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부흥의 길(復興之路)6부 자막 대사 녹취문
제6부 繼往開來 과거를 통해 부흥을 도모하다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었다.
중국은 국가 발전에 있어서 중대한 기회를 맞이하고 있었다. 샤오캉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전 국민적 목표는 중국인들에게 커다란 힘이 되었다.
2002년 11월 8일. 중국 공산당 제16차 전국대표대회가 북경에서 열린다. 이 회의에서 공산당 지도부의 수장으로 호금도(胡錦濤, 후진타오)가 선출된다.
2003년 3월 18일. 중국의 공산당 중앙 총서기 겸 국가주석인 호금도는 중대 발표를 한다.
“저는 국가주석의 숭고한 직무와 위대한 사명, 중대한 책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헌법에서 부여한 직책을 충실히 이행하고, 직무에 책임을 다하며, 성실히 일할 것입니다. 국가와 인민을 위해 봉사할 것이며, 각 대표와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중국 지도부는 이를 통해 전 세계에 중국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13억 중국인과 전 세계 사람들은 중국의 새 지도자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고 있는 이 나라를 그들은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 세계에서 가장 큰 개발도상국을 그들은 어떻게 선진국으로 이끌어갈 것인가?
2002년 12월 5일. 호금도 주석과 공산당 중앙 서기처의 모든 직원들은 서백파(西柏坡 하북성 석가장시 평산현 소재)를 찾았다. 집권 한 달 만에 이루어진 첫 번 째 단체 회동이었다. 이곳은 중국 공산당이 대륙을 석권하기 전에 사용한 마지막 농촌 지휘소였다. 1949년 3월, 혁명의 성공이 눈앞에 놓인 그때, 모택동은 강조했다.
“동지들, 겸손하고 신중해야 합니다. 조급해서는 안 됩니다. 혁명을 위해 분투하는 지금 모습을 계속 이어나가 주십시오.”
반세기 동안 중국의 중앙정권은 늘 위기에 대비해 왔었다. 2002년에도 새 지도부는 이곳에서 역사를 되새겼다. 자신을 위한 경각심이자 국민을 향한 약속이었다.
➡뤼쥔루 (중앙당학교 부교장)
호금도 주석은 인민을 사랑하고, 인민의 이익을 추구하며, 인민을 위한 권력이라는 정치 이념을 제시했습니다. 서백파 정신에 대한 최고의 해석이자 강한 계승 의지입니다. 호금도 주석이 서백파 정신을 재해석한 것은 중국 공산당의 자각을 의미하죠.
2002년 겨울의 이 여정은 큰 의미를 지닌다. 지도부의 막중한 책임을 세상에 맹세한 것이었다.
몇 달 후 지도부의 맹세는 온 국민을 하나로 만들었고 난관을 극복하는 원동력이 된다.
2003년 봄, 예상치 못한 재앙이 중국을 휩쓴다. 급성 호흡기 증후군. ‘사스’로 알려진 이 호흡기 전염병은 순식간에 32개 국가에 퍼져 나갔다. 이 전염병이 가져온 공포는 바이러스의 전염 속도보다 더 빨리 퍼져 나갔다.
➡종난산 (중화 의학회 회장)
사스는 사망률이 높았습니다. 특히 청년과 중년층이 그랬죠. 사람들의 공포는 극에 달했습니다.
➡갸오챵 (위생부 부부장)
사스는 전염이 빨랐습니다. 단 몇 달 만에 24개 성(省)에 전염됐고 266개 현(縣)을 휩쓸었습니다.
그것은 질병과의 치열한 전투였다. 당과 정부의 국정 능력은 물론, 중국 사회의 위기대처 능력에 대한 시험이었다. 그 불안했던 봄날, 세계인들은 중국을 주시했고 이제 막 탄생한 중국의 새 지도부를 주시했다.
2003년 4월 14일 오후.
