들은 현자가 아닙니다, 그렇죠? 그도 그럴 것이 대승은 과정을 모르고 결과만 아니까. 맞죠? 대승은 인명학이 없으니까. 확실하죠? 게다가 그들은 서양철학도 몰랐으니까. 틀림 없죠? 달라이 라마가 알아봐야 얼마나 알겠습니까. 그러니 여래장이나 말하는 거죠. 원효라고 해 봤자 별 거 있나요. 칸트도 못 읽어 봤을 텐데요. 밀라레빠라고 별 수 있나요? 인명학 공부나 제대로 했겠습니까?
--- 제가 님의 말을 500% 이해 못하는 것을 보면 저도 이해력이 한참 모자라나 봅니다. 위 글은 님의 글입니다. 이 내용을 자학이라고 이해하면 잘못 이해한 거네요. 맞아요 자학이 아녀요. 자학이 아닌 것을 알고, 님의 마음이 엉뚱하게 가지 말라고 제가 자학이라고 비꼬는 겁니다. 또 저의 이해력보다 님의 이해력이 더 문제인 것 같아 제가 현학을 부리는 거고요.
<금강승> 아짠 차도 별 수 없는 것이 이런 말이나 하고 있더라구요. "긍극에는 아도 없고 무아도 없다." --- 이 글도 님의 말씀이십니다. 인용문의 주체에 대한 비하의 뉘앙스가 없는 글이라고요? 제가 국어 공부를 더 할게요.
대승이 과정을 모르고 결과만 아는 것이 아니라, 님이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대승에 인명학이 없다니요? 도대체 제 정신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달라이라마가 무식하고, 원효가 철학을 모른다고요? 님의 무지와 님의 철학 또는 사유라는 것에 대한 게으름을 어찌 달라이라마와 원효대사에게 뒤집어 씌우십니까?
부처님 재세 시대가 바로 인도에서의 철학적 논쟁이, 브라만-힌두철학, 육사외도와의 논쟁이 첨예하던 시절입니다. 니까야 경전에 나오는 수많은 예화들이 그러한 논쟁의 사례들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을 아니, 아니 보고 계십니까? 용수보살 자신이 그러한 피가 튀고 살을 벗겨내고 뼈를 부러뜨리는 말싸움판의 살벌함을 알기에 자신의 중론송 귀경게에서 부처님을 찬탄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느낌이 안 오십니까? 감정으로 못 느껴보았느냐고요?
저에게 따지지 말고 힌두철학이 됐든, 서양철학이 됐든 인류의 사유적 변화라는 것의 처절함을 먼저 살펴 보십시오. 아니면 그냥 오온 속으로 침잠하시든지요. __()__
지금은 짧게 쓰고 나중에 또 쓰겠습니다. 우선 쉽게 생각해 보죠. 님은 여래장사상이 불교라고 생각하십니까? 솔직하게 답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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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일곱~Y
2013.05.24 12:26
수정|삭제| 정말 답답한 분이시네요. 한글은 읽을 줄 아세요? 지금 도대체 글은 읽으시는 겁니까? 그래서 그런 질문이 나오는 건가요?
부디, 부디, 어렵게, 어렵게, 사유하면서, 사유하면서 살라고 지금!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쉽게 생각하지 말라고요.
베르니케-실어증이 생각나네요. (농담 아닌 진단 결과임) 저는 이제부터 브로카-실어증에 걸려야 될 것 같고요. (농담임)
--- 아, 저 불댜 안-입니다. 여래댱사당이 어디예요? 솔디카게 다 패 보세요. 누~구슈? 혹시 솔디키 지 아시우?
--- 지나가는 모르는 사람에게 무턱대고 질문을 하면 실례랍니다. 그럼 안뇽히 계세요.
--- 주제를 벗어나 정말 가볍게 날으시는군요! 날자! 날자! 나도 제발 한번만이라도 날자꾸나! 출장 잘 다녀올게요.
그래요. 님의 말씀대로 지금 저는 도대체 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방법이 없네요. 제가 사람을 잘못 봤던지요.
제가 다음 주, 아니면 다음 달, 아니면 내년에 천안통을 얻어 온 후에나 금강승님과 말을 섞도록 하겠습니다. __()__', 'true', 'cmt'); return false;" href="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6UOF&articleno=16155570&admin=&refequery=%EC%A0%84%EB%8F%84%EC%84%A0%EC%96%B8#">신고
저는 안 아파요. 지금은 님의 머리가 아픈 겁니다. 근데 왜 제 배에다 대고 소독약을 바르려 하십니까? 정말 답답한 분이시네요. 한글은 읽을 줄 아세요? 지금 도대체 글은 읽으시는 겁니까? 그래서 그런 질문이 나오는 건가요? 부디, 부디, 어렵게, 어렵게, 사유하면서, 사유하면서 살라고 지금!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쉽게 생각하지 말라고요.
베르니케-실어증이 생각나네요. (농담 아닌 진단 결과임) 저는 이제부터 브로카-실어증에 걸려야 될 것 같고요. (농담임) --- 아, 저 불댜 안-입니다. 여래댱사당이 어디예요? 솔디카게 다 패 보세요. 누~구슈? 혹시 솔디키 지 아시우? --- 지나가는 모르는 사람에게 무턱대고 질문을 하면 실례랍니다. 그럼 안뇽히 계세요. --- 주제를 벗어나 정말 가볍게 날으시는군요! 날자! 날자! 나도 제발 한번만이라도 날자꾸나! 출장 잘 다녀올게요.
그래요. 님의 말씀대로 지금 저는 도대체 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방법이 없네요. 제가 사람을 잘못 봤던지요. 제가 다음 주, 아니면 다음 달, 아니면 내년에 천안통을 얻어 온 후에나 금강승님과 말을 섞도록 하겠습니다.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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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승
금강승Y
2013.05.24 12:50
수정|삭제| 제가 늘 여래장사상이 비판받을 때마다 반대의견을 제시했는데 그런 저에게 반박하시는 분이 저의 이 질문을 이해 못하시는 건 그간 저의 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비판하신 것이 아닌가 싶군요.
