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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사 말
수원백씨중앙종친회 회장 백석기(白錫基) |
제4회 세계백씨총회에서
세계 백씨 여러분!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한국백씨중앙종친회장 백석기 입니다. 우선 제4회 세계백씨총회가 이렇게 성황리에 열리고 있는 것에 대하여 축하드립니다.
우리 한국백씨 56인은 상하의 나라 대만에서 제4회 세계백씨총회에 참석하게 된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하며 아울러 세계백씨 여러분께 인사드립니다.
이번에 제4회 백씨총회를 주관하시는 대만 백씨종친회의 수고와 정성에 대하여 감사의 말씀과 더불어 경의를 드립니다. 한국의 백씨는 70만명쯤 되는데 모두 시조 백우경선조의 후손입니다. 백우경 선조는 중국의 시성 백거의(백낙천)선조와 사촌간이며 서기 780년에 당나라로 부터 한국 신라에 오셨습니다.
이번 제4회 세계백씨총회에서 현안문제도 잘 처리되고 세계백씨들이 서로서로의 친목과 우의를 더욱 돈독히 하기를 바라며 아울러 금년을 잘 마무리 하시고 새해에도 더욱 번창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10년 11월 14일
하계교양수련대회
시조 송계공 묘전
13층 석탑 앞에서 본 기사는 실무자의 소감과 중. 고교별 수강생의 소감으로 차기대회에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편집자 주
제13회 하계교양수련대회가 2010.7.31.~ 8.2.까지 옥산세사에서 거행되었다. 6년간이나 중단되었던 수련대회에는 수강학생 20명(초10,중8,고2)과 성인수강생 및 진행임원 등 52명이 참석하였으며 학생들은 옥산모텔에, 성인 및 임원들은 옥산세사에 여장을 풀고 아래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7월31일 16:00시: 전국 각지에서 모여온 참석자들 옥산세사 도착 17:00시~18:00시: 현식 전례부의 안내로 송계공 묘소 참배,묘석물에 대한설명청취 하고, 운범상임부회장의 안내로 건중문, 경춘당, 학고재,경의재, 영월당, 백씨발생비, 신도비, 사공단비, 공적비, 성금비, 정혜사 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18:00시~19:00시: 만찬(옥산모텔) 19:20시~20:00시: 입소식(석기회장 주관) 20:00시~21:00시: 석기회장 특강(백씨의 뿌리, 회장의 삶, 천안암 이야기)
8월1일 06:00시~07:00시: 종훈총무부장 안내로 정혜사지 13층 석탑(국보 제40호)견학 07:00시~08:00시: 조찬 08:30분~09:00시: 운범상임부회장 강의(백씨의 연원) 09:20분~09:40분: 순기고문강의(백씨의 사적) 10:00시~10:30분: 승재전북회장 강의(전통예절) 10:40분~11:30분: 제향체험(옥산세사 락상 사정 주관) 12:00시~12:40분: 오찬 13:00시~18:00시: 포항제철견학, 해맞이 공원산책 18:00시~19:00시: 포항참판공 회관에서 만찬 19:00시~21:00시: 장기자랑 21:00시~22:00시: 포항에서 옥산세사로 돌아옴
8월2일 07:00시~08:00: 아침식사 09:00시~10:00시: 수료식(운범상임부회장 주관) 10:00시~15:00시: 해산
하계교양수련대회를 마치고서
포항 참판공 회관에서 수강하는 모습
절을 하고 있다 종친회에 발을 들여 놓고서 맞은 매로서는 상당히 아팠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마음은 앞서 가고, 한달도 채 안된 준비기간에 소홀했었던 것이 한둘이 아니어서 애당초 기대하거나 달성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소기의 목표는 달성치 못 했다고 자아비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지금의 솔직한 심정이다. "숭조효친"사상을 고양시키고 일가간의 친목을 청소년 때부터 갖게 하고 뿌리를 찾아 안겨 주려는 나의 조그마한 소망에서 들떠, 준비과정은 낯설기만 하고 예사 일이 아니었다. "답은 현장에 있다"하는 것이 나의 일을 하는 잣대인데, 먼저 현장을 답사하여 무엇이 현장에 있고 거기에서 무엇이 문제인가를 찾아내어 어떻게 갈고 닦아 내 수중의 것으로 만들고 극대화 시켜 나갈 수 있느냐다. 물론 현장답사를 위해서는 가상의 시나리오나 전개될 수 있는 상황을 고려하여 점검표를 만들어 하나하나 물음과 답변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평가를 하였다. 기 수십 년 전의 청소년과 지금의 그들과는 태어난 환경이나 자라면서 겪었던 일상들이 다 다른데 아직도 이곳 옥산세사의 숙소라 할 "경의재와 학고재"에서는 목침을 베개로 사용하고 있었다. 문제는 참을성이 많지도 않은 청소년들과 일가 어른들 5~60여명의 생리현상을 2대의 대변기로 익일 아침을 해결 할 수 있을 까였다. 