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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s: 조선 왕가의 커플은 우째서? 모다 연상연하 커플만 있는고?? : 정답은 ‘왕자(=차기 국왕후보)’를 빨리 얻기 위해서이다. 즉 생물학적으로 남자들마다 첫 애기씨를 만들어내는 시기에 차이가 있으므로 일단은 언제든지 왕자의 생산이 가능한 즉 달거리가 기 시작된 색시를 준비해 놓은 후에 남자에서 생산되는 첫 씨부터 놓치지 않으려고 하니 연상일 수밖에 없다. 허나 ‘문열이 애기씨’는 완성도가 떨어져 제품의 불량률이 높다는 것은 몰랐나 보다. |
-> 창덕궁 대조전(: 36칸의 왕비의 침전으로 1920년 경복궁의 교태전을 이전해 왔다.)
(大造殿 : 큰 것 만드는 곳, 交泰殿: 커다란 것이 교류하는 곳. => 창덕궁, 경복궁의 각 왕비침소이다.)
▶1494(성종 25년) 12/24일: 성종, 대조전에서 세상을 떠나다.
(성종은 치세기간 중 삼대비의 입김아래 외척의 영향력이 강하였지만, 사림을 등용시켜 훈구세력을 견제하면서
성리학적 바탕의 왕도정치를 시도하였다.
일찍이 여색을 탐하면서 후궁들 간의 갈등이 심화되어 폐비윤씨 사사까지 일어나는 사단으로 훗날 연산이
사화를 일으키는 빌미를 만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성종 때는 ‘문화의 황금기’라고 불릴 만큼 선왕들이 이룩해 놓은 치적들을 바탕으로 ‘경국대전’을 비롯하여 ‘동국여지승람’ ‘동국통감’ ‘동문선(東文選)’ ‘악학궤범’ 등 다양한 문화를 발달시켰다.
대외적으로 성종 10년, 좌의정 윤필상으로 하여금 압록강 주변의 여진족을 몰아내었고, 성종 22년에는 영안도관찰사 허종을 보내 두만강 일대의 여진족 소굴을 소탕한 이후 이듬해에 형조판서 이계동을 파견하여 함길도 일대의 여진족 침략을 대비하였다. 치세기간 중 일본은 통신사를 보내며 다스렸고, 나름 북방 방비에 힘쓴 덕이랄까? 운 좋게도 특별한 외침이 없어 태평시대를 이어갔기에 ‘성군’이라 불릴 수 있게 되었다.)
여기부터 ‘연산군일기’이다. ‘일기’의 첫 머리에 ‘연산군’을 평한 총서이다.
◆연산군은 성종의 맏아들로…中略, 어릴 적에 학문을 좋아하지 않아 공부를 권하면 못마땅 하게 여겼다. 즉위하여 궁안에서 행실이 좋지 못했으나, 외정에서는 몰랐다.
만년에는 주색에 빠지고 도리에 어긋나며, 포학한 정치를 극도로 하여 대신, 대간, 시종을
거의 다 주살하되 불로 지지고, 가슴을 뽀개고, 마디마디 끊고, 백골을 부수어 바람에 날리는
형벌까지 있었다. 드디어 폐위하고…이하 省略, 이렇게 ‘연산군일기’는 기록을 시작하였다.
▶1494(연산 즉위) 12/26일: 성종을 위하여 수륙재를 올리려하자 대신들이 반대 상소하다.
(수륙재란? 불교에서 행하는 죽은 영혼을 위하는 행사로 삼사가 일제히 들고 일어났지만 모두 묵살하고 처음
세검정 밖의 장의사, 이후에 북한산 진관사, 광릉내 봉선사와 정인사에서 차례로 재를 강행하였다.
대신들과 즉위 하자마자 첫 마찰로 1개월여 이상을 끌면서 유생들을 가두고 귀양, 과거응시 금지 등으로 맞서면서 계속되는 모든 상소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수륙재 건은 다분히 삼대비전의 입김으로 생각되지만, 이 일은 향후 벌어질 심각한 마찰을 예견하지만,
한편 연산 역시 어린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한 성격의 단면을 보이고 있다.)
▶1495(연산 1년) 3/16일: 성종의 묘지문을 보면서 생모 윤씨가 죄로 폐위되어 죽은 줄 알다.
