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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화수경 제7권
25. 탄교품(歎敎品)[1]
[설법의 복덕]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이 만일 바른 법을 옹호하고 참된 논[眞論]을 요달하려거든 나의 제자에게 물으라.
여래는 그때에 매우 기쁘게 위로하리라. 왜냐하면 불종(佛種)을 잇는 까닭이니라.
이런 까닭에 너희들 성문 제자들아, 마땅히 보살을 위하여 바른 법을 연설하여 보이고, 가르치고, 이롭게 하고, 기쁘게 하여야 한다.
한량없고 가없는 복덕을 당연히 얻으리라.
사리불아, 만일 나의 제자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로서 부처님을 생각하고 법을 생각하고 여래를 또 생각하는데, 법을 구하기 위한 까닭에 한량없고 가없는 아승기겁 동안에 여러 가지 근고를 받느니라.
이와 같은 생각으로써 보살을 위하여 내지 한 게송을 설하고, 또 이러한 생각을 하라.
‘이 여러 보살이 혹은 이 법을 듣고 보이고 가르치고 이롭게 하고 기껍게 하여 선근을 반드시 심고 불법을 닦아 익혀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다.
한량없고 가없는 중생의 시작이 없는 여러 가지 생사의 고통을 끊으려는 까닭이다.’
법을 설하면 얻는 복덕은 가령 형상이 있는 것, 혹은 사천하에 있는 중생을 모두 사람의 몸을 얻게 하여 이 복덕에서 각각 1분씩을 갖게 하되, 뭉쳐 갖기를 수미산과 같게 하더라도 이 복덕은 오히려 멸하여 다할 수 없느니라.
또 사리불아, 사천하는 그만두고,
혹은 소천(小千)ㆍ중천(中千)ㆍ대천(大千) 세계에 있는 중생, 빛이 있는 것, 빛이 없는 것, 생각 있는 것, 생각 없는 것, 생각 있는 것이 아닌 것, 생각 없는 것이 아닌 것들을 일시에 다 사람의 몸을 얻게 하여,
각각 한 그릇의 크기가 수미산과 같은 것으로써 이 복덕을 꽉 담아 가지고 가게 하더라도 오히려 멸하여 다하지 못하리라.
사리불아, 나의 여러 제자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는 보살을 위하여 한 사구게를 설하여 보이고 가르치고 이롭게 하고 기쁘게 하면 이 한량없고 가없는 복덕을 얻으리라.
사리불아, 이 여러 보살이 만일 이 사람이 그 법을 설한 것을 알면 큰 이익을 얻기 때문에 저 불법을 능히 이룰 것이다.
또 부처님의 지혜를 능히 더하고 자라게 하며,
이마로 이고 어깨에 짊어져서 온갖 즐길 거리를 공급하는 것과 같을 것이며,
끝내는 위없는 보리를 성취하여서 먼저 법을 설하여 4제(諦)를 보게 하리라.
사리불아, 이 여러 보살들이 이와 같은 공급하는 이익을 행하더라도 그 은혜는 깊지 못하느니라. 왜냐하면 이 사람으로 말미암아 한량없고 가없는 부처님 법을 능히 볼 수 있었으니, 이런 까닭에 마땅히 알아 두어라.
여러 보살을 위하여 법을 강설하면 그 은혜는 갚기가 어려우니라.
[묘지 비구와 장자의 아들 이의]
사리불아, 이에서 옛적 지나간 한량없고 가없는 아승기겁에 부처님께서 계시었는데,
이름은 보수(普守) 여래ㆍ응공ㆍ정변지ㆍ명행족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조어장부ㆍ천인사ㆍ불세존이셨다.
수명은 7만 세였고, 그 성문의 대중은 세 번의 큰 회[三大會]에 있어서, 첫 번째의 회(會)에서의 설법에서 80나유타의 사람들이 모두 도를 이루었고, 중간 회에서는 설법에서 60나유타의 사람들이 또한 모두 도를 얻었느니라.
사리불아, 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 바른 법[正法]이 세상에 머문 지 꼭 4천 세가 차서 장차 멸하려고 할 때에,
비구 한 사람이 있어 이름이 묘지(妙智)이었는데, 영리하고 총명하고 들은 것이 많고 슬기로왔다.
