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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 전체 안에서 보는 계시록 21장
창세기 1장 1절은 우주의 중심과 목적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필요에 의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은 기독교와 이방 종교, 진리와 세상풍속(시대정신)이 갈리는 아주 중요한 기독교 교리의 정수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새 창조 속에서 계획하고 계신 것'이 무엇인지를 첫 창조에 힌트 된 내용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구원을 받은 우리가 신앙생활에서 지향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겠지요? 성경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을 어떻게 기록하고 있습니까?
사43:7에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사60:21에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영히 땅을 차지하리니 그들은 나의 심은 가지요 나의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즉”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인간을 비롯한 천지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에서 그 힌트를 얻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성품이나 신분이나 본질에 있어서는 고정적이지만 그 분은 그 존재가 담고 있는 내용을 발산을 하셔서 그 분의 영광을 그 속에 담으시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방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본체적 영광을 밖으로 발산하시는데 그 영광이 피조물 안에 그대로 담겨서 현시화 된 것이 바로 창조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지혜와 권능과 성품을 나타내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만물을 잘 관찰하면 그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허공은 그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과 성품을 반사해서 현시 할 수가 없습니다. 그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을 현시화 시키기 위해서는 물질이 필요합니다. 그 하나님의 영광을 그대로 담게 하여 존재하게 된 것이 바로 피조물이며 그것이 천지창조의 목적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창조물 안에는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과 성품이 그대로 담겨 있는 것이며 피조물은 언제 어디서나 그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을 목적으로 존재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효과적 영광 혹은 반사적 영광이라고 합니다. 로기온, 말씀을 맡은 자=만물과 사람
-고전10:31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6:20에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계4:11에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그러니까 하나님은 다시는 타락할 수 없으며 강제에 의해서가 아닌,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즉 하나님의 영광을 효과적으로 반사해서 나타내는 피조물들과 영원히 함께 거하시는 그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해, 첫 창조에서 시간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창조하셔서 그 나라를 어떻게 완성하실 것인가를 힌트 하시며, 그 나라를 힌트 하실 뿐만 아니라 그 가시적인 역사 속에서 실현해 나가고 계신 것입니다.
모든 존재하는 것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그곳이 어떤 곳이 되겠습니까?
=모든 존재하는 것들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으로 살며, 하나님의 지혜로 사는 그곳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다른 말로 모든 존재가 '거룩하시고 점도 없고 흠도 없으시며 사랑으로 충만하신 하나님처럼' 살게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산다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산다는 것'은 단순히 로봇처럼 하나님을 자랑하고 목소리 높여 노래하는 그런 유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산다는 말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과 인격과 지혜를 그대로 받아서 그 영광을 반사하며 그 영광에 참여해서 죄가 없는 삶을 살게 된다는 뜻인 것입니다.
그것이 새 창조가 완성된 하나님 나라인 것입니다.
그래서 최초의 인간 아담이 그렇게 엄청난 지혜(창조물들의 이름을 다 지음, 고대 시대에 이름이 갖고 있는 의미는 그 존재의 내용이었음, 그러니까 이름을 짓는 다는 것은 그 존재의내용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뜻)를 갖고 있었고 무죄하게 태어난 것입니다.
아담은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해서 한 지체로 새 하늘과 새 땅에 살게 될 교회의 상징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 아담을 오실 자의 표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실 자는 예수 그리스도이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성도들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사는 것을 목적으로 해서 사는 사람들은
당연히 지금까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았던 삶에서 돌이켜서 자기를 부인하게 되는 것이고, 성경은 그렇게 자기를 부인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을 천국백성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강압에 의해서가 아닌 그들의 인격과 이성 속에서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로 만들어 내시기 위해 역사 속에서 우리 택한 백성들을 설복 시키고 계신 것입니다.
타락을 통해 인간의 한계를 알게 하시고,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인내의 깊이를 알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택한 자들로 하여금 자발적인 순종과 의존의 삶을 이끌어내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야 그 자녀들이 다시는 자의로 타락을 하지 않을 것 아닙니까? 이미 그의 이성으로 타락한 자들의 추악함과 죄가 주는 고통을 충분히 겪었고 하나님을 의존하며 그분께 자기를 맡기며, 하나님의 성품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가를 이미 경험한 자들은 절대 자의로 타락하지 않을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역사 속에서 인간들을 '창조에서 타락으로, 타락에서 십자가로, 십자가에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가시적으로 이끌어 가시며 보여주시는 이유는 바로 그의 백성들의 설복을 위해서 인 것입니다.
