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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망이라는 말은 히브리어 ‘샤마’로 ‘목마르다’는 뜻입니다
*.2008년 10월 20일 월요일 오후 문래동 신진에스엠에서 부천으로 오는 길 차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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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5:1-11
우리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동안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 제자들과 같이 동행하시면서 훈련을 시키시고 또 부탁하신 것들이 과연 무엇입니까? 결국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이 세상, 변화를 받아야 하는 이 세상의 일꾼들로 훈련시키시고, 또 훈련시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그 예수님의 제자들은 변화의 장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한 그 변화의 물결은 점점 유대로 사마리아로 이방 지역으로 퍼져 나갔고, 도무지 무너뜨리지 못할 것 같았던 로마까지 결국은 무너뜨리고 변화시켜 나갔습니다. 이 한반도에 복음이 들어온 지도 이제 꽤 시간이 흘렀습니다. 공식선교사가 온 지도 벌서 110년이 넘어섰으니까 말입니다. 고집불통의 영감님들인 이 조선의 사람들이 복음에 의해 서서히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했습니다. 세계 역사 속에서 그리고 우리 한국의 역사 속에서 분명히 드러난 것은 복음은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 개인의 삶 속에서 변화가 있습니다. 사실 깡패로 인생을 살다가 복음을 통해 변화를 가져온 사람, 무당으로 살다가 복음을 통해 변화를 가져온 사람, 주정뱅이로 살다가, 혹은 전혀 쓸모없는 인생길을 걸어가다가 복음을 통해 변화된 사람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복음은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베드로를 부르시는 주님을 보게 됩니다. 그 베드로에게 '이제 후로는 사람을 취하리라'라는 놀랍고 영광스러운 약속으로 제자들에게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명을 부여하시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훗날 베드로는 수많은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놀라게 하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역을 감당하게 됩니다.
그러면 오늘 세상을 변화시키는 그 일꾼으로 부르시는 주님과 그 일꾼 베드로의 모습을 살피며 우리에게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우리가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주님이 기대하시는 일꾼은 어떤 사람입니까?
1.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입니다.(청종하는 자입니다.)
1-3절을 살펴보면 무리들이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말씀을 듣는다'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샤마인데 이것은 청종한다는 뜻입니다. 이 듣는다는 단어에서 여러분 잘 아는 쉐마가 나온 것입니다. 신6장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쉐마라고 부르고 그것을 아주 중요시합니다. 왜 그것을 쉐마라고 부르는가 하면, 신6;5이 우리성경에는 '이스라엘아 들으라'라고 되어 있지만 히브리어에는 '들으라 이스라엘' (쉐마 이스라엘)이라고 합니다. 그 듣는다는 말은 정확히 번역하면 '청종하다' 입니다. 곧 듣고 순종한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주신 중대한 이 명령을 듣고 순종해야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귀로만 듣는 자들을 사용하시지 않았습니다. 청종하는 자들을 사용하셨습니다. 사무엘은 무너져 내리는 이스라엘을 회복시킨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그런데 그가 무엇을 잘 했습니까?
삼상3:1-을 보면 사무엘이 아직 어린 나이에 하나님께 무엇이라고 대답합니까?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이것이 듣기만 하겠다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십니다. 엘리의 집이 멸망할 것을 경고로 주십니다. 사무엘이 자기가 모시고 있는 제사장에게 그 어려운 말을 전달한다는 것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듣는 자는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 청종을 잘 한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위대한 일꾼,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일꾼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역시 무리들과 함께 베드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베드로에게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실 때 순종하는 것입니다.