어느 정도 파악을 하고 돌아와 집행부의 실무협의에서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꾸려 나갈 것인가를 토의에 부쳤고, 그 결과를 보고 받은 회장은 "옥산세사에서의 숙식이 아닌 전문 숙박업소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이번 수련대회는 없다"라고 통첩을 내렸다. 나의 걱정이 일거에 해소되는 순간이였지만 집결을 불과 열흘 남겨 놓고 내려진 명령은 촉박한 일정에서 숨이 막혀 왔다. 계절은 바캉스 시즌인 7월말~8월초가 아닌가. 궁측통인가, 숙식문제가 쉽게 풀리면서 집결부터의 짜여진 일정에의 진행은 큰 차질 없이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강의가 눈으로 보는 영상 같은 것이 아닌 귀로 만 듣기만 해야 하는 단조로움에 지겨워하는 그네들의 태도를 보면서 또 한 번의 준비소홀과 배려의 부족함에 내 스스로에 "너는 어느 시대의 문명에 맞추어 생각하고 행동하는가"라고 반문을 했다. 왜냐고, 그네들은 집에서나 학교에서 접하고 보고 하는 것들이 영상과 관련된 현대 문명을 최대로 이용하고 느끼고 있지 않는가. 그 동안의 수련대회에서 하지 않았다고 하는 체험 "제향"을 일정에 넣고 나서 고민을 많이 했었다. 여학생을 제관으로 참여 시켜야 제관의 구성의 형평성이나 체험교육의 효과를 보다 크게 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일가 어른들을 설득시켜야 하는 것 이였다. 결과는 나의 완패였다. 비록 교육의 한 부분으로서의 체험이지만 아직은 "시기상조구나"라고 독백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이 체험과정은 의의가 컸었다"고 들 평가를 해 주었다. 크고도 큰 제복을 추렁추렁 입고 비지땀을 흘리면서 하나라도 해 보겠다고 문지방을 밟고 지나가려 하지 않으려는 의도된 노력들을 보면서 "그래 이것이 산 교육이구나"라고 하면서도 왜 옛 어른들은 이렇게 답답하게 해야 하느냐는 반문의 소감을 읽기도 하였다. 참가한 청소년 그들에게 자율성 내지는 자치성을 부여하여 자기들끼리 즐겁게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려 했으나 이것 역시 나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말하자면 학생장이 중심이 되어 짜여진 일정이 진행되거나 노래와 장기자랑에서의 사회자 선정을 비롯한 진행을 유도했으나 여의치 못했고 수료식 할 때의 수련생을 대표하여 주최 측에 표하는 "답사"에서도 하나하나 입김이 있어야 했었다. 이러한 기회가 또 주어진다면(당연히 있겠지만), 우선 많은 청소년이 참여 할 수 있는 호응책을 제시하여 너도나도 참가할 수 있도록 해야겠고, 듣는 것 보다는 짧은 강의로 , 보고 체험하는 과정이 많아야겠으며, 참가한 그대들 스스로가 중심이 되어 그대들을 위한 일정이 되도록 준비를 하고 멍석을 깔아 만 주는 주최 측이 됐으면 한다.
나의 체험기
건중문 앞에서
참존회관에서 시상광경 경기도 고양시 고교생 백 송 이 7월31일 비록 자의가 아닌 아버님의 권유로 동생과 함께 오게 되었지만 도심을 벗어나 자연에 가까워진다는 느낌에 기분은 매우 좋았다. 버스를 타고 오다 정말 지쳐서 더는 버스 좌석에 앉아있지 못 하겠다는 생각이들 때 쯤 경주시 안강읍이라는 생소한 동네에 도착하였다. 그리곤 시조님을 모시고 있는 옥산세사에 잠시 들렀다 숙소배정을 받은 뒤 다시 옥산세사로 돌아가 입소식을 치르고 묘소에 올라가 참배도 해 보고 옥산세사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들었다. 그리고 중앙종친회 회장님의 좋은 말씀도 들은 뒤 다시 옥산모텔이라는 우리가 2박3일동안 묶을 숙소로 돌아와 자기 전에 모두가 함께 마당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서는 방으로 다시 돌아와 오랜 시간 지방으로 내려오는데 지친 몸을 누이고 휴식을 취했다. 다음날 낯선 환경에 선잠으로 밤을 지낸 뒤 수련대회에서의 둘째날 아침이 밝았다. 아침 산책으로 절은 사라지고 13층 석탑과 터만 남은 정혜사를 둘러본 뒤 내려와 아침밥을 먹었다. 그 후 옥산세사에 모여 일가 어르신들게 3가지의 뜻 깊은 강의를 듣고 마지막으로 제향을 올리는 체험을 해보았다. 중식을 먹은 뒤 내가 가장 관심이 있었던 포스코 견학 차례가 돌아왔다. 먼저 안내해 주실 직원분과 함께 버스에 탑승한채 포스코를 대강 둘러본 뒤 철판공장을 견학하여 제조방법 등을 직접 눈으로 보며 그 열기를 느껴보았다. 그리고 예정보다 시간이 조금 남은 관계로 포항에서 유명하다는 해맞이 공원의 전망대에 올라가 보았다. 그다음 일정으로 침촌회관으로 이동해 회관에 관한 이야기도 듣고 저녁을 먹은 뒤 간소하게 장기자랑과 선물 수여식을 하였다. 이것으로 우리의 2010년도 하계수련대회는 끝이 났지만 이곳에서 만든 추억과 얻은 우리 문중에 관한 지식들은 내 마음 속에 깊이 간직 될 것 같다.
