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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의 영성 1-1(94P)
*아래의 긴 글은 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平安(평안)> 平和(평화)> 和平(화평)> 平康(평강)의 삶을 누릴 수 없을 것 같은 하루 하루의 상황속에서, 성령으로 의연하게 살아 가는 한 성령의 사람 배종부 목사의 <5병2어 선교경제>의 진솔한 삶의 고백입니다.
原題(원제)는 ‘동역자들과의 사랑과 人情(인정), 信義(신의)를 나눈 글들’ 입니다.
토요 성령사관학교 안내
*서울 ‘새성교회’ 에서, 매주 토요 <성령사관학교>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4강의로 연속합니다. 목사님들과 성도들이 함께 성령과 깊은 영성을 훈련하는 너무나 좋은 연중 코스입니다. 누구든지 오시기를 환영합니다.
*<성령의군대>는 삶의 공동체, 성령의 공동체, 경제의 공동체, 세계선교의 공동체입니다. 구체적인 진행은 성령님의 지시에 따라, 업그레이드 합니다.
이 거룩한 대열에 함께 해 주십시오. 혼자 하면 이루기 힘들지만, 함께 하면 이루기 쉽습니다.
<성령의군대>를 이끌어 갈 장군들은 하나의 영적 공동체입니다. 각오와 동역의 자세를 새롭게 해 주십시오.
‘골방의 선지자’ 배종부 목사는 <성령의군대> 장군들에게 모든 것을 다 바치겠습니다.
*<성령의군대> 50만의 대군이 대행진하도록, 적극적으로 <성령 컨퍼런스>와 <성령사관학교>를 알리시고, 軍士(군사)들을 모집해 주십시오.
2021.3.9.화. <성령의군대> 장군들 ‘통성기도 인도’ 와 ‘성령의 삶’ 강의 안내:
*나 배종부 지도목사는 <성령의군대>가 ‘구세군’ 같은 세계적 조직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앞으로 <성령의군대>가 실시하는
<성령사관학교>나,
<성령 컨퍼런스>는
배종부 지도목사가 1시간 미만의 강의 후에는
반드시
참석하신 <성령의군대> 장군들 순번대로
20여분 간의 통성기도를 인도하도록 하겠습니다.
친히 통성기도회 인도를 훈련함으로,
<성령의군대>의 장군들의 영적 역량을 기르는 일이 최우선입니다.
이 통성기도 시간에 저 배종부, 방성용 지도목사와 다른 원하시는 장군 들은 안수기도를 병행 하겠습니다.
*그리고 매주 토요 <성령사관학교> 진행은 오전 2강의는 배종부 지도목사가, 오후 2시간 강의는 지부장급의 <성령의군대> 장군들이 찬양 2곡(10분), 강의 간증 설교(15분), 5분 통성기도, 총 30분 간을, 지부장급 이상의 장군들 4분이 교대로 실시합니다.
한 분이 인도할 수 있는 시간은 총 30분 嚴守(엄수)입니다.
설교자는 어떤 자리이건 시간을 엄수해야 합니다. 임직식에서 20분을 설교해 달라 했는데, 무려 한 시간을 질질 끌었습니다. 이런 일은 절대 안됩니다. 5분이면 5분, 10분이면 10분 안에 끝내야 합니다. 설교는 짧을수록 명설교가 됩니다.
이는 위대한 <성령의군대> 장군들과 부흥강사들을 키우기 위함입니다.
일주일 전, 미리 4분의 강사를 선정합니다.
순번은 아래와 같습니다.
0>.이사라 권사, <성령의군대> 軍師(군사)
1>.방성용 목사, <성령의군대> 본부 지도목사
2>.강한나 목사, <성령의군대> 본부장
3>.박요한 장로, <성령의군대> 본부 참모장
4>.김인수 목사, <성령의군대> 문경 지부장
5>.하미영 사모, <성령의군대> 문경 지부장
6>.박도식 목사, <성령의군대> 인천 지부장
7>.박 민 목사, <성령의군대> 일산 지부장
8>.백문숙 사모, <성령의군대> 서울 중랑 지부장
9>.안정옥 목사, <성령의군대> 양주 지부장
10>.하재운 전도사, <성령의군대> 대구 지부장
11>.권재천 목사, <성령의군대> 대전 동부 지부장
12>.김승규 목사, <성령의군대> 점촌 지부장
13>.조성문 목사, <성령의군대> 서울 성북 지부장
14>.강경숙 집사, <성령의군대> 부산 지부장
15>.이선희 전도사, <성령의군대> 서울 강동 지부장
16>.허미례 집사, <성령의군대> 본부 섬김부장
17>.임선태 목사, <성령의군대> 구미 지부장
18>.조에스더 목사, <성령의군대> 구미 지부장
19>.정종윤 목사, <성령의군대> 고창 지부장
20>.김장환 목사, <성령의군대> 몽골 지부장, 선교사
21>.차재헌 목사, <성령의군대> 대전 서부 지부장
22>.박경익 목사, <성령의군대> 경산 지부장
23>.김주현 목사, <성령의군대> 포항 지부장
24>.김강진 목사, <성령의군대> 캄보디아 지부장
25>.정바울 목사, <성령의군대> 중국 지부장
26>.채샤론 목사, <성령의군대> 도봉 지부장
27>.최용남 목사, <성령의군대> 빛고을 광주 지부장
평안을 찾아서 - 욥 34:1-37절
(1)엘리후가 말을 이어 가로되 (2)지혜(智慧) 있는 자(者)들아. 내 말을 들으며, 지식(知識) 있는 자(者)들아. 내게 귀를 기울이라. (3)입이 식물(食物)의 맛을 변별(辨別)함 같이 귀가 말을 분별(分別)하나니, (4)우리가 스스로 옳은 것은 택(擇)하고 무엇이 선(善)한가 우리 끼리 알아 보자. (5)욥이 말하기를 내가 의(義)로우나 하나님이 내 의(義)를 제(除)하셨고, (6)내가 정직(正直)하나 거짓말장이가 되었고, 나는 허물이 없으나 내 상처(傷處)가 낫지 못하게 되었노라 하니, (7)어느 사람이 욥과 같으랴? 욥이 훼방(毁謗)하기를 물 마시듯 하며, (8)악(惡)한 일을 하는 자(者)들과 사귀며, 악인(惡人)과 함께 다니면서 (9)이르기를, 사람이 하나님을 기뻐하나 무익(無益)하다 하는구나. (10)그러므로 너희 총명(聰明)한 자(者)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은 단정(斷定)코 악(惡)을 행(行)치 아니하시며, 전능자(全能者)는 단정(斷定)코 불의(不義)를 행(行)치 아니하시고, (11)사람의 일을 따라 보응(報應)하사 각각(各各) 그 행위(行爲)대로 얻게 하시나니, (12)진실(眞實)로 하나님은 악(惡)을 행(行)치 아니하시며 전능자(全能者)는 공의(公義)를 굽히지 아니하시느니라. (13)누가 땅을 그에게 맡겼느냐? 누가 온 세계(世界)를 정(定)하였느냐? (14)그가 만일(萬一) 자기(自己)만 생각하시고 그 신(神)과 기운(氣運)을 거두실진대, (15)모든 혈기(血氣) 있는 자(者)가 일체(一體)로 망(亡)하고 사람도 진토(塵土)로 돌아 가리라. (16)만일(萬一) 총명(聰明)이 있거든 이것을 들으며 내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17)공의(公義)를 미워하는 자(者)시면 어찌 치리(治理)하시겠느냐? 의(義)롭고 전능(全能)하신 자(者)를 네가 정죄(定罪)하겠느냐? (18)그는 왕(王)에게라도 비루(卑陋)하다 하시며 귀인(貴人)들에게라도 악(惡)하다 하시며, (19)왕족(王族)을 외모(外貌)로 취(取)치 아니하시며, 부자(富者)를 가난한 자(者) 보다 더 생각하지 아니하시나니, 이는 그들이 다 그의 손으로 지으신 바가 됨이니라. (20)그들은 밤중(中) 순식간(瞬息間)에 죽나니, 백성(百姓)은 떨며 없어지고 세력(勢力) 있는 자(者)도 사람의 손을 대지 않고 제함을 당(當)하느니라. (21)하나님은 사람의 길을 주목(注目)하시며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鑑察)하시나니, (22)악(惡)을 행(行)한 자(者)는 숨을 만한 흑암(黑暗)이나 어두운 그늘이 없느니라. (23)하나님은 사람을 심판(審判)하시기에 오래 생각하실 것이 없으시니, (24)세력(勢力) 있는 자(者)를 조사(調査)할 것 없이 꺾으시고, 다른 사람을 세워 그를 대신(代身)하게 하시느니라. (25)이와 같이 그들의 행위(行爲)를 아시고 그들을 밤 사이에 엎으신즉 멸망(滅亡)하나니, (26)그들을 악(惡)한 자(者)로 여겨 사람의 목전(目前)에서 치심은 (27)그들이 그를 떠나고 그의 모든 길을 무관(無關)히 여김이라. (28)그들이 이와 같이 하여 가난한 자(者)의 부르짖음이 그에게 상달(上達)케 하며, 환난(患難) 받는 자(者)의 부르짖음이 그에게 들리게 하느니라. (29)주(主)께서 사람에게 평강(平康)을 주실 때에 누가 감(敢)히 잘못하신다 하겠느냐? 주(主)께서 자기(自己) 얼굴을 가리우실 때에 누가 감(敢)히 뵈올 수 있으랴? 나라에게나 사람에게나 일반(一般)이시니, (30)이는 사특(邪慝)한 자(者)로 권세(權勢)를 잡아 백성(百姓)을 함해(陷害)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31)누가 하나님께 아뢰기를 내가 징계(懲戒)를 받았사오니 다시는 범죄(犯罪)치 아니하겠나이다. (32)나의 깨닫지 못하는 것을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악(惡)을 행(行)하였으면 다시는 아니하겠나이다 한 자(者)가 있느냐? (33)하나님이 네 뜻대로 갚으셔야 하겠다고 네가 그것을 싫어하느냐? 그러면 네가 스스로 택(擇)할 것이요 내가 할 것이 아니니, 너는 아는대로 말하라. (34)총명(聰明)한 자(者)와 내 말을 듣는 모든 지혜(智慧) 있는 자(者)가 필연(必然) 내게 이르기를 (35)욥이 무식(無識)하게 말하니, 그 말이 지혜(智慧) 없다 하리라. (36)욥이 끝까지 시험(試驗)받기를 내가 원(願)하노니, 이는 그 대답(對答)이 악인(惡人)과 같음이라. (37)그가 그 죄(罪) 위에 패역(悖逆)을 더하며, 우리 중(中)에서 손뼉을 치며 하나님을 거역(拒逆)하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
平安(평안)> 平和(평화)> 和平(화평)> 平康(평강)이다.
1>.분명히 살아 계신 성령 하나님을 만나면, 平安(평안)> 平和(평화)> 和平(화평)> 平康(평강)이 강물 같이 흐른다.
2>.주님이 나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매일 매일 필요한 돈을 주심을, 어린 아이처럼 믿어 의심치 아니하면, 平安(평안)> 平和(평화)> 和平(화평)> 平康(평강)이 강물 같이 흐른다.