쉬운 건 쉽게 이해할 줄 알아야죠. 사성제 팔정도가 불교냐 질문하면 답은 yes죠. 그럼 그렇게 대답하는 사람이 사성제 팔정도를 완벽히 알아야만 그런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죠? 저의 질문도 그 정도 수준의 질문이었습니다. 설마 너무 어려운 것만 공부하시니 쉬운 말에 적응이 안 되세요? 아니면 답을 피하시는 건가요?', 'true', 'cmt'); return false;" href="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6UOF&articleno=16155570&admin=&refequery=%EC%A0%84%EB%8F%84%EC%84%A0%EC%96%B8#">신고
쉬운 질문인데도 이해가 안 간다고 하시는군요. 제 질문에 yes or no로 대답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게 대답할 수도 있는 간단한 의견 확인 질문인데 말이죠. 제가 늘 여래장사상이 비판받을 때마다 반대의견을 제시했는데 그런 저에게 반박하시는 분이 저의 이 질문을 이해 못하시는 건 그간 저의 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비판하신 것이 아닌가 싶군요. 쉬운 건 쉽게 이해할 줄 알아야죠. 사성제 팔정도가 불교냐 질문하면 답은 yes죠. 그럼 그렇게 대답하는 사람이 사성제 팔정도를 완벽히 알아야만 그런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죠? 저의 질문도 그 정도 수준의 질문이었습니다. 설마 너무 어려운 것만 공부하시니 쉬운 말에 적응이 안 되세요? 아니면 답을 피하시는 건가요?
반대로, 여래장에다가 대승을 덤으로 파는 줄은 정말, 정말 몰랐습니다. 제 발등이 아프네요. ㅜㅜ
그렇네요. 여래장을 파시는 분이 뭐 얼마나 대승을 잘 PR 하시겠어요. 제가 그걸 몰랐습니다. 제가 판정패입니다. 인정!
제 집 쓰레기 통에 아직 있을 지 모르겠네요. (작년 봄쯤이었던가 제가 버리던 것 기억하시죠? 그때 제 옆에 계셨잖아요!)
그때 말씀하시지 그러셨어요. 저 그것 안 쓸 거니까, 보내드릴 테니 주소 불러 주세요.
연꽃님 사이트는 사유지입니다. 우리 이제 그만 잡시다. __()__
추가1. 저 티벳행 일단 취소합니다. 다른 여행사를 통해서 다시 알아볼랍니다. 자꾸 예약 여부 확인하지 마세요!
추가2. 금강승님, 티벳에서도 인명학은 필요할 겁니다. 중관학을 해야 여래장으로 가지 않나요? 예약 취소 팁입니다.', 'true', 'cmt'); return false;" href="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6UOF&articleno=16155570&admin=&refequery=%EC%A0%84%EB%8F%84%EC%84%A0%EC%96%B8#">신고
아, 정말 제가 사람을 잘못 봤네요. 여래장을 팔러 다니시는 분인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대승에다가 덤으로 여래장을 약간만 끼워서 파는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제깐에는 그 동안 같이 대승을 홍보해 주려고 열씨미, 열씨미 한 건데. ㅜㅜ 반대로, 여래장에다가 대승을 덤으로 파는 줄은 정말, 정말 몰랐습니다. 제 발등이 아프네요. ㅜㅜ
그렇네요. 여래장을 파시는 분이 뭐 얼마나 대승을 잘 PR 하시겠어요. 제가 그걸 몰랐습니다. 제가 판정패입니다. 인정! 제 집 쓰레기 통에 아직 있을 지 모르겠네요. (작년 봄쯤이었던가 제가 버리던 것 기억하시죠? 그때 제 옆에 계셨잖아요!) 그때 말씀하시지 그러셨어요. 저 그것 안 쓸 거니까, 보내드릴 테니 주소 불러 주세요.
연꽃님 사이트는 사유지입니다. 우리 이제 그만 잡시다. __()__
추가1. 저 티벳행 일단 취소합니다. 다른 여행사를 통해서 다시 알아볼랍니다. 자꾸 예약 여부 확인하지 마세요! 추가2. 금강승님, 티벳에서도 인명학은 필요할 겁니다. 중관학을 해야 여래장으로 가지 않나요? 예약 취소 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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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승
금강승Y
2013.05.24 14:12
수정|삭제| 기본적으로 남의 말을 믿지 않으십니까?', 'true', 'cmt'); return false;" href="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6UOF&articleno=16155570&admin=&refequery=%EC%A0%84%EB%8F%84%EC%84%A0%EC%96%B8#">신고
반론과 전도도 구분 못하십니까? 제가 대승을 전도한다고 생각하세요? 제가 님보고 대승 홍보해 달라고 했나요? 기본적으로 남의 말을 믿지 않으십니까?
혹시나 저보다 더 초보불자님 중 오해하실 분이 계실까 봐 말씀드립니다. 대승불교에서는 주로 반열반(parinirvana)보다는 지금 여기에서 실현될 수 있는 열반을 얻은 후 반열반에 들지 않고 샨띠데바 보살님 말씀처럼 중생제도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원력보살이죠. 물론 어떤 걸 좋아하느냐도 자유고 어떤 걸 선택하느냐도 자유입니다. 초기불교 불자님 중에서는 대승의 방식에 부정적이신 분들도 많으시죠.ㅜ.ㅜ
~~~ 재생-처분 대상입니다. 대승불교에 대한 부족한 지식의 언급이면서, 남의 코보다는 자신의 코가 먼저 석자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이제 금강승님은 오직 “여래장사상”에 관련한 것만 댓글-언급을 하셔도 됩니다. 반론이든 전도이든.
그러나 “공사상/유식사상/선불교”의 “대승불교” 이야기는 일체 언급하지 마세요. 반론이건 전도이건, ‘대’ 자도 안 됩니다.
님의 여래장불교 이외의 공사상/유식사상/선불교의 대승불교 지식은 아직 팔만 한 것이 아니신 것 같으니까요. (나도 지식이 있다 라고 설마 주장하시려는 것은 아니시겠죠? 바로 머리 위에 증거들이 널려있습니다. 순순히 오라를 받으세요.)
팔만한 지식이 아니니 당연히 반론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겠죠? 이것에 대한 반론은 님의 다음 재생 때 허용됩니다. 혹시 공부를 위한 동냥이라면 몰라도요. 특별 과외공부가 혹시 필요하시면 다원님께 부탁 드리시기 바랍니다. (좀 거칩니다만.)