그때 남섬부주(南贍部洲) 왕의 이름은 환희(歡喜)였고, 왕이 사는 성(城)의 이름도 환희였다.
그 성의 길이는 12유순이고 너비[廣]는 7유순이었는데, 풍년 들고 즐겁고 편안하고 고요하여 그 속에 백성들이 가득 찼었다.
이 성 가운데 장자(長者) 한 명이 있었는데 이름은 유연(柔軟)이고, 장자의 아들이 있는데 이름은 이의(利意)였다.
이의가 묘지의 처소에 나아가 한쪽에 앉았더니, 묘지 비구는 즉시 그를 위하여 보살의 법을 설하여 주었다.
이 장자의 아들이 법을 듣고 환희하여 즉시 값이 억(億) 금이나 나가는 보배로 된 옷을 가져다가 공양 올리고 이렇게 말하였다.
‘거룩하십니다. 법사 스님이시여, 설법하신 바가 미묘하나이다. 원컨대 저의 집을 돌아보시어 이와 같은 법을 설하여 주시어 저희들로 하여금 큰 이익을 얻게 하여 주소서. 법사 스님의 법의 보시도 또한 다시 큰 열매가 되오리다.
저는 오늘부터 반드시 형상과 목숨이 다하도록 의복, 음식, 탕약(湯藥)과 살아가는 데 필수되는 바를 공양해 올리겠사오며, 아울러 법사 스님의 뜻 맞는 친구분들에게도 제가 죽을 때까지 공양을 공급해 드리겠나이다.’
묘지 비구는 옳다 하면서 좋다고 말하였다.
그때에 장자의 아들은 땅에 엎드려 발아래 절하고 오른쪽으로 돌고 나서 떠나갔다.
그 뒤에 묘지 비구는 그의 집으로 나아가서, 이의의 부모와 권속도 교화하여 그들로 하여금 모두 위없는 보리를 뜻하여 구하게 하였다.
이 장자의 아들은 이 복덕으로써 한량없는 아승기겁을 지나도록 일찍이 부처님에게서 떠난 적이 없이 법문을 늘 얻어 들었고 선지식을 만났었다.
사리불아, 그대는 이의를 일러서 다른 사람이라고 하겠느냐? 내 몸이 이요, 그때의 이의의 아버지 유연 장자는 가섭불(迦葉佛)이었느니라.
사리불아, 너의 뜻에 이 의의의 부모와 집안의 권속들이 위없는 도에서 물러나 옮기었다고 말하느냐?
이렇게 관하지 말아라.
왜냐하면 이 여러 사람들은 모두 벌써 위없는 보리에 반드시 결정적으로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범행(梵行)을 깨끗이 닦고 있는데, 나는 곧 위없는 도의 수기를 주었느니라.
사리불아, 묘지 비구는 곧 저 몸으로서 열반에 들었느니라.
이 비구는 소승(小乘)으로써 열반에 든 이는 아니니라.
다만 이의 한 사람만을 위하여 설법한 복덕 인연으로 불도를 마땅히 이루었을 것인데, 하물며 이에 다시 유연 장자와 여러 권속을 위하여 법문을 설한 복덕이겠느냐?
사리불아, 만일 이 비구가 열반에 들지 않았던들 세계에 있는 온갖 공양거리로 그 은혜를 갚음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묘지를 따라 법을 얻어 들은 때문에 크게 깨끗하고 묘하고 매우 깊은 불법에 이른 것이다.
이런 까닭에 마땅히 알아 두어라.
만일 누구든지 보살을 위하여 능히 보여 주고 가르치고 이롭게 하고 기쁘게 하면, 한량없고 가없는 복덕을 반드시 얻느니라.
왜냐하면 보살의 발심은 한량없이 이익되는 일을 일으키기 때문이니라.
[비유, 바다가 처음 일어날 때, 초발심]
사리불아, 마치 큰 바다가 처음 차차 일어난 때에 꼭 알아라.
모두 값이 있거나 값이 없거나 마니보배를 위하여 있을 곳을 마련함과 같으니라. 이 보배가 모두 큰 바다에서 나오기 때문이니라.
보살의 발심(發心)도 또한 이와 같아서
처음에 차츰 일어날 때에는 꼭 알아 두어라.
