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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민락(與民樂) 원문보기 글쓴이: 삼소(三笑)창원
【 김환수 싸부님의 특강 】
1. 대금산조에 관하여
2. 우리악기에 관하여
3. 음정에 관하여
4. 대중가요에 관하여
산조(이생강류)는 인간이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생로병사를 표현한 것이다.
시작 부분이 격한 것은, 자궁을 막 벗어난 탄생의 울음소리를 표현한 때문이고,
중간은, 살아가면서 겪는 희노애락(喜怒哀樂) 등 숫한 우여곡절을 표현한 것이며,
끝은, 생을 마감하기 직전 잠깐 활기를 띄다가 고요한 영면을 맞이하는 형식이다.
산조(散調)를 흩어진(散) 조성(調聲)이라고 말하면 이해력이 부족한 것이다.
서양의 교향곡이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라면,
우리의 산조는 나무에서 떨어지는 낙엽이다.
사과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떨어지는 동선(動線)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지만,
낙엽은 바람이 불던 불지 않던... 어떠한 동선을 그리며 떨어질 지 예측할 수 없다.
낙엽이 살랑살랑 떨어지는 자연스러운 동선이 바로 조성(調聲)이여,
그러한 동선(動線)의 조성(調聲)으로 구성되는 것이 산조인 것이다.
항상 같은 높이에서 낙엽을 떨어뜨려도... 떨어지는 동선이 늘 다르듯이,
연주할 때... 연주자 기분이나 무대 분위기에 따라서 산조는 항상 달라진다.
따라서 산조는 미리 짜여 진 곡이 아니라, 그 때 그 때 달라지는 즉흥곡이다.
대금산조를 제대로 하려면 먼저 우리장단의 한 배를 알아야 하고,
그 한 배 안에서 밀고 당기는 박자놀이와 즉흥이 가능해야 한다.
이생강명인과 원장현명인 등을 일컬어 명인이라 함은 바로 그런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상황과 분위기에 따라서 조성(調聲)을 자르고 붙이고 밀고 당기고,
또 연주 할 때마다 조금씩 다른 가락이 나오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산조이다.
자유로운 조성(調聲) 변화와 예견되지 않은 쉼표에도 어색하지 않는 음악...
고수(鼓手)와 청중의 추임새가 함께 만드는 세계 유일의 음악... 그것이 산조이다.
서양음악에서도 예견되지 않은 쉼표를 활용했던 유파가 있었지만 실패하였는데,
쉼표 등 동양적인 음악 특성을 살린 윤이상 선생님의 곡들은 나름 대접을 받고 있다.
우리 산조에는 우조와 계면조 사이에 우계면이 있고, 서양음악에는 장조와 단조
사이에 브릿지가 있듯이, 모든 음악은 정점에서 서로 만나고 소통한다.
산조는 소리더늠과 시나위더늠으로 나뉜다.
더늠이란 더 넣는다는 뜻으로, 스승으로부터 배운 가락에 혹은 자신의 가락에
새로운 가락을 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음악이든 편곡을 할 수는 있지만,
가락을 더 넣을 수 있는 음악은 산조뿐이다. 여기서 더늠을 드늠으로 쓰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본뜻과 일치하지 않는다. 이생강 선생님이 산조의 더늠으로 120분 산조를
발표 하신 것은 오래 전 일이다. 조만간 4시간짜리 산조가 나올 예정이다.
십 수 년 전 겨울, 강원도 어느 산 공부에서 이생강 선생님과 나눈 대화이다.
“이 사람아 산조가 뭔지를 모르겠어!”
“선생님이 산조를 모르시면 저희는 우짜라꼬 예?”
“....... 내가 알고 있던 산조는 산조가 아니야“
“???????????”
“허허... 이제 보니 이 세상 모든 것이 산조인거야”
“......”
이생강은 모차르트라는 표현은 여기서 시작된다.
피아노에 손가락만 올리면 음악이 되었다는... 모차르트
이생강 선생님은 대금만 잡으면 산조가 더늠이 되어 흘러나온다.
거기다 그 모든 것을 다 기억 하신다.
본인 같은 경우 수십 년을 하고도 짜여 진 산조가락도 제대로 못하는데...
