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화씨를 볶으며
박 용 섭
아내는 접시 위에서도 길을 가려 걷는다
초록은 남기고 붉은 것만 탐하지
말랑한 살점 속에 뼈는 기어이 발라
식탁 귀퉁이에 고요한 무덤을 만든다
나는 세상에 모든 허기를
삼키는 잡식성
그녀가 흘린 적막과 까다로운 근심까지
한 그릇에 비벼 채우며 살았는데
어느 날 아내의 뼛속에 텅 빈 골목이 생겼다고
바람이 들락거리는
뼈의 문장이 밀도가 거칠다고
바다를 통째로 말려올 린 멸치를 먹었는데
골의 구멍들로 지도를 그리고 있었다
팬 위에 홍화씨를 올린다
다글다글 볶아지는 소리
심장이 타는 소리다
야문 씨들이 뜀뛰며 골수를 토할 때까지
연민의 정으로 맷돌이 된다
팬 위에 구르는 작은 별들이
아내의 엉성한 골마다 박혀
기둥이 될 때까지 볶는다.
뼈로쓴 무구無句
박 용 섭
불혹의 세월을 나라의 무게를 어깨 멨으나
내려올 때는 빈손조차 무거워
차마 쥐지 못했다
판서라는 화려한 관복 아래 끼워입은
속곳처럼 남루했으나
서슬 퍼런 가난
정승의 문턱을 넘나들던 바람조차
그의 집에서는 가난에 말문이 데어 돌아갔다
죽음조차 제몸누일 관하나 허락지 않는다
생의 마지막 길
임금이 눈물로 노잣돈을 놓는다
“이 사람아! 그토록 모질게 맑아서 어찌하려했나
서해의 시린 파도에 씻긴 뼈를 닮은
옥돌을 하사하며
쓰지 마라 붓을 놓지 말아 먹을 찍지 마라
어떤 글자도 그의 청렴을 담지 못하리
이름 석 자도 사족이다”
보이지 않는 선비의 삶이 대못처럼 박힌
하얀 돌기둥은 그 자체로 웅변이 되었다
새겨진 명예는 세월에 지워지지만
새기지 않은 고결함은
만고에 더욱 선명하다
비어있어 비명이 되는 돌
글자 없이도 심장을 도려내는 것이다
천지는 비어있어 만물을 품듯
백비白碑는 한 인간의 온 생애를 품고 서서
오늘도 벼락같은 침묵으로 세상의 탐욕을
사정없이 후려치고 있다.
카페 게시글
박용섭 시인
7월시두편
청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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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3.21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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