엡1:4-6에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 하나님은 우리를 설복하셔서 자발적인 찬미와 순종과 의존을 하도록 하시기 위해 창조를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인간들을 비롯한 천지만물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도록 지어진 것입니다.그리고 완성될 새 하늘과 새 땅에서도 바로 그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제 자리에 있어야 할 것들이 제 자리를 이탈해서 엉뚱한 짓들을 하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에는 관심이 없고 엉뚱한 일들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할 인간들이 자기의 영광을 위해 살게 되면서 인간은 모두 쓰레기를 쏟아내는 추한 존재들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원래의 창조 목적에로 자기의 백성들을 회복시키시는 새 창조가 어떻게 이루어지게 될 것인지를, 다른 말로 그 쓰레기들을 어떻게 청소하시고 어떻게 제 자리로 복귀를 시키시는가를 창조부터 시작해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창조입니다.
우리들은 이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라는 구절의 말씀을 통해서 어떤 교훈을 받으셨습니까?
우리는 이 창세기 1장 1절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관념이나 무인격적인 원리나 힘 혹은 이론 속에 등장하는 허구의 존재가 아니라 실제로 태초 이전인 영원부터 홀로 존재하시는 살아있는 인격이시며 누구에 의해 피조 되거나 종속되지 않는 우주의 근본이요 만물의원인자요 주인이시라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 둘째로 그 분은 '스스로 충분하시고 완전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분은 시간과 공간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 분은 그 전에도 홀로 존재하셨던 분이십니다. 그래서 엄밀하게 말하면 하나님은 누구의 섬김이 필요치 않으신 홀로 충분하시고홀로 완전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도움 없이도 피조물들의 찬양이 없이도 홀로 충분히 완전하며 홀로 충분히 복되신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그 분의 백성을 창조하시고 자기 곁에 두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도록 하신 것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과 사랑에 기인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셔서 우리를 부르셨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에서 어서 벗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해 드릴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맡기시는 일들은 모두 우리의 유익을 위함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 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세 번째로 하나님은 영원히 존재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분은 시간 전부터 존재하셨고 시간 후에도 존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시간 후의 영원에는 우리가 여러 가지 면에서 하나님처럼 되어서 그 하나님과 함께 거하게 됩니다. 이것이 복음인 것입니다.
이 창세기를 쓴 모세는 그 영원하신 하나님을 확실하게 알았습니다.
- 시90:2-4에 “신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3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4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更點) 같을 뿐임이니이다”
- 계4:8에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영원하신 분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그 분의 변함없음과 신실하심을 보여줍니다. 그 분은 영원하신 분이시므로 그 분의 속성과 사역은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분을 신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 천지 만물은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통해 창조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천지 만물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인 새로운 창조를 힌트하기 위해 그리고 그 새 하늘과 새 땅에 거하게 될 그 분의 백성의 양육과 성숙에 필요한 것이고 이 천지 만물은 하나님의 새 창조가 완성이 될 때에 어떤 식으로든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무(無)에서부터 창조하셨습니다.
세상이 창조되어 나온 어떤 선재(先在)적인 물질이란 전혀 없었습니다. 물고기와 새들은 물로부터, 그리고 짐승과 사람은 흙으로부터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흙과 그 물은 무로부터 창조되었습니다.
자연계의 일상적인 능력으로는 무로부터 어떤 사물을 창조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기술공이라 할지라도 일감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무에서 어떤 사물을 창조하는 것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자연을 지으신 하나님은 자연법칙에 얽매이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창조에 있어서는 그 외의 다른 방법으로 어떤 사물이 생겨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영원한 물질을 가정하는 것 이상으로 영원한 정신이신 하나님의 영광에 큰 손상을 주는 것이 달리 또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능력의 고함은 하나님의 것이며, 모든 영광은 그에게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최초의 운동자였습니다. 그는 “수면 위에 운행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혼돈과 공허와 흑암뿐인 곳에 우주와 자연과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동방에 에덴이라는 곳을 창설하시고 그곳에 인간을 두셨습니다.
성경의 첫 구절은 이처럼 아무런 전제 없이 하나님을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성경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하나님이 누구시며, 어떤 분이시며, 어떤 일을 하시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합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시작도 끝도 없으시고, 창조주의 능력을 가지시고 모든 만물의 시작을 가져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원성은 사람들의 정신을 넘어서기 때문에 인간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인간은 시간 속에 그 뿌리를 내리고, 시간의 흐름에 의해서 생을 측정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원성은 그들의 이해 밖에 있습니다.
