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당집 제10권[3]
[취암 화상] 翠巖
설봉雪峰의 법을 이었고, 명주明州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諱는 영참令參이고, 호주湖州 사람이다. 행장은 보지 못했다. 전왕錢王이 흠모해서 자의紫衣와 영명 대사라는 호를 하사했다.
어떤 이가 물었다.
“세 치의 혀를 빌리지 말고, 스님께서는 말씀해 주십시오.”
선사가 말했다.
“차당茶堂으로 가서 시비를 가려라.”
“그 밖의 것은 감히 묻지 않겠습니다.”
이에 선사가 양구하니,
다시 물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이야기하리까?”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시자야, 등불을 밝혀라.”
선사가 언젠가 상당하여 말했다.
“30년 동안 하루도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은 적이 없다. 나의 눈썹이 아직 있는지 보아라.”
대중이 대답이 없었다. 어떤 사람이 이 일을 장경에게 고하니, 장경이 대신 말했다.
“돋았소이다.”
선사가 후학들을 가르치는 게송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
문 안에 들어오면 말이 있어야 하니
말이 없으면 병이 몸에 밴다.
응당 거침없이 말하되
있다 없다에 걸리지 않게 하라.
이에 대하여 명조明照 화상이 화답했다.
문 안에 들어오면 모두가 준수한 사람이요,
바른 안목 가진 이는 비밀히 여의주를 바친다.
기연에 임하여 번개 치듯 털어내어야
바야흐로 병이 몸에 배이지 않으리.
이에 대하여 선사가 다시 화답했다.
문 안에 들어와 번개 치듯 재빨리 털어 버리는
그런 준수한 선비라면 없는 도리를 알리라.
고개를 돌려 되레 나에게 묻는다면
끝내는 질병이 몸에 배이리.
선사가 또 권학게勸學偈를 송했다.
괴롭고도 몹시 괴로워라.
파도 속에서 마른 재를 찾는다.
그대에게 권하나니 두 손을 거두고
바야흐로 그러한 때 쉴 수 있어야 하리.
[보은 화상] 報恩
설봉雪峰의 법을 이었다. 선사의 휘諱는 회악懷岳이고, 천주泉州 선유仙游 사람이다. 포전蒲田 성수사聖壽寺에서 출가하여 나이가 차자 계를 받고, 그런 연후에 조사의 법석을 흠모하여 설봉을 찾아뵈었다. 선사가 현묘한 법을 비밀히 깨달은 후 장포 지방에서 교화했다.
어떤 이가 물었다.
“종승宗乘이 없지 않다면 어떻게 들어 제창하시겠습니까?”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산은 스스로가 산이라 하지 않고, 물은 끊임이 없느니라.”
선사가 임종할 때가 가까워지자 상당하여 말했다.
“12년 동안 종승의 교법을 들어 제창했는데, 여러분은 나의 어떤 점을 의심하는가?
만약 듣고자 하면 3경 5론이 개국과는 밀접하다 하리라.”
그리고는 이내 열반에 들었다.
[화도 화상] 化度
설봉의 법을 이었고, 서흥西興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諱는 사욱師郁이고, 천주泉州의 포전현浦田縣 사람이며, 호는 오진悟眞 대사이다.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색을 따라 달리 비치는 마니摩尼 구슬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청ㆍ황ㆍ적ㆍ백이니라.”
“어떤 것이 색을 따르지 않는 마니 구슬입니까?”
“청ㆍ황ㆍ적ㆍ백이 아니니라.”
“어떤 것이 한 티끌입니까?”
“9세世가 한 찰나이니라.”
“어떻게 법계를 머금습니까?”
“법계가 어디에 있느냐?”
“6국國이 평온하지 않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그대이니라.”
“평온한 뒤에는 어떠합니까?”
“그대이니라.”
“만일 어떤 이가 유마 거사의 등좌(登座:법상에 오름)의 경지境地를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오직 문 앞에 거울 같은 호수가 있어서 맑은 바람이 옛 물결을 바꾸지 않느니라.”
[고산 화상] 鼓山
설봉雪峰의 법을 이었고, 복주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諱는 신안神晏이고, 양나라에서 태어났으며, 성은 이씨로서 당나라 천자의 후예이다. 어릴 적부터 비린내와 누린내를 싫어하고 범종 소리를 즐겨 들었다. 12세에 속가 집 푸른 벽에서 흰 서기瑞氣가 몇 가닥으로 비치자, 그의 아버지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아이는 반드시 출가할 것이다.”
나이 15세가 되어 병이 들었는데, 신인이 약을 주는 꿈을 꾸고 거뜬히 나았다.
