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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을 알아야 농사가 산다
~ 미국 사람이 보는 유기농법~
화학비료는 물론 농약을 전혀 주지 않고 오로지 유기물만 주고 기른 것이 유기농산물이다. 그래서 유기농산물이라 하면 어쩐지 맛도 좋고 안전한 농산물이라는 인상을 갖게 된다. 화학비료라 하면 무슨 독이 들어 있는 것 같고 유기물이라 하면 독이 없고 깨끗하다는 인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이런 선입견이 옳은 것일까? 옳기도 하고 오해도 있다.
우선 '화학비료는 독이다'라는 생각부터가 잘못이다. 화학비료의 원료도 퇴비가 자연에서 나오는 것처럼 자연에서 나온다. 질소비료는 공기 중의 질소와 물에서 얻는 수소를 반응시켜 만들고, 인산비료는 인광석과 사문암(蛇紋岩)이 원료이며, 칼리비료는 암염(岩鹽)처럼 암석으로 존재한다. 특히 칼리비료는 바위를 가루로 만들었을 뿐 천연물 그대로인 것이다.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유기물만으로 농사를 지어 환경도 살리고 안전한 먹을거리도 생산할 수 있다면 퍽 좋은 일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유기물은 물과 양분을 많이 간직하고 공기를 잘 통하게 하며 미생물의 활동을 돕는 등 이로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유기물만으로 농사를 짓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다.
화학비료를 전혀 쓰지 않고 유기물만으로 농사를 짓자면 화학비료와 맞먹는 양의 양분을 넣어주기 위해 엄청난 양의 유기물을 넣어야 한다. 예를 들어 소두엄을 넣는다고 하자. 소두엄에는 질소질이 0.44% 정도 들어 있다. 이에 비해 요소비료에는 질소질이 46%나 들어 있어 소두엄에 비해 1백 배나 높다. 게다가 소두엄은 수분이 80%나 들어 있기 때문에 다시 5를 곱해주어야 한다. 결과적으로는 요소에 비해 약 5백 배나 더 많은 양을 흙에 넣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요소 1kg에 해당하는 질소질을 소두엄으로 넣자면 500kg을 넣어야 하는 것이다. 요소로 10kg 넣으면 되는 것을 소두엄은 5톤을 넣어야 한다는 계산이다. 10kg 정도라면 초등학생도 메고 갈 수 있지만 5톤이라면 차로 날라야 한다. 앞서도 말했지만 유기물은 각종 양분을 거의 다 지니고 있다. 미량요소도 물론 지니고 있다. 그러나 유기물을 대량으로 줄 경우 흙 속에 있는 유기물이 구리나 아연 같은 미량요소를 잡고 늘어져 결핍이 일어날 수 있다.
작물마다 필요로 하는 3요소의 비율은 일정하지 않다. 오이는 질소-인산-칼리를 단보당 30-15-22kg 주어야 하지만, 딸기는 19-15-17kg을 주어야 한다. 주어야 하는 인산질의 양은 같지만 질소질은 오이의 3분의 2만 주어도 딸기에는 충분하다.
또 흙에 따라서 비료의 성분량이 모두 다르다. 인산을 보면 개간지에는 20ppm으로 아주 적지만, 고추밭이나 하우스 흙에는 백 배나 많은 2,000ppm으로 지나치게 많아 골칫거리인 경우도 있다. 화학비료로 준다면 흙 속에 있는 성분의 양을 감안하여 조절할 수 있다. 그러나 유기물로는 조절해줄 수가 없다. 유기물은 질소, 인산, 칼리가 다 함께 들어 있는 복합비료이기 때문에 많이 주면 흙 속의 양분 균형이 깨질 수 있다.
유기물 중에는 질소 성분이 많다. 상대적으로 적게 들어 있는 인산이나 칼리 성분에 맞추다 보면 질소질은 과다하게 들어갈 수밖에 없다. 질소질은 물에 매우 잘 녹아서 지하로 흘러 들어가기 때문에 지하수가 오염되기 쉽다. 계속 퇴비만 주고 작물을 재배하면 작물이 흡수하지 못한 비료 성분들은 흙에 쌓여 염류 농도가 높아진다. 염류장해는 결국 작물의 생육장애를 가져온다.