광주(廣州)의 최대 번화가인 북경로에 호금도 주석이 모습을 드러낸다. 천여 명의 사스 환자가 발생한 이 도시에서 중국의 국가주석은 일반 시민들과 악수를 했다. 중국의 지도자들은 그들이 언제나 ‘국민과 함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려 했다. 이 끔찍한 재앙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온 국민의 힘이 필요했다.
봄에 찾아온 이 세계적인 질병은 여름이 되어 자취를 감춘다. 중국은 승리를 자축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해가 끝나기 전 중국은 더 값진 승리를 일궈낼 수 있었다.
이곳은 고비사막 깊은 곳에 위치한 주천(酒泉) 위성발사 센터다. 2003년 10월 15일. 중국 우주탐사의 새 역사가 이곳에서 씌어진다. 그날 새벽 5시 20분. 호금도 주석이 우주인을 격려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한다.
➡호금도 (국가주석)
우리 모두 이번 우주 비행의 성공을 염원합니다! 승리하고 돌아오길 고대하겠습니다!
양리웨이 (중국 최초의 우주인, 인민해방군 우주인 대대 소속)
주석님과 국민들에게 무사귀환을 약속드립니다!
북경 시간으로 9시. 역사적인 그 순간. 38세의 우주인 양리웨이는 중국 민족의 염원과 꿈을 안고 광활한 우주의 첫 번째 중국인 방문객이 된다. 이로써 중국은 세 번째 유인우주선 기술 보유국이 된다. 2003년은 중국인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최고의 한 해가 되었다.
바로 그해, 중국 경제는 8퍼센트 이상의 성장속도를 유지했고 세계 3대 무역 강국으로 부상한다. 그 해 유엔의 보고서는, 2003년 중국의 경제 성장률은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며 주요 무역국가로 부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홍콩의 언론도 단 한 문장으로 중국 새 지도부의 집권 1년을 평가했다.
“평온한 바다, 순풍에 돛을 단 배!”
빠른 경제성장률과 다양한 과학기술의 발전! 하지만 중국의 지도부가 풀어야할 과제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현재의 성과에 안주한다면 그들이 꿈꾸는 민족의 부흥도 멈추고 말 것이다.
➡장수광(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
성장 잠재력은 매우 컸지만 문제는 어떻게 그것을 발휘하면서 안정적인 성장을 지속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브랜틀리 워맥 (버지니아대학 교수)
중국 공산당이 얻은 성과는 경이롭고 대단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성과와 더불어 물질생활 수준도 향상됐기 때문에 정치, 경제 발전에도 새로운 문제가 불거진 것입니다.
21세기 초 중국은 어떤 문제들을 안고 있었을까?
새로운 중앙 지도부는 이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2003년 중국의 노동 인구는 7억 4천만 명. 도시로 이주한 농민공(農民工)이 2억 명이었다. 매년 천만 명씩 생겨나는 구직자들과 3천만 농촌 인구의 빈곤 역시 심각한 문제였다. 빈부격차는 날로 심화되었고 환경문제와 경제발전 사이에서 각종 문제가 발생했다.
세계 각국 또한 같은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경제가 글로벌화 되면서 세계는 급격하게 변화했다. 환경오염, 자원고갈, 질병이라는 심각한 위기도 가져왔다.
➡레스터 브라운 (미국 지구정책연구소 소장)
어느 나라도 단독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세계 각국이 모두 힘을 합쳐야 하죠. 중국은 국토가 넓고, 인구가 많으며 경제규모가 크기 때문에 문제 해결 과정에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인류는 발전 단계마다 새로운 문제에 직면해 왔다. 기회와 도전이 공존한 세계 속에서 중국 또한 해답을 찾고 있었다. 과거의 경험을 종합하면서 더 나은 발전을 이루는 것, 이것이 중국의 새로운 목표가 되었다.