17세가 되는 해 어느 날 어떤 오랑캐 스님이
‘출가할 때가 되었소’ 하고 말하는 꿈을 꾸고는,
그 뒤로부터 몇 차례나 출가할 뜻을 부모에게 말하다가, 마침내 뜻을 이루어 위주衛州 백록산白鹿山 묘재卯齋 선원 도규道規 선사에게 의지해 머리를 깎았다. 중화中和 2년에 이르러 숭산嵩山 유리단琉璃壇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어느 날 동학에게 말했다.
“옛 어른들이 말하기를,
‘백사갈마白四羯磨를 하기만 하여도 계戒ㆍ정定ㆍ혜慧가 완전히 갖추어진다’ 하였다는데,
무엇 때문에 형틀에 매인 양 준칙에만 연연하는가?”
그로부터 더 이상 율장을 배우지 않고 바랑을 싸서 행각行脚의 길을 떠났다.
먼저 백마와 초주超州를 참예하고, 다음으로 경산徑山과 하옥荷玉을 만나서 해박하게 따져 물었으나 모두 인연이 계합하지 못하였다.
나중에 설봉을 뵈었는데,
설봉이 갑자기 멱살을 잡더니,
“무엇인고?” 하였다.
이에 선사가 활짝 깨달아 손을 들어 흔들었다.
그러자 설봉이 물었다.
“다시 또 이치를 세워 무엇 하려는 것인가?”
선사가 대답했다.
“무슨 이치를 세웠다 하십니까?”
이에 설봉이 큰 소리로 외쳤다.
“아무도 이 경지境地에 이른 이가 없었다. 부디 잘 보호해 지니도록 하여라.”
얼마 후 설봉이 입적하였다.
민왕閩王이 성좌의 북쪽 20리쯤에다 고산사鼓山寺를 개창하고, 선사에게 대중을 위해 설법해 주기를 청하자,
선사가 말했다.
“경에는 경사經師가 있고, 논論에는 논사論師가 있고, 율에는 율사律師가 있으며, 함函과 호號와 부部와 질帙이 있어 제각기 전해 익힌다.
그리고 부처니 법이니 하는 것은 부처님께서 세우신 교화의 방편이요, 선이니 도니 하는 것은 우는 아기를 달래는 말일 뿐이다.
사람들의 마음이 고르지 않기 때문에 숱한 성인들이 나오시어 교묘하게 방편을 열어 여러 가지 문이 되었고, 병의 원인이 같지 않아서 처방 역시 다른 것이다.
유有에 머물러서 유를 깨뜨리는가 하면, 공空에 머물러서 공을 꾸짖기도 하는데, 두 가지 병통이 다 없어지면 중도까지도 버려야 하느니라.
그러므로 고산鼓山은
‘어구語句가 시기에 맞지 않고 말이 사리에 맞지 않으면 그 말을 듣는 이는 죽을 것이요, 어구에 막히는 이는 미혹할 것이다’ 말하노라.
말 이전의 도리도 제창하지 않는데, 어찌 구절 뒤의 일을 이야기하랴?
설사 석가가 방문을 닫고 정명淨名이 입을 다물어도 대사에게 양梁의 동자가 그 자리에서 한 번 묻고 두 번 묻고 세 번 묻자, 모든 사람이 다 알아 버렸다.
그대들은 어찌 생각하는가?”
이때 어떤 사람이 절을 하니, 선사가 말했다.
“큰 소리로 물어라.”
학인學人이 말했다.
“화상께 묻습니다.”
이에 선사가 할을 해서 쫓아내 버렸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송했다.
즉석에서도 알기 어려운데
말을 따르면 더욱 알기 어렵다.
부처와 조사를 말로 하려 하면
하늘 끝과 땅 끝처럼 아득하리라.
[융수 화상] 隆壽
설봉雪峰의 법을 이었고, 장주漳州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諱는 소향紹鄕이며, 성은 정鄭씨요, 천주泉州의 포전현蒲田縣 사람으로서 호는 홍법 대사였다.
어떤 이가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마니摩尼 보배로 된 대궐에 네 모퉁이가 있는데, 한 모퉁이가 항상 드러나면 세 모퉁이도 따라서 드러난다’ 하였는데, 어떤 것이 항상 드러나는 모퉁이입니까?”
선사가 불자를 일으켜 세우니,
다시 물었다.
“좋은 벼에서 쌀이 나지 않으면 어떻게 만 사람의 굶주림을 건지겠습니까?”
“협객에게서 칼을 빼앗았더라도 그대를 인정한 것이 아니다.”
[안국 화상] 安國
설봉雪峰의 법을 이었고, 복주福州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諱는 홍도弘鞱요, 성은 진陳씨이며, 천주泉州의 선유현仙遊縣 사람이다. 처음 탄생할 때에 탯줄에 자색을 띠었고, 일찍이 오랑캐 스님이 찾아오는 경사가 있었다.그리하여 출가의 뜻을 세워 마침내 용화사龍花寺 동선東禪에서 그곳 스님에 의해 머리를 깎고, 나이가 차서는 구족계를 받았다. 그런 뒤 설봉雪峰으로 가서 현묘한 진리의 관문에 은밀히 계합했다.
