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나는 가을이면 가끔 외로움을 탄다. 사랑하는 아내가 있어도 마음이 쓸쓸해진다. 아내도 그렇겠지 하면, 안쓰러운 생각에 마음은 더 쓸쓸해진다. 가을바람에 날리는 낙엽이 마음에 들어와 이리저리 떨어져 쌓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을국화를 보면 생각나는 소녀가 있다. 나는 성장할 때까지 춘천에 살았는데 나보다 한 살쯤 어린 경선은 바로 앞집에 살았다. 나는 그때 집이 가난하여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파출소 급사를 하고 있었다. 파출소에 근무하기 전에 우리는 여름밤이면 집 뒤 언덕에 올라가 아이들과 함께 옛날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형 친구가 중 50권의 동화책을 읽은 덕에 이야기꾼은 주로 나였고 경선은 그 동생과 함께 청중의 하나였다. 아이들을 보고 이야기하는 척했지만, 나의 눈은 항상 경선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경선은 중학교 2학년 때까지 1등을 놓친 적이 없는 아이였다. 눈썹은 약간 짙고 얼굴은 희지 않았는데 성격은 티 없이 밝은 소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어둑어둑한 퇴근 무렵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춘천 향교 앞 추수가 끝난 논바닥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경선아! 경선아!” 그 어머니였다. 춘천여자중학교 2학년이던 경선은 어린 나이에 편도선으로 죽었다. 성당에서 치료받고 어머니에게 업혀 나왔는데 질식하여 죽은 것을 몰랐다는 것이다. 나는 그 어머나를 부축하여 집으로 모셔드렸다.
사실 나는 파출소에서 첫월급을 탈 날이 가까웠는데 그애가 아프다는 말을 듣고 어머니께 허락을 받아 그 돈을 주고 싶었다. ㄱ러나 차마 말이 안나와서 차일피일 머뭇거리고 있던 중이었다. 왜냐하면 그애의 집이나 우리 집 모두 큰 병원에 못갈만치 가난한 집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뒤로 어머니의 친구이시기도 한 경선의 어머니는 나만 보면 붙들고 한동안 우셨다. 경선의 반짇고리에서 지난 여름에 내가 푸석푸석한 돌로 만들어준 모아이 석상의 얼굴을 닮은 인형이 나왔다는 이야기도 그때 들었다. 경선에게 주려고 내가 무쇠 주전자에 고이 보관했던 수정은 깨어진 채 주인을 잃었다. 경선이 죽고서 나는 처음으로 슬픔을 알았다. 그리고 가슴의 무덤이 생기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뒤 한참 세월이 지났다. 고등학교 수학 교사였던 경선의 오빠가 쉰이 채 못 되어 술로 돌아가셨다는 부음을 들었다. 내가 만나려고 전화했었지만, 추한 모습을 보이기 싫다고 거절한 지 몇 달이 채 못되어서였다. 그 형님이 자주 동생의 평토장(平土葬)한 무덤에 과자를 사서 놓고 울고 왔다는 이야기는 나의 어머니를 통해 몇 번이나 들었었다. 그 어머니의 가슴에 이미 두 개의 무덤이 생겼다고 어머니는 자주 말씀하셨다.
가을은 곡식을 갈무리하는 풍요로운 때인데, 나에게는 유독 가을 병(病)이 있는지 가을만 오면 왠지 쓸쓸해지곤 한다. 가을은 가슴 깊이 숨겨진 슬픈 기억을 시도 때도 없이 불러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마 자지러드는 바이올린 현(弦)의 가녀린 소리 같은 가을 하늘빛 때문인지도 모른다. 청춘의 마지막 불꽃 같은 단풍의 화려한 소신(燒身) 때문인지도 모른다.
* 2007년에 가을에 쓴 수필을 다시 올려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