영원은 무한한 시간이 아니라, 그 시간이 양극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영원은 존재의 다른 차원을 말합니다. 그래서 영원은 하나님께만 속하는 것입니다. 시간은 사건의 연속 체험이며, 피조 된 존재가 겪는 체험들입니다.
우리는 창세기 1장 1절의 말씀을 통해서 만물의 시작은 알 수 있으나 하나님의 시작은 알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시간을 만들어 만물 가운데 있게 하시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신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만약 시작이 있는 분이시라면, 그분도 역시 피조물이시며, 우리는 그분을 존재케 하신 또 다른 분에게, 경배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루아흐/숨, 바람, 영)은 세계 창조에 참여하셨습니다.
루아흐는 “하나님의 영, 사람의 영, 숨, 바람 등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영은 그 창조 시에 분명히 임하셨습니다. 그 영은 어느 곳에서나 능력과 생명과 관련되어 나타나며, 이 두 가지는 창조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의 숨과 같은 영은 이 땅을 덮고 있는 물을 움직이게 하시고, 그 물을 감싸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영은 혼돈의 힘을 가로 막았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창조와 관련하여 나타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 세계는 처음에 아무런 형태도 없이 비어 있었습니다. 어두움에 싸여 있는 두려운 혼돈(토후/형태 없음, 혼돈, 공허, 텅빔)과 물의 깊음(테홈/깊은 물, 바다, 깊음, 심연)은 하나님께 거부적인 세력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그 물 위를 운행하시면서 그곳들을 온전히 다스렸습니다.
생명의 창조자는 창조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성품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질서와 목적을 가지신 분이시며, 자신이 만드신 모든 것들에 방향을 정하시기 위해서 창조된 질서 안에서 행동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곳은 죄가 없는 곳이었고 하나님과 인간이 사랑 속에서 교류하던 곳이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고 순종하면서 살기만 하면 그러한 복된 삶을 영원히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죄가 들어왔습니다.
그곳에 들어 온 그 죄의 정체는 '인간이 절대 상위자요, 최종 권위자이신 하나님께 의존하고 순종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자기가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 스스로 자기 인생의 최종 권위자가 되어, 자기 자신의 힘으로 인생을 살아보겠다는 시도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는 죄의 정의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인간이 원래 하나님 아래에서 복을 받고 살도록 의도되었던 '순종과의존의 삶의 원리' 와 비교해서 힘의 원리' 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러한 힘의 원리' 로 세상을 사는 사람들을 '죄인' 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 죄인들은 모두 '사망'으로 그들의 인생이 결론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한 즉시 그렇게 모두 사망으로 떨어져 버려야 할 죄인들 중에 창세전에 택해 놓으신 어떤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그렇게 죄로인해 더럽게 타락해 버린 이전 하늘과 이전 땅에서 건져내셔서 새 하늘과 새 땅에 집어넣어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내시는 일을 시작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구속사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자기 백성들의 구속의 이야기가 자세하게 적혀 있는 책이 바로'성경' 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최종 목적은 로봇처럼 강제적인 순종을 하는 자가 아닌, 자신의 인격 안에서 하나님께 항복하고 의존하는 자, 다른 말로 이제는 누구의 유혹에도 절대 넘어가지 않으며 타락할 수 없는 절대 순종과 절대 의존의 하나님의 백성을 창조하셔서 하나님이 준비하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이 진정한 왕이 되시고 그분이 택하신 자들이 진정한 그분의 백성들이 되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는 것이 하나님의 최종 목적이신 것입니다.
바로 그 목적의 성취의 장면이 오늘 본문 속에서 그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우주와 역사의 존재 목적이 무엇이라고요??
하나님의 택한 자들이 역사 속에서 인격적으로 하나님께 설복 당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들로 지어지는 데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주와 역사의 존재 목적인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 속에서 하나님은 그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해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을 만들어 내시는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구약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완성이 될 것인지를 반복해서 모형으로 보여 주십니다. 그 첫 번째 모형이 '모세 오경' 입니다. 하나님은 창세기에서 '씨와 땅의 준비를 완료' 하시는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성경에서 제라 ‘씨(씨, 뿌리기, 자산, 소산)라는 단어는 '자손, 후손,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출애굽기와 레위기와 민수기를 통해 씨의 완성의 모형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신명기를 통해 땅의 완성을 모형으로 보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창세기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상징인 '씨 를 어떻게 준비하시지요?