하계교양수련대회 교육을 받고서
강의를 듣고 있다 수원백씨 35세손 중학생 백 진 수 월31일 여름 방학 중인데 금년에는 하계교양수련대회를 경주 옥산세사에서 한다고 수강하도록 준비 하라는 할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사당역에서 버스를 타고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소백산맥을 넘어서 대구와 영천을 지나서 옥산세사에 도착하였다. 학생들이 어른들 보다 적은듯하다. 5시에 모여 경내를 돌아보고 입소식후 바로 뒤산의 묘소를 찾았다. 묘소참배를 갔을 때 큰 무덤은 여러 번 본적이 있어서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번도 그 앞의 석상들과 석등에 대해 설명을 들은 적이 없어서 새로웠다. 그 외에도 박정희 대통령과 여러 현조들 같이 역시 백씨의 인맥은 대단한 것 같다.그리고 정혜사지 13층 석탑은 일반 우리나라의 탑짓는 방식과 모양이 독특하다고 한다. 시조 송계공께서 는 당나라에서 신라로 오셨으니 당나라의 방식과 모양일 것 같다고 생각이 든다. 1~3강의에서는 송계공에 대해 여러 강의를 해주셨고 불교와 유교를 전파하는데 힘을 쓰셨다는 말씀과 더불어 영월당과 만세암을 지으신 것 등 여러 가지의 업적에 관한 것도 배우고 제대로 절을 하는 법도 배우것 같다다. 4강의는 즉 "제향"에서는 위에 옷을 또 따로 입어 아주 더웠다. 그리고 하는 방법도 꽤 어려워서 솔직히 별로세암을 지러 1앞에서 것 껱 술을 한잔 올린 것은 약간 좋기도 하였다. 우린 점심을 먹고 포스코 석탑것 같다다. 이미 나는 수학여행 때 갔다 왔던 것린 그리 반갑지는 안았다. 특히 이 더수학날 그 더수학제철소를 간다니... 말대로 지옥인 것 같았다. 버스에서 계속 설명을 듣고 버스가학제철소 안것린 될어갔다. 처음에는 약간만 더슸학뿐옷을D석줄만 만세암을 지러 1갈수록 (두꺼수학철판이 데 일 곳것린 가학갈수록)옷을긠가학힘법도고 특히 그 철판 바로 옆에서는 눈조차 뜨긠가학힘법도암을 지렇것 그 고문이 끝난뒤 우리는 포항에 가서 해맞이 공원을 둘러보고 저녁식사를 하고 장기자랑을 하였다. 솔직히 어디서나 장기자랑을 별로인 것 같다. 그래서 이제 100% 참가는 아니고 지원자 정도만 하였으면 좋겠다. 어쟀든 좋은 경험 중 하나인 것 같았다.
외가인 수원백씨의 가문을 배웠다.
부산시 하단동 초등학생 고 효 민 외가가 백씨라서 백씨하계교양수련대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처음 외가래서 백씨에 대해서는 몰라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이번 일정 중에서 포항제철에 간 것이 제일 재미있었다. 장기자랑 시간에 상을 못 받은 것이 아쉽지만 그래도 재미있었다. 강의시간에는 지겹고 재미없어 듣는 둥 마는 둥 했는데 내년에는 또 와서 강의내용을 잘 들어야겠다. 여자숙소에선 나 혼자 초등학생이여서 위의 언니들하고 잘 친해지지 못했고 같이 있으니까 썰렁하기도 하였다. 이번 캠프를 통해서 백씨가 중국에서 넘어온 성이라는 것도 알았다. 샤워장에서 물장난도 재미있었다. 포항제철에선 너무 시끄럽고 더웠으며 해맞이 공원에선 걷기가 너무 힘이 들었다. 수원백씨로 4행시 짓는 것은 사실 준비를 안했는데 그 곳에서 생각나는 대로 말한 것이다. 8월1일 저녁 뷔페는 너무 맛있었다. 집에 가서 엄마가 무엇을 배웠냐고 물어보면 잘 대답을 못하겠다. 그렇지만 큰절하는 법은 확실히 배우고 간다. 첫날에는 익숙하지 않아 긴장했는데 이제 괜찮다. 그리고 13층 석탑은 모양이 특이했다. 석탑은 기단을 빼고 위에서부터 센다는 것을 알았다. 백씨에 대해서는 조금밖에 못 알고 가지만 좋은 추억을 만든 것 같다. 개구리도 보고 재미있었다. 시골이라서 해 돋지도 서울에서 보지 못한 것을 봤다. 2박3일로 교양수련대회가 재미있어서 다행이다. 처음에는 오기 싫었지만 어머니의 권유로 막상와서 교육수련대회를 끝나고 나니 헤어진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제8회 광양시 백송회 가족수련대회
수원백씨종친회 산하 광양시 백송회 가족 하계수련대회를 2010년 8월 4일 오전 10시 휘 서윤 할아버지 영모재에서 백송회 가족 52명과 광양시 종친회 회장,총무,이사등 종친들 다수가 참석하여 충길회장 인사말과 공지사항 및 내년도 5개시군(광양시,보성군,장흥군,거창군,장수군) 청년회 단합 행사를 광양에서 추진하는 것을 전달하고 회원가족간 친목을 다지면서 맑은 공기속에서 술과 갯장어, 돼지고기등을 구워먹으면서 일가간의 환담을 나누면서 행복한 하를 보내고 다음을 기약하면서 아쉬음을 뒤로하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평장사공 제향
2010년 10월30일: 오전8시 수원에서 출발 중앙감사 영조, 총무부장 종훈, 관리부장 승일, 조직부장 우현4명이 11시30분경 충남서천에 도착, 병렬회장 외 3명을 만나 점심식사 후 14시경 서천을 출발하여 16시 웅천에 도착하여 먼저 재실에 올라가 현장사항을 파악하고 10월28일 열쇠를 새로운 것으로 바꾸어 놓은 것을 남포백씨 측에서 들어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열쇠를 또다시 바꿔달아 놓은 상태였다. 사전에 준비한 절단기로 열쇠를 자르고 들어가 일부 짐을 풀어놓고 시내로 나와 식당을 예약하고 당일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고 욱기 경북회장을 웅천역으로 마중을 나가 19:00시에 만나서 저녁식사 후 청수장 여관에 숙박하였다.
