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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7개 산을 오르는 일을 시작한 단계지만, 주님께서 어떻게 인도하고 계신지,
어떠한 마음을 나누어 주고 계신지, 나누기 위해서 글을 올립니다.
이 글이 특히 7개 산을 정복하는 영역으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느끼는 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를 원합니다.
저는 박사과정 중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불신자 가정 출신으로 미국으로 유학 나오기 전까지
저는 예수님에 대해 들어본 적조차 거의 없었습니다.
이전까지는 저를 위해서, 남들에게 뒤지고 싶지 않아서 공부를 했었지만,
주님을 알게 된 후 학업이 뒷전이 되었습니다.
공부는 사실 주님과 비교해서 너무 재미가 없는데다가 어렵기도 했습니다.
학업과 관련된 주님의 뜻을 모르겠기에, 도중에 그만 두고 싶은 생각도 컸습니다.
하지만 박사과정 초반에 받았던 장학금으로 인해서 그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장학금을 받았던 조건이 학위를 받는 것이라, 중간에 그만 두면 수천만원에 해당되는
돈을 장학재단에 되돌려주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박사 과정동안 성경과 신앙서적을 읽고 기도생활을 하는 것 위주로 지냈으며,
주변에서는 신학교 다니는 학생 같다는 놀림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학업에 충실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박사자격시험이나 졸업논문 등 정말 반드시 필요한 일에 주님께서 도움을 주셨으며, 재정문제가 불확실한
연구실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3년 동안 2억이 넘는 재정을 등록금과 생활비로 초자연적으로 공급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신실하게 저를 돌보고 계심을 알 수 있었지만,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지, 제 삶을
향한 주님의 계획은 알 수 없었습니다. 그저 제 안에는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하고 싶다는
소원만 있었습니다.
약 3년 전 주님 앞에 이런 기도를 드리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주님, 세상에 목사님과 선교사님들은 너무 많습니다. 그 중에 훌륭하신 목사님과 선교사님들도
많습니다. 또 좋은 크리스챤 학자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교회 다니면서 연구를 열심히 하는 학자들 말고,
하이디 베이커 목사님처럼, 정말 하나님을 너무 사랑하고, 성령님께 온전히 순복하고, 정말 디테일한
것까지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그런 학자들은 거의 보질 못했습니다. 제 마음에는 그것이 가능한 거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보진 못했습니다. 주님, 그것이 가능하다면 저를 그와 같은 사람으로 써주세요.
하나님과 긴밀하게 동행을 하고, 성령님의 능력으로 일하는 그런 선교사와 같은 학자로 저를 써주세요.
아프리카의 난민들, 고아들은 누가 봐도 불쌍합니다. 그들을 돕는 일이 중요하고, 많은 사람들이 돕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겐 학계에 있는 사람들, 지성으로 인해 높아진 사람들의 영혼도 너무나 불쌍합니다.
교만한 사람들은 하나님 만나기 훨씬 더 힘든데, 이들에게 어떻게 하나님을 보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뭏든 이들이 너무 불쌍합니다.”
그때는 이 기도가 너무 뜬금없다고 생각했지만, 그 후 샨볼츠 목사님의 설교와 책을 통해서, 이러한
생각들이 그냥 저 혼자만의 생각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실제로 성직과 세속적인 일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계심을 확증할 수 있었습니다. (빌해몬 박사님께서는 3년전부터 성도운동의 시대로
본격적으로 들어갔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졸업하는 시점이 될 때까지, 제 안에 미미한 소원만 있었고, 확신이 없었습니다. 저런 삶을 살고
싶었지만, 실제 삶 속에서는 거의 날마다 실패하고 있었습니다. 7개 산을 정복하는 것과 관련되어서는
눈으로 보기에 진행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저 날마다 회개하며, 나의 숨겨진 동기들이 정화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졸업할 무렵 3일간 금식하는 기간을 가졌었는데, 그때 주님께서 보여주신 것은, 학계에 있는 사람들,
지식이 많은 사람들에 대한 주님의 마음이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그들에게로 보낸다.”
