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경요집 제7권
12. 장도부(奬道部)
〔여기에는 일곱 가지 연(緣)이 있음〕
12.1. 술의연(述意緣)
저 삼계(三界)를 수레 바퀴처럼 돌고 여섯 갈래 세계를 부평초[浮萍]처럼 떠돈다. 신비한 밝음은 썩지 않으나 인식하는 생각은 어둡고도 아득하다.
홀연히 죽었다간 홀연히 태어나고 어느 때엔 왔다가 어느 때엔 가버려서 신명(身命) 버리는 것을 산가지[籌]로 계산하여 말하기조차 어렵다.
다만 저 대지와 큰 산도 나의 옛 몸으로 이루어진 티끌 아님이 없고 넓은 바다와 흐르는 냇물도 다 나의 눈물이나 피와 같은 것이다.
이로써 보건대 어느 누가 친구가 아니겠는가?
사람과 귀신을 비록 구별한다 해도 나고 죽음은 진실로 같다.
은애(恩愛)의 정(情)은 때로 그림자와 메아리 같은 관계가 반복되는 것인데도 중생들은 사특하고 어리석고 암둔하여 친소(親疏)도 구분하지 못하고 끝내 남의 몸은 잃게 하고 자신의 몸만 보양한다.
그러하여 다시 서로 죽이고 베며 다 함께 원수처럼 대하니, 오랜 겁을 지나는 동안 서로 원수가 되어 괴로움의 과보를 다하기 어렵다.
가만히 이런 일들을 생각해 보면 어찌 마음이 아프지 않겠는가?
12.2. 계남연(誡男緣)
무릇 속가에 살고 있는 장부(丈夫)의 높고 낮음[尊卑]에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귀함이요 다른 하나는 천함이며,
하나는 부유함이요 다른 하나는 가난함이다.
부유하고 귀한 사람은 방일(放逸)함이 많아 오만하고 잘난 체하며 남을 모욕하고 업신여긴다.
혹은 권세를 이용하고 세력을 빙자하여 자신만 높히고 남을 업신여기기도 하고,
때로는 지식이 많고 총명 통달하여 재주만 믿고 남을 업신여기기도 하며,
때로는 말주변이 좋고 문장이 뛰어나 유창한 언설로 남을 업신여기기도 하고,
때로는 귀족임을 뽐내고 사치하면서 경솔하고 오만하여 남을 업신여기기도 한다.
혹은 아름다운 얼굴과 고운 자태가 있다 하여 그 용모를 믿고 남을 업신여기기도 하고,
때로는 살지고 뛰어난 말을 타고 다닌다 하여 그 탈 것을 믿고 남을 업신여기기도 하며,
혹은 재물이 많고 노비(奴婢)까지 거느린다 하여 부유함을 믿고 남을 업신여기기도 하나니,
이와 같이 많고 많은 것을 이루 다 갖추어 기록할 수조차 없다.
이렇게 중생들이 어리석으니 매우 불쌍하구나.
그들은 덧없는 죽음이 장차 닥쳐오는 줄도 모르고 부질없이 교만한 마음을 일으키다가 닥쳐오는 과보에 삶기며 태워지며 볶이고 지져지기를 서로 서로 기다리고 있으며, 옥졸(獄卒)들은 작살을 잡고 오래도록 망을 보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일들에 대해서는 근심하지 않고 공연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니 돼지나 양 같은 짐승이 죽음이 다가오는 줄 모르는 것과 무엇이 다를 것이며, 파리가 죽은 시체를 탐내고 즐거워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고금(古今)을 생각해 보면 부유하고 귀함은 한결같지 않고 나고 죽음은 번갈아 들며, 귀하고 천함도 티끌과 같은 것이다.
부유하고 귀한 사람도 오직 거친 무덤만 나타내 보이고, 가난하고 천한 사람도 이미 재와 흙덩이와 같아지고 말 뿐이다.
나고 죽음이 번갈아 닥쳐몸을 이미 알있다면 부디 자기를 낮추고 남을 공경하고 높여야 한다.
그런 까닭에 친하고 소원함에 있어서 일정한 것이 없고 귀하고 천함도 항상한 것이 아니며, 괴로움과 즐거움도 위치가 바뀌고 오르고 내림도 다시 번갈아 드는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귀천(貴賤)은 이마 항상한 것이 아니니, 비유하면 마치 물과 불이 서로 번갈아 오르고 추위와 더위가 교대로 바뀌어 오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큰 부자를 보면 방은 따뜻하고 옷도 풍부하며 음식도 넉넉하여 수고롭게 경영하고 찾지 않아도 저절로 생긴다.
또 가난하고 고달픈 사람을 보면 주라고 피폐하며 힘들여 노력하고 분주하게 구하면서 새벽에 일어나고 밤늦게 잠에 든다. 그리하여 몰골은 초췌하고 심정(心情)은 피로하고 복잡하다.
비록 조금 얻은 것이 있다 하더라도 백방(百方)으로 다 흩어지고 만다. 종일토록 풍요로워지기를 원하지만 풍요로웠던 적은 아예 잠깐도 있지 않았으니, 이것은 다 괴로움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권유하고 장려하여 그들로 하여금 보시하게 하고 힘을 다하여 복을 닦게 하는 것이다.
만약 또 어떤 사람이 갖옷을 입고 패물을 차되, 곱고 빛나며 향기롭고 깨끗하여 봄과 가을의 절기를 따라 시원하고 따뜻하며, 추위와 더위 등의 네 계절이 아무리 변하고 바뀌더라도 필요한 것이면 없는 것이 없다.