두 시간, 네 시간짜리 산조가 어디서 나오며 외우기는 또 어떻게 외운단 말인가?
그래서 당신은 천재 이상의 기인이며 불세출의 연주가이자 작곡가인 것이다.
세계에서 개인 독주곡으로 두 시간 이상을 즉흥을 가미하여 연주하는 경우가 있는지
무지한 본인은 들어본 적이 없어 모르겠다.
인간의 한계를 거스르는 분... 그 분이 바로 이생강 선생님이다.
보통사람이 대금을 백년 열심히 불어도 못 따라갈 정도이고,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대단한 연주가라는 사실은 유파를 떠나서 대개 인정하는 걸로 안다.
팔순을 바라보는 연세에도 정정하게 연주활동을 하시는 당신의 비결은
엄청난 시간동안... 대금을 불어오신 만큼의 복식호흡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산조대금의 본청은 평취임종이다.
기본음정이 C#인 대금으로 연주할 때 평취임종 본청을 그냥 불면,
정확한 C#이 제대로 안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다스름 형태로 汰潢汰南..太林을 불면,
전공자의 경우 대개는... 튜닝기로 재어보면 C# 제로가 정확히 나온다.
하지만 평취임종을 제외한 다른 모든 음정은 튜닝기와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산조대금 취구의 좌우 폭은, 음정을 조절하기 위해서 3cm정도로... 본래 넓었다.
그런데 요즘은 쉽게 소리를 내기위해서 취구가 점점 작아지는 추세이다.
취구가 작으면 소리가 쉽게 나고 뱃고동 소리도 잘 나지만 음정조절에 불편함이 있다.
대금산조의 경우 각 연주자 마다 기준 음정이 조금씩 차이가 난다.
중요한 것은... 독주 음악인 산조는 첫 음정이 기준이 되어
끝까지 그 음정을 유지하면, 맞는 음정의 연주가 되는 것이다.
이생강류 대금산조는 도입부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처음 처녀성으로 나오는 南汰는 대금을 제키지 않고 #을 내야하고,
다음에 나오는 南汰 南汰...는 대금을 제켜서 #을 내야한다.
이생강류 대금산조는 클래식이다.
클래식을 들으면 일반인은 졸릴 정도로 부드럽다.
억지로 들으라고 강요하지도 않고 그냥 물 흐르듯 흘러간다.
시작은 알아도... 언제 끝났는지도 모르게...
이생강류 대금산조는 그렇게 물 흐르듯 부드럽다.
이생강류 대금산조는
① 산조대금이 낼 수 있는 18개의 음을 모두 사용한다.
② 갑자기 등장하는 배임종과 거침없이 내야하는 중청황종이 연주 중에 종종 나온다.
③ 중중모리에 나오는 메나리조나, 자진모리 끝에 나오는 두 장단의 다루치기를
한 호흡에 해야 하는 등 가락이 까다롭다.
④ 엇 박 장단이 많아서 프로나 고수(鼓手)들도 장단 맞추기 힘들어 한다.
⑤ 헛바람소리 없는 맑은소리를 힘 있게(힘을 빼고 힘 있게 불어라!!) 내야하고
청소리는 최대한 절제해야 하는 톤 컬러... 가장 중요한 것이 음색이다.
⑥ 요즘은 이생강류 대금산조가 점점 희소가치(?)를 가지는 듯하다.
위의 이유로... 이생강류를 자신 있게 불 수 있는 전공자가 많지 않다.
아마추어는 소리는 좋으나 연주가 어려워서 이생강류를 선택하지 않는다.
(본인이 십 수 년 대금을 불다가, 늦깎이로 들어간 마산창신대학 학부시절 기말시험 준비 중
출강 교수님으로부터 장단이 틀렸다는 지적에 같은 가락을 수도 없이 분 적이 있다.
결국 교수님 스스로 장단을 잘못 세었다고 사과를 한 적이 있다.
전문가인 교수님마저도 장단을 못 맞출 정도의 엇 박 장단이다)
얼마 전 마산 3.15회관에서 선생님의 장단을 잡은 적이 있는데 리허설 때와 다르게
본 공연에서는 가락을 바꾸시는 바람에 무척 당황해서 선생님께 항변을 했다.