곧 이것은 여러 지혜의 보배가 나는 곳이니,
세계ㆍ출세계(出世界)ㆍ누(漏) 있는 것ㆍ누 없는 것ㆍ함[爲]이 있는 것ㆍ함이 없는 것ㆍ때 끼고, 깨끗한 온갖 법의 그릇[法器]이 있는 것과 같으니라.
사리불아, 마치 큰 바다가 처음에 차차 일어날 때에 꼭 알아 두어라.
꼭 이것은 큰 몸뚱이의 중생을 위하여 살 곳을 마련함이니, 가운데로부터 나서 자라고 크고 번성하여 무성하는 것과 같으니라.
보살의 발심도 또한 이와 같으니,
처음 차차 날 때에, 꼭 알아 두어라.
곧 한량없고 수없는 큰 지혜의 몸과 큰 선근의 몸과 여러 중생의 몸을 위하여 있을 데를 마련해서 모두 이 마음을 의지하여 차츰 더 자람을 얻게 하는 것이니라.
사리불아, 마치 큰 바다가 처음 차차로 일어날 때에, 꼭 알아라.
곧 여러 큰 용왕(龍王)을 위하여 살 데를 마련함이니, 그 큰 용왕은 금시조(金翅鳥)에게 잡아먹히지도 않고, 두 날개의 풍기는 바람[扇風]은 또한 고통을 줄 수 없으리라.
그래서 이 여러 용왕들은 큰 바다로부터 나와서 큰 구름을 능히 일으켜서, 8만 주(洲)를 덮어 널리 비를 쏟아서 큰 덕택에 고루 흡족치 않음이 없게 함과 같으니라.
사리불아, 보살의 발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아서 처음 차츰 났을 때에, 꼭 알아 두어라.
곧 불도(佛道)를 이룰 때의 큰 보살용(菩薩龍)을 위하여 있을 데를 마련한 것이니,
이 큰 용왕이 금시조에게 잡아먹히지 않는 것과 같이
이 보살이 깊은 부처님 법에 머물러 있는데 마군이나 혹은 마군의 백성들이 능히 나오지 못하고,
이 큰 용왕이 금시조의 날개바람에 고통 받지 않는데 만일 괴롭게 하려는 즉시 사라져 없어지듯이,
보살도 이와 같아서
마군이나 마군의 백성들이 능히 괴롭히고 헐지 못하며,
만일 괴롭힐 마음을 먹으면 즉시에 모두 사라져 없어져서 마군의 결박, 마군의 업, 마군의 일을 능히 헐 수 있느니라.
사리불아, 이 큰 용왕은 큰 바다로부터 나와서 사천하와 8만 섬에 비를 널리 내려서 혜택을 골고루 흡족하게 해 주어
풀ㆍ나무ㆍ숲ㆍ백 가지 곡식ㆍ약 나무 등을 모두 나서 자라게 하고
또한 두 발, 네 발의 중생으로 하여금 굶주리고 목마른 생각이 없게 하고,
이 비를 내리고 나서 본래의 궁전으로 돌아가느니라.
큰 보살용도 또한 이와 같이
부처님 법으로부터 나와서 삼천대천세계의 도시와 시골에 큰 법의 비를 내려서 한량없고 수없는 중생의 세 가지 목마른 애욕, 곧 욕심의 애욕ㆍ형상의 애욕ㆍ무형의 애욕을 능히 끊어 주느니라.
사리불아, 마치 큰 바다가 처음 이루어지려고 할 때에 사천하 8만의 여러 섬에 갖은 흐르는 물과 크고 적은 빗물, 강과 샘의 근원이 그 가운데로 흘러 들어가는 데,
모조리 받아들여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음은 바다의 법으로서 마땅히 그러하니라.
가지가지 물이 들어오지만 모두 본 이름은 버리고 똑같이 바닷물이라 이름하며,
본래의 맛은 모두 잃어버리고 한 가지로 한 짠맛이 되는 것이다.
보살의 발심도 이와 같아서 처음 이루고자 할 때로부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때까지 불법을 구족하여, 지혜로써 중생의 의심을 능히 끊느니라.
여러 큰 논사(論師)의 복덕ㆍ지혜ㆍ선근의 벌써 이룬 것이나 혹은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을,
부처님은 의심을 끊어 주시어 본래의 일컬음은 모두 잊어버리고,
다만 똑같이 부처님 제자라고 이름하느니라.