또 어떤 사람은 한 자의 삼베도 완전하지 못하고 한 길쯤 되는 비단은 모두 낡고 해져서 때가 묻고 더러우며 냄새나고 너덜너덜하다.
뜨거운 여름에도 모시 옷을 알지 못하고 얼음과 눈 속에서도 따뜻한 명주옷을 모르며, 나아가 몸조차 가리지도 못한다.
남녀가 벌거벗은 몸은 비단 부끄러운 것 뿐만 아니라 실로 괴로운 것이니, 만약 이런 고통을 보면 어찌 멀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 까닭에 권유하고 장려하여 그들로 하여금 복을 닦게 하고 꼭 의복과 주택 등을 보시하라고 한 것이다.
어찌 모든 사람들에게는 다 있는데 내게만 유독 없는 것을 보지 못하는가?
그런 까닭에 마땅히 용맹스럽게 닦고 익혀야 한다.
만약 또 어떤 사람은 그 음식을 감칠맛나고 단 것으로 올리고 겸하여 진귀한 요리까지 다 올려 놓는다. 그리고 상을 붙이다 못해 포개기까지 해가며 상을 푸짐하게 차려 자리에 벌려 놓으면 기름지고 향기로운 냄새가 철철 넘쳐난다.
그렇지만 또 어떤 사람은 현미밥도 충분하지 못하고 비름이나 콩잎 반찬에 끓인 국조차도 늘 부족하며, 소금과 매실[鹽梅]은 애초부터 두 가지 다 없었고 고기와 채소는 두 가지 다 없은 지가 이미 오래이다.
나아가 이틀에 한 끼나 먹을 때에도 미음과 죽으로 겨우 연명했으며, 게다가 수과(水果)를 섞고 초채(草菜)를 가져다가 겨우 보충한다. 누렇게 쇠해지고 몹시도 곤궁하여 스스로 구제하고 살아갈 방도도 없다.
만약 이런 괴로움을 보면 어찌 멀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 까닭에 권유하고 장려하여 그들로 하여금 복을 닦게 하고 마땅히 음식과 을료를 보시하라고 하는 것이다.
어찌 많은 사람들은 다 풍족한데 나만 유독 곤궁해서야 되겠는가?
그런 까닭에 부디 용맹스럽게 닦고 익혀야 하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영화로운 자리에 통현(通顯:出世)하여 살진 말을 타고 가뿐한 옷을 입으며 마음대로 자재하면서 다닐 때에는 하늘과 사람들이 우러러보고 머물러 있을 때에는 귀신들도 공경하고 귀하게 대접한다.
그런데 또 어떤 사람은 비루하고 더럽고 혐오스럽고 하천하여 사람들이 끼어 주지도 않고 살아 있어도 그 살아 있을을 알지 못하고 죽어도 그 죽음을 알지 못하며, 구렁과 개천가에서 도탄에 빠지고 쓰레기 더미 속에서 앉아 있거나 누워 잔다.
비록 꾸짖는 소리가 있어도 도리어 구타당하는 고통을 초래하며, 비단 귀신들만 공경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개들까지도 독기만 더 품는다.
만약 이런 고통을 보면 어찌 멀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 까닭에 권유하고 장려하여 그로 하여금 복을 닦게 하고 마땅히 교만을 없애고 겸손과 공경을 받들어 행하라고 하는 것이다.
어찌 다른 사람들은 항상 귀한데 나만 항상 천해서야 되겠는가?
그런 까닭에 부디 용맹스럽게 닦고 익혀야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얼굴 모습이 단정하고 말소리의 음운(音韻)에 맞아 사람들이 보고 듣기를 즐거워하고, 항상 널리 남을 이롭게 하는데 마음을 두며 인자하고 널리 사랑하여 그 말이 남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
그런데 또 어떤 사람은 얼굴 형상이 추하고 못났으며 게다가 말하는 것마다 사납고 모질어서 오직 자신만 이롭게 할 줄 알고 남은 조금도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인욕(忍辱)하기 때문에 훌륭하게 되고 성냄이 많기 때문에 악을 부르는 것이다.
만약 이런 고통을 당하면 어찌 멀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 까닭에 권유하고 장려하여 그로 하여금 복을 닦게 하는 것이니 부디 분노를 없애고 인욕을 받들어 행하라.
어찌 여러 사람들로 하여금 항상 훌륭한 자리에 있게 하고 나만 영원히 깨끗한 인연에서 떨어져 있어야 하겠는가?
그런 까닭에 부디 용맹하게 닦고 익혀야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의지력이 굳세고 질병이 적어서 항상 도를 수행해도 아무런 장애가 없다.
그런데 또 어떤 사람은 파리하게 여위고 근심 걱정이 많고 기력(氣力)이 피폐(疲弊)하여 조금만 움직여도 곧 피곤이 더하며 자거나 앉아도 늘 편안하지 않다.
이런 악을 보면 진실로 버려서 멀리하는 게 좋다.
그런 까닭에 권유하고 장려하여 그로 하여금 복을 닦게 하고 마땅히 의약(醫藥)을 보시하여 항상 남을 구제하라고 하는 것이다.
어찌 여러 사람들은 다 항상 병이 없는데 나만 영원토록 병에 침체(沈滯)해 있어서야 되겠는가?
그런 까닭에 부디 용맹스럽게 닦고 익혀야 한다.
무릇 이와 같은 일은 실로 제일 먼저 권해야 하는 것이니, 만약 서로 권하지 않으면 공부하는 사람이 부지런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