지금 이곳 연꽃님 사유지에서의 “언어”는 빅브라더의 명령에 의해 제한되어 있습니다. 다음과 같이요. 연기법-사성제-팔정도-윤회-열반. 그 외, 특히 경전에 없는 단어는 사용하지 못합니다. 여래장이 불성이고, 불성이 열반이다! 이런 식의 말도 안 되는 난동은 금지됩니다. 이곳은 사유지입니다. (여기 오시는 많은 분들은 각묵스님의 여래장사상-양두구육설을 따르고 있으니 사실 반론이 있으시면 스님께 먼저 따지세요.)
위반 시에는 다시 삭제-사몰-윤회-재생-악처의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시고요.
금강승님의 경우 여래장-관련의 반론을 펼 경우에라도 반드시 니까야 경전에서의 근거를 지참하셔야 합니다. 님 자신의 목소리와 님 자신의 문장만으로는 안 됩니다. 목소리일 뿐이고 글씨일 뿐이니까요. 이곳은 사유지입니다. 간혹 대승경전이라도 경전적으로 풍부하게, 철학-논리적으로 타당하게 그 근거를 댈 수 있으면 정상 참작해 볼 수도 있습니다.
금강승님 이외의 분들은 그것도 안 됩니다. (금강승님 복 받으신 거예요^^. 사유지의 규칙만 엄수하신다면요.) 저를 포함한 여기 오시는 다른 모든 분들은 오직 ‘환희작약-중선봉행’만이 허용됩니다. __()__
사례1. 금강승 2013.05.21 20:13 혹시나 저보다 더 초보불자님 중 오해하실 분이 계실까 봐 말씀드립니다. 대승불교에서는 주로 반열반(parinirvana)보다는 지금 여기에서 실현될 수 있는 열반을 얻은 후 반열반에 들지 않고 샨띠데바 보살님 말씀처럼 중생제도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원력보살이죠. 물론 어떤 걸 좋아하느냐도 자유고 어떤 걸 선택하느냐도 자유입니다. 초기불교 불자님 중에서는 대승의 방식에 부정적이신 분들도 많으시죠.ㅜ.ㅜ ~~~ 재생-처분 대상입니다. 대승불교에 대한 부족한 지식의 언급이면서, 남의 코보다는 자신의 코가 먼저 석자이기 때문에.
사례2. 금강승 2013.05.22 18:41 '대승'은 연꽃님께서 '대승'으로 지칭하시는 것을 제가 받아서 '대승'이라고 지칭하는 것인데 그것을 '대승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 재생-처분 대상입니다. 대승에 대한 언급이고, 남의 지식에 얹어가는, 그것도 아주 애매하게 걸치는 것이기 때문에.
이하 너무 많아 줄입니다. 조잡하긴 해도 상기의 권장-사항은 사실상의 빅브라더의 지상명령이니 각별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요. __()__ --------------------------------------------------------------------------------------------
이제 또 연꽃님의 새 글이 올라왔으니 수업을 시작해 보십시다. 금강승님, 한번이라도 연꽃님에게 수고하신다는 표현도 해 주세요. 우리 공짜로 공부하고 있잖아요. __()__
┗
금강승
금강승Y
2013.05.24 19:12
수정|삭제| 그런데 님 생각을 묻는 단순한 질문의 답도 피하시는 분이 제 입막음에는 아주 적극적이시네요. 대승불자에게 대승이야기 하지 말란 말도 하시고.. 전재성 박사님께서도 빛나는 마음이 여래장 사상의 씨앗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후의 해석에 대해서 여래장 사상적 해석이 틀렸다고 자신하신다는 것 아닙니까? 근데 원효는 왜 비판하지 않으십니까? 혹시 이유를 말하시려 거든 저보고 공부하라는 소리는 이미 하셨으니 내용을 가지고 하세요.', 'true', 'cmt'); return false;" href="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6UOF&articleno=16155570&admin=&refequery=%EC%A0%84%EB%8F%84%EC%84%A0%EC%96%B8#">신고
다시 말씀드릴게요. 비판이 없으면 반론도 없습니다. 그런데 님 생각을 묻는 단순한 질문의 답도 피하시는 분이 제 입막음에는 아주 적극적이시네요. 대승불자에게 대승이야기 하지 말란 말도 하시고.. 전재성 박사님께서도 빛나는 마음이 여래장 사상의 씨앗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후의 해석에 대해서 여래장 사상적 해석이 틀렸다고 자신하신다는 것 아닙니까? 근데 원효는 왜 비판하지 않으십니까? 혹시 이유를 말하시려 거든 저보고 공부하라는 소리는 이미 하셨으니 내용을 가지고 하세요.
⇒ 비판이 있으면 그에 대한 반론도 있다.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먼저 사유지의 규칙을 따르세요. 윤회의 두려움을 보시면서요.
그런데 님 생각을 묻는 단순한 질문의 답도 피하시는 분이 제 입막음에는 아주 적극적이시네요. 대승불자에게 대승이야기 하지 말란 말도 하시고..
⇒ 눈치 빠르시네요. 님의 입을 막아 놓아야 제 입도 막을 것 같아서요. 또 다원님이 당분간 고장 난 상태이니까요. 빅브라더의 경고를 잘 따르세요. 님이 대승불자라시니 확인된 바는 없지만 그래도 그간의 정리로 저는 님의 말씀을 믿을게요. 그러나 대승불교 이야기는 여기서 말고 그냥 집이나, 다니시는 절에서만 하세요. 입이 좀 섭섭하시더라도요. 님의 대승불교 이야기에 대한 자격상실-증명은 저 위에서 충분히 이루어졌습니다. 다시, 아니, 몇 번이고 확인 해보세요.
전재성 박사님께서도 빛나는 마음이 여래장 사상의 씨앗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후의 해석에 대해서 여래장 사상적 해석이 틀렸다고 자신하신다는 것 아닙니까?