(승정원에 묻기를 묘지문 내용에서 외조부로 기록된 ‘윤기무’가 이제껏 알고 있었던 외할아버지 ‘윤호’를 잘못 기록한 것이 아닌가 물으면서 승정원의 답변에 모든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날 연산은 수라를 들지 않았다.
※이미, 이 때 연산은 생모에 관한 것은 모두 알게 되었다.
이후 4/11일, 승정원에 다시 물어 폐비가 되어 사사된 연유 및 묘에 관한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어 9/20일, 유배 중인 외할마이 신씨와 외삼촌 윤씨 삼형제를 해배 시킨다. -> 13년 만에 풀려났다.
▶1496(연산 2년)윤3/13일: 폐비의 묘를 천장하도록 어서를 내리다.
(내시를 시켜 모친묘를 돌아보니 폐묘가 되어있음을 보고받고 애석함과 분통함에 천장과 향후 치제를 명하나,
예조참판 신종호 등이 성종의 삭망제 후로 시행할 것을 아뢰니 그대로 한다. 어라??~ 이것들이, 부르르!!)
동년 10월, 폐비 어머니 신씨에게 매년 쌀 30석과 황두 20석을 하사하도록 전교하다.
동년 12월, 사헌부 등에서 윤씨 삼형제의 서용 불가함을 상소하나 모두 들어 주지 않는다.)
※비록 이 때가 즉위 후 1년여가 겨우 지난 시기로 21세의 나이였지만, 이미 연산은 대신들과의 논란에서 “승정원과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등이 청한 것을 거절하여 되지 않거나, 무엇이라
하나를 나무라면 매양 언로가 막힌다고 돌아가면서 논계해대니 나라의 위태로운 장본은 바로
권력이 아래로 옮겨지는 대각들, 당신들에게 있다.”라며 제대로 지적한다.
생모의 묘지이장에서 힘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은 연산이다. 해결책은 왕권의 확립이다.
이후 외삼촌들의 서용문제만 대신들과 다투면서 강행하였을 뿐 이듬해 4월이 되어서 생모의
천묘가 천장산으로 이루어진 후에는 외가 쪽에 대해 거론한 사실이 오래 보이지 않는다.
-> 회묘( 서삼릉에 위치한 페비윤씨의 묘소)
▶1497(연산 3년) 4/09일: 윤씨의 묘호를 의논하여 사당은 효사, 묘소는 회(懷)라고 하다.
(동년 12월, 승정원에 전교하기를 외조부 윤기견과 신씨 내외 족속을 탐문하여 모두 아뢰게 하다.
이후 연산은 외가의 기록은 거의 없다가 다시 나타는 것은 갑자사화가 조금씩 무르익을 때 시작된다. )
연산 4년 8월: 죄인의 집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윤구의 어미(외할마이 신씨)에게 주도록 하다.
연산 8년 7월, 9월: 신씨에게 쌀 20석과 면피를 각각 하사한다.
연산 9년 9월: 2회에 걸쳐 신씨에게 쌀 20석과 면포를 주고 또 쌀 20석과 면포, 정포 각 50필을 하사한다.
이어서 명하기를 장흥 부부인 신씨에게 쌀을 1년에 4번 주도록 준례로 하라하다.
▶1504(연산 10년) 3/24일: 대신들이 폐비 윤씨의 시호를 의논하다.
이른바 갑자사화이다. 사화기간 중에 외할미에게 베푼 흔적들이다.
- 연산 10년 5월: 장흥 부부인 신씨에게 선정전에서 잔치를 하사하다.
- 연산 10년 5월: 장흥 부부인 신씨에게 쌀, 콩, 각 50석과 면포, 정포 각 250필 하사하다.
- 연산 10년 7월: 홍주 사시도의 어전(= 漁箭)과 서산 앙도의 어전을 하사하다.
- 연산 10년 7월: 윤필상의 집을 장흥 부부인 신씨에게 주다.
- 연산 10년 9월: 죄인 윤간의 몰수재산 강음의 전지 12결을 장흥 부부인 신씨에게 하사하다.
- 연산 10년 9월: 신씨가 진주 496개를 왕에게 바치자 시가에 준하여 대가를 주도록 하다.
- 연산 10년11월: 장흥 부부인 신씨가 죽었다. 초상장례에 관한 일을 조정 해당기관에서 보살피게 하다.