하나님은 갈대아 (카스디/점성가 술객) 우르( 우르, 오르)에서 유래했으며, '불꽃'을 의미)에서 우상이나 만들어서 팔아먹고 있던 아브람이라는 사람을 찾아가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언약을 하십니다.
창12:1-3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아브람으로 말미암아 큰 민족을 이루어서 하나님이 준비하신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시겠다는 언약입니다. 창세기 15장에서 그 언약이 다시 한 번 반복이 됩니다.
창15:1-6에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3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씨(제라/자라, 씨 뿌리다)에서 유래했으며, '씨 seed, 씨 뿌림 sowing, 자손, 소산 offspring')’를 주실 것인데 그 '씨'가 하늘의 별처럼 많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이 그들의 왕이 될 것이라는 그 약속을 어떻게 하시는가 하면,
제물을 쪼개 놓으시고, 그 쪼갠 고기 사이로 하나님이 홀로 지나가심으로써 그 언약은 하나님의 자신에 의해 이루어질 것임을 암시하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애굽에서 400년간 종살이를 할 것임을 예언하십니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그곳에서 거대한 민족이 되어서 하나님의 택하신 땅, 가나안으로 입성을 하게 되는 하나님의 백성들로 준비되어야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준비하신 땅에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임을 또 다시 천명하십니다.
지금 창세기부터 대략적인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은 오늘 본문의 결론이 창세기부터 이렇게 약속 되어지고 있다는 것을 주지시켜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의 시작과 끝을 잘 확인하시라는 것입니다.
왜? 이 역사는 존재하며, 그 역사 속에서 우리들의 인생은 왜 존재하게 되었는가를 잘 정리해 보라는 의미에서 지금 역사의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 내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는 이렇게 어떤 한 가지의 목적을 향해 흘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 창17:2-8에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 3 아브람이 엎드린대 하나님이 또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4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6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좋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좋아 나리라 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아브람에게 주신 그 계시는 하나님은 신실하신 언약의 하나님이심과 다가오는 수년 동안에 그분이 행하실 일과 목적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순간에 모든 사람들을 위한 영적인 계획을 드러내어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변치 않으시는 영원한 하나님의 언약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라에게 이삭이라고 불리는 한 아들을 낳게 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택을 받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가지고 그분께 순종하도록 부르셨습니다. 어린 이삭은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약속의 가족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예정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택하셔서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그분이 친히 우리의 하나님 되심과 동시에 우리가 그의 백성들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은혜를 우리에게 거져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의 은혜에 응답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그의 언약을 지키라고 하셨듯 우리를 불러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순종이 하나님께 제시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와의 관계를 책임지고 유지시키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도적으로 그의 약속을 주시고 그 약속을 지키십니다. (1) 아브라함과의 언약 : 횃불 언약(창15:9-21) - 분깃 언약, 약속의 계약
가나안에 대한 현세적(現世的) 축복과 메시야에 대한 영적 축복을 받았으며(창15:4-5), 믿음으로 의롭다 여겨졌습니다(창15:6). 이는 신약의 성도들도 창대(蒼天) 하여지며 영적 가나안, 즉 천국을 기업으로 받게 될 것을 보여줍니다(롬4:12).
+ 아브라함과의 언약체결은 낙원에서의 첫 언약체결의 목적이,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언약의 주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임이 분명하고 확실함을 나타냅니다. 체결자 : 하나님과 아브라함
내용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겠다.
의미 :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의롭게 된 성도들에게 하늘의 썩지 않을 기업, 즉 그리스도안의 축복을 주실 것을 암시하셨습니다(갈3:9, 엡1:3, 벧전1:4) - 특징 : 하나님께서 횃불 모양의 가시적 형태로 나타나 언약하셨습니다. (2) 할례 언약(창17:10-14) - '침례'의 예표. 쌍무언약*+
체결자 : 하나님과 아브라함 내용 : 태어난 지 팔 일되는 남자아이는 양피를 베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겠다. *
하나님은 계속해서 아브라함에게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하십니다.
그리고는 아브라함의 첫 번째 씨! 자손인 이삭을 주십니다.