그 때 무엇보다 놀란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학계에 있는 사람들, 지식인층은 복음을 전하는 대상으로
어떻게 보면 아주 비효율적인 그룹입니다. 똑같은 노력을 다른 그룹의 사람들에게 들인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최소의 비용과 노력으로 많은 결과를 얻는 경제적인 원리로 보면,
학계에 있는 사람, 지식인층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아주 비효율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아주 소수의
사람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을지라도, 주님께서는 그것을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주님은 정말 한 영혼을 위해서 아낌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이와 비슷한 것을 박사과정 중 주님께서 재정적으로 지원해 주시는 것을 보면서 느꼈습니다. 제 안에
이런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 돈을 아프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신다면 훨씬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것이 사람의 관점이지만, 하나님의 관점으로 본다면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원은 무한대이기 때문입니다! )
주님께서 저를 그들에게 보낸다고 하셨으니, 당장에 무슨 일이 일어날 거 같았지만 ^^;;
또 몇 개월 동안 겉으로 보이기에 아무 일이 없었습니다.
올해가 시작하면서 약간 특별한 말씀을 주셨는데, 이것이었습니다.
“여태까지는 네가 네 힘으로 열심히 살아왔다. 그래서 실패했지만, 앞으로는 네가 나의 힘으로
일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승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생각했습니다. 왜냐면 (제가 생각하기에) 여지까지 저는 최선을 다해 주님께
의지하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실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졸업할 무렵에는 *목사님께서 말씀하시는 것과 같은 미친 듯한 (!) 믿음이 임하여서, 눈만 뜨면 “예수님의
이름으로!”를 외치면서 산 정상에 깃발을 꽂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앞에서 말씀 드린대로 저의 박사과정은 학업적인 면에서 봤을 때는
엉망이었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선교사로 부르시면 바로 달려갈 수 있을 정도로 학업에 미련이
없었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졸업은 잘 했지만, 이제 와서 계속 공부를 하라고 하시니, 상황이
참담했습니다. 왜 공부에 관심이 없고, 공부를 안 하고 띵가띵가 노는 학생은 성적이 어떻게 나와도 별로
신경이 안 쓰이지만,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상황이고, 노력을 나름 했는데, 성적이 안 나오면 그 학생은
정말 좌절 스럽잖아요. 제가 바로 그런 상황이 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학자로서 필요한 자질은 크게 세 가지 입니다. 타고난 재능, 인내심, 학문을 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거. 그런데 제게는 이 세 가지가 다 없어 보였습니다. 좌절스러움에 베게에 눈물을 적시며
잠이 드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무슨 생각이 있으셔서 날 이렇게 만드시고, 이런 길로
인도하셨겠지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주님께서 7M을 오르는 것과 관련해서 제게 주신 꿈 두 가지는 이것이었습니다.
(1) 학계에 하나님과 동행하고 동역하는 사람의 롤 모델이 되는 것.
(2) 학계에 하나님의 사람들을 일으키는 것.
어떤 사람이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해서, 아무데나 자기 마음대로 선교하러 갈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으로 부름을 받았는지, 중국인지, 아프리카인지, 주님께서 보내시는 곳을 알고 그 곳으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보통 주위의 다른 사람들은
자신이 하던 전공분야 내지는 비교적 내용이 비슷하여 익숙하고 친숙한 인접 전공분야에 지원서를 내고,
합격된 곳들 중에서 자신의 진로를 선택해서 갑니다. 하지만, 저는 이 일에 있어서 아주 신중하고 싶었고,
주님 앞에서 기도하는 시간들을 많이 보내야만 했습니다.
제 앞에 세 개의 문들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에게 가능한 문들이었습니다.
첫번째 문은 현재와 비슷한 분야의 일이고, 현재와 비슷한 모습으로도 들어갈 수 있는 문.
두번째 문은 지금과 조금 다른 분야의 일이고, 현재보다는 힘들지만,
그래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도 들어갈 수 있는 문.
마지막 문은 현재 하는 일과 완전히 다른 일이며
제가 죽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문이었습니다.
한 가지 길이 아니라 세 가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그것이 제게 조금 어려웠습니다.
우리가 배우자를 선택할 때, 주님이 어떤 사람의 배우자를 마음대로 결정해 놓으시고, 그 사람의
자유의지와 상관없이 그 배우자를 선택하게 강요하시지 않는 것처럼, 주님께서는 저를 어떤 한 길로
강압적으로 이끄시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떤 문으로 가는 것이 주님을 가장 기쁘게 하는 선택인지 오랜 기도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문은 마지막 문, 제가 죽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곳으로
들어가길 원했습니다.