2010년10월31일: 오전7시에 숙소를 나와 시내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8시30분경 재실에 도착하여 재실문을 열고 사전에 준비한 시조 송계공 외 7인의 위패를 재단위에 잘 모시고 앰프와 마이크를 설치하고 국기 및 종기를 배치하여 진열 "물"사용 할 수 있도록 펌프가동(이번 28일에 옥산사에 현장답사를 해보니 펌프고장으로 물도 안 나오고 해서 펌프를 교체하고 재실마루를 청소하고 제초작업을 중앙회에서 하였음)하고 접수 책상을 밖에 배치하고 휴식 대기 중이던 차 9시40분경 남포백씨 일기 외 12명이 재실에 들어와 8분의 위패를 자기 마음대로 제거 후 재실 앞에 제향준비 되어있는 국기와 종기를 땅바닥에 던져버리기에 관리부장 승일, 일기와의 다툼이 약5분간 멱살을 잡고 실갱이를 버린 후 10시20분경에 일기가 땅바닥에 있는 종기를 들고 밖으로 나와 재실 앞 출입구에 접수처 책상에 걸쳐놓고 말도 안 되는 말을 횡설수설하면서 욕을 시작 이때 승일씨가 땅바닥에 버려진 국기를 잘 털어서 철거 가방에 담아 재실 안에 보관하였다가 가져왔다. 11시경 남포백씨 한사람이 재실 안으로 들어가 문고리를 걸어 잠그고 옆 창문으로 나와 제향방해를 시작 서울에서 11시30분경에 도착하여 상임부회장이 재실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가 8분의 위패를 찾아와 재단에 모시고 재물을 차리는 가운데 일기 일행의 방해를 물리치고 무사히 제향을 모시고 돌아왔다.
이사회 개최
일곱분 이사들의 모습 중앙종친회에서는 2010.11.4.(11:00~13:30) 거구장3층 명실에서 이 43명중 38명(본인20,위임18)이 참석한 가운데 총무부장의 성원보고에 이어 錫基 중앙종친회장은 인사말에 10월31일에 있었던 평장사공 제향방해 상황과 소송경위 설명을 하고 병렬 평장사공회장 직무대행에게 노고를 치하하였다. 1. 보고사항. 지난여름 경내단장을 마치고 ①건중문 단청 ②햇빛가리기 천막 그대로쓰기 2. 부의안건. ① 감사보선에 승호(承浩), 영조(永祚), 정현(晶鉉)을 선임하고 ②화재보험가입 조건변경, 현재 매달50만원을 2016.9.22까지 보장성 보험료 가입 사고시 8억보상이, 변경 후 매달80만원을 2017,8,11.까지 불입. 사고시 15억원을 보상 받을 수 있게 변경함. 만기시에는 68,096,000원을 환급받음 3. 중시조묘 정화사업 계획 대전이사회에 의결되었음을 다시 확인하고 이북 파조설단비 건립을 중시조 묘역에 정화사업과 함께 하기로 함. 4,평장사공 종원총회 개최: 종원총회의 개최일시 장소등은 집행부에 위임한다.
문익공 제향
2010.11.7. 경기도 화성시 태안면 기안동 문익공 재실에서 전국에서 모여든 200여명의 후손들이 참석한 가운데 2010년도 제향을 재실 안에서 봉행하였다.
수원백씨 상록회
2010년 10월16일 오전9시 정각에 서울,경기에서 거주하신 회원들은 관광버스에 승차한 후 충주시 소재 중원탑과 탄금대를 탐방 후 충열사를 경유하여 수안보 온천부근 식당에서 중식을 하고 옥산세사에 도착 후, 시조 송계공 묘소를 성묘한 후 오후 6시에 옥산2리 식당에서 만찬을 마친 후 옥산세사 동제에서 회의를 개회, 국민의례 를 하고 준식 회장의 인사말과 총무 임선의 경과보고에 이어 춘계총회 회의록과 상록회 창립시 부터 지금까지를 간추려서 정리하여 회칙수정안과 같이 보고한 후 여러 회원님들께서는 중앙종친회와 상록회간에 문제를 풀기 위하여 갑론을박으로 장시간이 흘러 이번에는 의견이 절충이 되지 않아 춘계 총회시까지 회칙안을 면밀히 검토하여 결정할 것을 동의하고 회의를 마치고 제관분정을 의논 후 취침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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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중시조 묘를 찾았다
사십만의 후손을 둔 영희공의 묘소를 찾으려고 예천땅을 헤맨 끝에 천년이 걸려서 찾았습니다. 기쁘고 기뿐 마음 정성으로 승화하여 크고 작은 마음모아 성역화에 동참 합시다.