⇒ 어, 여래장사상 이야기도 근거를 대야 한다고 했는데! 그것과 전재성박사님 관련한 근거는 대셔야 하지 않나요? 카더라 만 하면 좀~? 님의 여래장사상과 전재성박사님의 여래장사상은 분명히, 완벽하게! 서로 다를 텐데 말입니다. 초딩 때 배운 노래 있죠?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토~옹일 --- 통일, 어른이 된 지금은 미스터리가 됐습니다.
⇒ 원효대사의 사상은 아직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사유해 보지 않은 대상은 비판하지 않습니다. 반면 금강승대사의 사상은 2년 가까이 강제적으로 사유당하고 있기 때문에 척결하고 있는 중이고요. 원효대사는 나중에~??? 그리고 저에게 절대로 질문하지 마세요. 아직 500원짜리 동전 항~개도 배송된 바 없습니다. 어쩌다 듣는 답은 그냥 팁입니다.
혹시 이유를 말하시려거든 저보고 공부하라는 소리는 이미 하셨으니 내용을 가지고 하세요.
⇒ 남의 손으로 떠 먹는 그 밥은 어디로 들어갈지 몰라요. 어떤 사람은 밥을 코로, 눈으로, 귀로 먹기도 해요^^. 자기 손으로 밥을 먹어야 자기 입으로 제대로 들어 갑니다. 남의 밥상을 열심히 구경만 하는 것은 상관 없어요. 괜찮아요. --- 말할 알맹이 또는 내용이 안 보여요. 이제 제 시력도 많이 나빠진 것 같아요. 연꽃님 금요일 포스팅이 마침 시력 회복에 관한 글이네요. 님 시력도 별로 안 좋으신 것 같으니 같이 가서 들읍시다. 언제든 눈이 뜨이시면 한번쯤은 잊지 마시고 꼭 ‘환희작약-중선봉행’하세요. 혹시 리틀브라더가 될 지 어찌 알아요? __()__
불성과 여래장은 열심히 사유해 본 적은 있습니다. 우리 함께요. 님의 전생에서 바로 담마님과 같이요. 숙명통으로 한번 잘 기억해 보세요. 제 기억에 담마님을 흥분시킬 정도로 여래장을 비판한 것 같지는 않은데요. 추억을 더듬어 보세요. 다른 데서 혼자 중얼거림으로 여래장을 비난했을 수는 있습니다. 나 그거 안 가져 하고 말입니다. 그 말이 그 말인가요?
하도 궁금해 하시니 저도 다시 옛날을 상기해 봅니다. (이것도 그냥 팁입니다. 저에 대한 님의 질문의 자유는 없습니다!)
------------------------------------------------------------- 담마님께 드리는 질문 = 이제 참나/불성은 접어두고요, 다시 --- 열반은 마음인가요? 열반은 마음이 아닌가요? 저는 앞의 논의에서 밝힌 대로, 색/심-심소/열반의 아비담마 논리 상 열반은 당연히 마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Dhamma 2012.04.22 18:46 이미 바로 전 댓글에서 답을 드렸지만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두 가지 해석 중 Thanissaro Bhikkhu의 "luminous consciousness" is identical with nirvāṇa 처럼 해석해도 무방하다고 봅니다. 네, (열반은 바로) 마음입니다.
<일곱~> 열반 ≠ 마음 vs <담마> 불성/여래장/참나 = 열반 = 마음
아쉬운 마음에서 하는 참으로 우스운 실체론 방식의 대별이기는 하지만 근본적인 차이는 바로 그것입니다. 그 차이가 바로 남아 있는 초기불교의 흔적에서, 니까야경전에서 불교를 찾아 헤매는 동기가 되니까요. 제 인생을 걸고서요.
옛 글들 다시 읽으시면서 궁구해 보세요. (금강승님 진짜 머리 나쁘세요. 했던 질문 또 하고, 들었던 대답, 또는 거의 다 들은 대답을 다시 요구하고요.) --- 영혼이라는 산냐를 부수기 위해 ~ http://blog.daum.net/bolee591/16155213 --- 부처님은 분별론자(分別論者, vibhajjavadin) ~ http://blog.daum.net/bolee591/16155215 --- 신도들이 무지 할수록 자신들의 권위는 커지고, 지금 붓다께서 계신다면 ~ http://blog.daum.net/bolee591/16155217 --- 도림스님의 사자후와 독특한 법화경 게송노래 ~ http://blog.daum.net/bolee591/16155216 --------------------------------------------------------------------------------------
제 선택은 님의 선택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는 골랐습니다. 님도 아무거나 고르세요. 저에게 여래장-불교는 불교가 아녀요. 저에게 여래장-불교는 잡교여요. 됐나요? 이제 저에게는 더 이상 묻지 마세요.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다른 분들께 물으세요. 다원님께도 한번 시도해 보시죠? 이쁜하마님과 네에님은 어때요? 단현님께도요?
제가 알기에 여기는 비-여래장 사유지입니다. 구경하시는 것은 자유이시지만, 우리 이곳에 민폐는 끼치지 맙시다. 여기는 사유지입니다. 테니스클럽에 와서 자꾸 골프가 이래서 좋고, 저래서 좋고 하는 격입니다. 짜증들 내지 않을까요?
여래장사상을 제외한 님의 지식은 일천합니다. 남을 설득하기에요. 제 개인적 영역에서는 여래장사상을 건드릴 일이 없습니다. 그러한 곳을 자꾸 건드리면 왠지 독해지네요! 예전에 후배들에게 한시적으로 일부러 그랬던 적이 있습니다. 분명 방편이었었고요. 그리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아마 빅브라더는 계속 당신을 주시할 겁니다. 대승불교 금칙어 또는 여래장 언급 시 조심하세요. __()__
┗
금강승
금강승Y
2013.05.25 16:12
수정|삭제| 자, 그런데 제가 아무도 여래장을 말하지 않았는데 제가 먼저 떠들었습니까? 그리고 인터넷 공개 블로그가 사유지입니까? 무슨 말을 해도 대응할 수도 없는 그런 공간입니까?
