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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 55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 휴양지 팍상한과 따가이따이
*칠천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필리핀
그동안 시간적인 또는 금전적인 이유로 외국 여행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태국 여행 이후에 여행에 대한 유혹이 나날이 증가했다. 여행 중독이란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필리핀 여행이다. 패케이지 여행의 가격이 매우 저렴했다. 그리고 3박 4일의 일정도 부담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떠나게 된 것이 2002년 8월 초였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필리핀에 대해 대충 알아보았다.
필리핀은 아시아대륙 동남부 태평양과 남중국 사이에 있는 섬나라. 면적 30만 평방. 인구 8500만의 나라다. 타이완과 보르네오 섬 사이에 있다. 국토는 약 7100여 개의 섬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가운데 대부분이 이름 없는 작은 산호초다. 사람이 사는 섬은 약 천여 개. 필리핀에서 대표적으로 큰 섬은 루손과 민다나오이다. 그 외에 11개의 큰 섬이 있다. 루손과 민다나오를 합친 면적이 전 국토의 70%를 차지한다.
섬의 지형은 대체로 산이 많고, 해안 저지대에 약간의 들판이 있다. 농경지는 별로 많지 않다. 필리핀 군도의 섬들은 환태평양 화산지대에 속하기 때문에 지진이 자주 발생하고 화산 활동도 활발하다. 화산 덕택으로 아름다운 산과 호수가 많다. 특히 이 나라 최대의 섬인 루손 섬의 마욘산은 원뿔형의 활화산으로 무척 아름답다. 열대몬순기후에 속하여서 사철 따뜻하고 비가 많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건기와 우기의 교체기가 뚜렷하다. 섬의 동쪽에는 12월부터 이듬해 2월에 걸쳐 비가 많이 내리고 서쪽에서는 6~11월에 비가 많이 내린다. 태풍이 연평균 19개나 되어 매년 큰 피해를 입는다.
근래에 발표된 필리핀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4600달러. 심한 소득격차로 빈부의 차가 심하다. 특히 농촌지역은 노동력의 과잉에다가 1인당 생산성도 낮은 편이어서 빈곤하다. 농업으로는 쌀·옥수수 등이 재배면적의 65%를 차지하며, 나머지가 코코넛·사탕수수·바나나· 마닐라삼·담배 등이다. 농촌의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서 농지의 분배 등이 국가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필리핀의 사회적 특성의 하나가 가족혈연관계이다. 모든 사회적 관계는 가족혈연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가족형태는 부부와 자녀들로 구성되는 핵가족이 일반적이지만 친족관계와 얽혀 있어서 복잡하다. 대표적인 것이 의례형제제도와 의례적 친자관계이다. 그러니 의형제로 맺어진 경우와 의부모로 맺어진 경우가 모두 혈족의 형태가 되어 끈끈하게 밀착관계가 되는 것이다. 필리핀 기업의 대부분이 친족회사의 형태를 취한다.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도 연고자를 쓰는 족벌주의가 심한데 이런 가족혈연 관계가 한 몫을 하는 셈이다.
필리핀의 종교는 16세기 후반에 스페인의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 들어온 카도릭이 중심이다. 국민의 85% 이상이 카도릭 신자다. 그 밖에도 그리스도교계, 이슬람계, 기타로 나뉜다. 외래의 종교가 도래하기 이전의 필리핀 주민의 종교는 정령신앙(애니미즘)이었다. 오늘날에도 산악지대에 사는 소수민족은 정령신앙을 가지고 있다.
교육을 매우 중요시해서 교육에 대한 열의가 크다. 현재의 학제는 초등교육 6년, 중학교육 4년, 대학 4년으로 되어 있으며, 초등교육 6년간은 의무교육이다. 90% 이상의 사람들이 초등·중등교육을 받고 있다. 언어 교육이 매우 큰 문제로 되어 있다. 초등학교 1, 2학년 때는 지방어로 교육받고, 동시에 국어인 필리피노를 배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3학년 이상이 되면 영어와 필리피노가 교육용어가 되며, 상급으로 올라감에 따라 영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다. 중등교육기관 및 대학에서는 거의 영어로 수업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교육용어 문제가 국가적 과제로 되어 있다고 한다.
