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야의 종소리를 들을 때면 만감이 교차합니다. '뎅~ 뎅~' 울리는 보신각 종소리를 들으며 저무는 한 해, 과연 나는 참된 부처님 제자로서 성실히 수행했는가 하는 되돌아봄의 시간을 갖게 되는 것은 저만이 아닐 것입니다.보신각 종소리는 서른세 번 울립니다. 제야의 종뿐만 아니라 각종 기념일에 울리는 종도 서른세 번 치지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불교의 사상 때문입니다. 불교에서 삼십삼천이라고 부르는 하늘이 있습니다. 도리천이 그곳입니다, 이 하늘나라 대중들에게 부처님의 도량으로 모이라며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겁니다. (삼십삼천이란 산스크리트어에서 숫자 33 이 '도리'라고 하는것에서 유래함, 하늘이 33개라는 의미가 아님)
절에서 예불시간에 울리는 종소리는 28번입니다. 불교의 하늘관인 스물여덟 개의 하늘에 두루 울려 퍼지라는 의미지요. (욕계 6천, 색계 18천, 무색계 4천 )
지혜로웠던 선덕여왕이 세상을 뜨기 전에 도리천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답니다. 문무백관들이 정성껏 좋은 자리를 잡아 왕릉을 마련하는 길 말고 왕을 도리천에 묻는 일이 가능키나 한 일이었겠습니까. 그러나 후일 왕릉 아래쪽에 사천왕사가 건립됩니다. 사천왕천 위에 도리천이 있다는 불교적인 교리로 보자면 선덕여왕의 왕릉이 도리천인 셈입니다. 여왕의 유언대로 꼭 들어맞은 셈이지요.
도리천의 왕이 제석천입니다. 도리천은 세계의 중앙에 위치한다는 수미산 정상에 있는 하늘입니다. 지상에서 보자면 가장 높은 곳 하늘세계로선 아래에서 두번째에 해당하는 곳에 도리천이 있습니다.
제석천은 원래 인도성전인 <리그베다>에 나오는 인드라 신이었습니다. 최고의 신격을 지닌 강력한 힘의 신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감화를 입어 불교에 귀의하게 되죠. 그 뒤론 범천과 함께 정법을 수호하고 부처님과 그 제자들을 옹호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우리 불가의 수호신이 됐습니다.
<화엄경>에는 부처님께서 찾아가신 도리천에 관한 부분이 등장합니다. 부처님께서 돌아가신 어머니 마야부인에게 설법하기 위해 올라가신 곳이 바로 도리천궁이었습니다. 부처님의 설법을 위해 제석천은 사자좌를 설치하구요. 정성을 다해 장엄하고 부처님을 영접합니다. 이처럼 제석천은 부처님 설법자리에 나타나 법회를 수호합니다. 그런가 하면 현실인 사바세계를 다스리는 천왕으로서 중생의 번뇌와 죄를 다스리는 역할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다라망의 무기로 아수라의 군대를 정벌하기도 합니다. 인다라망은 제석천궁에 장엄된 그물인데 수없이 많은 보배구슬로 이루어져 있고, 흔들면 아름다운 빛을 발한다고 합니다. 결국 인다라망이란 모든 세계가 홀로 있지 않고 첩첩이 겹쳐진 가운데 서로 얽히고 부대끼면서 함께 존재한다는 중중무진법계의 진리에 비유되고 있습니다.
<잡아함경>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제석천은 본래 사람이었으나 사문이나 바라문 등의 수행자에게 음식과 재물과 향과 의구와 등불을 베푼 인연으로 제석천이 되었다"고 전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제석신앙은 하늘에 대한 외경심리와 결부됩니다. 불교가 도입되기 전에 지녔던 하늘에 대한 신앙이 불교를 통해서 보다 이론적인 근거를 지니게 되구요. 이에 따라 하늘과 제석천은 자연스레 동격이 되는 거지요
전북 익산의 왕궁리 궁평마을에 빈 절터가 하나 있는데,제석사 자리입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이곳을 제석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백제 무왕이 궁평으로 왕궁을 잡은 뒤에 제석천을 주존으로 모시는 내불당으로 절을 창건하고 왕실의 번영과 국가의 안녕을 기원했던 절이었지만 639년에 벼락에 의해서 불전과 7층목탑 등 절이 완전히 전소되고 말았습니다. ( 이 무량수의 견해로 풀이하자면 부처님께 귀의한 제석천왕은 호법신중인데 부처님을 제치고 주존으로 절에 모셨으니 어찌 부처님께 죄송스럽지 않으셨으랴, 그래서 제석천왕은 친히 벼락을 내려 절을 없애버리셨으리라.)
신라의 흥경스님이 중국에서 대장경의 일부를 가져왔을 때, 이를 제석원에 두고 제석도량을 열었다는 기록이 전하기도 하구요. 고려 때에는 태조 왕건이 내제석원,외제석원 등을 세웠으며 고려 때에는 매년 정월마다 제석도량이 베풀어졌습니다.제석천에게는 어려움을 이겨내는 능력이 있다고 해서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제석도량이 마련됐던 것입니다. 제석도량은 하늘에 대한 재래의 민간신앙과 잘 결합하면서 우리의 독특한 신앙형태로 자리잡게 됩니다.
제석천왕은 한 손에 금강저를 들고 머리에 보관을 쓰고 있는 모습으로 많이 등장하고 있지요. 그림으로는 사찰 신중탱화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신중탱화 속에 다른 선신들과 함께 묘사되고 있지만 독립신앙으로 분리되면서 제석천을 중앙에 두고 32천왕이 묘사한 제석탱화도 있습니다. 고려불화의 경우에는 이마에 수직의 눈이 그려져 있어서 범천과 확실하게 구분이 되고 있습니다. 통도사 대웅전의 제석탱화,파계사 설선당의 제석탱화가 유명합니다.
범어로 '샤크로데반드라'이며 석제환인다라,석가제바인다라 라고 쓰던 것을 줄여서 제석천이라고 부릅니다. 단군할아버지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환인도 제석천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석제환인다라를 줄여서 제석천이라고 불렀기 때문입니다.
불교와 무관하게 제석신을 위한 굿거리도 있습니다. 이를 제석굿이라고 하지요.단군신앙이 변모해서 생긴 굿인 듯합니다. 지역에 따라 조금씩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무엇보다 수명과 다산을 기원하는 성격의 굿이란 점이 특징입니다.
ㅡ 이윤수님의 '재미있는 불보살 명호이야기' 에서 ㅡ
패티김 & 조영남 - 지금 | 음악을 들으려면 원본보기를 클릭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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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무량수의 꿈 원문보기 글쓴이: 무량수
첫댓글 초기경에 제석은 33천의 우두머리로 인도의 인드라천신인데 중국으로 건너와 한인을 제석화 했는 듯. 위 내용중 색계가 18천으로 되어있는데 아비담마에는 욕계6천(욕계세상11세상),색계16천, 무색계4천(총31 세상)으로 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