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일 (화) 레위기 6~10장
6장. 속건제 규례(계속), 제사장 입장에서 번제와 소제와 속죄제 규례
7장. 제사장 입장에서 속건제와 화목제 규례
8장. 제사장 위임식
9장. 성막 제단에서 첫 제사를 드림
10장. 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의 불에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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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2월 2일, 오늘은 레위기 6장부터 10장까지 읽습니다.
6장에서는 5장 마지막에 나왔던 속건제에 대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속건제는 하나님이나 다른 사람에게 돌아갈 물건에 손실을 끼쳤을 때 행하는 제사입니다.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면 하나님께도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만큼 다른 사람의 재산을 보호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요즘에는 사회가 변화해서 재산의 개념이 예전보다 더 넓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지적 재산권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책이나 음악, 영화, 또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같은 문화 컨텐츠들이 중요한 재산입니다. 옛날 사람들 입장에서는 눈에 보이는 물건을 재산으로 생각하는 고정관념이 있다 보니까 컴퓨터로 뭘 다운받는 것은 쉽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일에서도 사람과 하나님께 죄를 짓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다섯 가지 제사를 다 설명했는데, 8절부터 7장까지는 다시 번제, 소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를 설명합니다. 똑같은 게 바로 반복되니까 이게 뭐지? 싶습니다. 사실상 같은 내용인데요. 조금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 있습니다.
첫째, 순서가 다릅니다. 앞에 5장까지는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이런 순서대로 나왔는데, 여기 6장부터는 번제, 소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순으로 나옵니다. 화목제가 가운데 있다가 맨 뒤로 옮겨 갔습니다. 앞에서는 의미 상으로 보면 화목제가 가장 중요하니까 가운데 두었습니다. 하지만 뒤에서는 제사를 실제로 행하는 순서에 따라서 화목제를 제일 끝에 두었습니다.
둘째, 강조점이 다릅니다. 앞부분에서는 누가 어떤 때 무슨 제물을 드려야 하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제사장은 수소를 드리고, 족장은 숫염소를 드리고, 평민은 암염소나 암양을 드리고 이런 걸 시시콜콜 얘기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얘기할 때는 제사를 드리고 뒤처리를 어떻게 하는지를 자세히 얘기합니다. 번제를 할 때는 제물은 계속 태우고, 탄 재는 진영 밖에 가져가서 버리라든지, 속죄제 제물 남은 것은 제사장들이 나눠 먹으라든지 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앞에 5장까지는 제물을 바치는 백성들 위주인데, 6장부터는 제사를 집행하는 제사장 관점에서 쓰여진 것입니다. 똑 같은 얘기를 백성들 관점에서 한 번, 제사장 관점에서 또 한 번 쓴 것은, 이 제사를 절차에 따라 정확하게 행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겁니다. 한치의 어긋남 없이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거룩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렇게나 해도 다 받아주신다 하면 사람이 하나님을 함부로 여길 수가 있습니다. 비록 제사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게 해 주셨지만, 하나님과 사람은 엄연히 다르고, 은혜로 제사를 받아 주시는 거다 하는 것을 나타내려고 이렇게 두 번 반복합니다.
8장에서는 제사장 위임식이 거행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그대로 준행했다”는 말이 강조됩니다. 앞서 출애굽기 29장에서 모세에게 가르쳐 주신 그대로 거행됐다는 말입니다. 하루에 속죄제의 수송아지, 번제의 숫양, 위임제사의 숫양, 이렇게 세 번씩 7일 동안 총 21번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제사가 스물 한 번이라는 말은 짐승을 스물 한 마리를 잡는다는 것입니다. 산 짐승의 목을 갈라서 피를 다 빼고, 가죽을 벗기고, 내장을 분리하고, 토막을 내고, 태우고, 뒷처리까지 다 하는 것은 중노동입니다. 더군다나 아무렇게나 할 수도 없고 정확한 절차를 따라서 해야 했습니다. 이것을 하루 세 번씩 7일을 반복했습니다.
제사장은 그 7일 동안은 집으로 들어가지도 못 했습니다. 성막 안의 어딘가에서 머물러야 했습니다. 먹는 것이든지, 씻는 것이나 쉬는 것이든지, 상당한 불편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면서 제사장들은 인내와 순종을 연습했습니다. 앞으로 말씀을 정확히 지키는 일에 자기 삶을 바칠 것을 다짐했을 것입니다.
9장에서는 새로 임직된 제사장들이 첫 제사를 드리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지금까지 7일 동안은 임직식의 절차였습니다. 이제 정식 제사장으로서 제사를 인도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지시를 내립니다. 지도자들을 위해서는 속죄제와 번제를 드리고, 백성들을 위해서는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그러자 명 받은 그대로 행합니다.
5대 제사의 규정에 대해 두 번 반복해서 지시를 내리고, 제사장 위임식과 첫 제사에서는 말씀대로 그대로 행했다는 점이 아주 강조돼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제사에서 핵심이 되는 요소라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왜 나중에 사무엘에 사울에게 이런 말을 하잖아요.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이게 이런 배경이 있는 말입니다. 제사의 핵심은 순종입니다.
22절을 보면 제사를 다 마친 후에 아론이 백성들에게 손을 들어 축복합니다. 이것이 3천 5백 년 전부터 교회에서 행해온 오래된 전통입니다. 예배가 끝난 뒤 하나님께서 주는 복을 선언합니다. 오늘날 예배 후의 축도가 이 아론의 축복과 동일한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3천5백 년 전 구약 교회와 오늘 우리가 서로 이어져 있다는 게 신비롭게 느껴집니다.
