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0장
양의 문과 목자가 되시며 양을 위해 목숨 버린 그리스도, 하나님과 하나이신 분을 믿고 따라가는
축복 (찬송 37장)
화, 2016-3-15
맥락과 의미
요한복음 10장은 9장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9장 41절하고 10장 1절 사이에 새로운 전환 없이 예수님의 말씀이 계속됩니다. 또 19절에 사람들 사이에 예수님을 두고서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분쟁이
일어났다는 표현은 9장 16절에서 피차 쟁론이 되었다는 말과
동일한 말로(스키즈마) 연결되어 있습니다. 또 21절에 예수님이 귀신들렸는가에 대해 논쟁할 때에 “어떻게 귀신들린 자가 소경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느냐” 하며 9장의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신 이야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또 오늘 10장 30절에도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다시 돌로 치려 했다는 것은 8장 59절에 “저희가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과 연결되어 있고 또 10장 39절에
“저희가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로 이어집니다. 8장 마지막의 흐름이9장에서 10장까지
계속 연결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두고서 예수님은 정직하게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거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1.예수님께서 양의 문과 목자 되셔서 목숨을 버려서 우리를 구원하고 인도하심 (1-18절)
9장에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참 목자라고 이야기합니다. 9장에서
날 때부터 소경된 자가 안식일에 나음받은 것에 대해서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어겼다 하면서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그들은
참된 목자가 아니었습니다. 참된 목자인 예수님께서는 날 때부터 소경된 자에게 빛을 주었습니다. 9장에서 행동으로 예수님이 참된 목자인 것을 드러내시고 10장에서는
말로써 다시 설명합니다. 9장에서 하셨던 예수님의 표적이 무엇인지를 설명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두 가지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1절부터 8절에서는 “나는 양의 문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11절 뒤에는 예수님은 “양의 선한 목자다”라고
합니다. 문이 되시고 목자가 되신 것은 일종의 성전 비유와 비슷합니다.
성전이 있고 제사장이 있듯이 예수님은 성전이 되시고 동시에 제사장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배 가운데서만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삶 가운데에서도 인도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양의 문이 되어서 양들이
그 문 안으로 들어가고 문 밖으로 나옵니다.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고 또 예수님 안에서 바깥으로 나와서
다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문으로서 예수님을 통해서 안으로 들어와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11절, 14절에서 “나는
선한 목자다 선한 목자다.” 하십니다. 선한 목자이기 때문에
문으로 한 곳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문을 통해서 예수님 안으로 들어온 사람을 계속 인도해 가십니다. 이제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온 사람들은 예수님의 인도를 따라갑니다. 선한 목자는 삯꾼목자와 다릅니다. 삯꾼목자는 이리들이 와서 양을 찢고 해칠 때 도망쳐 버립니다. 뿐만
아니라 양들에게 피해를 주면서 자기 이익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양들을 위하여서
이리와 싸웁니다. 사탄과 싸워서 구원해 주십니다. 그리고 15절에 양들을 위하여서 목숨을 버립니다.
이 비유 자체가
이미 좀 특이한 비유입니다.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목자는 없습니다. 이 비유 자체가 이미 독특한 목자을 보여줍니다. 이런 말씀을 하시고
얼마 후에 십자가에 달려서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드리실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17절에 예수님께서
목숨을 버리는 것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랑한다고 합니다.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고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내어놓는 것은 예수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가운데서 하나님과 하나 되어서 행하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이 일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뜻에 반해서 강제로 목숨을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18절에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온 세상의 권세를 갖고 자기의 삶에 대한 권세를 가진
분으로서 이 일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께 명령을 받아서 스스로 복종시켜서 목숨을 내어놓으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참으로 겸손한 순종의 표현으로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양으로 오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서 하나님 아버지께 갈 수 있습니다.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선한 목자의 인도를 받아서 살아갑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2.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이심을 가르치셨으나 유대인들은 믿지 않음 (22-42절)
22절에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수전절은 성전을 수리했던 절기라는 뜻입니다. B.C. 165년에
이스라엘에 성전이 혼란했는데 유다 마카베우스라는 사람이 반란을 일으켜서 성전을 다시 재건합니다. 그
날을 기념하는 절기가 바로 수전절입니다. 구약성경 율법에는 나오지 않는 것이고 유대의 역사적인 흐름을
따라서 전통으로 받아들인 절기입니다. 이런 것을 보며 성경에서 규정된 것이 아니라도 우리의 역사 경험을
통해서 어떤 절기를 지킬 수 있는 자유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지금 교회에서 하는 여러 기념일들도
성경에 나오지 않는 것이라도 유익할 때는 할 수 있습니다.