“왜? 왜 그러셨습니까?”
“자네가 그 가락 장단을 틀릴 것 같아서...”
지정고수가 아니면 어려워하는 가락이니 그저 황송할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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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환수 싸부님의 특강 】
1. 대금산조에 관하여
2. 우리악기에 관하여
3. 음정에 관하여
4. 대중가요에 관하여
우리악기를 5음계니 6음계니 하는데 이는 악기론에 대한 무지의 소치이다.
우리민요의 경우3. 4. 5음계 등으로 이뤄져 있지만 악기 자체가 그러한 것은 아니며,
특히 산조나 판소리의 경우 12반음계로는 절대 표현 불가능한
거의 무한대의 음계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 생강, 원 장현 명인의 가락 중에서 평취 南汰↘南 을 연주할 때,
汰에서 南까지 자연스럽게 끌어내리는 음의 경우와,
민요에서 “새벽 서리↘찬 바람에..”에서 리↘의 끌어내리는 음의 경우,
그 끌어내리는 음정을 반음(100센트)으로 구분하는 것은 절대 불가하다.
왜냐하면, 汰에서 南으로 끌어내리는 사이의 음계는 거의 무한대이기 때문이다.
전통음악과 전통악기의 활용에 대해서 착각을 하면 안 된다.
전통음악은 전통음악이며,
전통악기는 전통음악과 대중음악 서양음악 등
다양한 음악을 연주자의 기량에 따라 연주하는 악기인 것이다.
서양의 클래식을 연주하는 피아노 [원명 : 피아노포르테]가
다양한 음악을 연주한다고 해서 클래식을 오도하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음악의 성격과 악기의 기능 구분을 확실히 해야 한다.
전 세계의 유명한 민요는 5음계가 많다.
이는 음계가 많은 음악은 대중이 받아들이기 어려워 도태되는 것이 원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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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환수 싸부님의 특강 】
1. 대금산조에 관하여
2. 우리악기에 관하여
3. 음정에 관하여
4. 대중가요에 관하여
서양음악과 악기는 음정이 완벽하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기준 음 A음(라)이 440Hz로 고정되기 전에는
연주자마다 각기 다른 음정으로 연주 하였다.
피타고라스 음계도 생성과정에서 수학적으로 엄격하게 계산하면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는 “피타고라스 콤마”의 오류가 있었고,
순정률을 거쳐서 평균율음계로 정착되었으며
알렉산더 존 엘리스(Alexander John Ellis)가 센트(cent)란 단위를 창안하면서
반음은 100센트 온음은 200센트 한 옥타브는 1200센트로 고정되었다.
우리음악을 평가하는 사람들이 우리악기로 서양음악을 연주하면
음정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는데 이는 우리가 가장 지양해야하는
서양음악 사대주의다. 서양음악의 경우도 공식적인 440Hz가 있음에도
요즘은 기준 음을 더 올려서 연주하는 경우가 많다.
음정이 올라가면 청중에게는 잘하는 연주로 들리기 때문이다.
결국 공식적인 음정이란 이론에 불과하고 현장에서는
지휘자 혹은 연주자의 취향과 선택에 의해서 기준음정이 결정된다.
이에 의하면 우리악기로 서양음악을 연주할 경우,
기준 음이 서양음악이 정하는 440Hz의 기준과 맞지 않더라도
첫 음의 기준으로 전체음정이 유지되면 맞는 음정인 것이다.
요즘들어 서양음악도 440Hz를 반드시 지키지는 않는다.
청중이 즐거워한다면 아름다운 연주가 되는 것이다.
우리 악기의 기준으로 보면 서양악기가 음정이 틀린 것이다.
고로 어느 특정한 기준의 잣대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초보자라도 아리랑을 부르면 어색하지 않은데, 대중가요를 부르면 대개는 어색하다.