3>.버리고, 비우고, 낮아지고, 욕심이 없어지고, 하루 하루 살면, 平安(평안)> 平和(평화)> 和平(화평)> 平康(평강)이 강물 같이 흐른다.
어차피 내가 사는 것이 아니다. 은혜로 사는 것이다.
4>.늘 기도 응답이 있으니, 平安(평안)> 平和(평화)> 和平(화평)> 平康(평강)하다.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갖는 6단계의 욕구
(나 배종부 목사가 늘 묻는 질문이 이것이다.
나는 이대로 계속 가면 되는 것인가?
나는 이대로 계속 살아 가면 되는 것인가?
나는 옳은 것인가?
나는 最高(최고), 最善(최선), 最上(최상)의 삶을 지향하고 있는가?
우리는 정말 바로 가고 있는가?)
미국 심리학자 매슬로우(Abraham H.Maslow)는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6단계 욕구가 있다고 했다.
1.생리학적 욕구:호흡, 음식, 물, 성, 수면, 배설 같은 생리적 욕구가 채워지는 것.
2.안전 욕구(Safety)
3.사랑과 소속 욕구(Love/Belonging)
4.존경(Esteem) 받고 싶은 욕구
5.자아 실현(Self-actualization) 욕구
6.후에 한 가지 더해서 자아 실현의 단계를 넘어선, 자기 초월의 욕구를 주장하였다. 즉, 자기 자신의 완성을 넘어서 타인, 세계에 기여 하고자 하는 욕구다.
이 말은 ‘나로부터 시작한 행복이, 타인의 행복으로 완성된다’ 는 것이다.
이기주의자(egoist)로서는 인간은 행복해질 수가 없다. 이 같은 말을 성경에서는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 하는 것이거니와...’(약2:8)라고 했다.
최고, 최상의 법이 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탁월하신 방법이다.
자신 만을 사랑해서는 절대로 행복해질 수가 없다.
그렇게 하려면 내가 먼저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힘이 있어야 한다. 컵에 물이 차야 넘치듯 말이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내 영혼을 소생(蘇生)시키시고’(시23:3)’
내가 소생하고 회복되어야, 가능하다.
하나님은 심폐소생술, 즉 영과 육을 소생시키시는 전문가이시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내가 먼저 회복되어야 남을 사랑할 수 있고 도울 수 있다.
주저 앉아 있을 때가 아니다.
하나님은 나를 소생시키시고, 나는 다른 사람을 소생, 회복시키는 것, 이것이 하나님과의 환상의 팀웍이 되는 것이다.
지금 주변에 심정지 될 만큼 힘들고 고통스러운, 욥(Job)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이 있는지 살펴 보자.
있다면 권면, 위로, 기도, 물질, 사랑... 으로 소생 시킬 일이다.
그렇게 하시면 당신이 치유되고, 행복하게 되는 첩경이 된다.
당신이 회복되고 복 받아야 할 이유다.
승려 성철의 삶
부산과 울산을 오가는 해안도로를 따라 가다 보면, ‘임랑’과 ‘월내’라는 작은 어촌 마을 중간 지점에 조계종 직할 ‘임제종가 묘관음사’라는 돌 간판이 나온다.
이 사찰이 그 유명한 성철스님이 수행한 절이다. 성철이 출가한 후 낳은 딸을 처음 만났던 절이기도 하다. 출가한 후 부인이 딸을 낳았다는 소식을 풍문으로 들었다고 한다. 스님이 된 딸의 본명은 수경(壽卿)인데 성철은 불필(不必), ‘필요 없는 딸’이란 법명으로 불렀다.
성철스님이 죽을 때 남겼다는 유언이다.
‘내 죄는 산보다 높고 바다 보다 깊은데, 내 어찌 감당하랴?/
내가 80년 동안 포교한 것은 헛 것이로다./
우리는 구원이 없다./
죄 값을 해결할 자가 없기 때문이다./
딸 필히와 54년을 단절하고 살았는데, 죽음 임종 시에 찾게 되었다./
필히야 내가 잘못했다./
내 인생을 잘못 선택했다./
나는 지옥에 간다.’
아버지와 딸, 부모와 자식은 천륜이다. 이것을 끊기는 불가능하다. 부모는 자식을 그렇게 사랑한다. 그래서 성경에는 ‘네 자녀를 사랑하라’라는 계명은 없다. 단, ‘네 부모를 공경하여라. 그러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오래 살 것이다.(출 20:12/우리말)’라는 말씀뿐이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라고 하지 않아도, 목숨처럼 사랑한다. ‘공경’은 ‘몸가짐을 조심스럽게 하여 받들어 모시다’는 뜻이다. 영어는 Respect(존경), Honor(경의), Reverence(숭배)다. 모시는 차원을 넘어서는 존경과 숭배까지 하는 것이다.
원숭이로 실험했단다. 아빠 원숭이와 아들 원숭이, 엄마 원숭이와 아들 원숭이 두 쌍을 불을 지펴 뜨겁게 하는 불판 위에 넣고 서서히 가열했다. 사이좋게 놀다가 불판이 점점 뜨거워져 도저히 받을 딛지 못하자, 엄마 원숭이는 아들을 머리에 올리고 자신은 뜨거운 불에 타고, 아빠 원숭이는 자식 원숭이를 자기 엉덩이 밑에 넣고 방석 삼아 깔고 앉더란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모성은 하나님과 동격이다. 숭배해도 된다는 말이다.
당신 마음에 들려 오는 소리
어느 날 한 기자가 아인슈타인과 함께 산책을 나갔다. 그는 아인슈타인에게 몇 가지 궁금한 점을 물었다. 기자는 나중에 또 다른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물어 보려고 그에게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고 했다. 아인슈타인은 흔쾌히 승낙했다. 산책을 마친 뒤 아인슈타인은 전화번호 수첩에서 자신의 전화번호를 찾은 뒤 기자에게 적으라며 번호를 하나 하나 읽어 주었다. 기자는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하고, 수첩에서 찾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기자의 마음을 읽은 천재는 이렇게 말했다. ‘전화번호부에 이미 적혀 있는데, 굳이 머릿 속에 기억할 필요가 있겠소?’
이런 것을 심리학에서는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칵테일파티효과’라고 한다. 파티장에서 웃음소리, 발걸음소리, 술잔을 부딪치는 소리, 음악소리, 사람들의 말소리 등 온갖 다양한 소리로 떠들썩하지만, 그런 주변소리가 아무리 커도 곁에 있는 친구의 말을 듣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칵테일파티효과’는 본래 심리학자들이 인간의 청각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개념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듣고 싶은 소리만 듣는다. 소리만 그런 것이 아니고, 내용도 마찬가지다. 자기에게 유리한 음성과 내용만 듣는다. 성경에 ‘내 양들은 내 음성을 알아 듣는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따른다.’(요10:27)다고 했다.
심리적인 것이나 신神적 소리도 마찬가지다. 신앙인은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하다. 보통 사람들은 아무리 그 음성이 커도 듣지 못한다. 아니, 듣는 귀가 없고 듣기를 거부하고 나아 가 들을 수가 없다. 그래서 더 큰 비극이다.
아인슈타인이 자기전화 번호를 기억 못하는, 아니 기억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음성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선택적으로 기억하고 듣는다. 그것은 내가 무엇을 듣고 기억하고자 하는 마음의 문제다. 소리를 듣는 청각과 마음의 청각을 모두 열어 놓을 필요가 있다.
당신에게 지금 들려 오는 소리가 바로 당신의 존재 가치를 설명해 준다.
四柱 甲子(사주 갑자) 용어를 쓰지 말라
태어난 해· 달· 날· 시의 네 육십갑자《혼인이나 운수를 점치는 자료가 됨》.
항상 년초만 되면 ‘신축년’ 같은 단어 때문에 고민한다. 이런 단어는 정통 기독교인이라면 절대로 쓰면 안 된다. 목사들 조차 이 말을 즐겨 쓴다. ‘신축년’ 용어는 천 간 10개와 지지 12개를 순서대로 조합하여 만든 간지 60개를 말한다.
중국에서 유래된 것으로, 중국 신화나 제사, 제례 목적으로 만든 용어다. 사람이 소? 동물인가? 이슬람 교도들은 이슬람력을 쓴다. 히즈라력이라고 하는데, H. 혹은 A.H(라틴어로 Anno Hijrae)라고 한다. 2021년은 이슬람력으로는 1443~1444년이다.
불교도들은 부처를 기점으로 해서, 불기 2565년이다. 히브리력으로는 5781-5782년이다. 우리나라는 단기 4354년이다.
기독교(서양력)에서는 B.C와 A.D로 표기한다. B.C는 Before Christ의 약자다. 그리스도 예수님 이전의 시대라는 뜻이다. 그리고 A.D는 라틴어로 Anno Domini다. Anno라는 ‘년’이고, Domini는 ‘주’라는 뜻이다. 즉, ‘주님이 오신 해’라 뜻이다. 즉,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해를 원년으로 계산한다.
따라서 올해는 A.D(주님이 오신 후) 2021년이다. 예전 신앙의 선배들이나 아버지께서는 항상 편지를 쓸 때 마지막 [주후 2021년 1월 1일] 이런 식으로 썼다. 앞으로도 ‘신축년’ 같은 단어는 신앙인들은 쓰지 않아야 한다.
성경에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끝이다.’(계22:13) 말씀이 있다. 성경에서는 시간의 개념을 직선으로 본다. 그 시간 속에서 개인이든, 가정이든, 국가든, B.C와 A.D.가 있다. 신앙인으로 당신에게 B.C.와 A.D가 있느냐? ‘A.D. 2021년’은 당신에게 ‘주님을 만난 후’의 시간이 되시기를 기도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한 해가 되시기를 축복한다.
당신의 생애에 가장 기억되고 복되고 형통한 원년 A.D가 되시기를 기원한다.
나는 모태 예수님 띠다.
사람은 악을 행하도록 태어 났다
1971년 미국의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는 환경 조작에 따른 심리 변화를 연구하기 위해 ‘감옥 실험’을 했다.
24명의 대학생을 선발, 모든 실험사항을 수행하고 일당 15달러를 받기로 했다. 24명은 2조로 나누어 간수와 죄수의 역할을 맡았다. 스탠퍼드대학 지하실을 개조 실제 감옥처럼 만들었다. 죄수들에게는 수감번호, 무거운 체인, 삭발 대신 나일론 스타킹을 쓰게 하고 간수들의 말에 복종하게 했다. 간수 역할에는 간수복, 호루라기, 경찰봉, 선글라스와 감옥의 규칙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게 했다. 실제 실험이 시작되자 자신의 역할에 몰입하기 시작했고, 실제 감옥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일어났다. 죄수와 간수 사이에 충돌하고, 죄수들은 수감번호를 찢고, 머리에 쓴 스타킹을 벗어 던지고, 간수들이 감방 안으로 들어 오지 못하도록 침대로 문을 막았다. 간수들도 강경했다. 달려 드는 죄수에게 소화기를 분사했고, 옷을 벗으라고 명령하고 모욕했다.