2003년 가을, 호금도 주석과 중앙 지도부는 중국의 발전을 향한 새롭고 중대한 전략을 제시한다. 그것이 바로 ‘과학발전관(科學發展觀)’이었다.
➡호금도 국가주석 (연설)
인본주의를 견지하면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룩하는 것은 등소평 이론과 ‘3개 대표’론의 기치 아래 새천년, 새로운 당과 국가 사업발전을 고려한 중대한 전략적 사상입니다.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학 경영대학원)
경제 발전의 어려운 점은 어느 한 가지만 신경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상황을 고려하고 균형을 따져야 하죠. 중국의 경쟁력은 균형을 잘 유지했다는 데 있습니다.
중국은 국가의 발전과정을 명확하게 분석하려 했다. 그리고 이것은 민족발전을 위한 중국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세계 최대의 개발도상국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는 것, 그리고 세계 최대의 인구 대국(人口大國)에서 인본주의 이념을 실현한다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일 것이다.
밤이 지나야 새벽이 오기 마련이다. 새로운 천년. 중국의 ‘과학발전관’은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까?
2005년 말, 중국의 국가 환보충국(環保總局)은 환경법규 위반을 이유로 30개 건설을 중단시킨다. 총투자액 1179억 위안(한화로 약 15조원)에 이르는 사업들이었다. 환경평가법을 실시한 이래 중국이 처음으로 대외적으로 공개한 위법사례다. 외신들은 중국 환경당국이 진지해졌다고 평했다.
➡마오루보 (전국인민대표회 환경·자원 관리위원회)
환경과 자원의 압력 앞에서 발전의 의지를 확고히 한 것입니다. 지속가능하고 조화롭고 전면적인 발전 노선을 택한 거죠.
이것은(책 표지를 보여주며) 제11차 5개년 개발 계획이다. 50여 년간, 5년마다 제정된 이 발전계획은 명확하고 구체적인 개발 목표를 포함한다. 2006년에 시작된 11·5 계획에는 과학발전관(科學發展觀)이라는 중대 사상이 반영되었다.
➡린자오무 (전국인민대표대회 재정경제위원회)
11·5 계획은 사상 최초로 제약성(制約性)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22개 목표 중 8개가 제약성이 있었는데, 주로 자원 및 환경과 사회발전 분야였죠. 그 내용은 ‘11·5 기간에 GDP당 에너지 소비량 20퍼센트 절감’ ‘오염물 배출량 10퍼센트 절감’ 등이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친환경, 자원절약형 사회의 건설을 추진하는 동시에 상대적으로 낙후된 중서부 지역에도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미국의 여행가 폴 서루는 저서 ‘중국기행’에서 이렇게 말했다.
“곤륜산맥이 있는 한, 철마는 영원히 라사에 닿지 못한다.”
하지만 2006년 7월 1일. 기적과도 같은 철도 공정이 세계의 지붕에서 완성된다. 청장철도(青藏鐵路, 청해성 서녕[西寧]에서 티베트 라사까지 가는 철도)는 유목민들에게 교통의 편리 뿐 아니라 경제적인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호도유를 생산한 티베트의 성루기업은 이미 그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성루기업 사장
상반기 매출이 414만 위안(약 5억 4천만 원)입니다. 철도 개통 전에는 1년 정도 걸려야 가능했을 액수죠.
청장철도의 전 노선 개통은 세계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중국 지도부는 세계의 지붕에 완성된 철도의 탄생보다 그로 인한 서부지역 경제성장 효과에 더 주목했다. 한 평론가는 이렇게 말했다.
“중국은 곧 새로운 고지에 오를 것이다.”
➡시에푸잔(통계국 국장)
11·5 기간에 새로 건설된 도로는 서부지역에만 20만 킬로가 넘는데, 그중 고속도로가 6853 킬로입니다. 철도의 경우 서부지역에만 5천 킬로가 늘었고, 민간 공항은 총 10개 건설됐습니다. 서부 핵심도시 건설 작업도 그 속도가 매우 빨라졌죠.