큰 바다의 물이 똑같은 한 가지 짠맛인 것처럼
나의 여러 제자는 똑같이 욕심을 여의고 한 해탈의 맛을 얻었느니라.
사리불아, 비유해 말하자면 큰 바다가 차차 깊어지는데,
마치 큰 바닷물이 처음에 문득 갑자기 깊어지면 여러 보배를 구하는 이들이 들어갈 수 없고,
차차 깊어져서 끝내 같음이 없는[無等] 데 이르러 큰 바다를 이루는 것과 같이,
여러 보살의 마음도 또한 이와 같아서
처음 뜻을 발했을 때에 점점 깊어져서 같음이 없음을 이루느니라.
사리불아, 이 보살의 마음이 점점 깊어짐은 이것이 단바라밀(檀波羅蜜)ㆍ시바라밀(尸波羅蜜)ㆍ찬제바라밀(羼提波羅蜜)ㆍ비리야바라밀(毘利耶波羅蜜)ㆍ선바라밀(禪波羅蜜)이다.
그 중에 매우 깊은 것은 이른바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이 이것이다.
같음이 없음[無等]이 깊은 것은 여러 부처님의 법이니라.
사리불아, 보살도와 같은 것은 처음부터 문득 갑자기 깊게 실체를 증득하는데, 한량없는 법보(法寶)를 구하는 중생들은 능히 들어갈 수 없느니라.
사리불아, 비유해 말하자면 큰 바다를 이루게 하는 까닭은 모두 온갖 세계를 이익케 하기 위함이니,
보살의 발심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처음부터 아래로 온갖 세계를 모두 이익되게 하기 위함이니라.
사리불아, 비유해 말하자면 큰 바다가 처음 차차 일어날 때에 보배 섬[寶洲]의 성품이 있는 것과 같이,
보살의 발심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처음에 점차로 염처ㆍ정근ㆍ여의족ㆍ근(根)ㆍ역(力)ㆍ각(覺)ㆍ도(道)와 여러 선정배사삼매법(禪定背捨三昧法)의 보배 섬의 성품이 있느니라.”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희유하십니다. 부처님이시여, 이 큰 바다의 여러 가지 비유를 잘 말씀하셔서 보살의 발심한 복덕의 한량없고 가없음을 밝혀 주셨나이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의 마음이란 것은 큰 바다의 비유로서는 능히 알 수가 없느니라. 왜냐하면 이 마음은 큰 서원을 깊이 발하여 장엄하였느니라.
여래가 만일 이 마음의 복덕을 말하는 것을 한 겁을 채우거나 한 겁을 지나더라도 오히려 능히 다할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여러 보살들은 이와 같은 마음을 발하여서 큰일을 능히 이루고, 이기기 어렵고, 헐기 어렵고, 가장 훌륭하고, 가장 묘하여 중생에게 온갖 즐길 거리를 능히 주어, 삼계의 고통을 옮겨 큰 지혜를 내고, 낭떠러지의 밑바닥을 헤아릴 수 없듯, 걸리고 막힘이 없는 큰 지혜의 광명이니라.
[다른 비유들]
사리불아, 요점을 들어 말하자면, 여러 보살의 마음이 이룬 바 큰 일은 말로 다할 수 없느니라.
사리불아, 마치 삼천대천세계가 처음 차차 일어날 때에 문득 그 가운데의 온갖 중생을 위하여 의지할 곳을 마련하는 것과 같이,
보살도 이와 같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처음 발했을 적에, 문득 한량없는 중생을 위하여 지혜를 얻게 하기 때문이니라.
사리불아, 비유하자면 마치 수미산왕(須彌山王)이 처음에 차차 일어날 때에 한량없는 여러 하늘을 위하여 의지할 곳을 마련하느니라.
이 산왕으로 말미암아 도리(忉利)의 여러 하늘이 아수라의 무리들을 곧 깨뜨려 부수는 것과 같이,
보살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처음 발하여, 도를 닦아 부처가 되어 한량없고 수없는 제자들을 위하여 의지할 곳을 마련해 주고,
마치 도리천(忉利天)이 수미산으로 말미암아 아수라 무리를 깨뜨려 부수듯이,
중생들은 여래로 말미암아 마군의 무리를 능히 무너뜨리느니라.