실험 죄수들의 행동을 통제하자, 이상 행동이 보이기 시작했다. 불안과 망상에 빠지고 고함을 지르거나 마구잡이로 화 내고, 히스테리 증상을 보였다. 2주로 계획했으나 6일 만에 종료됐다. 그런데 간수 역할을 맡은 대부분의 학생들은 실험이 종료되자 아쉬워 했다. 짐바르도의 실험은 ‘무엇이 선량한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지’ 그 원인을 밝혀 주었다.
평범한 학생이 단지 며칠 만에 무자비한 간수가 됐다. 어쩌면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 사악하고 어두운 면이 감춰져 있다가 전쟁이나 감옥 같은 상황이 오면 ‘누구나 악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롬7:21)라고 했다.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이 따로 없다. 누구도 이 선과 악을 오가며 행동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래서 겸손해야 하고 늘 자신을 돌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어쩌면 선한 척 하는 것이 가장 큰 악이다. 그런데 내 안에 정말 선이 있을까?
賢淑(현숙)한 여자
잠언은 지혜서다. 모두 31장이다. 마지막 31장 10절부터 예상치 않는 결론을 맺는다.
‘현숙한 여자’에 관한 내용이다.
왜 지혜서인데 현숙한 여자로 결론을 맺을까?
지혜는 여자를 통해서 온다는 것이다. 19장 14절 ‘집과 재물은 아버지에게서 상속 받지만, 현명한 아내는 여호와께 받는다.’고 했다. 잠언 31장 10절부터 여자들은 반드시 읽어 보라. 남자가 아닌 여자가 지혜를 가져야 할 이유와 팩트를 제시하고 있다. 잘되든 못되든 모두 여자 탓이다.
시편128편 3절에도 ‘네 아내는 네 집안 곳곳에서 열매 맺는 포도나무 같다’고 했다. 우리는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한다. 안녕은 한자로 安寧이다. 둘 다 ‘宀’집면 부수에서 만들어진 한자다. 安자는 ‘宀’에 여자 女가 있다. 집에 여자가 있어야 안녕의 첫 단계다. 집에 여자가 없으면 안녕이 안 된다. 불가능하다.
‘안녕히’ 되려면 집에 여자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녕寧자 역시 ‘宀’밑에 3자가 있다. 마음 심心 자다. 집에 마음이 있어야 한다. 여자의 마음이, 남자의 마음이 집에 있어야 한다.
이 마음이 가출하면 안녕히 될 수 없다. 마음이 가출한 집은 불행의 시작이다. 그리고 그릇 명皿 자다. 집에는 그릇이 있어야 한다. 그릇은 먹거리에 대한 문제다. 집에 먹을 것이 있어야 안녕히 된다. 컵 라면이라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고무래 정丁 자다. 농사 지을 때 사용하는 도구인데, 요즘 말로 하면 직업이다. 또한 정丁은 일꾼 정, 즉 직업을 가진 남자라는 뜻이다.
안녕히 되려면, “집에 여자가 있고, 집에 남자든 여자든 마음이 집에 있어야 하며, 먹거리와 직업을 가진 남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기초가 바로 여자다. 집에 여자가 없이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안녕할 수 없다.
현숙하고 슬기로운 여자가 있으면 가정도 교회도 나라도 안녕할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여자라면 더 명심하고, 남자라면 여자 말씀 잘 들어라.
지혜는 여자를 통해서 온다는 것이 잠언의 하이라이트다.
감각 차단 시험
심리학자 스탠리 샥터는 감각 차단을 실험했다. 5명의 지원자는 모든 실험 조건이 동일한 다섯 개의 방에 각각 외부세계와 격리되어 하루를 버티면 보수를 받기로 했다. 실험 결과 외부와 격리되어 가장 짧게 견딘 사람은 20분, 가장 오래 견딘 사람은 8일이었다. 8일 동안 격리된 실험자는 실험 기간 동안 외로움을 느꼈고 긴장했으며 히스테리 증상까지 보였다. 실험을 통해 인간이 다른 사람의 관심과 배려를 필요로 하는 것은 타고난 본능임을 알 수 있었다.
인간은 집단을 이루어서 모여 사는 것을 좋아하는데, 가정을 이루고 사회적 관계를 맺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집단을 떠나면 인간은 격리되고 버렸다고 느낀다. 격리 기간이 오래 되면 인간의 마음에 변화가 생기고, 행동과 정신에 문제가 생긴다. 인간의 숙명이다. 예수님도 혼자 고독했다. 그런데 그 고독을 이렇게 해결했다.
‘너희는 나를 버려 두고 모두 떠나 갈 것이다. 그러나 나는 혼자 있는 게 아니다.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요16:32)
인간은 누구나 절대 고독 속에 산다. 그 절대 고독을 해결 할 수 있는 것은 사람으로는 한계가 있다. 하나님이 필요한 이유다. 지금은 정말 고독한 시대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모든 사람을 고독 환자로 몰아가고 있다. SNS에 올라 온 글이다.
‘큰 올케가 아는 사람이 강아지를 한 달 60만 원 하는 강아지 유치원에 보냈는데, 1교시 체육, 2교시 음악 감상, 3교시 자율 학습 등 시간표가 짜져 있단다. 누가 잘 봐 주라고 선생님께 봉투를 줬더니, 다음 날 강아지가 ‘반장’이라고 적힌 목걸이를 차고 왔다’
왜 사람들은 강아지에 애정을 쏟고 좋아할까!
인간의 고독을 해결해 주는, 사람보다 배신과 아픔을 주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그런 강아지도 줬던 먹이를 빼앗으면 바로 으르렁거리며 이빨을 드러 내고 주인에게 대든다. 인간의 절대고독을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 그나마 당신 옆에 있는 사람이 최선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이야기다
엘리스와 붉은 여왕은 숨을 헐떡이며 달렸다. 엘리스가 말했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렇게 열심히 달리면 어딘가에 도착하게 돼요.’
그러자 붉은 여왕이 호통쳤다. ‘이런 느림보 같으니, 여기서는 이렇게 달려야 겨우 제 자리야. 어딘가에 닿으려면 2배는 더 열심히 달려야 해.’
앞서려면 2배는 더 열심히 달려야 한다는 것이 [붉은 여왕의 법칙]이다. 모두 달린다고 달리지만, 주위를 살펴 보면 그 자리에서 맴돌거나, 아니면 뒤처지기 일쑤다. 나도 달리지만 다른 사람들은 더 열심히 달리기 때문이다. 영양과 얼룩말이 사는 아프리카 초원에는 치타도 함께 살고 있다.
치타가 살아 남으려면 얼룩 말보다 빨리 달려야 한다. 영양은 치타 보다 더 빨리 달려야 살아 남는다.
지구상에 존재했던 생명체의 90%가 멸종했다고 한다. 개별적 종의 입장에서 나름 열심히 달렸지만, 주위의 경쟁자들이 더 빠른 속도로 달렸기 때문이다. 문제는 속도 보다 목표다. 마냥 달리기만 하다 보면 둘 중 하나는 진다. 하지만 목표가 다르면 생각하며 달려도 된다.
그런데 세상은 모두 돈과 권력이 목표가 돼 경쟁하다 보니, 거짓말도 2배, 편법도 2배, 사기도 2배, 선동도 2배, 모함도 2배, 이렇게 서로 죽이려는 목표로 살고 있다. 그러다 함께 자멸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나는 목표가 없는 것처럼 달리지 않고, 허공을 치듯이 싸우지 않습니다.’(고전9:26)라고 했다.
바울의 목표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었다. 내가 정한 목표가 누군가를 살리는 것이라면, 빨리 달리지 않더라도 안심해도 된다.
이 말씀을 기억하자.
‘그들의 발은 나쁜 일을 하려고 뛰어 다니고 무고한 사람을 죽이려고 빨리 다닌다. 그들의 생각은 못된 궁리 뿐이고, 그들이 가는 길에는 폐허와 파멸만 깔려 있다.’(사59:7)
사람 살리는 데 2배로 힘써 보자.
80층 빌딩의 삶의 비애
중국에 장신, 장차오 형제는 80층짜리 고층 아파트 80층에 살고 있다. 어느 날 두 형제가 여행을 갔다 돌아 오니 시간은 이미 새벽 2시, 엘리베이터가 전기회로 고장으로 운행 중지됐다. 두 형제는 무거운 가방을 등에 진 채 로비에서 어떻게 할지 의논했다. 결국, 계단으로 걸어 올라 가기로 했다. 20층까지 올라 갔을 때 동생 장신이 ‘가방이 너무 무거우니까 복도에 가방을 놓았다가 엘리베이터가 운행되면 찾으러 오자’고 했다. 가방을 놓고 훨씬 가벼운 몸으로 40층까지 왔을 때 둘은 서로 원망했다. 여행 가면서 왜 안내문을 못 보았느냐? 상황을 설명하며 서로 네 탓 공방을 했다. 60층에 도달했을 때는 서로 다툴 힘조차 없었다. 서로 부축하며 남은 20층을 모두 올라 갔다. 형제가 문 앞에 도착했을 때 둘은 서로를 마주 보다가 아주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열쇠가 없었다. 열쇠는 20층에 놓아 둔 여행 가방 안에 있었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이 글을 보는 순간 섬뜩했다.
80층을 나이로 환산해 계산해 보면, 어떤 사람은 20세에 삶의 아주 중요한 열쇠를 잃어 버린 사람이 있다. 어떤 이는 40세에 방황하고 허튼 짓 하다가 삶의 방향키를 분실했고, 어떤 이는 30세에 이미 열쇠 조차 갖추지 못한 채 황혼의 나이에 도달한 것이다.
몇 살 때 무슨 열쇠를 잃어 버렸는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80층에 도달한 형제는 힘을 되찾아 다시 내려 가서 열쇠를 가져 오면 되지만, 이미 지나 온 세월은 어떻게든 할 수 없어 한숨만 나온다. 하지만 위안되는 성경 말씀이 있다.
‘지나 간 일들을 기억하지 말라. 과거에 연연하지 말라.’(사43:18)
과거는 이미 지나 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오직 현재 이 시점에서는 과거는 무조건 감사로, 미래는 무조건 좋은 것 예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맡길 뿐이다. 지금, 이 순간 할 일은 열쇠를 찾아 챙길 일이다. 앞으로 올라 가야 할 층수가 많이 남아 있다. 잃어 버리면 다시 찾을 길이 없다.
敵意(적의)의 심리
1950년대에 메이어 프리드먼 등의 심리학자들은 특정 유형의 성격과 질병 발생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밝혔다.
행동 양상 A형은 극단적인 승부욕, 공격성, 인내심 결핍, 조급함과 함께 주변 환경에 대한 ‘적의’[敵意]를 특징으로 한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삶의 여러 방면에 불만을 느끼고 개인의 힘으로 현재의 상태를 바꾸려는 생각을 하고 있다.
B형은 어떤 환경에도 잘 적응하고 만족하며 늘 마음 상태가 안정적이고 경쟁을 꺼리며 타인에 대해 ‘적의’를 느끼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A형이 B형 보다 질병에 걸릴 확률이 아주 높다는 것이다.