해발 8천 미터. 세계의 지붕에서 본 것은 중국 전체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다.
서부는 지금 개발이 한창이다.
중부 6개성(省)은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다.
동북부는 제조업 기지의 지위를 지켜가면서 새로운 발전을 구상하고 있다.
중국의 또 다른 성장 엔진인 천진의 빈해(濱海) 개발구는 2006년에 정식으로 가동되었다.
발전의 선구자인 동부는 다른 지역과 함께 총체적인 경제 발전을 이어 가고 있다.
전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 발전계획들은 중국 사회의 전면적인 변혁을 꿈꾸고 있다.
➡징텐쿠이 (중국 사회과학원)
중국의 경제 구조는 물론 사회 구조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사람들의 이해관계, 사상, 관념 역시 중대한 변화를 맞았죠.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변혁은 심각한 사회문제도 함께 가져왔다.
어떻게 해야 국가의 발전을 이어나가고 국민의 기대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심각해지고 있는 사회 문제들은 어떻게 해결해야 될까?
2006년 8월, 중국에 중대한 전략이 수립된다. 이것은 사회주의 아래 화합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2003년 봄부터 2006년 가을까지 과학 발전관은 한층 구체화되고 세분화된다.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분야를 정치, 경제, 사회, 문화로 세분화하여 승화시킨 것이다.
➡윌리엄 칼라한 (맨체스터대학 교수)
화합 사회 건설은 매우 흥미로운 개념입니다. 중국식 발전관의 일부이기 때문이죠. 매우 강력한 개념입니다.
➡링총겅 (중국주재 세계은행 초대 수석대표)
저는 중국이 고속 성장을 유지하면서 사회복지를 이뤄낼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 점이 바로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특징이니까요.
과학발전관과 화합사회 구축의 가장 근본적인 목적은 중국에 살고 있는 모든 국민을 위하는 것이었다.
[2003년, 농민공 빚 청산작업 시작]
도시 농민공 2억 명의 노동 보수 보장
[2005년, 도시 판자촌 개조사업 가속화]
공업지역 노동자 수백만 명 수혜
[2007년, 국무원 79개 의료개혁 시범도시 지정]
도시주민의 기본 의료보험사업 시동
[2007년, 전국 농촌에 의무교육비 면제]
학생 1억 5천만 명 수혜
[최저임금보장제도]
빈곤인구 4천만 명 수혜
➡리종지에 (중앙당사 연구실)
인본주의란 모든 행동에 국민의 이익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즉, 국민에서 출발하여 국민의 기본 이익을 실현하고 유지하고 또 발전시키는 것이죠.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에게 이로운 발전을 의미합니다.
중국 인구의 대부분은 농민이다. 이 농민문제의 해결은 중국 정부의 오랜 숙제였다. 그 동안 중국 정부는 여러 가지 농업 부흥 정책을 내놓았다. 9억의 농민들도 경제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2004년부터 농업 부흥 정책은 중국 공산당의 중앙 문건에서 더욱 큰 비중을 차지한다.
2006년 1월 1일. 농업세가 페지되었다. 중국 농민들은 수천 년 동안 이어져온 토지 조세와 작별했다. 2006년은 사회주의 신 농촌 건설의 원년이었다.
11·5 계획의 첫 달. 이에 중국의 GDP는 20조 위안(약 2600조 원)을 달성했다. 중국은 세계 4대 경제대국으로 부상했다.
중국은 또 세계 최대의 공산 농산품 생산국이 되었다.
국가의 경제 발전은 곧 국민의 경제와 직결된다. 많은 중국 가정이 좀 더 여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상해 교외의 평범한 가정. 리후이잉 부부는 1957년부터 가계의 수입과 지출을 기록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중국 국민들의 삶의 흔적을 모두 기록해온 것이다.