여러 번 반복되는 꿈을 통해서 어느 연구실에 지원을 할지를 알려주셨는데, 그곳은 제가 그동안 공부를
해왔던 곳과 완전히 다른 곳이었습니다. 원래 제 전공은 전자과였고 음성과 청각 분야였는데,
지원하라고 하셨던 연구실은 DNA, 유전자 정보 등을 연구하는 곳이었습니다.
그 문을 열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했는데, 저에게는 그것이 없었습니다. 학자를 평가하는 것은
논문입니다. 눈문 수가 몇 편인지, 어떤 유명학술지에 출판이 되었는지가 아주 중요합니다. 그런데 저는
졸업할 당시 출판된 논문이 한편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거기다가 제 전공과 전혀 다른 분야라면, 그 전에
제가 쌓아온 연구경력 조차도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인간적인 관점으로는 제가 내세울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1월달이 되자, 주님께서는 이제 직접적인 지원준비를 해야 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려주셨는데, 여전히
어떤 연구를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연구실에 지원하려면 학업계획서를 내야하기
때문에, 이것은 큰 문제였습니다. (음성과 청각을 연구하던 사람이 DNA에 대해서 뭘 알 수있겠나요 ㅠㅠ.)
그러던 어느 날 자고 일어날 때 계속 마음 속으로부터, ‘멜라노가스터’라는 단어가 들렸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멜라노가스터라는 단어가 있어? 세상에 그런 단어가 존재해?” 그 친구는
생물학 전공인 친구였는데, 그 친구가 말하기를 “응, ‘드로소필라 멜라노가스터’라고, 초파리의 학명이야.”
그런 복잡한 단어를 제가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그래서 주님께서 주신 연구 주제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연구실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니, 여러 가지 프로젝트 중에 과연 초파리를 가지고 연구를 하는
프로젝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 그 연구실에서 나온 초파리와 관련된 논문들을 집중적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너무 어려웠습니다. 마치 제게는 외계 언어 같았고, 정말 주님의 음성이 맞는지,
무모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갈등도 되었습니다.
2월 달이 되자 동계올림픽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올 초 밥존스 목사님께서 신기록을 세우는 수영선수
꿈 이야기를 하시면서, 올해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크리스챤들이 신기록을 세우는 해가 될 것임을
선포하셨습니다. 약 3년 전 동계올림픽 스키선수가 되어 신기록을 세우면서 결승선에 들어오는 꿈을
꾼 적이 있었는데, 이것이 **교회 공지글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2010년 동계올림픽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동계올림픽에서, 저와 같은 동네, 그리고 같은 초등학교 출신인 이상화 선수와 모태범 선수가 단거리
스피드 스케이팅 경주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승훈 선수의 경기는 특별히 성령님께서
보라고 그러졌었는데, 마지막에 세계기록보유자인 크라머 선수가 뛰기 전에, 주님께서는
‘내가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지 주목해서 보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승훈 선수를
응원했지만, 결국 크라머는 1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저는 그때 도대체 '주님 뭘 보라고요~'
그러면서 실망했습니다. 하지만 곧 크라머 선수가 코스를 잘못 돌은 것이 밝혀져 실격을 당하고,
2등이었던 이승훈 선수가 금메달을 따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침 그 경기 전날 보았던 2002년도
동계올림픽 1500미터 남자 쇼트트랙 경기 내용도 떠올랐는데, 결승선 바로 앞에서 1등부터 4등까지
넘어져서, 꼴찌로 달리고 있던 선수가 금메달을 따는 것이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주님께서 너무나 집요하게 말씀하신 것은, ‘너도 금메달을 딸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실력으로도 안되고, 노력으로도 안되고, 재능으로도 안되는데, 그것은 절대적으로 경기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달려있는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이승훈 선수는, 그의 종목을 바꾼지 7개월만에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게 되었는데, 이것은 일반적인 눈으로 보면 무모한 도전일 수 있고, 아무도 그가
금메달을 딸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계속 국내 쇼트트랙 대표선발전에서 탈락한
후에도 계속 쇼트트랙을 고집하였다면, 그는 결국 평생 금메달을 따지 못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계속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했습니다. ‘주저하지 말고 도전하라. 너는 너의 부족함을
바라보지 말고, 1등에도 목표를 두지 말고, 신기록에도 목표를 두지 말고, 그저 나를 바라보고
나를 향해 돌진하라. 그 외의 것은 내가 한다. 상황과 상식을 뛰어 넘어 너에게 금메달을 줄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모든 크리스챤에게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단 하나의 조건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영역에서 성령님께 전적으로 순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운동선수가 성공하려면 그의 재능도
중요하지만, 어떤 코치를 만나느냐가 정말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이상화 선수와
모태범 선수는 그들이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같은 코치를 두고 있었습니다.