세계백씨 제4기 (대만)총회
세계 백씨 대회기를 들고 있는 석기회장과 운범부회장 2010년 11월 14일 제4회 세계백씨총회가 대만 대중시 통호호텔에서 세계백씨들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진행되었다. 여기에 참석한 한국대표단은 56명을 서울팀37명과 포항팀19명으로 구성하였으며 중국어 통역원을 한사람(이정)대동하였다. 10:00시~12:30분: 세계백씨 총상회 제2차 회원 회의가 총회장 白毅柏(싱가폴)주관 으로 열렸으며 석기회장, 운범상임부회장, 형로전남/광주회장,철 구청년부장, 이통역(이정)과 함께 참석 12:00시~14:00시: 오찬 15:00시~17:30분: 세계백씨종친회 제4기총회 연례대회가 총회장 白金火(대만)의 사 회로 열렸으며 한국대표 모두 참석하였고 세계백씨종친회 제5기 총회를 2012년에 한국에서 하기로 결정하였다. 18:30분~22:00시: 만찬 한국대표 모두 참석
2010년11월11일: 교통편의상 서울팀은 인천공항을 이용하고 포항팀은 김해공항을 이용하기로 하였으며 11월11일부터 13일까지는 팀별로 별개의 일정에 따라 관광하였는데 가는 곳 마다 서로 만났다. 서울 팀은 11일12시30분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대만 시간으로 14:30분 타이페이공항에 도착하였는데 현지 안내원 흥안여행사의 이영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버스를 타고 2시간 정도 달려서 야류국립해양공원을 관광하였다. 사암으로 구성된 버섯모양, 여인의 머리모양 등 기이한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이어서 몽골리안 식으로 저녁을 먹고 용산사와 야시장을 구경하고 대만의 자랑거리인 101빌딩을 관광하였다. 이 빌딩은 세계에서 두번째로 높은 빌딩인데 5층에서 88층까지 37초에 올라가는 세계 최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전망대에서 타이페이 야경을 구경하고 자정이 다되어 호텔에 들어와서 여장을 풀었다.
2010년11월12일: 7시30분에 호텔식 식사를 마치고 전용버스로 타이페이역으로 가서 기차로 화련에 11시53분에 도착하여 먼저 대리석 공장과 아미족의 민속쑈를 관람하고 국립공원 태노각 협곡을 올라가면서 장춘사, 연자구 구곡동 등을 바라보며 관광하고 그곳에서 물이 좋다고 하여 차를 마시고 화련으로 내려와 저녁을 먹고 기차편으로 타이베이(臺北)역에 도착하니 21시53분이였고 다시 버스를 타고 숙소에 돌라오니 밤 23시가 넘었었다.
2010년11월13일: 아침을 호텔에서 8시까지 식사 후 짐을 챙겨 버스에 싫고 대만민주기념관. 장개석기념관을 돌아보고 나테스 샾에서 쇼핑을 하고 세계 4대 박물관의 하나인 국립고궁박물관을 구경하였다 고궁박물관에는 60만점의 국보를 보관하고 있는데 해마다 1만점씩 바꾸어도 60년이 걸린다니 세계 4대박물관의 위상을 잘 표출한 말인 것 같다. 臺中으로, 떠나가면서 도중에 특이한 것은 산비탈 공원묘지에 작은 집들이 올막졸막 눈에 보이는데 그것이 모두 묘라고 하였다. 내용인즉 시체를 묻고 그 위에 작은집을 지어 위패를 모시게 하였다고 하니 우리와는 다른 풍습이었다. 오후3시쯤 되어 대중에 도착하여 통호(通豪) 호텔에서 짐을 정리하고 1층 식당에서 대만 종친대표의 환영을 받으며 저녁식사를 시작하는데 석기회장과 2004년도 중국 총회에 참석한 광주/전남회장 형로와 전북회장 승재는 와이샤쓰와 넥타이를 기념선물로 받았다. 세계백씨총연합회 백검 사무총장이 와서 지난 6월에 방한(訪韓) 시에는 고마웠다는 인사와 선물(백거이 술)을 가지고 와서 1012년 총회문제 등을 이야기하고 대만 대표의 환영사를 들으면서 저녁을 먹고 3층 회의실에서 1012년 세계백씨대회 한국유치를 토론한 끝에 유치하기로 의견일치를 보았다.