1977년 처음 9인치 흑백 TV를 샀다.
1987년 첫 냉장고와 세탁기를 샀다.
1990년 처음으로 여행에 1천 위안을 썼다.
1994년 전화를 설치했다.
1997년 에어컨을 샀다.
2003년 집을 수리하고 가구를 바꿨다.
2005년 건강식품에 5백 위안을 썼다.
2006년 외손녀를 운전학원에 보냈다.
2007년 외손녀의 결혼을 위해서 6만 위안을 모았다.
➡리후이잉 (상해 시민)
언제 뭘 샀는지 다 기록했죠. 매년 (가계부를) 한 권씩 썼습니다. 지금은 생활에 여유가 생겨서 먹고 쓰는데 걱정이 없죠.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살고 있는 셈입니다.
중국인은 보다 여유로운 삶을 얻을 수 있었다. 많은 중국인들이 의식주 해결에 급급하던 생활에서 중산층인 샤오캉(小康)으로 도약하고 있다. 중국인들은 전면적인 샤오캉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회주의 법치국가를 꿈꾸게 된다.
2007년 봄, 중화인민공화국 물권법(物權法)이 통과된다. 전 국민의 주목을 받은 이 법률은 입법에만 14년이 걸렸고 일곱 차례의 법안 심의를 거쳐야 했다.
➡인 톈 (북경대학 법학과)
맹자는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이라고 했습니다.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맘을 갖기 어렵다는 뜻이죠. 국민이 경제적 여력이 없다면 삶도 안정될 수 없습니다.
➡데이비드 램든 (존스홉킨스대학 중국연구학과)
물권법이 시장경제의 성공적 운행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는 점은 서방과 중국의 많은 경제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재산권이 보장될 때 투자가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경제 수치가 이 점을 증명합니다.
개인의 이익과 밀접하게 연관된 이 법률이 심의를 거쳐 보완되고 있던 그 때, 2004년 행정허가법이 정식으로 시행된다. 공권력을 제약하는 법률이었다.
➡차오캉타이 (국무원 법제관공실)
정부는 스스로 기한을 정하고 법치정부 건설을 실현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이것은 세계 법제사상(法制史上) 처음으로 있는 일입니다. 정부의 정치, 법치 이념을 반영한 위대한 성과인 것이죠.
바로 그 해에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이 제4차 수정을 마친다.
국민의 합법적 재산권을 보장한다!
국가는 인권을 존중하고 보장한다!
이것이 헌법의 새 조항이었다. 재산권의 보장과 인권의 존중. 중국은 더욱 큰 발전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북경의 중관촌. 중국의 하이테크 기업이 집중된 곳이다.
2005년 호금도 주석은 이곳의 한 기업에 국가과학기술 진보 1등상을 수여했다. 덩중한과 그의 회사는 중국 최초로 지적 소유권을 가진 칩을 생산한다. 사람들은 ‘중국칩’이라고 불렀다.
2006년 연말, 이 중국칩은 판매량 1억개를 돌파하고 세계 시장의 70퍼센트를 차지했다.
➡덩중한 (중성마이크로 유한공사 사장)
중요한 것은 진정한 자체 기술을 보유하고 있느냐입니다. 내 기술이 기술 혁신을 촉진하고 시장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을 때, 비로소 세계를 재패할 수 있습니다.
15년 만에 세계 최대 생산국으로 부상한 중국. 중국은 선진국을 향한 새로운 혁신을 준비하고 있다.
2천 년 동안 이 만리장성은 중국의 고난과 애환, 노력과 분투를 지켜보아 왔다. 오늘날 만리장성은 중국의 새로운 자신감을 지켜보고 있다. 중국의 운명은 더 이상 이 성곽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
중국의 힘은 국민들의 마음속에 있으며, 미래는 국민들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 민족의 진정한 힘은 그 영혼에서 비롯된다. 참된 영혼이 없는 민족은 영원히 똑바로 일어설 수가 없다.