님이 정확히 원하시는 게 뭡니까?', 'true', 'cmt'); return false;" href="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6UOF&articleno=16155570&admin=&refequery=%EC%A0%84%EB%8F%84%EC%84%A0%EC%96%B8#">신고
바로 그겁니다. 이제야 본인의 생각을 말하시네요. 우리 논문 쓰는 거 아니잖아요? 여래장이 불교가 아니라고 말하는 게 그렇게 어렵습니까? 자, 그런데 제가 아무도 여래장을 말하지 않았는데 제가 먼저 떠들었습니까? 그리고 인터넷 공개 블로그가 사유지입니까? 무슨 말을 해도 대응할 수도 없는 그런 공간입니까? 님이 정확히 원하시는 게 뭡니까?
이제는 제가 원하시는 것까지 들어주실 모양이시네요. 저만 원하는 것이예요. 오해하지 마시고요. 금강승님이 초기불교만을 이야기하고, 저랑 같이 초기불교에서 길을 찾는 노력을 같이 하는 것. 여래장은 쓰레기 통에 버리고서. 절대 오해하지 마세요. 제가 정확히 원하는 것을이요. 저만의 숨은 바람이니까요.
문제1. = 조계종-선종은 여래장불교이다 ( ) ~ 아니면 조계종-선종은 여래장불교가 아니다 ( ) 문제2. = 님이 보호해 주고 싶어하는 여래장불교가 한국에서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 설명하시요.
수정|삭제| 그리고 조계종, 선종이 여래장불교라고 한 것은 중관, 유식이 아니고 오직 여래장이라는 것이 아니라 중관, 유식이면서 여래장이라는 것입니다. 상식이지만 혹시 오해하시는 분 계실까 봐 말씀드립니다. 아마 이런 비유를 들면 알기 쉬울 겁니다. 그러니까 원효 조사님은 중관사상가입니까 유식사상가입니까 여래장사상가입니까? 란 질문을 생각해 보세요. 자, 원효불교는 어떤 불교입니까?
추가하신 부분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결론적으로 힘들 것 같네요. 다만 초기불교만 말하라는 데 대해서는 방법이 없진 않은데 그것은 연꽃님께서 초기불교만 말씀하신다면 가능하겠죠. 그리고 조계종, 선종이 여래장불교라고 한 것은 중관, 유식이 아니고 오직 여래장이라는 것이 아니라 중관, 유식이면서 여래장이라는 것입니다. 상식이지만 혹시 오해하시는 분 계실까 봐 말씀드립니다. 아마 이런 비유를 들면 알기 쉬울 겁니다. 그러니까 원효 조사님은 중관사상가입니까 유식사상가입니까 여래장사상가입니까? 란 질문을 생각해 보세요. 자, 원효불교는 어떤 불교입니까? 다음에 추가할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발보리심 합장
다만 초기불교만 말하라는 데 대해서는 방법이 없진 않은데 그것은 연꽃님께서 초기불교만 말씀하신다면 가능하겠죠.
⇒ 님은 님 이야기를 하면 항상 남을 끼워 들이시네요. 저도 물들고 있는 것 같아요.
또 님의 전생에서도 꼭 연꽃님을 물고 늘어지시던데 금생에서도 여전히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시네요. 대단한 스토커이십니다.
# 그리고 조계종, 선종이 여래장불교라고 한 것은
중관, 유식이 아니고 오직 여래장이라는 것이 아니라 중관, 유식이면서 여래장이라는 것입니다.
⇒ 어쨌든 조계종은 여래장불교이며, 잡탕 불교라는 말씀이시잖아요. 금강승님의 견해로는요.
# 상식이지만 혹시 오해하시는 분 계실까 봐 말씀드립니다. 아마 이런 비유를 들면 알기 쉬울 겁니다. 그러니까 원효 조사님은 중관사상가입니까 유식사상가입니까 여래장사상가입니까? 란 질문을 생각해 보세요. 자, 원효불교는 어떤 불교입니까?
⇒ 저는 원효대사의 사상을 사유하지 않았다고 말씀 드렸는데도, 약한 고리를 찾아 물고 늘어지시는군요. 저는 이해가 없는 것이지 오해는 없어요. 또 님의 상식에 대한 신뢰 검증을 위해 여쭐게요. 붓다의 불교는 하나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원효불교는 어떤 불교여요? 원효대사도 조사님이신가요? 뭐 한 학파의 시조라 하면 틀린 말은 아니겠으나, 원효대사를 잘 모르고 또 조사라는 단어의 일상적인 용법을 생각하면 원효대사도 선불교, 조사-불교의 조사 분들 중의 한 분인가 하고 혼동되네요. 하긴 용수보살, 세친 등도 모두 조사라고 하셨지요! 깜빡했네요.
# 다음에 추가할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발보리심 합장
⇒ 원효불교가 뭡니까? 추가해 보세요. 또 원효대사의 저서가 수백 권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원효대사의 저서들 중 금강승님이 정독해서 읽고서 이해하신 책 중에서 감동했다거나 이거 하나면 된다 하는 저서를 일단 한 권만 추천해 주세요. 이장의 말고요. 이장의라는 번뇌론을 손대 보긴 했는데 어려워서 지금은 치워 놓고 있습니다.
또 아무런 내용이 없는, 아니 내용이 적은 금강승님의 댓글을 내용이 많은 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 금강승 2013.05.25 22:57 추가하신 부분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결론적으로 힘들 것 같네요. 다만 초기불교만 말하라는 데 대해서는 방법이 없진 않은데 그것은 연꽃님께서 초기불교만 말씀하신다면 가능하겠죠.
⇒ 님은 님 이야기를 하면 항상 남을 끼워 들이시네요. 저도 물들고 있는 것 같아요. 또 님의 전생에서도 꼭 연꽃님을 물고 늘어지시던데 금생에서도 여전히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시네요. 대단한 스토커이십니다.
# 그리고 조계종, 선종이 여래장불교라고 한 것은 중관, 유식이 아니고 오직 여래장이라는 것이 아니라 중관, 유식이면서 여래장이라는 것입니다.
⇒ 어쨌든 조계종은 여래장불교이며, 잡탕 불교라는 말씀이시잖아요. 금강승님의 견해로는요.
# 상식이지만 혹시 오해하시는 분 계실까 봐 말씀드립니다. 아마 이런 비유를 들면 알기 쉬울 겁니다. 그러니까 원효 조사님은 중관사상가입니까 유식사상가입니까 여래장사상가입니까? 란 질문을 생각해 보세요. 자, 원효불교는 어떤 불교입니까?