김연아 선수의 경우에도 그녀가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었던게 사실이지만,
오서코치를 만나기 전에는 아사다 마오와 비슷하거나 좀 부족한 정도였고,
세계 일인자는 아니었습니다. 또한 탁월한 코치가 지도하는대로 선수는
그대로 순종해서 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들을 운동선수에 비유할 때,
우리의 코치이신 성령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순종하는 것은,
7M을 정복하고 승패를 가르는데 있어서 사활적으로 중요합니다.)
이 무렵 주님께서는 저에게 연구계획서를 보내지 말고, 직접 교수님을 만나서 얘기하라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보통 포스닥 과정이라 불리우는 박사후 과정 지원은, 다음의 과정을 거칩니다. 먼저 원하는
곳에 학업계획서와 자신의 경력을 요약한 이력서(레쥬메, CV), 추천서를 보냅니다. 그러면 교수님이
그것들을 읽어보고 자신이 원하는 후보자들을 추린 후에 관심있는 학생에게 인터뷰 요청을 합니다.
인터뷰 요청을 받은 학생은 연구실에 방문해서 짧은 강의를 하고 그 연구실의 교수님들과 학생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합니다. 그리고 그 인터뷰한 학생 중에서 한 사람이 최종적으로 결정이 됩니다.
따라서 서류를 보내지 않고 직접 교수님을 뵙는 것은 일반적인 상례에서 좀 벗어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저는 또 골방에 박혀서 주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했습니다.
그 무렵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전공자가 제가 가고자 했던 연구실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아서 왔다가, 떨어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좋은 학교 출신에다가, 그 분야의
많은 연구경험을 가지고 출판된 논문들도 가지고 있는 학생도 와서 떨어지는 마당에,
전혀 자격이 되지않는 저의 마음은 더 쪼그라드는 듯 했습니다.
그 주일 보스턴 **기도회에 갔습니다. 평상시에는 그 전날 주일 설교 동영상을 틀어 주십니다.
그날은 이상하게 동영상 다운로드가 실패하셨다고, 예전 *목사님 즉흥 설교 중 하나인
‘물 위를 걷는 법’이라는 설교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그 설교 동영상을 본 적도 있고,
설교문을 읽어본 적도 있었는데, 그날 그 설교는 제게 레마로 다가왔습니다.
그 설교를 듣고 저의 불신앙에 대해서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사역이란 기본적으로 즉흥설교도 그렇고, 치유사역도 그렇고, 예언사역도 그렇고
물 위를 걷는 것이다. 물 위를 걷는 것이란 아무런 자연적으로는 받쳐 주는 것이 없는데,
주님을 보고 걷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제게는 그 말씀이, 그런 교회 안에서의 사역 뿐만 아니라, 일터 사역, 우리가 흔히 사역의
영역으로 넣지 않는 그 모든 것이 물 위를 걷는 것이라는 깨달음으로 왔습니다.
자꾸 저의 한계와 부족함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얼마나 주님을 아프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것인지가 느껴졌습니다.
회개를 하고 기도가 깊어졌을 때, 주님께서 보여주신 것은 십자가를 지고 언덕을 오르고
계신 모습이었습니다. 그 후로 삼일간 저는 눈을 뜨면 눈 앞에 십자가를 지고 언덕을 오르시는
주님의 모습이 계속 보이는 듯했습니다. 주님의 고통과 (나중에 얻을 것을 지금 바라보시는)
주님의 기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 주님께서는 절 보시며 여러번 물으셨습니다. “네가 나와 함께 이 길을 가겠느냐.”
저는 차마 주님께 "저는 못가겠습니다"라고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기간동안 또 ‘중보기도자
리즈 하월즈’를 집중해서 읽도록 인도하셨는데, 주님께서는 계속 저에게 ‘이제까지는 부분적으로
순종했지만, 앞으로는 모든 것을 순종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리고 저의 모든 것을 다 드리도록
요청하셨습니다. 이제는 제가 준비가 되었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저는 그동안 그렇게 하고 싶다고
기도를 해왔지만, 주님께서 주도적으로 그런 요청을 하신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 이 요청이 제게 아주
심각하게 느껴졌습니다.