심리학자 게리 스완과 도리트 카멜리는 1996년에 실시한 연구에서 A형과 B형의 행동 양상 중 가장 위험한 요소를 ‘적의’라고 밝혔다.
‘적의’는 ‘타인을 적대하는 마음’, ‘해치려는 마음’이다. 주변 환경과 자신이 속한 그룹에 대해 적의를 느끼는 사람은 언제나 고도의 각성 상태에 놓여 있어서 각종 질병에 걸리기 쉽다.
C형도 있다. C형은 선량함, 인내심, 자발적인 협동심과 자기 희생을 보이지만, 지나치게 참고 견디고 혼자서 울분을 삼키는 등 부정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암에 걸릴 확률이 다른 사람에 비해 훨씬 높다고 한다.
결국 1998년 연구에서 ‘낙관적인 사람’이 대부분 건강하고 질병에 걸리는 확률이 적다고 밝혔다.
문제는 지금 내가 ‘적의’를 품고 있느냐이다. 누군가를 향해서 적대하고, 해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개인과 사회는 병들 수 밖에 없다. 해결책은 적의를 품지 말고, 낙관적으로 세상을 사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어리석은 사람의 분노는 당장에 드러 나지만 현명한 사람은 수치를 덮는다.’(잠12:16)고 했다.
분노와 적의는 질병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자기만 병드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속한 그룹과 사회도 병들게 한다.
요즘 ‘적의’를 품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 아니 모두일지 모른다. 인간 DNA에 용서는 본래 존재하지 않는 걸까? 고민되는 계절이다.
2020.7.5.세계 평화를 요청한 소년
마크 빅터 한센
헌팅톤 해변가의 우리 교회 주변에 사는 한 작은 소년이 '어린이 은행'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를 찾아 왔다. 그는 나에게 악수를 청한 다음, 이렇게 말했다.
"저는 토미 타이예요. 이제 일곱 살인데, 어린이 은행에서 돈을 빌리고 싶어요."
나는 물었다.
"토미, 그 돈으로 뭘하고 싶니?"
"나는 네 살 때부터 세계의 평화를 이루겠다는 꿈을 가졌어요. 그래서 '평화, 평화를! 우리 어린이들을 위해서 평화를 지키자. 토미 타미 올림' 이라는 자동차 범퍼 스티커를 제작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 일천 장의 범퍼 스티커 인쇄비 454달러가 필요해요."
"내가 그 돈을 빌려 주마."
일단 범퍼 스티커가 인쇄되자, 토미의 아버지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저 녀석이 대부금을 갚지 못하면, 자전거를 압류할 겁니까?"
토미는 아버지를 설득해서 로널드 레이건의 집에 데려 다 달라고 했다. 토미가 초인종을 누르자, 문지기가 나왔다. 토미는 2분 간에 걸쳐 거절할 수 없는 판매술을 펼쳤다. 문지기는 지갑을 꺼내 토미에게 1달러 50센트를 주고 말했다.
"자, 내가 그것을 하나 갖고 싶구나. 여기서 기다리려무나. 내가 전 대통령을 모셔 올게."
그 다음에 그는 범퍼 스티커 한 장을 1달러 50센트짜리 계산서와 동봉하여 미하일 고르바쵸프에게 보냈다. 고르바쵸프는 그에게 돈과 함께 '평화를 위해 나아 가세요, 토미군. 미하일 고르바쵸프 대통령' 이라고 사인한 사진을 보내 줬다.
토미의 평화 계획이 시작된 후, <오렌지 카운티 메지스터> 신문의 일요일 판에 토미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마티 쇼는 토미를 여섯 시간 동안 인터뷰하고 멋진 기사를 썼다. 마티는 토미에게 세계 평화를 위해서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느냐고 물었다. 토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큰 일을 하기에는 아직 어려요. 아무래도 여덟 살이나 아홉 살이 되어야 이 지구상의 전쟁을 모두 막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누군가 죠안 리버스에게 토미의 인터뷰 기사를 보냈다. 그녀는 그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당장 토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토미, 네가 내 TV쇼에 나와 줬으면 좋겠구나."
"좋아요!"
"너에게 3백 달러를 주마."
"좋아요! 그런데, 나는 겨우 여덟 살이기 때문에, 혼자 여행할 수 없어요. 아줌마가 우리 엄마의 경비도 대주실 수 있어요?"
"좋아!"
"내가 방금 본 '부자와 명사의 생활 방식'이라는 프로에 의하면 뉴욕에 가면 트럼프 플라자에서 자야 한대요. 아줌마가 그렇게 해 주실 수 있어요?"
"그래."
"또 뉴욕에 가면 엠피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자유의 여신상을 필히 봐야 한다던데요. 우리 입장권을 구해 주실 수 있어요?'
"그럴께..."
"좋아요. 참, 우리 엄마가 운전을 못한다는 말을 했던가요? 그러니 우리가 아줌마의 리무진을 이용할 수 있을까요?"
"그럼."
죠안이 말했다.
토미는 '죠안 리버스 쇼'에 출연했고, 죠안과 스텝을 비롯한 스튜디오 방청객과 TV 시청자를 사로 잡았다. 그는 매우 매력적이고 설득적이었기 때문에 방청객은 즉석에서 지갑을 꺼내, 범퍼 스티커를 샀다.
쇼가 끝날 무렵에, 죠안이 물었다.
"토미야, 너는 네 범퍼 스티커가 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 올 수 있다고 정말 믿니?"
토미는 자신 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일을 시작한지 2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잖아요? 그만하면 잘 하고 있는 거죠?“
독일 총리 메르켈! 목사의 딸로 태어나서인지~?
독일은 6분 간의 따뜻한 박수로 메르켈에게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독일인들은 그녀를 선택하였고, 그녀는 18년 동안 능력, 수완, 헌신 및 성실함으로 8 천만 독일인들을 이끌었습니다.
그들의 나라에서 18 년 동안을 통치하는 동안 위반과 비리는 없었습니다. 그녀는 어떤 친척도 지도부에 임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영광스러운 지도자인 척 하지 않았고, 자신의 앞선 사람들과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어리석은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사진 찍히려고 베를린 골목에 나타 나지 않았습니다.
이 인물이 "세계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여성 (Angelika Merkel)이며, 6 백만 명의 남성에 해당하는 여인으로 묘사됩니다.
메르켈은 어제 당의 지도부를 떠나 후임자 들에게 뒷 일을 넘겼고, 독일과 독일 국민은 더 나아졌습니다.
독일의 반응은 국가 역사상 전례가 없었습니다. 도시 전체가 집 발코니로 나갔고, 인기 시인, 연주자들 및 기타 시민단체들도 없는 가운데, 6 분 동안 따뜻한 박수를 보냈습니다. 자발적으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우리의 현실과는 달리, 찬사, 위선, 공연, 북소리는 없었고, 아무도 "글로리 메르켈(Glory Merkel)"을 외치지도 않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러시아인들을 뜻하지요.)
독일은, 그녀가 전 동독 출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로 뭉쳤고, 패션이나 빛의 유혹에 넘어 가지 않고 부동산, 자동차, 요트 및 개인 제트기를 사지도 않은 화학 물리학자인, 이 독일 지도자에게 작별을 고하였습니다.
(푸틴이나, 다른 나라 지도자들의 화려한 사치를 빗대어)
그녀는 독일의 지도부를 위임 후, 그녀의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녀는 떠났고, 그녀의 친척들은 그들이 자기 나라에서 엘리트라고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18년 동안 한결같이 그녀는 옷을 갈아 입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 조용한 지도자와 함께 계셨습니다.
독일의 위대함이 하나님과 함께 하기를... !
기자 회견에서 한 기자는 Merkel에게 물었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항상 같은 옷만 입고 있는 것을 주목했는데, 다른 옷이 없지요?
그녀는 대답했습니다.
나는 모델이 아니라, 공무원입니다.
또 다른 기자 회견에서도, 한 기자가 물었습니다: 그녀는 집을 청소하고 음식을 준비하는 가사 도우미가 있는지를...
그녀의 대답이었습니다 : “아니요, 저는 그런 도우미는 없고,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집에서, 남편과 저는 매일 이 일들을 우리끼리 합니다.”
그러자 다른 기자가 물었습니다.
“누가 옷을 세탁합니까, 당신이나 당신의 남편?”
그녀의 대답이었습니다 : 나는 옷을 손 보고, 남편이 세탁기를 돌립니다. 대부분 이 일은 무료 전기가 있는 밤에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아파트와 이웃 사이에는 방음벽이 있지만, 이렇게 함으로 이웃에 피해를 주지 않게 되지요.
그리고, 그녀는 "나는 당신들이 우리 정부의 일의 성과와 실패에 대해 질문하여 주기를 기대합니다."고 말했습니다.
Ms. Merkel은 다른 시민들처럼 평범한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그녀는 독일 총리로 선출되기 전에도 이 아파트에 살았고, 그 후에도 그녀는 여기를 떠나지 않았으며, 별장, 하인, 수영장, 정원도 없습니다.
이 여인이 유럽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의 총리 메르켈입니다!
* 어느 러시아인이 메르켈 총리에 관해 Facebook에 올린 내용
평안의 영성
엘리후는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욥에게 충고하고 있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하나님을 불의하다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내가 옳다는 말은 상대적으로 하나님을 불의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인간적으로 보면, 알 수 없는 이유로 극심한 고난을 당하는 욥이 이렇게 하나님의 섭리를 懷疑(회의)하는 것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이해하는 문제와 원리 원칙은 다른 문제이다. 인생은 해답이 없다. 오직 하나님 만이 해답을 갖고 계실 뿐이다. 유태인 학살, 미얀마의 군부 학살, 문재인 정권의 교회 탄압... 우리는 그 해답을 알지 못한다. 인생은 해석의 문제이다. 인생의 해석은 각자이다.
엘리후는 욥의 상황을 충분히 알지만, 하나님의 의는 의라고 말하고 있다. 이 원리에 입각하여 욥에게 끝까지 하나님을 배반치 말라고 충고한다. 그리하면 평안을 얻을 것이라고 한다.
29절 말씀에서, 엘리후는 주님이 주시는 평강은 아무도 막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주께서 사람에게 평강을 주실 때에, 누가 감히 잘못하신다 하겠느냐?”
반대로 ,“주께서 자기 얼굴을 가리실 때에, 누가 감히 뵈올 수 있으랴?”
우리는 힘들고 어려울 때에라도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시며, 이 연단과 시험 후에 축복을 주실 하나님을 불신해서는 아니된다. 이 확실한 믿음으로 나아 갈 때에 마음의 平安(평안)> 平和(평화)> 和平(화평)> 平康(평강)이 있다.
이 어지럽고 혼돈한 세상에서 마음의 평강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본문의 평강은 “마음의 평화”를 말한다. 성숙한 그리스도인도 환경이나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한 고통을 당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마음의 평화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마음이 여린 사람이다. 자신의 고통이나 타인의 고통에 대하여 민감한 사람이다. 이러한 연약한 마음으로 어떻게 평화를 지속할 수 있는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날마다 영혼과 육체 사이에서 끊임 없는 갈등을 겪는다. 이 갈등 속에서 어떻게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가?
