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김수현 지음/ 샘터
수필이 ‘때묻은 장르’로 변한지는 이미 오래다. “소나 말이나 뛰어들고 있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게 된 수필은 두가지 오명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무나 쓰는 글’, 그리고 ‘누구도 정색하고 읽지 않는 장르’. 그 결과 ‘수필도 과연 문학에 속하는가’싶은 의문을 만든 것도 ‘창작수필’ ‘한국수필’등 7∼8종의 매체와 그 많은 단체에 속해 ‘끼리끼리 문학’에 열중하는 사람들이 원인을 제공했다고 봐야한다. 생산되는 수필중 양질의 것만 골라 봐도 헐겁게 이름을 파는 매명(賣名)수필이거나, 아니면 턱없는 자기위안으로서의 감상주의과(科) 글들이다.
여성수필가 김수현(39)씨의 수필집 ‘세월’. 수필집 출판으로 그런대로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샘터’라는 이름과 단아한 양장본 장정을 하고 있다는 외피를 제외하고 이 책을 특별히 주목해야할 이유는 따로 없어 보인다. 그러나 ‘세월’은 도매금으로 넘겨지기 어려운 책이다. 왜 그런가. 샘터사가 이례적으로 인지도가 없는 신인에게 전작 출판을 결정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추천을 남발하지 않는 구순(九旬) 연세인 금아(琴兒) 피천득씨가 후한 점수를 매겼다는 사실 역시 판단의 모든 잣대일 수도 없다. 피씨는 “모든 것을 갖춘 그의 수필은 읽는 기쁨을 선사할 것이다. 우리는 김수현에게서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고 찬사를 보내고 있다.
과연 피씨의 찬사가 합당한 것인지의 판단이 평자(評者)의 몫일터인데,우선 전반적인 글의 완성도를 인정할 만한 김씨의 문장은 단아하다. 그리고 정갈하다. 넘침이나 지나침 없는데서 오는 단아함과 정갈함은 김씨가 주는 인상과 닮았다. “사람과 글이 같다”는 말은 김씨의 경우 상찬(賞讚)이다. 그의 글에 무리한 어깨의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북청 물장수’로 1.4후퇴 때 월남한 실향민 아버지,소주로 외로움을 감당했던 그의 부친에 대한 애정어린 서술을 담은 ‘아버지’연작(連作)수필에서 여동생의 출산 소식을 유머감각에 실어 담은 글에 이르기까지 주로 생활주변의 그의 글들은 안정돼 있다.
수필집 뒤편 ‘부부싸움’이라는 글에 자신이 “상냥해 보이고 남편에게 고분고분할 것 같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적고 있지만,김씨에게는 세 자녀의 엄마이다. 그러나 아줌마 분위기는 거의 없다. 당연히 신산한 세상살이의 흔적 역시 별로 없다. 그러면서도 잔잔한 그의 글들이 미더운 것은 감상주의에 빠져 푸념을 늘어놓는 대신 글의 소재 자체가 생활주변의 리얼리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동생의 출산’에서는 ‘곧 세아이의 엄마가 될 참인데도 친정에서는 당당하게 막내둥이 귀염을 제 몫으로 아는’ 여동생 얘기가 읽는 이의 입가에 웃음을 남긴다.
아마도 김씨는 수필이라는 장르가 ‘자기 몸에 잘 맞는 옷’임을 알고 있는 듯하다. 담는 그릇으로서 소설 장르가 수필보다 파워풀하고 시장르가 더 인상적일 수도 있지만, 그는 수필이 갖는 솔직 담백함과 친근함의 특장(特長)을 감지한 것이다. 사실 그는 “수필이 현상적으로 문학의 하위장르로서 서자 취급을 받고있는 것이 사실이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일반 산문과 또 다른 맛을 갖는 수필에 대한 애정을 평자에게 밝혔다. 따라서 ‘세월’이 갖는 ‘근수’를 달아보자면, 이렇게 최종 정리된다. “김수현의 글은 ‘때묻은 수필’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앞으로의 가능성까지 합쳐 보자면 문학소녀 취향과 구분되는 신뢰할 만한 신인 한명이 탄생했다.” 그러나 문제는 있다. 그의 장기가 곧 한계로 보인다. 그의 글은 김씨의 사람됨처럼 너무 단정하고 모범생 같기만 해서 톡 쏘는 맛이 덜하다. 대체로 범용(凡庸)하고 그만그만한 세계라는 말이다. 문장 운용의 노하우는 갖춘 듯 보이지만, 모든 글에서 보듯 그것이 탁 트인 시야와 함께 한 소식 깨치는 의외의 느낌으로까지 연결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 경우 나이들어 글에 대한 열정이 줄고, 또 행동반경이 줄어들 경우가 더욱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물론 이런 약점의 돌파 역시 저자의 역량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조우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