2010년11월14일: 9시에 모두들 관광을 떠나고 회장, 상임부회장, 광주/전남회장, 청년부장과 통역 이정양은 남아서 오전에 세계백씨 총상회에 참석하였다. 총상회에 참석한 인원 이외의 사람들은 일월담, 현장사(현장법사의 사리 모신 곳), 문무묘(공자와 관운장 등을 모신 곳)을 관광하고 점심을 먹고 오후2시경 호텔로 돌아왔다 오후4시가 넘어서 세계백씨총연의회(世界白氏總聯誼會)가 개최되어 각국대표단의 선물교환과, 인사가 있었는데 우리도 준비하여 가지고간 6년근 홍삼 7상자를 白毅柏(세계백씨 總商회장) 白學文(中華商會長 )白敬平(싱가폴 회장).白錦潮(세계백씨 3계대회 총재).白金火(第4屆 총회장).白福祥(제4계 총집행장).白劍(세계백씨 사무총장)등에 선물하며 친선을 도모하였다. 저녁때 회의가 끝나고 저녁 식사는 중국식 식사 12가지가 차례로 나오니 먹으면서 각국에서 준비해온 춤과 노래를 들으면서 세계백씨들의 우의를 다짐하였다. 한국에서는 대표로 포항 일가들이 준비한"아리랑"과 "돌아와요 부산항"을 남자7명과 여자4명이 합창으로 불러서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리고 끝날 무렵에 포항의 白承澤일가와 白正欽일가의 "홍도야 울지마라""사랑해"를 불러서 휘날레를 장식하였다. 5일째 날:(11월 15일) 아침식사를 마치고 通豪호텔을 떠나, 타이베이(臺北)공항을 오는 도중 버스안에서 이영춘가이드가 참나무 젓가락과, 101빌딩 모형 크리스탈 등을 기사의 청탁이라고 하여 판매하여 모두들 이영춘(이닥거)가이드의 친절하고 박식한 설명의 고마움에 답례삼아 사가지고 왔다. 14시30분에 타이페이 공항을 출발하여, 차와 저녁을 먹는 사이에 비행기는 벌써 고도를 낮추어 인천공항에 정확히 7시 50분에 도착하여 입국수속과 짐을 챙기고 나니 8시가 넘어서 모두들 각자 헤어지다.
서울 * 강원 양 종친회 친목 야유회
서울종친회 세종대왕릉에서 9월4일에 서울종친회와 강원종친회가 야유회 겸 친선모임을 원주 백운계곡에서 개최하였다. 서울종친회에는 신용산역 2번출구 앞에서 8시30분에 비에스관광버스에 승차하여 혼잡한 서울도심을 빠져나가 현식총무의 사회로 종식회장의 인사말이 있었고 여주 세종대왕릉 을 구경하였다. 단체티를 똑같이 입은 모습과 개개인의 추억을 가득 담은 사진을 찍고 강원종친회가 기다리고 있는 백운계곡을 향하였다. 현지 백운계곡에서는 영진 강원 총무진행으로 승래 강원종친회 회장의 서울 일가 분 들이 오시어 고맙다는 인사말과 서울회장의 초청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말이 있은 다음 시원한 계곡물과 아름다운 경치를 만끽하다보니 신선도 부럽지 않을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서울종친회와 강원종친회는 처음으로 만남을 가졌지만 우린 백씨성을 가진 한 일가다 보니 금방 마음을 열고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나 강원도 특산품에 관해서 자랑도 듣고 정을 담뿍 나누고 발길을 돌려 여주에 민비생가를 돌아보고 역사에 관해 관심을 갖고 추억의 사진을 담아서 출발지였던 신용산역에서 오늘하루의 즐거웠던 여정을 추억으로 간직한채 아쉬운 작별을 하였다.
12世 보성공(甫城公: 諱 繪) 제향 봉행
2010년 11월 6일(음력 10월 1일)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통구리 묘역에서 60여명의 후손들이 모여 보성공의 시제를 봉행했다. 보성공은 밀직부사(諱;仁景)공의 아드님으로 조선조에 보성(現 靑松郡)현감을 지내신 분이며 문경공 휴암(休庵)의 고조부(高祖父)이시다. 이날 후손들은 인근에 모셔진 공의 8대손(諱 以圭)과 9대손(諱 時昉)의 시제도 함께 모셨다.
13世 지평공(持平公: 諱 效參) 제향 봉행
2010년 11월 7일(음력 10월 2일) 경기도 양주시 남면 입암리 묘역에서 40여명의 후손들이 모여 시제를 봉행했다. 공은 보성공(諱 繪)의 장자(長子)로 조선 세종조에 등과하였고 세종24년(서기1442년)에 사헌부 지평을 역임하셨다. 문경공 휴암(休庵)의 증조부(曾祖父)이시다.
15世 왕자 사부공(王子 師傅公: 諱 益堅) 제향 봉행
2010년 11월 8일(음력 10월 3일)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 백운릉(白雲陵) 재실에서 50여명의 후손들이 모여 시제를 봉행했다. 공은 성종조 여절교위를 거쳐 왕자사부가 되셨고 별좌공과 문경공 휴암의 부친이시다.
16世 별좌공(別坐公: 諱 仁豪) 제향 봉행
2010년 11월 8일(음력 10월 3일)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 백운릉(白雲陵) 재실에서 50여명의 후손들이 모여 시제를 봉행했다. 이날 별좌공의 장자 선공감 副正公(諱 惟溫)과 3남 한성부 左尹公(諱 惟儉)의 시제도 함께 봉행하였다.
17世 창평공(昌平公: 諱 惟恒) 제향 봉행
2010년 11월 9일(음력 10월 4일) 경기도 파주시 부곡리 묘역에서 50여명의 후손들이 모여 시제를 봉행했다. 문경공 휴암 백인걸 선생의 장자로 창평현감을 지낸 분이다.