*수도 마닐라
마닐라는 필리핀 행정의 중심이며 동시에 산업, 문화의 중심지다. 마닐라시는 엄격히 말하면 ‘메트로 마닐라’라는 수도권 행정단위 중의 한 지역이다. ‘마닐라’의 명칭은 마닐라의 중심을 동서로 흐르는 파시그 강에 '니라'라고 하는 식물이 많이 있는데 '니라가 있는 곳'이란 의미에서 만들어진 말이라고 한다.
메트로 마닐라는 크게 3개의 영역으로 나뉜다. 마닐라 시내를 관통하는 파시그 강을 중심으로 강의 남쪽은 마닐라시의 중심으로 리잘공원, 스페인 시대의 거리 인트라무로스, 주택가가 있는 파크, 공항이 있는 파사이, 고급스러운 주택지가 있는 파라냐케, 그리고 대형 은행, 오피스, 고급 호텔, 쇼핑센터가 있다.
강의 북쪽지역은 시장이 있는 키아포, 차이나타운(비논도), 학생가인 산타로사, 빈민촌이 있는 톤도, 조금 북쪽에는 모뉴멘트와 나보타스가 있다. 이곳은 마닐라의 참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서민거리다. 각종 범죄의 우려 때문에 최근 외국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다고 한다.
남쪽의 마카티에서 엣쨔를 따라 북쪽으로 가면 퀘손시가 있는데 전쟁이 끝난 이듬해부터 1976년까지 필리핀의 수도였던 곳이다. 길이 비교적 깨끗하고 넓으며 숲이 우거져 있어 한적한 분위기다. 필리핀 국립대학이 이곳에 있다.
우리가 숙소로 정한 호텔은 리잘공원과 연접되어 있어서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곳이었다. 넓은 공원의 숲길을 아침저녁으로 산책할 수 있었다. 날씨가 더워서 많은 사람들이 공원의 숲 그늘에 모여 앉아 쉬고 있었다. 밤에도 집 없는 노숙자들이 이 공원에서 잠을 자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수백 명의 마닐라 시민들이 이곳에 나와서 산책을 하거나 조깅을 하기도 하고 가족끼리 소풍을 즐기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 리잘공원(Rizal Park)은 마닐라만에 인접해 있는 10만평 규모의 공원으로 필리핀의 국부로 추앙 받는 호세 리잘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고 한다. 공원내에는 12m 높이의 리잘 기념탑이 있으며 국경일이나 외빈 방문시 헌화행사 등이 개최된다. 호세 리잘(1861~1896)은 의사이며 과학자로 스페인에 유학, 1892년 귀국하여 “필리핀 민족동맹”이란 단체를 조직, 스페인 식민 당국에 민족주의적 비폭력 저항운동을 전개한 필리핀의 대표적 애국 영웅. 1896년 반식민 폭동 공모혐의로 체포되어 1896.12.30 처형되었다. 처형되기 전날 ”나의 마지막 작별“이란 시를 써 필리핀 민족주의를 크게 고취한 인물이기도 하다.
리잘 공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인트라무로스(Intramuros)의 성곽을 볼 수 있었다. 인트라무로스란 '성안의 도시‘란 뜻으로서 둘레가 약 3.7Km에 이르는 성벽으로 둘러 싸여진 작은 도시인데, 스페인이 필리핀을 점령한 1571년부터 외적이나 원주민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고자 성벽을 쌓고 그 성안에다 길을 닦고 성당이며, 주택, 공공건물 등 작은 도시를 만들어 행정, 상업의 중심지로 건설하였다. 성안에는 약 300여 년 동안 필리핀을 지배했던 스페인 총독관저며, 산 어거스틴 성당, 산티아고 요새, 그 밖에도 당시에 건축된 크고 작은 건축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2차대전 중 미군의 폭격으로 성곽구조 상당부분이 파괴되기도 하였지만 여전히 옛 성곽도시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어서 연중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필리핀 국립박물관도 관광의 필수 코스다. '필리핀 국립박물관'은 리잘공원 북쪽 '부르고스 거리‘에 있는 옛 국회의사당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 이곳에는 약 25,000년 전에 필리핀에 살았던 걸로 추측되는 '타본인'의 유골이 전시되어 있다. 기원전 800~900년경에 필리핀 원주민들이 사용했던 배를 비롯해서 선사시대의 유물들이 진열되어 있다. 스페인 식민지시대 이전의 이슬람 문화재와 민간공예품과 더불어 근세의 유명한 필리핀 화가들의 작품도 있어서 필리핀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살필 수 있다.