참 그리스도인의 평화는 주님에 대한 신뢰 때문에 온다. 고통과 고난의 현장 속에서 그는 무력할지라도, 주님의 인도하심을 믿는다. 그러므로 평화를 누린다. 억울하게 죽어 가는 사람을 바라 보면서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을 때에라도, 그는 주님이 살아 계심으로 이 일 위에 간섭하심을 믿고 평화를 누린다.
이 평화는 무책임과 방관에서 오는 평화가 아니다. 가장 깊은 참여 속에서 오는 평화이다. 아파 하고 괴로워 하는 것 만큼, 누릴 수 있는 평화이다. 주님의 평화는 그래서 어린 아이처럼 단순하고 깨끗한 심령 만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
외적인 번영은 평화와 무관하다. 하나님은 오히려 세상의 고통에 시달리는 가운데 평화를 주신다. 신자의 평안은 끊임없이 주를 의지할 때에 지속되는 것이다. 참 신자는 죽음 앞에서도 주를 의지함으로 평안을 누리는 것이다.
1.주님이 주시는 平安(평안)> 平和(평화)> 和平(화평)> 平康(평강)을 지속하려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2.平安(평안)> 平和(평화)> 和平(화평)> 平康(평강)을 누리려면,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게 살아야 한다.
3.平安(평안)> 平和(평화)> 和平(화평)> 平康(평강)을 누리려면, 모든 걱정 근심을 주께 맡겨야 한다.
4.平安(평안)> 平和(평화)> 和平(화평)> 平康(평강)을 누리려면 기도로 날마다 주께 고하는 삶의 습관을 길러야 한다.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요14:25-28절
(25)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26)보혜사(保惠師)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聖靈)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27)평안(平安)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平安)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世上)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28)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면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
교회생활 중에 마음에 상처를 입고 교회를 떠나는 분들이 많다. 특히 강한 설교에 상처를 받아 마음이 찢어지고 상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한 가지 알 것은 상처를 많이 받아야, 강한 믿음이 된다. 상처를 많이 받아야 사람이 성숙해진다. 가만히 보면 상처를 잘 입는 분들일수록 그 신앙에 문제가 많고, 성격에 모가 많고, 독단적이고, 편견에 사로 잡힌 사람이 많고, 신앙이 잘못된 사람들이 많다.
누군가는 그 잘못된 신앙을 깨뜨려 주어야 한다. 신앙이 강하고 바른 신앙이 되어야, 하나님의 축복과 은총이 함께 하는 것이다.
오늘 예배에 나오신 분들은 믿음이 있는 분들인 줄 알고, 강한 말씀을 좀 전하고자 한다. 다소 마음이 상하시고 찢어지는 가운데에서라도, 은혜 받으시기 바란다.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 3년 동안이나 친히 함께 먹고 자면서 제자를 가르치셨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자,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가르쳤던 제자들은 한 사람도 남김없이 뿔뿔이 다 흩어져 버렸다.
본문 말씀을 보시면,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이 다시 제자들을 모으시고, 말씀하신다.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다. 그러나 나는 이제 가야 한다. 내가 가고 나면 보혜사, 은혜를 보증하시는 분, 곧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의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님이 오실 것이다. 그 성령님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지금까지 말한 모든 것을 생각하게 하실 것이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준다.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는 전혀 다르다. 이제 이후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 할 필요도 없게 된다. 왜냐하면 성령님이 너희와 늘 함께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내가 떠나 가는 것을 섭섭히 여길지 모르지만,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고 따른다면 오히려 내가 가는 것을 너희는 진심으로 기뻐해야 한다. 내가 떠나 가야 성령님이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 성령 하나님으로 우리와 함께 계신다. 예수님은 성령님의 모습으로 우리 속에 와 계신다. 이제 누구든지 하나님을 찾으려는 자는 성령 하나님을 찾지 아니하고, 성령 하나님을 모르고는 참 신앙, 참 하나님을 모르게 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성령 하나님을 전혀 모른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지 아니하고, 전혀 엉뚱한 허공을 치는 신앙생활과 기도를 하고 있다.
여집사님이 두통이 있다고 했다.
순간 내 마음 속에 “내가 저 집사님의 양쪽 관자놀이를 누르고 전체가 함께 간절히 기도하면, 틀림 없이 낫는다.” 는 확신이 왔다.
그래서 “집사님 두통이 낫도록 기도합시다.” 했더니, 집사님 하는 말이 “괜찮아요. 집에 가서, 약 먹지요.” 했다.
순간 믿음이 탁 깨어져 버렸다. 그래서 그냥 기도하고 말았는데, 나오면서 내 마음 속에 “안 나았을 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분! 우리는 성령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동행하고 임재하고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안 믿는다. 그래서 삶에 기적이 없다. 신앙의 역사가 없고, 생동력이 없다.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수준의 신앙생활 밖에는 못한다.
그러나 얼마나 메마르고 공허하고 갈급한가?
젊은 날 저는, 평생을 만성적인 두통에 시달려 왔다. 일주일에 2일 정도는 강한 두통이 온다. 그럴 때마다 사리돈을 먹었다. 아마 제가 지금까지 먹은 사리돈의 숫자는 여러 수 천개가 넘을 것이다.
언젠가 심방을 가서 기도하는데, 아침부터 강한 두통 속에 시달리고 있었다. 마침 심방 받는 집 성도가 두통을 호소했다. 권사님이 대표기도 하는 사이에 혼자 속으로 기도했다.
“하나님! 제 두통을 없애 주십시오. 자기 병도 못 고치는 자가 성도의 두통이 없게 해 달라고 기도한들 낫겠습니까?”
양쪽 관자놀이를 꽉 누른 채, 1분 정도 강하게 기도했다. 머리가 나아 버렸다.
그 날 후 벌써 보름이 넘었다고 생각되는데, 한 번도 머리가 아프지 않았다. 아마 모르긴 해도 저는 이제 다시 두통이 오면 사리돈 먹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기도하고 고쳐 버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동호 목사는 두통에 대한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의사에게 고민을 말하니, “아니 목사님! 그럼 그냥 사리돈을 먹어요. 뭘 그리 고민해요?” 하더란다.
신유로 고치려는 나와 관점이 이미 다른 것이다. 나는 이제 온전히 두통으로부터 자유했다.
여러분! 성령 하나님은 오늘 이 순간, 아니 일평생 동안 우리 가슴 속에 와 계신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성령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그 분에게 기대하지도 않고, 역사를 바라지도 않고, 그 분에게 호소하지도 않는다. 그 분을 아예 외면해 버리고 산다. 아니 잘 모르고 산다. 성령 하나님이 계신지, 어디 계신지도 모르고 산다. 완전히 허공 치는 신앙생활 한다.
늘 귀를 기울여 성령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전심으로 그 분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 내 마음에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내 삶이 어떻게 달라져 가기를 원하시는지, 내가 무엇을 하기를 바라시는지, 성령 하나님이 내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언제나 귀를 기울이고 있어야 한다.
저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특별한 사람들인 줄 알았다. 그런데 우리와 똑 같은 사람들이었다.
엘리야가 얼마나 위대한가?
그런데 야고보 사도는 말하기를, “그는 우리와 성정이 똑 같은 평범한 사람” 이라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평범한 그들이 그렇게 놀라운 사람들이 되었는가?
성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성령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성령의 권능을 소유했기 때문이다. 자기 가슴 속에 계신 성령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하며, 성령 하나님과 동행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성령 하나님을 만나지 아니하고서는 우리 신앙생활은 의미가 없다. 역사가 없다. 변화가 없다. 기쁨도, 감사도, 진정한 내적 평안도 없다. 사실을 말하면 우리가 “기쁘다, 평안하다, 감사하다” 하는 것은 전부 세상 것에서 오는, 우리 영혼을 속이는 헛된 환상들일 뿐이다.
주신 말씀 중에서 예수님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말씀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무엇이며, 세상이 주는 평안은 무엇인가?
예전에, 제가 섬기던 교회 여집사님 한 분이 제가 그 교회를 떠난지 1년 쯤 후에 전화를 해 왔다.
“목사님! 면허증 있으세요?”
“없어요.”
“면허증 따세요. 제가 차 한 대 사 드릴께요.”
웃고 말았다.
한 달쯤 후에, 또 전화가 왔다.
“목사님. 기도 중에 꼭 목사님께 차를 사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갑자기 제게 돈이 생겼는데, 기도 중에 교회 건축헌금으로 1,000만원 드려야겠다는 믿음이 와서 당장 헌금해 버렸어요. 그 다음 생각하니 목사님 차 생각이 나서, 돈을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났어요. 며칠 내로 저희 집에 오세요. 돈을 드릴께요.”
여러분! 얼마나 기쁜 일인가?
그런데 별로 기쁘지 않았다. 기대가 되지도 않았다.
그래서 가지 않았다.
그 집사님이 빈 말을 할 사람이 아닌 것을 알았지만, 그런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기나 긴 세월들이 지나 갔다.
나는 그 동안 총 8분의 목사님들에게 차를 사 드렸었다.
내 평생 100여 대는 사 드리지 않을까 싶다.
저는 지금도 생각해 본다. 만일에 제가 그 때 돈을 받아 와 차를 샀더라면, 기뻤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소유로 인해 생기는 기쁨은 세상이 주는 기쁨이다. 믿음 때문에 오는 기쁨 같지만 아니다.
사업이 잘 되어 오는 기쁨과 감사, 자녀가 일류 대학에 들어 가 오는 기쁨, 집을 헐 값에 사서 기쁜 마음, 주님이 축복으로 주시는 평안이요 기쁨인 것 같지요? 천만에. 모두 세상 기쁨이다. 증명해 볼까?
사업이 잘 되어 오는 기쁨과 감사?
사업이 안되면, 불평과 원망으로 바뀐다.
자녀가 일류대학에 들어 가 오는 기쁨?
대학 떨어지면, 낙심과 좌절로 바뀐다.
집을 헐값에 사서 기쁜 마음?
집을 억울하게 빼앗기면, 마음 속에 씻을 수 없는 분집이 생긴다.
실제로 나는 부도가 나서, 억울하게 집 전세금 2,000만을 빼앗긴 경험이 있다.
그렇다. 정말 그렇다.
아니다. 아니다. 우리는 착각하면 아니된다.
돈 한 보따리가 생기면 평안이 온다.
그러나 얼마 못간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가짜이다.
젊은 남녀가 서로 좋아 죽고 못 살아, 결혼해서 신혼 가정을 꾸미면 행복이 온다. 그러나 불과 1-2년이다.
썩고 변질되고 사라지는 것은 전부 세상이 주는 평안이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 감사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이것은 철저히 내면적인 것이요, 영적인 것이다.
소유적인 것, 환경적인 것,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의 이 모든 것이 다 없어지고 사라져도 그대로 조금도 변질 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평안이요 기쁨이요 감사이다. 내 앞 길이 멀고 험하여도 주님만 따라 가는, “오직 예수” 그 믿음 안에 있는 평안이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 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목사들과 성도들의 믿음이 얼마나 될까?
진실한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 과연 몇 몇이나 될까?