參校公 * 文敬公 休庵 秋季大祭 奉行
2010(庚寅)년9월12일(陰8월 첫째일요일)정오,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 가의재(嘉義齋)에서 종친(宗親) 1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승문원 참교공(諱 思粹)과 문경공 휴암(諱 仁傑) 선조의 추계제향을 엄숙히 봉행하였다. 永基 회장은 인사말에서 바쁜 중에도 불구하고 선조 향사(享祀)에 광주 , 전남지회와 청주지역 종친회를 비롯하여 경향각지에서 적극 참사해 주신 일가 분들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자랑스러운 휴암선조의 후손으로서 높은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굳게 뭉쳐 종중발전과 종친화목에 다 같이 노력하여 주실 것을 당부하였다. 또한 휴암종중 전임 회장이신 成基 명예회장에게 공로패 증정을 하였으며 재임 임기 3년 동안 참교공 * 문경공 향사에 제수를 손수 마련하여 주신 파주 곡산공(諱弘一)종원들에게도 공로패 증정이 있었다. 이어 향사(享祀)에 참여한 어린 후손들에게 휴암 선조님의 어린 시절을 묘사한 동화책 "연못 골 소년"과 사자소학(四字小學) 등 책자와 문화상품권 1매를 선물하였다. 이날 제향은 충현 종무국장의 집례로 엄숙하게 제향례를 봉행하였다.
龍洲書院 秋季祭享
2010 경인년 10월 16일(음9월 9일),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 덕은리의 용주서원(원장 辛宇奭)에서 파주 유림과 후손들 100여명이 참사한 가운데 휴암 백인걸 선생과 그의 문인들을 추모하는 추계제향을 엄숙히 봉행하였다. 용주서원은 조선 선조 때 유학자로 기호유맥(畿湖儒脈)의 거두이며 청백리에 녹선된 휴암 백인걸(休庵 白仁傑: 1497~1579)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자 1598년(선조 31년) 건립된 서원이다. 휴암 백인걸 선생이 관직을 물러난 후 학문과 후진양성에 전념했던 옛 집터에 지방 유림들이 서원을 세우고 사당을 지어 위패를 모셨다. 그후 유생 정재심(鄭在心)이 사액을 청했으나 실패하고 철폐된 후 그 자리에 유허비만 남아 있다가 1924년 유생들이 다시 뜻을 모아 서원을 복원하고 휴암 백인걸 선생을 배향하였으며 후에 그의 문인이었던 장포 김행(長浦 金行), 옥천 조감(玉川 趙堪), 낙금당 신제현(樂琴堂 신齊賢), 공의 차남인 당산 백유함(棠山 白惟咸) 선생 등 네 분의 위패를 추가로 모시고 배향하였다. 경내에는 정륜당(正倫堂)과 사우(祠宇), 내외삼문(內外三門), 홍살문[紅箭門] 등으로 배치되었으며 경내 좌측에는 1862년(철종13년)에 세운 백인걸 선생의 유허비(遺墟碑)가 있다. 용주서원은 파주시 향토유적 제1호(1986. 4.17.)로 지정되었다. 주서원 제향은 파주 유림에서 주관하는데 휴암종중에서는 영운 부회장, 정현 총무국장과 충현 종무국장이 참석하였으며 현지 일가들과 각계 후손들이 많이 참석하여 성황리에 행사를 마쳤다.
전라북도종친회 추계총회
전라북도종친회 회장 승재를 비롯한 39명 일가들이 추계총회의 일환으로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지난10월31일 충남 보령 동막동 소재 옥산사에서 거행하는 평장사공 제향에 일가들이 관광버스를 대절하여 참배하였으며, 귀로에 군산 바닷가에서 싱싱한 전어구이로 화합과 친목을 다졌으며 앞으로도 전라북도 종친회를 더더욱 활성화 시키자는 다짐을 하고 헤어졌다.
수원백씨 금릉부원군파 추계 제향봉행
2010년11월6일(음10월1일)경인년 수원백씨 금릉부원군파 추계제향봉행 행사를 전국일대의 일가분이 약50여명이 한자리에 모여서 선조님께 엄숙한 마음으로 제향을 올리는 큰 행사를 하였다. 제향순서는 수원백씨 10세 산(珊), 11세 인성(仁成),12세수(粹),13세 문거(文擧)4위의 선조님의 신도비에 제향을 엄숙히 거행하고 14세 귀선(貴璇),15세 옥형(玉荊),16세 사화(士華),17세 오륙(伍陸)4위의 제향을 봉행하였다.
訓正公派*盛民祖 以下 25位 先祖의 祭享
오곡백과가 풍성하고 울긋불긋 단풍이 아름다운 계절 10월10일 첫째주 일요일 수원백씨 훈정공파(휘;仁賢) 성민(盛民 )조의 종손 중시조 32세손 종식(種植 서울종친회 회장)은 軍資監正(휘;盛民)公 이하 25위분의 제향을 충남 당진군 면천면 사기소리에 있는 선영의 납골탑 앞에서 종친 일가분들이 참례한 가운데 엄숙히 봉행하였다. 종식(種植)일가는 금년에도 버스를 대절하여 신용산역 2번출구 국제빌딩 앞에서 8시가 좀 넘어서 출발하여 사기소리에서 여러 일가분들과 제향을 모시고 돌아오는 길에 평택항 잔디밭에서 제향을 모신 음식을 펼쳐놓고 술 한잔씩 기분 좋게 기울이고 서로 일가끼리 환담도 나누고 우의와 친목도 다지며 서울로 돌라왔다.
수원백씨 금릉부원군파 중국견학
수원백씨 금릉부원군파 종중회에서 2010년10월16~20일까지 4박5일로 해외견학을 원로대상으로 회장님 및 15명을 모시고 중국천안문광장으로 해서 자금성~장가계~원가계를 다녀왔다.