산 어거스틴 교회는 1587년부터 1606년까지 20년에 걸쳐 지어진 필리핀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다. 마닐라 지역을 휩쓴 다섯 번의 대지진과 2차 대전 중 미군의 포격으로 인트라무로스내의 대부분의 건물들이 파괴되었는데 이 교회는 그런 재앙에도 불구하고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유일한 건축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일명 '기적의 교회'로 불리고 있다. 크고 웅장한 교회의 창은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었고 내부에는 수백 개의 촛대와 성모 마리아상이 조각되어 있다. 제단 왼쪽 예배당에는 초대 스페인 총독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고, 교회의 오른쪽 반은 '산아구스틴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산티아고 요새는 인트라무로스 북서쪽 끝부분 파식강 기슭에 있다. 이곳에선 마닐라만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 이곳은 파식강 입구에 위치하고 있어서 마닐라를 방위하는 전략상의 요충지이다. 스페인군이 인트라무로스 성을 축조하면서 바다쪽으로부터 성을 방어하기 위해 지금의 형태로 축조하였다고 한다. 이곳은 스페인의 지배시대는 물론 미국의 지배하에서나 잠시 일본의 점령시기에도 전략상 요충지대로 취급되었다.
나용 필리피노(Nayong Pilipino)는 필리핀의 민속촌이다. 약 14만평의 초지 위에 필리핀 원주민들의 전통과 문화를 한눈에 살필 수 있게 재현해 놓은 곳으로 마닐라 국제공항과 국내선 공항 사이에 위치한다. 필리핀을 대표하는 여섯 지역인 타갈로그, 비콜, 코딜레아, 일로코스, 비사야, 민다나오지역의 생활양식과 가옥형태를 관찰할 수 있다. 그 외에도 필리핀 수중생태계를 잘 표현한 미니수족관, 필리핀에 서식하는 각종 새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조류관, 50종이 넘는 희귀 난초를 전시한 난초전시관이 있다.
차이나타운은 중국인들이 거주하는 거리다. 파식강 북쪽 지역에 한자로 된 간판이 많이 걸려 있는 거리가 나온다. 이곳은 하루 종일 중국 고전음악소리가 들리고 거리마다 중국을 느낄 수 있게 하는 특이한 향내가 풍긴다. 조금은 지저분하지만 생동감 넘치는 지역이다. 이곳에서 옛 스페인식민지 시대 때의 육중한 돌로 지어진 건출물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말라카냥궁은 타갈로그어로 “귀족의 집”을 뜻한다. 1700년대 개인 별장으로 건축되었으며, 1847년부터는 스페인 총독의 하계 관저로 사용되었다. 1863년 인트라무로스내 총독 관저가 파괴됨에 따라 이후는 총독의 공식 관저가 되었다. 1946년 독립 후에는 매뉴엘 퀘손 초대 대통령을 포함하여 9명의 역대 필리핀 대통령들이 관저로 사용하였다. 1986년 취임한 아키노 대통령과 그 이후의 대통령들은 이곳을 시민 박물관으로 개방하고, 국빈만찬 및 정기 각료회의 등 공식 행사장소로 사용하였다.
*팍상한 폭포(Pagsannjan Waterfall)와 따가이따이(tagay tay)
메트로 마닐라를 관광하는 대부분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곳이 팍상한 폭포와 따가이 따이 화산이다. 팍상한 폭포는 마닐라에서 약 2시간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라구나(Laguna)주에 속해있는 팍상한이라는 지역에 있는 폭포다. 이 폭포는 마닐라주변에서 가장 큰 막타피오강의 상류에 있다. 그래서 카누를 타고 물을 거슬러 올라야 한다. 그렇게 폭포에 접근하는 방법이 특이해서 많은 관광객이 몰린다.