얼마 후 구월 지방을 떠나 초나라와 오나라 지방을 두루 돌아보고 다시 설봉으로 돌아오니,
설봉이 선사를 보자마자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선사가 대답했다.
“강서에서 옵니다.”
“어디서 달마를 만났는가?”
“분명히 화상께 말씀드렸습니다.”
“무엇이라 했던가?”
선사가 대답했다.
“어디를 갔다 오셨습니까?”
또 어느 날 설봉이 선사를 보자, 대뜸 가슴을 움켜쥐고 말했다.
“온 천지가 몽땅 해탈문이어서 손을 잡아끌면서 그대들로 하여금 들게 하려 해도 어째서 도통 들어가려 하지 않는 것이냐?”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화상께서는 저를 탓하셔서는 안 됩니다.”
“비록 그렇다 하나 등 뒤의 그토록 많은 중들을 어찌하겠는가?”
그 후로부터 민왕이 흠모해서 안국사安國寺로 청하여 불법을 펴게 하였다.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시지 않은 뜻인고?”
그리고는 또 말했다.
“그렇다 해도 잘못 알지 말라.”
“학인이 아까까지는 기틀을 다하지 못하였습니다. 스님께서 그 기틀을 다하게 해주십시오.”
선사가 양구하니, 학인이 절을 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갑자기 다른 곳에 갔을 때 어떤 사람이 그대에게 묻는다면, 어떻게 이야기하겠는가?”
학인이 대답했다.
“끝내 잘못 말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문 밖에 나서기 전에 벌써 웃음거리가 되었구나.”
“어떤 것이 달마께서 전한 마음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처음부터 후손이 아니었느니라.”
대중이 참문하니, 선사가 말했다.
“만일 흰 누더기가 있다면 몽땅 물들여 버리겠도다.”
그때 대중 가운데서 스님 한 사람을 불러내어 한복판에 서게 하고는 선사가 이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것이 견본이다. 비슷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대중 모두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다음날 어떤 스님이 모시고 섰으니, 선사가 말했다.
“그대는 이럴 때에 어찌하겠는가?”
스님이 말하기를,
“저 말씀입니까?”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 곁에 서서 말했다.
“비슷해졌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비슷하지 않느니라.”
“어째서 비슷하지 않습니까?”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그대는 검은 것을 띠었느니라.”
장경이 초경사招慶寺에 있을 때에 법당 동쪽 어귀에 서서 말했다.
“여기는 문답하기에 딱 좋은 곳이구나.”
이때 어떤 사람이 물었다.
“화상께서는 어찌하여 바른 자리에 서지 않으십니까?”
장경이 대답했다.
“그대가 그렇게 오기 때문이니라.”
“지금은 어떠하십니까?”
장경이 말했다.
“그대의 눈은 무엇에 쓰겠는가?”
선사가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말했다.
“그가 그런 것이야 그렇다 치지마는 다른 도리는 지금 어떻게 말할 것인가?”
후에 안국이 말했다.
“그렇다면 대중이 한꺼번에 절을 해야 되겠습니다.”
이에 선사도 대신 말했다.
“그렇다면 대중이 일시에 흩어져야 되겠습니다.”
선사가 대중에 있을 때, 국사의 비문에,
“마음을 얻으면 이란伊蘭이 전단나무가 되고, 본뜻을 잃으면 감로가 비름 밭이 된다”는 말이 있었는데,
선사가 이것을 들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한 말씀 가운데 얻고 잃음 두 뜻이 다 갖추어져야 한다 하는데, 어떻게 말하겠는가?”
스님이 주먹을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주먹이라 불러서는 안 됩니다.”
선사가 긍정하지 않고, 자신이 주먹을 세우면서 말했다.
“그저 주먹이라 부를 뿐이니라.”
“어떤 것이 사람을 살리는 검입니까?”
선사가 말했다.
“그대의 눈을 멀게 하지 못하겠다.”
“어떤 것이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까?”
“그저 이것일 뿐이니라.”
『서역기』에서
“서역에 도적이 있어 부처님 이마의 구슬을 훔치려 하니, 부처님의 이마가 점점 높아져서 뽑을 수가 없었다. 이에 도적이 꾸짖되,
‘부처님 인행因行 때에 원하시기를 내가 부처를 이룬 뒤에는 일체 중생의 가난함을 구제하리라 하셨는데, 어째서 오늘 그 본원을 어기고 저에게 구슬을 주지 않으려 하십니까?’ 하니,
부처님께서 그제야 고개를 숙여서 구슬을 뽑게 했다” 한 대목을 선사가 들어 대중에게 물었다.