진실한 평안을 소유한 성도들이 과연 몇 몇이나 될까?
10%일까, 20%일까?
성도들은 그렇다 치고, 내 믿음은 그러면 도대체 어느 경지까지 와 있는 것일까?
나는 과연 이러한 설교를 할 자격이나 있는 것일까?
진실한 믿음이란 세상의 변화와 자신의 환경의 변화에 따라 흔들리는 믿음이 아니다. 자신이 죄짐, 질병의 짐, 무거운 삶의 짐을 십자가 밑에 풀어 놓은 믿음이다. 주님께 다 맡기고 주님 만을 바라 보는 믿음이다.
어느 신실한 주의 종은 “일생 동안 주를 믿었으나, 내 마음 바쳐 믿지 못했네.” 라고 고백했다.
우리 가운데 평안과 행복을 찾아 헤매지 않는 사람이 여기 어디 있는가?
그러나 진실로 평안과 행복을 찾았는가?
예수를 믿지만, 우리 자신을 바라 보면 한심한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믿음이 없다. 내적 평안과 기쁨이 없다. 기도 응답의 확신이 없다. 그저 답답하고,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게 영적으로 캄캄할 뿐이다.
환경도 캄캄하고, 가정도 캄캄하고, 내일도 캄캄하고, 더 더욱 내 심령은 시커먼 암흑 천지 속에 갈 바를 몰라 헤매고 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가 은혜를 받아야 한다. 내가 생각하고, 내가 만든 믿음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이 부어 주신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 하나님을 내 가슴이 만나야 한다. 성령 하나님이 내 영혼을 붙드셔야 비로소 삶이 변하고, 평안이 오고, 새로운 영의 세계가 전개되는 것이다.
은혜를 사모하고, 은혜를 받아야 한다. 한번 감정적으로 충만해지는 그러한 지나 가는 은혜가 아니라, 좋은 설교 한 편 듣고 감동하는 그런 은혜가 아니라, 내 삶을 결단하고, 내 삶을 바쳐 주님을 만남으로 오는 그러한 은혜를 받아야 한다.
오늘 이 시간이 바로 그러한 날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오늘이 지금까지의 나의 신앙의 관점이 변하고, 나의 삶이 변하고, 나의 영혼이 변하고, 나의 기도가 변하는 그러한 성령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예수님을 믿고 수 십년이 지나도 얼굴이 행주걸레 짜 놓은 것 같은 사람들,
남의 흠과 수치를 할퀴어 점점 더 큰 상처를 만드는 사람들,
믿음이 자라지 못하고 말라 비틀어져 있는 사람들,
가슴이 뜨겁지 못하고 냉냉한 사람들...
다 平安(평안)> 平和(평화)> 和平(화평)> 平康(평강)이 없는 사람들이다.
다 성령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다.
다 주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이다.
다 변하지 않은 사람이다.
다 거듭 나지 못한 사람이다.
다 일평생 교회 다니고서 마지막에는 지옥 갈 사람들이다.
그러니 헛수고 그만 하고, 일찌감치 나이 더 들기 전에 세상에 나가서 마음껏 향락을 누리고 죄 맛이나 실컷 보다가 지옥 가는 게 화끈하고, 차리리 낫다.
우리는 예수 믿으면서 부요하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고, 또는 고상한 인격이나, 많은 지식을 가졌기도 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허접 쓰레기들로 평안과 행복을 주시는 분이 아니시다.
돈을 바라 보는 사람, 지위를 바라 보는 사람, 세상에 관심을 두는 사람, 영적인 일에 관심이 없는 사람, 영적인 일들을 사모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역사하실 수가 없다.
젊은 목회자인 저는 꿈이 있었다. 돈이 마련 되면 외국 가서 공부를 몇 년 간 더 하여 박사학위를 받는 것이었다. 지금 석사학위는 있으니까, 몇 년만 더 공부하면 된다.
그런데 이제는 변했다. 이 시대에 진정한 목사는 박사 학위 가진 목사가 아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권능을 소유한 목사이다.
지금 저는 오로지 성령, 성령님 뿐이다. 저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사모하는 나에게 성령의 사람, 성령의 목사가 되게 해 주실 것이라는 인간이 줄 수 없는 기대감에 가득 차 있다.
지금 저는 마치 바람이 가득 든 풍선처럼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그런데 악령이 얼마나 역사하는지... 가정에서, 교회에서...
그러나 저는 쓰러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반드시 이기고 말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나를 붙들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성령 하나님은 세상 그 어느 것으로부터도 역사하시지 않는다. 믿는다 하나 세상에 관심이 가 있는 사람에게는 역사하시지 않는다. 관점이 변해야 한다. 마음이 오로지 하나님을 주목해야 한다.
어느 권사님이 시집을 갔는데, 첫 날 밤에 신랑이 돈 보따리를 한 아름 안고 들어 왔다.
“여보! 이걸로 우리 무얼할까? 당신이 쓰자는 대로 쓸 거야.”
권사님이 너무 너무 행복했다.
“쓸 데 없는데 쓰지 말고 잘 보관했다가, 장래에 찬찬히 계획을 세워, 삶의 밑천으로 삼읍시다.”
아내는 희망과 남편에 대한 든든한 신뢰감으로 온 세상이 황금빛으로 보였다.
그러나 얼마 후에 남편이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가 버렸다. 그 후 한 번 보여 준 돈 보따리는 두 번 다시 보지 못했다.
권사님은 생사를 알 수 없는 남편을 기다리며 절망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몸부림치며 기도했다. 철야하고, 금식하고, 울고 불고...
그러는 가운데 큰 은혜를 받아, 하나님의 성령의 사람이 되었다. 주님의 큰 역사를 감당하는 종이 되었다. 권사님이 되신 후, 그 분은 이렇게 고백했다.
“그 때 남편이 돈 보따리를 내 놓았을 때에, 예수 믿는 사람을 돈으로 미혹하지 마세요. 돈보다 주님 뜻에 맞게 사는 게 더 중요하지요 라고 말했어야 옳았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태백기도원(소원의 항구)의 이옥희 원장의 고백이다.
여러분!
우리 삶을 돌아 보자.
돈에 더 관심이 많은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데, 더 관심이 많은가?
물질이냐, 하나님이냐?
양심에 물어 보자.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가, 아니면 자신과 가족과 돈과 세상을 더 사랑하는가?
나의 진정한 양심을 한번 뜯어 보자.
우리 믿음은 가짜이다. 우리 믿음은 헛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교회당에 와 앉아있지만, 실상 우리는 하나님이 아닌, 내가 만든 가짜 신을 좇아 가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살면서 돈 때문에, 남편이나 아내 때문에, 자식 때문에, 병 때문에, 직장이나 사업 때문에 속이 썩는 분들... 아마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이 모두 그런 분들일 것이다.
속이 푹푹 썩는데, 무슨 평안이 있는가?
내 딴에는 아무리 기도해도 현실이 바뀌지 않는데, 무슨 수가 있는가?
그러나 여러분!
이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 절규하며 끝까지 매달려야 한다. 기도해야 한다. 성령 하나님을 붙들어야 한다. 내가 정말 하나님께 매달리고 있는가를 묻고 또 물어 보아야 한다.
인생의 바닥에 내려 가는 절망을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필사적인 기도를 드릴 수 없다. 자신의 죄성과 한계성을 처절히 느껴 보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을 찾을 수가 없다.
“도대체 이런 형편과 처지에서 내 몸과 마음이 이토록 고달프고 괴롭기만 한데, 나는 어떻게 합니까?”
고난과 고통, 번민 가운데 깨달아야 한다.
무엇을 깨달을 것인가?
하나님은 나의 생애가 얼마나 남았는지 알려 주시지 않는다. 내 앞 길을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가르쳐 주시지 않는다.
“너는 이런 그릇이다. 너의 장래는 이렇게 저렇게 될 것이다.” 말씀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의 음성은 삶의 불 같은 역경 속에서 들려 온다.
삶이 콩 볶듯이 볶이는 분, 앞 길이 막막하신 분, 도무지 기도 줄을 잡을 수 없고, 삶을 어찌했으면 좋을지 알 수 없는 분들은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어디 계실까? 나는 어떻게 주님의 뜻을 발견할까?” 몸부림치며 기도해야 한다.
성령 하나님을 만나려고, 찾고 또 찾아 가야 한다.
깨달아야 한다. 빨리 깨닫는 만큼, 하나님의 축복과 응답이 빨리 온다. 가야 할 길이 얼마나 창창한데... 시간이 얼마나 촉박한데...
이렇게 죽은 신앙생활로 허송 세월을 해야 하는가?
몸부림 치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성령을 찾아서 만나면, 자신의 사명을 바로 깨닫게 되고, 깨닫게 되면 기도 제목이 달라지고, 기도가 달라지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인정하시는 삶을 비로소 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성령의 삶이다. 이것이 진정한 평안의 삶이다. 이 하나님의 뜻 위에서 인생을 설계해야 비로소 제대로 된 인생 길이 전개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업가에게는 사업의 재능을 주신다. 봉사자에게는 봉사의 사명을 주신다. 가르치는 자는 가르치는 사명을 주신다. 하나님의 뜻에 반한 다른 길을 걸어 가며 아무리 기도해 봐야 헛 일이다. 그러므로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빨리 찾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신앙생활을 해도 순종적인 자세로 하나님의 뜻을 찾고 인생 설계를 해야지 기도가 응답이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철저하시고 명백하신 분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눈길을 피할 수가 없다.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헤아리고 중심으로 주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자신의 길을 발견하였을 때 하나님은 형통함으로, 평안함으로 응답해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우리의 세상적 안목이나 욕심을 그대로 다 가려 내신다. 우리는 진정으로 주님 안에서 자신의 길을 발견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형통의 축복이 저절로 찾아 온다.
인생을 살아 가며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사명을 자각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사명을 자각한 자에게 하나님은 바른 인생 길을 걸어 갈 힘을 주시고, 선한 것,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열성을 주시고,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귀한 마음을 주시는 것이다. 그럴 때 자신의 교만, 고집, 욕심, 내 뜻이 다 사라지고, 겸손히 하나님 예비하신 길을 순종으로 걸어 가게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한다.
자신을 온전히 내어 버려야 한다.
주님 안에서 인생 설계를 다시 해야 한다.
시모하는 마음으로 주님 만을 바라 보고, 달려 가야 한다.
세상에 맞추지 말고, 주님께 모든 것을 맞추어야 한다.
주님이 주시마 약속하신 평안을 달라고, 나를 변화 시켜 달라고, 간절히 간절히 사모하며 기도해야 한다.
우리의 부족함은 보혜사 성령님께서 가르치시고 인도해 주실 것이다. 모든 불안, 공포, 근심, 걱정, 병마, 고통, 문제, 악마의 그림자는 흔적도 없이 쫓겨 갈 것이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이 내 마음 속에 자리 잡을 때, 비로소 우리 인생은 변한다. 악마가 활동할 수 없는 주님의 평안을 소유한 심령에게는 저절로 하나님의 뜻이 펼쳐지고, 축복의 역사, 형통의 길이 전개되는 것이다.