강의 중심 마을인 팍상한타운에는 배를 타는 여러 선착장이 있다. 각 선착장에는 2-3명이 타도록 고안한 카누가 늘어서 있다. 카누마다 두 명 정도의 원주민 뱃사공들이 소속되어 있다. 관광객이 짝을 지어 카누에 오르면 2명의 원주민 사공이 앞뒤에서 노를 저어 강을 거슬러 오른다. 그러다 좁은 협곡이 나오게 되면 이 곳에서부터 배를 사람의 힘으로 강제로 끌고 올라간다. 그러다가 큰 바위들이 있는 곳에서는 아예 카누를 통째로 들고 올라가기도 한다.
이렇게 한참을 가다보면 주변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정글이 나온다. 대낮에도 컴컴할 정도다. 협곡과 정글을 통과하면 바로 웅장한 물소리와 함께 높은 절벽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폭포가 나온다. 폭포의 높이는 약 90m. 물의 양이 많아서 장관을 이룬다. 폭포의 물줄기가 쏟기는 바로 뒤쪽 절벽에 ‘악마의 동굴’이라고 이름 지은 동굴이 입을 벌리고 있다. 동굴안을 구경하기 위해서는 추가 요금을 내고 손으로 잡아끄는 대나무 뗏목을 타야한다. 그렇게 폭포의 물줄기속으로 들어가 물을 맞으면 행운이 온다고 하여 관광객들은 대나무 뗏목으로 갈아타고 폭포 밑으로 이동하여 폭포수를 맞는 체험을 하게 된다.
팍상한 폭포 투어에 걸리는 시간은 총 2시간 30분 정도. 이곳은 필리핀 7대 절경 중의 하나라고 알려져 있다. 근래에 이곳은 국내외의 수많은 영화촬영의 장소로도 유명세를 타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킬링필드" ,"풀래툰" ,"지옥의 묵시록", "여명의 눈동자" 등이 이곳을 배경으로 촬영했다고 한다.
팍상한 폭포 투어에서 가장 신경이 쓰이는 부분은 팁 문제다. 가이드는 뱃사공 1인당 1달라로 제한했다. 자신들이 이미 수고료를 계산했고 관광객들이 개별행동을 하면 나중 사람들이 곤란하다고 했다. 그러나 카누를 밀고 올라가는 앙상한 체구의 소년이나 뼈마디가 드러나는 노인의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워 가이드 몰래 더 쥐어주게 된다. 그런데 이것이 다른 사람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되어 여러 뒷말이 생기게 된다. 가난이 죄라는 말이 있다. 강을 거슬러 오르는 새로운 방법은 없을까를 생각하게 한다.
따가이 따이(tagay tay) 트레킹도 필리핀 관광의 백미다. 이곳은 아직도 활동하는 활화산이다. 이 화산은 따알호수 안에 형성된 이중식 화산구조다. 1572년 처음 폭발을 시작한 이래 현재 33번의 폭발을 기록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1911년에 일어난 화산은 천여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현재도 작은 분화구에서는 여전히 연기가 나오고 있다.
이 화산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화산 중의 하나라고 한다. 높이가 해발 600m에 이르는 고지대여서 기후가 서늘하고 화산의 경관이 뛰어나서 신혼여행지로도 유명하다. 수억 년 전 화산이 폭발한 뒤 길이 25km, 폭 18km에 이르는 따알호수(Taal Lake) 가 형성되었고, 1977년 다시 화산 폭발이 일어나 화산 분화구 안에 다시 작은 분화구가 생긴 것이다. 새로 형성된 중심 분화구를 ‘따알 화산’이라고 하는데, 현재도 주기적으로 폭발이 일어나 화산학자들이 화산활동을 관찰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이 화산을 구경하기 위해서 배를 타고 따알 호수를 건넜다. 그리고 먼지가 푸석푸석 날리는 언덕위로 말을 타고 올라가야 했다. 중심 분화구 안에서 연기가 솟아나는 호수를 보기 위해서였다. 관광객들이 타는 말들은 대부분 마르고 허약해 보였다. 그런데 그 말을 모는 소년이나 노인, 처녀아이들마저도 말과 비슷할 정도로 비쩍 마른 몸매였다. 그런데 관광객 대부분은 건장한 체구였고 특히 나의 경우 80kg가 넘는 거구인지라 내가 타는 것과 더불어 말이 맥없이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거기에다 말몰이 인부도 함께 타야하니 말이 얼마나 힘들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려쬐는 태양에 말이 진땀을 흘리는 것 같았다.