⇒ 저는 원효대사의 사상을 사유하지 않았다고 말씀 드렸는데도, 약한 고리를 찾아 물고 늘어지시는군요. 저는 이해가 없는 것이지 오해는 없어요. 또 님의 상식에 대한 신뢰 검증을 위해 여쭐게요. 붓다의 불교는 하나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원효불교는 어떤 불교여요? 원효대사도 조사님이신가요? 뭐 한 학파의 시조라 하면 틀린 말은 아니겠으나, 원효대사를 잘 모르고 또 조사라는 단어의 일상적인 용법을 생각하면 원효대사도 선불교, 조사-불교의 조사 분들 중의 한 분인가 하고 혼동되네요. 하긴 용수보살, 세친 등도 모두 조사라고 하셨지요! 깜빡했네요.
# 다음에 추가할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발보리심 합장
⇒ 원효불교가 뭡니까? 추가해 보세요. 또 원효대사의 저서가 수백 권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원효대사의 저서들 중 금강승님이 정독해서 읽고서 이해하신 책 중에서 감동했다거나 이거 하나면 된다 하는 저서를 일단 한 권만 추천해 주세요. 이장의 말고요. 이장의라는 번뇌론을 손대 보긴 했는데 어려워서 지금은 치워 놓고 있습니다.
┗
금강승
금강승Y
2013.05.27 12:05
수정|삭제|• 2013.05.27 11:09 • 수정|삭제|신고 또 아무런 내용이 없는, 아니 내용이 적은 금강승님의 댓글을 내용이 많은 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 금강승 2013.05.25 22:57 추가하신 부분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결론적으로 힘들 것 같네요. 다만 초기불교만 말하라는 데 대해서는 방법이 없진 않은데 그것은 연꽃님께서 초기불교만 말씀하신다면 가능하겠죠.
⇒ 님은 님 이야기를 하면 항상 남을 끼워 들이시네요. 저도 물들고 있는 것 같아요. 또 님의 전생에서도 꼭 연꽃님을 물고 늘어지시던데 금생에서도 여전히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시네요. 대단한 스토커이십니다.
>>>>>당연한 것이 저는 연꽃님 글에 반론했기 때문입니다.
# 그리고 조계종, 선종이 여래장불교라고 한 것은 중관, 유식이 아니고 오직 여래장이라는 것이 아니라 중관, 유식이면서 여래장이라는 것입니다.
⇒ 어쨌든 조계종은 여래장불교이며, 잡탕 불교라는 말씀이시잖아요. 금강승님의 견해로는요.
>>>>> 대승불교에서 혹시 님이 생각하는 잡탕불교가 아닌 것은 무엇입니까?
# 상식이지만 혹시 오해하시는 분 계실까 봐 말씀드립니다. 아마 이런 비유를 들면 알기 쉬울 겁니다. 그러니까 원효 조사님은 중관사상가입니까 유식사상가입니까 여래장사상가입니까? 란 질문을 생각해 보세요. 자, 원효불교는 어떤 불교입니까?
⇒ 저는 원효대사의 사상을 사유하지 않았다고 말씀 드렸는데도, 약한 고리를 찾아 물고 늘어지시는군요. 저는 이해가 없는 것이지 오해는 없어요. 또 님의 상식에 대한 신뢰 검증을 위해 여쭐게요. 붓다의 불교는 하나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원효불교는 어떤 불교여요? 원효대사도 조사님이신가요? 뭐 한 학파의 시조라 하면 틀린 말은 아니겠으나, 원효대사를 잘 모르고 또 조사라는 단어의 일상적인 용법을 생각하면 원효대사도 선불교, 조사-불교의 조사 분들 중의 한 분인가 하고 혼동되네요. 하긴 용수보살, 세친 등도 모두 조사라고 하셨지요! 깜빡했네요.
>>>>>대승의 선불교만 조사란 말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죠. 대승불교의 스님들께 그리고 그 이전의 초기불교 스님들께도 祖師란 말을 붙일 수 있습니다. "이해가 없는 것이지 오해가 없어요" 란 말은 님이 하신 행동과 맞지 않습니다. 이해가 없으면 왜 굳이 여래장도 불교란 말에 그렇게 반대하십니까? 이해가 없는데??
# 다음에 추가할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발보리심 합장
⇒ 원효불교가 뭡니까? 추가해 보세요. 또 원효대사의 저서가 수백 권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원효대사의 저서들 중 금강승님이 정독해서 읽고서 이해하신 책 중에서 감동했다거나 이거 하나면 된다 하는 저서를 일단 한 권만 추천해 주세요. 이장의 말고요. 이장의라는 번뇌론을 손대 보긴 했는데 어려워서 지금은 치워 놓고 있습니다.
>>>>>원효불교가 뭐냐는 질문은 저의 무식을 넘어선 이야기입니다. 다만 원효가 여래장을 말한 것은 상식입니다. 합장
• 일곱~ • 2013.05.27 11:09 • 수정|삭제|신고 또 아무런 내용이 없는, 아니 내용이 적은 금강승님의 댓글을 내용이 많은 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 금강승 2013.05.25 22:57 추가하신 부분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결론적으로 힘들 것 같네요. 다만 초기불교만 말하라는 데 대해서는 방법이 없진 않은데 그것은 연꽃님께서 초기불교만 말씀하신다면 가능하겠죠.
⇒ 님은 님 이야기를 하면 항상 남을 끼워 들이시네요. 저도 물들고 있는 것 같아요. 또 님의 전생에서도 꼭 연꽃님을 물고 늘어지시던데 금생에서도 여전히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시네요. 대단한 스토커이십니다.
>>>>>당연한 것이 저는 연꽃님 글에 반론했기 때문입니다.
# 그리고 조계종, 선종이 여래장불교라고 한 것은 중관, 유식이 아니고 오직 여래장이라는 것이 아니라 중관, 유식이면서 여래장이라는 것입니다.
⇒ 어쨌든 조계종은 여래장불교이며, 잡탕 불교라는 말씀이시잖아요. 금강승님의 견해로는요.
>>>>> 대승불교에서 혹시 님이 생각하는 잡탕불교가 아닌 것은 무엇입니까?