이는 대금으로 서양음악을 연주할 경우 고정운지로는 나오지 않는 음이 종종 발생하며
이때는 음정을 이동하여 맞출 수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대금 연주자가 절대 음정이 아닌 음정의 근사치를 사용하는 것에 대하여
음정이 틀렸다고 이의를 제기한다면... 이는 지나친 월권행위가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인간이 구분할 수 있는 음정의 한계는 6센트 내외라고 한다.
반음정의 6/100 이하로 차이가 나면 대개의 사람은 못 느낀다는 것이다.
컴퓨터가 아닌 인간이 연주하는 음악은... 서양음악이든 우리음악이든
완벽 할 수 없으며, 근사치가 되면 음정이 맞는다고 느끼는 것이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악보를 만들어 교향곡을 들어보면
완벽한 음정이라 완벽한 음악이 되어야 할 것임에도... 전혀 그렇지 않다.
천재 연주가가 연주한 음악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음 한 음 분석하면,
컴퓨터처럼 완벽한 음정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따라서 완벽한 연주는 있어도 완벽한 음정의 연주는 있을 수 없다.
제대로 튜닝 된 피아노나 기타의 경우라도 장시간 연주하는 과정에서 연주회장의
온도 습도와 연주로 인한 충격 등 여러 요인에 의하여 음정은 미세하게 변한다.
6센트 내외의 미세한 음정 변화를 구분하지 못하는 인간의 청력은
음정의 미세한 오차를 자연스럽게 수용하여... 음정이 정확하다고 느낀다.
우리가 컴퓨터 음악보다는 천재연주자나 거리의 버스킹 연주자의 음악에
더 감동 하는 이유는 음악은 느낌이기 때문이다.
대금의 경우, 튜닝기에 정확이 맞아 떨어지는 음이 거의 없는데,
이는 튜닝기가 서양음계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이다.
미분음을 통해 다양한 음정을 만들어내는 세계유일의 악기가 대금이며,
그런 우월한 악기로 어떤 음악을 연주하던 이는 청중이 감동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이지,
음정의 문제가 아니다. 소수의 견해로 전체를 매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음(音)은 음악(音樂)이 될 수도 있고, 소음(騷音)이 될 수도 있다.
음(音)이 악(樂)과 소(騷) 중에서 어디로 붙는가는
연주자의 기량과 음악적 해석 등으로 결정될 뿐 어떤 음악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의 대중가요는 고선이나 무역으로 연주하면 자연스러운데,
연주자와 악기의 특성에 맞는 첫 음정이 바로 기준음정이다.
그 음정이 F든 F근사치든 간에 끝까지 그 기본음정을 유지하면 된다.
서양음악에 익숙한 사람은 그 기준 음이 12반음의 고정음정에 맞지 않으면...
뭐 저런 악기가 있어? 라고 비아냥대며 대금을 우습게 평가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우리음악의 결정체인 미분음에 대한 절대 무지의 소치이다. 서양음악이
기준음인 440Hz를 지키지 않는 최근의 변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야기할지...
피리사 플라스틱 산조대금으로 본인이 낼 수 있는 음정의 간격은
평취 무역으로 시작하여 음을 잡았을 때는 D#+α에서 F#-α정도이며,
저취 고선으로 시작하여 음을 잡았을 때는 A제로에서 B제로 음 사이인데 ,
대중가요 뿐 아니라 전통음악을 연주 할 경우에도 억지 음정이 아닌
해당 악기의 가장 자연스러운 위치의 음정으로 시작하고
중간 중간 음정의 변화를 통해 전체 음정을 만들어 연주 하는 것이다.
본인의 경우 피리사 플라스틱 대금으로 칠갑산이나 대중가요 등을
평취 무역을 시작 음으로 자연스럽게 연주할 때는 F제로 근간이 나온다.
이 음은 각각의 대금과 연주자의 취법 특성에 따라서 조금씩 변화가 있으며
곡 전체를 연주하면서 시작 음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평취 무역 음을 F제로로 시작했는데 아래 옥타브인 저취 무역이 등장할 때,
저취 무역 음정이 F#이 나온다던지 또는 센트 기준으로 6센트 내외를 벗어나면
전문가 뿐만 아니라 일반인이 들어도 음정이 맞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수 있다.