水原白氏 성주군 종친회 백문(白門)의 위상을 드높이자
"우리나라 백씨의 시조(始祖)인 송계공(松溪公) 백우경(白宇經)은 중국황제 헌원씨(軒轅氏)의 후손으로 당(唐)나라 시성(詩聖)이었던 향산(香山)백거이(白居易)와는 사촌간이다"수원백씨 성주군종친회(회장 태록)가 지난10일, 선남면 용신동 용대골 재실에서 열렸다. 이날 열린 종친회에는 욱기 경상북도종친회장, 인호 전 군의장, 철현 군의원을 비롯해 성주군종친회 임원 및 종인들이 대거 참석, 종인간 화합과 상호친목을 나누었다. 이날 종인들은 용대골에 모셔진 수원백씨 산음공파 조상들의 묘지에서 경건하게 제를 올리고 종친회를 시작했다. “용대골에서 종친회를 가지게 되어 무한한 영광이다”고 전한 충현 용대골 회장은 환영의 인사를 통해 백씨들이 더욱 단결하여 상부상조해 발전하길 기원했다. 태록회장은 멀리서 한걸음에 달려와 준 일가들에게 “반갑고 감사하다”종친회 회원들의 유대를 공고히 하고 서로 화합하며 지역발전에도 도움이 되는 종친회로 거듭나기 위해 매년 모임을 가지기로 했고 특히 용대골에서 총회를 가지게 되어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용대골의 유래에 대해 언급하며 “무릉도원 같은 좋은 곳을 물려 준 조상들의 은덕에 보답하는 것은 어디에서 살아도 종인 상호간 정을 쌓아가며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중요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종인들은 점심 식사 후 2부 행사로 노래자랑을 열고 종인간 상호화합과 유대를 다지는 시간을 가졌다. 한편 수원백씨 성주군종친회는 태록 회장을 비롯하여 300여명의 회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3년전부터 종인간 화합과 친목을 위해 공식적으로 종친회를 가지기로결정, 대가 탕실과 성주 연산에 이어 선남의 용골대에서 이번 종친회를 가졌다.
창현 명예회장 내방
지난 2010. 4. 9.중앙종친회 석기회장과 운범상임부회장은 강남구 논현동 백창현고문을 찾아 명예회장으로 추대할 것을 말씀드리고 절차를 거처 7월 29일에 추대하였다. 이에 2010.8.11. 昌鉉명예회장께서 수원백씨중앙종친회 사무실로 석기회장을 예방하시고 환담을 나눈 후 집행부 임.직원과 휴암종중 임.직원에게 단합과 격려의 뜻으로 중식 만찬을 베풀어 주셨다. 그리고 석기회장에게는 명예회장으로 추대하여 주시어 고맙다는 말씀을 하였고 석기중앙회장은 앞으로 더더욱 건강하시기를 바란다는 말씀을 시작으로 종친회 발전에 관한 환담을 나누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인사동정
백승훈: 한국건설교통기술평가원 교통3실장 백문기: 스포츠조선 편집국 CND 백남식: 건국훈장 애국장 백건우: 피아니스트 은관문화 훈장 백승헌: IBK기업은행 역삼동남지점장 백순근: 서울대학교 입학관리본부장 백방중: 대구고검 형사2부장 백기봉: 법무부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백종우: 법무부 대구지검 형사3부 부장 백호: 서울시 행정과장 백용하: 법무부 부산 동부지청 공안부장 백은기: 인천시 건설교통국장 백옥경: 이화여대 이화사학연구소장 백진경: 인제대 디자인 대학장 백남일: 한국전파진흥원 기금사업부장 백승도: 강남대 학생선발센터장 백남식, 백인해: 65주년 광복절 유공자 포창 선국훈장 애국장 백인순: KBS보도국 경인 방송센터장 백경갑: 대진대학 기획처장 백현동: 건국대 산업협력단장 백광석: 거창여자중학교 교장 백순근: 서울대 입학관리 본부장 백창구: 창플랜드 대표 백순기(안산): 한중서예대전 특선 경기도주체 단선 백성구:삼원기업 부장 백형국: 지식경제부 우정사업본부 금융총괄팀 백두권: 도산아카데미원장(트위터 열품 2진단과 과제 세미나개최) 백승호: 가톨릭의대 사회복지 대학원 교학부장 백광제: 치의과대학 산업협력단 단장 백창수:대전 충남 축산물 품질 평가원 이력사업본부팀장 백병갑: 기획재정부 재정정책국 재정산업평가과 백운현: 행정안전부 소청 심사위원회 상임위원 백경환: 인문사회 부문 성균관대 교수 제6회 경암 학술상 백진현: 서울대 국제대학원장 백철호: 대전시 관학산업과(대전 대잔테크노파크)파견 서기관
訃音 백선진 전 재무부장관 별세
전 재무부 장관이 22일 오전6시 별세했다. 88세 고인은 일본 도시사대 유학 중 광복을 맞아 귀국, 군사 영어학교를 졸업하고 국군 창설에 기여했다. 육본 병참감, 국방부 차관보를 거쳐 육군소장으로 예편했으며 제12대 재무장관을 지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십엽씨, 장남 백지산(파파존스 캐나다 대표)씨, 차남 백호산씨(사업)등 2남 2녀, 사위 홍석신(전 삼성전기 전무), 정필현씨(동국대 의대교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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