그런데 그 이삭이라는 사람은 도저히 인간의 생식 능력으로는 태어날 수 없는 상황에서 태어납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씨, 다른 말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인간의 생식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만 태어날 수 있는 것임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21장 12절에 보면 하나님은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태어나게 된·- 그분은 아브라함과 처음에 맺으셨던 그 언약을 다시 한번 확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신실하다면, 그들에게 축복하시고, 사용하시어 이 세계의 제사장 나라로 들어 쓰신다는 것입니다.
이삭의 자손만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요셉을 먼저 애굽으로 들여보내시고 이어서 야곱의 열 두 아들과 식솔들 70명을 애굽으로 들여보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예언대로 400년간을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게 만드시고 그 곳에서 아브라함의 ‘씨’ 하나님의 백성들을 준비시키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세기의 대략적인 내용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라는 중보자를 시켜서 그렇게 준비된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십니다. 물론 모세는 우리에게 유일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애굽에서 끌고 나오시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지켜야 할 규례 들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은 왕이신 그 분이 명하시는 규례를 다 지켜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시내 산 언약입니다.
출19:3-8에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너는 이같이 야곱 족속에게 이르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라 4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7 모세가 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그 모든 말씀을 그 앞에 진술하니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출하신 분이십니다.
그들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먼저 부르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구출하셨습니다. 주권자 하나님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끊임없이 받도록 하기 위해 그들의 행동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에게는 그럴 권리가 있습니다. 계명은 언약 관계를 다시 약술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명은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킵니다. 우리는 계명에서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제시한 삶의 길과 또 그분과 어떠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해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산 위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적인 행동에는 하나님의 목표가 있고,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들을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그의 구원하시는 행위에 근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 친히 백성을 만드십니다. 매우 오랜 시간에 걸쳐서 다루시면서 그의 백성을 만들어 가십니다. 애굽에서의 체류, 바로와의 대결, 출애굽을 거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손에서 건지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으신 언약은 후에 그의 백성들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된 질서에 따라서 한 언약을 맺으셨고(창9:8-17), 그의 족장들과도 그렇게 언약을 맺으셨습니다(창17:1-21) 그리고 시내산에서는 그의 언약을 친히 애굽에서 구출하신 그의 백성들에게로 확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백성들을 그의 백성으로 만드시기를 원하십니다. 각 약속은 하나님에 대한 나름대로의 책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언약을 맺으신 백성들을 그의 소중한 재산같이 만드시려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특별한 민족이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을 통하여 그의 거대하신 구원사역을 펼치기로 하셨습니다. 언약의 백성은 책임을 지닌 백성들입니다.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언약과 선택의 개념이 특권과 힘보다는 섬김과 책망을 강조한다는 사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그의 소중한 보배와 거룩한 백성, 그리고 제사장 나라로 만드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언약 백성들이 모든 세대에 나서서 다른 민족들로 하여금 그를 알게 하기 원하셨습니다. “거룩하다”는 말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떼어 놓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모든 하나님 백성들은 동일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제사장으로서 이 세상을 향하여 계시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께 헌신하여야 합니다. 우리들은 제사장으로서 증거하고, 가르치고, 예배를 하고, 다른 민족들을 위하여 중보하는 책임을 수락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임무는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알기까지 기도와 증거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증거하는데 있어서 거룩한 삶을 약속하였으나, 그 약속에 따라 행동하지는 못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일부가 되기 위하여 그의 제사장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들은 하나님과 언약관계를 맺음으로써 그 관계 안에서 그들의 삶을 살아야합니다. 그들은 언약이란 조건하에서 하나님은 섬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제자들은 하나님의 목적에 헌신함으로써 출20:1-17에 나타나는 십계명의 기본적인 도덕법으로부터 영적이고도 도덕적인 인도 지침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잘 지키면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그 말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했더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일이 착착 진행되어져 가고 있지요?
마치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아담을 창조하시고 아담에게 선악과는 먹으면 안 된다. 그러면 네가 영원히 복을 받고 행복하게 살게 될 거야 라고 명령하시는 장면을 보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알다시피 아담은 그 약속을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그는 무죄한 사람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습니다.
하물며 이미 죄인이 되어버린 타락한 인간들은 어떻겠습니까? 하나님은 절대 하나님의 약속을 번복하실 수가 없으십니다.