누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꾼이 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 곧 샤마를 잘 하는 자, 청종을 잘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은 온몸으로 들어야 합니다. 이 어두운 시대에 정말 주님이 기대하시는 일꾼으로 살기를 원하신다면 이 청종을 잘해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정말 순수하리만큼 청종을 잘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찾고 계십니다. 정말 바보같이 보여도 그대로 청종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데 있어서 우선적인 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는 귀입니다. 1-3절을 다시 주의해서 보십시오. 지금 누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1절에 보면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누가는 의사입니다. 당시 과학자입니다. 과학을 한 사람들의 특징은 정확히 기록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새'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새'라고 합니다. 그 누가가 행4:31에서도 뭐라고 기록하는고 하니, 사도들이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라고 합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을 우리 개혁교회는 받아들여 설교하는 자를 가리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역자라고 인식합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도 살전2:13에서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라고 표현합니다. 여러분 말씀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우리 주님이 찾는 이 시대의 일꾼이요, 이 어두운 세상을 밝게 비추는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
요즘 현대 교인들이 왜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이 없습니까? 마치 설교를 에세이 하나 듣는 것으로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곧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는 귀가 없고 그 듣는 귀가 없으니까,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청도 안되고 종도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는 청이 안되니까, 종이 안 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베드로 같은 이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꾼이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에게 샤마, 청종이 잘 이루어져서 좋은 그리스도의 일꾼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자기의 현 실정을 정직하게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5절에서 베드로가 고백하는 것을 우리가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베드로는 실패의 고백을 하면서 '우리가'라고 말을 합니다. 우리 모두가 수고했다는 인식이 베드로에게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개선의 길에는 '내가'입니다. 여러분 <우리가>와 <내가>를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어느 축구팀에서 경기를 했습니다. 전반 45분 후반 45분 얼마나 힘든 경기를 치루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시합에서 졌습니다. 선수들이 보통 어떤 생각을 가지는 지 압니까? '나는 죽도록 뛰었는데 받쳐주는 선수가 없어, ' '내가 아무리 잘 패스를 해 주어도 그걸 연결들을 못시켜' 같이 수고한 것에 대한 인정도 없고, 자기는 잘했는데 다른 사람 잘 못했다는 인식이 언제나 강합니다. 이것이 사역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교회에서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같이 수고했고, 우리가 같이 고민했고, 그런 자세가 없습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한 것이 그것입니다. 부지런히 뛴다고 뛰었는데 별 다른 결과가 없습니다. 어느 날 제가 이런 생각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목사 혼자 그렇게 발버둥치고 뛰면 뭘 해' 그 생각을 하니까 맥이 쭉 빠집니다. 그런데 어느 날 너무 분명하게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 같이 뛰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장로님들은 장로님들대로 교회의 장로로서 얼마나 나름대로 고민하며 애를 썼던가? 권사님들은 권사님들 대로 교회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며 얼마나 애를 썼던가? 집사님들은 집사님들대로 교회의 부흥을 위해 얼마나 고민하며 애를 썼던가? 모든 성도들이 교회를 위해 얼마나 마음을 쓰고 수고했던가?' 하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생각에 이르게 되니까, '내가 이러고 주저앉아 있을 때가 아니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오늘 베드로의 자세는 참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같이 수고했지만 하나도 가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수고를 분명히 인식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내가 이렇게 주저앉지 않고 말씀을 따라 또 순종하겠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아무개 때문에 아직도 이 일이 이 모양이야' '목사님 때문이야, 장로님 때문이야, 어느 집사 때문이야' 그것처럼 부정직한 자세가 없습니다. 카톨릭에서 벌인 운동이지만 정말 좋은 운동이 있습니다. '내 탓이오' 운동입니다.
여러분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다른 사람에 대한 원망과 책임을 전가시키는 곳에는 결단코 소망도 없고 그 사람들은 결단코 사람 낚는 어부 주님이 기대하는 일꾼이 되지를 못합니다.
꼭 기억합시다. '지금까지 우리가 다같이 수고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말씀을 의지해서 내가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제 탓이었습니다.' 이것이 베드로의 고백이고, 그런 베드로를 통해 새 역사를 이루어 가셨습니다. 우리 한번 속으로 제 말을 따라 해보시겠습니까? '장로님, 지금까지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저도 말씀에 의지해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집사님, 지금까지 교회를 위해 얼마나 수고하셨는지요, 이제 저도 말씀에 의지하여 더 수고하겠습니다.'