연주할 때 스케일과 전혀 관계없는 음이 갑자기 등장 할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흔들거리는 징검다리를 건너 뛸 때처럼 살짝 집고 넘어가거나
우리음악의 멋 중에 하나인 농음을 이용하는 스킬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 세상에는 꼭 맞는 것도 없고 절대 틀린 것도 없다.
대금을 가르치면서 대금은 참 훌륭한 악기라는 것을 수시로 느껴왔다.
초보자는 음정을 모르니 악보대로 불면서도 부를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해 하고,
어느 정도 음정을 알게 되면... 스스로 음정을 맞출 수 있는 대금이야 말로
신이 내린 선물이라 생각한다. 이제는 우리음악이 서양음악의 잣대에서 벗어나
우리악기의 특성을 제대로 알고 주체성을 살려서 세계화로 나가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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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환수 싸부님의 특강 】
1. 대금산조에 관하여
2. 우리악기에 관하여
3. 음정에 관하여
4. 대중가요에 관하여
“이생강명인과 대중가요”에 대한 변(辯)
우리의 학교 교육을 서양음악 위주로 배우다보니
우리음악에 대해 무지한데도, 서양음악의 잣대로 우리음악을
평가절하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은 서양음악에 대한 사대주의다.
이는 일제강점기를 거쳐 오면서, 말살된 주체성과 문화현실 속에서
음악 교육과정의 오류로 인한 것이니... 누구를 탓 할 것인가?
세계의 모든 악기로, 산조 시나위 대중가요 동요 가곡 팝송 클래식 등
그 어떤 음악을 연주하더라도 그것은 개인적 취향이다.
서편제 OST 작곡으로 유명한 김수철씨의 경우 기타산조를 발표하였고,
숙명가야금 연주단의 비발디 “사계”, “캐논변주곡” “Let it be”가 있고,
색소폰으로 “강원풍류”를 연주할 수 있으며, 안숙선 명창의 재즈 협연,
이생강 명인과 신관웅의 째즈 등 무수한 퓨전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음악은 만국공통어라고 하는 것이다.
이생강 선생님의 대중가요 연주와 관련하여 온라인상에서 비하 발언을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가 온라인상에서 누군가를 비하하는 발언은
정말 조심해야 한다. 설령 본인이 충분한 학식과 대중의 공감을 얻고 있다 하더라도
단순한 충고 조차도 당사자가 원할 때만 조심스럽게 해야 하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발언은 조금 더 신중히 했으면 한다.
[이생강님은 비록 문화재이지마는 대금 전공자 분들 사이에서는 그렇게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유는 대중가요를 많이 했기 때문이라더군요]
본인은, 학부와 음악교육대학원에서 대금을 전공하면서도
서양음악을 같이 배웠고, 지금도 계속 공부를 하고 있는 음악학도의 한 사람으로서
위의 글을 읽고 참으로 참담하기 그지없다.
자타가 공인하는 명인에게 이생강님은 비록 문화재이지마는 이라는 표현은
신중하지 못한 발언이며, 대금 전공자 분들 사이에서는 그렇게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와 같이 어느 개인의 생각을 대금 전공자 전체의
의견인 것처럼 논하는 것 또한 심히 고려해 봐야하는 문제이다.
이에 위의 글에 대하여 본인이 변론(辯論)을 하고자 한다.
이는 본인의 사견이며, 이생강 선생님과 이생강류 제자 분들의 변이 아님을 밝힌다.
이생강 선생님의 대중가요 카세트테이프를 본인은 1980년경에 접하였는데,
그 당시 선생님의 힘들지만 획기적인 시도의 결과는...
일반인의 대금에 대한 인식과 보급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당시만 해도 일반인이 들을 수 있는 대금소리라고는 전설의 고향에서
교교한 달빛이 비취는 장면에서 나오는 청성곡 정도였으며,
그 조차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퉁소 혹은 피리소리라고 알고 있었던 시절 이었다.
대금(대함 젓대)과 피리 퉁소는 엄연히 다른 악기임은 다들 아시겠지만...
지금도 일반인들이 대금을 보고 퉁소 피리라고 호칭하는 경우는 왕왕 있는 일이다.