(이와 같이 연산은 외할미에게는 지속적으로 도움을 주었고, 신씨는 75세 전후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외삼촌 윤구는 사섬시주부, 동부승지, 공조참판, 병조참판까지 역임한 후 연산 11년 11월에 죽었다.)
- 연산 12년 4월: 장흥 부부인 신씨의 묘 앞 묵밭의 세를 받지 말게 하다.
-> 강화 교동 연산군 위리안치소(교동면 읍내리 270) 이곳 외 교동 내 2개소가 더 있다.
이상과 같이 기록을 살펴보았을 때 연산은 결코 생모의 죽음에 대한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 갑자기
횡폭한 군왕으로 급변한 것은 절대 아니다.
유자광이 제공한 빌미로 연산 4년에 일어난 무오사화를 이용해 짜증나는 사림을 한 번 크게 뒤흔들면서 경고를 한 연후에는 자아도취에 빠져 본격적으로 타고난 끼를 살려 신나게 노라리생활만을 즐긴다.
평생을 즐겨야 할 '노라리'생활에 푸욱 빠져 즐기시는데, 이거이가 무시기 헛소리인고??
“뭐니?? Money가 없다고??” 흥 깨는 소리하지 말고 ‘부자세’라도 거두라 어명을 내린다.
기득세력권 대신들께서는 절대적으로 반대다, 찬성하면 자기들 재산이 털리게 되니까 당연하지.
지존께서 하고 싶은 것을 돈이 없어 못하고 계시는데, 돈 좀 나누어서 쓰자니까 고개질을 도리도리??? 아울러 무오사화 때 분명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언론 삼사뿐이 아니라 늙은 대신들까지도 모두가 합세해서 상소하며 감히 지존을 왕따시키고 있다.
‘이 눔 시키들~~’ 이제 모두를 혼내줄 기회만 엿보고 있는데, 임사홍이 외할미를 등장시키며 생모의
‘억울한 죽음’을 소재로 갑자사화를 연출한다. 연산에게 제대로 된 돌파구를 만들어 준 것이다.
생모의 죽음을 바닥에 깔아놓고 ‘애통함’과 동시에 ‘괘씸죄’를 싸잡아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쌓인
분노를 폭발시킨다. 고립된 왕의 분노는 엄청난 숙청으로 사림과 훈구세력의 구분없이 모든 신하들에게 되갚아졌다. 특히 갑자사화에서는 모두 240여명을 처벌하였는데, 대신들을 처벌하면서 동시에 재산을 몰수하여 고갈된 나라의 재정도 빵빵하게 보충하면서 유흥비도 마련하게 되었으니, 연산의 입장에서는 완존 일석이조로다 ‘님도 보고, 뽕도 딴’ 격이 되었다. 이 때 만든관청이 '추쇄도감'이다.
이 ‘피의 보복’으로 완벽한 정치적 반전을 거두면서 연산은 꿈꿔왔던 자기의 이상이 현실이 되었지만
아울러 모든 사람의 ‘공공의 적’이 되어 자기 명줄을 재촉하게 된 것이다.
너무 많은 억울한 희생으로 원한 맺힌 곳이 많아서일까?
아주 빨리, 그리고 매우 쉽게 이복동생 진성대군을 내세운 박원종, 성희안 등의 반정이 성공되면서
연산과 관련된 모든 것들과 함께 조선의 정치도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말았다.
반정이 일어나면서 체포된 연산은 강화도 교동으로 유배되어 위리안치 된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반정이란 날벼락에 완전히 넋 나간 사람이 되어서는 견딜 수 없는 현실감에
빠져 유배생활 두 달 만에 배소에서 병으로 죽고 말았다. 그의 나이 겨우 31살 이었다.
♠Tips: 조선 형벌제도와 재판 및 고신.
◆ 형벌은 태(苔), 장(杖), 도(徒), 유(流), 사(死)의 5종류로 명나라의 대명률에 따랐다.
- 위리안치(圍籬安置= 우리안치): 유배형 3종류의 안치(安置) 중 가시덤불로 집을 둘러쌓아서
죄인을 안치시키는 것을 말한다. 이외 절도(외딴섬)안치, 본향(고향)안치가 있다.
- 사사(賜死): 임금이 내리는 사약을 받아 자살하게 하는 형벌.
- 교형(絞刑): 교수형으로 목을 매어 달아 죽이는 형벌.