이 놀라운 평안이 저와 여러분에게 차고 넘치시기를 축원한다.
2021.3.11.목. 성도는 양떼이다. 얼마나 연약한지 아는가?
1>.말 한 마디에도 실족하고, 잃어 버린다.
2>.헌금 얘기하면, 그만 시험 들어 버린다.
3>.강한 설교를 절대 견디어 내지 못한다.
4>.금이야 옥이야 해야, 겨우 붙어 있는다.
5>.조금만 관심이 없으면, 이내 사라져 버린다.
6>.자기 부인은 절대 안된다. 그냥 그대로 데리고 가야지, 자기 부인을 강요하면 그만 부서져 버린다.
7>.연약한 자는 그 수준대로, 눈 높이를 맞추어 주어야 한다.
8>.절대 강제적 방법, 언어의 폭력, 강요, 억지, 높은 톤, 험악한 인상, 젊음의 패기... 등은 안 통한다. 언제나 자상한 아버지, 이해하는 넓은 마음, 품어 주는 안식처, 잔잔한 웃음과 미소... 또 그래야 진짜 목자이다.
9>.조금만 힘들어도, 감당치를 못한다.
10>.꼭 어린 자녀 양육과 똑 같다. 긴 시간이 걸린다. 문제는 성도가 그렇게 오래 붙어 있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목사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고,
목회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또 크나 큰 문제는 이렇게 성도의 비위를 맞추며 목회하면,
천국 갈 백성을 하나도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진정한 목사의 목회 哀歡(애환)이 있다.
2021.3.8.월. 00시 55분. 땀과 눈물과 피 흘림(4P)
목사는 영적 價値(가치)를 먹고 사는 자이다.
같은 돈 100만이라도, 그 영적 가치는 다 다르다.
악한 돈 100만도 있고,
더러운 돈 100만도 있고,
썩은 돈 100만도 있고,
그냥 돈 100만도 있다.
목사가 자기 땀과 눈물과 피 흘림이 없이,
교회의 공적인 돈으로 선행을 베풀고,
구제하고,
지출하는 돈...
그런 돈들이다.
개척교회 목사는 피치 못할 경조비도, 교회 사무비도, 식사비도 다 자기 피 같은 생활비에서 돈이 나간다.
나는 돈이 없어 마땅히 경조비를 지급해야 할 곳에도 하지 못한 경우가 너무나 많다.
땀이 묻은 100만도 있고,
눈물이 묻은 100만도 있고,
피가 묻은 100만도 있다.
내게 너무나 소중한 分身(분신) 같은 목사님이
토요 <성령사관학교>에서 작은 헌금을 드리며,
“물질의 문제를 풀어 주소서” 기도한다.
그 입이 무거운 분이라,
가슴이 미어진다.
큰 돈도 아닐 텐데...
단지 몇 백만원만 있어도
헌금 잘 드리고, 행복한 목사님일 텐데...
단돈 50만이라도 드릴 수 있다면...
이렇게 절절이,
눈물로,
아픈 가슴으로 살아 가는 삶이
아름답다.
부자로 살고,
풍요로 살고,
배를 두드리며 남의 가난과 아픔의 현장을 모르고 사는 삶은
곧 지옥 행의 삶이다.
그냥 목사는 필요 없다.
땀을 뿌리고,
눈물을 뿌리고,
피를 뿌리는 목사라야
예수님을 닮은 목사이다.
가난해야 한다.
대책이 없이, 가난해야 한다.
절절이 가난해야 한다.
그리해야 진실로 탄식의 기도가 나온다.
애통의 기도가 나온다.
그러고도 평안과 자유와 행복과 풍요가 가득한 삶이라야
진정한 신자요, 목사이다.
나는 牧師(목사)이다.
주님! 돈 주세요...
저기, 저 분 좀 드리게요.
저 목사님 좀 살리게요...
나는 죽는 날까지
그러다가 죽을 것이다.
그리고 행복할 것이다.
땀이 있고,
눈물이 있고,
피 흘림이 있는 사람의 삶은
언제나 아름답다.
그리고, 오늘 바로 나의 소원이 이루어졌다.
3월 8일 월요일,
000 목사님께 60만 생활비 보내고 나니, 5원 잔고가 남았다.
너무 부자가 된 마음이었다.
3월 9일 화요일,
<기적 기도대성회> 헌금이 36만 들어 왔다.
강사이신 권재천 목사님께 경동시장에 가서 쇠고기 등심을 사 와서, 7명의 사람 들을 정성껏 대접하고,
강사비 36만 드리니,
또 잔고가 5원이다.
얼마나 행복한지...
아멘.
저는 진실로 부자입니다.
주님은 확실하고도 분명하게
하루 하루 저의 경제를 책임 지십니다.
그래서 저의 경제는
<5병2어 선교경제> 입니다.
<성령 컨퍼런스>에 온 지방의 목사님들을
코로나 탓으로 재울 데가 없어,
호텔에 방을 몇 개씩 얻어서, 재운다.
보라. 나는 얼마나 후한 부자인가?
주님의 일이라면 돈을 아끼면 안된다.
낭비는 더 더욱 안되지...
제2차 ‘5병2어 선교경제’ 기도:2021.3.10.수
주님! 오늘 우리카드 446만 막아야 합니다.
12일에 비씨카드 125만 막아야 합니다.
15일 이0송 목사 100만, 이0영 사모 100만, 아들 빚 100만, 현대카드 480만, 이0순 권사 100만, 서울부흥단 단비 100만, 안00 권사 생활비 100만, 차량비 67만, 30만, 적금 50만, 주택부금 20만, 강사비 200만, 4월 5일 권00 형님 목사 빚 330만+10만, 강00 목사님 빚 400만+15만, 총액 2,773만이 있어야 합니다.
오직 주님의 기적으로 채워 주옵소서.
주님! 일일이 채워 주옵소서.
주님! 제게 2,000만 선물을 주사, 카드 빚들과 약관대출 빚들을 좀 정리하게 해 주세요. 너무 복잡합니다.
오직 종을 인도해 주세요.
저는 언제나 돈으로 기쁜 사람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하루 하루 딱딱 채워 주시니까...
3월 10일 수요일,
오늘도 하나님의 돈의 기적의 날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일들에 쓸 돈들은 액수에 상관없이 그대로 딱딱 집행합니다.
내가 목숨 걸고 주님 일 하면,
주님은 딱딱 하루 하루 돈을 주십니다. 아멘.
사람들은 자기 안전벽을 구축하지만,
저는 이런 돈으로 주님의 일들을 밀고 나갑니다.
언제나, 매일 매일...
피를 철철 흘리면서...
사람들은 나를 욕하지.
미친 놈이라 하지.
그래...
나는 주님께 미쳤고,
주님의 일에 미쳤고,
그래도 돈도 일반 사람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이, 쓴다.
그리고 그들은 다들 나를 떠났다.
그러나 당신들이 버린
여기 나는,
여전히 주님이 붙들고 계시고,
기적의 <5병2어 선교경제>는 여전히 힘차게 돌고 있다.
매일 <총회서울부흥전도단> 의 부흥사 한 분 씩을 위하여 기도하라.
2021.3.10.수. 오직 하늘나라에 모든 삶을 던지는 <성령의군대> 대장군 강한나 목사
일전에 강한나 부목사님이 부산의 남편 박요한 장로님께 가면서, “앞으로 10여 일 가량, 부천의 저렇게 좋은 우리 집이 비어 있는데, 누가 썼으면 좋겠다.” 했는데, 몽골 선교사 김장환 목사님이 그 다음 날 오셔서, 집을 쓰게 되었다.
돈으로 따지면 하루에 모텔비로만 따져도 5만은 능히 되고, 집안 독채를 쓰니 일류 호텔이라, 10만은 능히 된다. 강목사님은 단 열흘 만에 천국에 100만을 투자한 것이다. 천국의 부자인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영적인 돈 계산을 할 줄 알아야 한다.
평소에 강목사님은 5일 간 새성교회당에서 자고, 2일 간 집에서 잔다. 그러면 몽골 선교사 김장환 선교사님은 반대로 2일 간을 새성교회당에서 자고, 5일 간을 강목사님의 집에서 잔다. 앞으로 몇 달 간 이렇게 계속될 일정이다.
요즘 세상에 어느 누가 자기 집안을 알알이 다 보여 주며, 민낯을 다 드러 내어 까발리나? 권재천 목사님이 하는 말이 강목사님은 천진난만한 아기 같단다.
그럼! 정말 티 없는 분이지!
하늘의 천사지...
한국교회의 부흥사인 나 배종부 목사의 새성교회는 연중 무휴로 계속 부흥집회가 돌아 간다. 월-수 <기적 기도대성회> 5회, 토요일 종일 <성령사관학교> 3강의, 매월 2박 3일의 <성령 컨퍼런스> 연속 12-15 강의, 주일 예배 2회, 매주 연이어지는 외부 출타 부흥성회, 이제 2021년 4월에 나 배종부 목사가 <총회서울부흥전도단> 단장이 되면, 연간 200여 회, 매일 2회 정도 연속될 부흥성회 인도와 동참...
이제 이후 강목사님은 나를 대신하여 강단을 맡을 일이 더욱 더 많아질 것이다. 주님의 일이 바빠서 집에도 가지 못하는 것이다.
강목사님은 매 예배 시간 마다 헌금을 만원씩 드린다. 십일조랑 주일 각종 헌금을 합치면 100남은 능히 넘는다. 다른 데 쓸 돈도 없지만, 전부 헌금이다.
나는 강목사님이 나의 박요한 시무장로님의 부인이기에 성도로 인정하여, 사례도 드리지 않는다. 2-3년 전에는 월 200만의 사례를 드리며, 함께 3분의 부목사를 썼는데, 코로나 사태 이후에는 돈이 없어, 못한다.
정말이지 강목사님은 단 돈 한 푼도 허비치 않고, 있는 힘을 다하여 모두 헌금한다. 강목사님은 영혼육의 모든 삶이 전부 주님께 드려진 삶이요, 점도 흠도 티도 없이 산순교로 헌신하는 위대한 종이다.
내가 늘 말하지!
봉사> 충성> 헌신> 산순교> 순교라고...
강한나 목사는 산순교의 단계에 그 삶이 다다른 사람이다. 오직 하늘의 사람이다.
모든 돈은 헌금 다 하고, 금 토 일 월 화 5일 간은 불편한 새성교회당에서 잠을 자며, 밤을 지새워 꼬박 기도하며, 그 많은 집회들을 다 인도해 내며, 모든 시간을 주님께 다 드린다.
강한나 목사님에게 제일 소중한 사람은 남편 박요한 장로이며, 영적 리더인 나 배종부 목사이다. 이들 부부는 나에게 목숨을 건 사람 들이다.
나 배종부 목사는 예배와 설교를 최고의 가치로 치는 사람이다. 나는 다른 것은 일체 하지 아니하고, 예배와 설교에 오직 목숨을 거는 사람이다.
강한나 목사님도 마찬가지이다. 그 스승에 그 제자이다.
이러한 제자 <성령의군대> 장군들이 지금 나에게서 10여 명 자라고 있다. 나의 관건은 이들을 어찌 키울까 이다.