# 상식이지만 혹시 오해하시는 분 계실까 봐 말씀드립니다. 아마 이런 비유를 들면 알기 쉬울 겁니다. 그러니까 원효 조사님은 중관사상가입니까 유식사상가입니까 여래장사상가입니까? 란 질문을 생각해 보세요. 자, 원효불교는 어떤 불교입니까?
⇒ 저는 원효대사의 사상을 사유하지 않았다고 말씀 드렸는데도, 약한 고리를 찾아 물고 늘어지시는군요. 저는 이해가 없는 것이지 오해는 없어요. 또 님의 상식에 대한 신뢰 검증을 위해 여쭐게요. 붓다의 불교는 하나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원효불교는 어떤 불교여요? 원효대사도 조사님이신가요? 뭐 한 학파의 시조라 하면 틀린 말은 아니겠으나, 원효대사를 잘 모르고 또 조사라는 단어의 일상적인 용법을 생각하면 원효대사도 선불교, 조사-불교의 조사 분들 중의 한 분인가 하고 혼동되네요. 하긴 용수보살, 세친 등도 모두 조사라고 하셨지요! 깜빡했네요.
>>>>>대승의 선불교만 조사란 말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죠. 대승불교의 스님들께 그리고 그 이전의 초기불교 스님들께도 祖師란 말을 붙일 수 있습니다. "이해가 없는 것이지 오해가 없어요" 란 말은 님이 하신 행동과 맞지 않습니다. 이해가 없으면 왜 굳이 여래장도 불교란 말에 그렇게 반대하십니까? 이해가 없는데??
# 다음에 추가할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발보리심 합장
⇒ 원효불교가 뭡니까? 추가해 보세요. 또 원효대사의 저서가 수백 권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원효대사의 저서들 중 금강승님이 정독해서 읽고서 이해하신 책 중에서 감동했다거나 이거 하나면 된다 하는 저서를 일단 한 권만 추천해 주세요. 이장의 말고요. 이장의라는 번뇌론을 손대 보긴 했는데 어려워서 지금은 치워 놓고 있습니다.
>>>>>원효불교가 뭐냐는 질문은 저의 무식을 넘어선 이야기입니다. 다만 원효가 여래장을 말한 것은 상식입니다. 합장
⇒ 보니까 이 질문도 좀 그렇네요. 님의 중관사상과 유식사상에 대한 지식은 별 것이 없는 것으로
저 위 댓글에서 님이 이미 밝히신 상태인데 질문의 비교 내용은 포괄적이네요. 어느 쪽이든 판단이 어렵지 않으실까요?
원효사상에서 여래장사상이 상식이라고 하시니, 원효대사의 저술 중 “여래장”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면서 여래장사상을 설명하는 그 부분을 님이 직접 보았거나 또는 인용된 남의 글 중에서 원효대사의 저술 중 직접 “여래장”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서 여래장사상이 주장된 부분을 본 적이 있으시면 그것을 소개해 줄 수 있나요? 잘 됐네요. 이 참에 원효대사에 대해 같이 사유해 봅시다.
이장의라는 책은 번뇌론으로서 원효대사의 유식사상에 대한 체계적 고찰의 책으로 대승기신론소 또는 금강삼매경론 등 방대한 본인의 저술들의 기본 참조 논서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래장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지 한번 찾아보았습니다. 없데요. 색인에서도 못 찾았고요. 그래서 저는 문득 “여래장사상이 원효대사의 언어인가?” 라는 강한 회의가 들더라구요. 이 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될 것 같아, 금강승님이 여래장사상 자체에 대해서는 저보다는 훨씬 더 나으신 것 같아 부탁 드려 봅니다. ', 'true', 'cmt'); return false;" href="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6UOF&articleno=16155570&admin=&refequery=%EC%A0%84%EB%8F%84%EC%84%A0%EC%96%B8#">신고
원효 조사님은 중관사상가입니까 유식사상가입니까 여래장사상가입니까?
⇒ 보니까 이 질문도 좀 그렇네요. 님의 중관사상과 유식사상에 대한 지식은 별 것이 없는 것으로 저 위 댓글에서 님이 이미 밝히신 상태인데 질문의 비교 내용은 포괄적이네요. 어느 쪽이든 판단이 어렵지 않으실까요?
원효사상에서 여래장사상이 상식이라고 하시니, 원효대사의 저술 중 “여래장”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면서 여래장사상을 설명하는 그 부분을 님이 직접 보았거나 또는 인용된 남의 글 중에서 원효대사의 저술 중 직접 “여래장”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서 여래장사상이 주장된 부분을 본 적이 있으시면 그것을 소개해 줄 수 있나요? 잘 됐네요. 이 참에 원효대사에 대해 같이 사유해 봅시다.
이장의라는 책은 번뇌론으로서 원효대사의 유식사상에 대한 체계적 고찰의 책으로 대승기신론소 또는 금강삼매경론 등 방대한 본인의 저술들의 기본 참조 논서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래장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지 한번 찾아보았습니다. 없데요. 색인에서도 못 찾았고요. 그래서 저는 문득 “여래장사상이 원효대사의 언어인가?” 라는 강한 회의가 들더라구요. 이 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될 것 같아, 금강승님이 여래장사상 자체에 대해서는 저보다는 훨씬 더 나으신 것 같아 부탁 드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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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승
금강승Y
2013.05.27 13:13
수정|삭제|그런데 먼저 질문이 있습니다. 여래장 사상을 비판하시는 이유가 구체적으로 무엇이고 님이 생각하시는 여래장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제가 인용한 미산 스님의 말씀을 님은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 'true', 'cmt'); return false;" href="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6UOF&articleno=16155570&admin=&refequery=%EC%A0%84%EB%8F%84%EC%84%A0%EC%96%B8#">신고
지금은 곁에 책이 없어서 나중에 찾아드리죠. 그런데 먼저 질문이 있습니다. 여래장 사상을 비판하시는 이유가 구체적으로 무엇이고 님이 생각하시는 여래장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제가 인용한 미산 스님의 말씀을 님은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정말 무책임하고 무성의한 분이시네요. 가장 기본적인 질문에 대해서도 이러깁니까? 오늘 같이 비 오는 날 님이 잃어버린 우산을 찾아 시장 통을 헤매자 해 놓고 이거 뭔 짓 이예요.