흔히 화학비료 중에 들어 있는 양분은 해롭고, 유기물 중에 들어 있는 것은 이롭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식물이 빨아먹는 양분의 꼴은 화학비료에서든 유기물에서든 관계없이 다 같은 꼴이다. 질소 성분 중에 우리에게 해로운 질산태 질소는 퇴비에서나 화학비료에서나 똑같은 꼴로 생긴다.
다시 말하자면 몸에 해로운 질산태 질소가 지나치게 많아서 채소 속에 들어가거나 지하수를 오염시키는 것은 유기물만으로 농사를 지을 때나 화학비료로 농사를 지을 때나 똑같이 일어난다.
참고로 미국에서 유기농법의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은 이 방법으로 농사를 지으면 수량이 15~20% 감소된다고 본다. 따라서 화학비료를 써서 얻는 만큼의 수량을 확보하려면 경지면적이 20~40%는 더 있어야 한다. 평지는 이미 모두 경작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경사지를 개간할 수밖에 없다. 경사지를 개간하면 토양의 침식이 많이 일어난다.
유기물을 많이 주면 아연과 구리가 결핍된다. 그래서 비료로 따로 주지 않으면 안 된다.수량이 10%가 떨어지면 소비자 가격은 7~15%가 올라가고, 농부는 20~40%가 오른 가격으로 사게 된다. 유기농법은 일손이 많이 들기 때문에 더 많은 일꾼을 고용해야 하고, 따라서 품삯이 오른다. 일련의 과정에서 생산원가가 올라가고 수출 경쟁력이 떨어진다. 그들은 유기농법을 이렇게 보고 있는 것이다.
흙이 좋아지고, 수량이 많아지고, 저장성이 좋고, 맛과 빛깔이 좋아지는 유기물. 그래서 아름다운 여인, 흙의 보약, 종합 토양개량제 등 수많은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농사를 짓는 데 있어 유기물이 만능이라는 생각은 과학적으로 볼 때 합리적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화학비료가 만능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서양의 과학과 동양의 철학이 만나 새로운 문명이 창조되는 것처럼 과학의 도움을 받아 화학비료와 유기물을 잘 이용한다면 생산자와 소비자, 환경 그 어떤 부분도 손해가 없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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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을 알아야 농사가 산다
~ 마음씨 고운 여자, 유기물 ~
유기물을 사람으로 치면 여자이고, 여자 중에서도 아주 마음씨가 고운 어머니라고 할까. 또는 어여쁜 여인이라고나 할까. 유기물은 전기적으로 음성(-)을 띠고 있는 데다 우리 어머니처럼 모든 것을 포용하고 견디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유기물의 음성적인 성질은 흙의 25배나 된다. 때문에 남자(+)인 양성 성분을 많이 지니고 있다가 식물에 내놓을 수 있다. 또한 해로운 성분은 꼼짝 못하게 붙잡아두기 때문에 뿌리가 해를 피할 수 있다. 흙의 pH가 중성일 때 해가 없지만 산성이 되면 알루미늄, 망간, 철 등이 많이 녹아 나온다. 이 중 알루미늄과 지나친 양의 망간은 뿌리에 독이 된다. 이때 유기물이 있으면 문어발처럼 팔을 뻗쳐 이들을 잡아들여 꼼짝 못하게 한다.
한편 양성(+)인 철과 알루미늄은 음성(-)인 인산비료와 만나 결합해서 인산을 침전시켜 뿌리가 먹지 못하게 한다. 이것을 '인산의 고정'이라고 한다. 그래서 산성인 흙에 인산비료를 주면 중성일 때의 반 정도만 이용된다. 이럴 때 유기물과 함께 인산비료를 주면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아름다운 여인인 유기물이 나서서 철과 알루미늄과 결혼해줌으로써 인산이 식물에게 이용되도록 한다. 철과 알루미늄은 미녀인 유기물 앞에서는 오금을 못 쓰는 바람둥이 남자라고나 할까. 특히 우리 나라와 같이 황토에는 철분이 많기 때문에 인산의 손실이 많은 편이어서 유기물을 주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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