설교를 훈련시키고,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강화시키고, 부흥성회에 강사로 내보내고, 각 교회들의 부흥과 사역을 불러 일으키고...
나는 靈眼(영안)이 열려, 사람들의 영적인 온갖 모습들을 다 본다.
늘 예수님을 뵈며, 귀신 들을 보며, 천사 들을 보며, 영적 현상들을 일일이 다 본다. 한 사람과 그 주변을 그냥 생중계 할 수 있다.
저들의 영적인 계급 들을 일일이 본다.
“주님! 강한나 목사의 별이 몇 개예요?”
영분별 해 보니, 강한나 목사는 이미 황금 왕좌에 앉은 여왕이다.
큰 별이 있고, 그 별 아래에 별이 4개가 자리했다. 5성 장군, 대원수이네...
왼쪽의 작은 별 날개 하나 부분이 조금 완성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아직 군사들이 없어, 영광의 빛이 없는 여왕이다.
조금만 문지르면 황금색 빛이 찬란하겠다.
이0선 목사님께 어느 이단 사냥꾼이 몇 가지 질문을 하더니, 바로 이단으로 몰더란다.
1>.목사님은 초대교회 이후의 계속적인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인정하십니까?
인정한다. 지금도 나의 사역에서 성령의 은사들과 권능들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2>.목사님은 천사들을 동원하십니까?
나는 천사를 동원하지 않고, 주님께 천사를 보내 주시도록 기도하고 있다.
3>.목사님은 신사도입니까?
아니다. 나는 철저한 말씀 중심의 사람이다. 나는 장로교 통합측의 가장 건전한 성령 사역을 전개하는 목사이다.
그러면 나 배종부 목사는?
내게 부흥이 일어나 사람들이 몰려 들면, 영락 없이 이단이 되겠네...
인터넷 상에 나의 글들이 천여 편 이상이 깔려 있는데...
오호라! 주여...
영안이 열려 영계를 본다고 해서, 다 이단으로 몰려야 하는가?
예배 시간!
대학 1년 평강이를 기도하는데, 아이가 도끼로 정수리를 내리쳐 두개골이 갈라지고, 발 앞의 바닥에는 선지 피가 흥건하다.
강목사와 엄마와 동생 순명이와 허0례 집사를 둘러 서서 기도하게 하는데, 다들 눈물로 기도해도 평강이는 눈을 뻔히 뜨고, 조롱하며 실실 웃고 있다. 그 눈이 마치 귀신이 씌인 것 같았다. 눈을 휘번덕거리며, 흰자위가 가득하고...
내가 눈을 감으라 하고, 아이를 안고 기도하니, 여전히 앞 정수리가 벌어져서 이마에 피가 철철 가득하고, 낫지를 않는다.
간절히 계속 기도하니, 마침내 아이의 머리가 봉합되고, 낫는다.
그러나 이마의 끔찍한 흉터는 그대로 있다.
다시 간절히 기도하니, 흉터가 서서히 없어진다.
아이의 마음에 드디어 용서할 마음이 생기고, 내적 상처가 아문 것이다.
나는 아이가 이렇게 충격을 받은 줄을 정말 몰랐다.
사람은 이렇게 사랑하는 부모 자식 사이라도 서로 그 마음과 감정을 모른다.
주님! 회개합니다.
우리를 바로 잡아 주옵소서.
우리에게서 오직 내적 상처와 아픔들을 다 걷어 가 주옵소서.
사랑하는 주님!
강한나 부목사님 같은 이런 소중한 제자를 제게 주셔서,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이번에 <부안흰돌교회>에 10회 부흥강사로 내보낸다.
중간에 내가 한번 가 보려 한다.
주님! 넘치도록 축복해 주소서.
강한나 목사를 통하여, 탁월한 말씀과 성령의 기이한 능력과 은사와 권능이 폭발하게 하소서.
<부안흰돌교회> 를 온전히 치료하고, 굳건한 반석 위에 세우고, 돌아 오게 하소서. 할렐루야!
2021.3.9.화. 십자가와 보혈의 은혜(6P)
대전 영음교회 권재천 목사 <기적 기도대성회> 설교
*나는 이렇게 은혜를 주는 탁월한 ‘십자가의 피’ 의 설교를 처음 들어 보았다.
창세기 22장
9.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 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15.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16.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19. 이에 아브라함이 그의 종들에게로 돌아 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주하였더라.
나의 소중한 형님 권재천 목사님의 설교 서론이다.
작년에 내 평생 처음 새성교회의 허름한 교회당을 계단으로 올라 오는데,
피 냄새가 났다.
알고 보니 강단의 십자가에서 나는 피냄새였었다.
새성교회에서 나는 피 냄새는 배목사님의 ‘섬김과 나눔’ 의 피 냄새였다.
그는 실제로 피를 철철 흘린다는 말을 예사로이 한다.
사람이 거짓말은 못 하는 법이다.
배목사님의 피 흘림을 배우려 하나, 너무 힘들다.
사순절의 대주제는 예수님의 피이다.
현대 교인들은 피 없는 십자가, 피 없는 예수를 믿으려 한다.
피가 없으면 힘이 없고, 생명이 없다.
아담은옷벗은것이무서웠다.
목욕탕에서불이났다.
다들아래나가슴이나얼굴을가린다.
그러나 다르게,
여관에서남녀가불이나서뛰쳐나오면,
부끄러운게아니고
사람들을 무서워 한다.
사진에 찍히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얼굴을 가린다.
죄를지으면
두렵고,무섭다.
사탄은두려움을준다.
파하게 하고, 도망 가게 한다.
사람이죄를지으면
하나님의사람들은
그 죄를 덮어 주고, 가려 준다.
그러나사탄의자식들은씹고,까발린다.
하나님은가죽옷으로아담을덮으신다.
양을죽여피를대신흘리게하고,
죄를가려주시어,
아담의두려움,무서움,부끄러움,수치를가려주셨다.
이 피의 절정이
십자가의 예수님이 흘리신 피였다.
사람은캄캄해지면무서워한다.
무섭고 두려운 것은 전부 사탄의 역사이다.
십자가는 가까이 다가 가야
예수님의 얼굴도, 고통도, 아픔도 보이는 것이다.
십자가를 멀리서 보면 강도인지, 예수님인지 잘 보이지 않는다.
너는십자가에얼마나가까이다가갔느냐?
십자가로 가까이 나를 이끄시고...
구레네 시몬은 십자가를 지고 가는데, 빨리 갈 수가 없었다.
빨리 십자가를 벗어 던져 버리고 싶은데,
내던져 버리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었다.
앞에서 비틀거리며 쓰러지는 예수님을 언제까지나, 끝까지, 뒤에서 따라 가야 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고서야
비로소 그는 십자가로부터 도망 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십자가가 이제
그의 가슴에 새겨져 버렸다.
구레네 시몬은 예수님의 일거수일투족을 저절로 가슴에 새겼다.
십자가를 제대로 배운 것이다.
십자가의 길은 예수님 가신 그 길을 똑 같이 걸어 가야 보인다.
가까이서 십자가를 보아야,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
예수님을 똑바로 뒤따라 가야, 예수님이 보인다.
아브라함은 나귀에게 지운 장작을 이상하게 아들에게 지운다.
그냥 나귀를 끌고 가기만 하면 되는데...
왜 하인과 나귀를 다 두고서
모리아 산으로 올라 갔을까?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죽일 때,
이미 함께 죽었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죽은 자를 다시 되돌려 받은 것이다.
이삭은 실제로 죽었었다.
그리고 부활을 선물로 받은 것이다.
오늘날 아브라함은
형법상 미성년자 유괴죄, 살인 미수죄가 될 것이다.
이삭을 죽이려는 계획을 아무에게도 말 못한다.
심지어 아내에게도...
목사가 사모에게도 지켜야 할 영적 비밀 들이 있는 법이다.
아브라함은 장작을 쪼갤 때에도,
모리아 산으로 올라 갈 때에도,
제단의 돌을 하나 하나 쌓을 때에도,
아들 이삭을 칼로 내리 치려 할 때에도,
아들 이삭을 죽이려는 의지가 변치 않았었다.
피 흘림을 배워야, 아버지이다.
피 흘림을 배워야, 목사이다
피 흘림을 배워야, 진정한 지도자이다.
피를 흘리면, 죄 사함과 자유가 있다.
목사는 피 흘림의 제사가 있어야 한다.
피 흘림이 없는 삶은 가짜이다.
피 흘림이 없는 목회는 가짜 목회이다.
피 흘리지 않는 목사는 가짜 목사이다.
피 흘리지 않는 신앙은 천국 갈 수 없다.
타일에 묵은 오래된 때는
잘 지워지지 않는다.
퐁퐁으로 싹싹 닦으면,
그 옆이 또 더럽다.
죄를 씻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죄는 피로만 씻겨진다.
오직 예수님의 피로만
죄가 씻겨진다.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이유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경외함을 아셨기 때문이다.
진실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신앙은 신앙이 아니다.
‘여호와 이레’ 란 하나님의 준비해 주심으로 사는 것이라는 말이다.
내가 살지 않는다는 말이다.
나는 아무 대책이 없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다 예비하신다.
네 믿음대로 되리라.
주일에 공부하느라 예배를 빠진 학생의 성적이
성수 주일한 학생 보다
더 잘 나온다는 법은 없다.
권재천 목사님의 딸이 이화여대에 가는데,
자기가 공부 잘 해서 간 게 아니다.
주일을 잘 지키고서도, 일류대학에 걸리더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큰 복을 주신다, 약속하셨다.
자녀가 많으면, 복이 크다.
오늘날 결혼과 자녀 양육을 걱정케 하고, 그래서 젊은이들이 결혼을 못하게 아는 이유가 바로 사탄의 무서운 계획이다.
주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다.
“성들을 차지할 것이다.”
“너의 자손으로 인해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나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이 복을 받는 것이
진정한 복을 받은 사람의 증거이다.
나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이 복을 받을 비율이 얼마인가가
곧 그의 영적 그릇의 크기이다.
나 배종부 목사는
개인은 100배, 사역은 1,000배, <성령의군대>는 50만의 축복이 비전이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복 받음은 공식과 같아서
그대로만 따라 가면,
그대로 복을 받는다.
1.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따라야 한다.
눈과 귀가 열려야 산다.
2.들려진 말씀대로 믿어야 한다.
3.한 가지만 확실하면, 사람은 설 수 있다.
4.순종은 피 흘림이다.
자기 부인이다.
우리 생각을 내려 놓고, 순종하라.
내 것을 포기하면, 자유가 온다.
내려 놓으면, 자유하다.
내가 붙들고 있는 것이 나를 얽어 맨다.
가장 사랑하는 것을 포기함이 진정한 자기 부인이다.
하나님은가장사랑하는것을포기하신다.
피흘려포기하신다.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다.
그피가힘을주고,
자유를주고,
생명을주시는것이다.
주님!
이번사순절에는
예수님의피냄새를맡게해주세요.
진실로보혈을만나게해주세요.
아브라함이피흘렸듯이,
이삭이피흘렸듯이,
예수님이피흘렸듯이
나도피흘리게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