- 참형(斬刑), 효시(梟示): 망나니가 목을 베어 죽이는 것으로 베어진 목을 군중 앞에 보이는 형벌.
- 능지처참(陵遲處斬): 대역죄에 행하는 형벌로 일단 죽인 후에 다시 시신을 여럿으로 갈라서는
각지에 보내어 백성들에게 보이므로 경계하게 하고 위협을 가하는 목적을 지닌 형벌이다.
대개 오살(五殺), 육시(戮屍), 거열(車裂)형이 여기에 속한다.
우리네 어릴 적 어른들의 흔한 욕으로 “저런 육실할 놈 같으니…” “요런 오살을 할 놈…”
요거이가 바로 고거인데, 정말로 끔찍한 소리를 옛날 어르신들 겁 없이 내뱉었다.
(그런 소리 안들어 보셨어요?? 딥따 범생이네, 내는 많이는 아니었어도 듣기 들었었는데... )
- 부관참시(剖棺斬屍): 죽은 사람에게 행하는 형벌로 죽었어도 용서가 안된다는 의미의 형벌.
무덤을 파헤쳐 관을 깨고 시신의 목을 베는 참형을 가하는 형벌이다.
-> 좌로 부터 태형, 주리형, 장형이다.
-> 의금부터 표지석( 종각역 1번 출구, 제일은행 화단: 양반들을 혼내주던 관청이다.)
▶ 기타 부가형 형벌 및 법외적인 형벌이 많았는데…
①자자(刺字)형: 신체의 특정부위 대개는 얼굴에 먹물로 글씨를 새겨 넣는 형벌이다.
“이런 경(黥)을 칠 놈…” => 얼굴에 먹물로 글씨 새길 놈, 대개 '盜'字가 제일 많다.
②난장(亂杖)형: 여러 명이 신체의 부위를 가리지 않고 주위에서 난타하는 형벌이다. 멍석말이 등
③의비(劓鼻)형: 코를 베어버리는 형벌.
④단근(斷筋)형, 월족(刖足)형): 조선 때 3회 이상 도둑질한 자에게 손의 힘줄을 끊던 형벌이다.
단근형은 중종 때 폐지되었고, 월족형은 발뒤꿈치 힘줄, 즉 아킬레스건을 끊어버리는 형벌로써
절름발이나 앉은뱅이로 만드는 비인간적인 잔인한 형벌이다.
⑤팽형(烹刑): 가마솥에 넣어서 삶아 죽이는 형벌이나, 실제로는 삶는 흉내만 내는 행태이다.
이 형을 받으면 죽은 자와 똑같이 장례를 치르고 모든 실생활에서도 죽은 망자 취급을 하였기
때문에 살아도 산 것이 아닌 형벌이다.
-> 광화문 4거리께 혜정교가 팽형장소로 유명하다.
◆ 조선시대 재판은 크게 ①친국(親鞫: 왕이 직접 심문하는 재판),
②정국(庭鞫: 궁궐 내에서 심문하는 재판),
③추국(推鞫: 의금부에서 심문하는 재판),
④계복(啓覆: 사형수를 마지막으로 심의하는 최종 심문으로 형조에서 재판),
⑤소결(疏決: 죄수에게 은전을 베풀 때 심사하는 재판) 등이다.
그래도 사형은 삼복제로 반드시 임금의 재결을 받아야만 형이 확정되는 신중을 기했다.
근대이전에는 동· 서양을 막론하고 수사와 재판 및 행형이 한 곳에서 동시에 이루어지는 이른바
규문주의(糾問主義: 통합형 심의)가 보편적이었다. 조선 역시 마찬가지로 진행되었다.
참고로 조선에서는 성범죄자의 처벌이 현재보다 매우 강하였다고 한다.
특히 아동을 겁간한 파렴치범은 ‘교형’ 또는 ‘참형’, 성인 여성 강제 겁탈범도 대체로 사형이었다.
강간미수범은 ‘장형 100대+ 3000리 유배형’, 강도 강간범 및 근친 강간범 역시 ‘참형’이었다.
-> 풍속화: 법정변송( 송사 중 치도곤을 치고 있다.)
(※치도곤(治盜棍): 절도범을 다스릴 때 쓰는 장형(杖刑) 중 가장 큰 곤장)
◆ 조선의 고신(拷訊: 자백을 받기 위해 고통을 가함)이란?