사실 중보기도자 리즈 하월즈라는 책을 처음 읽었던 것은 몇 년 전으로, 그 때 그 분의 삶 속에
나타나는 중보기도의 능력과 성취는 놀라왔지만, 그런 삶을 사는 것은 부담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지난 몇 년동안 주님께서 저를 향해 보여주신 사랑은 신실했습니다. 저는 부분적으로
순종하면서 살았지만, 주님께서는 제게 아낌없이 베푸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고,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원래 크리스챤이 된 순간부터
마땅히 저는 모든 것을 드려야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것을 강요하지 않으시고, 조금씩 조금씩 주님의 선한 것들과
사랑을 보여 주시면서, 지금까지 기다려주셨습니다.
아직도 주님을 많이 모르지만, 주님의 그 사랑에 바르게 반응하고 싶어서
그 부르심에 ‘Yes’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금메달을 따기 위함도 아니고, 산을 정복하기 위함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주님으로부터 굉장한 담대함이 임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다음 주 주일 예배의
기도시간에는 이미 저는 주님과 함께 산 정상에 올라서 시원한 공기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그 연구실의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전날 기도시간에 주님께서는 ‘그가 너의 좋은 선생님이
될 것이다.’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교수님께 찬찬히 어떻게 이 연구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초파리를
가지고 어떤 연구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초파리 연구라는 말을 듣자마자
얼굴 표정이 바뀌셨습니다.
나중에 말씀하시기를, 바로 얼마 전 초파리 연구를 하던 분이 갑자기 사정이 생겨서 그만 두시게 되었다고,
또 연구지원을 받기로 했던 것이 있었는데 그게 작년 11월부터 계속 이상하게 연기가 되었었는데, 바로
전 주에 승인이 떨어져서 연구비로 쓸 돈이 갑자기 생겼다고 하셨습니다. 본인도 크리스챤이지만, 자신은
누군가 하나님께서 인도하셨다 – 이런 말을 하면 잘 믿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인도하셨다는 말을 하면서, 거기에 슬쩍 본인이 원하는 것을 말하거나 (그러니까 정말 하나님이
인도하신 건지, 제 삼자가 봤을 때는 아닌 거 같은 상황), 또 하나님께서 그렇게 자세하게 개입하시는 것은
믿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본인이 생각하기에 너무나 놀라운 타이밍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인도하신
것 같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제 말이 다 끝나자마자 교수님께서는
‘우리 함께 일합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사실 교수님께서 한번 생각해보겠다고, 나중에
학업계획서와 다른 서류들 보내달라고, 혹은 정식 인터뷰 하자고 말씀하실 줄 알았기에, 많이
놀랐습니다. 제 소식을 들은 주변사람들의 반응들은 이랬습니다.
“너같은 과정으로 뽑힌 경우는 첨 본다.”
이제 간신히 문만 열었습니다. 그 문은 처음에 봤을 때 아주 힘들어 보였지만,
죽고자 결단했을 때 너무나 쉽게 열렸습니다. 이제 문을 열었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제가 영적으로는 아기와 같지만, 저와 함께 산을 오르고 계시는 분들을 위해서
그리고 주님을 위해서 부끄럼을 무릅쓰고 글을 올렸습니다.
(사실 저는 저런 일 후에도 날마다 넘어집니다.)
DumpT님이 자주 말씀하시는 것처럼, 이제 막 시작된 저의 여정은...
하루 이틀, 또는 겨우 몇달 가지고 될 일이 아니고, 아마도 수십 년이 걸리는 등반의 길이 될 것입니다.
그 가운데 우리는 서로가 어떻게 주님 안에서 성장해 나가는 지를 볼 것이고,
서로의 모습 안에 나타나는 주님의 모습을 볼 것이고,
이 과정 가운데 주님의 행하심을 볼 것입니다.
7개의 모든 산들에 주님의 깃발이 꽂히고 십자가가 꽂히고,
주님의 영광으로 덮이는 날까지 화이팅!
스크랩 *믿음교회
첫댓글 아멘 잘 읽었습니다..
역시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가장 모험적이면서도 가장 안전하다는...
평소에 성경을 많이 읽고, 방언기도를 많이 하고, 하나님앞에 진실한 중심을 가지고, 자신의 모든 욕구를 포기하는 자아부인의 삶을 살때에야 하나님의 개입하심이 열리게 된다는....
상도중앙교회 농아부 지체들도 더 큰 은혜를 체험하는 게 가능할꺼라 확신합니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