타락한 인간들은 절대 그 왕이신 하나님의 규례를 지켜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하나님의 언약의 내용을 보셔서 알겠지만 그렇게 되면 인간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지금 본 출애굽기 19장에서 24장까지의 내용을 보면 고대 근동의 언약체결에 꼭 필요한 절차가 자세하게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하시는 모습에 이렇게 구체적으로 언약체결 절차를 묘사해 놓은 것은 하나님의 언약은 절대 변개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4절에 보면 '내가 바로 애굽에서 너희를 이끌어 낸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그것이 바로 언약 당사자인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역사적 연관성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가 언약 당사자의 관계 규명입니다. 그것이 19장 5~6절입니다. 세 번째가 그 언약의 중재자가 필요합니다. 그게 7절과 8절입니다. 거기에 중재자로 모세가 등장하지요?
네 번째가 중재자에 의한 언약 당사자의 대면입니다.
그것이 19장 9절에서 25절까지의 내용입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이 만나시지요?
그렇게 언약 당사자가 만나게 되면 거기서 언약 조건이 주어집니다.
그것이 바로 출애굽기 20장에 나오는 십계명인 것입니다.
그 후에 언약 비준 예식이 필요합니다. 언약이 맺어지는 예식 출24:3-8 입니다. · 출24:3-8에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고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4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 단을 쌓고 이스라엘 십이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 5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번제와 소로 화목제를 여호와께 드리게 하고 6 모세가 피를 취하여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단에 뿌리고 7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리매 그들이 가로되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8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우리는 여기서도 하나님 계시의 여러 측면들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그의 제단에서 예배하는 가운데 나타납니다. 직접적인 계시는 모세에게만 주어졌습니다. 어떤 사람도 거룩하신 하나님께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그의 계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선택하신 중재자를 통하여 다가옵니다. 그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전하신 그분의 뜻을 들었을 때 그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때의 계시는 말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들은 또한 기록된 언약의 책을 하나님의 권위 있는 계시로서 받아드렸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삶에 부과된 요구를 담고 있는 계시를 받아 들였습니다. 헌신을 나타내는 언약 의식은 계시에 대한 헌신과 순종의 상징입니다.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뵐 수 있는 자격이 생깁니다. 그러나 그들이 본 것이 정확히 하나님의 모습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묘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시는 예배와 교제와 헌신의 마음을 불러 일으킵니다.
계속해서 남아 있는 중요한 계시는 후에 기록으로 보존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은 그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명령과 언약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행하는 여러 의식들은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헌신을 확인해 주는 것입니다. 그들이 희생 제물을 바치고 제단 위에 그 희생 제물의 피를 흘릴 때 자신들이 하나님께 봉헌되었다는 것을 엄숙하게 선언하는 것입니다.
“언약서”는 언약의 백성들이 따라야 하는 하나님의 명령과 계명들이 담겨져 있는 책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성서의 저자이시고, 주인이십니다.
여러 곳에서 성경은 하나님이 기록했다고 했습니다. (출31:18, 32:16, 34:28, 신4:13)사람들의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성경을 기록하였습니다.
이 사실은 본문의 풍부함을 증진시켜 주고, 사람을 매개로 해서 하나님 자신을 드러내시는 그의 성품을 알게 해 줍니다. 그래서 미래의 후손들이 그 말씀을 읽고, 연구하고, 순종하도록 성경이 지금까지 보존되어 진 것입니다.
이렇게 언약 비준 예식이 치러지고 맨 마지막에 언약 맺음의 축제가 벌어지게 됩니다. 출애굽기 24장 9절 이하를 보시면 모세와 백성들의 대표인 70인의 장로가 하나님과 함께 먹고 마시는 장면이 나오지요? 이렇게 하나님의 언약 조건들을 인간들이 지켜내기만 하면 그 가나안 땅은 영원한 잔치가 지속되는 언약의 땅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언약을 체결하였는데 모세가 그 하나님의 언약 조건인 십계명을 받으러 시내 산으로 올라간 사이에 아래에서 또 다른 언약 체결의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잘 보시면 똑같은 언약 체결 절차- 출32:4-6에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그 고리를 받아 부어서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하는지라.
