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태하 - 漢字 교육과 국어생활의 正常化

[樂而忘憂]

 

진태하 - 漢字 교육과 국어생활의 正常化

 

文學博士   陳 泰 夏
명지대학교 교수,  한국국어교육학회장

지난 2월 9일 정부에서 발표한 공용문서와 도로표지판의 漢字(한자) 병용정책은 때늦은 감은 있으나, 그 동안 파행적인 문자정책(文字政策)으로 인하여 빚어진 문화위기(文化危機)를 극복할 수 있는 제일단계 정책으로서 국민 모두가 환영하고 실천해야 할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광복이래 50여년 동안 한글 전용정책으로 발생된 문제점들을 대략 열거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一) 한글 전용으로 빚어진 문제점
1. 교육적인 면에서

(1)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이 대학생들도 1800자 이내의 상용한자(常用漢字)가 쓰인 교재도 읽지 못하여, 강의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실정이다.

(2) 우리 나라 모든 도서관에 쌓여 있는 장서(藏書)의 대부분이 한글과 漢字로 쓰여 있는데, 머지 않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없어 모두 사장(死藏)될 판이다.

(3) 위와 같은 현실로써 우리의 전통문화는 급속도로 단절되어 고유문화를 계승발전시킬 수 없는 실정이다.

(4) 대학을 졸업한 뒤, 개별로 한자를 학습하는 고역을 치르지 않고는 직장에서직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형편이다.

2. 실생활적인 면에서

(1) 오늘날 우리 나라 젊은이들이 한자 어휘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글 한편을 자신 있게 쓰지 못하는 실정이다.

(2) 중고등학교 학생은 물론 대학생들까지도 한자가 섞인 신문은 읽기를 기피하고, 한글로 된 신문은 읽어도 그 어휘는 漢字語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 뜻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3) 대법원에서 선정한 인명용 漢字(2,962자)에 따라 이름을 지어도 초등학교만 졸업한 학생은 호적에 올라 있는 자신의 성명을 쓸 수 없는 실정이다.

(4) 대부분 漢字가 섞인 책은 사서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출판사에서는 상업적인 목적만을 위하여 한글 전용 출판을 하고 있으나, 고급지식의 서적은 전문지식인들도 읽기는 하지만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5) 거리명이나 지하철역명 등을 한글만으로 써 놓아서, 읽기는 하여도 그 뜻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매우 답답하고,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 이름도 부호처럼 뜻을 모르고 쓰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애착이 가지 않는 실정이다.

(6) 자기 집안 조상들이 남겨 놓은 귀한 기록물을 읽지 못하여, 천대받거나 마구 버려져 가족문화의 단절을 초래하고 있는 실정이다.

3. 국어순화적인 면에서

(1) 말이 되지 않는 신조어(新造語)가 날로 증가하여, 우리말이 매우 혼탁하여 지고 있는 실정이다.

(2) 장단음을 부정확하게 발음하여, 의미의 혼란을 일으키는 일이 많은 실정이다.

(3) 날로 증가하는 새로운 용어들을 우리말로 처리하지 못하여, 일반 언중들이 잘 이해도 못하는 외래어 홍수 속에 살고 있는 실정이다.

(4) 거리에는 외국어로 된 간판이나 광고문이 범람하고, 잡지 제목도 영문(英文)으로 표기되어 국어순화정책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실정이다.

4. 국제교류적인 면에서

(1) 우리 나라 학생들이 이웃 중국이나 일본에 유학하면, 1년 이상을 기초 漢字학습을 한 뒤에야 정과정에 들어가는 곤경을 겪어야 하는 실정이다.

(2) 관광객의 75% 이상이 漢字 문화권에서 오고 있는데, 거리의 간판이나 도로표 지판이 거의 한글로 되어 있어, 대부분의 관광객이 불편을 느낄 뿐만 아니라,  관광수입에도 막대한 손실을 초래하고 있는 실정이다.

(3) 한자문화권의 국제회의에서 한국의 젊은이들은 필담도 할 수 없어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실정이다.