➡두웨이밍 (하버드· 옌칭연구소 소장)
경제대국, 정치대국 실현은 문화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문화의 힘은 전통문화를 근간으로 할 때 비로소 발휘되죠.
중국이 그려가고 있는 사회주의 체제의 건설 또한 마찬가지다. 문화의 힘과 핵심 가치를 무시할 때, 중국 민족 또한 그들이 원하는 사회를 건설할 수 없을 것이다. 사회주의의 핵심 가치는 5천년 중국의 문화와 명맥을 함께 하며 중국 민족의 정신에 달려 있다.
➡지센린 (북경대학 교수)
민족의 부흥을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느냐? 물론 문화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위안구이런 (교육부 부부장)
사회주의 핵심가치 건설은 문화 건설을 기초로 삼았습니다. 문화는 사상의 도약, 화합의 시대에 어떤 지도사상, 어떤 신념, 어떤 도덕규범으로 사회진보와 민족 단결을 추진할 것인지에 대해 명확한 해답이 되었습니다.
“문화체제의 개혁을 심화하고, 문화사업을 번영시키며, 문화산업의 발전을 촉진한다.”
<국가 11·5 문화발전 규획강요(規劃綱要)>가 반포 실시된 것은 문화건설의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한 것이다.
중국의 문화 건설에 대단결, 대번영, 대발전이라는 목표가 생긴 것이다.
어떤 민족이든 평화와 화목, 화합을 지켜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발전을 꿈꾸고 있는 중국과 세계와의 화합을 이뤄가야만 한다. 평화가 없이는 발전도 없다. 중국 역시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이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06년 10월, 중국과 수교를 맺은 48개국 아프리카 정상과 대표단이 북경에 모였다. 이 해는 중국과 아프리카의 외교 수립 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이렇게 많은 국가의 지도자가 한 자리에 모였다. 남아공 움베티 대통령은 <중·아 협력 포럼>이 아프리카 대륙에 희망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말하고, ‘북경 천안문에 싹튼 희망’이라는 글을 발표했다.
엘살바도르의 한 기자는 북경에서 열린 이번 <중·아 협력 포럼>이 세계 화합을 위한 역사적 회의라고 평가했다.
➡우젠민(외교학원 원장)
물론 서로 차이가 있겠지만 공통점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 공통점을 바탕으로 협력하면 서로 ‘윈·윈’을 이룰 수 있습니다.
➡다나카 아키히코 (동경대학 교수)
그간의 중국의 외교 정책은 모두 국가 이익에 부합하는 현명한 외교였습니다. 다변화된 국제 사회의 틀 속에서 적극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죠.
➡조셉 나이 (하버드대학 교수)
경제 성장으로 중국의 소프트 파워는 크게 증강됐습니다. 경제력 없이도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죠. 그 분야에서 중국은 큰 성공을 거둔 것입니다.
민족의 부흥은 정치의 발전과 문명의 발전, 문화의 발전과 떼어놓을 수 없다. 중국의 역사도 이를 증명하고 있다.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 민주정치를 이룩하려면 당 지도부와 인민 대표, 법치국가를 유기적으로 통일시켜야 한다. 인민대표대회 제도, 정치협상 제도, 민주자치 제도 등 각각의 정치 제도들도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점검해야 한다. 중국 공산당이 꿈꿔온 사회주의 정치제도와 민주주의의 완성은 단지 경제의 발전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은 평화를 수호할 수 있는 힘과 흔들리지 않는 국방력을 가져야 한다. 중국 역시 자국의 안전과 평화를 지키기 위해 인민군대의 정비를 이어가고 있다.
