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 맑고 바람 푸른 우리 마을 정자나무
- 서재준 선생님
여기 한 사람
난생설화적으로 둥근 인간속 호모
크고 밝은 하늘의 이마와 넓고 네모난 땅의 가슴으로
어느 날 우리 앞을 척척 걸어 나온 사람.
동이의 후예, 배달나라의 적자다운 근기로
한밝산 준령의 혈맥을 타고 문득 이곳 서남방에 깨어나니
새족의 날개와 곰족의 눈을 가진 이 사람
서재준 덕인입니다.
1986년 어느 봄이었을까 우리 첫 만남이.
그날로 학교 숙직실에 배 깔다가 다방을 죽치다가
다시 식당이거나 YMCA 사무실을 전전하며
정세를 살피고 교련 탈퇴를 결의하고 학교민주화를 외치며
하나 둘 굳게 닫힌 교문을 열어갔지요.
그 시절 서 선생 스물 댓 깨끗한 청년.
참교육의 융융한 낯꽃들 사이로 고개 바짝 들어
누리의 참 볕뉘 살피었으니
장차 그 기치 그 몸공 무엇이었을까요.
알 수 없는 내면에서 닫힌 교육의 문을 열라 이르니
순천을 출발하여 전라도 땅 발 디딘 곳마다
전교조 참교육 수호의 성스러운 봉홧불 붉게 피워 올렸습니다.
그 꼭두며 그 등성이며 그 버덩이며 그 기스락을 오르내리면서
아당탕탕 역사의 대못 박아 수없이 많은
참교육의 이정표들 세웠습니다.
의의 오른 주먹 높이 치켜들고 연대의 왼 어깨 멀리 결어
대동세상의 대오 이날까지 이끌어왔으니
그 장도의 보시와 수행이 오늘 어찌 이 세계에서
인가받을 공덕이 아니겠습니까.
이 사람, 비보라 교육운동 삼십 수년의 동지여,
참으로 수고하였노라 감사하노라!
이 길의 어귀에서 아우님은
내 자랑의 침이 마르는 혀와
내 믿음의 혀가 닳는 입술을 열어주었답니다.
그대는 우리 일의 배꼽 한 점을 찍고 섰는 콤파스,
뭇 삶의 서사적 실패와 오류 바로잡을 정오표랄까,
무릇 자성의 한 곳을 가리켜 파르르 떠는
나침반의 바늘이라 칭할만하니!
이는 공명에 무심해서 일 판단에 결함이 없고
결행이 분명하여 나아감과 물러남에 망설임 없으며
정성으로 갖추고, 예비하고, 앞섰으니
열매를 쫓지 않고 늘 그 뿌리자리로 돌아가
홀로 세상의 밑둥 한 복판을 도도록이 북돋은 사람.
오롯이 일체의 관계의 중심을 지키는 자.
삼십 미터 넘게 높이 자라는 느티나무는
삼십 년 넘도록 성장을 쉬지 않은
서 선생 참교육운동의 일념을 닮았습니다.
어느 무례한이 함부로 가지를 꺾더라도
묵묵히 새 가지를 내이면 그만.
우듬지 잘 퍼져 고르고 이파리 단아하여 조화로우니
과약 예도의 기품이라 입을 모으죠.
예란, 절제로써 中道를 이루는 것.
서재준 선생의 품부와 잘 부합하는 그림 아닙니까?
느티나무 정자에 둘러앉아 일을 의논하고
그 뜻을 모아 마을의 중심을 세우니 이 사람은
그늘 맑고 바람 푸른
우리 마을의 든든한 정자나무였습니다.
이 나무초리 끝에 마침 새 한 마리 앉았습니다.
삼족온지 참맨지 수리부엉인지 분명한 것은
아름답다는 것이고 참답다는 것이고 오롯하다는 것입니다.
거기 나도 오르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 나무 둥치에는 반달가슴곰도 앉아있습니다.
아시아흑곰인지 우수리불곰인지 웅녀인지
기둥 너른 바람벽을 기대앉아서
확실한 것은 든직히 참을성이 강하다는 거
호랑이는 실패해도 곰은 성취한다는 거
이상형 인간이면서 내면의 힘이 무척 강하다는 것.
사실 서재준 역사선생은
노공에 공부 하나 남겨놨을 겁니다.
일념으로 두 손 모으고 두 발을 개고 두 눈을 깔아
한 때 원방각의 각을 앉아오던 仙道의 삼매.
안으로부터 터 오르는 참 본성의 동천, 그 세상.
그해 선업의 첫길을 나선 뒤 만 산을 넘고
만 강을 적시어 이제금 우주 본처에 귀의할 공부 말이죠!
기왕 가는 길이면 동이의 혈통으로
만리장성 밖 우리 동북아 옛 문명, 요하와 홍산과
백두산 천평의 마법도 풀어
환인 환웅 단군이 신화가 아닌 史話임을 널리 외쳐주세요.
온 세상 참교육운동 너머로 함께 톺아볼 이 길은
끊어진 옛길, 옛길의 새 길, 새 길의 참 길.
인류 시원의 빛나는 조선 역사의 깃발을 들어
우리 노장들의 일상에도 새 촛불 하나 똥그래지게요.
오래 걸은 우리 주름 잠포록합니다.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낙엽 수북한 가을언덕이나
흰 눈 가득한 여느 골목길 주막을 파고들어
따뜻이 술 한 잔 건네려면
부디 우리 궂기는 날까지 작달비로 살아야 합니다.
서재준 아우님...
몸고생 마음고생 참 많으셨네. 한 시절
그대를 코앞에 당겨 여생을 나누고자 했던 내 전원의 뜻은
차마 이루지 못했지만 서로 부단히 공부하면서
더 큰 세상의 낙원을 향해 거듭거듭 나아가세나.
부디 날마다 좋은 날 이루어 행복하시기 바라네.
2023. 2. 21.
김진수 모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