23절에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다니셨다 했는데 이것은 독특한 표현입니다.
계시록 2장 1절에 일곱 촛대 안에 예수께서
다니셨다는 것과 같은 말(페리파테오)입니다. 성전 안에 다니셨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 가운데 지금도 거니시는 것을 상징적으로 미리 보여주는 말입니다. 지금도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말씀을 전하고 들을 때 교회 안에 거니시면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24절에 그때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누군가 정체를 밝혀라 합니다. 25절에
예수님께서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한다” 합니다. 26절에 “너희는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않는다” 하면서 다시 양의 비유를 합니다. 복음이 똑같이 전파되지만은 예수님의
양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양들은 누구도 예수님과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양에게 생명을 풍성히 주십니다. 결코 누구도 아버지의
손에서 예수님의 양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30절에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다”
하는 신비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땅에 있는 목사가 복음을 전할 때 목사를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일하시지만 하나님과 목사가 일치되진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원래 삼위일체 중에 한 분으로서 아버지와
하나이십니다. 이렇게 하니까 31절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보고 돌로 들어 치려 합니다. 32절에 예수님께서 너희들이 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하시면서 34절에 시편 82편 6절을
인용합니다. 시편 82편
6절에서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구약의 말씀의 직분자들을 보고 신이라 했는데 36절에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 하나님께서
특별한 사역을 위하여서 세상에 보내신 내가 아버지와 동등하다 말하는 것을 왜 너희들이 믿지 않느냐 하십니다. 그러면서 38절에 내 하는 일을 보면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인 걸 알 수 있지 않느냐 하면서 예수님께서 하는 일을
들어 예수님과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라는 것을 증거합니다. 38절 후반절에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오늘도
예수님께서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예수님 안에 있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진리를 깨달아 알고 순종하기를 바랍니다. 42절에 이 말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믿었습니다. 우리들에게도
이 믿음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믿고 복종할 일
이 말씀을 전할
때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양이 아니기 떄문에 듣지 못했습니다. 2,000년이 지난 지금 우리 가정에서
이 말씀을 듣고 읽을 때 부활하고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함께 계시면서 아버지와 하나되신 분으로서 우리와 하나 되십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 하나의 이름 안으로 세례 받은 우리는 그리스도와 이미 연합되었습니다. 오늘도 이 말씀 통해서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서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하루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자비로우신 하나님. 그리스도께서 양을 위하여서 목숨을 버리신 은혜 베푸셔서 우리도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으면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 그리스도와 하나 되고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아버지 하나님 나라에 살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이기 때문에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되어서 그 나라 백성되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지금도 예배 가운데서도 삼위일체 하나님과 하나되고 경배할 수 있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가정과 직장, 학교에서 살아갈 때도 선한 목자되신 예수께서
먼저 가시면서 우리 이름을 부를 때 우리가 이 말씀을 따라서 말씀에 순종하며 따라갑니다. 같은 말씀을
듣지만 예수님의 양이 아닌 자들은 많이 배웠더라도 예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우리를 예수님의 양으로
삼아주셔서 그 음성 듣고 살아가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동등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도 그리스도 때문에 하나님이라고 일컬음을 받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이 우리를 통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이 말씀 따라 그리스도께 복종하며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풍성한 생명 누리는 하루 되도록 도우소서. 말과 행동으로 주의 복음 드러내는 삶이 되도록 도우소서.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함께 하시오니 믿음으로 순종하며 따라가길 원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