중국 공산당의 꿈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중국화된 마르크스주의는 아직 진행형이다. 무력했던 청나라의 황제, 국민을 약탈했던 국민당의 부패는 중국 역사의 치욕이다. 과거의 치욕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중국 정부의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007년 7월 1일. 홍콩. 중국의 근대사 그 격동의 역사를 온몸으로 겪은 장소. 중국 반환 10주년을 맞이한 오늘날의 홍콩은 이렇게 말한다.
“중국 역사의 함선은 1840년의 굴욕의 바다를 벗어났다!”
고 말이다.
2009년 마카오 역시 중국 반환 10주면을 맞이하게 된다.
민족부흥의 여정에서 [2005년 렌잔 타이완 국민당 주석 중국 본토 방문] 일국양제(一國兩制)를 통해 통일을 완성하는 것은 모든 중국인의 염원이자 사명이었다.
2008년이 밝아왔다. 중국은 이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올림픽을 맞이하기 위해 중국은 세계를 향해 두 팔을 활짝 열었다. 중국은 문을 활짝 열고, 한 걸음 한 걸음씩 민족부흥의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어느 나라든 민족의 부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공통된 이상과 신념이 있어야 한다. 중국은 지난 백년간의 고된 탐색을 거쳐 자신들만의 사회주의 노선을 만들어냈다.
오늘 중국의 발전은 역사의 새로운 출발선에 놓여 있다.
중국, 이들이 꿈꾸는 부흥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2007년 10월 15일. 중국 공산당 제17차 전국대표대회가 열린다. 중국의 개혁과 발전에 있어 가장 중대한 시점이었다. 중국의 모든 이들을 새로운 사회주의 사업의 길로 인도하겠다는 포부가 발표되었다.
➡호금도 국가주석 연설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 기치 아래, 등소평 이론과 3개 대표론을 지침으로, 과학발전관을 실천하고 사상의 해방과 개혁개방을 견지하고 과학발전, 사회화합을 추진해 샤오캉 사회 전면 건설을 위해 노력하고 분투합시다!
중국, 그들은 오늘 부흥을 꿈꾸고 있다.
역사의 풍랑 속에 고난을 겪었던 그들은 부흥의 의미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지난 백 년 동안 역사는 다양한 격동의 시기를 거쳐 새로운 궤도에 들어섰다.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 중국은 마르크스주의와 중국 공산당, 사회주의를 선택했다. 그리고 지금 부흥을 꿈꾸고 있다.
제17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와 17기 중앙위원회 전체회의를 통해 새로운 지도부가 탄생했다. 중국의 국민들은 새로운 역사의 출발을 기대하고 있다. 모두가 바라고 있는 샤오캉 사회의 건설과 중국이 꿈꾸고 있는 사회주의 건설은 이뤄질 수 있을까?
새롭게 떠오른 태양은 새로운 희망을 꿈꾸게 한다. 중국의 국민들은 민족의 부흥이라는 위대한 목표를 바라보고 있다.
중국은 2010년까지 GDP를 2000년의 두 배로 끌어올릴 예정이다.
2020년, 공산당 수립 백 주년이 되는 해에는 전 국민의 샤오캉 생활을 실현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21세기 중엽, 신중국 수립 백 주년에 맞추어 중등 선진국 수준의 GNP와 사회 제반시설의 기본적인 현대화를 달성한다!
이것이 중국이 꿈꾸고 있는 미래다.
오늘 중국 공산당의 강력한 리더십 아래 중국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들은 성장하고 있다.
중국은 서방 열강의 침입을 받았던 지난 역사 속에서 교훈을 얻었다.
정치체제와 사상에 대한 신념, 그 힘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그들은 마르크스주의와 레닌주의,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라는 이념을 지켜나가려 하고 있다.
중국은 이제 사회주의의 초급단계에 도착했을 뿐이다. 지난 날 중국 공산당을 선택했던 중국 국민들의 판단을 평가하기에는 아직은 이르다.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시작된 역사.
민족 부흥을 향해 노를 젓고 있는 중국 민족의 함선.
세계라는 바다 속으로 항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