사리불아, 비유하자면 마치 철위산왕(鐵圍山王)이 처음 차차 일어날 때에, 꼭 알아라.
그 가운데 중생을 위하여 8다가바라 바람을 막고 가려 주어 곧 헐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이,
보살도 위없는 보리의 마음을 처음 발하여 점점 높은 데로 옮겨 견고하고 막기 어렵게 되나니,
보살에게 능히 친하고 가깝게 하는 중생을 위하여 여러 마군의 바람을 막아 괴롭게 하고 헐지 못하게 하느니라.
사리불아, 마침 설산왕(雪山王)이 처음에 차차 일어날 때에 여러 가지 약초와 약 나무를 위하여 의지하여 살 곳을 마련하는 것과 같이,
보살도 처음 났을 적에 한량없고 수없는 중생을 위하여 여러 가지 법의 약속 익혀서 번뇌의 병을 헐어버리느니라.
사리불아, 비유하자면 마치 보배의 성품[寶性]이 처음 비로소 생길 적에 한량없는 백천만억 중생을 위하여 이익될 분을 마련하는 것과 같이,
보살도 이와 같이 처음 비로소 큰 지혜의 보배 성품을 일으킴으로부터 한량없고 가없는 아승기 중생을 위하여 이익될 법을 마련하느니라.
사리불아, 비유하자면 마치 해의 천자궁[日天子宮]이 처음 이루어지려 할 때에, 사천하의 8만의 여러 주(洲)를 능히 비추고 능히 뜨겁게 하는 것과 같이,
보살도 처음 비로소 일어남으로부터 점점 늘고 자라서 부처의 계실 곳을 마련함이니,
삼천대천세계의 중생을 위하여 큰 법의 광명이 되어서 또한 여러 탐애(貪愛)와 성내는 번뇌[恚煩惱] 등의 진창을 능히 말려 없애느니라.
사리불아, 비유하자면 마치 아누달(阿耨達)못이 처음 차차 생길 적에 아누달 용(龍)을 위하여 있을 곳을 마련해 주고,
이 못가로부터 네 개의 큰 못이 흘러나와 모두 두 발, 네 발의 중생을 위하여 이익이 되게 해 주고, 목마름을 없애 주고, 여러 가지 금과 보배를 나오게 하고,
그 다음 차차 큰 바다로 들어가는 것과 같이,
이 대승법(大乘法)도 처음에 차차 일어날 적에 또한 이와 같이
온갖 보살이 이 승(乘)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불법을 능히 닦아 익혀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 나서,
곧 네 가지 큰 법의 하수(河水)를 넓고 길게 흘러 내보내니, 이른바 뜻의 걸림이 없는 것[義無礙], 즐겨 설법하는 데 걸림 없는 것[樂說無礙]이다.
공(空)ㆍ상 없음[無相]ㆍ짓는 것 없음[無作]ㆍ8배사(背捨)ㆍ미(味)ㆍ근(根)ㆍ역(力)ㆍ각도(覺道),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소리를 한량없고 수없는 중생들이 듣고 나서,
번뇌의 갈애[渴]를 끊고 능히 증득케 하여 실제를 길이 여의게 하느니라.
이와 같이 사리불아, 여러 보살의 마음은 처음에 차차 일어날 때에 능히 큰 일, 이기기 어렵고 헐기 어렵고 같음이 없이 같은[無等等] 일을 이루어서 또한 같음 없는 중생을 크게 이롭게 하여 위없는 보리의 마음을 발하게 하느니라.
사리불아, 여래는 비록 이 말을 하지만 능히 다할 수 없다. 이런 까닭에 꼭 알아라.
어떤 사람이 보살을 위하여 능히 법을 설하여 보여 주고, 가르치고, 이롭게 하고, 기쁘게 해 주면 얻는 공덕이 한량없고 가없어 일컬어 셀 수 없느니라.
사리불아, 내가 부처의 눈[佛眼]으로 이 복의 갚음을 관하여도 그 끝 간 데를 보지 못하였다. 어떠한 승(乘)을 따라 가더라도 모두 도달할 수 있다.
마치 어떤 사람이 부처님에게 보시하여 심은 선근(善根)을 열반에 이르도록 중도에서 끝내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