그러자 어디선가 불이 나와서 제단의 번제물을 확 사릅니다. 여호와 앞에서 나왔다고 하니까, 아마 성막 안의 지성소에서부터 불길이 나와서 성막 뜰을 가로질러서 제단까지 온 것 같습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사건입니다. 6장에서 제단의 불은 항상 꺼뜨리지 말아야 하고, 그 위에 번제물과 화목제 기름이 계속 타게 하도록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사람이 불을 피워서 제사를 드렸는데, 이제부터는 하나님께서 직접 내리신 불이 계속 타오릅니다. 그 불로만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제든지 진영 가운데로 눈을 돌리면 성막 뜰에서 하루 24시간 365일 쉬지 않고 타오르는 여호와의 불과 연기를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밤이면 멀리서도 환하게 빛이 났을 것입니다. 그 불빛을 보며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고, 늘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 그리고 그분만이 참으로 거룩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10장에서는 충격적인 사건이 나옵니다. 아론의 아들, 제사장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의 불에 타 죽습니다. 지금까지 1장부터 9장까지의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뭐라고 했지요? “제사의 핵심은 순종이다.” 제사장은 하나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말을 안 들은 겁니다.
방금 전에 여호와의 불이 나와서 제단에서 타오르고 있습니다. 성막 안에 향을 매일 피워야 하는데, 그때에도 이 불을 사용해서 새 향을 피워야 합니다. 그런데 뭐가 귀찮았는지 그냥 부싯돌 같은 걸로 만들어서 향을 붙인 겁니다. 그러니까 그 휘장 뒤편 지성소의 시은좌에서 불이 확 나와서 이 두 사람을 태워 죽였습니다. 혹시는 성막 기물들은 안 탔는지 모르겠습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제사장은 중요한 임무를 맡은 만큼, 그 일을 그르쳤을 때 책임도 큽니다. 아론이 아들 네 명이 있었는데 순식간에 첫째랑 둘째를 잃었습니다. 하나님이 이토록 두려우신 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막과 제사를 주신 것, 또 오늘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함으로 예배드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요.
9절에 보면 하나님이 아론에게 회막에서 봉사할 때는 독주를 마시지 말라고 합니다. 아마 두 아들이 술을 먹고 들뜬 마음으로 경솔하게 불을 만들어 붙였던 것 같습니다. 두 아들은 그저 뭘 몰라서, 우리로 치면 왕 앞에서 실수로 술을 엎질러서 목이 달아나고, 그런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고, 자기 직분을 가볍게 여긴 명백한 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뒷부분에 또다른 문제가 발생합니다. 속죄제 중에 족장이나 평민이 드리는 제물은 남은 음식을 제사장이 먹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아론의 남은 두 아들, 셋째와 넷째 아들이 이걸 안 먹고 전부 태워 버렸습니다. 방금 형들이 그 꼴을 당했는데, 정말 큰일 아닙니까? 모세가 노발대발 합니다. 너 죽고 싶어서 그러냐, 그건 제사장의 죄 용서를 위해 먹으라고 주신 것이다 합니다.
그런데 이때 아론이 나섭니다. 여기를 주의깊게 보세요. “오늘 내가 속죄제물을 먹었더라면 여호와께서 어찌 좋게 여기셨으리요?” 태운 건 아들들인데, 아론은 자기 책임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내가 도저히 속죄제물을 먹을 상태가 아니었다. 내가 두 아들 잘못 가르쳐서 하나님 앞에 큰 죄를 범하지 않았느냐? 그래서 태우라고 시킨 거다. 아들들은 잘못 없다.” 그런 겁니다.
이 말의 내용으로만 봤을 때는 맞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가 마치 우리 판단으로, 내가 너무 죄를 맍이 지어서 이번주는 성찬에 참여하지 못하겠다, 이렇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죄를 지었으면 더욱 주님의 은혜를 구해야지요! 성찬으로 부르시는 주님의 초대에 감사하며 회개하고 빵과 포도주를 받아야 합니다. 아론도 속죄제물을 먹으면서 더욱 죄용서의 은혜를 구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론의 이 태도는 정말 아름다운 겁니다. 아들들의 허물을 자기가 대신 지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하나님의 불에 두 아들들이 삼켜지는 것을 보지 않았습니까. 말씀을 어긴 상당히 두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이렇게 나섰습니다. 전에 금송아지 사건 때 “불에 금을 넣었더니 송아지가 나왔다” 했던 비겁한 모습을 생각해 보면, 사람이 많이 성숙해졌습니다.
모세는 이 점을 좋게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좋게 보셨을 것입니다. 속사정은 정확히 모릅니다. 염소를 다 태운 것은 아직 제사제도를 숙지하지 못했던 셋째와 넷째의 단순 실수였는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주님께서는 은혜로 덮어 주시고 이들이 계속해서 제사장으로 서 나가도록 기회를 주셨습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우리의 예배와 삶에서 무엇보다도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두려우신 분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속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이 사실을 놓치기 쉽습니다. 우리에게 한없는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주님 은혜에 감사하며, 오늘도 우리의 모든 삶을 순종으로 산 제물로 드리기에 힘쓰는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