이생강 선생님이 대금산조를 제대로 부르지도 못하면서
대중가요를 불렀다면 과연 그러한 효과가 있었을까?
선생님의 음반 중에는 우리나라 무용곡 전체를 담은 CD집이 있다.
무용가들이 무용곡 하나를 준비하는데 수백만 원의 비용이 드는 것을 감안하여,
무용가 스스로 편곡 할 수 있게 만든 불후의 명곡집이다.
이것은 우리음악 전반을 연주로 평정한 명인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산조가락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대중가요를 부르면
대중에게 제대로 된 감동을 주지 못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본인이 만족한다면 스스로는 성공한 연주자인 것이다.
타인이 들어서 감동을 받지 못한다고 하여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음악이란 처음에는 스스로 만족하는 수준에서 시작하여,
차츰 대중에게 만족을 주는 단계로 발전 하는 것이다.
음악이란 어느 정도 이상의 수준이 되어야 청중에게 감동을 준다.
본인은 강원풍류를 10여년 독공한 끝에 비로소 어느 정도 만족을 얻었다.
그리고 대중 앞에서 연주하기 시작한 것은 15여년을 연습한 후인데,
지금도, 대중 앞에 내 놓기는 부끄러운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색소폰이나 피아노를 배우면 평범한데, 대금을 배우면 특이하다고 한다.
남의 것이 평범하고 우리 것이 특이한 이런 세태 속에서는,
대금산조를 아무리 잘 불어본들 일반인이 느끼는 감동과 관심은,
이미 잘 알고 있는 대중가요나 가곡 동요보다 훨씬 미미할 수밖에 없다.
정악 연주곡을 산조대금으로 불면 어렵고 어색하다.
다향을 산조대금으로 불어보라. 저취 태주나 황종으로 시작하는데
중간 중간 어색한 음정을 바로 잡기란 결코 쉽지 않다.
정악대금과 같은 고선으로 시작해서 연주하면 산조대금의 특성상
중청황종을 길게 내기가 어려워서 상당히 까다롭고 거친 연주가 된다.
정악대금에서 산조대금으로 넘어가도 까다롭고 어려운데,
선생님은 산조대금뿐만 아니라 피리 퉁소 등 다양한 악기를 넘나들며
대중과 호흡하고 감동을 주면서 우리음악의 퓨전사에 한 획을 그었다.
또, 다른 일예로 장사익 선생님을 들 수 있다.
“뽕짝”이라는 대중가요를 그가 부르면 전혀 새로운 장르의 음악으로 재탄생 된다.
당신의 악기인 목소리가 천부적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대중가요를 선생님이 연주하면 전혀 새로운 장르의 음악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당신의 악기다루는 재능이 천부적이기 때문이다.
어떤 음이라도 자유자재로 가지고 놀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대중가요를 연주할 때 일반 대중들이 감동을 하는 것이다.
미숙한 대금실력으로 대중가요를 불러서 비판을 받으면,
자신의 대금실력을 탓해야지 대금 탓을 하면 안 된다.
또한 그러한 연주자의 대금연주를 듣고 대금이란 악기 자체를 비판한다면
그 역시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미숙하면 미숙한 대로 그가 즐기는 멋과 풍류를 인정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바이올린 같은 경우도 초보자가 연주하면 정말 저것이 악기 소리인가 싶다.
그 연주자에게 수십억을 호가하는 “스트라디바리우스[ Stradivarius ]”를
안겨 준다 한들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대개의 사람들은 그럴 경우
연주자의 실력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인정을 하고, 악기를 가지고 논하지는 않는다.
이 또한 서양악기가 일반화된 우리의 서글픈 서양음악 사대주의의 표본인 것이다.
바이올린, 플롯, 피아노 등으로 클래식만 연주하라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생강 선생님은 수강료를 받지 않고 제자를 가르치기로 소문이 나신 분이었다.
본인이 처음 선생님을 찾았을 때, 사모님으로부터 더 이상 제자를 못 받는다고
거절당한 적이 있다.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으나 알고 보니 당시에 많은 제자들이
2층에서 숙식을 하였는데 수강료를 받지 않으시니 사모님의 고충이 오죽했으랴!