3.주 앞에 죄인 됨을 아는 사람입니다.
8절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어떤 사람이 주 앞에 무릎을 꿇습니까? 자기가 잘난 줄 알고 사는 사람은 결코 무릎을 꿇지 않습니다. 잘났는데 왜 꿇어요? 그 잘난 대로 살아야지요.
정말 이 베드로처럼 날마다 '주님 제가 죄인입니다. 저는 주님 앞에 설 수 없는 자입니다.' 하고, 분명히 자기 죄를 인식을 하고 무릎을 꿇는 사람은 세상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의 사역을 할 수 있습니다. 바야지드가 자신에 대하여 이야기한 내용입니다. "내가 젊었을 때 나는 혁명가였고, 하나님께 드린 나의 기도는 '주여, 저에게 세상을 뒤엎을 힘을 주소서'였네." "내가 중년에 이르러 내 인생의 반이 덧없이 흘렀음을 깨달았을 때, 나는 나의 기도 내용을 바꾸었다네. '주여, 저에게 나와 만나는 모든 사람을 변화시킬 힘을 주소서'. 지금은 나의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제가 우선 만족해야 되겠나이다." "이제 내가 늙고, 여생을 헤아리게 되면서부터 나의 우둔함을 눈치채게 되었다네. 지금의 내 기도는 '주여, 저에게 저 자신을 변화시킬 힘을 주소서'일세. 내가 처음부터 진작 이런 기도를 했더라면 내 인생을 허송하지 않았을거야."
하나님 앞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처럼 납작 엎드려서 굴복하는 것입니다. 설교자인 저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굴복시키시는 지 아십니까? 한 주간 내내 말씀을 붙들고 씨름을 합니다. 그러나 무엇을 전해야 할지 어떻게 전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시간에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실 때, '아 역시 말씀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구나' 하고 굴복합니다. 마침내 이 말씀들을 주실 때 또 주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됩니다. 이 못난 것 한평생 말씀 주시지 않으면 말씀 사역자 못합니다. 하고 엎드리게 만들더라구요.
결국 설교자로 하여금 한 평생 주님 의지하고 주님이 공급해주시는 말씀을 전하도록 계속 계속 변화를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죄인인줄 알고 내가 무릎을 꿇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 바라볼 시간이 없습니다.
여러분 본문을 자세히 보십시오. 베드로가 같이 고기 잡은 사람들에게 '왜 너희들은 주님 앞에 엎드리지 않느냐?'고 무슨 말을 합니까? 진심으로 주 앞에 무릎을 꿇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바라보고 핀잔 줄 시간이 없습니다. 여러분 먼저 변화를 가져 와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자는 결코 자기 변화를 가지지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이 끝나는 그 시간까지 남의 이야기 할 시간이 사실 없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날마다 변화하기도 바쁘니까 말입니다. 자기는 더러우면서 남을 깨끗하게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이제 여러분 먼저 엎드려 기도하는 사람으로 변하고, 여러분이 먼저 주님 앞에 죽도록 충성하는 자들로, 먼저 사랑하는 자들로 먼저 그리스도를 닮은 자들로 변화되어 이 어두운 세상의 주께서 기대하시고 찾는 그리스도의 일꾼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 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청종이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설교를 들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을 수 있는 귀를 달라고 기도하시고, 그 들은 말씀은 순종하는 사람이 되도록 '지금까지 우리가 다같이 수고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말씀을 의지해서 내가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제 탓이었습니다.' 하는 사람이 되도록 나 자신이 먼저 무릎을 꿇는 자가 되도록,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자는 결코 자기 변화를 가지지 못합니다. 내가 먼저 그리스도를 닮은 자들로 변화되어 이 어두운 세상의 주께서 기대하시고 찾는 그리스도의 일꾼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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