그것을 보는 내 마음도 진땀이 났다. 말은 금방 쓸어질 것 같이 비척이면서도 언덕을 뚜벅뚜벅 올랐다. 마침내 정상에 오르자 깊은 한 숨이 쉬어졌다. 걷기에는 먼 거리였고 그러니 어쩔 수 없는 체험이었다. 여기서도 팁이 문제였다. 가이드는 팁은 단체로 해결했으니 따로 주지 말라고 특별히 당부했다. 그리고 정 보기에 딱하면 콜라를 한 병씩 사주라고 했다. 필리핀인들은 콜라를 엄청 좋아한다는 것이다. 가이드의 말대로 콜라 한 병을 사주었더니 마부들은 곧바로 구멍가게로 가서 그것을 돈과 도로 바꾸는 것이다. 그렇게 좋아하는 콜라지만 또 때양볕에 목이 마르지만 그들은 돈이 필요했다. 그런 모습을 보니 처음부터 돈으로 줄 것을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멍가게에서 백프로로 환불해주지 않는 것 같아서였다.
따알 호수를 바라볼 수 있는 언덕에는 전망대도 있고 관광객 상대의 약간의 상점도 있었다. 따가운 날씨였지만 바람이 제법 불었다. 전망대엔 화산을 감상할 수 있는 망원대도 설치되어 있었다. 따알 호수의 관광객을 맞이하기 위해서 그 일대엔 골프장, 호텔, 식당 등이 갖추어져 있었다.
*아름다운 자연과 기찻길의 빈민가
필리핀의 자연은 참으로 아름답고 풍요로웠다. 어디에나 수목이 우거지고 농작물이 잘 자랐다. 파인애플 농장. 바나나 숲. 맑고 청명한 날씨. 그러나 가난이 줄줄 흘렀다. 자동차 도로 옆에는 작은 구멍가게들이 늘어섰고 상점의 간판엔 으레 펩시콜라 선전광고가 함께 있었다. 펩시콜라 회사에서 상점의 간판을 만들어주는 대시 펩시콜라 광고도 함께 사용했기 때문이다. 필리핀 사람들은 콜라를 좋아한다고 한다. 미국식민시대에 미국사람들이 길들여 놓은 것이다. 그래서 필리핀 사람들은 대부분 치아가 삭았고 치과병원의 신세를 져야 했다. 필리핀에 치과가 발달한 이유라고 한다. 거대 자본주의가 식민지를 약탈하고 다스리는 비도덕적 방법엔 이런 것도 있는 모양이다.
필리핀의 역사는 외세 침략의 역사다. 그리고 내란의 역사다. 필리핀은 1521년 마젤란에 의해 발견되었고 1565년부터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었다. 식민지 이전 시기에는 다투(datu)라는 부족장과 그 가족, 자유민(평민), 노예의 3계급으로 구성된 부족단위로 자립생활을 하였다. 부족단위의 규모는 보통 30~100명 정도로 구성되었는데, 큰 항만이나 교통 요지에는 2천에서 1만 명 이상의 마을도 있었다고 한다.
1571년 스페인은 마닐라를 필리핀 주도로 정하고 지방행정 제도를 개편하였으며, 종교를 가톨릭으로 강제 개종시켰다. 주민 경제생활은 인두세·강제노동 등을 통한 수탈로 피폐해진 반면, 스페인인들은 중국계 상인과 결탁하여 갤리선 무역, 잡화업무에 의해 부유해졌다. 스페인이 지배한 곳은 루손섬과 비사얀제도의 평지였다. 그들은 산지와 남부를 정복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특히 남부 이슬람지역에서는 술탄국가가 성립되어 3세기에 걸쳐 전쟁을 치르기도 하였다.