조금 전에 출애굽기 19장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실 때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건져낸 여호와다' 라고 말씀하심으로 언약 당사자의 역사적연관성을 확인하셨던 부분이 있었지요? 그런데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 금송아지가 자기들을 애굽에서 건져낸 신이라고 엉뚱한 것과 역사적 연관성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지금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조약이 체결 되자마자, 다른 우상과 계약을 맺고 있는 것입니다. 두 당사자가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이미 대면해 있습니다. 금송아지와 이스라엘 백성
5 아론이 보고 그 앞에 단을 쌓고 이에 공포하여 가로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여기도 언약 당사자 간의 중재자가 등장합니다. 누굽니까? 아론입니다) 6 이튿날에 그들이 일찌기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사람들이 금송아지에게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드립니다)
19장에서 하나님과의 언약 체결 장면에서도 피가 뿌려졌었지요? 언약이 체결된 것입니다. 그리고 언약 체결의 잔치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계약을 체결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계약 체결 현장에서 정확하게 같은 절차를 거쳐서 우상인 금송아지와 다시 계약을 맺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계약에서는 자신들이 하나님의 아래로 들어가 순종을 해야 하는 부담이 있기 때문입니다. 순종과 낮아짐과 자기 부인과 자기 비움은 죄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 못하는 금송아지와의 언약 조건은 자기들이원하는 대로 가져다 붙이면 되기 때문에 인간은 우상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타락한 인간은 절대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을 힘과 수단과 방법으로만 쓰고 싶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계약 체결 현장에서 어떻게 우상을 만드는지 볼까요?
출32:1에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아론에게 이르러 가로되일어나라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극적으로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지셨으나 그들은 즉시 다른 신들에게로 눈을 돌렸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고대의 특이한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들도 역시 하나님 대신에 어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대처하기 일쑤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주권자이신 하나님에게만 드려야 할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떼어서 다른 것들에게 향하게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들 가운데 있는 우상과 거짓 신들은 미묘하게 우리의 마음을 좀먹어 들어갑니다. 그것이 비록 미묘하고 작은 것같이 보일지라도 우리가 참되시고 유일하신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나누는 데 치명적인 해를 입힐 수 있습니다.
여기에 정확하게 우상의 정체가 나오지요?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 다른 말로 '나를 위한 신' 그것이 바로 우상의 정체입니다.
우리들이 예배당에 와서 우리들의 소원이나 들어주고 우리들의 문제나 해결해 주는 그러한 하나님을 찾고 있다면 우리들은 지금 우상을 섬기고 있는 사람들이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확실하게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기 백성 만들기는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이름을 위하여 사는 자들에게 찾아가셔서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사는 자들로 만들어 내는 작업입니다.
엡1:4-6에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그런데 여전히 자기의 자랑과 자기의 힘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아직 하나님의 백성이 아닐 가능성이 큰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이름을 이 땅에서 높이시기 위해 일을 하고 계신 분이 아닙니다.
-시23:3에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사43:7에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겔39:25에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이제 내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열심을 내어 야곱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하며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긍휼을 베풀지라”
하나님은 그렇게 자기들의 이름을 위해 우상을 만들어서 이가 우리를 애굽에서 건져낸 하나님' 이라 부르며 섬기던 자들을 광야에서 다 죽여 버리십니다.
그리고 새 사람 60만 명을 여호수아라는 사람을 앞세워 가나안으로 들여보내십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준비하신 가나안 땅에 하나님이 이끌어 내신 하나님의 백성들이 들어갑니다.
이렇게 씨와 땅이 준비된 그곳에 어떤 것이 보태지면 하나님 나라가 됩니까? 왕만 있으면 하나님 나라가 되지요?
왜 여호수아가 가나안에 들어간 후에 죽으면서 후계자를 지목하지 않았지요? 이제 이 땅과 이 백성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하나님 나라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했습니까?
- 삿21:25에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이스라엘을 이끄셔서 하나님이 준비하신 땅에다 넣어주었더니 그들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거절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자기의 이름을 위해, 자신의 자랑을 위해, 자신의 힘을 쌓기 위해 살아가는 타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자들에게 분노하십니다.
- 렘7:23-26에 “오직 내가 이것으로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나의 명한 모든 길로 행하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나 24 그들이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자기의 악한 마음의 꾀와 강팍한 대로 행하여 그 등을 내게로 향하고 그 얼굴을 향치 아니하였으며 25 너희 열조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었으되 부지런히 보내었으나 26 너희가 나를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여 너희 열조보다 악을 더 행하였느니라”
하나님은 하나님을 왕 취급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않으며 오직 자신들의 이름만을 위해 사는 자들에게 대적들의 공격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을 왕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의 왕으로서 그들을 위해 싸워 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분명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하셨습니다.
너의 씨, 너의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게 될 것이고 그들에게 약속의 땅을 주시겠다고 분명하게 언약을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언약을 어기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이 드시겠지요?