본인도 무료로 대금을 가르쳐 본 적이 있는데, 무료로 가르치면 많은 제자들이
오랫동안 곁에 남을 것 같지만 오히려 그 반대였다.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많은 제자들이 항상 있었다는 것은... 평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며 몰려들었는가를 추측할 수 있다.
대중가요를 불어서 연주자가 평가절하 된다는 말은 배부른 소크라테스의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지금도 예술의 전당에서는 대중가수의 공연을 제대로
허가하지 않는다고 한다. 과연 옳을까? 예술의 종류에 반상을 논하는
구시대적 발상을 우리 대금인들(프로든 아마추어든) 만큼은 버렸으면 한다.
이생강 선생님은 우리 음악계에서 적이 많은 분 중에 1인인데 가장 큰 이유는,
대금뿐만 아니라 피리, 태평소, 소금, 단소, 퉁소 등 입으로 부는 악기는
어느 명인 못지않은 실력을 갖추었기에...
음악 전공자들이 경제적으로 아주 어렵던 시절에...
관악기 연주 행사를 이 생강 선생 1인이 거의 독식(?)하다시피 하였기 때문이다.
당신의 연주 실력에는 비판이 불가하므로 대중가요 연주를 제물로 삼은 듯하다.
국악관현악단이 서양식 오케스트라처럼 편성이 되고, 서양식 지휘를 하고 있다.
초창기 국악관현악단의 서양식 편성형태를 처음 봤을 때는 정말 어색하였다.
본인은 대금의 취법 변화에 악영향을 준 것이 바로 국악관현악단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악기는 사랑방 악기라고 한다. 성량 자체가 서양악기처럼 크지 않기 때문에
관현악 편성에는 부적절한데도 불구하고, 지휘자는 오히려 더 큰 성량을 요구하여
그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연주자는 거친 취법으로 가게 된 것이다.
우리악기로 관현악단을 편성하려면... 대금연주자는 플롯 연주자의 숫자보다
최소한 두 세배 이상의 인원을 배치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현재 국악관현악단은 상당한 수준으로 자리 잡았고, 많은 명연주곡이 나오고 있으며,
예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대금협주곡 연주가 대중의 극찬을 받고 있다.
이를 두고 서양식 연주형태라 비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생강 선생님의 대중가요 연주는 청중을 읽고 배려한다.
이생강 선생님이 공식석상에서 메인 연주곡으로 대중가요를 부르는 걸
본 적이 있는가? 대금산조 연주 후 청중의 재청(앵콜)에 답하는 의미로
대중가요을 연주한다. 그러나 거기에도 배려는 필수다.
호남에서는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을
영남에서는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을 연주한다.
이 또한 명인의 대중에 대한 배려요 예의인 것이다.
유파의 갈등은 풀어야 할 숙제이며 우리음악 발전의 기초이다.
본인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들을 가르칠 때,
원장현 명인의 산 공부에 보내고, 서용석 명인께 사사를 시키기도 하였다.
타 유파를 비판하는 일은 오프라인에서는 종종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제는 사제지간에 생산적 비판의 용도여야 한다.
동호회 등에서도 각 유파의 음악 등을 평가할 경우가 자주 있는데,
이때도 충분한 토론을 거치고, 그 유파와 관련된 충분한 식견이 있는
전공자의 변을 듣는 등의 과정을 거친 후 개별적인 판단을 하는 것이 옳다.
그러한 과정에서 얻은 결론이더라도...
온라인상에서 일방적으로 비하적인 논지를 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대금소리는...
그대의 가슴속 깊은 속소리를
그대의 심장이 내는 울림이다.
또 다른 명인 이용구 교수의 연주(대금산조의 계보인 박환영 교수편곡)를 빌어서
이생강류 대금산조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대금협주곡 “죽향”을 소개한다.
2002 새 얼굴과의 만남 01-이생강류 대금산조를 위한 관현악협주곡
☞ 편곡 : 부산대학교 박환영 교수.
[대금산조의 창시자 박종기 명인의 손(孫) 진도 씻김굿의 명인 박병천의 자(子)]
☞ 대금연주 : 개량단소의 명인 이용구 교수
☞ 관현악단 : 모름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