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병천순대·아산온천… 내일은 춘천닭갈비·막국수
65세 이상이면 운임 안받아
동창회 등 모임 아예 춘천서 막국수·닭갈비집 매출 폭증
"저기 할머니들이 춘천 명동에 있는 닭갈비집 간다는데 우리도 거기로 갈래?""춘천 샘밭에 막국수 잘하는 곳이 많다던데 거기 가자."
친구들 이야기를 듣던 김병수(71)씨는 "닭갈비나 막국수는 한 번씩 먹어봤으니 이번엔 빙어 어때? 싱싱하게 살아있는 빙어를 꼬리부터 잡아 초장에 찍어 먹으면 맛있는데"라며 군침을 삼켰다. 검버섯이 얼굴에 피었고 흰머리는 듬성듬성했지만 전철 안 노인들은 소풍을 가는 것처럼 즐거워했다. 이들은 호수 인근에서 매운탕을 먹기로 하고 춘천역에서 내렸다.
12일 오전 서울 낮 최고기온이 영하 4도로 한파가 이어졌지만, 서울 중랑구 상봉역에서 출발하는 경춘선 전철은 차량마다 10~20명이 서 있어야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김병수씨는 어릴 적 동네친구 4명과 전철에 올랐다. 김씨는 "초등학교 입학 전 서울 종로구 통인동에 살 때부터 친했던 친구 10여명과 한 달에 한 번 만나는데 시간이 맞는 친구들과 바람이나 쐴 겸 해서 나왔다"고 했다. 종종 혼자 전철을 타고 충남 아산에 가서 온천욕을 하고 천안에서 병천순대를 먹었다는 김씨는 "경춘선이 개통됐다는 소식을 듣고 아산·천안처럼 춘천에도 쉽게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섰다"고 했다.
지난달 21일부터 경춘선 전철이 개통되면서 경춘선을 이용하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 서울에서 춘천까지 1시간~1시간 20분이면 갈 수 있는 데다 65세 이상이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춘천시에 따르면 전철 개통 이후 전철로 춘천을 찾는 관광객은 하루 평균 2만2000여명이고 이 중 40%인 8800여 명이 65세 이상이다. 춘천시 관계자는 "점심 식사를 하러 춘천을 찾는 노인이 많아지면서 지난달 21일 이후 춘천시내 닭갈비 업계 매출은 이전보다 50%, 막국수 업계는 이전보다 40% 정도 증가했다"고 말했다. 2008년 12월 천안·아산 지역에 전철이 개통되면서 아산시 온양온천에서 목욕을 하고 천안시 병천면에서 순대를 먹었던 노인들이 경춘선 전철 개통으로 춘천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춘천에 노인들이 몰리면서 남춘천역과 춘천역에서 승합차를 여러 대 주차해 놓고 노인들을 상대로 호객행위를 하는 식당들도 생겼다. 닭갈비로 유명한 춘천 명동 인근 식당들은 혼자 오는 노인 손님들을 위해 닭갈비 1인분 주문도 받고 있다.
춘천에 쉽게 올 수 있게 되면서 이곳에서 모임을 갖는 노인들도 생겨났다. 광주여고 6회 졸업생 모임으로 매달 12일에 모이는 '12일 모임'도 춘천 명동 닭갈비 집에서 열렸다. 신춘자(74)씨는 "상봉역에서 동창들과 '상봉'한 다음 전철을 타고 눈 덮인 곳을 지나가니 기분이 좋다"고 했다. 이들은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며 1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눈 뒤 저녁에 가족들에게 해 줄 닭갈비 재료를 사들고 서울로 돌아갔다.
맞은편 식당에서는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 사는 노인 8명이 닭갈비·막국수를 먹으며 막걸리와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이들은 매주 수요일 전국에 있는 산을 찾아 등산을 하는 '수유산악회' 회원들로, 이날 오전 경춘전철을 타고 춘천에 와 봉의산에 올랐다. 최연소 회원 박유경(62)씨는 "전철을 타고 1시간 만에 춘천에 오니 수도권처럼 가깝게 느껴진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