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쌍소 (Pierre Sansot. 1928~2005)
느림의 철학으로 세계인 마음 두드린 프랑스의 지성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수필가.
프랑스 남부의 작은 도시 앙티브에서 1928년에 태어났다.
명문 파리고등사범학교와 소르본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뒤
그르노블대학과 몽펠리에대학에서 철학과 인류학을 가르쳤다.
퇴직 이후 남프랑스의 나르본에서 본격적으로 저술활동을 해온 그는
‘도시의 시학’ ‘공원’ ‘감각적인 프랑스’ ‘가난한 사람들’ 등
15권의 책을 펴냈고, 그 중 1998에 발표한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로
전 세계에 ‘느림’의 물결을 일으켰다. 2005년 ‘아주 사소한, 그러나 소중한’을
집필하던 도중 사망했다. 이후 앙리 토르그 등 제자들이 그가 남긴 유고를 보충해
같은 이름의 책으로 출간했다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그가 이 책을 썼을 때는 은퇴해서 애들도 없고 파리가 아닌
한적한 시골에 가서 전화도 없고 컴퓨터도 없는 시골에 가서
노부부가 산책하며 사색하며 지냈다.
대도시에서 새벽부터 뛰는 사람들은 인생의 의미를
음미하지 못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피에르 쌍소 교수가 이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느림의 미학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첫째, 한가로이 거닐기.
둘째, 경청하기.
셋째, 권태를 느끼기.
넷째, 꿈꾸기.
다섯째, 기다리기.
여섯째, 마음의 고향을 떠올리기.
일곱째, 글쓰기.
여덟째, 포도주 음미하기.
아홉째, 모데라토 칸타빌레.
다시 풀어 쓰면
'첫째 빈둥거릴 것-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것.
둘째 들을 것- 신뢰할만한 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
셋째 권태를 받아들이고 취미를 가질 것
넷째 꿈을 꿀 것-자기 안에 희미하나마 기민하고 예민한 의식을
하나라도 자리잡아둘 것
다섯째 기다릴 것 - 가장 넓고 큰 가능성을 열어둘 것
여섯째 마음의 고향을 간직할 것
일곱째 쓸 것 - 마음속의 진실을 형상화할 것
여덟째 술을 적당히 마시고
아홉째 모데라토 칸타빌레- 절제보다는 절도를 가질 것' 등을
실천하기를 권한다.
그는 삶의 여유와 깊이를 느끼기 위해서는
느림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느림은 게으름과 다르다. 게으름은 목적의식과 의미부여가 없는
시간 흘려보내기, 시간때우기 라면
느림은 적극적인 삶의 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는 세 권으로 구성돼 있는데 그중 1권이 좋았다.
2권과 3권은 내용이 성기고 산만해 읽기 힘들었다.
1권도 다소 지루하긴 했지만 몇몇 크게 와 닿는 내용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몇 문장에선 마음이 설레었고 평소 생각하던 내용을 책으로 만나 반갑기도 했다.
1권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옮겨보았다.
# 느림. 내게는 그것이 부드럽고 아름답고 배려 깊은 삶의 방식으로 보여진다. ...
나는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나이를, 모든 계절을 아주 천천히,
경건하고 주의 깊게 느껴가면서 살기로 결심했었다. ...
독자들은 내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게 될
'느림'이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삶의 선택에 관한 문제라는 점을 곧 이해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 서두르지 않아도 되고, 시간에 쫓기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삶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모든 것이 우리를 서두르게 만들고 있는 이 사회 ... 속에서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절실하게 필요한 과제이다. ...
경험 속에서 볼 때, 느림이라는 태도는 빠른 박자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느림이란 시간을 급하게 다루지 않고, 시
간의 재촉에 떠밀려가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에서 나오는 것이며,
또한 삶의 길을 가는 동안 나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능력과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겠다는 확고한 의지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
내가 삶을 행운의 기회로 여기는 까닭은 매순간 살아 있는 존재로서
아침마다 햇살을, 저녁마다 어두움을 맞이하는 행복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며, ...
또한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에 어렴풋이 떠오르는 미소나 불만스러운
표정의 시작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이 세상이 계속해서 나를 향해 말을 걸어오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삶은 내가 조금씩 아껴가며 꺼내 놓고 싶은 행운인 것이다.