1834년 마닐라항의 개항과 1869년 수에즈운하의 개통으로 수출이 급격히 증가하였으며 국민의식도 깨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스페인의 지배에 무력으로 저항하기 시작했다. 1898년 아기날도를 수반으로 하여 독립이 선언되고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공화국이 탄생하였다. 그러나 그해 12월 혁명군 지원이라는 명목 아래 개입한 미국이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자 필리핀은 1902년부터 미국 지배를 받아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1946년 4월 총선거가 실시되어 M. 로하스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7월 독립하였다. 그러나 반란의 연속으로 정치적으로 혼란하였다. 1953년 R. 막사이사이가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안정기로 접어들었다. 이후 가르시아와 마카파갈의 정권을 거쳐 1965년 마르코스가 대통령이 되었다. 마르코스는 경제개발을 목표로 내세워 외자도입·공업화·농업개발·토지개혁 등을 추진하여 국가의 발전에 공헌했지만 점차로 장기집권을 시도하고 계엄령을 선포 하는 등으로 독재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장기집권에 따르는 독재정치의 모순, 부정부패. 정치 폭력 등으로 얼룩진 필리핀은 여러 차례의 민중봉기와 군부 쿠데타를 겪어야 했다. 1986년 아키노 여사의 대통령 취임, 1992년 라모스 국방장관 대통령 당선. 2001년. 아로요 대통령의 취임 등으로 필리핀은 점차 정치적 안정기로 접어들고 있다.
필리핀의 빈곤을 가장 잘 대변하는 것이 수도 마닐라의 중심 시가지에서 교외로 수십 킬로 이어진 기찻길 풍경이다. 기찻길 주변으로는 수만 채의 판자집들이 무질서하게 지어져 있고(아마도 주인 없는 땅이어서 가능했으리라) 기찻길은 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공놀이를 하고 숨박꼭질도 하고 어른들은 이곳에 빨래를 널어 말리고 기찻길 선로에 걸터앉아 환담을 나눈다. 기차는 멀리서부터 경적을 울리며 속도를 늦춘다. 그래서 철로변에서 놀거나 잡담하는 사람들이 다치는 일이 없도록 서서히 다가온다.
이런 기찻길 풍경이 마닐라 도심지에서 수십 킬로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한 때 철로변의 빈민가를 철거하려고 했지만 빈민들의 집단적인 저항에 부딪쳐 철거를 유보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들 빈민가를 도심의 사람들이 볼 수 없도록 높다랗게 담장을 쌓았다. 그렇다고 그 남루가 가려질 수 있을 것인가?
필리핀은 한때 동아시아에서 가장 안정적이며 부유한 나라였다. 필리핀은 한국의 6․25 전쟁 때 참전하여 우리를 도와주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방문하여 원조를 부탁했다가 거절당한 일화도 있다. 그렇게 잘 살던 나라가 빈곤국가로 전락한 것은 국가 지도자들의 잘못된 권력욕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 정치인들에게 놀아난 국민들의 우매함 때문이다. 옳은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고 잘못된 지도자를 배제할 수 있는 국민들의 제대로 된 주권의식이야 말로 국가를 부강하게 하는 핵심이다. 우리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필리핀인들은 한국의 농구선수 신동파를 좋아하고 한국 연속극 대장금을 좋아한다. 필리핀 재벌의 아내가 된 미스 코라아 출신의 여자 배우도 좋아한다. 한국의 레저용 승용차인 렉스턴을 좋아하고 삼성 휴대폰도 좋아한다. 한국인도 필리핀에 와서 골프를 즐기고, 휴양지에 다 별장을 구입하기도 한다. 필리핀의 따뜻한 기후와 비옥한 토양이 한국인의 기호에 맞는 모양이다. 두 나라 국민들이 서로 좋아하게 된 친화력의 원인은 앞으로 더 연구되어야 하겠지만 이런 관계가 더욱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