(4) 한자문화권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데, 우리 한국은 한글 전용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에, 무역이나 문화교류면에서 고립을 자초하고 있는 실정이다.

위와 같이 개략적으로 살펴보았으나, 반세기 동안 한글 전용정책으로 인한 피해가 극심함을 일반인들께서도 인식하게 되었을 것이다.

(二) 한글 전용론자들의 억지

한글 전용론자들은 우리 나라의 문맹률이 5% 이내로 줄어든 것을 내세우고 있으나, 초중고 학생은 물론 대학생들도 자기 집 주소를 올바로 쓰지 못하고, 가장 평이한 문장으로 된 일간신문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현상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부끄러운 실정을 넘어 문화위기의 심각성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문맹률이 크게 줄어들었는데도 왜 이런 현상이 초래되었는지 그 이유를 분석하여 본다.
우리말은 시각성어휘와 청각성어휘로 특수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70% 이상이 시각성 어휘로 되어 있기 때문에, 표음문자인 한글로 써 놓으면 읽을 수는 있어도 그 뜻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예를 들면 ‘아버지’, ‘하늘’, ‘좋다’ 등의 어휘는 귀로 들어서 무슨 말인지 누구나 알 수 있으므로 청각성어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장’, ‘사기’, ‘오니처리장’ 등의 어휘는 귀로 들어서는 무슨 말인지 알 수 없고, 해당하는 漢字로 써 놓아야 시각을 통하여 그 뜻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시각성어휘라고 할 수 있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사장’이라는 말이 사전에 ‘社長․沙場․死藏․査丈․詞章․寫場․赦狀’ 등 25종이나 있으므로 한글로 ‘사장’이라고 써 놓았을 때, 그중 어느 뜻인지 도저히 알 수 없다. 한글 전용론자들은 문맥의 앞뒤로 보아 구별할 수 있다고 억지를 부리지만, ‘그 사장은 매우 큽니다.’와 같이 말하였을 때, 문맥의 앞뒤로도 그 뜻을 알 수 없다. 이럴 때 漢字로 써 주면, 그 뜻이 분명하여지는데 굳이 한글로만 써서 의미의 혼란을 겪어야 할 필요가 없다.

또한 한글 전용론자들은 쉬운 우리말로 고쳐 쓰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위장(胃腸)’을 ‘밥통’으로, ‘비행기(飛行機)’를 ‘날틀’로 바꾸어 쓰면 漢字를 쓸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밥통’이 동물의 위장 명칭으로는 통할지라도 ‘할아버지 밥통이 아프세요?’는 이 말을 만든 사람 자신도 쓸 수 없을 것이다. 언어의 쓰임은 강물길과 같아서 몇 사람의 인위적인 방법으로는 그 사용을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뉴앙스의 차이가 섬세해서 예를 들어 ‘生命’과 ‘목숨’이 얼른 생각하면 같은 말 같지만, ‘生命 보험회사’를 ‘목숨 보험회사’로 고쳐 쓸 수 없는 뉴앙스의 차이가 있다.

부언할 것은 어려운 漢字 어휘를 고유한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것에 대하여 漢字 교육을 주장하는 이들이 막고 있는 것처럼 한글전용론자들이 중상(重傷)하고 있는데, 절대로 그렇지 않다. 예를 들면 ‘이앙기(移秧期)’를 ‘모내기철’로 쉽게 쓰는 것을 막을 사람은 없다. 그러나 농부들 스스로가 ‘이앙기’라는 말도 쓰는 것을 금할 수는 없다. 이 때 젊은이들은 ‘이앙기’라고 한글로 써 놓으면, 읽기는 해도 그 뜻을 모르니, 그에 해당하는 漢字를 교육하여 반문맹이 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 한자교육을 추진하고자 하는 이들의 주장인 것이다.

한글전용론자의 주장중에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이나, 전문지식을 위하여 초등학교 때부터 전국민이 漢字를 배울 필요는 없고, 중고등학교와 대학에서 배우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상식으로도 이해가 되지 않는 큰 착각이다. 어느 나라나 전문지식인은 어려서부터의 지식이 축적되어 점차적으로 양성되는 것이지, 하루 아침에 별도로 양성되는 것이 아니다.