: 조선에서는 고신을 가할 때 매질은 1회에 30대 이상은 행할 수 없었고, 1회 시행하게 되면
반드시 3일 경과 후 재고신이 가능하였다. 아울러 고신에 의해 자백을 받았다 할지라도
그 고신이 끝난 10일 후에 형벌을 집행하라는 규정이 있었다고 한다.
- 주리형(牢刑): 죄인의 양다리를 결박하고 다리 사이에 2개의 막대기를 넣어 가위를 벌리듯이
좌우로 벌리며 고통을 가하는 고신이다. 불구가 되기 쉬운 고신으로 후에 사용이 제한되었다.
- 笞背형: 태(몽둥이)로 배(등짝)을 난타하는 고문법으로 이 형으로 목숨을 많이 잃었다.
- 압슬(壓膝)형: 요거이 환장하는 고신법으로 바닦에다 사금파리 등을 깔아놓고 위에서 점차 더
무겁게 눌러대면서 자백을 강요하는 행위로 사육신을 비롯 남이장군 등도 두 손 다 들었다.
고신 방법이 하도 치사하고 잔인하여 1665년 현종 때 처음 왕명으로 금지되었고, 이후 1725년에
영조가 즉위하면서 이 압슬형을 영구히 없애라는 영을 내렸다.
- 낙형(烙刑): 불에 달구어 뜨거워진 인두로 몸을 지지는 형벌이다.
- 비공입회수(鼻孔入灰水): 즉 사람을 거꾸로 매달아 코로 잿물을 붓는 고신법이다.
착하게 살자!! 이어서 다음 EP는 색군(色君) 연산이야기. - 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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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범생이네" 가 그런뜻이~~~
게다가 우리가 사용하였던 욕들이 무시무시한 말이네요.
욕두 조심해서 해야겠습니다.
게다가 연산은 시인 이셨네요. 처음 알았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후덜덜....
글구
연산군에 대한 연민 ㅠㅠ
'하나또하나의
역사탐방 ’
애독자가 되었어요!!!
하나또하나언니! 홧팅♥.♥
여보세요촌수에 에러났심. 언니가 아니라 형부되심.
하나또하나님..
루시님 말고도, 지가 이래서 독립채산제를 권장했슈.. ^^
연산에 대한 새로운 시각에서의 고찰이 신선합니다...
폭군이었지만, 어려서부터 최고수준의 경영자 수업을 받았던 연산이 왜 잔인한 폭군이 되었을까라는 문제점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신 점도 고맙습니다...
예고편인 色君시리즈도 기다려집니다...
이궁...얼굴 찌푸리고 보면서도..
미로운 이 이중성을 어이 하끄나... 색군연산이야기..
인간이 어찌 저런 형벌을 인간에게...으음
연산군........그도 우리 역사속의 군주였던 한분이었지요.....
왕권을 지키기 위한 연산군의 행동이 결국은 좋은일 보다는 안좋은 쪽으로 역사가 많이 기록되지는 않았을까나.....
나라의 힘이 없으면 왕도 황후도 힘 한번 제대로 못쓰고 힘있는 자들에게 비참한 꼴을 당하는 것이 역사의 진리라는데....
10월 8일(화)이 고종의 왕비였던 "명성황후" 기신제...남양주시 금곡에 있는 홍릉에서 있는데...
파란하늘은 기신제에 참여하여 외척으로서의 품위를 지킬 예정입니다.
숨겨 놓은 곶감이 언제 다 떨어질지 모르지만 아마 다락 넓이가 우주 만큼이나 큰 곳이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________^*
아~~그래서 왕비의 침전 명칭이~~^일단 요까지 읽고~^
출근해서 다시 보께유~와~잼나유~감사를~~^^
조선왕조 군주중 유일하게 자기 뜻대로 정치를 한 왕..
하나님, 자알 보구 갑니다.. ^^
차라리 그 당시 형벌이 더 현실적이란 생각이 문득.
요즘은 너무 관대한 거 아닌가 싶습니다.
어릴때 무심코 동네 아주머니들로부터서 듣던 많은 자녀꾸지람의 말들이 무십은 형벌들의 명칭들이었구마요
잘 읽고 갑니다 수고많으셨어요 하나님 또 수고하신 보조 하나언니두요 ㅎㅎ
흥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