삶. 그것은 마치 파도처럼 넘실거리며 다가오고, 햇살처럼 퍼져 나간다.
그것은 세차게 흘러가는 강물이나 거세게 휘몰아치는 회오리바람이기보다는
섬세한 작은 물방울들 같은 것이다. 그것은 강한 힘이기보다는
부드러운 빛과 같은 것이다. 모든 인류에게 똑같이 부여된 이 삶이라는
특권을 참되게 누리기 위해서, 나는 나만의 위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또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이 세상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무(無)라든가 영원에 가까운 허무 속으로 숨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것은 오직 시간에게 쫓기는 괴로움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 한가로이 거니는 것. ... 그것은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움을 의미한다. ...
한가롭게 걷는 동안에는 물건을 사고 싶다는 소망 없이 자연스럽게
상인들을 응시해도 된다. ... 사실 한가롭게 거닐 때 느끼는 행복은
우리의 시선을 통해 발견되는 것들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걷는 행동 그 자체에서, 자유로운 호흡 속에서,
그리고 아무것도 기분을 거슬릴 것이 없는 시선 속에서 오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이 세상을 누리는 것이 정당한 일이기나 한 듯이
세상 안에서 느끼는 여유로움 속에서 오는 것이다.
# 타인의 말을 듣는 동안엔 최소한 자신의 말은 들을 수 없게 된다.
말하자면 '나의 육체가 하는 말에 귀기울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 사람과 그 말을 진지하게 들으려는 사람,
이 두 사람의 만남은 말하자면 하나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어쩌다 운 좋게 이루어진 것으로서,
미처 기대하지도 못했던 기분 좋은 사건이다.
... 그런 경우는 아주 우연일 뿐이다. ...
듣는 사람은 주의력을 지녀야 하고,
또 들은 내용을 마음에 새겨둘 수 있어야만 한다. ...
무언가를 줄 수 있기 위해서는 솔선하는 태도와 너그러움 마음이
필요한 법인데, 실은 무언가를 받기 위해서도 똑같은 태도와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말하고 듣는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기주의자, 다시 말해서 무언가를 주고받을 줄 모르는 사람은
대화에서도 절대로 들을 줄 모른다고 단언할 수 있다. ...
듣는 사람은 자신의 존재를 잊고 상대방에게 몰입함으로써
오히려 더욱 풍요로워진다. 그리고 주도권을 넘겨받아 급하게
대화의 방향을 몰고 가려는 생각을 접어둠으로써 ...
침묵을 받아들임으로써 색다른 경험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키게 된다. ...
상대방에 대해 불신감 때문 ... 에 그러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우정이란 순식간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설령 서로에 대한 해묵은 이해로 맺어진 사람들일지라도,
만날 때마다 매번 서로의 우정을 새로이 시작해야 한다고 믿는다.
다른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은 상대방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꼭 유념해야 할 점이다. ...
그가 나의 삶, 나의 내부, 나의 영혼 속에 조금씩 파고 들어와서,
마침내 내 삶의 동료가 되어야만 한다는 의미이다.
# 이제 내가 권하고 싶은 권태[게으름이 더 적절할 듯]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그것은 아무런 할 일이 없거나, 그리 급할 것도 없는 일을 잠시 뒤로
밀쳐 놓을 수 있을 때, 느긋한 행복감에 젖어서 기분 좋게 기지개를 켜며
만족스러운 하품을 해댈 수 있는 그런 게으름이다. ...
우리를 가두어 놓는 온갖 것들을 느긋한 마음으로 멀찌감치 서서
바라보며 하품하는 것, 그보다 더 건강에 좋은 것이 어디 있을까. ...
내게 있어서 권태[게으름]이란 세상에 가까이 다가가고,
그 세상을 성실하게 누리고, 다시 세상으로부터 벗어나고,
그랬다가 다시 돌아가 세상의 새로운 맛을 더 잘 느끼기 위해
선택한 삶의 방식이다. 하지만 그서은 언제나 절제된 게으름이여야만 한다.
# 우리는 사랑이 '있을 수 없는 사건'이라는 사실을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또한 그 사건이 내게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더더욱 믿지 않는다.
# 느림은 민첩성이 결여된 정신이나 둔감한 기질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들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다 중요하며,
어떤 행동이든 단지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서
급하게 해치워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흐르는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