한글전용을 주장하는 이오덕(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 공동대표)씨는 <시사정보>(4월호)지에 “한문글자는 우리말과 우리 민족을 죽이는 암이다.”라는 제목으로 한글 전용을 주장하고 있다. 이 얼마나 가공스러운 말인가! 그러면서도 중고등학교나 대학에서는 한문을 배워도 된다니, 결과에 있어서는 우리말과 우리 민족을 모두 ‘한문’이라는 암에 걸리게 하여 죽이려 하는 것인가? 자신의 이름자도 분명히 호적에 漢字로 ‘이오덕’이라고 기재되어 있는데 그 암은 어떻게 고칠 것인가?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말이란 한 번 뱉어 놓으면 다시 담을 수 없는 것이므로 함부로 떠들면 자신의 인격을 손상할 뿐이다.

어느 나라나 제 나라 말을 배우기 위해서 문자를 학습하는 일은 절대 군주의 권력으로도 막지 못하였는데, 우리말을 더욱 원활히 하기 위해서 漢字를 학습하겠다고 하는데, 초등학교 과정에서는 절대로 漢字를 배울 수 없다고 억지를 부리는 것은 정상 지성인들의 주장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삼척동자도 이해가 안 되는 모순적인 주장을 하는 한글전용론자들의 속셈이 어디에 있는지를 일반국민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곧 2000년부터 시작되는 제7차 교육과정에서는 중학교에서도 漢文 과목이 설정되어 있지 않고, 고등학교에서는 선택과목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우물쭈물 몇년만 지나면, 자연적으로 이 땅의 어느 학교에서도 漢字를 배울 수 없게 되므로, 새로이 추진하고 있는 초등학교의 漢字 교육만을 무슨 수단으로라도 막으면, 그들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음모하에 결사적으로 초등학교 漢字 교육 추진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교육부에서는 중고등학교 한문과목 교사들을 다른 과목으로 대치하기 위하여 연수를 실시하고 있음도 알아야 할 것이다.

(三) 정부의 漢字 倂用(병용) 정책에 대하여

현재 초등학교 교사들 자체가 대부분 漢字를 잘 모르는 세대로 교체되어 몇년만 지나면, 정부에서 漢字 교육의 필요성을 뒤늦게 깨닫고 실천하려 하여도 가르칠 교사가 없어서 불가능하게 된다.

옛날 거대한 청(淸)나라를 세웠던 만주족(滿洲族)이 그 언어의 소멸로 만주족 자체가 멸망하였듯이 문화의 불씨는 한번 꺼지면 소생이 불가능하다는 교훈을 우리 전국민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작년 11월 17일, 종교를 초월하고, 정당을 초월하고, 지역을 초월하여 당대 우리 나라 최고 지성들이 만여명 합심단결하여 초등학교 漢字 교육 추진을 위한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를 결성하고, 구국적인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추진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21세기는 한자문화권이 부상(浮上)된다고 서양의 학자들도 예견하고 있는데, 중국과 일본의 한자문화권 사이에 있는 한국에서 漢字를 배격하고 한글만을 전용한다는 것은 고립을 자초할 뿐, 전연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라의 장래를 책임진 젊은이들이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앞장서서 본 추진운동을 전개할 때에, 우리의 국어생활을 정상화할 수 있고 당면한 문화위기도 극복할 수 있으며, 국제적으로도 고립되지 않을 것이다.

정부의 이번 漢字 병용정책은 반세기 동안 잘못된 문자정책을 올바로 잡을 수 있는 획기적이고도 용단 있는 정책이지만,  漢字를 교육은 하지 않고, 다만 漢字를 병용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초등학교부터 단계별로 漢字 교육을 실시하기 위한 과정으로서 공용문서와 도로표지판에 漢字를 병용할 때, 앞에서 열거한 한글전용으로 빚어진 모든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에서는 초등학교부터 정상 교육과정으로서 漢字 교육이 실시될 때까지 거국적으로 추진운동을 전개할 것을 밝히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