왜 꿇리는 데 있으십니까? 싫어요? 싫으면 그만 두시고요. 별 싱거운 사람 다 보네요. 빨리 찾아 보세요. 며칠 걸려도 괜찮아요. 나도 지금 뒤져 보고 있단 말입니다. 님의 주장을 내가 알고 이해해야 제가 님을 핍박하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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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승
금강승Y
2013.05.27 14:33
수정|삭제|님이 전에 무슨 생각으로 비판했는지 알아야 하겠기에 쓴 글입니다. "님의 주장을 내가 알고 이해해야 제가 님을 핍박하지 않죠."?? 지금까지 제게 한 것은 무엇인가요? 님이 지금까지 제게 댓글 단 이유는 뭡니까? ', 'true', 'cmt'); return false;" href="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6UOF&articleno=16155570&admin=&refequery=%EC%A0%84%EB%8F%84%EC%84%A0%EC%96%B8#">신고
분명히 찾아드릴 겁니다. 걱정 마시구요. 님이 전에 무슨 생각으로 비판했는지 알아야 하겠기에 쓴 글입니다. "님의 주장을 내가 알고 이해해야 제가 님을 핍박하지 않죠."?? 지금까지 제게 한 것은 무엇인가요? 님이 지금까지 제게 댓글 단 이유는 뭡니까?
<금강승> 지금은 곁에 책이 없어서 나중에 찾아드리죠. 그런데 먼저 질문이 있습니다. 여래장 사상을 비판하시는 이유가 구체적으로 무엇이고 님이 생각하시는 여래장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제가 인용한 미산 스님의 말씀을 님은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이런 방식이 사람 열 받게 해요! 하다가 중간에 튀어요. 미산스님은 왜 끼워 넣어요! 그 분 우리 아저씨 아니란 말입니다. 자꾸 매를 벌지 맙시다^^. 본인이 설명해야 하는 부분은 하나도 하지 않아요! 나 돌겠어요! 일단 찾으세요. 나중에 내가 내 능력 범위에서 해 줄 수 있는 답은 다 해 줄게요.
저도 다원님처럼 눈탱이 밤탱이 되고 보니 기분 정말 그렇네요. 다들 참 저항력이 약하신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하고 보니 저도 참 약하네요. 금강승님, 지금 저 괴로워요. 제발 찾으세요!!!
┗
금강승
금강승Y
2013.05.27 17:16
수정|삭제|님 생각은 왜 말씀을 못하십니까? 아닌 건 아닌 것 아닙니까? 원효든 아쌍가든 바수반두든 빠라마르타든 아닌 건 아닌 거 아닙니까? 왜, 제가 하면 틀린 것이고 그분들이 하면 맞는 겁니까? 아직도 많은 대화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 'true', 'cmt'); return false;" href="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6UOF&articleno=16155570&admin=&refequery=%EC%A0%84%EB%8F%84%EC%84%A0%EC%96%B8#">신고
이런 것도 못 물어봅니까? 님이 여래장에 대해서 생각하시는 게 있으니까 절 비판하신 것 아닙니까? '카더라'는 안 되는 것 아닙니까? 님 생각은 왜 말씀을 못하십니까? 아닌 건 아닌 것 아닙니까? 원효든 아쌍가든 바수반두든 빠라마르타든 아닌 건 아닌 거 아닙니까? 왜, 제가 하면 틀린 것이고 그분들이 하면 맞는 겁니까? 아직도 많은 대화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늘 주변의 흔한 소재를 부처님법으로 쉽게 잘 풀어주시며 문제의식 또한 던져주시는 우리 연꽃님! 하루에도 몇번씩 방문하여 지난 글들을 읽고 메모하며 공부한 덕분에 조금씩 공부가 발전함을 느낍니다 감사드립니다..._()_...
그리고 다원님♡ 저는 다원님의 댓글을 읽으며 공부하고 웃기도 하며 오늘은 어떤 댓글을 달아 놓으셨을까^^ 기대를 한답니다 상대에 대한 인신공격이 아니라 글의맥락 즉 공부의 방법을 지적하시는거라 그 의중을 파악하면 그리 불쾌감을 느낄필요가 있을까ᆢ싶습니다 폼잡지 않고 에둘러 표현하지 않으며 욕먹을 각오로 강하게 표현하시는 그 이면을 잘 살피면서 저는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된답니다 켈트족의 기도문을 올려놓으신 것을 보면서도 또다른 이면을 봤구요ᆢ 화엄성중님 같아서 글 읽다가 자주 웃습니다^^ 다원님~ 행복한밤되세요☆
<<상대에 대한 인신공격이 아니라 글의맥락 즉 공부의 방법을 지적하시는거라 ... 폼잡지 않고 에둘러 표현하지 않으며 욕먹을 각오로 강하게 표현하시는 그 이면을...>> <---부처가 따로 없슈... 내 의도를 이렇게 정확히 알다니...=3=3==3
글고... 저러다 어떤 귀신한테 물리나??? 궁금했지...ㅜㅜㅜ
함... 잡혀가는 꼴 보구 싶었지*****
기어이 오늘 귀신한테 홀리고 말았다...
무명씨가 무명,채명 인줄 알고...박쥐 그물 치다가... 얽히는 바람에 내 모가지에 걸려가지고서리...
근디.... 솔직히...
잘못 헌거는없다...ㅜㅜ
근데 그양번 글은 찬찬히 함 읽어봐야 긋다.
많이 공부하심 분이고... 거그서는 내가 말붙일 자리가 아니거든...
이만 며칠 못본다. 이상', 'true', 'cmt'); return false;" href="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6UOF&articleno=16155570&admin=&refequery=%EC%A0%84%EB%8F%84%EC%84%A0%EC%96%B8#">신고
글치 ~!!!
<<상대에 대한 인신공격이 아니라 글의맥락 즉 공부의 방법을 지적하시는거라 ... 폼잡지 않고 에둘러 표현하지 않으며 욕먹을 각오로 강하게 표현하시는 그 이면을...>> <---부처가 따로 없슈... 내 의도를 이렇게 정확히 알다니...=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