그런데 왜 하나님은 그 아브라함의 씨, 자손들을 광야에서 다 죽여 버리시고 가나안 땅에서도 자기의 백성들이 대적들의 손에 속수무책으로 죽게 만드셨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스스로 언약을 깨버리신 것이 아닌가? 이런 질문 안 드세요?
하나님은 이미 인간들이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치 않고 순종치 않을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 '네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게 하시겠다'고 하신 그 언약은 어떻게 된 것인가?
갈3:15-16에 “형제들아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나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하늘의 별보다 바다의 모래보다 더 많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 한 분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언약 조항을 절대로 지켜낼 수 가 없기 때문에 누구도 그 자손 안에 들어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라는 씨 안에다가 창세전에 택하신 그분의 백성들을 모두 집어 넣으셔서 예수 한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리라’라는 하나님의 언약에서 백성은 누구입니까?
예수님 한 분만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인간들에게 기대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창세기 때부터 하나님은 그 분의 백성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분만이 하나님의 언약 조건을 모두 이행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그리고 그 유일한 하나님의 백성 안에 들어간 선택받은 자들이 모두 하나님 앞에 '예수'로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새 언약' 인 것입니다.
우리들이 잘 알아두어야 할 것이 ‘새 언약' 이라는 것은 옛 언약이 실패했기 때문에 또 다른 새로운 언약이 등장했다는 의미에서 ‘새 언약' 이 아니라 그 옛 언약의 실체=진의가 밝혀졌다는 의미에서 '새 언약'인 것입니다.
- 창3:15에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여기서 여자의 후손 이라고 번역이 된 그 단어도 제라=씨, 씨 뿌리기,자손, 소산.
하나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그 ‘씨' 만이 마귀를 밟고 승리할 것이고 그 '씨' 안에 들어가 있는 자들이 모두 승리자가 될 것이라는 약속을 창세기 3장에서 벌써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약의 모든 사건들과 구약의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그 새 언약이 왜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전체의 내용을 에스겔서 36장이 이렇게 요약을 해 줍니다.
36:22-28에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23 열국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은 이름 곧 너희가 그들 중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로 인하여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열국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24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서 취하여 내고 열국 중에서 모아 데리고 고토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 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26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열거하여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의 삶 가운데 내주하실 때에야 우리는 순종의 길어 들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와 에스겔은 예루살렘의 몰락 후에 소망의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렘31:31-34). 그들은 하나님께서 어느 한 때가 이르면 그의 백성들을 회복하시리라고 예언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회복하심에는 그 성의 외양만이 아니라 영적인 갱신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구속사를 우리들이 우리들의 인생으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인생을 통해 ‘나는 정말 불가능하고 더럽고 추한 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고 절대 나의 힘으로는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라는 하나님의 언약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자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불가능한 나를 유일한 씨, 자손, 하나님의 유일한 백성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 넣으셔서 하나님의 백성 삼으시고 저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하셔서 하나님의 언약 속으로 넣어주신 그 하나님만을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동안 그토록 위하고 아꼈던 힘을 추구하던 옛 사람, 육신, 그리고 그, 더러운 육신들이 토해 놓은 세상 역사 자체를 부인하고 미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겔36:29-32에 “내가 너희를 모든 더러운데서 구원하고 곡식으로 풍성하게 하여 기근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게 할 것이며 30 또 나무의 실과와 밭의 소산을 풍성케 하여 너희로 다시는 기근의 욕을 열국에게 받지 않게 하리니 31 그 때에 너희가 너희 악한 길과 너희 불선한 행위를 기억하고 너희 모든 죄악과 가증한 일을 인하여 스스로 밉게 보리라 32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닌 줄을 너희가 알리라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 행위를 인하여 부끄러워하고 한탄할지어다”
우리가 그토록 기대하고 있던 인류의 역사가 어떻게 결론이 날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이후에 복음으로 말미암아 폭로되는 역사 속에 젖어 있는 더러운 옛 사람을 미워하고 버리게 되는 것이며, 새로움 몸과 새로운 세상을 기대하며 소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은 이렇게 지금까지 자신의 힘으로 여기고 있던 하나님 이외의 모든 것을 부인하고 미워하며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께만 순종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그곳을 천국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계시록 21장이 바로 그 천국이 완성되는 장면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곳에는 찬양만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요?
첫댓글 목사님 !!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의 말씀이 요약되어진 말씀으로 깨달아지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사님의 자료들로 제가 계속 만들어지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