“여기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본래의 서원인 사람 제도와 위배되지 않는 것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대중이 대답이 없자,
선사가 말했다.
“원願이 있으면 위배되지 않느니라.”
이에 장경이 말했다.
“아까의 일이 어찌 인행 때의 서원을 어기는 것이 되겠습니까?”
선사가 상당하여 말했다.
“달마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본시 이 땅에 와서 교법을 전하여 미혹한 무리를 건지려 하였다’ 하셨는데,
여러분은 말해 보아라.
무엇이 교법인가, 패다라貝多羅의 교법이 아닌가?
만일 패다라의 교법이라면 벌써 가섭마등迦葉摩騰과 축법란竺法蘭 두 삼장이 한漢나라 명제明帝 영평永平 때에 건너왔고,
만일 이 교법이 아니라면 어떤 교법이란 말인가?
가려낼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만일 가려낼 사람이 있다면 나와 보아라. 만일 가려낼 이가 없다면 내가 가려내 주리라.
이것이 곧 납자들이 은밀히 알아야 할 곳이니, 얻겠는가?
달마의 그런 말이 본격적인 행각인行脚人을 만난다면 알게 되겠는가?
그대들은 달마의 허물이 어디에 있기에 그리 알지 못하는지 말해 보아라. 내 오늘 좋고 나쁜 것도 알지 못하고 전도되어 그대들을 위해 주었는데도 여전히 밝히지 못하니,
만일 바른 법령에 의지한다면 어째서 눈썹을 곤두세우고 조금도 정신 차리려 하지 않는가?
온 천지가 몽땅 그대들의 가풍家風이니, 그대들은 일시에 깨달아라. 깨달은 이가 있는가?
만일 깨달은 이가 없다면 그렇게 취한 듯 느릿느릿하지 마라. 그래서야 이룰 때가 어찌 있으리. 부지런히 노력해야 하리라.”
이때 어떤 이가 물었다.
“듣건대 스님께서 ‘온 천지가 그대들의 가풍’이라 하셨는데, 학인은 이 경지에 이르렀건만 어째서 보지 못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그대가 어떤 경지에 이르렀기에 보지 못했는가?”
“스님께서 지시해 주십시오.”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허물을 용서해 주리라.”
또 물었다.
“듣건대 스님께서 ‘만일 정령正令에 의지한다면 그대들은 어디 가서 알아차리겠는가?’ 하셨는데, 어떤 것이 정령입니까?”
선사가 양구하니, 학인이 어리둥절해 하였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믿지 못하니, 어디서 알아차리겠는가?”
6조가 행자의 몸으로 있을 때, 유지략劉志略의 집에 갔는데, 밤에 비구니가 『열반경涅槃經』 읽는 소리를 들었다.
비구니가,
‘행자도 『열반경』을 읽을 수 있는가?’ 하고 묻자,
행자가 대답하되,
‘글자는 읽을 줄 모르나 뜻은 알 수 있소’ 하였다.
그러자 비구니가 의문 나는 구절을 들어 행자에게 물으니,
행자가 모두 모른다고 하였다.
그러자 비구니가 비웃고 깔보면서 말했다.
“글자도 알지 못하는데, 어찌 뜻을 알겠는가?”
이에 행자가 말했다.
“‘모든 부처님들의 도리는 문자와 상관없다’ 한 말도 듣지 못하셨소?”
선사가 이 이야기를 들어서 설법을 하고는 이어 말하였다.
“한 가지 질문이 빠졌기 때문이니라.”
이때 누군가가 물었다.
“어떤 것이 문자와 도리에 관계되지 않는 일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어디를 갔다가 왔는가?”
선사가 장경과 함께 강 밖에서 다시 영嶺으로 들어오다가 길가에서 잠시 쉬는데, 장경이 옛일을 들어 이야기를 했다.
“태자께서 처음 탄생하실 때에 눈을 돌려 사방을 굽어보시고는 각 방위를 향해 각각 일곱 걸음을 걸으시고서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면서 말하기를,
‘하늘 위와 하늘 아래 내[我]가 가장 높다’ 하셨는데,
태자께서 탄생하실 때에 실제로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요?
아니면 결집하는 이가 끼어 넣은 말씀인가요? 설사 탄생하실 때 그렇게 말씀하시지는 않았다 해도 눈으로 사방을 두루 살피셨다는 것은 조금 일리가 있습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어디가 그러합니까?”
장경이 말했다.
“스님의 이 한 질문을 깊이 이해하겠습니다.”
선사가 말했다.
“질문을 이해한 것이야 질문을 이해했다 해도 몹시 덤벙거리시는군요.”
장경이 주장자를 들고 두세 걸음 걷다가 다시 고개를 돌리고서 말했다.
“조금 덤벙거려도 무방합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덤벙거리는 것을 싫어한다고 잘못 알지 마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